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 바를 ‘정(正)’자의 인연
『벽암록』제42칙에 방거사(龐居士) 오도송이 실려 있다.
十方同聚會 여러 곳에서 온 사람들이 함께 모여서
箇箇學無爲 모두가 무위를 배우고 있네.
此是選佛場 바로 이곳이 부처를 뽑는 곳이니
心空及第歸 마음 비워야 급제하여 고향 가리라.
방거사는 마조스님의 제자다. 그는 비록 재가의 몸이었지만 그 안목은 재가와 출가의 구분을 넘어섰다. 일대의 선지식은 역시 제자를 많이 길러야 하고 그 중에서도 깨달은 제자가 많아야 한다. 이런 점에서 중국 선불교를 통털어 마조스님만큼 특출한 분도 드물다. 회하에 기라성 같은 선의 명안종사들이 속출하여 선법을 잇고 그 문풍을 후대에까지 드날렸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출가자는 누구나 나이가 들면 상좌를 생각하지 않을 수 없는 일이다. 내가 스님 회화에서 지낼 때, ‘혹시 나에게도 앞으로 상좌가 생기면 그 이름을 어떻게 지울까’ 하는 생각이 문득 떠올랐다. 나는 그런 생각을 가슴에 품고 굴리면서 무던히 며칠을 지냈다.
혼자서 줄곧 이런저런 생각을 해도 끝내 속 시원한 방안이 떠오르지 않아 결국은 스님께 여쭙기로 했다. 마땅한 생각이 떠오르지 않기도 했지만 그 점보다는 나는 스님의 가호와 축원을 받고 싶었다. 비록 누가 어떤 인연으로 나의 상좌가 된다 하여도 나에게 뭘 배우는 것보다 스님의 높은 가르침을 받는 인물이 되었으면 하는 바람 때문이었다.
생각이 거기까지 미친 순간 나는 한달음에 스님께 달려갔다. 마치 ‘배지도 않는 아이를 낳는다’는 말과 같이 있지도 않는 상좌 이름이 무엇이 급해 그렇게 서둘렀는지 지금 생각해도 모를 일이다. 어떻게 보면 그때의 내 언행이 철부지 않아서 우스꽝스러운 감도 없지 않다.
그러나 자초지종 내 말을 다 듣고 난 스님은 빙그레 웃으면서도 매우 진지한 표정을 지어 보였다. 그러면서 묵묵히 한동안 무엇을 골똘하게 생각했다. 그렇게 한참 시간이 지난 뒤 운을 뗐다.
“이봐, 송암이 앞으로 상좌를 뒀을 때, 그때까지 내가 살아 있으면 같이 의논하면서 이름을 지으면 되겠지만 그때까지 내가 살아있지 않을 경우를 생각해서 미리 이름이라도 준비해 두는 것이 좋겠지. 그렇다고 있지도 않은 상좌 이름을 앞질러 지어놓을 수도 없으니 이렇게 하면 어떨까?
말하자면 내가 한 글자 먼저 짓고 거기에 따라 나중에 송암이 또한 글자를 지으면 되지 않을까? 어때, 그렇게 할까! 좋다면 내가 먼저 앞 글자를 지어 주지.”
그러고는 동의를 구하는 듯 조용히 나를 바라보았다. 사실 나는 내 스스로의 행동에 대해 경솔하다는 속생각을 하면서 앉아 있던 터였는데, 스님의 사뭇 진지한 태도로 말미암아 나도 그만 심각해지고 말았다. 마치 내 상좌가 밖에서 이름을 기다리기라도 하는 것 같은 느낌마저 들었다.
“스님께서 한 글자라도 지어 주신다면 그보다 더 영광스럽고 자랑스러운 일이 어디 있겠습니까? 저는 평소 스님의 사상을 존경하고 신봉하기 때문에 저뿐만 아니라 저의 상좌 대에 가서도 스님의 사상을 왕성하게 연구하고 실천하여 길이 이어 갔으면 하는 심정으로 청을 드렸던 것입니다.”
스님 역시 진지했지만 나의 이 말을 듣고는 더욱 진지해지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물론 내 생각에 지나지 않지만 스님의 표정에는 나의 말을 대견하게 여기는 기색이 역력했다.
