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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망의 검은 진주 케냐 선교여행(8/12(월)-22일(목)/2013년)
8/12(월)-13(화)/시애틀-워싱톤 DC-암스텔담-케냐(31 시간의 여행)
8월 12일 새벽 4시10분에 이 집사님이 비행기 안에서 먹으라고 제과점 빵을 잔뜩 사 가지고 와서 우리 짐 무거운 것 4개와 손가방 두 개를 싣고 최 집사 댁으로 가서 최 집사님 짐을 싣고 공항으로 와서 우리를 내려주고 갔는데 오늘 종일 서서 일할 것을 생각하니 너무 미안한 마음이었다. 비행기표를 알아보니 최 집사님 좌석은 있는데 우리 것은 나이로비 공항이 불이 났다고 해서 아들이 나중에 좀 늦게 비행기표를 산 딸과 손녀와 같이 가는 것으로 바꿔서 워싱톤 DC부터는 최 집사님과 따로 가게 되었는데 최 집사님이 영어도 잘하시고 씩씩하고 문제가 없어서 다행이다.
라운지에 들어가서 음식도 먹고 성경도 읽고 인터넷도 하면서 암스텔담에서 아침 11시 비행기를 타고 케냐로 날아갔다. 이번 케냐 선교여행은 간호사인 최 집사님과 전도사인 딸과 11세의 손녀와 동행하는데 저들은 선교여행이 처음인데 나보다 더 준비를 철저하게 해서 말라리아와 열병 예방주사 등도 다 맞고 약도 먹었다. 암스텔담에서 케냐로 가는 승객이 많고 비행기도 무척 커서 놀라다. 이 많은 사람들이 다 선교가는 것은 아닐 테고 케냐가 이렇게 인기가 좋은가 하고 놀라다. 비행기에서 “내 아내의 모든 것”이라는 한국 영화가 있어서 보려는데 소리가 잘 안 들려서 중간에 포기하고 성경 읽고 기도하고 밥도 먹고 잠도 자면서 31시간의 긴 여행을 마치고 8월 13일 저녁 8시 30분에 케냐 나이로비 공항에 도착하다. 공항이 불이 나서 밖에 하얀 천막을 치고 입국수속을 하는데 사람들이 얼마나 많고 혼잡한지 이리저리 버스를 타고 이동하면서 일인당 50불씩 내고 케냐에 입국하는데 그 돈만도 굉장한 수입이 되겠다.
딸은 기다리면서 해마다 케냐로 8월에 선교 오는 미국 교회 팀을 여섯 팀이나 만났다고 한다. 케냐는 8월이 겨울로 관광하기에 아주 좋은 계절이다. 저녁 9시 넘어 일찍 와서 기다리는 최 집사님과 정운교 선교사님을 만나 우리들의 많은 짐을 차에 가득 싣고 맨 뒤에 네 여자가 타고 가는데 불이 없어서 캄캄하고 길이 너무 나빠서 차가 춤을 추고 피곤하고 최 집사님은 차 멀미로 고생하면서 그곳에서는 제일 좋은 호텔이라고 찾아갔는데 더운 물이 안 나와 샤워도 못하고 너무 피곤해서 그냥 쓰러져 31시간만의 잠자리에 들다.
8월 14일 수요일/오후, 저녁 집회
아들과 딸이 2,000불씩 내어 이번 케냐 목회자 가족 세미나를 열게 되었는데 최 집사님도 동참해서 정 목사님께 선교비를 드리므로 넉넉하게 되어 너무 감사하다. 아침식사를 호텔에서 쥬스, 커피, 계란, 빵 등으로 하고 우리가 세미나를 할 장소로 가는데 가는 길에 케냐 사람들의 가난한 삶의 모습을 볼 수가 있었다. 집과 가게들이 너무 초라했고 길가에 얼기설기 나무로 지어 놓은 곳이 야채가게라고 하는데 많이 비어있는데 이곳은 야채가 비싼 곳이기도 한 것은 비가 오지 않기 때문이고 비가 와도 땅이 흡수하지 못하고 다 흘려버리기 때문으로 비가 조금만 많이 오면 홍수가 된다.
땅이 빨갛고 차가 지나가면 흙먼지가 인다. 아프리카에서는 잘산다는 케냐가 이 모양이면 다른 나라들은 얼마나 비참할 것인가를 상상할 수가 있다. 그래도 이곳으로 오는 비행기는 사람들로 가득 차고 넘친다. 어떤 미국 분들과 해마다 계속 자기 교회에서 선교하러 온다고 한참을 이야기하기도 했다. 일인당 50불씩 비자 발급비로 받는데 관광객이 주는 이 돈도 큰 수입이 될 것이고 훌륭한 대통령이 진정으로 국민을 위한 정치를 잘 해야 나라가 발전할 것이다. 이 나라는 개발되지 아니한 자연 속의 동물들의 천국으로 사파리가 유명한 나라이다. 관광수입으로 먹고 사는 나라라고 하는데 국민은 너무나 가난하다. 그런데 감사한 것은 곳곳에 십자가가 서고 교회가 많고 예수님을 믿는 사람들이 많다는 것이다.
