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 단상(斷想)
[오늘의 법구]
⊙ 살찐 황소와 같은 사람
바른 법을 들어보지 못한 사람은 늙어 가는 황소와 다름이 없네. 그는 그저 살집만 불어났을 뿐 지혜는 도무지 자라지 않네.
人之無聞 老若特牛 但長肌肥 無有智慧 인지무문 노약특우 단장기비 무유지혜
《법구경(法句經)》 『노모품(老耄品)』
------------------------------------------------------------------------------------------------------------------
오늘의 법구는 몸은 자라면서 늙어 가지만 지혜는 저절로 자라지 않는다는 사실을 일깨워 줍니다.
나이가 들고 몸집이 커지는 것과 마음이 성숙하고 지혜로워지는 것은 서로 다른 일입니다. 이 게송의 뜻 을 하나씩 살펴보겠습니다.
1. 게송의 해설
① 人之無聞 老若特牛 인지무문 노약특우
"바른 법을 들어보지 못한 사람은 늙어 가는 황소와 다름이 없네."
사람이 바른 법을 듣고 배우지 못하면, 늙어 가는 황소와 같다는 뜻입니다.
여기서 '문(聞)'은 단순히 소리를 듣는다는 뜻이 아닙니다. 부처님의 가르침을 듣고 배우며, 그 뜻을 깊이 사유하여 자신의 삶에 적용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특우(特牛)'는 '황소'를 말합니다. 황소는 세월이 흐르면서 몸집이 커지고 살이 찝니다. 그러나 사람은 몸 만 성장하고 나이만 먹는다고 해서 저절로 지혜로워지는 것은 아닙니다.
불법을 듣고 자신을 돌아보며 그릇된 마음과 행동을 고쳐 나가지 않는다면, 오랜 세월을 살아도 어리석음 에서 벗어나기 어렵다는 경책입니다.
② 但長肌肥 無有智慧 단장기비 무유지혜
"그는 그저 살집만 불어났을 뿐 지혜는 도무지 자라지 않네."
다만 살과 몸집만 불어날 뿐, 지혜는 없다는 뜻입니다.
육신은 세월에 따라 성장하고 늙어 갑니다. 그러나 지혜는 단순히 세월이 흐른다고 생기는 것이 아닙니 다.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고 고칠 줄 아는 마음, 욕심이 일어날 때 이를 알아차리는 마음, 남의 고통을 헤아리 고 자비를 베푸는 마음을 길러야 비로소 지혜가 자랍니다.
아무리 오래 살고 많은 경험을 쌓았더라도 자기 생각만 옳다고 고집하고, 자신의 허물을 보지 못하며, 탐 욕과 성냄에 끌려다닌다면 지혜의 성장은 멈추어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 게송은 단순히 지식을 많이 쌓으라는 말이 아니라, 배운 법을 통해 자기 자신을 변화시키라는 가르침입니다.
2. 이 게송의 대의(大意)
이 게송의 큰 뜻은 다음과 같습니다.
사람은 나이가 들고 육신이 성장한다고 해서 저절로 지혜로워지는 것이 아닙니다. 바른 법을 듣고 배우며, 그 가르침에 비추어 자신의 마음과 행동을 끊임없이 살피고 고쳐 나가야 합니다.
배움이 실천으로 이어지지 않는다면 세월이 아무리 흘러도 어리석음은 그대로 남게 됩니다. 그러므로 육 신의 성장보다 지혜의 성장을 중요하게 여기고, 평생 배우며 자신을 닦아야 합니다.
3. 이 법구가 우리에게 주는 교훈
첫째, 나이가 많다고 지혜로운 것은 아니라는 것입니다.
오랜 세월을 살면서도 같은 잘못을 반복할 수 있습니다. 반면 젊은 사람이라도 자신의 허물을 살피고 남 의 말을 겸허히 받아들인다면 지혜롭게 성장할 수 있습니다.
나이를 자랑하기보다 그 세월 동안 얼마나 마음이 맑아지고 행동이 바르게 변했는지를 돌아보아야 합니 다.
둘째, 배움은 실천으로 완성됩니다.
경전을 많이 읽고 불법에 관한 지식을 많이 쌓더라도 탐욕과 성냄과 교만이 줄어들지 않는다면 아직 배움 이 삶 속에 충분히 뿌리내리지 못한 것입니다.
법문을 들은 뒤에는 자신에게 물어야 합니다.
"오늘 나는 어제보다 조금 더 겸손해졌는가?" "화가 날 때 성내기 전에 한 번 더 살폈는가?" "남의 허물을 지적하기 전에 나의 허물을 돌아보았는가?" "내가 배운 자비와 지혜를 실제 행동으로 옮겼는가?"
이러한 점검이 바로 들은 법을 자신의 것으로 만드는 수행입니다.
셋째, 늙어 감을 한탄하기보다 지혜를 기르는 데 힘써야 합니다.
몸은 늙어 가고 기억력과 기력도 예전 같지 않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자신의 마음을 살피고, 잘못을 참회 하며, 다른 사람을 이해하고 배려하려는 수행은 계속할 수 있습니다.