“그래 좋다. 나는 송암의 상좌 이름 첫 글자를 부처님의 정법안장(正法眼藏)에서 뽑으려고 한다. 내가 생각하기에는 부처님의 무든 가르침 중에서 바를 ‘정(正)’자만큼 중요한 글자가 또 어디 있겠는가. 앞에서 말한 대로 정법안장의 뜻도 있지만 팔정도를 총괄하는 뜻도 있지 않는가. 그래서 나는 정(正)자가 참 좋다는 생각이 드는데 송암은 어떤가? 이 다음 송암의 상좌가 한 사람 두 사람 늘어나면 그때 ‘정’자를 돌림자로 하여 차례로 쓰면 되지 않을까. 물론 뒷 글자는 그때그때 송암이 짓고 말이야.”
이런 과정을 거쳐 미래의 내 상좌 이름의 앞 글자를 불광사 시절 스님께서 친히 정해 주셨다. 나는 그날 이후 스님과 무슨 비밀 약조라도 한 사람처럼 다른 사람들에게는 일체 입 밖에 내지 않고 가슴 깊숙이 정자를 간직했다. 왜냐하면 불광의 정통성을 나에게 맡기는 것이라는 생각까지 지레 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런 일이 있은 다음부터는 혹시 어디 길을 가다가도 바를 정자를 보면 발걸음을 멈추고 그 자리에 서서 유심히 살펴보고 여러 번 뜻을 음미하곤 했다. 그만큼 바를 정자는 나에게는 소중한 글자가 되었다.
그로부터 세월이 한참 지났다. 평소 상좌를 둬야겠다고 기다린 것은 아닌데, 어느 날 설곡스님의 소개로 행자 한 사람이 찾아왔다. 그동안 가슴속에 고이 간직했던 바를 정(正)자를 쓸 기회가 드디어 찾아온 것이다. 나는 조금도 머뭇거리지 않고 첫 상좌 이름을 정안(正眼)이라고 지었다. 물론 앞 글자 ‘정’은 스님께서 지으신 글자이고 뒷글자 ‘안’은 내가 지은 것이다. 불광의 바른 안목이 되라는 뜻으로 말이다.
2540년 4월 16일, 이석주라는 청년은 나를 의지하여 종단에서 주관하는 행자 교육원의 모든 과정을 마치고 사미가 되어 이곳 도피안사로 왔다. 그때 나는 정안 사미를 앞에 앉혀 놓고 잠깐 내 지난날을 돌아보았다. 열아홉 살 어린 나이로 사미계를 받던 때가 불과 엊그제 같은데, 벌써 상좌를 두다니 실로 금석지감을 금할 수가 없었다. 출가자로서 자랑스러운 생각보다는 알 수 없는 자괴감이 일었다. 그것은 그동안 내가 별로 한 일 없이 절밥만 무던히 축냈다는 생각과 열심히 공부하지 않고 세월만 허송하지 않았나 하는 아쉬운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었다.
나도 몰래 세월이 엄청 지나갔다는 이 부동의 증거 앞에 스스로를 가만히 추슬러 보았다. 첫 상좌를 앞에 앉혀 놓고 말이다. 상좌를 앞에 앉혀 놓았다는 것은 분명 내 나이가 든 것과 세월이 많이 흘러갔다는 틀림없는 사실을 웅변해 주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아직 도를 얻지 못했다. 매우 안타까운 일이다. 내 스스로 허송한 하많은 세월을 까맣게 잊은 채, 처음 출가할 때의 어린 기분과 철없는 낭만으로 지금껏 살고 있다. 그런데 벌써 상좌를 두다니, 새삼 막중한 무게를 느낀 순간이기도 했다.
그 이틀 뒤 4월 18일이었는데 음력으로는 삼월 초하로, 도피안사 천주법회 날이었다. 아침 일찍 공양을 끝내고 상좌 정안을 데리고 산 너머 불광원에 계시는 스님께로 향했다. 구불구불한 논두렁 밭둑길을 상좌를 데리고 걸었다. 싱그러운 봄날, 아침 공기를 가르며 불광원 광진당 문을 조용히 열고 안으로 들어갔다. 습관적으로 벽에 걸린 시계를 바라보니 오전 7시 30분이었다. 내가 먼저 스님께 문안을 올린 뒤, 상좌 정안에게 예배 올리도록 했다.
