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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기자신과의 싸움에 산다
능력에는 한계가 있지만 성장은 무한하다
나는 이전에 「인간의 성장은 무한하다. 무한계(無限界)다」라고 자주 이야기했습니다만, 최근에는 「인간에게는 그릇이 있다. 인간의 능력에는 한계가 있다」고 말하기 시작했습니다. 그에 대하여 「생각이 바뀌었느냐?」는 의문이 있을지도 모릅니다. 그것은 설명하면 이와 같은 것입니다.
인간이 성장할 때의 각도(角度), 성장도(成長度)를 생각하면, 수직 즉 90도에 가까운 각도로 성장하는 사람은 이따금 있을지도 모르지만 소수입니다. 급성장을 하는 사람 중에서 60도 정도로 빠르게 성장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45도 정도로 성장하는 사람도 있는가 하면, 30도 정도로 성장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각도가 10도 정도인 사람, 5도 정도인 사람, 1도 정도인 사람, 한없이 제로에 가까운 사람 등, 여러 가지 사람이 있습니다.
그 중에는 마이너스 성장을 하는 사람도 있을지 모르지만, 원칙적으로는 대체로 모두 태어났을 때와 비교하면 플러스 쪽으로 성장하고는 있습니다. 그 성장 정도, 각도는 사람에 따라 모두 다릅니다.
각도가 크면 클수록 대단한 속도로 성장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각도가 급한 만큼 본인에게는 힘들고 그 나름으로 숨이 찹니다. 마라톤을 대단한 속도로 달리거나 100미터 달리기를 하는 긴장도나 피로는 있을 것입니다.
60도의 성장도를 가진 사람과 45도의 성장도를 가진 사람과 30도의 성장도를 가진 사람을 동시에 같은 장소에 두고서 같은 과제, 같은 일, 같은 공부 등을 시킨다면 어떻게 될까요? 60도인 사람은 각도가 크기 때문에 수학을 해도 영어를 해도 공부가 빠르게 진전됩니다. 45도의 사람은 그것보다 조금 늦습니다. 30도의 사람은 더 늦습니다. 그것만을 취하여 보면 우열은 분명합니다.
개개인을 보면 확실히 성장도는 그 사람의 능력이기도 하고 재능이기도 하고 그릇이기도 합니다. 「60도, 45도, 30도라는 성장 각도를 각각의 사람이 가지고 있다」는 의미에서 각각의 한계는 있습니다.
「성장 각도가 있다」는 것은 「60도 성장의 한계」, 「45도 성장의 한계」, 「30도 성장의 한계」, 「15도 성장의 한계」라는 식으로 한계가 있고 그릇이 있으며 그 사람의 재능에 일정한 수준이 있음을 의미합니다.
다만 60도인 사람은 60도인 사람으로 성장을 계속해 가고, 45도인 사람은 45도인 사람으로, 30도인 사람은 30도인 사람으로 각각 성장을 계속합니다.
그와 같이 각각의 사람이 같은 출발점, 원점, 제로에서 스타트하여 각각의 각도로 계속 달리면, 그 속도가 같을 경우 도달하는 지점의 차이는 생깁니다만, 이것은 「실은 거기서 끝나지 않는다」는 점이 요점입니다.
60도의 각도로 가는 사람은 그대로 평생 60도로 계속 올라가면 대단하지만, 「토끼와 거북이」의 토끼처럼 도중에 잠깐 쉬는 일이 있습니다. 「병이 든다」, 「좌절한다」, 「죽는다」는 일도 있는가 하면, 「가정 생활이 어려워진다」, 「회사가 이상해진다」는 일도 있습니다. 여러 가지 일이 있고 실패 등의 벽이 생겨 그대로의 각도로는 성장할 수 없게 되는 일이 있습니다.
「『나는 대단한 수재여서 좋은 학교에 가서 좋은 회사에 들어갔다』고 생각했는데, 회사가 없어져 버렸다」는 일은 현재 많이 있습니다. 「그대로 갔으면 나는 꽤 출세할 수 있었을 텐데」라고 생각해도 회사가 없어져 버리면 개인으로서는 어떻게 할 수도 없습니다. 아무리 빨리 부장이 되어도 그것으로 끝입니다.
한편 30도의 각도인 사람이 「회사의 규모는 60도의 각도인 사람의 회사보다는 작아 그 10분의 1 정도지만, 망하지 않는다」는 회사에서 30년, 40년 계속 올라가면 어떻게 될까요? 최종적으로는 60도의 각도로 간 사람, 두 배의 각도로 올라간 사람보다 그 절반인 30도의 각도로 올라간 사람 쪽이 큰 성공을 거두는 일이 있습니다.
