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령 안에서의 기도
에베소서 6:18, 모든 기도와 간구를 하되 항상 성령 안에서 기도하고 이를 위하여 깨어 구하기를 항상 힘쓰며 여러 성도를 위하여 구하라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영적인 전쟁터에 항상 서 있습니다.
“우리의 씨름은 혈과 육을 상대하는 것이 아니요 통치자들과 권세들과 이 어둠의 세상 주관자들과 하늘에 있는 악의 영들을 상대함이라”(엡 6:12)
이 치열한 영적 전쟁, 영적 씨름에서 우리는 승리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전신갑주를 입어야 합니다.
사도 바울이 에베소서 6장에서 말씀한 우리 신자가 입어야 할 하나님의 영적 전신갑주는 여섯 가지입니다. 진리의 허리띠, 의의 호심경(가슴막이), 평안의 복음의 신발, 믿음의 방패, 구원의 투구, 성령의 검인 하나님의 말씀 여섯 가지입니다. 이는 곧 진리로 무장하라는 것이요 하나님께 대한 확고한 믿음으로 무장하라는 것입니다. 진리에 합당한 신앙 인격으로 무장하라는 뜻입니다.
그런데 이렇게 진리로 무장한다고 해도 우리는 사탄과의 영적 전쟁에서 패배당할 수 있습니다. 인격이 훌륭하고 믿음이 있다고 스스로 자부한다고 해도 우리는 패배당할 수 있습니다. 정통 교리를 확고하게 믿는 교회와 교단도 마귀의 밥이 될 수 있고, 세상과의 싸움에서 무능력할 수 있습니다. 왜 그러합니까? 능력이 임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모든 전신갑주들에게 생명과 힘을 불어넣어주는 역사가 있어야 마귀를 깨뜨리고 세상을 이기고 영혼을 건지는 열매를 맺을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그 힘을 가져다 주는 통로는 무엇입니까? 오늘 전신갑주를 나열한 후에 곧바로 사도 바울이 기록한 18절 말씀에 해답이 나와 있습니다.
“모든 기도와 간구를 하되 항상 성령 안에서 기도하고 이를 위하여 깨어 구하기를 항상 힘쓰며 여러 성도를 위하여 구하라”
기도가 곧 전신갑주를 전신갑주 되게 하는 길입니다. 기도 없이는 결코 우리는 승리할 수 없습니다. 그러면 우리가 어떠한 기도 생활을 해야 할까요?
첫째, 모든 종류의 기도를 총동원해야 합니다.
‘모든 기도와 간구를 하되’라고 하였습니다.
전쟁에서의 무기도 제 각기 용도가 있습니다. 장창도 있어야 하고, 단창도 있어야 합니다. 긴 칼도 있어야 하지만, 짧은 칼도 있어야 합니다. 크고 둥근 방패도 있어야 하지만, 작고 날렵한 손방패도 있어야 합니다. 작은 활도 있어야 하고, 크고 강력한 석궁도 있어야 합니다.
이처럼 우리가 행하는 기도도 다양한 기도들이 있습니다. 이 모든 기도들을 다 동원을 다 써야 합니다. 모든 기도와 간구를 하라는 말씀은, 탄원의 기도, 감사의 기도, 찬양의 기도, 묵상의 기도, 통성의 기도, 개인 기도, 합심 기도, 골방 기도, 성전 기도, 들판이나 산 위에서의 기도, 금식 기도, 절식 기도, 서원 기도 등 모든 형태의 기도를 총동원하여 기도하십시오. 그야말로 기도의 총동원령을 내리고 있습니다. 모든 형태의 기도를 총 동원하여 기도에 매진하십시오. 나는 이 한 가지만 하겠다라는 아집을 버리십시오. 나는 이 기도 방법만이 최고라고 제한하지 마십시오. 느헤미야는 금식 기도하다가 쇠약해진 얼굴 때문에 왕이 사연을 묻게 되었을 때에, 왕 앞에서도 눈을 뜨고 화살같이 빠르고 짧은 기도를 하나님께 올린 후에 용기를 얻고 대답함으로써 그 예루살렘 성벽 재건의 소원을 이루었습니다.
기도는 가장 강력한 무기입니다. 그 무기를 한 가지만 쓰지 말고 상황에 맞게 다양하게 쓰십시오. 그리하여 다양한 기도를 다 동원하여 어떻게 해서든지 하나님의 천국 곳간을 열기를 축원합니다.
둘째, ‘항상’ 기도하라고 하였습니다.
