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소하지만 재밌는 우연 중 하나는, 내가 아는 여자들은 웬만해선 주성치를 싫어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영화의 시작에서부터 끝까지 내내 코만 파는 여장남자가 나온다거나, 비쭉 솟아나온 코털과 앙상블을 이루는 눈곱범벅의 남자 같은 주성치 식 캐릭터는 보통의 사람들은 여간해선 좋아하기 쉽지 않다. 그런데도 어찌 됐든, 주성치라면 만사형통이다. 우뢰매보다 저렴해 보이는 CG 효과가 나와도, 이미 웃을 준비가 되어 있으니 말이다.
이유는 나도 모르겠다. 주성치니까, 주성치라서, 그렇다고들 한다. 이 동어반복의 의미에 대해 A4 100장 분량의 논문도 쓸 수 있을 것 같은 후배가 하나 있는데, 그녀는 주성치가 잘 빠진 아르마니 수트를 낡은 운동화와 매치해 입었다는 것만으로 그를 좋아하게 됐다고 고백했었다. 그런 후배에게 문자가 왔다.
▲ 일러스트=이철원 기자 burbuck@chosun.com
"월광보합 보러 가자. 선리기연도 함께 보자고, 고고!"
15년 만의 스크린 재상영! 주성치 영화의 레전드! 안 보면 만년은 후회할 사랑의 명작 시리즈!!! 뭐, 이건 다, 후배의 설명이고 나는 영화에 대한 정보 없이 평일 오후, 극장에 갔다.
극장에는 '주성치 명작 베스트'나 '주성치 전시관' 등이 마련되어 있었다. '(주)성치순례지'라는 푯말은 분명 예수님을 행적을 찾아 떠나는 '성지순례'를 패러디 한 것일 텐데, 후배 말로는 '선리기연' 역시, 왕가위 감독의 영화 '동사서독'을 패러디한 것이라고 했다. 과연 극장 여기저기에 주성치 티셔츠까지 차려입은 광팬들이 자리를 잡고 열심히 사진을 찍고 있었다. '서유쌍기' 시리즈의 1편 격인 '월광보합'은 과거와 현재, 미래 등 시간을 자유롭게 움직일 수 있게 하는 일종의 타임머신이다. 죄를 지어 관세음보살에게 벌을 받아, 산적 두목 '지존보'로 환생한 손오공이 사랑하는 여자 '백정정'을 살리기 위해 사용하는 도구 말이다. 이미 죽은 여자를 살리려다 보니, 주성치는 죽음 직전의 과거에 도달하기 위해 '뽀로뽀로미'라는 '뽀뽀뽀'에나 나올 법한 주문을 몇 번씩 외치게 되는데, 그때마다 과거와 현재가 뒤죽박죽 되어 이 사람 저 사람이 얽혀든다.
연이어 상영된 시리즈 2편 '선리기연' 역시, 상영 내내 극장 안에선 사람들의 웃음이 터져 나왔다. 뭐랄까. 박식한 웃음이라고 해야 하나. 그것은 주성치 영화의 문법을 잘 아는 사람들이 낼 수 있는 한 박자 빠른 폭소였다. 주성치의 팬티에 붙은 불을 부하들이 발로 밟아 끄는 장면이라든가, 삼장법사의 수다에 못 이겨 자살을 하는 요괴, "거짓말이 아니야. 이건 뭐, 심장을 꺼내 보여줄 수도 없고"라는 대사가 끝나기 무섭게 주성치의 심장 속으로 들어가, 코코넛 사이즈의 '양심'을 바라보는 주성치식 상상력은 영화의 매력이었다.
B급 영화의 매력을 이해한다는 건, 밑바닥 정서를 받아들인다는 것에 다름 아니다. 아마도 주성치의 영화를 만끽하기 위해선 '희극지왕'이나 '쿵푸허슬' 같은 작품을 더 봐야 하는 건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식신'이후 보게 된 이 영화에서 한 가지는 분명히 알 수 있었다. 얼기설기 얼굴에 털을 갖다 붙여놔도 주성치는 귀엽다는 것, 그의 개그는 정말이지 미워할 수 없다는 것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