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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혁주의 성만찬에 대한 재고찰
논문개요
본 논문의 목적은 한국 장로교회의 성만찬 신학을 회복하는 것이다. 이를 위해서 본 논문을 통하여 먼저 성만찬이란 무엇이고, 어떤 근거에 의해서 생겨난 것이지를 밝히며, 또한 칼빈의 성만찬 신학이 로마 카톨릭, 다른 개혁주의 신학자들과 어떤 점에서 다른 지를 살펴보고자 한다. 더 나아가 이러한 칼빈의 성만찬 신학에 근거 할 때, 과연 한국 장로교회의 성만찬 예전의 문제점은 무엇이고, 이에 대한 해결방 안은 무엇인지를 살펴보고자 한다.
본 논문은 먼저 성만찬의 기원과 의미를 구약과 신약의 배경 하에 살펴보았는데, 그럼으로써 성만찬이 임의적으로 또는 주관적으로 행해져서는 안 되는 것이며, 성 경에 근거한 예수 그리스도의 명령임을 살펴봄으로 반드시 순종하고 따라야 됨을 살펴보았다. 또한 성만찬 논쟁에 대한 역사적 고찰을 통하여 오늘날까지 성만찬 신 학이 어떻게 흘러왔으며, 또한 어떤 문제점을 우리에게 안겨다 주었는지를 살펴보 았다. 그 가운데 특별히 로마 카톨릭 교회의 화체설에 대한 개혁주의 입장을 루터, 쯔빙글리, 칼빈을 중심으로 살펴봄으로써 우리가 취해야 할 개혁주의 성만찬 신학 이 무엇인지를 밝혀내었다. 또한 이러한 연구를 토대로 하여 현재적으로 한국 장로 교회의 성만찬 예전의 문제점을 살펴보았다.
구체적으로는 성만찬 신학의 부재, 예전에서의 문제점, 성만찬 논쟁으로 인한 교 회분열의 문제점 등을 살펴보면서 이에 대한 대안으로 교회의 표지로써 성만찬 집 행의 중요성과 필요성 강조, 성만찬 예전의 빈번한 집행, 에큐메니칼 운동의 산물 인 리마문서의 정신계승과 현실적인 적용의 필요성 등을 제시하였다.
본 연구를 진행하면서 이 논문 이전에 이미 성만찬 회복에 대한 수많은 논문과 의견들이 있음에 새삼 놀라게 되었다. 그러나 성만찬에 대하여 그 출발점에서부터 오늘에 이르기까지 그 역사적 흐름을 짚어보고, 오늘날 한국 장로교회 성만찬의 문 제점에 대하여 개혁주의 입장에서 그 해결점을 제시하였다는 것이 본 논문의 의의 라고 할 것이다. 바라기는 본 논문을 통하여 목회현장에서 성만찬 회복을 통한 예 배갱신운동을 감당하고 있는 목회자들에게 작은 도움이 될 수 있기를 기대한다.
제 1 장 서론
제 1 절 연구의 동기와 목적
칼빈은 교회의 2가지 표징을 말씀과 성례로 정의하였다.1) 그리고 성례는 세례 와 성만찬으로 구성되어 있다. 그러나 오늘날 한국교회에서 특별히 개혁주의 교회 에서 성만찬이 소홀히 다루어지고 있다. 그래서 혹자는 한국교회는 성만찬이 없는 교회라고 비판하기도 한다.2) 그렇다면 왜 이런 현상이 벌어지는 것일까? 그것은 바로 한국 교회가 쯔빙글리(Zwingli)의 기념설을 따르고 있으며, 따라서 성례를 하 나의 상징적인 것으로 생각하는 입장을 취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런 영향으로 인하 여 대부분의 한국 교회에서 성만찬은 일년에 두 번 내지 네 번 특별한 절기 혹은 행사에 맞추어서 거행된다. 이로 인하여 많은 성도들이 성만찬에 대해 갖는 생각은 대단히 막연하며 심지어 하나의 기독교 의식 이상의 의미를 갖기가 힘든 상황이다. 그럼으로 우리가 성만찬의 진정한 의미를 다시 한번 되새겨 보는 것은 한국교회가 성만찬이 없는 교회라는 누명을 벗고 더 나아가 진정한 성만찬 신학을 정립하는 데 매우 중요하다고 할 것이다.
중세 로마 카톨릭의 비성서적인 전횡에 항거하여 마틴 루터에 의한 종교개혁이 일어났으며, 종교개혁은 결과적으로 구교와 신교간의 분리를 가져왔다. 또한 신교 내에서는 교파간의 신학적 대립과 논쟁으로 인하여 분열과 갈등이 일어나게 되었 다. 그 대표적인 논쟁이 바로 성만찬 논쟁이다.
그렇다면 성만찬에 대한 개혁자들의 관점의 차이가 무엇이었으며, 그것은 과연 극복될 수 없는 문제일까? 본 논문은 이런 문제의식을 가지고 성만찬에 대한 개혁 자들의 입장이 무엇인가를 역사적으로, 신학적으로 살펴보고자 한다.
또한 이와 같은 이론적 접근을 기본으로 하여 과연 이러한 개혁주의 성만찬 신학의 재정립과 교회연합의 목표를 이루기 위해 실천적으로 취할 수 있는 방안은 무엇인가를 살펴봄으로써 성만찬 신학의 실제화를 도모하고자 한다. 특별히 오늘날 세계교회가 겪고 있는 교회성장의 둔화, 예배의 형식화, 교회분열의 문제점에 대한 해결방안으로 성만찬의 적용을 검토해 보고자 한다.
1) John Calvin, 기독교 강요 (하), 김종흡, 신복윤, 이종성, 한철하 공역 (서울: 생명의 말씀 사, 2002), 23.
2) 김동선, “한국교회와 성만찬”, 호남신학대학교 신학이해 제17집 (1999년): 440.
제 2 절 연구의 방법과 범위
본 연구를 위해서 1차적으로는 성만찬에 대한 성경의 근거구절을 중심으로 성 만찬에 대한 올바른 이해를 하고자 하였다. 또한 2차적으로는 로마 카톨릭과 종교 개혁자들(루터, 칼빈, 쯔빙글리)의 성만찬을 이해하기 위해서 이에 대한 단행본과 다른 논문들과 정기간행물들을 통해서 각각의 입장을 이해하고 정리해 나갔다. 또 한 역사적 이해를 위해서 기독교 교리사에 관계된 자료들을 살펴보았고, 예배학적 측면을 살펴보기 위해서 예배학에 관계된 자료들을 보면서 본 연구를 진행하였다.
본 논문은 성만찬의 성경적 근거와 의미를 제시함으로써 성만찬 회복의 당위성 을 주장하고, 소모적인 성만찬 논쟁에서 벗어나 개혁주의 성만찬 신학을 확립할 것 을 그 목표로 하였다. 또한 개혁주의 성만찬 신학에 근거하여 한국 교회 성만찬의 문제점을 진단하고, 이에 대하여 신학적, 예전적, 에큐메니칼적 방면에서의 해결점 을 제시하고자 하였다.
올바른 개혁주의 성만찬 신학을 정립하기 위해서는 먼저 성만찬이란 무엇이며, 어떻게 시작되었는지를 살펴보는 것이 우선순위일 것이다. 따라서 제 2장에서는 성 만찬의 기원을 구약적, 신약적 배경 하에서 고찰해봄으로써 그 의미 파악을 가장 큰 목표로 삼고 연구하였다.