우리가 세미나를 하는 장소는 토코아(Thokoa)에 있는 ‘임마누엘 크리스천 센터’로 그곳은 케냐에 소말리아 사람들이 모여 사는 가리사(Garissa)로 들어가는 길목에 있다. 가리사에 들어가려면 경찰하고 같이 가야 하는 위험한 지역이기에 갈 수가 없다고 한다. 먼저 덜컹거리는 길을 달려 그곳의 도청소재지 뮝기(Mwingi) 마을의 호텔에 도착해서 짐을 풀다. 도청소재지가 있는 곳이라 걸어다니는 사람들이 아주 많고 번화가이다. 나귀가 등에 물통을 가득 싣고 여자가 같이 물을 길으러 가는 모습이 많은데 이곳 남자들은 나무 그늘에 앉아서 쉬고 있고, 여자들은 온갖 일을 다 한다고 한다. 남자들이 전쟁에서 많이 죽어서 귀하므로 자연히 일부다처제가 되었고, 남자들은 일을 하지 않고 놀기만 한다는 것이 파라과이하고 똑같다.
호텔에 짐을 내리고 세미나 장소로 가는데 이곳 여자들은 모두 치마를 입는다고 한다. 바지를 입으면 창녀로 생각하는 문화가 있어서 가슴은 내 놓을지라도 결코 하체는 드러내지 않는다고 해서 여자들을 보니 꼬마들까지 모두 치마를 입었다. 그래서 우리도 길가 상점에 들어가서 천을 사서 둘러서 옆구리에 붙잡아 매었다. 네 개에 800실링(10불 정도)을 주었다. 우리가 모두 100불씩을 정 목사님께 드리고 이곳 돈으로 바꾸었다. 치마를 두르고 정 목사님의 제자가 크게 지은 임마누엘 교회로 가는데 도중에 뾰족한 못을 박아놓고 경찰이 길을 막은 곳을 지나는데 소말리아 사람들이 차로 막 쳐들어오지 못하도록 그렇게 길을 지킨다고 한다. 양철지붕으로 교회를 크게 지어 놓은 교회로 가니 무더운 날씨에 깨끗한 양복으로 멋지게 단장한 많은 목사님들과 사모님들과 여인들이 아주 예쁘게 차려입고 왔다. 아이들도 최고로 잘 차려입고 오고 털모자도 쓰고 여자들은 예쁜 만또도 둘러쓰고 모자도 썼는데 여자들이 삭발하거나 아니면 수건이나 가발을 많이 쓴다고 한다. 삭발을 해서 머리만 보면 여자인지 모르겠는데 여자는 모두 치마를 입으니 구별이 된다.
정 목사님이 이곳 교단 총회와 목회자 가족 수련회로 100년 이상의 큰 축제인데 외국인 강사를 모시고 하는 집회는 처음이라고 한다. 시골에 차도 서너 대나 왔고 이곳 목사님들은 아주 싼 호텔에 방만 빌려주었고 자기들이 적당히 잔다고 하는데 그렇게 정성껏 옷을 화사하게 빼어 입었다. 큰 교회당 안에 초청하는 총회장과 남편과 정 목사님과 통역하는 딸의 사진이 박힌 대형 현수막이 걸려 있고 첫날부터 사람들이 가득 모여서 뜨겁게 기도하고 찬송하고 남편이 마태복음을 강의하고 딸이 통역을 하니 다른 목사님 한분이 스와힐리어로 다시 통역한다. 이곳 케냐는 40여 부족이 있는데 다 다른 언어를 사용한다니 참 어려운 지역이다. 그래도 영어를 공용어로 사용하는데 시골에 사는 사람들은 영어를 못하는 것이다. 2시까지 뜨겁게 성경공부를 하는데 배가 고프고 힘들다.
잠깐 쉬는 동안 화장실에 가는데 그곳 화장실은 너무 냄새가 나고 만원이라 그곳에서 가까운 성도 댁으로 가서 잠근 문을 열고 들어가서 일을 보고 그곳에 있는 양장점에 가보다. 천들이 많고 그곳에서 옷을 맞추어 입자고 하고 시간이 없어서 교회로 들어와서 늦은 점심 식사를 하는데 목사님들과 손님에게만 주전자에 따뜻한 물을 주고 손을 씻으라고 한다. 귀한 물로 손을 씻고 염소고기와 검은 야채와 스프 등으로 식사를 하는데 손녀는 잘 먹지를 못한다. 내가 가지고 온 많은 제과점 빵은 이곳 목사님들께 드리니 모두 잘 들고 성경공부 시간에 질문에 대답을 한 사람들에게 상으로 주기도 하고 가지고 온 여러 가지 선물도 모두 상으로 주다. 천 가게에서 천을 자르는데 가위가 말을 안 들어 우리가 가지고 간 가위 하나를 선물하기도 하다.
모든 순서가 5시 경에 끝나고 차로 길가의 아까의 양장점에 가서 치마 하나씩을 모두 맞추고 나는 아래 위 투피스를 맞추다. 내 것은 천이 좋다고 1,500실링(20불 정도)이라고 한다.
이곳은 좀 고지식한 시골동네라 바지를 입은 여자들은 찾아볼 수가 없고 모두 치마를 입었는데 모두들 모양을 일류로 내고 다닌다. 옛날에 우리 한국 사람들이 가난해도 뾰족구두 신고 화려하게 차리고 다녔던 것이 기억난다.