「사람의 성장 각도에 차이가 있다」는 점은 능력의 차이이며 한계이기는 합니다만, 각각의 사람은 그 각도에서의 성장을 계속해 감으로써 성장은 무한합니다.
따라서 능력에는 한계가 있음과 동시에 또한 한계가 없습니다. 「유한함과 동시에 무한, 무한함과 동시에 유한」입니다.확실히 능력에 한계는 있습니다. 역시 성장 각도에는 차이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어떻게 보아도 똑같지는 않습니다. 다만 그것이 영원히 계속될지 어떨지는 모릅니다. 성장도가 무디어지는 일도 당연히 있을 것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인생 전체를 볼 때에, 비록 각도는 5도 밖에 되지 않아도 「나는 나의 인생」이라고 생각하여 끝없이 꾸준하게 성장을 계속해 간다면, 그 나름으로 충분한 행복감을 맛볼 수 있는 경우는 있습니다.
너무 급한 각도로 빨리 올라가 버리면, 반대로 「우쭐대다가 전락한다」는 식으로 좌절하는 일도 있습니다.
그 때문에 너무 각도가 클 경우에는 스스로 그것을 조절하는 것도 중요합니다. 특히 재능이 있는 사람은 너무 성공하지 않도록 억제하여 자신을 오래 유지할 수 있는 궁리를 할 일입니다. 불타 없어져 버려서는 안되므로, 다 불타버리지 않도록 속도를 조절하면서 나아가는 것도 중요합니다.그와 같이 「인간의 그릇이나 능력에는 한계가 있다」는 가르침과 「인간의 성장은 무한하다」는 가르침은 모순된 것 같으면서 통합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것을 알아 주셨으면 합니다.
오래 계속 노력하면 멀리까지 간다
무엇인가 새로운 것을 시작하여 3일 정도로 그만두어 버리는 사람이 많이 있습니다. 「3일, 3달, 3년, 30년」이라고도 합니다만, 「3일을 넘어서 계속할 수 있으면, 다음은 3달 계속할 수 있는가? 3달을 넘기면 다음은 3년 계속할 수 있는가? 3년을 넘기면 다음은 30년 계속할 수 있는가?」라는 것입니다.
3년 정도 지속되면 능력적, 기술적으로 어느 정도의 것이 몸에 익혀집니다. 3일이나 3달로는 아직 그다지 몸에 익혀지지는 않습니다만, 3년 정도 계속하면 전혀 한 적이 없는 사람과는 분명히 차이가 나, 꽤 격차가 생기게 됩니다.
3년 계속할 수 있으면 그 다음은 30년 노력합니다. 30년 하나의 길을 계속 걸으면, 거북이와 같은 자기자신이라고 해도, 알아차리고 보면 머나먼 데까지 가 있습니다. 좀처럼 30년이나 계속할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만, 30년 동안 죽 계속하면 의외의 곳까지 가 있는 법입니다.
급한 각도로 올라간 사람은 「위에 오른 뒤, 떨어져 있었다」는 상태가 되는 경우가 비교적 많습니다.한편 3일, 3달, 3년, 30년이라는 식으로 오래 계속하여 끝없이 노력하면 의외로 먼 데까지 갑니다.「오래 계속 노력한다」는 것을 생각할 경우 너무 각도가 크지 않은 편이 오히려 좋다고 할 수 있습니다. 급한 각도로 단기간에 성공하면, 그 뒤가 계속되지 않아 덧없는 일이 많고, 그 후 두 번 다시 위로 돌아오지 않는 경우도 많습니다만, 각도가 작으면 꽤 오래 계속되는 일이 있습니다.
그런 견해를 가진 사람은 흔히 출세의 조건으로서 「운ᆞ둔ᆞ근(運ᆞ鈍ᆞ根)」이라는 것을 듭니다. 출세를 하기 위해서는 「운」도 필요하지만 「둔」, 둔함도 없으면 안되고, 「근」, 끈기, 근성도 필요하다는 것입니다.「운」에 대해서는 결과론이므로 뭐라고 말할 수 없습니다만, 「둔」인 사람이 출세한다는 것은 알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결국 둔한 사람, 둔감한 사람, 예리한 칼날과 같지 않은 사람 쪽이 꽤 오래 계속됩니다. 「근」, 끈기, 근성이 있는 사람도 그렇습니다.
인생의 성공 방정식을 보면 둔감하다는 것, 둔중(鈍重)하다는 것이나, 끈기가 있는 것, 근성이 있는 것도 큰 힘이 됩니다.