제 3장에서는 성만찬의 진정한 의미와 근거의 기초 하에 성만찬 신학이 어떤 역사적 변천과정을 거쳐 왔는가에 대해 살펴보았다. 특별히 종교개혁시기를 중심으 로 뜨거웠던 성만찬 논쟁의 역사적 배경을 살펴봄으로써 성만찬 문제에 대한 교회 일치의 해법을 모색해보고자 하였다. 로마 카톨릭과 개혁자들의 성만찬에 대한 개 념의 차이가 무엇인지를 분명히 하고, 그 각각에 대한 신학적 검토 작업을 함으로써 개혁주의 입장에서 수용 가능한 의견이 어디까지인지를 살펴보았다.
제 4장에서는 지금까지 검토한 성만찬 신학에 대한 새로운 이해를 통하여 한국 교회 성만찬의 문제점을 진단하고, 개혁주의 성만찬 신학을 어떻게 구체적으로 오 늘날의 교회에 접목시킬 수 있는가에 대한 실천적인 방안을 3가지 측면에서 제기 하였다. 끝으로 이러한 모든 입장을 종합하여 성만찬 신학의 재정립과 실제적인 적용의 필요성을 다시 한번 역설하면서 본 연구를 마무리 할 것이다.
제 2 장 성만찬의 기원과 의미
성만찬 신학을 재정립하기 위해서는 먼저 ‘성만찬이란 무엇인가? 또 언제 어떻 게 시작되었는가?’ 하는 성만찬에 대한 개념 정립이 우선되어야만 한다. 이를 위해 서 이 장에서는 성만찬의 기원과 의미를 구약적, 신약적 배경 하에서 살펴보고자 한다.
성만찬의 기원에 대한 견해는 학자에 따라 다양하게 주장되어 지고 있다. 이 문 제에 대해 예레미야스(J. Jerrmias)는 그의 저서 “예수의 성만찬 언어”에서 여러 가 지 견해들을 제시하고 있다. 즉 예수의 만찬 기원이 유월절 식사인가? 키두쉬 (Kiddush)인가? 챠브라인가? 혹은 에세네파 식사인가? 하는 문제를 비판적으로 다 루고 있다.3)
제 1 절 성만찬의 구약적 배경
예수께서 친히 제정하신 성만찬은 예수에 의해 그 제도가 완전히 새롭게 창작 된 것인지, 아니면 예수가 오기 이전 유대인들 속에 이미 존재했었던 제도인지, 아 니면 예수께서 그 의미만을 새롭게 부여한 것인지에 대한 논란이 계속되고 있다.4)그러나 공관복음서 기자들에게는 최후의 만찬이 유월절 축제의 배경 속에서 확실 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었던 것이 분명하다. 그리고 또한 유대인 풍습에 전해 내려 온 키두쉬에서 성만찬 형식의 많은 것을 엿볼 수가 있다.5) 성만찬의 기원에 관하 여 챠브라나 에세네파 식사에 대해서는 그 신빙성이 약함으로 우리는 이것에 대해 서는 간단히 살펴보고 유월절과 키두쉬를 중심으로 그 기원이 어디에 있는가를 살펴보고자 한다.
3) J. Jeremias, The Eucharistic Words of Jesus, (London : SCM Press, 1966), 29-30.
4) 김광훈, “예배 안에서 성만찬의 위치에 관한 연구” (석사학위논문, 호남신학대학교 목회 대학원 1998), 11.
5) Ralph P. Martin, 초대교회예배, 오창윤 역 (서울: 은성, 1989), 159.
1. 챠브라
성만찬의 기원을 챠브라에 두는 학자로는 고에츠(K. G. Goets), 오토(R. Otto), 딕스(G. Dix)와 그 뒤를 이은 리츠만(H. Lietzmann)이 있다.6) 리츠만은 일단의 친 구들에 의해 베풀어지고 또한 종교적인 성격을 가지고 있는 어떤 특별한 종류의 식사가 있었다는 생각을 대중화시켰다. 하브로트(haburoth)로 알려진 수많은 집단 들이 있었는데, 이 집단의 회원들은 의식상의 거룩을 성취하고 자선사업을 하기 위 해 함께 노력했으며, 아울러 공동식사를 가지기 위해 함께 모이기도 했다. 따라서 이러한 종류의 식사가 최후의 만찬에 대한 모델을 제공해주고 있다는 제안이다. 그 러나 유대교의 하브로트(haburoth)가 통상적인 유대교 식사와 다른 식사를 가졌다 는 그 어떤 증거도 없다는 것이 많은 학자들에 의해 강조되어 왔으므로, 마지막 만 찬의 특징적인 특색들의 기원을 이렇게 설명하는 것은 옳지 못하다.7) 예레미아스 도 챠브라가 성만찬의 기원이 될 만한 어떠한 증거도 없다고 주장한다.8)
6) J. Jeremias, Ibid., 29-30.
7) I. Howard Marshall, 마지막 만찬과 주의 만찬, 배용덕 역 (서울: 도서출판 솔로몬, 1993), 22.
8) J. Jeremias, Ibid., 50.
2. 에세네파 식사
성만찬의 기원을 에세네파식 식사에서 찾는 대표적인 학자로는 쿤(K. G. Kuhn) 을 들수있다.그는에세네파식사의식이성만찬의기원이된다는두가지증거 를 제시하고 있다.9) 첫째는 초기 그리스도인의 식사형태였고, 둘째는 누가를 제외 한 복음서 기자들의 최후 만찬에 대한 기록 때문이라는 것이다. 쿤은 주장하기를 에세네파와 초기 그리스도인들이 빵과 포도주의 축복과 함께 식사를 했다는 것이 결정적인 유사점이라고 말한다. 그러나 쿤도 예식 순서상의 차이점만은 시인하고 있다.
9) K. G. Kuhn, The Lord's Supper and the Cummunal Meal at Qumranink Stendahl(ed)(New York, 1957), 65-93.
3. 유월절 식사
성만찬에 대한 전통적인 견해는 성만찬의 기원이 유월절 만찬이고 예수께서 최 후로 지켰던 것일 뿐만 아니라 거기서 새로운 성만찬으로 제정되었다. 최후의 만찬 의 기원을 유월절에 두는 이유는 공관복음서 기자들의 기록들이 유월절 성격을 강 하게 나타내고 있으며, 최후의 만찬이 유월절 하루 전에 예수께서 유월절을 언급하 는 가운데 행해졌다는 점이다.
마지막 만찬이 유월절 식사의 전통 가운데서 행해졌다는 주장은 예레미아스의 연구가 대표적이다. 예레미아스는 복음서 기록들 중에서 그 만찬의 유월절 배경을 가리키는 열한 가지 항목들이 존재한다고 밝혔다.10) 그 만찬은 거룩한 예루살렘성 안에서 거행되었다. 또 밤에 지켜졌다. 그리고 소수의 남자들의 무리가 함께 모였 으므로 유대 가족적 만찬의 ‘가족적인’ 분위기가 유지되었다. 제자들이 상에 기대었 다. 빵을 떼기 전 음식이 먼저 나왔다. 붉은 포도주를 마쳤다(유월절의 독특한 특 징이다). 이 만찬에는 자선행위가 관련되어있다 (요 13:29)11). 시편 113-118편에서 발췌된 찬양으로 끝을 맺었다.12) 다락방에서의 만찬은 유월절 모든 양식을 다 갖추 고 있었다.
그리고 공관복음서에서는 예수께서 그의 제자들과 함께 예루살렘에 올라가신 것은 유월절을 지키기 위함이었다고 기록하고 있다. 따라서 유월절과 주의 만찬은 밀접한 관계가 있다고 여겨지며 더욱이 누가복음 기사를 보면 “유월절 양을 잡을 무교절일이 이른지라 예수께서 베드로와 요한을 보내시며 가라사대 가서 우리를 위하여 유월절을 예비하여 우리로 먹게 하라“(눅 22:7-8)고 기록되어 있어 예수께 서 베푸신 최후의 만찬이 유대인들의 유월절 식사와 불가분의 관계를 가지고 있음 을 얘기해 주고 있다.13)
10) J. Jeremias, Ibid., 50.
