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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족은 같은 혈통에 속한 사람들의 집단일까? 그러나 순수하게 같은 혈통은 현실적으로 불가능에 가깝다. 그렇다면 공통의 언어, 역사, 지리 등 다른 여러 요소가 필요하다. 여기에 같은 민족이라는 소속감 같은 것도 필요하다. 이러한 민족은 서구에서 근대 국민국가가 본격적으로 대두되면서 생겨난 개념이다. 그 개념 자체가 역사적 산물이라면 민족은 당초에는 없었으나 만들어진 것일 수 있다. 하지만 설령 그것이 만들어진 허구라고 해도 근대 이후의 역사는 민족을 빼놓고 생각할 수 없다. |
근래 정보통신 기술의 발당, 자본의 국제적 유통으로 인해 국제화, 세계화 논의가 매우 활발하다. 인터넷을 통한 신속하고 대규모적인 정조의 유통으로 기존의 국경개념이 약화되고, 지구화를 촉진하고 있다. 국경을 자유자재로 넘나드는 초국적 자본 또한 이러한 현상을 가속화하고 있다.
이러한 시대 분위기 속에서 논란이 되었던 것 가운데 하나가 ‘민족’혹은 ‘민족주의’이다. ‘민족주의’는 이념의 문제로, 그것이 허위적이든 아니든 민족을 다른 어떤 것보다 우선시하는 주의, 주장을 말한다. 민족주의와 관련한 논의에서 세계화를 강조하는 사람들은 민족주의의 폐쇄성을 들어 이를 폐기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반면에 세계화를 강대국의 약육강식의 논리로 간주하는 사람들은 민족의 생존을 위해 민족주의가 더욱 강조되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어느 쪽 주장이 더 타당할까? 좀 더 근본적인 문제로, 양쪽에서 말하는 민족주의는 동일한 것인가? 민족주의의 뿌리는 어디서부터 비롯하는 것일까? 민족주의의 장래는 어떻게 될까?
인종, 민족, 민족주의
민족주의의 시비선악을 따지기 위해서는 우선 ‘민족’이란 무엇인가부터 명확하게 정리할 필요가 있다. ‘민족’이라는 개념과 관련한 논의는 주로 민족의 구성요소와 형성 등이 중점이 된다. 과연 민족(nation)이란 무엇일까? ‘민족’에 관한 논의는 종종 인종, 민족성 등의 개념과 중첩된다.
인종은 혈통의 순수성 여부를 기준으로 삼는다. 그러나 오늘날 온전한 순수혈통이라는 것은 존재하지 않는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따라서 자기 종족의 혈통적 순수성과 선천적 우월성을 앞세우는 종족적 ? 인종적 민족주의는 허구라고 할 수 있다.
인종을 넘어서는 민족개념은 그 구성요소를 어떻게 보느냐에 따라 다양한 관점이 존재한다. 대체로 객관적인 구성요소와 주관적인 귀속의지 혹은 소속감을 갖출 경우 근대적인 의미의 ‘민족’으로 인정하는 게 일반적인 추세이다. 민족을 구성하는 객관적인 요소로는 혈통, 언어, 종교, 지리적 조건, 역사적 운명 등을 꼽는다. 이와 함께 민족의식이나 민족감정, 소속감 같은 주관적 ? 심리적 요인이 존재해야 민족으로 인정될 수 있다는 것이다.
서구에서 이러한 의미의 ‘민족’은 근대 국민국가의 성립과 그 역사를 같이해 왔다고 보는 것이 일반적이다. 우리의 경우 서구와는 달리 일찍부터 고정된 국토, 비교적 동일한 종족과 언어, 일찍부터 형성된 중앙집권적 정치형태, 외침에 대항하면서 형성된 공동운명적 역사체험 등을 공유한다는 점에서 서양의 사정과는 다르다. 이러한 점을 들어 우리 역사에서 ‘민족’은 근대 이전에 형성된 것이라는 주장도 있다. 그러나 독립주권을 가진 국가의 구성원이라는 측면에서 보면 우리 역사에서도 진정한 의미의 민족은 근대 이후에 성립한 것으로 보고 있다. 근대 이전의 우리 민족은 ‘민족체’라는 개념으로 규정하기도 한다. 이렇게 볼 때 ‘민족’혹은 ‘민족공동체’는 원초적인 것도 아니며, 영원히 불변하지도 않는, 역사의 전개과정에서 형성 ? 변화되어 온 역사적인 실재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객관적인 구성요소와 주관적인 귀속의지, 소속감을 갖춘 민족구성원들 사이에 형성되는 민족주의(nationalism)란 구체적으로 어떠한 특성을 갖고 있을까? 민족주의와 유사한 개념으로 국가주의, 국민주의 등이 있다. 이는 서양의 개념인 ‘nation’을 국가, 국민, 민족 등으로 번역하는 것과 관련이 있다. 그러나 그 의미는 다르다. 국가주의는 국가를 으뜸으로 생각하며, 그 권위와 의사에 절대의 우위를 인정하는 입장에서 국가의 부강을 도모하려는 사상과 운동이라고 할 수 있다. 국민주의는 국민의 이익과 권위를 옹호하고 확립하고자 하는 입장이다. 이에 비해 민족주의란 민족의 독립, 통일 및 발전을 지향, 추진하려는 사상과 운동의 총칭이라는 정의를 내릴 수 있다.