호텔로 돌아와 야외 수영장 근처에 가서 햇반과 김, 깻잎 등으로 저녁 식사를 하는데 햇반을 데우지 않아 딱딱하고 음식이 맛이 없다. 호텔 주방에 마이크로 오븐이 없다. 남편은 피곤해서 저녁도 안 들고 잠을 자고 미혜네 방에 가서 길에서 정 목사님이 산 전기 주전자로 물을 끓여 새우 컵라면을 먹는데 맛이 있다. 호텔에 물을 끓이는 전기 주전자도 없고 물론 커피나 차도 없다. 방으로 돌아와 샤워를 하려는데 변기 물도 샤워 물도 안 나와 정 목사님께 이야기하니 호텔 책임자에게 이야기해서 고치려고 하다가 못 고치고 다른 방으로 옮기다. 다 풀었던 짐을 다시 싸고 짐을 옮기는데 너무 피곤하다.
옮긴 방은 시설은 더 안 좋은데 물이 졸졸 나오므로 머리도 감고 빨래도 다하다. 너무 피곤하고 다리에 쥐가 나서 고생하다. 이곳은 작년에 부통령이었던 사람이 운영하는 호텔인데 사장이 정 목사님 친구라고 한다. 며칠 동안 못했던 샤워를 해서 기분은 상쾌한데 바닥에 물이 흥건히 고여 빠지지 않아 기분이 안 좋지만 불평하지 않기로 결심하다. 이곳은 시골이라 인터넷이 안 된다. 이곳 사람들은 겨울이라고 긴 옷과 쟘바까지 입고 다니는데 나는 너무 더워서 땀을 흘렸는데 샤워를 하고 나니 오늘밤은 잠을 잘 잘 것 같다. 겨울이라 모기는 별로 없는 것 같아서 모기장을 안 치고 자다.
8월 15일(목)/뜨거운 열정의 케냐 사람들과 남편과 딸
잘 자고 새벽 4시에 깨어 남편도 나도 기도하고 나는 화장도 하고 컴퓨터에 일지를 쓰는데 딸이 노크를 하면서 안 나오시느냐고 해서 나가보니 최 집사님이 산책을 하고 있다. 너무 앉아만 있으니 소화가 잘 안 되어 걸어야 한다고 해서 같이 수영장 근처를 걷고 사진도 찍다. 야외 수영장에 파란 물을 잔뜩 받아 놓았는데 호텔에 손님도 별로 없는 것 같고 수영하는 사람도 없을 것 같다. 그래도 이곳 사방을 개간하고 건축을 하고 있는데 이곳에 무슨 구경할 것이라도 있는지? 최 집사님은 수영을 하자고 하지만 흙길도 나쁘고 수영할 마음이 나지 않고 시간도 없을 것 같다.
옆 건물이 교회인지 어젯밤 늦게까지 찬양 소리와 설교 소리가 들리더니 오늘 새벽 6시에 새벽기도회로 찬양과 설교 소리가 크게 똑똑히 들린다. 미혜네 방이 바로 앞인데 아주 크게 들리니 시끄럽지만 교회에서 하는 것이니 참고 감사해야 하리라. 이곳 케냐는 그렇게 확성기를 틀어 놓고 큰 소리로 찬양을 해도 괜찮다고 한다. 너무 뜨겁게 아는 곡조의 찬양을 하니 한 번 가보고 싶은 마음이 든다. 아침 7시 30분에 호텔에서 빵과 커피와 계란 등으로 식사를 잘 하고 교회로 달려오는데 차가 덜커덩거리고 곧 부서질 것만 같다. 길이 겉으로 보기에 좋아 보여도 어찌나 형편없는지 차가 계속 춤을 추는데 꼭 닫은 차 안으로 먼지도 메케하게 들어오고 당나귀에 물통을 싣고 물을 길으러 가는 아가씨들은 그 먼지를 다 뒤집어쓰고 걸어가는 것이 참 딱하다.
교회에 오니 사람들이 어제보다 더 많이 모이고 뜨겁게 찬양하고 남편도 딸도 뜨겁게 설교하고 성령 충만하다. 정 목사님이 방언을 하시면서 기도를 인도하는데 너무 뜨겁게 잘하신다. 깨끗하게 차려입고 춤을 멋지게 추면서 찬양도 잘하고 성령 충만하고 뜨거운 열정들로 넘친다. 손녀는 노트를 열심히 하고 최 집사님도 사람들도 모두 열심히 경청하는 모습들이 너무 감사하다. 2시 경에 마치고 늦은 점심식사를 하고 옷을 찾으러 가서 찾아왔는데 내 옷만 안 되다. 내일 5시 경에나 해 주겠다고 한다. 치마들을 잘 만들어 모두 입고 가서 딸은 새 치마를 입고 통역하러 올라가다. 새벽에 일찍 일어나서 오후 시간은 너무 피곤하다. 케냐 사람들은 집회를 마친 저녁시간에 전도하러 갔다가 다시 교회로 돌아와서 밤 12시까지 예배를 드렸다고 하니 대단하다.