11) 요 13:29 “어떤 이들은 유다가 돈궤를 맡았으므로 명절에 우리의 쓸 물건을 사라 하시는 지 혹 가난한 자들에게 무엇을 주라 하시는 줄로 생각하더라” 제자들은 유다가 밖으로 나갔 을 때, 그가 유월절에 필요한 것을 사러 갔던지 아니면 유월절 밤에 관습적으로 행해지던 가난한 사람들을 구제하러 나갔던지 둘 중에 하나로 생각했다는 것이다.
12) I. Howard Marshall, Ibid., 122.
13) Ralph P. Martin, Ibid., 177.
4. 키두쉬(Kiddush)14)
최근에 유대인들의 관습과 성만찬을 비교 연구한 발표들이 나와 새로운 흥미를 끌고 있는데 그 중 가장 활발한 논쟁을 불러일으키고 있는 것 중의 하나가 키두쉬 이다. 키두쉬는 유대인들의 랍비와 제자들이 안식일이나 특별한 명절을 종교적 차 원에서 준비하기 위하여 함께 모여 식사를 나누던 관습이다. 그런데 이러한 키두쉬 의 행사가 예수와 제자들의 3년간의 생활 속에서도 그대로 계속 행해졌을 것이라 는 추측이 긍정적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는데, 그 근거로는 성만찬을 가리켜 ‘최후의 만찬’(The Last Supper)이라고 부른다는 점을 들 수 있다. ‘최후의 만찬’이란 지금 까지 키두쉬를 행해오던 것 중의 ‘최후의 것’이라는 의미에서 그 이름이 유래되었 다는 주장이다.15)
최후의 만찬이 ‘키두쉬’에서 근거했다고 하는 또 하나의 증거는 요한복음의 기 사이다. 요한복음을 보면 공관복음서와 달리 예수께서 유월절 음식을 먹지 않은 것 으로 밝혀진다. 요한복음 18:28 “저희가 예수를 가야바에게서 관정으로 끌고 가니 새벽이라 저희는 더럽힘을 받지 아니하고 유월절 잔치를 먹고자 하여 관정에 들어 가지 아니하더라”라는 말씀에 근거하여 사도 요한은 예수께서 잡히신 것을 유월절 잔치를 먹기 전이라는 견해를 밝힘으로써 최후의 만찬은 다락방에서 마지막 날 빵 과 잔을 나눈 것뿐이지 유월절을 기념하는 것은 아니므로 최후의 만찬은 “키두쉬” 였다는 것이다.16)
그런데 마지막 ‘키두쉬’에는 전에 없었던 새로운 말씀이 첨가되었는데 그것은 주님께서 “받으라 이것이 내 몸이니라 이것은 많은 사람을 위하여 흘리는 바 나의 피 곧 언약의 피니라”(막 14:22, 24) 고 말씀하신 것이다. 그럼으로 습관적으로 해 오던 ‘키두쉬’에다가 예수님께서 의미를 부여하심으로 기독교의 성만찬이 되었다는 견해이다.17)
14) 키두쉬(שודק)는 유대인들의 랍비와 제자들의 식사관습을 가리킨다.
15) 정장복, 예배학 개론 (서울: 예배와 설교 아카데미, 2004), 235.
16) 김소영, 예배와 생활 (서울: 종로서적, 1991), 107-108.
17) Ibid., 108.
5. 정 리
위에서 살펴본 바와 같이 성만찬은 어느 정도 구약의 유대교적 배경을 가지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유월절 만찬과 키두쉬는 예수님께서 베푸신 성만찬에 어느 정 도 영향을 미친 것이 확실하며, 예수님께서는 유대교적 전통과 풍습에 기초하여 성 만찬에 대한 새로운 의미를 부여함으로써 기독교 성만찬을 제정하시게 되었다고 할 수 있다.
제 2 절 성만찬의 신약적 배경
앞의 제1절에서는 성만찬이 구약적 배경, 특별히 유월절 만찬과 키두쉬라는 유 대적 전통과 풍습에 기초하여 제정되었음을 살펴보았다. 그렇다면 신약에서는 성만 찬에 대해 구체적으로 어떤 언급을 하고 있는가를 살펴본다면 성만찬의 의미를 보 다 분명히 알 수 있을 것이다.
1. 예수님의 성만찬 제정
전통적으로 교회가 지키는 성찬 예식은 최후의 만찬에서 기원한 것으로 여겨져 왔다. 최후의 만찬석상에서 떡과 잔을 주시던 예수님의 성만찬 제정에 관한 기록은 공관복음서와 바울의 서신인 고린도전서에 기록되어 있다(마26:26-29; 막14:22-25; 눅22:14-20; 고전11:23-26).18) 예수님은 그의 사역을 마치시고 잡히시던 날 밤 그의 제자들을 모아 놓고 최후의 만찬(최초의 성만찬)을 가지셨다. 그는 이 자리에서 이 러한 만찬을 계속함으로써 자신의 고난과 죽음을 기념하라고 말씀하셨다 (고전 11:25-26).
유월절 행사가 이스라엘에 의해 만들어진 것이 아닌 것처럼 교회가 성만찬을 만들어낸 것이 아니다. 유월절 행사가 이스라엘에게 있어서 하나님의 명령에 대한 복종이었듯이 성만찬의 거행은 교회에게 있어서 “너희가 이를 행하여 나를 기념하 라” (눅 22:19; 고전 11:24; 출 12-13장 비교)고 하신 그리스도의 명령에 대한 복종 이다. 그러므로 성만찬은 예수께서 자신들의 존재와 삶의 근거를 발견한 새 사람들 을 위해 친히 제정하신 예배인 것이다.
예수님의 마지막 만찬에서 몇 가지의 의식 순서가 보여 지는데, 정장복 교수는 신약성서를 근거로 하여 예수님이 친히 제정하신 성만찬의 순서를 다음과 같이 일 곱 단계로 나누었다.
1 주님이 먼저 떡을 취하심.
2 떡을 들어 하나님께 축사하심.
3 그것을 쪼개시면서 자신의 상하게 될 몸과 일치시키심.
4 제자들에게 나누어 주시면서 “받아 먹으라. 이것은 내 몸이라” 말씀하심.
5 그 후에 포도주를 담은 잔을 드심.
6 잔을 들고 감사의 기도를 드리심.
7 그 잔을 제자들에게 주면서 “너희가 다 이것을 마시라. 이것은 죄사함을 얻
게 하려고 많은 사람을 위하여 흘리는 바, 나의 피 곧 새 언약의 피니라”고 말씀하심.19)
이와 같은 순서를 띠고 있는 성만찬 예전은 예수님이 제정하신 최초의 모델로 서 성만찬 순서의 골격을 이루고 있다. 예수님이 제정하신 성만찬 예전은 그의 제 자들과 초대교회를 통해 그 의식이 형성되기 시작하여 고대와 중세를 거치면서 더 욱 정교하게 발전 되어졌다.20)
18) William D. Maxwell, An Outline of Christian Worship (New York: Oxford University Press, 1963), 6-7.
19) 정장복, Ibid., 237.
20) 이현웅, “현대기독교 성만찬 예전에 관한 연구”, (석사학위논문, 장신대학교, 1986), 61.