‘항상’이라는 단어는 개역한글판에서는 ‘무시로’라고 번역했습니다. 원문에 보면, ‘엔 판티 카이로’라는 단어인데, 그 뜻은 ‘모든 기회 가운데’, 혹은 ‘모든 상황 가운데’, 혹은 ‘모든 경우에 따라’라는 뜻입니다. 이 말씀은 최선을 다하여 기도할 수 있는 기회를 만들라고 해석할 수 있습니다. 또는 어떤 상황을 겪어도 최선을 다하여 기도로써 그 상황에 대응하라고 해석할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어떤 경우에도 기도 없이 행하지 않도록 하십시오. 모든 상황 가운데 기도와 간구를 드림으로써 그 상황 속에 하나님께서 일하실 수 있도록 청하십시오. “너는 범사에 그를 인정하라 그리하면 네 길을 지도하시리라”(잠 3:6)는 말씀이 이루어질 것입니다.
셋째, ‘성령 안에서’ 기도하라고 하였습니다.
‘성령 안에서’ 기도하라는 뜻은 무엇입니까? 우리의 기도가 성령을 의지하여 드려져야 한다는 뜻입니다. 성령님께서 나의 기도 중에 관여하시며 인도하시도록 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성령님의 욕구와 감정과 지식에 의하여 우리의 기도가 이끌려지는 기도를 하라는 것입니다. 즉 기도가 내 뜻, 내 생각, 내 욕구, 내 감정에 따라서만 드려짐으로써, 기도가 성령님과 전혀 상관없이 드려지지 않도록 주의하라는 말씀입니다.
성령님의 감동 없이 드려지는 기도는 냉랭합니다. 기계적입니다. 중언부언합니다. 왔다 갔다 합니다. 열정이 없습니다. 허공을 치는 것 같습니다. 마음이 함께 드려지지 않습니다. 입술만 드려지는 기도요 마음이 드려지지 않은 기도가 됩니다. 내 뜻대로 드려진 기도이기에 응답도 없습니다.
그러나 성령으로 드려진 기도는 뜨겁습니다. 기도하는 말이 자연스럽게 생생하게 일어납니다. 기도할 때 우리의 입술의 말에 우리 마음의 중심이 실려집니다. 내 기도하는 말이 허공을 이리저리 떠도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 존전으로 곧장 똑바로 올라가는 것처럼 느껴집니다. 이러한 기도는 기도가 힘이 생깁니다. 기도하고 나면 마음이 후련해지고 평안해집니다.
성령 안에서의 기도는 하나님의 성령께서 하나님 뜻대로 우리를 위하여 드려진 기도이기에 때가 되면 응답이 받습니다. 하나님의 나라를 세우는 거룩한 도구가 됩니다.
그래서 우리는 성령 안에서 늘 기도하고자 해야 합니다. 성령 안에서 기도하려면, 기도하기 전에 늘 뜨겁게 마음을 준비하면서 해야 합니다. 허둥지둥하는 마음을 버리고 주님을 집중해야 합니다. 우리 마음에 성령님을 초청해야 합니다. 마음이 냉랭하다면 먼저 자신의 이러한 감정을 주님께 아뢰며, 성령님께 도와달라고 진지하고 겸손하게 간청해야 합니다.
성령님은 누구십니까? 성령님은 기도의 영입니다. 스가랴 12:10 말씀에, 성령을 일컬어, “은총과 간구하는 심령”이라고 말씀하였습니다. 성령은 기도와 간구의 영입니다. 우리가 기도할 때 성령께서 우리를 위하여 도와주십니다. 이에 대하여 로마서 8:26,27 말씀에, “이와 같이 성령도 우리 연약함을 도우시나니 우리는 마땅히 기도할 바를 알지 못하나 오직 성령이 말할 수 없는 탄식으로 우리를 위하여 친히 간구하시느니라 마음을 살피시는 이가 성령의 생각을 아시나니 이는 성령이 하나님의 뜻대로 성도를 위하여 간구하심이니라”고 하셨습니다.
우리가 기도하지 못하는 연약함, 무엇을 기도할 지도 몰라할 때, 성령님이 우리를 도와주시어 마땅히 기도할 것을 기도하게 해주시고, 하나님 뜻을 따라 우리를 위하여 중보 기도해주신다고 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성령님은 우리의 기도의 조력자요 교사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기도가 잘 안될 때 내 안에 함께하신 성령님께 도움을 간절히 청하십시오.
“성령님 내 마음이 냉랭합니다. 무엇이 하나님의 뜻인지 알지 못합니다. 성령님이시여 나를 도와주옵소서. 나의 기도에 힘을 주옵소서. 내 마음을 붙들어주시어 진심으로 기도할 수 있게 하옵소서.”
