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블 카운티를 다녀와서
청평에서 맞은 아침은 상쾌했다. 어제 저녁 밤길을 꼬불꼬불 갈 때는 멀미를 했지만, 환한 아침에 되짚어 나 올 때는 저 길을 다 갔나 싶을 정도로 아슬아슬한 논두렁길이었다.
용문사의 2km 산책길은 동장군을 몰아내는 봄기운이 땅에서 솟듯이 우리 기분을 속에서 업(up)시켜 주었다. 약수물 한 바가지와 찻집 따뜻한 벽난로 옆에서 마신 약차는 몸에 약되는 기운보다는 즐거움에 약이 되었다.
버스를 타고 한시간을 걸려 수원에 들어섰다. 도시 들머리에서 본 하늘을 찌를 듯한 건물들은 우리를 다시 긴장시키기에 충분했다. 찬물에 세수해서 어제 저녁에 먹은 술이 깨듯 달콤한 여행에 화들짝 깨우는 간판이 스쳐지나갔다. 노블 카운티. 귀족의 마을? 어떤 간 큰 사람들이 자칭 자신들이 귀족이라고 그런 간판을 달아 놓을까, 그럴리는 없을 거라고 달래며 다음 방문지를 기다렸다.
한시간을 걸려서 늦은 점심을 먹고, 3시는 다 되어서 버스가 서는 곳이 바로 그 귀족의 마을, 노블 카운티였다. 출입문을 들어서 모형도가 있는 안내실에 들어가는 몇 걸음에도 이미 범상치 않는 분위기를 느끼기에 충분했다. 반들반들한 각종 대리석바닥, 자연채광을 최대한 활용한 밝은 분위기, 시야를 탁 트는 넓은 공간, 고급스러운 재질과 은은한 색상으로 준 편안한 느낌 등. 바깥에는 겨울이라 그렇지 다른 계절에 오면 갖가지 꽃으로 더 아름다운 정경을 볼 수 있단다.
6만여평의 대지에 건물은 주거용 2동, 치료동, 스포츠 센터 등으로 총 6만여 평이다. 2인 기준으로 최고 9억 원에서 1인 기준으로 3억 원의 보증금이 있어야 들어 올 수 있다. 매달 생활비로 최고 300만원에서 130만원씩 내야 한다. 그야말로 귀족들이 아니면 올 수 없는 곳이다.
귀족이란 누군가? 중학교에 들어가면서 배운 역사에서 귀족이란 자신들의 기득권을 지키기 위해 백성을 억압하고, 국가를 지배하고, 종교를 이용하던 부류들이다. 현대에 들어와 노블리스 오블리제를 외치기 전까지는 아무도 이들의 전횡을 막을 수 없었던 것이 사실이다. 노블리스 오블리제도 민주화된 선진국의 이야기이지, 우리 나라에서는 어림도 없는 이야기이다. 우리 나라에는 귀족이 없다.
이 귀족의 마을에 들어온 이들이 귀족이라면 돈이 있어서 들어 온 자들일 뿐이다. 한국의 귀족이란 그럼 돈만 있으면 되는 것이다. 한국의 부자들은 돈이 많은 사람일뿐이지 존경받는, 의무를 다하는 귀족이 아니다. 근대에서 현대를 넘어 오면서 우리 나라의 역사를 얼핏 살펴도 역사적으로 존경받는 사람이라면 부자가 될 수 없는 상황이었기 때문이다. 일제 강점기에 독립을 위해 목숨을 바친 애국선열은 재산과 목숨을 바쳤고 그 후손조차도 역사적으로 올바른 평가를 받지 못했기 때문에 가난만 물려받았을 뿐이다. 일제시대를 거치면서 부자가 된 자들은 일본에 야합한 세력이거나 조국을 팔아먹은 자들이다. 매국노의 후손들이 자기 조상의 재산을 되찾겠다고 소송을 제기하는 어처구니없는 행태를 벌이기도 하는데, 이런 귀족들이 노후를 여기서 편안히 보낸다니 가히 기가 찰 노릇이다.
해방이후 개발독재시대를 거처 군사독재시대의 부자들이란 독재의 부산물을 먹고 자란 반통일적이고 반민중적 부자일 뿐이다. 개발이란 이름으로 땅 투기를 정부 시책으로 시행하여 도시를 확장할 때 부동산 투기로 돈을 번 자들이다. 서민들의 내 집 마련의 꿈을 산산 조각나게 한 부동산 투기꾼들이 졸부가 된 것이다. 독재자들이 분단을 빌미로 장기집권을 하거나 쿠데타를 일으킬 때 이들은 권력에 유착하여 졸부가 되었을 뿐이다. 귀족이라 자칭하는 자들은 대부분 이들 부류이거나 혹은 아류들이다.