2. 복음서의 성만찬
가. 마가복음과 마태복음
마가복음(14:22-25)과 마태복음(26:26-29)에 나타나는 예수님의 성만찬 기록은 거의 동일하다. 아마도 마태는 먼저 기록되어진 마가의 기록을 참조하여 기록하였 기 때문일 것이다. 마가와 마태의 기록에서 분명하게 나타나는 것은 “하나님 나라 에서의 교제”라는 사실이다. 마가복음에서 예수의 하나님 나라 메시지는 복음으로 표현되고 있다. 예언의 성취의 때가 도래하였으며 하나님의 통치가 가까웠음을 선 포하고 있다. 예수님은 종말이 가까웠음을 확실히 선포하여 이를 준비하도록 사람 들에게 촉구하였으나, 동시에 그는 또한 하나님의 통치의 축복을 그들에게 현재적 실재들(present realities)로 가져다주었다.
이러한 축복들 중에서 예수가 그 당시 종교사회에서 버림받아 ‘세리와 죄인’으 로 낙인찍힌 사람들을 환영하여 그들의 죄를 용서하셨다는 내용이 포함되어 있다. 이러한 환영이 나타나 있는 한 가지 특별한 형태는 예수께서 그러한 부류의 사람 들에게 베푸신 식탁교제(table-fellowship)이다. 이 교제는 죄의 용서와 받아들임 (acceptance)의 표시이며 아울러 하나님의 모든 백성들이 그의 식탁 주위에 모여드 는 천상적인 식사를 기대하는 것이다. 마지막 만찬을 예수께서 그의 제자들과 함께 가지셨으며 또한 가난한 자들과 궁핍한 사람들을 초대하여 베푼 식사의 연속의 부 분으로서 이러한 배경에 비추어 살펴보면 잘 이해할 수 있다.
따라서 우리는 마지막 만찬을 예수께서 그의 제자들을 자기에게 긴밀하게 묶어 둔 식탁교제(table-fellowship)의 한 본보기로, 그리고 천상적인 잔치를 미리 맛보 는 것으로 볼 수 있다.
예수의 사역에 대한 마태의 기사는 마가의 것과 본질적으로 다르지 않으며, 또 한 마태가 예수의 하나님 나라 메시지와 그 나라와 자신과의 관계를 상당히 다른 방식으로 이해했다는 어떤 암시도 없다. 따라서 우리는 마지막 만찬에 대한 부분에 대해 마태의 기사가 마가의 것과 어떻게 다른 가에 주의해서 살펴보고자 한다.
마태의 기사에서의 가장 중요한 변경은 예수께서 피를 흘리시는 목적을 서술하 기 위해 잔의 말씀에다가 ‘죄 사함을 얻게 하려고’(for the forgiveness of sins)라는 어구를 첨가하고 있다는 것이다.21) 또한 언급할 만한 가치가 있는 변화는 하나님 나라에서 포도주를 마시는 것에 관한 말씀에서 마태는 ‘너희와 함께’(with you)22)라는 말을 첨가하여 결과적으로 예수님은 천상적인 잔치에 참여하는 것에 있어서 자신과 제자들을 연결시키고 있다는 점이다.
21) 마26:27,28 “또 잔을 가지사 사례하시고 저희에게 주시며 가라사대 너희가 다 이것을 마 시라 이것은 죄사함을 얻게 하려고 많은 사람을 위하여 흘리는 바 나의 피 곧 언약의 피니 라”
22) 마26:29 “그러나 너희에게 이르노니 내가 포도나무에서 난 것을 이제부터 내 아버지의 나라에서 새 것으로 너희와 함께 마시는 날까지 마시지 아니하리라 하시니라
나. 누가복음
마가와 마찬가지로 누가도 예수께서 인자의 고난, 죽음 그리고 부활을 예언하셨 다는 예수의 가르침을 간직하고 있으며, 아울러 이와 같이 누가는 예수의 사역 이 야기의 불가피한 종국의 길을 준비하고 있다. 마가보다 훨씬 큰 정도로 누가는 예 수의 목적이 가난한 사람들에게 구원을 가져다주신다는 사실을 명백히 나타내고 있다.23) 그러나 누가는 대속물 말씀(ransom-saying)에서 절정을 이루고 있는 마가 복음 10:35-45의 장면에 상응하는 구절을 아무것도 가지고 있지 않음으로 인해, 누 가가 의도적으로 예수의 속죄적인 죽음에 대한 언급을 경시했다는 논의가 있다.24)
비록 누가복음의 주요부인 마지막 만찬 말씀에서 속죄개념에 대한 준비가 없음 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누가가 예수께서 가져오신 구원에 대한 강조와 또한 예수께 서 죄인들과 함께 식탁교제를 가지시는 것에 대해, 특별한 강조를 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25)
누가는 성만찬 시기에 대해서 마가, 마태와 같이 주님의 만찬이 유월절 식사와 일치된 것으로 보고 있으며 (눅22:7-13), 예수께서는 자신의 희생을 앞두고 이미 최후의 만찬을 계획하고 계셨음을 밝히고 있다 (눅22:15).26)
23) I. Howard Marshall, Ibid., 161
24) Ibid., 161.
25) Ibid., 163.
26) Ibid., 81.
다. 요한복음
요한복음의 저자는 성만찬에 대한 신학적인 입장이 다른 복음서의 저자들에 비 해 독특하다. 그 이유는 요한이 성만찬 기사를 단순하게 주님의 수난과 연결하여 설명하려 들지 않는다는 것이다. 공관복음서의 기자들은 한결같이 주님의 죽으심을 유월절 만찬 후의 사건으로 기록하면서 주님께서 유월절 만찬을 제자들과 나누면 서 자신의 죽음을 유월절 어린양에 유비적으로 설명하면서 성만찬을 제정하셨다고 기록하고 있다. 그러나 요한의 기록은 예수님의 죽음이 유월절에 이루어진 일로서 유월절의 어린양으로 죽임을 당했음을 더 강조한 것으로 보여진다. 그렇다면 왜 요 한이 성만찬에 대해서는 침묵하고 있는 것일까? 그것은 요한이 성만찬을 복음서 기자들과 다른 방식으로 더 깊이 있게 다루고 있기 때문이다. 이에 대해 쿨만(O. Cullmann)은 그의 저서 “원시 기독교 예배”에서 다음과 같이 지적하고 있다.
요한복음은 주의 성찬이라는 성례전을 다루면서 공관복음서의 기자들이 묘사한 바와 같이 성례전을 제정한다는 단순한 의미가 아니라, 예수의 생애 속에서 일 어난 다른 사건들과 성례전이 연관성을 가지고 있음을 보여줌으로써 주의 성찬 을 우리에게 제시하고 있는 특징을 가지고 있다. ⋅⋅⋅ 이처럼 여기에서 우리 는 예수의 생애 속에 일어났던 사건을 성례전과 연관시키고 있는 요한복음의 독자성을 알 수가 있는 것이다.27)
위와 같은 쿨만의 지적은 요한 공동체의 예배 가운데 성찬이 차지하는 위치가 다 른 부분보다 소홀히 취급되지 않았음을 보여주고 있다. 다른 복음서의 기자들과 달 리 요한은 성찬의 진정한 의미가 무엇인지를 예수님의 생애를 통해서 밝히고자 하 였던 것이다.