집념 없이 천재가 된 사람은 없다
여러분은 재능은 머리가 좋고 나쁨으로 정해진다고 생각할지도 모르지만 그렇지도 않습니다.현대에는 좋은 학교가 많이 있으므로 수재는 매년 양산되고 있습니다만, 천재라고 불릴 정도의 사람이 되면 훨씬 수가 줄어듭니다.그런데 천재는 수재보다 머리가 좋았는가 하면 그렇다고도 생각되지 않는 부분이 있습니다. 천재에게는 수재로써 보면 그다지 극상(極上)의 수재까지는 가지 않은 사람이 많습니다. 천재가 된 사람 중에는 괴짜라고 할까, 무언가가 결여된 사람이 많습니다.
「집념」, 「집착」이라는 말은 종교적으로는 나쁜 의미를 가진 말이기는 합니다만, 수재 중에서도 무언가 한 가지 일에 대하여 대단한 정열을 가지고 꽤 오래 계속한 사람이 아니면 아무래도 천재까지 가지 않습니다. 그와 같이 「어떻게 해서라도」라고 생각하여 한 마음으로 한 가지 일에 전념하기 위해서는 어느 의미로는 머리가 너무 좋아도 안됩니다.
머리가 너무 좋은 사람은 마음이 산란해지기 때문에, 여러 가지 일에 손을 대고 말아서 일을 너무 많이 벌인 상태가 되어 대성(大成)하지 못하는 일이 있습니다. 한편 그런 사람보다 머리가 나쁜 사람이 「무엇이든 다 할 수는 없다」고 생각하여 어느 한 가지 일에 죽 집약하면 수재의 무리 속에서 빠져나가는 일이 있습니다. 그리고 그 분야에서는 천재적인 빛을 발하기 시작합니다.
그 사람은 재능이 뛰어났는가 하면 그렇지는 않습니다. 그만큼 머리가 좋았는가 하면 그렇지는 않습니다. 물론 머리가 나쁘면 안되므로 적당히 머리는 좋지만, 그 다음은 끈기나 정열, 집념에 의합니다. 그것 없이 천재가 된 사람은 없습니다.
집념이라는 말은 종교적으로는 사용하고 싶지 않은 말입니다만, 유카와 히데키 자신은 「천재는 집념에 의한 것이다」라는 말을 했습니다.
「한 가지 일에 대해 몇 년이고 몇십 년이고 계속 추구하는 집념이 없으면 천재가 될 수 없다. 한 가지 일에 깊이 구애되어 답을 계속 구할 수 있는 사람이 아니면 천재가 될 수 없다. 마음이 산란해지거나 적당히 요령 있게 끝마치거나 하는 사람은 천재가 되지 않는다. 어느 의미에서 머리가 나쁘지 않으면 안된다. 머리가 나쁜 사람이 아니면 한 가지 일에 그 정도로 오래 계속 구애될 수가 없다」.
이와 같은 말을 유카와 히데키는 하였습니다. 천재론(天才論)을 쓸 때의 대상으로서 적합하다고 생각되는 사람이 스스로 그렇게 썼으니까, 그 말은 맞을 것입니다.
천재라고 불리는 사람 중에는 여러 가지 재능을 가진 다빈치형의 사람도 있습니다. 그러나 인류사(人類史) 속에서 그 수는 적고, 어느 쪽인가 하면 좁은 범위 내에서 오래 깊게 판 사람 중에 천재는 많습니다.재능에는 한계가 있으므로, 능력도 그다지 뛰어나지 않다면 역시 한 가지 일을 30년 정도 계속하지 않으면 좀처럼 일류가 되지는 않습니다. 다른 일에 너무 정신을 빼앗겨서는 안되며, 한 가지 일에 대해 누가 뭐라던 오로지 죽 밀고 나아가면 일류가 됩니다.
그것은 그럴 것입니다. 예를 들어 장기를 30년이나 하면 초심자와의 차이는 분명할 것입니다. 혹은 중학생 시절에 영어 성적이 그다지 좋지 않아도, 영어를 사용하는 직업에 30년 정도 종사하면 영어를 잘 할 수 있게 됩니다. 영어 교사를 30년이나 하면 영어에 관해서는 프로이며, 다른 직업을 하는 사람에 비하여 영어력은 상당해집니다.
그런 형태로 성공을 구하면, 각각의 사람에게 여러 가지 성공의 모습이 있습니다. 「이것도 저것도」라고 욕심을 부려서는 안됩니다. 자신의 특색, 재능 속에서의 성공, 그것으로 죽 밀고 가서 얻은 성공은 다른 사람은 흉내낼 수 없는 것이 됩니다.
