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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검정고시 준비모임 (사진: 김영준 제공) |
#03
현주 씨와 처음 대화했던 건 2016년 가을이었다. 현주 씨는 베트남에서 이민 온 친구들과 함께 ‘민들레와 달팽이’를 찾아왔다. 검정고시 공부를 하고 싶다고 했다. 이주노동자들이나 결혼이민자들은 주로 한국어를 공부하고 싶어 하고, 그중 열심히 공부하는 사람들이 한국어능력시험을 준비하곤 하는데, 검정고시를 공부하고 싶은 경우는 흔치 않은 터라 이유를 물어보았다.
한국에 와서 결혼을 하고 떠듬떠듬 한국말을 배우며 아이들을 낳아 키웠는데, 초등학교에 들어간 아이들이 이제 엄마보다 한국말을 유창하게 잘하면서, 베트남 말로 수다 떠는 엄마를 무시하는 경우도 더러 있고, 학교에서 가정으로 보내는 통지문들을 충분히 이해하기 어려워졌다며, 손등으로 눈시울을 훔친다. 아직 어린 초등학생 아이를 어떻게 가르쳐야 할지 공부해야 알 수 있지 않겠냐며 검정고시를 준비하고 싶다고 했다.
김 목사는 검정고시를 치러본 적도 없고, 무얼 준비해야 하는지 몰랐지만, 국경을 넘어와 씩씩하게 사는 나그네들의 젖은 목소리에 응답하지 않을 수 없었다. 초등학교부터 시작하는 거니까, 할 수 있겠지 생각하고 자원봉사자들을 모아 이주민을 위한 검정고시 교실을 꾸렸다. 처음 검정고시 기출문제를 나눠주고 풀었을 때, 평균 30점 정도 나왔다. 문제를 푸는 게 어렵다기보다, 시험지에 나오는 한국말을 이해하기 어려워했다. 시험지에 나오는 한국말이 일상에서 쓰이는 말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시험지에 나오는 문어체 한국어가 낯선데다가 과학 시험지에 나오는 액화, 응결, 승화 따위의 단순 개념도 설명하기 난망했고, 고구려, 백제, 신라의 유물과 유적 등에 대해선 아마추어 자원봉사자 교사들도 충분히 알진 못했다. 초졸과정 시험을 앞두고 모의고사를 치르고 조촐한 파티를 하던 날, 김 목사도 대입시험 치르러 가는 수험생 둔 아비마냥 긴장되고 떨렸다. 불합격할 경우의 상심을 떠올리며 막막했었다. 그런데,
한 번에 덜컥 합격해버렸다. 아마추어 교사들과 이민자 학생들이 토요일마다 4시간씩 공부했는데, 2017년 4월에 초졸과정 시험을 너끈하게, 2018년 8월엔 중졸과정 시험은 겨우, 2019년 4월에는 고졸과정마저 넉넉하게 합격해버렸다. 고졸과정은 검정고시 전문학원에 다니긴 했지만 3년이 채 안 되는 기간, 초중고 검정고시 전 과정에 합격할 줄, 처음 30점짜리 시험지를 받아봤을 땐 누구도 예상하지 못했다.
▲ (사진: 김현주 제공) |
▲ '프엉'이라는 이름대로 하얀 꽃 같은 아오자이를 입고, 현주 씨는 한국의 학생들과 접속한다. (사진: 김현주 제공) |
#04
당시엔 예상하지 못했지만, 돌아보면 얼마든지 가능한 일이었다. 초등학교 과정 수업을 할 때에도 국내 어떤 대학원 수업보다 뜨거웠었다. 2016년 겨울은 참 추웠고, 김포 신도시 외곽에 있는 ‘민들레와 달팽이’에 오려면 시내버스를 두 번 갈아타고 꽤 걸어와야 했지만, 날씨 때문에 휴강한 적은 한 번도 없었다. 저녁을 먹고 오지 못한 학생들은 빵, 과일, 과자를 책상에 놓고 먹으면서 공부를 했지만, 한순간도 산만하지 않았다. 과자 바삭거리는 소리, 과일 와삭거리는 소리는 연필심 사각거리는 소리보다 크지 않았다. 카페 한편에 칠판을 놓고 테이블을 모아 강의하고, 테이블 위에는 문제집뿐 아니라 음식도 널려 있고, 아이들이 엄마를 찾는 전화벨이 울리곤 했지만, 자유로운 듯 흐트러지지 않았다. 초졸검정고시 문제집을 주입식으로 공부하며 머리는 아팠지만 심장이 뛰었다. 함께 공부하는 학생들 중 현주 씨는 가장 우수했다. 머리도 좋았겠지만, 심장이 좋았다. 절실한 맘으로 공부했다. 현주 씨가 합격한 건, 돌아보니 당연하다.