특별히 예수님이 5천명을 먹이시는 기적을 베푼 후 그 기적의 의미를 설명하기 위해 하신 긴 말씀(요 6:26-65)은 오래 전부터 많은 주석가들에 의해서 성찬식에서 행하는 설교로 간주되어 왔다고 쿨만은 지적한다.28) 생명의 떡에 대한 설교는 두 부분(요 6:27-47; 48-65)으로 구분해 볼 수 있는 데, 이 두 부분은 모두 주님의 성 찬에 관해서 언급하고 있다. 그 첫 번째 부분은 생명의 떡이신 그리스도의 인격에 대해서 다루고 있고, 두 번째 부분은 성례전에서 베풀어지는 떡에 관해서 직접적으 로 언급하고 있다. 그리고 각 부분의 마지막에는 생명의 떡을 받아들이는 데에는 믿음이 필요하다는 말씀이 기록되어 있다.(요 6:36-47; 60-71)29)
이 설교의 첫 부분에서 복음서 기자가 “하나님의 떡은 하늘로부터 내려와서 세 상에 생명을 주는 것이다”(요 6:33)라고 기록하면서 그는 이것을 “영적”인 계시로서만 이해하여 이 계시를 우리에게 보여줄 뿐 아니라 그 분 자신이 계시이신 역사 적인 예수의 인격으로서 이해하고 있는 것이다. 또한 더 나아가서 그리스도의 인격 이 세례와 주님의 성찬이라는 성례전을 통하여 교회 공동체에 주어지는 것이라고 한다.30)
생명의 떡에 관한 설교의 두 번째 부분도 역시 만나의 기적과 연결되어 있다. 그러나 첫 번째 부분에서처럼 모세를 통한 계시와 그리스도의 인격 안에서 나타난 계시가 대조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만나와 성찬식에서 베풀어지는 떡이 서로 대 조되고 있다. 그렇지만 여기에서도 그리스도는 계속하여 그의 인격을 통한 계시로 서 나타나고 있다.31)
이러한 요한복음 6장의 기사에서 복음서 기자는 주님의 성찬이라는 성례전이 이미 역사적 예수의 삶에서 그 근원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32)
27) O. Cullmann, 원시기독교 예배, 이선희 역 (서울: 대한기독서회, 1984), 145-146.
28) Ibid., 128.
29) Ibid., 130-131.
30) Ibid., 132.
31) Ibid., 134.
32) Ibid., 140.
3. 바울서신의 성만찬
복음서에 기록된 성만찬 교리는 바울의 서신에서도 나타난다. 바울이 고린도 교 회에 보낸 편지에서 기록하고 있는 교리는 당시의 교회에 의해서 수용되어졌고, 다 음 세대로 계속 전승되어졌다. 당시 고린도 교회는 성만찬 교리에 대하여 많은 오 해를 가지고 있었다. 그것은 성만찬의 근본 의미는 교회가 주님의 몸 안에서 하나 가 되는 것임에도 불구하고 고린도 교회는 성만찬으로 인하여 오히려 분쟁과 분열 을 초래하였다는 것이다. 또한 성찬에 사용되는 성물 자체가 신비적인 능력을 갖는 것으로 여겨 후대에 그것을 불사약이나 불사의 음식으로 생각하는 원인을 제공하 기도 하였다는 것이다.33)
사도바울의 이러한 성만찬을 통한 공동체 의식은 고전 10:17에도 잘 나타나 있 “빵은 하나이고 우리 모두가 그 한 덩어리의 빵을 나누어 먹은 사람들이니 비 우리가 여럿이지만 모두 한 몸인 것입니다”(고전 10:17). 이러한 내용 속에 바울은 그리스도의 사람이란 누구나 단수적 개념으로 설 수 없으며, 하나의 공동체로서 공동운명의 삶과 목표를 가지고 있음을 강조하였다. 이러한 바울의 교훈은 초대교 회의 교과서처럼 소중하게 사용되었던 “디다케” 의 제 9장에서 그리스도인들은 성 만찬을 통하여 하나 된 개념이 계속되어야 함을 강조하게 되었다.34)
33) J. L. Neve, 기독교 교리사, 서남동 역 (서울: 대한기독교서회, 1992), 100.
34) 정장복, Ibid., 241
4. 최근의 새로운 견해
최근에는 성찬의 기원에 관하여 또 하나의 가능성이 언급되어지고 있다. 그것은 예수님이 부활 후에 제자들과 함께 가졌던 식사로부터 성만찬의 기원을 찾아야 한 다는 주장이다. 예수님의 부활 사건은 실의에 빠져있던 제자들의 삶을 뿌리째 뒤바 꾸어놓은 사건이었다. 그 후에 예수님은 여러 번 제자들에게 나타나셨고 그들과 함 께 식사를 하심으로 부활의 확실성을 보여주셨다 (눅24:13-32; 24:33-49, 요 21:1-23). 이처럼 주님께서 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나셔서 함께 음식을 먹은 의미를 사도행전 기자는 제자들을 부활의 증인으로 삼고자 함이라고 말하였다 (행 10:41). 이것은 제자들에게 중요한 의미가 있었다. 그것은 예수님이 영으로서가 아니라 육 체적으로 부활하셨음을 확실하게 증거 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또한 부활하신 예수 께서 자신들 가운데 임재하시고 교제하신다는 명백한 증표가 되기 때문이다. 이제 주님께서 승천하시고 주일이 다시 되었을 때, 제자들은 자연스럽게 주님과 함께 가 졌던 그 식사를 또 다시 나누고 싶었을 것이다. 그것은 함께 나누는 식사를 통해서 주님이 지금도 계속하여 제자들과 함께 그 자리에 계시다는 것을 생생하게 느끼고 싶었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렇게 해서 성만찬이 초대교회 신앙 공동체 안에 정착하 게 되었다는 설명이다.35)
초대교회 성도들은 성찬식을 통하여 부활하신 주님이 제자들과 함께 식사하셨 던 그 순간을 생생하게 회상할 수 있었고 나아가 그 주님이 지금도 그곳에 임재 하사 그들과 함께 하시고 식사하고 계심을 확신할 수 있었다는 것이다. 이에 대해 오스카 쿨만은 “성찬은 예수 부활이라고 하는 이 역사적 사건과 그 분의 현재적 임재를 예배를 통해서 경험하는 이 두 가지 사실을 하나로 엮어 주는 중요한 도구 가 되었다”고 주장하였다.36)
34) 정장복, Ibid., 241.
35) 한진환, “성찬의 본질에 대한 재조명과 그 현대적 적용” 개혁신학과 교회 제 7호 (1997) : 260-261.
36) Oscar Cullmann, Essays on the Lord's Supper (London: Lutterworth Press, 1958), 12.
5. 정 리
지금까지 성만찬에 대한 의미를 신약성경의 기록들을 중심으로 검토하였다. 그 내용들을 간략하게 정리해 보면 다음의 몇 가지로 요약할 수 있다.
(1) 성만찬은 새롭게 하나님의 자녀가 된 교회에게 주님께서 직접 제정하시고 명령하신 것으로 교회는 반드시 이를 순종해야만 하는 것이다.
(2) 성만찬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죄인들을 위해 예비하신 천국잔치로써 현재적 으로 하나님 나라의 기쁨과 은혜를 누리도록 해준다.
(3) 성만찬은 유월절 어린양으로 이 땅에 오사 십자가에서 대속의 제물이 되신 예수 그리스도를 기억함으로 죄 사함을 누리게 해준다.
(4) 성만찬은 그리스도안에서 하나임을 인식하며, 또 그러한 공동체를 이루게 해 준다.
(5) 성만찬은 부활하신 주님의 현존을 대하는 것이며, 주님의 성찬을 통하여 종 말론적으로 이에 참여하는 자들이 마지막 날에 부활의 영광을 덧입게 될 것을 보증해 준다.
