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구초등학교 야구부원들과 손용근 감독.(사진=이영미) |
지난 어린이날(2014년 5월 5일) 구의구장에 들러 초등학교 야구 경기를 지켜봤습니다. 한창 LG기 서울대회가 진행되고 있었습니다. 소문으로만 들어온 청구초등학교의 작전 없는 야구를 보고 싶었거든요. 실제로 청구초등학교의 손용근 감독님은 아이들에게 작전을 전혀 내지 않으시더군요. 실제로 주자가 3루에 있는 상황이었는데 타자들이 감독님을 쳐다보며 작전을 기다리는 모습을 볼 수 없었습니다. 번트를 대거나 작전을 거는 야구는 안 좋고, 타자로 하여금 무조건 치게 하는 야구는 멋있다는 식으로 단순히 나누고 싶지는 않습니다. 손 감독님도 실전에 사용하지 않을 뿐이지 평상시에는 번트연습 등을 충실히 한다고 말씀하시더군요. 하지만 이렇게 ‘눈치를 보지 않는 야구’가 초등학교 아이들이 야구를 즐기고, 잠재력을 마음껏 뽐내도록 하는 데에 도움이 되지 않을까 싶습니다. 감독님도 ‘애들은 놀면서 야구하면 된다’고 자주 말씀하시더군요. 저 개인적으로는 세상에 이런 야구도 하나쯤 있어야 한다는 생각에 보는 내내 흐뭇했습니다.” (2014년 5월 8일 네이버 블로그 ‘우리 아이는 야구선수’ 중에서)
“시합 중 작전을 내지 않고 아이들 스스로 경기를 풀어나가는 청구초등학교. 부모님들도 응원을 하지 않는다. 유일한 응원은 박수. 아이들에게 물어보면 ‘파이팅! 할 수 있다! 괜찮아”등의 응원소리가 힘이 되기보다 부담이 된다고 말한다.” (2015년 4월 3일, 기자의 페이스북 친구 최 아무개 씨의 글)
청구초등학교(청구초) 야구부를 이끄는 손용근 감독(55)은 청구초에서만 무려 32년 째 외길인생을 걷고 있는 중이다. 1984년 24세의 젊은 나이에 처음 야구부를 맡은 이후 32년 동안 수많은 선수들을 배출해냈고, 그와 지금까지 스승과 제자의 인연을 맺고 있는 야구인들이 한두 명이 아니다. LG 9번 이병규, 두산 박명환, 롯데 이동훈 코치, 신윤호 등이 대표적인 청구초 출신 선수들이다.
손 감독이 유소년 야구계에서 잔잔한 파문을 일으키고 있는 이유는 그의 독특한(?), 아니 시대를 거스르는(?), 그것도 아닌 이상적인(?) 야구관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가장 큰 특징이 경기 중에 작전을 내지 않는다는 것. 번트 사인도 물론 없다. 하계, 동계 전지훈련도 없고, 합숙 훈련이란 단어조차 존재하지 않는다. 지방에서 열리는 대회가 있으면 대회 기간 동안 시합하는 것 외엔 나머지 시간은 모두 ‘놀기’다. 결승전을 앞두고 가까운 섬으로 여행을 다니고 경기 전날 도착해선 다음날 시합에 참가하는 식이다.
야구 관련 블로그와 SNS에 올라오는 손 감독의 야구관이 궁금했다. 무엇보다 학교와 학부모의 성화가 대단한 유소년 야구에서 손 감독이 32년째 한 곳을 지키고 있는 것도 신기했다. 인터뷰를 위해 연락을 했더니 손 감독은 “내가 이런저런 얘기를 하면 다른 감독들이 안 좋아할 것이다”라며 거절을 했다. 예고 없이 청구초를 방문해선 그와 대화를 나누게 됐고, 어렵게 취재 허락이 떨어졌다. 그런데 손 감독을 처음 본 순간 놀랄 수밖에 없었다. 그는 유니폼 대신 작업복을 입고 야구부 생활관 옆에 마련된 화단에서 채소를 가꾸고 있었기 때문이다. 손 감독과의 인터뷰 내내 ‘세상에 이런 일이’란 TV 프로그램이 생각 날 정도였다.
