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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풍도’ 그 섬에 가고 싶다 |
[최경호 안산시 관광해양과장 기고] 이제 안산 땅에서 직접 풍도로 가자 |
탄도항은 점점 멀어졌고 섬은 다가왔다. 행정지도선을 탄 후 1시간 10여분 만에 풍도 선착장에 다가 갈 수 있었다. 탄도항에서 24km 떨어진 곳이다. 안산시 단원구 풍도동. 이곳은 안산지역이지만 안산시민이 이곳을 가려면 인천여객터미널이나 당진으로 가야 한다. 대부도 방아머리 선착장에서 이곳을 가는 배편이 없기 때문이다. 해안정비 사업을 확인하기 위해 찾은 우리들을 몇몇 주민들이 엷은 미소를 지으며 손을 내밀었다. 그곳은 식사를 할 수 있는 풍도랜드(음식점)가 있었고 예일곱 민박집 뒤로는 가파른 언덕이 바로 산으로 이어져 있었다. 산에는 500년 이상 된 은행나무 두 그루가 서 있었다. 당산나무다. 이어진 산길에는 야생화가 활짝 웃고 있었다. 대전에서 왔다는 대학교수와 제자는 은백의 머리카락을 매 만지면서 카메라 렌즈에 꽃을 담고 있었다. 이마에 주름살이 깊게 패인 마을 어르신이 뜯고 있는 나물은 사생이라고 하였다. 이경래 계장(현 이동장)이 물었다. “할머니, 나물 이름이 왜 사생이 인가요.” 할머니께서는 이방인들의 정체가 궁금하신가보다. 울릉도 사람들이 먹을 것이 없을 때 명(命)을 이어가기 위해 나물을 뜯어 먹었는데 그 나물 이름이 명이가 되었다는 이야기를 나는 사생이 나물에 각색을 하였다. 뭐 스토리텔링이 별건가! 후망산에 외로이 서 있는 등대는 바다를 보고 있었다. 정진각 안산시사편찬위원회 책임연구원의 논문 <경기도 지역의 청일전재 관련 유적과 평화적 활용방안>에 따르면 근대에 들어서면서 안산은 대륙으로 진출하려는 일본의 표적이 되었고 풍도는 서해안의 제해권을 장악하는데 중요한 역할을 하였다고 한다. 동학농민전쟁을 수습하기 위해 출동한 청나라 군사는 풍도 앞에 정박하면서 사태를 관망하고 있었는데 일본은 풍도를 장악하기 위해 1894년 7월 25일 이른 새벽 기습작전으로 청나라 함선 고승호를 침몰시켜 청일전쟁의 기선을 잡았고 이는 일제의 동아시아 침략전쟁의 시발이 되었다. 이후 일본은 러일전쟁 때에도 풍도를 발판으로 서해안을 거슬러 여순항의 러시아 함대를 궤멸시켰고 세계적인 제독으로 불리게 된 도고는 “동해에 독도, 서해에는 풍도”를 차지해야한다는 말을 남겼다고 한다. 일본인들이 자랑스럽게 생각한다는 해전. 그들의 역사교과서에는 풍도충해전(豊島沖海戰)이라 기록되어 있다고 한다. 풍도는 옛 부터 단풍나무가 많아 가을이면 섬 전체가 붉게 물들어 풍도 楓島라고 불렀고 고려사, 조선왕조실록을 비롯한 각종 문헌에도 그렇게 표기되어 있다. 고려조선 1천년을 이어온 이름이다. 그러나 오늘의 풍도는 豊島라고 표기되고 있다. 일제 강점기를 거치면서 일본 표기에 따른 것이다. 그렇다면, 豊을 楓으로 다시 돌려놓아야 하는 게 아닐까. 정진각 선생은 풍도는 안산 땅이지만 안산에서는 여객선을 탈수가 없고 인천에서 하루 한차례 운행하는 정기여객선을 타고 2시간 남짓 가야 한다고 풍도의 역사 첫 머리를 기술하였다. 안산 시민이 안산땅(방아머리항)에서 안산(풍도와 육도)을 갈 수 없다? 1994년 12월 옹진군에서 안산시로 편입된 대부도. 그래서 풍도와 육도 주민의 생활근거지는 아직도 인천이 대부분이다. 그래서 2009년 경기도에서 풍도와 육도 신규항로를 개설하려고 했을 때 관계부처에서는 해운법 제15조 규정을 적용하여 신규 항로가 개설되면 현재 인천에서 다니는 왕경호 항로를 폐쇄하겠다고 하자 주민들은 생활 근거지를 이유로 강력한 반대를 하였다. 결국 인천에서 방아머리를 경유한 후 풍도로 가는 뱃길이 열리지 않았던 것이다. 나는 풍도와 육도로 출장가면서 이러한 사실에 의문을 품었다. 내가 이 문제를 꺼낸 것은 지난 2월 23일이었다. 그리고는 인천에서 여객선을 타고 풍도와 육도를 찾는 실태를 확인하며 방법을 강구하기 시작했다. 관련기관에 정책 건의를 하고 현장에서 중앙부처와 항만청 등 관계자들을 만나 대화도 나눴다. 그리고 지역구 국회의원의 힘을 빌렸다. 6월 27일 왕경호 대체 건조를 위한 설명회가 인천항만청에서 열렸다. 풍도 주민들은 오랜 숙원사업이 이루어지게 되어서 무척 기쁘다고 말했다. 나도 기뻤다. 현재 인천에서 풍도를 다니는 54톤 왕경호가 100명이 승선할 수 있는 90톤 차도선 여객선으로 건조되어 내년 5월이면 안산시민들은 방아머리항(시화방조제를 지나 바로 오른쪽에 위치함)에서 풍도를 갈 수 있게 되었다. 사람들 사이에 섬이 있다. 최경호 안산시 관광해양과장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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