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년 1월 27일 향토문화재탐방 보고
향토문화재 탐방일 : 2010년 1월 27일 수요일
만나는 장소 와 시간 : 지하철 1·6호선 동묘역 3번 출구
참가인원 : 오덕만 윤영선 정선영 박미숙 최병우 강수자 이학영 유인호 송순자 윤기옥 김송미 유효득 염영화 김영임 김종곤 엄종순(총16명)
동묘 역 3번 출구로 나오니 벼룩시장의 진풍경이 펼쳐졌다. 계절 탓인지 날씨 탓인지 북적이는 사람들이나 난장에 놓여 진 골동품들이나 옷가지들이 모두 거무죽죽 무거워 보였는데 그 와중에 넘쳐나는 생기와 활력이 있었다. 다른 세상에 온 듯 잠시 멍했다가 이내 정신을 차렸다. 나는 진솔한 삶의 모습에서 비껴나 허공 속에서 헛발질 하고 사는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을 했다. 군중 속에 섞여 난장판을 기웃거리면서 사람들을 기다렸는데 모두 16명이 모였다.
오늘 탐방일정은 동묘-낙산공원-서울성곽-비우당-자주동샘-청룡사-정업원 터-안양암석감마애관음보살상-흥인지문-오간수문-이간수문-동대문역사문화공원-광장시장먹자골목으로 이어지는 장장 4시간 이상을 걷는 긴 여정이었다.
시끌벅적한 길거리 풍경 속에 도취된 채로 찾아 간 동묘는 공사 중이어서 정전 일곽을 들여다 볼 수 없는 아쉬움이 있었지만 오덕만회장님의 유려한 설명으로 발걸음 가볍게 떠날 수 있었다.
깎아지른 듯 가파른 언덕을 올라 낙산에 오르고 그 정상에서 발아래 풍경을 둘러보며 딱히 잡히지 않는 동서남북을 어림잡으며 한양도성의 모습을 그려보았다. 좌청룡의 서울성곽 길을 잠깐 걸어보고 다시 언덕길을 되돌아 내려와 단종 비 정순왕후 송씨가 비단을 빨면 자주색 물감이 들었다는 슬픈 전설이 깃든 자주동샘과 조선시대 실학자 이수광이 그의 저서 <지봉유설>을 지은 비우당을 찾았다. 도시에 있는 절치고는 고풍스럽고 단아하고 정갈한 느낌을 주는 청룡사를 지나 평생을 단종의 명복을 빌며 궁에서 쫓겨난 후 단종 비 정순왕후 송씨가 살았던 정업원 터에서 단종과 정순왕후 송씨의 비극을 다시 한 번 떠올렸다.
반듯 반듯 잘 구획된 아파트촌 길들에 익숙하였던지라 꼬불꼬불 흩어지고 연결되는 골목에서 길 잃을까 긴장도 되었지만 옛 어린 시절을 떠올려 골목길 걷는 게 즐거웠다.
오늘의 하이라이트는 안양암석감마애관음보살상을 찾아가는 것이었다. 조선말기 서울지역의 마애불 양식을 보여주는 이 불상은 관음전에 모셔져있는데 화강암 벽을 약간 판 후 그 파낸 벽에 가부좌를 틀고 앉은 관음보살을 새겨 넣은 것이다. 석감의 좌우에는 중앙에 앙련이 조각된 팔각기둥이 세워져 있어 전각과 같은 느낌을 주고 있으며, 무릎 아래에 불단을 설치하여 무릎 이하 부분이 가려져 있다. 불상의 양식이 묵중하여 전체적으로 중량감을 느끼게 한다. 안양암 전각들 위로 거대한 암벽이 둘러쳐져있는데 인위적으로 동굴을 만들어 유사시에 사람들이 피신했던 것으로 보인다. 과거에는 아름다운 낙산자락에 위치해 경건한 수도처의 역할을 했었을 만한데 지금은 왠지 동네 한 구석에 밀려있어 어수선한 느낌을 주었다.
저마다 관심사들이 제각각이어서 때로 일행을 놓쳐 혼자 남겨진 사람도 있었고, 창신동 골목길을 헤집고 다닐 때는 꼬리가 길어 이미 골목길을 돌아가 버린 일행을 놓쳐 길을 헤맨 사람들도 있었다. 그래도 보초서 듯 기다려주는 일행들과 문명의 이기인 핸드폰의 도움으로 다시 해후하는 감동도 있었다.
창신동 거리에서 꽃잎 날리듯 나풀거리며 시작된 눈발이 제법 눈뭉치로 변하더니 흥인지문 앞에서는 도시의 열기 때문인지 이내 물기 잔뜩 머금은 진눈개비로 변해 우산을 준비하지 않은 사람들은 다른 사람들 우산 속 신세를 지거나 머리에 물방울을 이고 다녔다.
흥인지문 앞을 기웃거리며 관심을 갖고 자세히 살피는 우리 일행들의 모습이 마치 중국이나 일본에서 여행 온 여행객들 같아 보여서 웃음이 났다.
오간수문 자리에서 청계천을 바라보고 동대문역사문화공원으로 갔다. 새로 발굴한 이간수문과 훈련도감 분영인 하도감 발굴현장을 답사하고 동대문역사관 관람을 끝으로 오늘의 향토문화재 탐방을 마쳤다.
그러나 오늘 탐방의 기쁨과 뿌듯함을 배가시킨 것은 동대문시장을 지나 광장시장 쪽으로 인파를 따라 거닐면서 과거 · 현재가 산재한 살아있는 서울을 제대로 느껴보고 생생한 삶의 현장에 내 자신을 던진 것 때문이었다. 향토문화재 탐방의 매력은 형식에 얽매이지 않는 탐방의 자유로움을 만끽하게해주고, 현재의 삶의 모습을 그대로 인식하는 시간을 갖게 해주데 있는 것 같다. 온 힘을 쏟은 다음 느끼는 나른한 노곤함이 바로 행복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