민족주의의 여러 얼굴
민족이 역사 전개과정에서 형성 ? 변화하는 과정을 거치듯이, 민족주의 또한 시대와 해당 민조그이 처지에 따라 다양한 모습을 띄게 된다는 점에서 역사성을 갖는다. 또한 민족주의는 그 자체로 완결된 이념체계라고 볼 수 없다. 어떠한 민족공동체를 구성할 것인가를 구체적으로 논의하면 다른 이념과 결합하게 된다는 것이다. 역사적으로 독일 민족주의가 나치즘과 결합한 예를 볼 수 있다.
근대 민족주의의 이상은 안으로 는 근대시민의 권리가 보장되는 국민국가의 수립이념으로, 민족 밖을 향해서는 독립을 추구하는 주된 동력이었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우리의 경우 봉건사회에서 근대사회로 넘어오면서 제국주의 일본의 식민지배를 받고, 그 지배에서 벗어나기 위한 전개하는 데 가장 큰 동력이 되었던 것이 바로 민족주의라고 할 수 있다. 이를 저항민족주의라고도 부른다.
한국적 민주주의로 언급되는 60, 70년대 이른바 ‘박정희식’ 민족주의는 위에서 말한 국가주의로 보는 것이 타당할 것이다. 즉 정치권력이 자기의 권력을 국가와 동일시하면서 반정부세력을 탄압하고 인권을 억압하면서 권력을 유지하였던 이른바 지배이념이라고 할 수 있다. 이에 대항하여 민중생존권 보장을 핵심으로 하는 민중 민족주의가 저항이념으로 등장하기도 하였다.
과연 이러한 민족주의가 선인가 악인가 하는 문제는, 민족주의의 특성상 이차적 개념으로 자기완결적 논리구조를 갖추지 못하고 있다는 점에서 단언하기 어렵다. 시대와 지역을 막론하고 민족주의에서 보수와 진보의 양면성을 발견할 수 있다. 비유하자면 민족주의는 양날을 가진 칼이다. 잘못하면 안으로 국민(개인)을 해치고 밖으로는 다른 민족에게 위해를 가할 가능성을 내포하고 있다. 그러나 민족주의는 민족의 자유와 평등의 실현을 위해 창조적 에너지를 동원하기도 한다. 따라서 민족주의에 대한 선악 판단은 언제, 왜, 그리고 어떤 방법으로 구체화되며, 어떤 사회 이데올로기와 결합하느냐와 연계해서 논의해야 할 문제이다. 그 자체로는 시비선악을 말할 수 없다는 것이다.
민족주의와 역사서술
민족주의가 부정적인 측면을 드러내는 경우는 언제인가? 우선 민족주의가 폐쇄적인 자민족 중심주의적 성향을 보일 경우이다. 예를 들어 한 민족의 형성 ? 발전과정을 파악하는 역사서술에서 자민족중심주의의 특성을 볼 수 있다. 역사를 서술할 때 과거와 현실의 국가와 민족을 초역사화하는 지나친 민족주의적 경향이 있다는 것이다. 고대사회에는 ‘우리나라’, ‘국민’, ‘민족’으로 부를 수 있는 실체가 없는데도 불구하고 ‘민족’을 초역사적 ? 자연적 실재로 전제하고 역사를 서술하게 되어 역사적 실상을 왜곡하게 된다는 것이다. 이렇게 될 경우 역사서술에서 민족이 역사적으로 형성되었다는 관점이 드러나지 않는다. 일본과 한국의 교과서 논쟁에서 빈번하게 지적되는 문제점들이다. 일본역사에서 만세일계의 천황제 국가를 말한다거나 우리 역사에서 김춘추를 외세를 끌어들인 민족반역자로 매도한다거나 하는 것은 근대 민족주의적 관념을 고대로까지 연역하여 역사를 바라보는 데서 발생하는 난센스라고 주장한다.