이렇게 기도할 때 반드시 우리의 냉랭하고 답답한 영혼이 힘을 얻을 것이요 성령의 도우심으로 우리 기도의 문이 점점 열려 자유롭게 기도하는 은혜가 임할 것입니다. 그러므로 가장 기도가 나오지 않을 때 그 때 포기하지 말고 낙심하지 말고, 기도의 조력자이신 성령님을 부르십시오. 그를 의지하십시오. 반드시 성령 안에서 기도가 드려지게 될 것입니다.
참으로 성령님은 우리의 기도가 냉랭하고 하나님 앞에 기도의 담대함을 없을 때 우리의 기도를 뜨겁게 만드시는 분입니다.
로마서 8:14,15 말씀에, “무릇 하나님의 영으로 인도함을 받는 사람은 곧 하나님의 아들이라 너희는 다시 무서워하는 종의 영을 받지 아니하고 양자의 영을 받았으므로 우리가 아빠 아버지라고 부르짖느니라”고 하였습니다. 또한 갈라디아서 4:6 말씀에도, “너희가 아들이므로 하나님이 그 아들의 영을 우리 마음 가운데 보내사 아빠 아버지라 부르게 하셨느니라”고 하였습니다.
여기서 보면, 성령은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을 아빠 아버지라고 친근하게 부르게 해줍니다. 사랑하는 아기가 자상하고 따뜻하고 아이를 사랑하는 아빠에게 우리가 어떻게 합니까? 퇴근하고 돌아오면 ‘아빠’하고 부르며 뛰어 와서 안깁니다. 이처럼 성령은 우리에게 따뜻하고 사랑많은 하늘 아빠 아버지에게 그렇게 담대하게 기도할 수 있게 해줍니다. 그래서 예수님을 믿고 성령 받으면 기도할 때 뜨겁습니다. “아버지!”라고 뜨겁게 부릅니다.
여기서 로마서 8:15의 ‘아빠 아버지라고 부르짖느니라’, 갈라디아서 4:6 말씀에, ‘아빠 아버지라 부르게 하셨느니라’에서 부르짖다, 부르다는 동일한 헬라어 단어 ‘크라죠’인데, 이 단어는 ‘소리치다, 울부짖다, 고함치다, 외치다, 소리지르다’는 단어입니다. 그러므로 성령의 감동을 받은 사람은 가만히 있을 수 없습니다. 뜨겁게 하나님을 향하여 부르짖습니다. 아빠 아버지라고 성령이 소리치게 만듭니다.
로마서 8장 15절에서는 우리가 하나님께 아빠 아버지라고 부르짖는데, 갈라디아서 4:6에서는 특이하게도 성령님이 우리 안에서 하나님께 직접 ‘아빠 아버지’라고 부르짖어 이름을 부릅니다. 놀랍습니다. 성령께서도 우리 안에서 직접 하나님 아버지께 아빠 아버지라고 소리쳐 부르짖습니다. 성령은 잠잠하게 고요하게 말씀하시기도 하지만, 기도할 때 우리 안에서 뜨겁게 하나님 아버지를 향하여 부르짖어 기도하는 분이라는 것을 기억하십시오. 그러므로 성령의 인도받는 기도는 뜨겁습니다. 조용히 있을 수 없습니다. 예수님께서도 성령을 받아 기도하셨기 때문에, 예수님께서도 눈물과 통곡으로 기도하시곤 했습니다.
그러므로 새벽에 교회에 와서 기도할 때는 성령 안에서 뜨겁게 기도하시기 바랍니다. 예레미야 33:2,3 말씀에,
“일을 행하시는 여호와, 그것을 만들며 성취하시는 여호와, 그의 이름을 여호와라 하는 이가 이와 같이 이르시도다 너는 내게 부르짖으라 내가 네게 응답하겠고 네가 알지 못하는 크고 은밀한 일을 네게 보이리라”
고 하셨습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성령 안에서 마음과 영을 다하여 혼신을 다하여 부르짖을 때 들으십니다. 그렇게 우리가 부르짖을 때 부르짖으시는 성령께서도 우리를 도와 함께 부르짖어주십니다. 그리할 때 일을 행하시는 여호와, 그것을 만들며 성취하시는 여호와, 그 약속을 신실하게 지키시는 여호와 하나님께서 우리의 기도에 반드시 응답해주시는 것입니다.
여러분의 기도가 늘 성령 안에서 부르짖음으로써, 문제의 여리고 성이 무너지고, 기도가 응답되며, 성령으로 말미암아 여러분의 영과 혼과 몸이 하나님 아버지께 온전히 열납되는 은혜가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기도합시다. 주여, 오늘 기도에 대하여 배우게 하시니 감사합니다. 우리의 기도가 날마다 성숙해지게 하사, 영적인 전쟁터에서 굳게 서서 마귀의 진을 깨뜨리며 풍성한 응답을 받아 누리는 기도의 용사가 되게 하옵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 드립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