치열한 승부의 세계로 대변되는 스포츠 세계에서 손 감독의 스토리는 ‘다름’과 ‘차이’로 이어진다. 그러나 그는 모든 초등학교 야구부가 자신과 같은 방식으로 선수들을 이끌어가길 바라지 않았다. 다양한 삶의 형태가 있듯이 자신이 추구하는 야구 지도는 그중 ‘일부’라는 걸 거듭 강조했다.
작전과 사인을 내지 않기로 유명한 손용근 감독.(사진=이영미) |
# 번트 사인 내지 않는 감독
손 감독이 청구초 야구부를 맡게 된 것은 1984년부터이다. 창단한지 3년 정도 된 야구부였다. 그도 처음에는 자신이 이렇게 오랫동안 학교에 남아있게 될 줄은 생각조차 못했다고 말한다.
“전 원래 누구를 가르치는 재주가 없었어요. 처음엔 학교 야구부장이 성적 내기를 원해서 사인도 내고 작전도 걸고 그랬었죠. 성적이 기대만큼 안 나오면 야단도 쳤어요. 그런데 어느 순간 경기에 나선 아이들을 보니까 시합에 집중하기보다 제 사인을 보느라 정신없더라고요. 타석에 들어가서도, 방망이 한 번 휘두르고, 루상에 나가 있어도 아이들 시선은 모두 저에게 쏠려 있었어요. 도저히 안 되겠다 싶어서 어느 순간부터 시합 중에 사인을 내지 않았습니다. 주장에게 모든 걸 일임하고 너희들끼리 야구해 보라고 내버려뒀어요. 그랬더니 제가 개입할 때보다 더 잘하더라고요. 그것도 아주 재미있게. 전 연습할 때만 가르쳤고, 시합은 아이들이 풀어나갔어요. 그렇다고 해서 거창하게 ‘창의적인 플레이’ 운운하는 건 아니에요. 그저 아이들끼리 잘했고, 그게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는 겁니다.”
손 감독은 작전도 내지 않고, 번트에 대한 사인도 없다. 그렇다보니 주위에선 말들이 많을 수밖에 없었다.
“한 번은 심판들끼리 내기를 했다고 해요. 저 사람(손 감독)이 사인을 내나, 안 내나 하고. 처음에는 학부형들이 더 난리였습니다. 나름 해박한 야구 지식을 갖고 있는 분들이라 번트 지시를 내야 하는 상황에서도 제가 가만히 있으니까 감독의 자질 없음에 대해 비난의 목소리가 컸었죠. 그러나 고등학교, 대학교도 아닌 초등학교 야구에서 번트 작전이 꼭 필요할까요? 애들은 번트보다 마음껏 때리고 싶어 합니다. 번트는 중학교, 고등학교에 진학해서 해도 늦지 않아요. 어린 시절에 야구하는 가장 큰 이유가 마음껏 휘두르고 싶어서가 아닐까요? 전 아이들에게 그걸 지켜주고 싶었어요.”
# 학교, 학부형과의 갈등이 반복되고
손 감독의 야구관은 학교나 학부형들의 바람과 차이가 날 수밖에 없었다. 그렇다보니 처음에는 한시도 바람 잘 날이 없었다고 한다.
“청구초는 배구부가 유명한 학교였어요. 지금 해설위원으로 활동 중인 김상우가 이 학교 배구부 출신이죠. 그런데 어느 날 새로 오신 교장 선생이 배구부, 야구부를 다 없애려고 하셨습니다. 교육청까지 나서서 옥신각신하다가 배구부는 문을 닫고 야구부만 살아남았어요. 야구부는 학교 지원 없이 학부모들이 운영했기 때문에 학교에서 마음대로 폐지할 수 없었던 거예요. 당시 교장 선생이 이 학교에서 6년을 계시다가 정년 퇴직하셨는데, 한 번은 학교 운동장에서 저랑 멱살잡이를 벌이기도 했었어요. 주말에는 야구부에 운동장을 빌려주기로 해놓고선 일반인들에게 운동장을 사용해도 좋다고 허락하는 바람에 충돌이 빚어졌던 것이죠. 그 후로 학교 측과 대립한 일들은 수없이 많았습니다. 그 교장 선생 퇴직할 때까지 야구부는 폐지되지 않았고, 지금까지 살아남았습니다. 전 단 한 번도 학부형, 교장 선생 등과 식사를 해 본 적이 없어요. 식사를 한 번 얻어먹으면 전 두 번을 사야 하는데, 돈도 없고, 차라리 안 먹고, 안 받는 게 가장 깨끗하다고 생각했죠. 야구부를 맡고 나선 좋아했던 술도 끊었습니다. 32년 째 금주 중이에요(웃음).”