둘째, 오늘날 세계화시대에 민족의 진로를 모색하는 데 있어서 자민족 중심주의에 빠져 세계의 대세를 제대로 보지 못한다거나 배타성을 강조하게 되어 외국과의 교류나 다른 민족과 공존을 유지하면서 민족의 힘을 세계로 펼쳐나가는 데 걸림돌이 될 경우를 우려하는 주장들이 있다. 독립된 국가로서 세계화의 추세에 적극적으로 대응해 나가야 하는 시점에서 여전히 배타적인 저항적 민족주의에 머물러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이러한 인식을 사대주의적인 발상으로 비판하는 논자들도 있다. 즉 민족의 운명과 장래를 어둡게 하는 우를 범하지 않기 위해 분명한 민족의식이 필요하다는 주장이 제기된다. 세계는 주변부와 중심부로 나누어져 있으며, 국제화나 세계화는 결국 현재 존재하고 있는 초패권국가 중심의 세계통합이며, 중심부가 주변부의 다양한 민족, 국가들의 고유성, 독자성, 개별성을 말살해 가는 세계의 일체화라는 것이다. 이렇게 중심부와 주변부 사이에 여전 존재하는 질적인 차이를 외면하고, 중심부가 주변부에 행사하는 응집력을 너무 무시했다는 것이다.
지구촌시대의 민족주의 혹은 민족국가가 함의하는 기존의 정치 ? 경제적인 의미는 여전히 강고하게 존재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지역통합이 진척된 유럽에서조차 지구화와 지역통합, 민족국가 사이에 첨예한 모순과 갈등이 나타나고 있다. 지구화시대에도 민족국가의 금융재정, 고용정책 등의 중요성은 결코 사라질 수 없다. 민족국가야말로 시장자유주의라는 새로운 독재에 저항할 수 있는 강력한 주체로 파악해야 한다는 주장도 있다.
결론
세계화시대에도 민족은 소멸되지 않을 것이며, 민족주의도 상당기간 존재의 근거를 가지면서 나름의 역할을 수행할 것이다. 세계의 통합과정에서 민족주의는 세계사의 동인으로서의 역할을 계속 수행하게 될 것이다. 시대와 상황에 따라 다양한 특성을 갖게 되는 민족주의가 21세기에 어떤 모습으로 존재할 수 있을까에 대해 생각해볼 수 있을 것이다. 이 시점에서 우리는 ‘열린 민족주의’의 가능성을 타진해볼 필요가 있다. 한편에서는 ‘건전한 민족주의’는 있을 수 없다는 주장도 있다. 민족주의는 이미 배타성을 갖고 있다는 것이다. 20세기에는 민족주의와 민주주의의 균형이 불가능한 것인가 하는 논란이 있었다. 그리하여 인종 ? 종종 민족주의에서 시민 민족주의로 전환할 필요가 있다는 주장도 제기되었다.
우리 현실에서 ‘민족주의’는 역사적인 조건에서 구체화되고 형상화된 실체이다. 민족이 고난에 처해 있을 때 시련극복의 원동력이 되었으며, 독재정권에 대항하는 민주화운동에서 도덕성을 담보해준 이념이기도 했다.
따라서 오늘날 한국의 ‘현실민족주의’는 안으로는 반민중 ? 반민주적 국가폭력, 심지어는 민족의 분단과 종속을 합리화하는 일종의 ‘억압담론’으로 가는 것을 저지하고, 민족자주와 평화통일을 이끄는 해방담론으로 가꾸어 가는 것이 현 단계 민족공동체 구성원들의 몫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밖으로는 우리의 주체성을 바탕으로 하면서도 외래 선진에 대한 개방성을 잃지 않는 쉽지 않은 행로를 걸어야 되는 역사적인 현실을 직시해야 할 것이다. 이 점에서 향후 한국의 역사는 개방적 민족주의의의 실험대가 될 것이다.
■ 더 생각해볼 문제들
1. 중심부 민족국가와 주변부 민족국가의 민족주의는 현실에서 어떻게 표현될까?
2. 지구화가 가속화되면 ‘민족’은 완전히 소멸될까?
3. 개별민족의 특성을 유지하면서 인류 전체의 평화와 공존을 이루는 것은 불가능한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