#05
검정고시 합격 소식을 들은 후 전화로만 축하 소식을 나누고, 꽤 오랜만에 현주 씨가 일하는 김포이주민센터에서 만났다. 현주 씨는 인사하자마자 대뜸 독거노인이나 장애인들을 위해 봉사하고 싶다고 했다. 베트남 사람들로 구성된 봉사단체를 조직했다는 소식을 전하며, 봉사처를 연결해달라고 한다. 한국에서 일하는 베트남 사람들이 독거노인이나 장애인들을 만날 수 있는 고리가 무엇일지 생각하며, 대답할 만한 시간을 벌기 위해 자초지종을 물었다. 베트남 사람 스물다섯 명이 2019년 2월, ‘중못 짜이 띰’(CHUNG MỘT TRÁI TIM)이라는 봉사단체를 조직했고, 대두증(Macrocephaly)을 앓고 있는 베트남 어린이를 위한 치료비를 모금하고, 베트남 산간 지역 학교 학생들을 위한 학용품 지원 등의 사업을 진행하고 있다고 한다. 그리고 한국인들을 위해 도움이 필요한 어르신들이나 장애인들의 친구가 되고 싶다고 했다. ‘중못 짜이 띰’은 ‘한마음’이라는 뜻이다.
‘중못 짜이 띰’의 대표 현주 씨는 김포이주민센터(대표: 최영일 목사)의 사무국장이기도 한데, 체불임금, 산업재해, 직장 이동, 출입국 관리 등 문제들로 어려움을 겪었던 이주민들이 현주 씨를 통해 상담하고 통역 지원을 받은 후 함께 봉사단체를 조직하게 된 것이다. 현장 근무로 바쁜 남편의 아내이고, 초등학생 아들 둘의 엄마이고, 혼자 남으신 친정아버지의 딸이고, 이주민을 지원하는 시민단체의 사무국장이면서, 고등학교 검정고시 시험을 준비하던 중에, 베트남 사람들을 조직해 봉사단체를 꾸렸다니, 이 사람 참.
#06
가끔 하얀 아오자이를 입는다. 초등학생과 유치원생들에게 다문화교육을 할 때다. 다문화교육을 할 때 강의만 하지 않는다. 학생들도 베트남 옷을 직접 입어보기도 하고, 현주 씨가 준비해온 베트남 음식을 먹기도 한다. 프엉(PHƯỢNG)이라는 이름대로 하얀 꽃 같은 아오자이를 입고, 현주 씨는 한국의 학생들과 접속한다. 하루 중 어느 한순간 로그오프 된 채 지나가는 시간이 없다.
처음 한국에 왔을 때 베트남에 사는 가족들과 접속하기 위해 항상 로그인 상태로 채팅방을 열어두었던 현주 씨는, 한국 생활 13년이 넘은 요새는 채팅이 필요한 한국인과 베트남 사람을 위해 여전히 로그인 중이다. 고졸검정고시까지 통과한 이제는 사이버대학에 진학해서 사회복지학을 전공하려고 한다. 아프고 가난했던 엄마에게 도움이 되기 위해 한국에 왔었던 마음 그대로, 쌀이 없어 고구마로 연명하는 산간지대 사람들, 병원비가 비싸서 의료 혜택을 받을 수 없는 환자들, 부모 잃은 소년 가장들, 전쟁 후유증으로 짐작되는 대두증을 앓고 있는 어린이들을 전문적으로 돕고 싶다.
#07
“두려워하지 말라”는 하나님의 명령은, 또 하나님의 약속이었을까. 현주 씨에게 두려움이 보이지 않는다. 아오자이 입고는 백학처럼 훠얼훨, 참 잘도 산다. 하나님께선, 채팅방을 열어두시고 항상 로그인 상태일 거다. 훠얼훨 나는 백학이, 잠시 날개를 쉬고 다시 접속하기를 기다리실 터다.
김영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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