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너희는 주님 목소리에 귀를 기울여라. 너희 마음을 무디게 하지 마라.”(시편 95(94),7.8)
오늘 우리가 듣게 되는 하느님의 말씀은 참회와 보속으로 사순의 시기를 지내고 있는 우리에게 하느님이 진정 원하시는 참회와 보속이 무엇인지를 이야기합니다.
우선 오늘 제 1 독서의 호세아 예언서의 말씀은 예언자가 전하는 하느님의 말씀으로서 우리 모두가 죄로부터 돌아서 주님께 돌아와야 함을 이야기합니다. 그러면서 예언자는 우리가 주님께 돌아가야 하는 이유를 다음과 같이 설명합니다.
“자, 주님께 돌아가자. 그분께서 우리를 잡아 찢으셨지만 아픈 데를 고쳐 주시고, 우리를 치셨지만 싸매 주시리라. 이틀 뒤에 우리를 살려 주시고, 사흘째 되는 날에 우리를 일으키시어, 우리가 그분 앞에서 살게 되리라.”(호세 6,1-2)
우리의 아픈 데를 낫게 해 주시고 상처를 싸매주시는 분, 바로 그 분이 하느님이심을 알라고 이야기하는 예언자는 뒤이어 우리가 그와 같은 하느님을 더욱 잘 알아야 한다며 이렇게 말합니다.
“그러니 주님을 알자. 주님을 알도록 힘쓰자. 그분의 오심은 새벽처럼 어김없다. 그분께서는 우리에게 비처럼, 땅을 적시는 봄비처럼 오시리라.”(호세 6,3)
이처럼 호세아 예언자는 새벽과도 같이 어김없이 오는 그리고 땅을 적시는 봄비처럼 모든 곳 모든 이에게 베풀어지는 사랑을 베풀어 주시는 분이 하느님 그 분이심을, 우리는 바로 그 하느님을 바로 알아야 한다고 이야기합니다. 그러면서 예언자는 이 같은 무한한 하느님의 사랑에도 불구하고 금세 사라지는 아침 구름과 이슬과 같이 신실하지 못하게 응답하는 우리들의 하느님의 향한 얕은 믿음을 지적하며 하느님이 우리에게 진정 바라시는 회개, 곧 희생제물로서의 번제물이 아닌 신의, 곧 하느님의 바로 아는 예지가 필요함을 역설합니다. 그 한 마디가 오늘 독서의 마지막 문장이며, 오늘 화답송의 시편의 말씀으로 다시금 반복됩니다. 바로 이 말씀입니다.
“정녕 내가 바라는 것은 희생 제물이 아니라 신의다.”(호세 6,6)
이 같은 오늘 독서의 말씀은 복음으로 그대로 이어져 하느님이 진정 바라시는 회개의 모습이 무엇인지 복음은 다시 이야기합니다.
오늘 복음의 말씀은 루카가 전하는 복음의 말씀으로서 스스로 의롭다고 여기며 다른 사람을 업신여기는 자들에게 건네시는 예수님의 비유 말씀입니다. 루카 복음사가는 이 말씀을 통해 하느님이 진정으로 바라시는 회개의 모습을 죄 많은 세리의 모습으로 형상화하는데, 세리의 다음과 같이 기도하는 모습이 바로 그러합니다. 세리는 하늘을 향해 눈을 들 엄두도 내지 못하고 가슴을 치며 이렇게 말합니다.
“오, 하느님! 이 죄인을 불쌍히 여겨 주십시오.”(루카 18,13ㄴ)
세리의 이 같은 모습은 바리사이의 기도하는 모습과 극명한 대조를 이룹니다. 우선 바리사이는 말이 많습니다. 무슨 자랑할 것이 그리 많은지 기도의 처음부터 끝까지가 자기자랑이며 그 자랑이 끝이 없습니다. 거기에 더해 바리사이의 말을 자세히 살펴보면 그의 말의 대부분이 남과의 비교에서 드러나는 우월감의 표현이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나는 이러이러하니 저기 있는 저 사람들보다는 낫습니다. 그러니 그런 저를 칭찬해주십시오 라는 것이 그의 기도의 전부이기 때문입니다. 하느님 앞에서 기도를 하라고 했더니 정작 기도는 하지 않고 쟤는 이래서 못났고 쟤는 이래서 죄인이며 쟤는 이래서 낙오자라며 자신의 주위에 있는 모든 이들을 폄하하고 자신만을 높이 세우려는 이 같은 바리사이의 태도는 어제 복음 말씀을 떠올리게 합니다.
어제 복음인 마르코 복음 말씀이 분명히 이야기하듯 하느님 사랑의 계명과 이웃 사랑의 계명은 둘이 아닌 하나의 계명입니다. 곧 하느님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이웃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하느님을 사랑하는 것, 그것이 바로 하느님이 우리에게 바라시는 회개의 유일한 모습입니다. 그러한 면에서 오늘 복음의 예수님의 비유 말씀은 스스로의 의로움을 드러내기 위해 자신의 주위의 이들을 업신여기는 것이 아니라, 하느님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내 주위의 이웃들을 돌아볼 수 있는 사랑의 마음, 도움을 필요로 하는 가난한 이웃들을 하느님 사랑의 마음으로 따뜻이 돌볼 수 있는 것이 바로 하느님이 진정으로 원하시는 참된 회개의 모습임을 이야기합니다.
내 곁에 있는 형제를 사랑하지 않으면서 하느님을 사랑한다고 말하는 것은 거짓이며 위선이고 허위일 뿐입니다. 지금 이 순간, 바로 내 옆에 있는 형제를 사랑하는 것, 그것이 하느님이 우리에게 바라시는 유일한 회개의 모습이며 그것이 우리가 하느님을 사랑하는 방법이기 때문입니다. 그 사랑을 실천하기 위해서는 나 자신만을 내세우며 내 주위의 이웃을 멸시하는 태도가 아닌 내 자신이 바로 죄 많은 부족한 죄인임을 하느님 앞에서 고백하는 것으로 시작됩니다.
“오, 하느님! 이 죄인을 불쌍히 여겨 주십시오.”(루카 18,13ㄴ)
세리는 바로 이 고백으로 하느님으로부터 의롭게 인정받았으며 그 고백으로 자신의 곁에 있는 이웃을 진정으로 용서하고 화해하며 사랑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오늘 화답송의 말씀을 기억하고 마음에 새기십시오. 오늘 화답송의 말씀처럼 하느님이 우리에게서 바라시는 것은 하느님 앞에서 내 자신의 의로움을 드러내는 희생제사가 아닌 내 주변의 이웃을 향한 자비의 마음입니다. 오늘 우리에게 들려지는 이 하느님의 말씀에 따라 여러분 모두가 오늘 하루의 삶 안에서 내 주변에 나의 도움을 필요로 하는 이웃들을 사랑과 자비의 눈길로 찾아내고 그들을 하느님을 향한 사랑의 마음으로 사랑하여 하느님이 진정 원하는 회개의 삶을 사시기를, 그래서 하느님으로부터 의로움을 인정받아 하늘나라에서 가장 높은 이가 되시기를 기도하겠습니다.
“내가 바라는 것은 희생 제물이 아니라 자비이다.”(호세 6,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