육신의 쇠퇴가 반드시 마음의 퇴보를 뜻하지는 않습니다. 오히려 지나온 삶을 돌아보며 아집을 내려놓고 자비를 넓혀 간다면 노년은 지혜가 깊어지는 시기가 될 수 있습니다.
4. 오늘의 수행에 비추어 보면
우리가 매일 경전을 읽고 법문을 공부하는 까닭도 여기에 있을 것입니다.
경전의 문장을 기억하는 것만으로는 부족합니다. 그 말씀을 거울삼아 오늘의 내 마음을 살피고, 잘못을 발견하면 고치며, 작은 선행이라도 실천해야 합니다.
특히 탐욕과 교만을 경계하고, 성냄이 일어날 때 알아차리며, 남을 탓하기 전에 먼저 자신을 돌아보는 일 이 중요합니다.
그렇게 하루하루 자신을 닦아 간다면 몸은 늙어 가더라도 지혜와 자비는 더욱 깊어질 수 있습니다.
불교에서 참된 배움은 단순히 많이 아는 데 있지 않습니다. 아는 만큼 행하고, 행하는 가운데 자신의 어리 석음을 발견하며, 발견한 만큼 고쳐 나가는 것에 있습니다.
5. 마무리 정리.
밥은 육체를 살찌우지만 법은 마음을 살찌웁니다.
밥을 먹어 건강을 유지하고 법을 잘 섭취하여 지혜를 길러야 하겠습니다.
그런데 밥만 먹을 줄 알고 바른 법을 들어보지 못한 사람은 딱하기 짝이 없는 사람입니다. 이런 사람은 먹이를 주면 주는 대로 먹어서 살만 찌우는 저 황소와 다를 바가 없습니다.
생각 없이 늙어 가는 살찐 황소처럼 지혜 없는 사람은 어리석기 짝이 없는 일입니다. 육체를 살찌우는 밥 처럼 부처님의 진리의 말씀을 잘 듣고 배워서 마음을 살찌게 하고 지혜를 무럭무럭 자라게 해야 합니다.
《발심수행장(發心修行章)》에서 원효 스님은 탄식하셨습니다.
"밥을 먹어 주린 창자 달랠 줄은 모두 아나[共知喫食而慰飢腸] 법을 배워 어리석음 고칠 줄은 모르도다[不知學法而改癡心]."
누구나 밥을 먹어 주린 창자를 위로할 줄은 모두 아나 법(法)을 배워 어리석음을 고칠 줄은 모른다는 이 말 씀은 지금도 여전히 변함없이 그대로이니 참으로 안타까운 일입니다.
지혜가 없으면 탐착만 더해가는 법이니 생사의 길을 면할 수 없는 것입니다. 생사윤회의 길을 벗어나는 길은 오직 법을 배워서 지혜가 자라게 하는 길 밖에 다른 길이 없는 것입니다. 어이 해서 지혜를 기르지 않고 살만 찌우려 하는가! 반성할 일입니다.
법을 배우는 까닭은 남의 허물을 더 잘 찾아내기 위해서가 아니라 자신의 허물을 더 잘 알아차리기 위해서 입니다. 지혜가 자랄수록 남을 함부로 판단하는 마음은 줄어들고, 자신의 부족함을 인정하는 마음과 타인 을 향한 자비는 커져야 합니다.
또한 한 가지 덧붙이자면, 나이가 들어 육신이 쇠약해지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지만 마음의 성장은 나이 만으로 저절로 이루어지지 않습니다. 매일 자신을 살피고 잘못을 고치며 선한 행동을 실천할 때, 세월은 단순히 흘러가는 시간이 아니라 지혜를 익히는 수행의 시간이 됩니다.
🌿 밥은 육체 살찌우고 법은 마음 살찌우네.
몸 기르는 밥만 먹고 법을 배움 모른다면
지혜를 기르지 않아 살찐 소와 다름없네.
몸은 늙어 가더라도 지혜는 자라는 법.
바른 법을 들었으면 실천을 귀히 여겨
날마다 마음 살피며 자비 지혜 길러 가리.
몸이 늙는 것은 자연의 이치이지만, 마음을 얼마나 닦아 가는지는 우리의 수행에 달려 있습니다. 경전을 읽고, 자신을 살피고, 잘못을 고치며, 일체중생을 향한 자비를 넓혀 가는 삶이라면 하루하루가 지혜를 기르 는 시간이 될 것입니다.
오늘도 불보살님의 은은한 가피 속에 심신의 안정과 건강과 안전을 생각하며, 자애와 연민, 복과 지혜를 닦아 통찰지를 갖추고 정리를 따라 정심정행하며, 음식과 법식을 골고루 섭취하며 활발발한 한 주 열어 가시기 바랍니다.
감사합니다. _()_ _(())_
향기로운 불교 _(())_
|
첫댓글 감사합니다......_()_
감사합니다. _()_ _(())_