각시 붓꽃
曉烱/崔 順 子
황토고갯길엔 각시가 산 다
외진 옛길 찾는 이 없어도
양지바른 풀숲에 청초하게 피어
그리움 붓끝에 조롱조롱 매달고
단아하게 피는 각시 붓꽃
이리도 애 절은 각시를 두고
모른다 하는 이 야속한 듯
소쩍새 간간이 놀다간다
바람처럼 떠돌던 아버지가
몇 년에 한 번씩 돌아와서는
엄니 가랑이에 싹만 틔우고
황토 고갯길로 떠나간 후
기다림에 지친 내 어미도
저토록 함초롬한 각시였었지
빼어나게 선이 고운 각시였었지
문희 마을
曉烱/崔 順 子
메밀꽃 흐드러진 길 따라 문희 마을에 가면
이마를 마주한 산들이 절벽 사이로 숨겨둔
비밀스런 가슴 풀어놓으니
살면서 꼭 한번 가볼 일이다
강줄기를 거슬러 마하리 두물머리 진탄나루에
외줄 나룻배 한가로우니
그 배에 잠시 앉아
급물살로 가야 하는 물의 까닭 들어보고
백운산 칠족령에 올라
산허리 굽이도는 동강을 굽어보며
버거운 등짐도 내려놓을 일이다
어느 하늘 아래 이토록 청정한 마을이 다시 있으랴
황새들 춤사위 얼비치는
된꼬까리 황새 여울에 손을 씻고
벼랑 끝에 꼿꼿한 동강 할미꽃
보랏빛 꽃술을 탐하는 바람결에 나이만큼 깊어진 그리움과
서러움을 묶어 보낼 일이다
어둠이 스멀거리는 산 숲에 짐승들 단잠이 깊어지고
무수한 별이 뜰 아래 우 우 쏟아져 뜬눈으로 지새우는
하얀 그 밤은
나이를 잊어도 좋을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