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학동안의 저의 체험을 함께 나누고 싶어 글을올립니다. 어떤 문학적인 기교는 없으니깐 편하게 읽어 주세요...^^
-서울 광진구 구의동 세명무역 방문 수기-
학부 4년 고권진 베드로
방학 후, 예정보다 하루 늦게인 6월 24일날, 오전 기차에 몸을 실었다. 학기중 계획했던 대로 공장에 취직을 하고, 현장에서 직접 몸을 부대껴 보기 위해서다. 새로운 세상에 대한 막연한 설레임과 '과연 잘 해낼 수 있을까?' 라는 부담감이 절묘하게 섞여 나 자신을 흥분케 했다. 다행히 동기 신학생 한 놈과 함께 할 수 있어 심적인 부담감은 덜 했다.
우리의 숙소는 혜화동 삼선교의 사랑의 선교 수사회로 정해졌다. 마더 데레사의 정신으로 살아가는 세 분의 수사님들과 함께 할 수 있어 더욱 좋았다. 하지만 기분 좋은 감정은 잠시 일뿐... 우리 앞에 놓여진 일정들이 결코 수월한 것들이 아니었기 때문이었다.
우리들의 대략적인 일정은 다음과 같았다. 오전 5시 정각에 기상을 하고 5시 20분에 수사님들과 함께 성무일도를 정성스레 바친다. 그리고 오전 6시 미사를 혜화동 성당에서 드리고(숙소와 5분거리이다) 아침식사를 한다. 아침식사는 수사님들의 식단과 맞추어야 했는데, (얻어먹는 관계로) 거의 대부분이 라면이었다. 이런 소박한 식단의 의미는 일종의 수련의 의미도 내포하고 있고, 가난의 삶을 몸소 겪으려는 정신도 배어있는 듯 했다. 이런 상황속에서 우린 한달의 대부분을 라면과 친구하며 지내야 했고, 오랜 기간동안의 노하우가 축적된 수사님들의 위와 경쟁해야 했는데, 한 일주일 후에는 식사후 5분 내에 화장실로 직행하는 것이 습관이 되어 버렸다.
아침 식사후 설거지는 나와 동기놈이 맡기로 했다. 얻어 먹는데에 대한 최소한의 보답이라고나 할까.. 설거지 후 오전 8시에 문들 나선다. 일자리가 광진구 구의동에 있는데 지하철과 도보 시간을 합하여 약 40분이 걸렸고, 출근 시간이 9시까지였기 때문이다.
우리가 취직한 곳은 아주 조그마한 공장(※참고로 임금은 시간당 남자인 경우는 이천원이고 여자인 경우는 천팔백원이었다.) 곧 세영업종이었다. 보석 주머니를 만들어 수출하는 공장이었는데, 그 규모에서는 예측하기 힘들게도 20여년이나 된 공장이라고 했다. 정직원수는 5명이지만, 실제로는 두당 10명분의 노동을 수행하는 것 같았다.
우리에게 맡겨진 업무는 폭은 2미터정도에 길이는 수십미터되는 천을 규격에 맞게 재단하는 일과 포장된 상품을 그 수에 맞게끔 수출용 박스에 담고, 선적까지 완료시키는 그런 일들이었다. 업무 환경이 너무 습한데에다 주변까지 지저분해서 처음에는 그 매쾌한 냄새에 수천가지의 인상이 오가기도 했지만, 그와 같은 것들은 금새 익숙해졌고, 나중에는 사장님의 눈을 피해서 잠깐 잠깐의 낮잠도 잘 수 있게끔 요령도 생기게 되었다.
오전 9시부터 일을 시작해서 점심시간은 부정확하게 정해져 있었는데, 이르게는 12시 반정도에 먹거나 늦게는 두시 정도에 먹기도 했다. 일의 양이 많아서 항상 허기 졌는데 불규칙한 점심시간이란 여간 고생스러운 것이 아니었다. 그러나 한 가지 다행인 점은 식당 아주머니께서 밥을 달라고 하는데까지 푹푹 퍼주셔셔 다행이었다.
단순 노동의 시간은 계속 되고, 똑같은 눈짓, 손짓, 발짓이 교차되면서, 안락한 공간으로 돌아갈 수 있는 기쁨의 시간은 오후 7시에서 9시 사이였다. 실제적으로는 7시가 퇴근이었지만 대부분 잔업으로 말미암아 8시-9시의 퇴근이 일반적이었다.
집으로 돌아오면(저녁은 우리들이 알아서 해결을 해야했다. 수사님들의 저녁시간과 맞지 않았기 때문이다) 대개 10시정도, 우리 각자의 몸은 녹초가 되어있었고, 피곤에 가득한 얼굴이 영력할 수밖에 없었다. 그에 엎친데 덮친겪으로 수도원에 세탁기가 없는 관계로 손빨래를 해야했고, 겨우겨우 샤워까지 마치면 11시정도가 되었다. 모든 일과가 마친후 내일을 위해서 되도록 빨리 잠을 청해야 했다. 아니 금새 골아 떨어졌다는게 정확한 표현일 것 같다.
달콤한 주말에는 문화적인 혜택을 누리고 싶었지만 몸이 말을 않들어서 대개 잠으로 충당했다. 또한 주일미사는 겨우 겨우(의무감에 차서 성당으로 발길을 옮긴 적이 많았다) 드렸는데, 그와 중에도 느낀 것은 꽤 있었다. 특히 혜화동 성당의 균형잡힌 모습에 깊은 감명을 받았다. 외적인 훌륭함도 있었지만 정작 감동을 준 것은 신자들 각각의 신심깊은 모습과(특히 새벽미사 때의 신자분들의 모습속에서 이런 면이 잘 드러났다) 젊은 신부님들의 참신한 성무집행의 모습들은(영성체 못하는 어린이들에게 안수로 대체한다던지, 미사 중에 속으로 외우는 기도문을 신자들도 함께 할 수 있게끔 유도하는 모습등), 그리고 청년들의 활발한 모습들이었다.
이번 체험은 실로 힘든 것들이었다. 하지만 그 만큼 느낀 바도 많고, 얻은 것도 많기에 고귀했던 체험이라 생각된다. 이미 지나왔기 때문에 다소 쉽고, 간략하게 적을 수 있었지만, 내가 체험했던 그 순간순간은 많은 인내력과 절제를 요구했었다. 또한 현 시대에 우상으로 떠오르는 돈, 바로 그 물적인 것의 가치에 대해 다시 고려해볼 기회가 된 것이 나에게는 큰 수확이라면 수확이라 말할 수 있을 것 같다. 물론 그 답이 완전히 선 것은 아니지만 조금이나마 몸으로 느껴볼 수 있었고, 이해해 볼 여지라도 있으니 어찌 큰 이득이 아니겠는가..
정말 재미있게도 세상의 물질적인 풍요를 버리고 가난함을 찾아 가는 수사님들, 물적인 것을 통하여 행복함을 얻으려 하는 내 또래의 노동자들, 이 사이에 서서, 그리고 한달 동안의 그 삶들 속에서 예수님께서는 과연 나에게 무엇을 말하려고 하셨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