문민정부가 들어서면서 부자가 된 자들은 노동자들에게 돌아가야 할 몫을 주지 않고, 정치자금으로 제공하여 기업을 유지하고 부를 늘려 간 자들이다. 기업의 도의를 다하기는커녕 노동자들을 착취한 반노동자적 악덕 자본가이고, 분배의 정의를 실천하지 못한 천민자본주의의 주역들이 대부분이다. 이들을 위해서 이런 화려한 시설이 기다리고 있다니, 짧은 설명을 듣는 순간에도 뇌신경들 여기저기서 전기합선이 일어났다.
10층에 있는 견본방에 갔다. 안내실에서부터 실내 통로를 통해 견본방까지 여러 문을 통과하는 동안 번번이 출입증을 감지장치에 확인을 해야 자동문이 열렸다. 출입증이 없으면 접근하기조차 어려웠다. 바닥은 모두 대리석이 아니면 카페트였다. 견본방은 실평수 35평 2인실로 보증금이 10억 가까이 되는데, 전망이 좋아 최고 비싼 가격이란다. 최고급 가구와 목욕시설을 갖추고 있었다.
어제 저녁에도 뉴스에서 현대자동차 협력업체에서 해고된 일용직 노동자가 공장앞에서 몸에 기름을 붓고 분신했다는 소식을 보았다. 유서에는 일용직 근무자가 상근직 근무자에 비해 받는 불이익은 100가지가 된다고, 내 한 몸 불살라 이 땅에 일용직 근무자가 없어지기를 바란다고 했단다. 이 집을 짓는데도 일용직 근무자의 땀이 베어 있으리라. 이 화려한 집을 짓는 건축자제를 만들다말고 가족을 생계를 걱정해 눈물 흘리는 근로자들은 마음을 아는가 모르는가?
돈 없는 것이 죄지, 천한 것들은 접근도 하지 말라고, 출입문 곳곳에 잠금장치를 해 놓고, 감시카메라를 통해 구석구석에서 살펴보고 있다고, 세상을 향해 귀족만 사는 마을이라고 울타리를 높이 쳐 놓았다.
치료동에는 병이 들면 무엇이든지 치료해 준단다. 가 보지는 못했다. 스포츠센타는 각종 문화를 즐길 수 있도록 구비해 놓았다. 수영장, 게이트볼 등 운동과 서예실, 도서실, 컴퓨터실 등 세상에서 생긴 것이라고는 다 있는 모양이다.
문득 스치는 풍경이 있다. 갈 곳이라고는 마을에서 기름 사 불 넣어주는 마을회관 방 한 칸에서 할머니 할아버지들이 함께 담배연기 자욱히 겨울을 나야하는 예산 지곡리 어른들이 생각났다. 앞마을 보건소에라도 가려면 칼바람에 10리를 걸어야 하는데, 겨우내 병치레를 해도 봄이 되면 그 몸으로 또 농사를 지어야하는 허리 꼬부라진 극노인들 말이다. 세상에서 이런 것들 구경이나 했을까? 그렇게 농사를 지어도 해마다 빚만 늘어나는데, 그러면 도대체 누가 득을 보는지 모르겠다는, 평생 농사를 하늘의 뜻으로 알고 살던 사람들 말이다.
스포츠센타는 지역주민에게 개방하여 회원으로 등록하면 누구나 이용 가능하단다. 국제 회의장이란 문패도 보았다. 어린이들을 위한 강좌도 마련하여 이곳을 노인들이 가르치기도 한단다. 얼른 생각하기는 지역사회에 기여하는 부분도 있는 듯하지만, 지역을 위한 것보다는 지역 사람들이 와 줌으로 얻는 젊은이와 어린이들이 풍기는 활력이 더 필요했을 것이다. 누적된 적자를 매울 계산도 있을 것이다. 부르조아적인 사고가 귀족의 마을이라고 뻔뻔히 간판을 내거는 판인데, 노블리스 오블리제에 대한 견해도 일천한 지경인데, 지역사회의 공헌이라는 생각을 할 리가 없을 것이다.
이렇게 최고급으로 지은 것은 우리 나라 노인복지의 수준을 한 차원 높이려는 목적이 있다고 했다. 그러기에는 너무 규모가 컸다. 아니 그렇다고 인정하자. 그러나 한가지 용납하지 못할 것이 있다. 이름은 사상을 반영하는데, "귀족의 마을"이라고 이름 붙인 것은 근본 사상이 반역사적이요 반민중적이다. 하루에도 몇 명씩 굶어 죽어 가는 북한의 어린이들을 생각해 보라, 50년을 생이별한 이산가족을 생각해 보라. 귀족입네 할 수 있는가? 이름을 달리 부른다고 뭐 달라지는 것이 있느냐지만, 말 한마다에 천냥 빚을 갚는다지 않는가?
버스를 탔다. 높이 달린 노불 카운티 간판이 내려다보는 신갈저수지를 돌아 공주로 향하는 길은 망치로 뒤통수를 얻어맞고 쫓겨가는 기분이었다.
우리 집 카페에도 놀러 오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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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성교회이야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