상좌 둔다는 말씀을 미리 드리지 않았기에 무척 계면쩍었다. 늦었지만 그 자리에서나마 자초지종을 설명했다. 상좌에 대한 법명, 나이, 공부, 등을 여쭈어 올렸다. 나의 보고가 끝나자 사전에 시키지도 않았는데 상좌 정안이 엄숙하게 스스로의 다짐을 제법 큰소리로 여쭈었다.
“노스님의 문손(門孫)이 된 것을 영광스럽게 생각합니다. 부족한 저를 어여삐 여기시고 받아 주시어 감히 몸둘 바를 모르겠습니다. 또한 저에게 출가의 길을 가도록 허락하시고 인도하심에 뭐라고 감사한 말씀을 드려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앞으로 열심히 수행하여 문중을 더욱 빛내고 부처님의 은혜를 갚겠습니다.”
정안의 이야기가 다 끝날 때까지 나는 조마조마한 마음을 가지고 있었다. 다행히 별 어긋나지 않게 말을 맺자 안도를 하고 스님을 바라보았다. 가만히 듣고 계시던 스님은 한동안 더 침묵으로 있다가 마치 무엇에 새기기라도 하듯 찬찬히 말씀했다.
“경사다. 출가는 그대 자신의 경사고 세속 집안의 경사며 우리들 모두의 경사다. 오직 기쁜 삶이 되도록 노력하고 또 노력해야 한다. 출가자는 모든 사람들에게 헌신하는 삶이 되도록 열 배 백 배 노력해야 한다. 세속인들은 자기 자신이나 가족들의 기쁜 삶을 위해서 살지만 우리 출가자들은 일체 중생의 기쁜 삶을 위해 살아야 한다. 그러한 큰 서원이 있으면 기필코 밝은 광명을 세간에 줄 수 있고 진리의 등불을 환히 밝힐 수 있을 것이다.”
스님은 이 말씀을 하는데도 몹시 힘들어 했다. 그러나 새로 본 상좌를 위해 있는 힘을 다해 뜻깊은 말씀을 그와 나의 가슴에 새겨 주셨다.
그 후 정안이 이 말씀을 잘 기억하고 있는지 여태껏 확인하지 않았다. 아마 가슴에 깊이 새기고 있을 것이란 생각을 한다. 출가하여 옹사로부터 출가의 공덕을 들었으니 그것이 어찌 흔한 일이겠는가? 그로부터 한참 후, ‘시봉일기’를 읽고 찾아온 정견이 또 사미가 되어 두 번째 바를 ‘정’자를 쓰니 스님의 노고가 헛되지는 않은 것 같다.
아무튼 출가자는 스스로의 공부도 잘 해야 하지만 상좌를 두어 부처님의 혜명(慧命)이 끊이지 않게 하는 것도 매우 중요한 일이라고 생각한다. 그것은 불조의 은혜를 갚는 여러 가지 일 중에서 단연 으뜸가는 일이기에 말이다. 스님의 은혜, 손상좌의 손에 들려주신 법의 등불. 정법안장의 바를 ‘정’자는 이렇게 불광 문중에 등장했다.
광덕스님 시봉일기 4 위법망구, 송암지원, 도피안사
첫댓글 상좌를 두어 법을 이어나가야 하는 의미를 다시 공부하였습니다. 큰스님께서 한 자를 지어 주심은 바로 그 법이 계속 이어짐을 의미하겠지요. 중생의 기쁜 삶을 살기 위해 살아야 한다는 손상좌에게 바라는 마음 또한 자비하십니다.
정법안장의 뜻도 있지만 팔정도를 총괄하는 뜻의 정(正)자를 깊이 새기겠습니다.
고맙습니다. 마하반야바라밀 _()()()_
고맙습니다..마하반야바라밀.._()()()_