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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송암 함태영 목사. | |
함태영(咸台永 1873.12.11~ 1964.10.24) 목사는 독립운동가, 법조인, 정치인으로 호는 송암(松岩)이다. 함북 무산(茂山)에서 함우택(咸遇澤)의 아들로 출생하였다. 어려서부터 한학을 배웠고 11세 때 서울로 이주하였으며, 1895년 한국 법관 양성소를 제1회로 졸업하였다. 이후 한성지방재판소 검사시보(檢事試補)를 위시하여 판사, 검사, 고등재판소 검사, 평리원(平理院) 검사, 대심원(大審院) 판사를 거쳐 통감부 시대에 경성공소원 판사, 경성복심법원 판사를 1907년까지 역임하였다. 벼슬이 종6품(從六品)까지 이르렀던 그는 사법권의 독립을 위해 희생적인 노력을 한 것으로 기록되고 있다. 그가 판사로 있을 때 독립협회 사건이 일어났고, 그는 사형이 언도된 이승만(李承晩)의 형량을 7년으로 감등(減等)시켰으며 이상재(李商在)를 엄벌하라는 법부대신의 명령에도 불구하고 그를 무죄로 언도하고 석방시키기도 했다.
그가 기독교인이 된 동기는 그의 부친이 먼저 교인이 되어 서울 연동교회에 열심히 출석한 데 영향을 받았다. 특히 1908년 복부내동(腹部內腫)으로 사경(死境)을 헤매던 중에 기도로 치료를 받고 그도 철저한 기독교인이 되었다.
1911년에는 연동교회에서 장로로 장립되었으며, 1915년 경충노회 추천을 받아서 평양 장로회신학교에 입학하였다. 1922년 졸업하였고 그해 12월 경충노회에서 목사 안수를 받은 후 청주읍교회 위임목사로 부임하였다. 1923년 제12회 장로회 총회장에 피선되었고, 6·25 전란 중인 1951년 8월 제3대 부통령에 당선되었다.(기독교백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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