학교교육에서는 지금 전국에서 일률적으로 센터 시험이 치러져서 1위에서 최하위까지 서열이 나옵니다만, 「그것으로 인생이 정해지는 것은 아니다」라는 것을 알아 주셨으면 합니다.
하나의 분야에 집약하는 편이 얻는 것이 크다
인생에 성공하기 위해서는 역시 무언가 하나의 분야에 죽 특화(特化)해 가는 것이 필요합니다. 능력이 흘러 넘치는 사람은 두, 세 개의 영역에서 성공하는 일도 있습니다만, 너무 영역의 수가 많아지면 각각의 수준이 떨어지게 됩니다. 그런 점은 알아야 합니다.
나는 종교에 특화하고 있습니다. 다른 일도 할 수 없지는 않지만, 여러 가지를 하면 재능이 흐트러지기 시작합니다. 재능은 분할되어 있으면 작아져 버리므로, 불필요한 일에는 그다지 손을 대지 않고 가능한 한 본업 쪽에 더 집약하고 있습니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결실이 생기지 않습니다.
스토이시즘이란 어느 의미에서 자기자신에 대한 단념입니다. 그런 단념은 필요합니다. 단념하여 집약하는 편이 의외로 얻는 바가 큽니다. 「이것도 저것도」라고 손을 댈 경우에는 그렇게 되지는 않습니다.젊었을 때 머리가 좋았던 사람, 혹은 재능이 넘쳤던 사람이 그 후 40대가 되면 그다지 성공하지 못한 것처럼 보이는 일이 있습니다. 「왜 그럴까? 어째서 성공하지 못하는 것일까?」, 이상하고 이상해서 어쩔 수 없습니다만, 역시 자신의 재능 면에서 노력이 부족하고 매몰했던 것이 원인일 것입니다.
세상에는 여러 가지 능력을 측정하는 기준이 많이 있습니다만, 그것으로 측정할 때 모든 부분에서 적당히 좋아도 안됩니다. 어딘가 하나의 영역에서 죽 밀고 나아가는 것이 중요합니다. 거기에는 정열이나 근성이 필요합니다. 죽 밀고 나아가지 않으면 성공할 수 없습니다.
「능력이 있는 사람, 우수한 사람이 고교시절에는 많이 있었는데, 그것이 점점 사라져 간다」는 일이 있습니다. 전술한 바와 같이 「도쿄대학에 들어간 뒤, 도쿄대학 학생들의 무리 속에서 자신(自信)을 잃고 의기소침해져서 매스(대중)의 일부가 되어 버린다」는 일이 있습니다. 그리고 「주위 사람들이 취직하는 곳에 나도 들어가는 것이 좋겠다」고 생각하여 그런 곳에 취직하고 그 후 사라져 버립니다. 그런 사람이 숫자로서는 많습니다.
그런 경우에는 오히려 “성격이 나쁜” 사람 쪽이 성공하는 것 같습니다. 여기서 말하는 「성격이 나쁘다」란 「자신의 형태를 무너뜨리지 않는다. 자신의 형태를 밀고 나아간다」는 뜻입니다. 그런 사람은 「나는 나다. 이것이 나의 스타일, 나의 사고방식, 나의 개성이다」라고 생각합니다.
그런 사람을 여러 사람들이 “두드리는” 셈입니다만, 얻어맞고 얻어맞아도 자신의 형태를 무너뜨리지 않는, 약간 성격적으로 「비뚤어졌다」고 보이는 면도 있는 사람 쪽이 아무래도 성공하는 것 같습니다.
남에게 교육을 받는 단계에서는 「모난 부분이 없는, 균형이 잡힌 사람이 되도록」 열심히 교육받습니다. 그런데 아무리 교육을 받아도 그렇게 되지 않고, 어느 정도의 부분에서 교사로부터 포기되거나 가족이나 동료 등으로부터도 포기된 사람이 꽤 대성해 갑니다. 뜻밖의 일입니다.
그런 사람은 결국 「타인과의 승부가 아니라 자기자신과의 싸움, 경쟁에서 살아 남았다」는 것입니다.
