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 비자림
숲이나 나무도 오래될수록 깊이가 있다. 한자리에서 수백년 세월을 버텨온 마을 어귀의 당산나무는 그래서 신목(神木)으로 대접받는다. 아름드리
고목 한 그루만 해도 경건함이 느껴지는데 이런 나무들이 숲을 이룬다면 그 신령스러움은 말로 표현하기 힘들다.
북제주군 구좌읍 평대리 비자림은 이런 신비를 간직한 숲이다. 원시림 같은 울창함과 고목의 수려함을 대하면 절로 경외감이 든다.
비자나무를 칡넝쿨처럼 친친 감고 있는 주사철(기생나무의 한 종류), 촉촉하게 물기 어린 나무 위에 자란 난초, 발소리까지 빨아들일 것처럼
부드러운 검은 화산토…. 비자림은 마치 현실세계에서 한발짝 벗어난 듯한 느낌을 준다.
중산간의 초원지대에 자리한 비자숲은 13만5천평. 멀리 한라산이 보이는 길목에 아늑하게 앉아있다. 비자나무는 대부분 고목이다. 수령
300∼800년 정도의 고목 2,800여 그루가 모여있다. 단일 수종의 나무들이 몰려있기도 힘든데, 이렇게 고목들이 함께 자란다는 것은
세계적으로도 드물다. 학술적·역사적 가치가 높아 자원천연기념물 제182-2호로 지정돼 있다.
비자숲 한가운데에는 이 숲에 처음 뿌리를 내린 800년 된 조상나무가 있다. 키 14m, 폭 6m의 노거수는 어른 서너명이 두 팔을 벌려야
안을 수 있을 정도이다. 비자나무는 더디 자라는 나무다. 1년에 고작 1.5㎝ 정도밖에 크지 않는다. 숲에서 만난 아름드리 비자나무가 얼마나
오랜 세월을 지켜왔는지 짐작할 수 있다.
비자나무는 주목과에 속하며 은행나무처럼 암수가 따로 구분돼 있다. 15∼20년은 지나야 열매를 맺는다. 꽃은 4월에 피지만 열매는 다음해
9~10월에 열린다. 열매는 적자색이다.
비자숲은 고려와 조선 때에도 문헌으로 전해져 내려온다. ‘고려사’에는 ‘문종 7년(1503년) 탐라국 왕자 수운나가 비자를 조정에
바쳤다’는 기록이 남아있다. 당시에도 비자숲이 꽤 울창했고, 비자나무가 귀한 나무였음을 짐작할 수 있다. ‘조선왕조실록’에는 ‘성종
24년(1493년)에 나라에서 가장 긴요한 산유자목, 이년목, 비자목, 안식향나무가 제주에서 생산되므로 이 곳에 표를 세워 벌채를 못하게 하고
경작도 금했다’고 씌어있다. 천리 밖 바다 건너 제주에 있는 비자숲을 조정에서도 귀한 나무로 여겼다는 뜻이다.
비자나무는 옛날엔 민간에서 두루 쓰이던 약재였다. 기름기가 많고 떫은 맛이 나는 비자는 구충제로 쓰였다. 또 오줌싸개에게 비자가루를 먹이면
효험이 있다고 한다. 비자나무는 바둑판이나 고급 가구를 만드는 귀한 목재였다. 붉은 색을 띠는 비자나무 바둑판은 돌이 튀지 않고 소리가 경쾌할
뿐 아니라 오래 될수록 윤이 나서 바둑을 좋아하는 사람이면 누구나 탐을 낸다고 한다. 건축 목재용으로 주로 쓰이던 소나무와 달리 비자나무는
쓰임새가 다양했다.
제주 비자림에 비자나무 한 가지만 자라는 것은 아니다. 아왜나무, 비목, 팽나무, 무환자나무, 자귀나무,
예덕나무, 때죽나무, 덧나무 등 갖가지 나무들도 비자숲 한쪽에 뿌리를 내렸다. 또 대엽풍란, 소엽풍란, 콩짜개난 등 희귀한 난도 자란다.
이 정도면 비자나무에 눈독을 들이는 사람이 많고 난꾼들도 들락거렸음직한데 어떻게 잘 보존이 됐을까. 나라에서 법을 세워 벌채를 금할
정도였으니 주민들도 출입을 삼갔다. 비자림에서 6㎞ 정도 떨어진 하도마을 주민들에 따르면 마을에서 자발적으로 비자림을 지켰다고 한다. 비자림은
원시림처럼 울창해서 신비감을 주는 까닭에 마을사람들은 숲을 신령스럽게 여겼다. 마을에서 비자림에 민가를 한 채 지어놓고 숲을 지켰으나 지금은
터만 남았다.