타이어가 바람이 빠져서 갈아 끼우고 타이어를 가지러 가는 동안에 모두 잠들을 자고 정 목사님만 운전하느라고 고생을 하셨는데 길이 너무 나빠서 오래 걸린다. 호텔 식당으로 와서 세 사람만 식사를 시키고 햇반과 컵라면 등으로 식사를 하고 나는 일찍 들어와 일지를 쓰다. 내일은 햇반과 컵라면 등을 가지고 가서 저녁 식사를 교회에서 하고 저녁 예배를 딸과 나와 최 집사님과 정 목사님이 인도하자고 하신다. 내일 저녁 시간에 말씀을 전하게 된다니 잘 준비해서 이곳에 온 보람을 더욱 크게 해야 하리라. 최 집사님도 5분만 한다고 하면서 준비하는 모습이 아름답다. 이곳에서는 한국 사진관이 아주 잘 되는데 한국 사진관은 저들의 사진을 약간 하얗게 만들어 준다고 한다. 저들은 하얀 색을 좋아하고 새까만 피부색보다 될수록 갈색의 피부를 동경하고 그런 사람들이 배우로 또 유명인사가 되기도 한다고 한다. 하긴 마이클 잭슨도 피부를 하얗게 탈색시킨 것을 생각하면 이해할 수가 있다. 그런데 그런 생각은 비극인 것만 같아 마음 아프다.
8/16(금)/새벽예배/노방전도
새벽에 일찍 일어나서 걷다가 6시에 새벽예배를 드리는 호텔 옆의 바로 이웃 교회에 가 보다. 어린이들까지 교회당에 가득 사람들이 모인 것이 인상이 깊다. 우리 네 사람이 가니 언어를 바꿔서 영어로 설교하고 스와힐리어로 다시 통역을 하고 끝나고 인사를 하며 영어로 된 책을 한 권씩 선물로 준다. 그 교회가 스피커를 크게 틀어 놓고 밤낮으로 아는 곡조의 찬송가로 온 마을에 크게 울리게 해서 자는 사람들을 깨우는데도 마을 사람들이 불평을 안 한다고 하니 케냐가 기독교 복음이 들어가기가 참 좋은 나라라는 생각이 든다.
오늘은 성경공부를 5시에 마치고 모두 노방전도를 나간다고 하는데 어제도 노방전도를 나가서 밤 12시까지 기도회를 했다고 하니 그 열성이 참으로 대단한 사람들이다. 길에 높은 강단을 만들고 마이크를 설치하고 찬양하고 기도하고 복음송을 크게 틀어놓고 모두 춤을 추는데 학생들이 많이 몰려와서 신나게 춤을 춘다. 사람들이 길에 가득차고 넘쳐서 구경을 하고 신나는 축제 분위기로 저절로 전도가 될 것 같다. 정 목사님이 켈리에게 노방 전도 시에 전도 설교를 하라고 해서 켈리가 경험이 없다고 못하겠다고 하니 한번 해보라고 아마 뜻 깊은 시간과 경험이 될 것이라고 하시다.
대학생 때부터 학생회 수련회 강사 경험이 많은 용감한 전도사 딸이 단에 올라가 설교를 하는데 큰 목소리로 우렁차게 너무 잘하다. 딸이 영어로 하면 다른 목사님이 스와힐리어로 통역을 한다. 외국여자가 설교를 하니 더 흥미로운 것 같다. 나중에 정 목사님이 너무 잘했다고 이제 부흥사로 등록했다고 하시다. 참 뜻 깊은 시간이었다. 어떤 사람의 가게에 들어가서 주전자로 물을 끓여 햇반에 뜨거운 물을 부어 깻잎 김치와 새우 컵 라면으로 저녁을 들고 저녁 예배를 드리러 교회로 갔는데 깜짝 놀란 것은 저들은 저녁도 먹지 않고 교회당 안에 가득하게 모여서 뜨겁게 춤추며 찬양을 한다. 뒤에는 앉을 자리가 없어서 강대상 앞에 자리를 만들어 그곳에 앉아서 사람들을 내려다보면서 예배를 드리는데 최 집사가 이곳에 오기까지 시험이 많았던 것을 간증하고 손녀와 둘이 찬양을 하고 정 목사님이 설교를 하시고 안수 기도를 해주시고 내 순서는 주일에 하자고 하신다. 밤 11시가 넘어 그때에 그분들은 저녁식사를 한다고 하고 우리에게 식사하고 가라고 하는 것을 그냥 오다. 늦은 밤에 돌아오며 너무 피곤하지만 흥분되는 즐거운 하루였다.
8월 17일(토)/마지막 쎄미나/사진촬영/마을 아이들 다 모여오다
아침 11시에 교회에 도착해서 뜨겁게 찬양하고 성경공부하다. 작은아이들과 학생들이 다 모여와서 조용한 모습으로 진지하게 말씀을 경청하는 모습이 신기하다. 아마 외국 사람을 처음 보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여자들은 모두들 최고로 옷을 화려하게 차려입고 나왔다. 날씬하고 예쁜 옷들이 어울리는데 머리를 다 밀어서 치마를 안 입으면 남자로 오해할 수도 있겠다. 미혜와 최 집사님은 앞에서 열심히 은혜 받는데 나는 너무 더워서 시원한 바람이 불어오는 뒤 창가에 앉아서 강의를 듣는데 아이들이 내 주위로 다 모여든다. 최 집사가 미혜와 같이 이야기하고 나란히 앉아서 은혜 받고 딸하고 영어로 이야기도 많이 나누다. 최 집사가 처음 선교여행으로 큰 보람을 느끼고 많이 가지고 온 사탕과 초코렛 등을 아이들에게 나누어 주며 즐거워한다.
