鴨江途中(압강도중)
황현(黃玹:1855~1910)
구한말의 시인. 호는 매천(梅泉), 본관은 장수이다.
1885년 생원시에 장원으로 급제 하였다.
어지러운 시국을 보고 벼슬을 단념한 뒤 다시는 서울에 발을 들이지 않았다.
1910년 한일 합방으로 나라가 망하자, 유언 시를 남기고 약을 마시고 순절하였다.
시문집으로 『매천집』이 있고, 구한말의 야사를 기록한『매천야록』이 있다.
황현은 을사조약으로 나라가 망하자, 망한 나라에서 왜놈의 신하로 사는 것이 부끄럽다며
약을 마시고 자결했던 뜻이 높은 선비였다.
그가 일찍이 〈압록강 가는 길에〉라는 시를 지었다.
산들바람 불어오자 나귀 걸음이 더욱 빨라지고
微有天風驢更快 미유천풍려경쾌
봄비가 오고 나자 새가 *모두 어여쁘다
一經春雨鳥*皆姸 일경춘우조*개연
나귀가 땀을 흘리며 길을 간다. 산들바람이 살랑살랑 불어온다.
나귀는 신이 나서 더 빨리 방울 소리를 울리며 걸어간다. 봄비가 내려서
세상이 깨끗해졌다. 새들이 목욕한 것처럼 빛깔이 고와졌다.
친구인 김택영과 이건창이 이 시를 보았다.
두 사람은 대뜸 두 번째 구절의 여섯 번째 글자인 모두‘개(皆)’를 더할 ‘증(增)’로 고쳐 놓았다.
한 글자를 고치고 나니까 시의 뜻은 이렇게 바뀌었다.
산들바람 불어오자 나귀 걸음이 더욱 빨라지고
微有天風驢更快 미유천풍려경쾌
봄비가 오고 나자 새가 *훨씬 어여쁘다
一經春雨鳥*增姸 일경춘우조*증연
나귀의 걸음이 더욱 빨라졌다고 했으니, 새도 훨씬 예뻐졌다고 해야 옳다.
그냥 ‘새가 모두 예쁘다’라고 하면 왠지 힘이 없어 보인다.
하나는 움직임이 있는데 하나는 움직임이 없기 때문이다.
한 글자를 고치자 시의 분위기가 훨씬 살아났다. 황현도 웃으면서
친구의 말을 따라 한 글자를 고쳤다.
말에는 느낌이 있다. 시인은 이 느낌을 잘 음미할 줄 아는 사람이다.
‘철수는 공부를 잘한다’를 ‘철수는 공부도 잘한다’로 한 글자를 바꿔 보자.
앞의 문장은 그냥 철수가 공부를 잘한다는 의미가 되지만, 뒤의 문장은
철수가 공부뿐만 아니라, 다른 것도 다 잘한다는 뜻이 된다.
‘철수는 공부만 잘한다’로 고쳐 놓으면 다른 것은 잘 못한다는 의미가 되고 만다.
말에는 묘한 느낌이 있다.
『정민 선생님이 들려주는 한시 이야기』. 보림출판사. 200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