지금은 학교 주변에 고층 아파트들이 들어섰지만, 30여 년 전만 해도 청구초 주변은 ‘판자촌’들이 밀집해 있었다고 한다. 대부분의 학생들이 어려운 형편 속에서 학교를 다니고 있었고, 야구부원들도 회비를 내지 못하는 학생들이 많았다는 것. 그때부터 손 감독은 최소한의 경비만 지출되게끔 야구부를 운영해 나갔다.
“학부모들 중에는 ‘왜 우리 학교는 전지훈련 안 가느냐’고 따지는 분들이 있어요. 그때마다 제가 하는 대답은 ‘그럼 전지훈련 가는 학교로 전학가셔도 됩니다’였어요. 이곳의 시스템에 적응하지 못하는 분들이라면 어쩔 수 없다고 생각했던 거죠. 어느 부모는 ‘왜 훈련을 많이 시키지 않느냐’고 물어보세요. 제 대답은 한결 같았습니다. ‘아이 입장에서 생각하시라’고. 야구부라고 해도 수업은 빠짐없이 들어야 하고, 오후 훈련을 마치면 저녁 식사는 집에서 가족들과 함께 먹는 게 원칙이었습니다. 방학 때도 오후에 나와 서너 시간 운동하고 집으로 돌아갑니다. 날씨도 고려해야 하고, 아이들이 야구말고 다른 취미 생활도 즐기길 바라는 차원에서 훈련 프로그램을 조절하죠. 아이들의 인생은 지나면 다시 돌아오지 않아요. 그런데 어른들은 그걸 너무 우습게 생각합니다. 무조건 훈련을 많이 해야 성공할 수 있다고 믿는 것이죠. 그런 부모들에게는 야구에 목숨 걸지 마시라고 말씀드립니다. 내 아들이 모두 추신수, 류현진이 되길 바란다면, 그것은 아이를 위해서가 아닌 부모의 허황된 욕심에 아이들이 희생되는 것일 뿐이에요. 초등학교 때는 야구는 물론 미술, 음악 등도 할 수 있어야 해요. 아이들의 진로는 중학교에 올라가서 결정해도 늦지 않았거든요.”
# 야구부의 목적? ‘노는 것’
손 감독은 청구초 야구부의 목적은 ‘노는 것’이라고 단정지었다. 시합 나가서 이길 수도, 질 수도 있는 상황에서 아이들이 그 자체를 즐기길 바랐다. 그렇다고 해서 손 감독이 야구부 선수들을 마냥 풀어주는 것은 아니다.
“운동하면서 근성과 오기 없이는 선수로 성장할 수 없습니다. 힘든 상황에서 악착같이 버티고 이겨내는 정신력도 필요하고요. 그런 부분은 훈련을 통해 가르칩니다. 저도 아이들을 다그치거나 혼낼 때가 있어요. 약속을 지키지 않았을 때, 최선을 다하지 않을 때, 숙제를 해오지 않을 때는 제목소리가 커집니다. 하지만 감독의 눈치를 보고, 야구하는 걸 좋아하지 않기 때문에 훈련 때는 강하게 연습시키고, 시합 때는 풀어주는 편이죠. 시합 결과가 좋지 않을 때는 바로 얘기하지 않습니다. 아이들도 그에 대해 상처받고 있는 상황에서 감독이 또 잔소리하면 회복하기 힘들어요. 그래서 전 이삼일 정도 지난 후에 선수들을 모아 놓고 경기 결과가 좋지 않은 이유에 대해 설명합니다. 패인에 대해선 아이들이 놀랄 정도로 정확히 파악하고 있어요. 전 전문적인 관점에서 가이드를 해주면 돼요. 연습 때는 제구 좋은 공을 던지는 애가 게임만 나가면 스트라이크 한 개 던지지 못할 때가 있어요. 이유는 훈련 부족이 아닌 심리적 불안감, 긴장감, 초조함 때문입니다. 이런 아이하고는 대화를 많이 해야 해요. 그래서 심리적인 안정을 찾을 수 있도록 도와줘야 합니다. 야구는 질 수도 이길 수도 있는 게임이고, 지든 이기든 모든 면에서 배울 게 있다고 말해줍니다. 어렸을 때 많이 져봐야 커서 더 잘 할 수 있다고 용기도 주죠. 아이들은 금세 받아들입니다.”