1차 강의가 끝나고 화장실을 셋이 가는데 하나밖에 없는 교회 여자 화장실은 사람으로 줄을 서야 하고 벌레와 냄새가 코를 찌른다. 셋이 근처 다른 집을 찾아가서 사정을 이야기하고 자물쇠를 열고 일을 보다. 화장실에 가기 싫어서 물도 못 마실 지경이다. 손녀는 화장실에 안 가려고 물도 안 마시고 밥도 조금 먹고 꼿꼿이 앉아서 설교를 예쁘게 노트하며 모범이다. 점심식사 전에 우리 일행이 한 가운데 앉아 목사님들과 먼저 사진 촬영을 하고 어른들 아이들 순서대로 나와서 사진촬영을 하다.
점심식사를 하고 뒤 창가에 앉아서 바람을 즐기는데 아이들이 잔뜩 몰려들어서 내 머리를 만지고 손도 팔도 쓰다듬어 본다. 외국 사람을 처음 보는 듯 동물원 원숭이 구경하듯 한다. 아이들이 너무 몰려들어서 손을 들고 “주여! 사랑해요”를 하라고 하니 신이 나서 잘들 하고 모두 내 옆에 찰싹 달라붙어서 앉으려고 한다. 옆에 앉은 아이가 종이에 우리 집에 가서 일하고 싶으니 자기를 데려갈 수가 없느냐고 쪽지를 주고 답을 달라고 한다. 또 다른 아이도 그런 쪽지를 주고 간청하는 모습이 너무 측은하고 50년 전, 바로 어릴 때의 내 모습을 보는 것 같다. 나도 얼마나 미국에 오고 싶어 했는지, 하녀라도 해서 미국에 오기를 소원했었다.
오후 5시까지 남편과 딸과 또 스와힐리어로 통역하는 목사님과 셋이 뜨겁게 강의를 마치고 모두들 너무 좋았다고 치사를 하고 이곳 목사님들에게 성도들에게 1년은 가르칠 교재를 만들어 주었다고 쎄미나가 기대 이상이라고 정 선교사님이 좋아하시고 감사하시니 보람이 넘친다. 호텔로 돌아와서 식당에 서너 가지를 주문하고 우리가 가지고 간 햇반과 컵라면을 풍성하게 들고 만찬을 하다. 내일 주일을 지키고 나이로비에 가서 2박 3일 사파리를 하면 모든 일정이 끝난다. 딸과 손녀와 최 집사님과 너무나 즐거운 선교여행이었고 좋은 추억이 되리라.
8/18(주일)/각 교회 발표회
새벽 6시에 감사헌금을 하려고 이웃 교회에 가보니 어제로 집회가 모두 끝났다고 해서 그냥 돌아오다. 정 목사님께 물으니 안식일 교회라 어제로 모두 끝이 났다고 하고 그동안 그 교회도 수련회 같은 것을 한 모양이다. 호텔에 체크아웃을 해서 짐을 모두 차에 싣고 교회로 오는데 짐을 다 나누어주어 이제는 가볍다. 선물들과 영어 성경책을 120권을 가지고 와서 무거웠다. 과자, 초코렛 등은 아이들에게 나누어주고 햇반, 김, 깻잎, 컵라면 등은 다 목사님께 드리다. 최 집사님이 호텔에서 일하는 잭슨에게 1.000실링(12불정도)을 팁으로 주었는데 너무 많이 주었다고 하신다. 좋은 구두도 주고 하니 다음에 또 오라고 한다.
교회에 가니 교회당 안에 사람들로 가득하고 앉을 자리가 없고 창가에도 아이들이 서성이고 들여다본다. 우리 자리는 그곳 목사님과 사모님들과 같이 강대상 위에 해주어 가득한 사람들을 내려다보면서 긴 순서의 예배를 드려야 했는데 교회들마다 학생들과 어른들이 나와서 소개를 하고 발표를 하는 것이다. 10시 30분에 교회에 갔는데 교회들마다 나와서 찬양하고 춤추고 1시까지 발표회를 하는데 나중에는 지루하고 피곤하다. 헌금을 하고 1시에 남편이 설교를 하고 다 마쳐서 내 순서는 없나보다 했는데 맨 마지막에 정 목사님이 사모님이 한 말씀하신다고 해서 여러분들이 춤을 추고 너무 신나게 찬양하는 모습이 너무 아름다운데 그러나 하늘 보고 우는 조용한 시간도 있어야 한다고 하다.
“눈물로 씨를 뿌리면 기쁨으로 단을 거두리로다. 예루살렘의 딸들아 나를 위해 울지 말고 너와 너희 자녀들을 위해 울라”라고 하신 말씀대로 하늘 보고 많이 울면 자녀들을 주님의 보물로 만들 수 있다고 하다. 아주 짧게 했는데 짧은 인삿말 속에 귀한 메시지가 들어 있다고 너무 좋았다고 하다. 우리 일행에게 선물을 주는데 앞을 두르는 큰 치마 보자기이고 미혜는 예쁜 케냐 국기가 들은 티셔츠를 선물로 받다.