변화해 가는 자기를 즐긴다
우울한 상태인 시기를 보내고 있어서「나는 정말 안된다」고 하는 사람에 대해 「그럴까요? 그러면 아기일 때와 비교해서 당신은 지금 더 뒤떨어졌습니까?」라고 물어보면, 그런 일은 없습니다.현재의 자기는 아기일 때와 비교해서 종합적으로는 뛰어날 것입니다. 체력도 체격도 뛰어납니다. 지식도 견식도 경험도 있습니다. 인간관계에 대해서도 아마 아기의 무렵보다는 현격히 풍족할 것입니다. 아기의 무렵에는 돈을 가지고 있지 않았겠지만, 지금은 돈을 가지고 있을 것입니다. 집이나 맨션, 아파트를 자신의 명의로 빌릴 수 있을지도 모릅니다.
그와 같이 현재의 자기는 아기 때와는 대단히 다릅니다. 유치원 아이일 때와 비교해도 초등학생 때와 비교해도 중학생 때와 비교해도 다릅니다. 옛날의 자기와 비교하면 역시 다양한 면에서 나아져 있습니다.자기를 다른 사람과 비교하면 성장 각도가 다르므로 똑같이 되지는 않지만, 옛날의 자기와 비교한다면 다양한 면에서 나아져 있다는 느낌이 들 것입니다.
능력적인 것으로 말하면 수험 공부를 하는 능력은 스무 살 전후가 피크(peak)일 것입니다. 이것은 30세를 지나면 점점 떨어집니다. 나이가 들면 기억력이나 반복 훈련으로 단련한 능력 자체는 역시 점점 쇠해집니다. 지식에 대해서도 새로운 지식을 자꾸 들여 넣으면 오래된 것은 차츰 희미해져 갑니다. 물론 체력도 떨어집니다.
다만 나이를 먹으면 경험은 많아집니다. 경험이 쌓이면, 젊은 무렵이면 푸는 데에 몇 개월이나 걸렸던 과제에 대해 불과 일순간에 「이것은 이렇게 하면 풀 수 있다」고 아는 일이 있습니다. 옛날은 반년이나 걸려서 끙끙거리며 풀었던 과제에 대해, 결론을 알고 있기 때문에 「이렇게 하면 풀 수 있다」고 단번에 말할 수 있습니다. 그 점만을 취하고 보면 지능은 몇백 배, 혹은 몇천 배나 되어 있습니다. 이것은 경험의 힘입니다.
나이가 들면 지식은 쌓이지만, 잊는 것도 당연히 생깁니다. 체력은 당연히 완만하게 떨어집니다. 그러나 경험이 쌓이게 됩니다. 일정한 연령을 넘으면 이 경험의 부분은 다른 사람이 앞지를 수 없습니다. 역전할 수 없는 것이 나오는 셈입니다.
그와 같은 일이 있어서 인생에는 여러 가지 즐거움이 있습니다. 한 가지 것이 쇠약해져도 다른 것이 좋아지는 면이 있습니다.
나이가 들면 확실히 생물적인 에너지는 저하됩니다.
예를 들어 텔레비전 프로그램에서 가수나 여배우 등, 예쁘다는 여성 연예인들이 나오는 것을 보아도 나는 정말로 아무것도 느끼지 않습니다. 참으로 이상합니다만, 성적 매력이고 무엇이고 느끼지 않습니다. 이것은 그런 사람과 나와의 연령에 차이가 많기 때문일 것이라고는 생각합니다.
젊은 사람에게는 스무 살 정도의 가수 등은 아마 매우 예쁘게 보여서 몹시 좋다고 느껴질 것입니다. 보기만 해도 머리의 꼭대기에서 소리가 나거나 눈물을 흘리거나 할 정도로 감격할 것입니다. 그러나 나는 그런 사람들이 노래하는 것을 보아도 그다지 좋다고는 느끼지 않습니다.
또 중학생 정도의 10대 가수들이 무리를 지어 노래하는 것을 보아도 나에게는 “송사리의 학교”로 밖에 보이지 않습니다. 이것은 이것으로 한 가지 능력이 없어진 것이라고 스스로도 생각합니다. 「좋다」는 말을 들어도 「어린 아이가 스커트를 입었을 뿐이지 않은가?」라는 정도로 밖에 보이지 않습니다.
그런데 동년배의 사람에게는 다르게 보일 것입니다. 그것은 어느 의미에서 기쁨이며, 어느 의미에서 괴로움일 것입니다. 그런 가수 등의 근성이 어느 정도일지는 나는 보면 금방 알지만, 10대인 사람은 그것을 알지 못하고 여신처럼 보일 것입니다.