제 3 장 성만찬 논쟁에 대한 역사적 고찰
본 논문은 지금까지 성만찬의 기원과 의미를 구약과 신약의 배경 하에서 살펴 보았다. 이러한 성만찬의 의미와 근거의 기초 하에 지금부터는 성만찬 신학이 어떤 역사적 변천과정을 거쳐 왔는가에 대해 살펴보고자 한다. 특별히 종교개혁 시기를 중심으로 뜨거웠던 성만찬 논쟁의 주요 쟁점이 무엇이었으며, 과연 교회분열로 치 달을 정도로 개혁자들의 주장이 서로 상충되고 있는 것인지를 살펴보고자 한다. 이 런 역사적 고찰을 하는 이유는, 이를 통하여 다시 한번 서로가 다르다는 것을 증명 하는 것이 목적이 아니라 오히려 반대로 분열된 교회일치의 해법을 찾고자 하는 것이 그 목적이라 할 것이다.
제 1 절 교부 시대 (A.D. 100~800)
성만찬(ευχαριστια)이라는 말은 “디다케” (Didache, IX, 5), 즉 “십이사도의 교훈 서” (A.D.110-140)에 처음으로 나타난다.37) 이 명칭의 의미는 ‘감사드림’(ευχαριστη σα )즉 <감사물>이란 뜻이다. 초대교회에서 성만찬에 대하여 상세한 언급을 하고 있는 사람은 2세기 중엽의 순교자 저스틴(Justin Martyr)이다. 그는 로마 황제에게 보내는 “변증론”에서 최후의 만찬 때 예수께서 하셨던 말씀을 포함하여 기도를 드 린다면 떡과 포도주는 이미 떡과 포도주가 아니라 ‘강생한 그리스도의 몸과 피다’ 라고 말하였다. 즉 성찬은 ‘그로부터 나온 말씀의 기도를 통하여’(δια ευχη λο ου του παρ αυτου) 그리스도의 살과 피가 된다고 주장함으로 단순 실재론을 보여주고 있다.38)
성만찬에 관한 저스틴의 ‘단순 실재론’적 견해는 2세기말 리용의 주교였던 이레 네우스(Irenaeus 130-202)에 의해 다시 사용되어졌다. 그는 주장하기를 교회의 기 도를 통하여 성령은 로고스를 떡과 포도주에 결합시키며, 그리하여 그것을 이전과 는 다른 어떤 것, 즉 그리스도의 몸과 피로 만든다는 것이다. 이레니우스의 이러한 주장은 저스틴과 동일하지만 그는 성찬식의 복잡성을 더욱 강조하여 성찬의 요소 는 기도에 의하여 지상적 요소가 천상적 요소가 된다는 것이다.39) 이러한 그의 주 장에 근거해 볼 때, 그는 성만찬의 떡과 포도주를 그리스도의 몸과 피로서 실재적 으로 이해하고 있음을 내비치고 있다.
터툴리안이 성만찬에 대해 실재론적 견해를 가지고 있었느냐 아니면 상징주의 적 견해를 가지고 있었느냐에 대해 의문이 많이 있다. 그러나 문제를 이런 이분법 적으로 다루는 것은 정당할 수 없는데, 그 이유는 터툴리안이나 이레니우스 그리고 그 이전의 시대에 있어서는 성만찬에 대한 상징주의적 개념과 실재론적 개념은 서 로 배타적인 것이 아니었다고 보기 때문이다. 그 당시에 있어서 카톨릭 교부들의 표현을 지배한 것은 주로 노스틱주의의 가현설을 반박하는 논쟁적 진술이었다. 터 툴리안은 떡을 몸의 표상(figura corporis)이라고 보았으며, 몸을 나타내는 (representat)것이라고 지적함으로 상징주의적 개념을 암시한다고 할 수 있다.40)
성만찬에 대한 상징적 의미를 명확하게 보여준 사람은 오리겐이다. 그는 성만찬 에 있어서 떡은 상징적인 의미에서 그리스도의 몸이며, 산 떡이신 로고스를 먹는 것을 암시하는 것으로 떡과 포도주는 그리스도와 사도들의 말씀을 상징하는 것이 라고 주장하였다. 이 말씀만이 영혼에 은혜를 가져다주며, 순전한 마음과 양심을 가지고 성만찬에 참여하는 자에게 유익을 주는 것이다.41)
안디옥 학파는 그리스도안에 있는 두 성질의 통일성을 강조한 그들의 기독론 으로 인해서 성만찬에 대해서도 상징주의적 개념에 기울어졌다. 몹쉬스티아의 데오 도레(Theodore of Mopsuestia)는 고린도전서 11장 34절을 해석하면서 떡과 포도주 는 그리스도의 죽음을 상징하는 것이라고 말하였다.42)
지금까지 “디다케”, 저스틴, 이레니우스 등의 실제론과 터툴리안, 오리겐, 데오도 레의 상징주의적 개념에 대해 살펴보았다. 그런데 시간이 지남에 따라 오리겐의 상 징주의적 개념이 쇠퇴하고 실재론적 개념은 화체의 개념으로 발전되어 나갔다. 이 런 화체의 개념은 기독론 논쟁의 자연적 결과였다.43) 이런 화체론은 예루살렘의 시 릴, 니사의 그레고리, 크리소스톰, 알렉산드리아의 시릴, 다메섹의 요한 등 동방의 교부들에 의해 형성되어 갔다.
예루살렘의 시릴은 성만찬 예전의 의미를 ‘이것이 나의 몸이라’는 말에서 찾으 며, 떡과 포도주는 그리스도의 몸과 피로 변하는 것으로 성령께 부르짖음(επικλησι)을 통하여 이루어진 변화(μεταβολη)로 인해, 이제 떡은 그리스도의 몸이 되었다고 말한다.44)
니사의 그레고리는 성만찬을 통해 그리스도의 몸이 음식 형태로 몸의 소화기관에 의해 섭취될 때 몸이 죽음의 희생에서부터 해방되며, 떡은 성별을 통해 그리스 도의 성체가 된다고 하는 이른바, 변화설(transformation-theory)를 주장한다.45)크리소스톰은 성만찬에서의 그리스도의 임재를 아주 거칠고 감각적인 것으로 서 술하였다. 그는 성만찬 물질의 준비에 대하여 말하였는데, 그러한 준비를 통하여 떡은 진정한 그리스도의 몸이 되며 그리하여 우리는 그것을 볼 수도 있고 먹을 수도 있게 되었다는 것이다.46)
알렉산드리아의 시릴은 기독론에 있어서 그리스도 안에 있는 두 성질의 완전한 통일성을 강조하였는데, 그의 성만찬에 대한 견해도 이러한 기독론에 근거를 두고 있다. 그는 제단 위에 바쳐진 것이 비록 떡과 포도주의 형식으로 되어 있기는 할지 라도 (마26:26-28) 진정한 로고스의 몸이라고 말한 것으로 보아서 화체의 개념을 나타내고 있음이 분명하다.47)
다메섹의 요한은 상징론을 배격하고 떡과 포도주는 성별을 통해 그리스도의 몸 과 피로 변화된다고 주장하였다. 또한 그는 이러한 화체교리를 설명하기 위해 μετα βολλονται(변질된다)라는 말을 사용하였다. 이러한 요한의 주장은 니케아의 두 번 째 종교회의에서 채택되었고, 요한은 동방교회를 위하여 화체교리를 체계화한 사람 이 되었다.48)
서방교회에서는 오리겐의 상징개념으로 성찬의 상징 개념이 널리 받아들여지고 있었다. 이때 동방의 화체교리를 도입한 사람이 암브로스이다. 암브로스는 성스러 운 기도의 신비로 말미암아 성찬의 요소들이 살과 피로 변화된다고 말하였다. 그러 나 암브로스의 이러한 도입은 어거스틴에 의해 저지당하게 되었다.