2시 30분이 되어 우리 일행이 교회 사무실로 가서 저들이 정성껏 차린 식사를 하는데 나는 안하고 싶었지만 저들의 정성을 생각해서 해야 했다. 최 집사와 우리가 돈을 걷어 담임 목사님과 총회장 목사님께 사례를 했는데 담임 목사님 아들이 대학에 들어가는 돈이 부족했는데 우리가 드린 돈으로 다 충당이 된다고 한다. 선교지에 가면 돈은 다 쓰게 되고 돌아올 때에는 무일푼이 된다. 식사를 하고 나이로비로 달려오는데 나는 배가 가스가 차서 무겁고 컨디숀이 안 좋다. 나는 계속 잠을 자고 가는데 최 집사님과 손녀는 찬송을 하면서 계속 즐겁게 이야기를 나누며 둘이 아주 좋은 친구가 되었다.
번화한 나이로비로 와서 최 집사가 미국의 케냐 친구로부터 자기 아들에게 선물을 갖다 주라는 부탁을 받아서 그 아들을 만나 축구공과 선물과 돈을 주다. 나이로비에 있는 한국 식당에 가서 모처럼 맛있는 된장국과 김치찌개를 먹는데 나는 몸이 안 좋아 많이 먹지 못하다. 호텔로 들어와서 따뜻한 물로 샤워를 하는데 중간에 따뜻한 물이 안 나와 서둘러 마치고 일찍 잠자리에 들다.
8/19(월)/마사이마라 사파리
아침 6시 30분에 호텔에서 식사를 하고 큰 가방을 모두 호텔에 맡기고 작은 손가방만 가지고 7시 30분에 켄코(KENKO) 여행사의 사파리 차가 와서 모두 마사이마라로 가는데 대통령 궁을 지나가다. 사파리 가는 길에 큰 원숭이가 길가에 앉아 있는데 사진을 못 찍다. 대형 차사고가 났는데 많은 사람들이 구경을 하고 두 사람이 죽어서 보자기를 덮어 놓았다.
11시에 어느 호텔에 들러 점심을 먹고 그곳 상점에 가서 많이 깎아서 선물들을 사다. 120불이라고 불렀던 가죽의자 두 개를 50불로 아주 싸게 사고 최 집사도 케냐산 순모 이불을 많이 사다. 점심식사를 하고 한참 달려가서 게이트가 있는 곳에 가서 관람료(80불씩)를 내고 안으로 들어가서 동물들을 구경하다. 얼룩말이 많고 기린, 예쁜 노루 같은 것들도 있는데 동물의 왕인 사자를 볼 수가 없어서 섭섭하다. 누군가의 글에 일생에 한 번은 마사이마라에 꼭 가야 한다고 했는데 이제 다시는 안 와도 되겠다는 생각이 든다. 강가에서 작은 거북이가 등에 탄 악어도 구경했고 하마도 구경하다. 후로리다에 가니 악어가 길에 즐비했었다고 하니 그렇게 많았느냐고 한다. 미국 울창한 산에 사슴이나 들소 등 동물들이 더 많은 것 같다는 생각도 하다.
7시 경에 Mara Sun Lodge 호텔로 돌아와서 체크인을 했는데 고급 호텔인 것 같은데 텔레비전도 없고 물 끓이는 주전자도, 커피도 없다. 7시 30분에 식당에서 뷔페 식사를 하는데 중국 사람들이 가득하게 앉아 식사를 한다. 이곳에 중국 사람들이 제일 많이 관광을 온다고 한다. 식당에서 모르고 사이다 2병과 물 한 병을 마셨는데 9불 청구서가 나왔다. 모두 수입품이니 그럴 수밖에 없겠다. 정 목사님이 수영복을 가지고 오라고 했는데 이 호텔은 수영장이 없다고 한다. 2박3일 관광비는 700불씩이고 한국 사람이 차 주인으로 사장이고 가이드 겸 기사는 영어를 잘하는 케냐 사람이다. 나는 속이 미식거리고 안 좋아서 음식을 조금밖에 못 먹고 피곤해서 차 속에서도 계속 잠을 많이 자다. 그러나 즐거운 하루였다.
8월 20일(화)/마사이마라 사파리/전통마을
아침 7시에 식사를 하고 8시에 마사이마라로 사파리를 나섰다. 차 위 뚜껑을 열고 서서 시원한 공기를 마시고 한참 트림을 했더니 속이 미식거리는 증상이 사라졌다. 한참을 하늘을 향해 트림을 토해내고 일어서고 앉고를 반복하고 운동을 하며 동물들을 관광했다. 큰 타조, 코끼리, 하마, 악어, 거북, 와일드비스트 수천 마리 떼도 보고 너무 장관이었다. 사자를 한 번 보고 가고 싶다고 노래를 했더니 숲속에서 쉬고 있는 큰 사자 두 마리가 누워있는 것을 만나다. 잠깐 일어나서 얼굴을 드는 모습이 무시무시하지만 귀엽다. 사파리 차들이 서로 연락을 하고 많은 차들이 와서 사람들이 구경을 하고 있는데도 태연하게 누워 잠이나 자고 있는 모습이 천하태평으로 아무것도 두려울 것이 없다는 자신만만한 태도이다. 도무지 주위를 경계도 안하지만 관심이 없는 듯한 모습이다.