감독 없이 주자의 지시대로 '알아서' 훈련 중인 청구초 야구부원들.(사진=이영미) |
# 야구감독이 내주는 숙제, 한자와 영어 외우기
손 감독이 30여 년 동안 변함없이 아이들에게 내주는 숙제가 있다. 가족들과 자신의 이름, 학교 이름을 한자로 쓰는 것, 야구 용어와 포지션을 영어로 표기하는 것, 그리고 부모의 크고 깊은 은혜를 보답하도록 가르친 불교 경전, 부모은중경(父母恩重經)의 10가지 은혜를 적고 외우는 것이다.
“토요일마다 숙제 검사를 하지만, 안 하는 애들도 있어요. 일기도 매일 쓰게 하거든요. 자신의 역사로 남을 수 있으니까. 영어 공부도 많이 하게 하는데, 그 덕분인지 중학교 올라가 반 편성 시험 치를 때 1등하는 애들도 나오더라고요. 야구한다고 해서 공부 못하는 걸 당연히 여기는 아이들은 우리 야구부에서 버티기 힘들어요.”
그렇다고 해서 청구초 야구부의 성적이 좋지 않은 것도 아니다. 일일이 열거하기 힘들 정도로 전국대회 우승과 서울시 지역대회의 우승이 수두룩하다. 손 감독은 우승만이 전부가 아니라고 강조한다. 2위, 3위도 우승 못지않은 값진 결과물이라는 얘기를 덧붙인다.
“우린 지방에서 열리는 전국대회에는 거의 출전하지 않아요. 한 번은 서울시 지역예선에서 우승하고 제주에서 열리는 KBO총재배 초등부 야구대회가 있었지만, 8등한 팀이 우리 대신 나갔습니다. 이유요? 비용이 들어가니까요. 가급적이면 학부모들에게 부담을 주고 싶지 않아요. 제주에서 열리는 대회에 나가지 않아도 아이들 야구하는데 전혀 지장 없거든요. 충분히 좋은 성적 내고 있는데, 학부모들 돈 들이고, 시간 빼앗아가면서 지방 대회에 나가는 건 맞지 않다고 봤어요. 물론 학부모들은 괜찮다고 말씀 하시죠. 예전에 비해 지금은 다들 경제적으로 여유가 있는 분들이 많아요. 그래도 전 그분들에게 벌써부터 힘 빼지 마시라고 해요. 중·고등학교 올라가서 해도 늦지 않거든요. 고등학생이나 대학 진학을 앞둔 상황이라면 제주가 아니라 해외 전지훈련이라도 가야 되죠. 그러나 초등학교 까지는 괜찮다고 생각해요. 2년 전 전남 나주에서 전국대회가 열렸어요. 그때는 대회 본부 측에서 경비 지원을 해줬기 때문에 학부모 도움 없이 지방 대회에 나갈 수 있었어요. 우린 결승전을 치를 때까지 대회 기간 동안 연습하지 않았어요. 시합이 연습이었죠. 나머지 시간에는 아이들이랑 배타고 섬에도 가고, 놀이공원도 다니면서 놀았어요. 다른 학교에선 전 ‘미친 놈’ 취급했습니다. 그런데 그 대회에서 우승했어요. 전 선택과 집중이 중요하다고 봐요. 아이들에게 시합에 대한 부담과 스트레스를 줄 것 같으면 아예 대회에 나가지 않아요. 그러나 게임에 출전하면 최대한 집중해서 경기를 풀어가라고 주문합니다. 아이들과 그런 약속이 잘 이뤄지고 있어요. 그러다보니 재미있는 거죠.”