그와 같이 상실되는 것은 있습니다만, 또 다른 것에 눈을 떠서 매사가 다르게 보이게 됩니다. 인간은 생물로서 항상 변화하면서 살고 있습니다.「어제의 나에게서 오늘의 나로, 오늘의 나에게서 내일의 나로」 변해 가는 것은 기쁜 일입니다. 상실되는 것만을 보면 쓸쓸합니다만, 얻는 것도 반드시 있습니다. 인간은 다른 것으로 자꾸 변해갑니다. 변화해 가는 자기를 즐기는 것이 중요합니다.
「결혼식 전에 지나친 압박으로 도망가는 사람도 있다」는 말을 했습니다만, 그와 같이 압박이 강하면 사람은 “정신이 이상해지는” 일이 있습니다.
그런 사람에 대한 어드바이스는 「당신은 결혼을 두 번 할 생각으로 지내면 됩니다. 첫 번째에 연습하면 두 번째에 잘 되기도 합니다. 세 번이라도 좋습니다」라는 것입니다. 그렇게 말을 들으면 기분이 편해져서 도망치지 않아도 됩니다.
혹은 과장이 되어 압박으로 괴로워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그러나 「어느 대기업에서 투기성이 있는 고무의 수출입을 하는 부서의 과장이 시세에서 실패하여 평사원으로 강등되었지만, 그 사람은 그 후 그 회사의 사장이 되었다」는 사례도 있습니다.그런 일도 있습니다. 「승격 만이면 인생은 어중간해져 버린다. 강등도 경험하는 편이 인간으로서 숙련되어 좋다」는 면도 있습니다. 사람은 인생에서 올라가는 것도 내려가는 것도 경험하는 편이 여러 가지 것이 보이게 됩니다.
스스로 자기를 칭찬하는 노력을
자기의 좋은 면을 찾아낸다
「남에게서 칭찬 받을 수 있다」는 것은 매우 기쁜 일입니다.
행복의 과학에서는 「올바른 말로 남을 칭찬해 주자. 남에 대해서는 부드러운 말을 건네고 사랑을 주자」고 설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실제로는 부드러운 말을 걸고 사랑을 주는 사람의 수는 아직도 부족합니다.
그래서 아무래도 남이 칭찬해 주지 않는다면 가끔씩은 스스로 자기를 칭찬하는 편이 좋을 것입니다.견해는 여러 가지가 있습니다만, 자기에 관해서는 자기가 가장 정보를 많이 가지고 있으므로 「조금 견해를 바꾸어 볼까?」라고 생각할 일입니다. 「저 사람에 비해 뒤떨어졌다」, 「이렇게 되지 않으면 실패다」라는 생각으로 가면 「나는 안되는 인간이다」라는 식으로 될지도 모릅니다만, 조금 다른 견해도 있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현재의 자기는 초등학생 무렵에서 보면 대단히 성장했을 것입니다.
10대 때에는 「이런 나는 평생 결혼할 수 없는 것이 아닐까?」하고 고민하던 사람이 지금은 「됨됨이가 나쁜 아내를 얻었다」고 고민하고 있을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결혼하지 못한다」고 생각한 자신이 보면 「결혼할 수 있었다」는 것만으로도 매우 훌륭하지 않겠습니까? 또 「이렇게 됨됨이가 나쁜 아내여도 그런 사람을 계속 먹여 살리고 있다는 것은 훌륭한 일이 아닌가?」라는 견해도 있을 것입니다.
아이의 됨됨이가 나빠서 고민하는 사람의 경우는 「이렇게 됨됨이가 나쁜 아이여도 그런 아이를 먹여 살리고 있다는 것은 대단한 일이 아닌가?」라는 견해도 있습니다.
60세에 평사원인 사람의 경우는 「60세에 평사원이어도 일을 계속하고 있으므로, 대단한 정열이 아닌가?」라는 견해도 있고 「병을 앓지 않는 것만으로도 대단한 일이 아닌가?」라는 견해도 있습니다.
머리카락으로 고민하는 사람의 경우는 「머리카락이 완전히 없어진 사람도 많은 가운데에서, 비록 「자비엘」(스페인의 선교사. 대머리로서 16세기에 일본에서 포교활동을 함) 같이는 되었어도 주위에 조금 털이 남아 있는 것만으로도 대단하지 않은가?」, 「백발이 되었지만 로맨스 그레이(romance gray)여서 근사하지 않은가?」 등의 견해도 있습니다.