들에는 온갖 동물들이 몰려다니며 풀을 뜯어먹고 사니 음식 걱정은 조금도 없고 사람이 건드리지만 않으면 해치지 않는다고 한다. 사람들이 삼사일 동안 사파리를 해도 사자를 못 볼 수도 있는데 우리는 행운이다. 그곳 끝없는 넓은 들판에 수만 마리가 까맣게 떼를 지어 풀을 뜯어 먹고 있는 와일드비스트는 해마다 다른 나라에서 이곳으로 떼를 지어 강을 건너와 풀을 뜯어 먹고 살이 풍만하게 쪄서 다시 강을 건너 돌아가기를 반복한다고 한다. 그곳 마라 강가에 가보니 강물에 빠져죽는 많은 놈들의 시체가 강물에 즐비하게 떠 있고 그것들을 악어가 먹고 산다고 한다.
하마도 있고 온갖 짐승들이 떼를 지어 다니는 모습이 장관이다. 사자는 두 마리가 다 수놈이고 암사자들은 먹이를 사냥하러 나갔다고 한다. 수놈은 아무 것도 안하고 암사자가 잡아온 것을 먹고 나무 그늘에서 쉬기만 하면 된다고 하니 숫사자 팔자가 제일 좋은가보다. 사자가 나무 그늘 아래에서 자는 모습을 보고 나서, 우리가 여행사 측에서 준 도시락을 다른 나무그늘을 찾아가서 먹고, 강가에서 하마를 구경하고 많은 시간이 지나 다시 사자를 보러 갔는데 사자가 서로 위치를 바꾸어서 편히 쉬고 있고 차들은 구경을 하고 있다. 아마 한 놈은 자더라도 한 놈은 깨어 지키는지 가끔 머리를 들고 잠깐 노려보다가 그냥 다시 눈을 감는데 한 놈은 아주 쭉 뻗고 누웠다. 저들을 깨워보고 싶은 마음이지만 가이드가 조용히 하라고 한다.
가이드가 이곳 원시마을이 있는데 그곳에서 사는 집들을 보여주고 전통적인 춤도 춘다고 하며 손녀를 위해 교육도 된다고 한 사람 당 20불인데 가겠느냐고 해서 기대를 하고 가겠다고 하고 내 카메라 베터리가 다 될까보아 그곳에서 사진을 찍으려고 사진도 잘 안 찍고 그곳으로 가이드가 인도해서 갔는데 빨간 치마 같은 것을 두른 남자들이 춤을 추고 영어를 하는 남자가 나무 그늘에 앉혀놓고 그 나무는 말라리아를 고치는 약이라고 설명하고 여자들이 노래를 하고 같이 촬영을 하고 집을 보여주는데 지붕이 아주 낮아 머리를 숙이고 들어가야 하고 더운 날에 캄캄한 굴속에서 무슨 죽을 끓이고 있고 염소떼와 같이 살고 사진을 같이 찍는데 파리가 아기 얼굴에 잔뜩 달라붙어있고 기대한 만큼의 전통적인 것을 볼 것이 너무 없다. 잠깐 춤을 추고 사진을 찍은 것으로 20불을 받다니 너무 화가 나다. 뒤뜰에 물건들을 잔뜩 늘어놓고 팔고 있는데 지나가는 사람들을 그냥 불러 들여서라도 팔아야 할 것인데 입장료까지 받다니 누구를 봉으로 아나 생각하니 화가 나는 것을 그들이 너무 불쌍해서 참다.
그곳에서 태어나서 수십리 길을 걸어 학교에 다닌다고 한다. 사파리 들판에는 몰래 숨어 들어가 구경을 할 수가 있다고 하고 정작 케냐 사람들은 자기 나라에 있는 사파리 관광도 할 수가 없는 순 외국인들을 위한 관광지이다. 최 집사와 켈리 전도사와 나도 물건들을 조금씩 다 사고 최 집사가 가이드에게 돈을 많이 주니 다음에 꼭 다시 오라고 하다. 케냐는 비가 와야 하고 정치가가 정치를 잘해서 개혁해야 하는데 90%가 기독교도라고 가이드가 말하는데 그렇지는 않을 것 같다.
숲속 좁은 길을 통해 호텔로 들어오는 길이 참 아름답고 이 호텔 서비스맨들 태도도 아주 공손하고 좋다. 우리 여자 넷이 호텔 아래 사막 같은 곳을 배경으로 사진을 찍고 경치를 구경하고 들어와 샤워하고 일지도 쓰다. 7시 30분에 맛있는 뷔페 저녁식사를 주는데 나는 조금만 먹다. 오늘은 들판에서 뛰노는 수많은 동물들을 구경하고 감격하며 너무나 흥분되는 피곤하고 즐거운 하루였다.
8/21(수)-22(목)/케냐(키베라-최대 슬럼가))-쥬리히-부루셀-뉴왁-시애틀
아침 6시에 식사를 하고 6시30분에 호텔을 떠나 나이로비를 향해 달리다가 중간에 화장실이 좋은 가게에 들르다. 화장실을 쓰고 나면 종업원이 곧 들어가 청소를 하는 외국인을 위한 곳으로 물건을 팔기 위해서인 것 같다. 그곳에서도 물건들을 깎아서 사다. 1시에 한국식당에서 정목사님을 만나 순부두, 된장찌개, 김치만두전골 등으로 푸짐하게 식사를 했는데 정 목사님은 선교사센터에서 식사를 하셨다고 조금밖에 안 하시다. 물건들을 가이드 차에서 목사님 차로 다 옮기고 가이드는 가다.