최근 들어 인근 마을 사람들이 소풍삼아 비자림에 들르곤 한다. 요즘은 사진작가들이 숲 촬영을 위해 많이 찾는다. 이 곳에서 영화 ‘은행나무
침대2’를 촬영하기도 했다.
비자림 일대는 제주사람들에겐 아픈 역사의 현장이기도 하다. 인근 다랑쉬 오름 아래에는 20여가구가 살았으나 1948년 군·경 토벌작전 때
다랑쉬 오름 아래 굴 속에서 모두 숨졌다. 44년이 지난 1992년에야 그들의 주검이 발견됐다. 또 비자림에서 가장 가까운 세화마을도 토벌대에
습격을 당해 주민 수십명이 살해됐다.
요즘 비자림은 제주에서도 유명 관광지로 떠올랐다. 비자림으로 이어진 길은 전국에서 가장 아름다운 도로. 건설교통부는 지난해 제주시 봉개동과
북제주군 평대리를 잇는 비자림로(지방도 1112호)를 ‘제1회 아름다운 도로’ 대상에 선정했다. 왕복 2차선의 좁은 길 양쪽으로 삼나무가 도열해
있다. 삼나무는 밭과 밭을 나누는 일종의 경계선이다. 주변에는 검은 돌담과 당근밭, 마늘밭, 파밭이 펼쳐져 있어 제주의 문화와 자연을 가장 잘
보여준다.
한때 소도처럼 신성하게 여겨졌던 비자림. 지금도 숲 속에 들어서면 태고적 자연의 숨결이 전해져 온다.
◇길잡이
제주시에서 북동쪽 중산간지대를 가르는 국도 16호선을 타고 성산쪽으로 달린다. 오른쪽 1112번 지방도가 비자림으로 이어진다. 국도
12호선을 타고 해안도로를 달리다 평대리에서 1112번 지방도를 타고 비자림으로 들어서도 된다. 표지판이 잘 돼 있어 쉽게 찾을 수 있다.
〈제주/최병준기자 bj@kyunghyang.com〉
-구충제엔 비자나무-
◇약용나무·열매
나무와 그 열매는 약재로도 쓰임새가 많았다. 비자나무는 구충제로 쓰였다. 도토리는 떡갈나무를 비롯한 졸참나무·물참나무·갈참나무·돌참나무 등
참나무과의 열매를 말한다. 아콘산이 체내의 중금속과 유해물질을 배출시키는 작용을 하기 때문에 해독효과가 뛰어나다. 피로회복 및 숙취에 효과가
있고 소화기능을 촉진시키며 입맛을 돋구워 준다. 또 장과 위를 강하게 하고 설사를 멈추며 강장 효과가 있다. 요즘은 다이어트 식품으로 응용되고
있다. 구례군 농업기술센터는 도토리를 이용, 국수, 떡국, 선식 등 건강 식품을 연구중이다. 참나무(오크)는 외국에서는 포도주통이나
위스키통으로도 쓰였다.
은행은 피를 맑게 해주는 효과가 뛰어나 오래전부터 약재로 쓰였다. 가래와 기침에 효과가 있다. 뽕나무는 간을 보호하고 신장에 효과가 있다고
해서 민간에서도 가지를 삶아 음용했다.
고로쇠와 거자나무 수액은 위장에 좋다고 한다. 칼슘을 많이 함유하고 있다. 느릅나무도 위를 튼튼하게 해준다. 자(子)가 이름 끝에 붙은
나무는 대부분 강장제로 쓰였다. 구기자와 오미자는 진액을 보충해준다. 복분자는 정력제로 알려져 있다. 결명자는 시력 강화에 좋다. 고기를 먹고
체하면 산사나무를 달여 먹었다. 창이자는 콧물과 비염, 발열, 두통에 효과를 볼 수 있다고 한다. 오가피는 혈액순환제. 지실나무는 만성소화불량에
좋다. 인동초는 겨울철 푸른 잎을 감기약으로 이용했다.
주목은 현대에 와서 항암제로 약효가 증명된 나무. 브리스톨 마이어스는 주목에서 추출한 물질로 항암제 택솔을 개발했다. 독일 바이엘사는
버드나무에서 추출한 물질을 화학적으로 합성해 아스피린을 만들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