어거스틴은 성만찬에 관한 서방 교회의 개념에 있어서 아주 중요한 위치를 차 지하고 있다. 그의 성만찬에 대한 가르침은 아주 독특한 이원론을 나타내고 있다. 그는 예전을 ‘불가시적 은총의 가시적 표시’라고 말하였다.49) 사실 그리스도의 임재 는 영적인 임재로서 어거스틴은 성찬식의 떡을 그리스도의 실제적인 몸과 동일시 하지 않고 단지 상징(sign)으로만 보았다. 그는 그리스도의 몸을 교회 즉 성도들의 모임이라고 생각하며, 성만찬에서 상징되는 것이 교회라고 하였다. 성만찬의 은혜 는 우리가 그리스도와 결합하는 것, 즉 그리스도에게서 나오며 교회 안에서 역사하 는 사랑의 영을 받는 것을 말한다고 하였다. 그는 누차 그리스도의 몸의 편재를 부 정하고 영광 얻으신 그리스도의 처소는 하늘의 한 장소에 국한되어 있다고 생각하 였다.50) 이것이 성만찬에 대한 어거스틴의 상징주의적 개념이었다. 서방 카톨릭주 의의 가장 뛰어난 지도자인 어거스틴이 성만찬에 관해 이처럼 후에 베렝가르 (Berengar)51), 위클리프, 쯔빙글리, 칼빈 등에 의해 강조된 바와 꼭 같은 입장을 취 하였다는 것은 역사적으로 보아 매우 중요한 일이라고 할 것이다. 서방교회에서 화 체설의 발전을 수 세기 동안 저지시킬 수 있었고, 로마 카톨릭에서 화체설이 완전 히 통일된 교의로 채택되지 못하게 한 것이 모두 이러한 어거스틴의 권위 때문이 었다.
떡과 포도주가 성별을 통해서 실제로 그리스도의 몸과 피로 변질된다고 하는 진정한 화체의 교리는 결국 위대한 그레고리에 의해 선포된 ‘미사 전문’(Cannon of the Mass)에서 나타났다.52) 미사전문에는 성만찬의 예전을 우리의 구속을 위한 그 리스도의 계속 반복되는 희생이라고 묘사하고 있다.
37) J. L. Neve, Ibid., 314.
38) Ibid., 317.
39) Ibid., 318.
40) Ibid., 318.
41) Ibid., 318.
42) Ibid., 319.
43) Ibid., 320.
44) Ibid., 321. 기독론 논쟁은 예수의 신성과 인성이 한 인격 안에 어떻게 함께 존재할 수 있는가에 대한 논쟁으로 대표적인 것이 안디옥 학파의 네스토리우스와 알렉산드리아 학파인 시릴의 논쟁이다. 안디옥 학파는 두 성질을 강조한 반면 알렉산드리아 학파는 한 인격을 강 조하였는데, 결국 네스토리우스가 한 분이신 그리스도를 두 인격 혹은 두 격체(hypostasis) 로 나누었다는 이유로 정죄 당함으로 결국 한 인격이 강조되었고, 이러한 기초 위에 속성의 교류(communicatio idiomatum)가 주장된 것이다. 또한 이런 속성의 교류는 결국 성만찬에 서의 화체의 개념으로 발전하는 계기를 제공해 주었다.
45) Ibid., 321. 변화설이란 화체설과 비슷하나 성만찬의 효력을 생리학적 성격으로 규정한 차이가 있다고 할 것이다.
46) Ibid., 321.
47) Ibid., 321.
48) Ibid., 322.
49) Ibid., 323.
50) Ibid., 323.
51) 베렝가르에 대해서는 19p. 참조
52) Ibid., 324.
53) Ibid., 323.
54) Ibid., 356.
55) Ibid., 356
제 2 절 중세 시대 (A.D. 800~1500)
서방교회에 있어서의 화체설의 최종적 승리는 중세기의 두 논쟁을 통해서 이루 어졌다. 즉 9세기에 일어난 라드베르투스-라바누스-라트람누스의 논쟁과 그 보다 200년 후에 화체설에 반대하고 일어난 베렝가르의 항거가 그것이다.53)
성만찬 주제에 대한 최초의 전문적인 저작을 낸 것은 라드베르투스(Radbertus) 였다. 그는 842~853년 사이에 콜비 수도원장을 지내면서 844년에 “주의 몸과 피에 관하여”(On the Body and Blood of the Lord)라는 논문에서 희랍적인 개념과 어거 스틴의 이론을 받아들여 절충을 시도하였다. 그는 전능하신 하나님께서 사제의 축 원를 통하여 기적이 일어나게 하심으로 성별된 성만찬의 물질이 실제 역사적인 예 수의 몸으로 변화된다고 주장하였다. 그는 성만찬 물질의 색깔과 모양과 맛이 변화 되지 않고 그대로 남아 있게 되는 것은 그러한 화체의 기적이 외면적으로 나타나 는 것이 아니라 내면적으로 이루어지는 신비이기 때문이라고 설명함으로써 진정한 화체(a real transubstantiation)의 개념을 가르쳤다.54)
이러한 라드베르투스의 견해에 최초로 반대한 사람은 어거스틴의 영향을 받은 라바누스(Hrabanus)였다. 그는 성만찬의 물질과 역사적 그리스도의 절대적 동일성 을 부인하였다. 성만찬의 효과는 개개인이 그리스도의 신비적인 몸과 영적으로 결 합하는데 있다. 떡과 포도주는 그리스도의 몸과 피 자체가 아니며, 단지 그 상징에 지나지 않는다고 주장하였다.55)
또한 라드베르투스의 견해에 대한 반대가 콜비의 수도사였던 라투람누스 (Ratramnus)에 의해 제기되었다. 그는 말하기를 떡이 외적으로는 원래 그대로의 모양으로 남아있지만 내적으로 생각하게 되면 떡은 오직 믿는 영혼만이 볼 수 있 고, 받을 수 있고, 먹을 수 있는, 보다 높고 신성하고 거룩한 어떤 것이 된다고 주 장하며 더욱 좋은 어떤 것으로의 변화가 일어나지만 이 변화는 영적 그리고 상징 적으로 이해되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성례전의 물질은 오직 상징에 지나지 않 는다는 것이다. 그리스도의 임재는 비록 참되고 진정한 것이기는 하지만 순수한 영 적인 것이며, 성례전에 참여한 효험은 그리스도와의 영적 친교에 있는 것이다.56)
그러나 라트람누스의 어거스틴주의적 순리주의는 라드베르투스의 개념을 옹호 한 당대의 교회에 대항하여 나갈만한 힘이 없었던 것이다.57) 성만찬에 관한 중세기 최초의 분쟁이 있은 후, 라드베르투스의 실제론적 성례전 개념은 점점 더 널리 통 용되었다. 그러나 라드베르투스의 이론에 대하여 다시 논란을 제기한 사람이 있었 는데, 그가 바로 베렝가르였다. 이로 인하여 그 유명한 베렝가르-랑프랑 논쟁(The Berengar-Lanfranc Controversy)이 일어나게 되었다.
