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이 컵
근무처 커피 자판기 앞에 꽉 조인 넥타이를 맨 젊은 친구들 모습이 눈에 띈다.전혀 본 적이 없는 친구들이다. 신입소원 면접이 있다 하더니만 아마도 그들인 모양이다. 기도하듯 두 손을 모아 커피를 마시는 젊은 모습이 한 몸체 소망으로 보아진다. 한 순간의 머뭄, 그 상황 커피는 무엇보다 잘 듣는 마음을 가라앉히는 진정제이다. 이렇듯 긴장과 떨림이 교차하여 가슴을 누르는 상황의 진정으로서가 아니더라도 적당히 따뜻하여 여느 때도 생각 없이 후루루 단숨에 들이킬 수 없는 것이 커피 한 잔이다. 생각의 단초가 그 속에 담겨 있다.
나는 자판기에서 뽑혀 나온 커피 한 잔을 지극히 사랑한다. 굳이 커피가 아니래도 좋다. 춘삼월 횡횡한 바람으로 엄동설한보다 더 추운 때, 11월 불쑥 들이민 한기가 믿어지지 않아 더욱 코끝이 을씨년스러운 때, 지루한 장마가 뽀송뽀송한 마음까지 헤집어 칠팔 월의 열기를 지워 버린 때, 아주 이질적으로 산뜻한 느낌을 얻는 것이 바로 차 한 잔이다. 그러한 때 종이컵에 담긴 따뜻한 온기는 어릴 적 털 복슬복슬한 강아지 만지던 때의 보드라운 느낌과 다를 바 없다. 그런데 가만히 생각해보면 바나나를 품은 껍질 마냥 정작 고마운 것은 온기를 담고 있는 얄팍한 종이컵이다.
만약 자판기에 종이컵이 들어 있지 않았다면 무엇으로 대체가 가능했을까? 간단한 문제가 아니다. 자판기 앞에 서면 누구든 동전 두셋을 넣고 잠시 머뭇한다. 기존 잠긴 생각을 자연 잠시라도 접게 한다. 이것은 쓰고 저것은 너무 달고 그것은 국물이 거의 없는 것 같고 머무는 수 초 간 입맛을 다신다. 이윽고 딸가닥 소리와 더불어 사뿐히 내려앉는 종이 컵이다. 떨어지는 소리가 긴 여운 담긴 금속성이라면 어떠할까? 경제성은 차치 하더라도 이어질 짧은 단상을 그 쇳소리가 훔쳐 가는 꼴이 될지 모른다. 음료수 캔이 쏟아지며 내는 망측스런 소음을 난 싫은 느낌으로 기억하고 있다.
사기그릇이면 또 어떠했을까? 날카로운 비명을 들으며 커피를 마시는 꼴이 될지도 모른다. 그렇지 않다 하여도 엷은 커피 향에 부담 가는 육중한 몸체일 것이다. 다 마신 후 종이컵을 살짝 놓아 보아라. 잘 마셔주어 고맙다는 듯 여전히 맑고 투명한 딸가닥 그 소리다. 단순한 느낌으로 시작되는 짧은 단상에 어울리는 희망의 독백을 만드는 종이컵이다. 난 희망과 사랑의 느낌 그 착상이 그곳에서 종종 일어난다고 믿는다.
크기를 느껴 보았는가. 언제고 네 손을 한군데로 모으고 엄지만이 다른 쪽 시선인 채 그 빈 공간 새에 입맞춤을 하게 된다. 손끝에 전해지는 온기가 포근하고 아늑한 고향이다. 여럿 모여 어렵사리 남은 잔을 얻어 마셔도 다른 쪽 시선을 선사하면 그만이다. 입술을 축축이 적시는 덮은 공간을 훑어보자. 텅텅 빈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꽉 들어찬 느낌도 아닌 적당한 원형이 마음의 휴식 그 느낌을 연상시킨다. 사발로 마시는 다른 나라 사람은 생각이 조금 다를지 모르지만 종이 컵은 높이나 양에 있어서도 잔 크기의 3분의 2정도로 한국인에게 꼭 맞는 체격이라 할 것이다.
더욱이 컵은 투명하지 않고 소담하게 감추어진 상태로 담아지기에 끄집어 낼 때는 어느 맛일까 하는 호기 어린 미소로 꼭 다가서게 만든다. 그런 종이컵 하나의 가격이 과연 얼마일까? 50개 한 줄이 700원이니 개당 15원이 채 안 된다. 내가 보기엔 종이컵 그 몸값이 너무도 싸고 아깝다. 커피는 몸체로 들어와 하나가 되는데 그 존잰 선사된 후 버림받는 신세로 묵묵히 사라질 뿐이다. 물질 가치로서의 가격보단 느낌의 가치로서는 열 배도 넘는 존재이다. 그런 종이컵의 온기는 뜨거워 호호 불 정도도 아니고 그렇다고 입 속으로 냉큼 빠져 들어갈 정도도 아닌 적당한 마음의 크기를 잰 듯한 열기를 담아내고 있다.
여린 마음에 스스로 판가름이 안 될 때 성난 격랑을 피해 잠시 머무를 때 술 취한 제 몰골이 싫어져 온전한 제 정신을 부를 때 짧은 마음의 전환이 가능한 딱 그 정도크기의 온기를 갖고 있는 것이다. 그리 오래가지 않는 온기인지라 오히려 그것으로 인해 따뜻함을 절실히 느끼게 되는 마음도 갖는 일회용 종이컵이다. 보잘것없는 흔해 빠진 종이 컵 하나가 언제고 오만하지 않고 훈훈한 마음의 단초를 열어 놓고 차분한 기다림을 부르는 것은 우리에겐 참으로 작은 행복이 아닐 수 없다. 보는 순간부터 난 마음이 경쾌하다.
마시는 순간 다가서는 그 차분하고 아늑함은 이내 잠시 잊을 현실과 텁텁한 생활을 따독거리는 앙상블이 된다. 아픈 마음은 거두고 잊은 생각은 소생하고 진지해진 생각은 더욱 촘촘히 박힌다. 행복과 생각을 여는 단초가 그 속에 분명히 담겨 있음이다. 그렇게 순순한 느낌을 선선히 담아 당연한 듯 봉사하더니만 종이컵은 내려놓는 순간까지도 빈 공간이 내는 음율로서 여전히 마음을 경쾌하게 한다. 아쉬운 작별 미련 없이 떠나가는 상냥한 그대 그 느낌에 또 그들은 생활인으로 아무렇지 않게 일상으로 돌아서게 되는 것이다. 오늘 문득 잘 쓴 수필이란 종이컵 닮은 그런 수수함의 미덕을 담은 글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종이컵 같은 낭랑한 느낌의 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