# 모두가 추신수, 류현진이 될 수는 없어
한 번은 서울에서 열린 대회 때 이런 일이 발생했다. 1-2로 지고 있는 상황. 9회 말 무사 1,2루에 주자가 나가있었다. 그 다음 타석에 들어선 타자에게 대부분의 감독은 번트 사인을 낸다. 그러나 손 감독은 여느 때처럼 사인을 내지 않았다. 결국 타자는 헛스윙 삼진을 당하며 아웃되었고, 두 번째 타자는 공을 맞혔지만 땅볼로 잡히는 바람에 뛰고 있는 주자들이 더블플레이 아웃되면서 패하고 말았다. 그 경기에서 이기면 결승전에 진출할 수 있었지만, 아니 번트만 댔어도 손쉽게 역전할 수 있는 계기가 마련됐겠지만, 손 감독은 모든 걸 선수들에게 맡겼다.
“저도 아이들에게 번트하고 싶으면 하라고 해요. 하지만 감독 사인이 아닌 스스로의 판단에 맡깁니다. 만약 그 경기로 인해 아이들의 미래가 결정되거나 진로가 정해진다면 제가 나서야 하겠지만, 초등학교에선 아이들이 야구를 ‘경기’가 아닌 진심으로 즐기길 바라는 마음에 전 한 발 물러서서 지켜보는 입장입니다.”
그러나 아이들이 초등학교를 졸업하고 중학교에 진학해서는 중학교 야구부 감독과 손 감독과의 지도법의 차이에 따라 혼란을 느낄 수도 있을 것이다. 이에 대해선 손 감독도 인정했지만, 걱정하진 않았다.
“중학교에서도 야구를 계속하겠다고 말하는 아이들한테는 졸업 전에 번트나 사인에 대해 따로 지도를 해줍니다. 6개월 정도 지나면 바로 습득을 하더라고요. 어른들은 아이들이 스스로 성장하는 걸 지켜봐줘야 해요. 그런데 조급증 때문에 자꾸 다그치게 되죠. 포지션도 그래요. 대부분의 부모들은 아들이 투수하기를 원합니다. 그러나 저는 전 포지션을 골고루 경험하게 해요. 어렸을 때부터 투수만 고집하면 그 아이가 프로가 돼선 어깨가 남아나겠어요? 수술을 할 수밖에 없을 겁니다. 투수도 포수도 내야수도 외야수도 다양하게 해봐야죠.”
아이들이수업하는 시간에 손 감독은 화단을 가꾼다.(사진=이영미) |
# 유소년 지도자들을 경시하는 풍토 아쉽다
손 감독이 야구를 시작한 계기는 학비 때문이었다고 한다. ‘야구를 하면 학비를 면제받을 수 있다’는 중학교 체육부장의 권유 때문에 야구선수로 활약하게 되었다는 것. 고등학교는 충암고에 진학했다. 조범현 kt 감독이 손 감독의 동기이다. 당시 충암고 감독은 한화 김성근 감독. 그러나 고등하교 졸업 후 군에 입대했고, 제대 후에는 경동고 코치를 맡게 되면서 지도자의 세계로 뛰어들었다. 그러다 우연히 초등학교 경기를 보게 되었고, 아이들의 순진하고 순수한 모습에 매력을 느끼면서 초등학교 야구부에 관심을 갖게 되었단다.
“어쩌면 승부에 집착하는 학원 야구가 제 스타일과 맞지 않았던 것 같아요. 초등학교 야구는 저랑 잘 맞을 것 같더라고요. 그때 마침 청구초에서 연락이 왔고, 그게 인연이 된 셈이었죠. 돈이나 명예를 좇았다면 여기 남지 못했을 겁니다. 전 하얀 백지에다 다양한 그림을 그릴 수 있는 이곳 아이들이 정말 좋았어요. 야구인들을 보면 유소년이나 초등학교 야구부를 맡고 있는 지도자들을 무시하는 경향이 있어요. 그럴 때마다 제가 다른 감독들에게 하는 말이 있습니다. 우리가 가르치는 아이들이 한국 야구의 미래가 된다고요. 자부심을 가지라고요.”
손 감독은 대회에 출전한 아이들을 위해 부모가 응원하는 것도 자제해 달라고 부탁한다. 특별한 이유가 있었다.