식사 후에 정 목사님이 1987년 여의도 순복음교회로부터 파송을 받고 10년 동안 사역하던 나이로비 근처의 키베라(동부아프리카 최대의 슬럼가)에 가다. 그곳에서 사역하면서 교회를 크게 세우시고 학교도 중학교까지 크게 세우셨다. 그곳에서 많은 목사님과 사모님이 나와 오늘 큰 교회들을 담임하고 있고 임마누엘교회 담임목사도 총회장도 사모들도 다 그곳 출신이라고 한다. 켈리 전도사가 사진을 찍는데 언제 채어 갈지 모른다고 사진기를 깨내지 말라고 한다. 한참을 걸어서 교회까지 가는데 너무나 더럽고 악취가 난다. 가게도 있고 정육점도 있고 길에 휴지는 한 번도 청소를 안 한 듯 쌓여서 악취가 코를 찌르고 더럽다.
그래도 교회만큼은 크고 시원하고 의자도 많고 잘 지었고 학교도 교실도 책상도 좋은 편이다. 가난한 케냐 사람들이 수도 나이로비로 무작정 와서는 이곳 키베라로 몰려들어 수십만의 사람들이 그곳에서 살고 있는데 노인들이 몰려 사는 절망의 슬럼가도 있는데 이곳은 눈이 반짝이는 어린아이들이 많은 소망의 슬럼가라고 한다. 목사님 내외분이 청춘을 바쳐 이곳에서 10년 동안 교회와 학교 사역을 하시다가 지금은 남아공으로 사역지를 옮기셨고 지금은 현지인들이 다 맡아서 하고 있다.
신이 불편해서 딸의 운동화로 바꿔 신고 한참을 걸어 나오는데 땀이 비 오듯 한다. 다시 한국식당에 와서 4그릇을 시켜서 다섯 사람이 먹는데 남기다. 나도 김치 만두전골을 맛있게 먹고 땀을 많이 흘려서 갈증이 나서 찬 사이다를 많이 마시다. 혼잡한 나이로비공항으로 와서 딸과 손녀는 조금 일찍 떠나고 우리 세 사람은 스위스 쥬리히로 떠나는 비행기를 타다. 쥬리히 비행기 속에서부터, 속이 울렁거리더니 계속 화장실을 들락거리며 다 토하고 설사를 하고 음식은 하나도 못 먹다.
쥬리히 공항에 와서 사람들이 많아 길게 줄을 서는데 또 설사가 나려고 해서 사람들을 제치고 맨 앞으로 가서 기계를 통과하고 들어와서 화장실에 가다. 비행기표로 게이트를 물어서 지하철을 타고 입구에 왔는데 남편이 오지 않아 걱정이 되었는데 남편이 와서 반갑게 만나 부르셀 가는 비행기를 타다. 진땀을 흘리며 아슬아슬한 시간들을 보냈는데 만약 화장실이 열악한 케냐에서라면 어쩔뻔했나 생각하고 또 다른 사람이 아닌 내가 이렇게 고생하는 것이 더 나았다고 생각하고 감사를 드렸다.
서 있기도 힘이 드는데 공항마다 모두 짐을 철저히 조사하는 것은 테러를 방지하기 위한 것으로 미국에 들어가기 때문에 더욱 조사를 심하게 하는가보다고 한다. 쥬리히에서 최 집사는 다른 비행기를 타게 되어 헤어졌는데 영어도 잘하고 씩씩해서 마음이 놓이다. 아들이 부루셀에서 뉴왁으로, 뉴왁에서 시애틀로 오는 비행기를 1등석으로 태워 주었는데 좋은 음식으로 서비스를 받지만 나에게는 아무 소용이 없다. 화장실을 자꾸 들락거리니 사람들에게 미안하지만 어쩔 수가 없다.
뉴왁공항에 와서 짐을 조사하는데 짐에서 사과가 두 개 나오다. 500불 벌금을 내라고 하더니 봐준다고 하고 사과는 버리고 통과하다. 아무것도 안 먹어선지 시애틀로 올 때에는 설사가 멎어서 기진맥진하고 잠을 자며 오다. 시애틀 공항에서 최 집사 짐 두개까지 4개를 다 찾고 조금 늦게 오는 최 집사를 기다리다. 일찍 온 딸과 사위와 두 손자가 나오고 손녀는 집에서 정신없이 잔다고 한다. 최 집사님이 나와서 차를 타고 집으로 오면서 나도 정신없이 잠을 자느라고 최 집사님을 내려 주는 것도 몰랐다. 처음 선교에 동참한 최 집사가 너무나 힘든 선교여행을 나에게 같이 가자고 해서 고마웠다고 하며 다음에도 같이 가고 싶다고 하고 선교지에서 불쌍한 아이들을 사랑하고 저들에게 많은 사랑을 아낌없이 베푸는 모습이 참 아름다웠고 딸과 손녀와의 선교여행은 올해 은퇴를 앞두고 한 잊을 수 없는 참으로 행복한 선교여행이었다. 설사로 너무나 고생스러웠던 것도 좋은 추억이 되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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