그와 같은 견해도 있으므로, 남이 그다지 칭찬해 주지 않는다면 가끔은 스스로 자기를 칭찬하는 편이 좋습니다.다만 남들 앞에서 「나는 훌륭하다, 훌륭해」라고 자기를 칭찬하는 것은 보기 흉할 것입니다. 남들 앞에서 「너는 안된다. 나는 훌륭하다」라고 사람을 헐뜯고 자신을 칭찬하는 사람도 가끔 있습니다. 그것이 자기 방어를 위해서라면 어쩔 수 없는 면은 있지만, 언제나 그런 식으로 하고 있으면 사람들로부터 미움받습니다. 남들 앞에서 자신을 칭찬할 필요는 없으며 자기 혼자서 하면 됩니다.매일 한다면 너무 심할지도 모르지만, 1주일에 한 번 정도, 「이렇게 우울한 상태니까 뭐, 가끔씩은 나를 칭찬해 볼까?」라는 기분을 가져도 좋습니다.
「나에게는 조금은 좋은 곳도 있지 않을까?」라고 생각할 일입니다. 적어도 과거의 자기와 비교해 보면 무언가의 성장을 하고 있습니다. 「전부 실패다. 전부 이전보다 나빠지고 있다」는 일은 없습니다. 반드시 무언가의 면에서 진보가 있습니다.
예를 들어 「과장으로 승진하여 임무를 완수할 수 없어서 우울한 상태가 된다」는 경우는 그런 일을 생각도 하지 않았던 신입사원 시절에서 보면 그것만으로도 견식은 우수합니다. 「과장이 되는 압력에 견디지 못하여 우울한 상태가 된다」는 것은 자신의 능력이 그다지 없다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이며, 그 정도만으로 대단합니다.
신입사원 무렵에는 「나는 사장이 될 수 있는 것은 아닐까?」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많습니다만, 과장이 될 때 「나는 과장을 감당해내지 못하는 것이 아닐까?」라고 생각한다는 것은 꽤 견식이 높아지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런 자기를 조금은 칭찬하지 않으면 안됩니다. 응원하는 느낌으로 「힘내라, 힘내. 좋다, 좋아. 좋은 면이 있어」라는 기분으로 조금은 칭찬했으면 합니다. 남이 칭찬해 주지 않는다면 스스로 자기를 칭찬하지 않으면 안됩니다. 우쭐거려서는 안되지만, 조금은 자기를 칭찬하여 기분을 고양시키는 것이 중요합니다.
우울한 상태가 되어 반성하려고 해도 할 수 없다면 「좋은 면을 찾아내어 볼까?」라고 생각하여 자신을 칭찬할 일입니다.
다만 그것을 다른 사람이 듣고 헐뜯기면 역효과가 납니다. 「나는 훌륭하다, 훌륭해」라고 스스로 말하여, 다른 사람에게서 「무슨 소릴 하는 거야. 멍청한 녀석」이라는 말을 듣게 되면 더욱 우울한 상태가 됩니다. 남이 듣지 않게 자기 혼자서 방에 있을 때, 빙긋 웃으며 자기를 칭찬하는 편이 좋습니다.
무엇을 칭찬할 지 생각이 떠오르지 않으면 종이에 써보아도 좋을 것입니다.
「이런 면이 훌륭하다」, 「지금만을 보면 『훌륭하다』고 할 수 없지만, 옛날에 비하면 훌륭하다」라는 등으로 생각하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나는 아무 짝에도 쓸모가 없다. 좋은 면은 아무 것도 없다」고 할지도 모르지만, 그런 일은 없습니다.
동물이 보면 인간은 슈퍼컴퓨터
우리 집에서는 아이들이 애완동물로 토끼를 기르고 있습니다. 이미 2대 째 토끼가 되어 있습니다.토끼는 귀여운 동물로서, 먹이를 받아먹으며 어루만져 주고 귀여워해 주면 행복해 보입니다. 그러나 토끼는 한 마디도 이야기할 수 없습니다. 이것은 불쌍합니다.
여러분은 「나는 비참하다. 나에게는 아무것도 없다」고 할지도 모르지만, 그렇게 말할 수 있는 것만으로도 대단한 일이 아닙니까? 푸념을 할 수 있는 언어능력이 있습니다. 토끼는 애당초 이야기를 할 수 없기 때문에 불쌍합니다.
토끼는 산수도 못합니다. 수에 대해서는 「한 개」, 「서너 개」, 「많이」의 세 종류 정도는 어쩐지 알아듣는 것 같습니다.
그리고 「아침과 밤에 먹이를 주고, 점심에는 먹이를 주지 않는다」고 정해 두면, 이쪽이 점심에 토기에게 가도 우리에서 나오지 않습니다. 「먹이는 한 번 주면 다음 때에는 주지 않고 그 다음 때에는 또 준다. 번갈아 주거나 주지 않거나 한다」는 것 정도는 알고 있습니다. 그 정도의 지능까지는 갑니다.
