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라 목판 무구광정대다라니경 - 고려시대 것일 수도....
국보 126호 무구정광대다라니경(이하 다라니경)은 과연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목판인쇄물인가.
한국 문화의 우수성을 드러내는 대표적인 사례로 교과서에도 실려 있는
내용의 사실 여부가 불확실해졌다.
국립중앙박물관이 불국사 석가탑에서 고려시대에 증개축했다는
중수기(重修記)가 나왔다고 발표했기 때문이다.
중수기는 1966년 석가탑을 해체 수리할 때 탑신부 2층에 안치돼
있던 사리함에서 다라니경과 함께 나와 국립중앙박물관에 보관돼 왔다.
이에 따르면 중수기는 ''태평(太平:중국 요나라 연호) 18년''에
작성됐다. 이는 고려 정종 때인 1038년에 해당한다.
이렇게 되면 석가탑에서 중수기와 함께 나온 다라니경의 제작연대에 혼선이 올
수 있다는 게 문제의 핵심이다.
그동안 다라니경의 제작 연대는 서기 700년대 초~751년으로 추정돼 왔다. 최소한 석가탑의 건립
연대인 751년 이전에 만들어졌다는 해석이다. 하지만 중수기가 확인됨으로써 고려시대에 넣은 것일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게
됐다.
물론 다라니경이 8세기에 만들어졌다는 통설의 근거는 석가탑의 건립 연대만은 아니다. 7세기 말~8세기 초 당나라에서만 쓰이던
특정 글자가 사용된 점, 다라니경이 통일신라 때 유행했다는 점 등이 있다. 하지만 이는 해석이 분분할 여지가 있어 결정적 증거는 못
된다.
?중수기는=발굴될 때 붓글씨로 깨알같이 이두와 한문을 적은 손바닥만한 한지 110여 쪽이 눌어붙은 상태였다. 국립중앙박물관의
이영훈 학예연구실장은 "보존처리 끝에 최근 한지를 분리할 수 있게 돼 내용을 확인하기 시작했다"고 밝혔다.
여기서 석가탑이 ''무구광정탑''(无垢光淨塔) 또는
''서석탑''(西石塔)이라고 불렸다는 사실도 드러났다. 현재의 석가탑이란 이름은 조선 영조 때 작성된 ''불국사고금역대기''의 기록을 근거로 한
것이다.
학자들 엇갈린 해석
송일기(중앙대 불교서지학) 교수는 "목판인쇄는 10세기 말~11세기
초에 많이 나타나는 양식이므로 8세기 초의 목판인쇄본은 매우 희귀한 것이었다. 발견 당시부터 다소 논란이 있었다. 함께 나온 유물 중에
고려시대의 관직명으로 보이는 표기가 된 것이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석가탑의 건립 시기가 확실하기 때문에 반론을 제기하기 힘들었다. 중수기에
무슨 내용이 실려 있는지가 열쇠일 수 있다"고 말했다.
박상국 국립문화재연구소(불교서지학) 예능실장은 "중수기의 전체 윤곽이
드러나려면 적어도 2년은 걸릴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신라시대 제작설을 고수했다.
통일신라시대와 고려시대의 사탑에서 발견되는
다라니경의 종류가 다르다는 것이다. 그는 "무구정광대다라니경은 통일신라기 탑에서만 발견되고, 고려 때 탑에선 보협인다라니경이 널리 안치됐다"면서
"이것이 석가탑 조성 연대만을 기준으로 한 기존 주장을 보강할 합리적인 설명"이라고 말했다.
이영훈 실장은 "지금 단계에서 섣불리
석가탑 속 유물의 연대 판정을 변경할 수는 없다. 110여 쪽에 이르는 방대한 분량에 이두로 쓰인 것까지 판독하려면 연구는 이제 시작"이라고
말했다.
석가탑중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