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암 강신용공의 명복을 빌며
용암 강신용공이 오랜 투병 중 12월 7일 16시 저세상 하나님 곁으로 영민했다. 지난해 건강이 극도로 악화된 그 와중에서도 미수(88세)기념문집을 발간하는 등 열정적이었는데 가시다니 믿겨지지가 않는다.
고인은 제천고 동문 중 모든 행동거지 면에서 누구나 존경하는 모범적인 삶을 살았다. 그의 해박한 지식과 다정다감한 인간미는 물론이고 진주 강씨 문중에서는 잊혀 질수 없는 특출한 후손으로 평가를 받고 있다.
고인은 효자 중의 효자였다. 한때 모친이 위독할 때 집 근처에 거처를 마련하고 대소변을 직접 받아내면서 지극 정성으로 간병해 칭송이 자자했다. 고인의 대학 같은 학과 동기동창이면서 막역지우였던 유영화 씨는 강공은 인(仁), 의(義), 예(禮), 지(智)에 더하여 선(善), 용기 집념의 사람이라고 평했다.
고인은 살아생전 자기와 가문의 정체성에 대한 자부심이 남달랐다. 진주강씨 선대에대한 자부심은 물론이고 그가 고희때 펴낸 ,나는 누구인가,에서 보듯 그 누구보다도 자신의 뿌리에 대한 자긍심을 머리에 이고 산 족적이 확연하다. 그러면서도 수분지족(守分知足)을 가훈으로 삼아 한치도 흩으러짐이 없는 삶을 살다간 현대적 선비였다.
고인은 독실한 크리스찬 신자였다. 강원룡 목사의 수제자로 정평이 나있는 그가 병석에 눞기전 경동교회에서 성경을 영어로 강의하며 신앙심을 불태웠던 행적도 기억에 새롭다.
공이 전공한 영어영문학 실력은 우리나라 수출 드라이브에 크게 기여했다. 공이 바로 그 중심에 서서 회사를 발전시키고 국가 경제 부흥에 이바지 한 공로가 컸다는 사실은 동료들 모두가 공을 자랑스럽게 여기는 이유 중의 하나였다. 공이 1963년 OSROK추천 신입사원 자격시험(조달청)에 합격하고 경리산업주식회사 무역부에입사, Offer업무, 조달청 과학, 통신, 전기 기자재 국제입찰 업무를 취급하면서 공의 타고난 재능은 S&C Electric Co., Inc. U.S.A. 한국총판대리점을 운영할 정도로 두각을 나타냈다. USAID/K (미 국제개발원조처)에파견되어 한국전력 농촌전화사업, 배전선 승압사업, OSROK를 통한Buy-American정책 국제입찰서류 검토, AID Fund 구매수속 실무를성공적으로 수행한 경력은 공이 삼능산업(주) 무역담당 상무이사로서 이회사를 중흥시키며 공의 주도로 삼능상사주식회사를 설립한 저력이었으니 공은 정말 이 분야의 탁월한 역량의 소유자였다는 생각이 든다.
1977년 삼능상사주식회사 대표이사로 취임해 미국은 물론 멀리 구라파중남이 시장으로 봉재완구, 신발가공, 잡화류를 수출하고 전기기자재 수입 및 Offer업무에 몰두했던 시절은 아마도 공의 일생 중 가장 화려했던황금기가 아니었나 생각된다. 1980년 화원기업주식회사 설립이 그러했고 (주)화산엔지니어링 전무이사(해외사업부)로 싱가포르, 말레지아 합작투자회사 PCP의 한국 측 이사로 활약하며 수출 시장을 넓혀온 부도옹(不倒翁)같은 역량을 과시했음도 공을 아는 많은 사람들은 존경스럽게 기억하고 있다.
공의 활약은 회사를 떠나서 더욱 눈부셨다. 무역실무 강사와 현장지도로 인기가 높았고 중소기업청(경기) 경영기술지원단 지도위원의 한사람으로 수출컨설팅 무역실무, 상업영어, 해외시장개척, 무역계약, e-Marketing, e-Business, 상담기법 등을 바쁘게 전수했다. 공의 영어 실력은 무역관련 용어, 무역실무및 상업영어 강의, 무역실무 교재 저술에서 보듯 어떤 전문가의 추종도불허할 정도라는 것이 이 분야 전문가들의 정평이다. 특히 평택대 교수시절 무역실무 분야의 후견인지도는 거래관계의 창설, 거래조건의 조회, 계약의 성립 및이행, 화환신용장과 추심결제, 사후관리 요령, Buyer 발굴부터, 선적,대금의 회수, 관세 환급, 사후관리까지의 전 과정을 망라하고 있다 .
진주강씨응교공파 강승부 종친회장은 강공의 미수기념문집에서 강공은 조상을 받드는 일에 솔선수법 했고 용암 본인 직계 선조의 족보와 묘소관리 등을 현대에 맞게 정리하여 타의 모범이 되고 있으며 난해한 이두문이 섞인 ‘잠은공 분재기’를 번역한 문장가였고 진주강씨응교공파 기록물인 모원재(慕遠齋) 집필자로 활약하는 등 법전문중에서 ‘박학다식’한 후손으로 평가 받고 있다고 극찬했다. 공이 남긴 이 모든 값진 행적들은 후진들이 본받을 수 있는 좌우명으로 영원히 우리 곁에 살아 숨 쉴 것이다.
돌이켜 보니 고인과 나는 제천고와 성균관대학교에서 동문수학한 막역지우로 한평생 喜怒哀樂을 함께한 사이다. 고인의 9대 先祖 잠은공 강 흡(姜 恰)선생은 태백오현(太白五賢)중의 한분으로 나의 9대조 포옹 정양(鄭 瀁)선생과 교분이 두터우셨다. 병자호란 당시 일국의 신하가 어찌 청을 섬길 수 있느냐 하는 대명 절의와 올곧은 선비 정신으로 벼슬을 단념하고 태백산 아래 봉화군 일대(춘양. 법전. 봉성. 명호면 등)에서 각각 은거하며 학문과 덕을 쌓기를 게을리 하지 않고 후진 양성에 심혈을 기우려 대대로 추앙받아온 名賢이시다. 이렇듯 강공과 나의 선조가 같은 태백오현 중 한분으로 춘양면 臥仙亭에서 자주 만나 교분을 두터이 한 知己之友였다는 사실은 나의 입장에서 이미 선대로부터 숙명적인 만남을 약속 받았음이 아닌지 영원한 고인과의 석별에 다시 한 번 통곡하며 조사를 대신한다.(정운종)
<배우자 유영분. 아들 석철 석현. 손자 동구 윤구 현구 민구. 손녀 민희. 평촌 한림대성심병원 장례식장 3호실. 발인 12월 9일 13시 장지 경북봉화 선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