“상대 선수가 타석에 나오면 ‘우’하며 비하하고, 남의 자식 못하면 못했다고 비난하고. 그런 모습이 정말 보기 싫었습니다. 우리 팀에도 주전으로 뛰는 선수가 있는가 하면 후보에 머무는 선수가 있거든요. 그렇다면 후보 선수는 시합 중에 어떤 생각이 들겠어요. 타석에 나서는 선수는 열심히 박수를 받는데, 그렇지 못한 선수는 박수 한 번 못 받고 돌아오게 됩니다. 그래서 응원을 하지 말아달라고 말씀드렸죠. 그저 조용히 구경만 하고 가시라고요. 파이팅은 선수들 스스로 내면 돼요. 지금은 모든 부모님들이 제 방식을 존중해주세요. 이런 방식이 인정받기까지에는 시간이 좀 걸렸지만요.”
# 이병규, 박명환 등 제자들의 재능 기부
손 감독의 제자이면서 현재 프로에서 활약하고 있는 선수들이 존재한다. 이병규, 박명환, 그리고 지금은 은퇴한 신윤호도 손 감독의 제자이다. 그는 제자들에 대해 남다른 고마움을 갖고 있었다.
“병규나 명환이는 지금까지 모교 후배들을 위해 지원을 아끼지 않고 있어요. 병규는 형편이 어려운 아이들을 위해 매달 장학금을 지급하고 있고, 명환이는 지속적으로 야구용품을 보내줍니다. 한두 번 하다 그만 둘 수 있는데, 이 친구들은 아주 오랫동안 끊임없이 후배들을 챙깁니다. 다른 선수들도 비시즌 때는 학교에 찾아와서 후배들과 야구 게임도 하고 같이 놀아줘요. 모두가 고마운 제자들입니다. 아이들로선 유명한 선배들을 보면서 새로운 꿈을 키웁니다. 자신도 나중에 학교 후배들을 위해 도움을 주고 싶다는 꿈이죠.”
현재 손 감독은 KBO 육성위원회 자문위원으로 활동 중이다. 초등학교 감독 중에선 손 감독이 유일하다. 더욱이 2013년 손 감독은 대한야구협회 주관 ‘2013 야구인의 밤’ 시상식에서 김일배 지도자상을 수상했다. 청구초에는 신윤호의 아들이 야구부를 거쳐갔고, 현재 한화 권용관의 아들 준혁이가 6학년 주장을 맡고 있다.
손 감독은 해마다 학교와 재계약을 맺는다. 기자와 인터뷰를 한 전날, 재계약을 맺었다고 말한다. 1984년 첫 월급이 30만 원. 지금은 세금 제하면 270만 원 가량 된단다. 그는 코치를 두지 않았다. 감독, 코치의 월급이 학부모의 회비에서 나오는 걸 잘 알고 있기 때문에 일부러 코치를 채용하지 않았다고 한다.
청구초 야구부 선수들의 경기가 직접 보고 싶어졌다. 손 감독은 4월 13일부터 구의구장에서 LG배 대회가 열린다고 귀띔했다. 그러면서 다음과 같은 얘기를 전한다.
“경기가 있는 날, 학교에서 단체로 영어마을에 가요. 그런데 게임 때문에 아이들을 그곳에 안 보내면 안 되는 거잖아요. 아이들이 영어마을 야외 수업에 참관했다가 게임하러 가기 때문에 경기 결과에는 큰 기대하지 마세요. 아이들이 어떻게 노는지만 지켜봐주세요(웃음).”
아이들을 통해 배우는 게더 많다고 말하는 손용근 감독.(사진=이영미) |
다음은 최근 SNS에 올라온 청구초 야구부 관련 내용을 한 가지 더 소개한다.
“마운드 위의 투수가 공을 던질 때마다 덕아웃을 불필요하게 신경 쓰지 않는 야구. 감독님께서는 조용히 관전하며 아이에게 직접 필요한 말씀만 짧게 전달해주시고, ”야구는 아이들 스스로 하는 것“임을 강조하셨다. 어린이들의 야구는 이렇게 가야 하는 게 아닐까.”
첫댓글 잘읽었습니다~~~
무척 공감이 갑니다,학교 야구부도 이런식으로 가는데 학원스포츠인 리틀야구단 환경이 더 안좋으니 현실이 슬프군요..내용이 넘 좋아서 몇번씩 읽어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