초대(初代)의 토끼는 인간의 말을 조금 기억했습니다. 「먹이」나 「당근」이라는 말을 기억하여 이쪽이 「먹이」라거나 「당근」이라고 말하면 확 반응했습니다. 그러나 2대 째 토끼는 말을 기억하지 못합니다. 토끼에 의해 능력에 차이가 있습니다.
또 초대의 토끼는 인간의 손을 날름날름 핥고 비위를 맞추는 기술이 있었는데, 2대 째의 토끼는 애완동물 가게에서 자라 어미로부터 배우지 않았기 때문에 인간의 손을 핥는 것을 모릅니다.
2대 째의 토끼는 「먹이」나 「당근」이라는 말도 모르고, 날름날름 핥는 기술도 가지고 있지 않습니다. 그런 면에서는 초대보다 뒤떨어졌지만, 다른 데에서는 초대보다 우수한 면도 있습니다. 공중에 펄쩍 뛰어올라 은어처럼 몸을 구부려서 기쁨을 표현하는 기술을 가지고 있습니다.
이 방법을 초대의 토끼는 한때 할 수 있었다가 그 후 못하게 되었는데, 2대 째의 토기는 죽 하고 있습니다. 2대 째의 토기에게는 배를 뒤집어서 애교를 부리는 면도 있어, 초대의 토끼보다 능력적으로 우수한 면이 있습니다.
같은 종류의 토끼라도 역시 능력의 차이가 있습니다. 그 의미에서는 토끼에게도 인간이 말하는 우승열패와 같은 것이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토끼를 보고 있으면 기본적으로 짚과 먹이와 물 정도 밖에 받아먹을 수 없고, 수도 셀 수 없고, 말도 할 수 없습니다. 한편 여러분은 지금 「나에게는 아무 것도 없다. 나는 쓰레기 같은 인간이다」라고 말했다 해도, 동물이 보면 거대한 슈퍼컴퓨터와 같은 존재처럼 생각될 것입니다.
「무념무상(無念無想)」이나 「무아(無我)」의 경지를 지향하자
동물의 예를 들어서 말했습니다만, 그런 면은 인간에게는 상당히 있을 것입니다.따라서 「남이 칭찬해 주지 않다면 조금은 스스로 자기를 칭찬해 보자」라고 생각하고 그 노력을 해 보십시오.
이것은 우울한 사회에서는 특히 중요합니다. 마이너스의 이미지가 강할 때에는 플러스의 생각을 내어 조절하여 균형을 잡을 일입니다.의학적으로도 그렇게 이야기됩니다. 의학에서는 우울증의 치료를 할 경우에 「등신대(等身大)의 자기, 즉 실(實) 사이즈, 실 치수의 자기를 보도록 합시다. 부정적인 것만을 생각하지 말고, 긍정적인 것도 생각하여 등신대의 자기가 됩시다. 『사회적으로 보아 이 정도』라는 실 치수의 자기를 되찾습니다」라고 말합니다.
그런 의미에서 조금은 자기를 칭찬하는 것이 필요합니다.
또 언제나 부정적인 것만을 생각하는 사람은 때때로 행복의 과학 정사(精舍)나 지부에 가서 「무념무상」, 「아무 것도 생각하지 않는다」는 것을 연습해 주십시오. 그런 사람은 언제나 비관적인 일만이 머릿속을 맴돌고 있으므로 「생각하지 않는다」는 연습을 할 일입니다.
처음에는 5분도 하지 못할 것입니다. 좀처럼 5분을 지탱하지 못합니다. 무념무상으로 마음을 비우는 일은 의외로 하기 어려우므로, 처음에는 시냇물소리, 바람소리, 새의 울음소리, 폭포소리, 혹은 조용한 음악, 명상 음악 등을 틀어서 거기에 집중하고 있어도 좋을 것입니다. 어쨌든 쓸데없는 일을 생각하는 것을 그만두는 것이 중요합니다.
가끔씩은 자기를 칭찬해 봅시다. 그리고 가끔씩은 「무념무상」이나 「무아」의 경지도 지향해 봅시다. 부정적인 생각을 하는 것을 그만두어 봅시다. 조용한 기분이 되어 봅시다.
그러면 불성(佛性)을 가진 자기의 있어야 할 모습, 자기가 걸어야 할 길, 자기에 대한 객관적인 평가가 뚜렷이 보이게 될 것입니다.
부디 그런 것을 시도해 주십시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