베렝가르는 화체설의 논리적 모순을 지적하고, 성서에 근거하여 성만찬에서는 단지 그리스도의 살 조각들만이 주어진다고 하는 개념을 배격하였다. 그는 전체의 인격적인 그리스도를 요구하였다. 그리하여 그는 어거스틴-라트람누스 유형의 상징 적인 예전 개념을 부흥시켰다. 그는 그리스도의 형체적 임재를 부정하였는데, 이는 그리스도의 몸은 하늘에 있으며 나누어질 수 없는 몸이기 때문이라고 주장하였다. 그는 떡과 포도주는 단순한 상징에 지나지 않으며, 그리스도와의 연합은 내적, 영 적으로 이루어진다고 하였다. 이러한 베렝가르의 반대 의견에 놀란 로마 교회 당국 자들은 베렝가르로 하여금 자신의 의견을 철회케 하고 화체설을 고백케 하였다. 그 러나 베렝가르는 여전히 자신의 주장을 철회하지 않았다. 이에 격렬한 문서상의 논 쟁이 벌어지게 되는 데 그 주된 것이 바로 랑프랑의 “그리스도의 몸과 피에 관하 여”(On the Body and Blood of the Lord)라는 논문의 반박이었다. 베렝가르는 결 국 1079년 로마 교회 당국자들에게 굴복하고 말았다.58)
베렝가르의 추종자들 중 어떤 사람들은 축도에 의해 떡 가운데 그리스도의 몸이 임재한다고 하는 이론(theory of impanation)을 내세움으로써 절충적인 입장을 모색하였다. 그리스도는 진정으로 더 나아가서는 몸으로 성례전 가운데에 임재하기 는 하지만 예전의 물질이 변화되지는 않는다는 것이다. 마치 그리스도의 성육신에 있어서 인간적 본성이 변화되지 않고 그대로 남아있었던 것처럼 성만찬에 있어서 도 떡과 포도주의 실체는 변화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또 하나님께서 인간 예수와 밀접하게 하나가 되어서 그 안에 임재 하였던 것과 똑같이 성만찬의 떡과 포도주 가운데도 임재하시는 것이다. 이러한 이론은 그 당시에 정죄를 당하면서도 중세 후 기를 통하여 공재설(consubstantiation)로 발전하였다.59)
화체 교리는 1215년 제 4차 라테란 공의회(Lateran Council)에서 교황 이노센스 3세의 의해 정식으로 교의의 지위로 승격되었다. “하나님의 능력을 통해서 떡이 몸 으로 포도주가 피로 변화된 후에는 그리스도의 몸과 피는 떡과 포도주의 모양으로 드려진 제단의 성체 가운데 참으로 임재한다. 오직 정당하게 임명된 사제만이 이 예전을 집행할 수 있다.”60) 이 화체설은 1551년 트렌트공의회 13회기의 제 4장에서 다시 한번 명확히 공포되었다.
53) Ibid., 323.
54) Ibid., 356.
55) Ibid., 356
56) Ibid., 357.
57) Ibid., 357.
58) Ibid., 380.
59) Ibid., 381.
60) Ibid., 382.
정리
지금까지 성만찬 논쟁의 역사적 사건과 화체설 교리의 형성과정을 개략적으로 중요한 역사적 사건을 중심으로 살펴보았다. 특히 어거스틴에 있어서 역사적 의의 는 성만찬 교리에 있어서 그가 영적 개념을 보존시켰으며, 실재론적 발전을 수세기 지연시켰음을 알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화체설(transubstantiation)교리는 9세 기에 정식으로 제안되어, 12세기에 받아들여 화체의 교리로 지명되고, 13세기 제 4 차 라테란 회의에서 정식으로 받아들여졌으며, 16세기 트렌트 공의회에서 최종적으 로 승인되기에 이르렀다.
제 3 절 종교개혁 시기
이제 본 논문에서는 본격적으로 종교개혁 당시에 있었던 성만찬 논쟁에 대해서 다루어보고자 한다. 이를 위해서 다시 한번 로마 카톨릭의 화체설의 개념을 정리함 과 동시에 이에 대해 비판해 보고자 한다. 또한 종교개혁자들인 루터, 쯔빙글리, 칼 빈의 성만찬 신학을 순서대로 살펴보고, 특별히 개혁자들의 공통점과 차이점을 살 펴봄으로써 성만찬논쟁의논점을좀더심도있게연구해보고자한다.
1. 로마 카톨릭의 화체설(化體說)
본 단락에서는 화체설의 개념과 화체설에 대한 루터의 비판 내용을 살펴보고자 한다.
가. 화체설
카톨릭 교회는 중세기에 이르러 오늘날 로마 카톨릭 교회가 가지고 있는 성만 찬 교리를 완성하게 되었다. 이 교리의 형성은 사도시대 이후 초대교회 교부들의 성만찬 사상의 발전에 의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므로 오늘날 카톨릭 교회가 믿고 있는 성만찬 사상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중세 시대의 성만찬에 대한 이해를 해야 할 것이다. 중세 시대란 보통 교황 그레고리 1세로부터 시작하여 종교개혁까 지의 시기를 말하며, 교회사적으로는 고대 교부를 이어서 교황이 중심이 된 교회시 대라고 할 수 있다.
화체설(성체변질론, transubstantiation)이라는 용어가 처음 발견된 것은 페트루 스 코메스테르(Petrus Comester)에게서와 힐데베르트(Hildebert of Lavardin)의 설 교들에서였다.61) 화체설이란 단어는 실체의 변화를 의미한다. 로마 교회는 빵과 포 도주의 전 실체가 문자적인 육체의 그리스도의 몸과 피로 바꾸어진다고 가르치고 있다. 화체설을 말하는 카톨릭 교회에 있어서 떡과 포도주는 그리스도의 몸의 실제
61) 김득룡, 현대교회 예배학 신강 (서울: 총신대학 출판부, 1985), 74.
적 임재를 말한다. 성찬의 물질적인 요소인 떡과 포도주는 제정어의 암송에 의하여 물질적인 요소는 그대로 있지만 성찬의 물질의 실체는 그리스도가 하늘에서 내려 와서 떡과 포도주 안에서 임재한다고 한다. 이로써 성물은 그리스도의 몸과 피가 되는 것이다. 그리하여 카톨릭 교회는 미사에 있어서 표징과 몸을 구분하지 않고 하나로 친다. 그러므로 “이것은 내 몸이다”, “이것은 내 피다”라는 말씀을 그대로 믿었다.
롬바르트(Lombard)는 말하기를 그리스도의 몸 자체는 가견적인데 성찬을 위한 봉헌 후에는 그리스도의 몸이 떡의 형체 아래 숨겨지고 가려져 있다고 했다. 즉 떡 이 몸으로 변한 것을 말하며 떡에서 몸이 만들어 지는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이렇 게 되면 봉헌은 곧 마술의 하나가 되는 것이다.62)
61) 김득룡, 현대교회 예배학 신강 (서울: 총신대학 출판부, 1985), 74.
62) 이근삼, 칼빈, 칼빈주의 (서울: 도서출판 엠마오, 1991), 58.
나. 화체설에 대한 비판
중세기 로마 카톨릭 교회의 특색은 성례전 제도의 강화에 있었다. 개혁자들은 로마 카톨릭 교회의 성례전 제도와 성례전 교리를 뒷받침하고 있는 신학에 대하여 공격하였다. 특별히 루터는 “바벨론 포로”라는 저서에서 그 당시 로마 카톨릭 교회 의 잘못된 성만찬관을 반박하였다.
루터는 로마 교회의 성만찬에 대하여 세 가지 과오를 범하고 있다고 지적하였다.63)
그 내용을 구체적으로 보면 다음과 같다.
(1) 평신도에게 떡만을 허락하고 포도주를 주지 않는다.
루터는 고린도전서 11장 25절의 “이것을 행하여 마실 때마다 나를 기념하라”는 것은 일반 평신도에게도 해당되는 말씀으로 포도주를 주지 않는 것은 성례전을 변 질시키는 것이라고 지적했다.64)
(2) 화체설의 과오를 지적하였다.
중세 교회가 신앙에 상관없이 사제의 제식에 따라 그리스도가 마술적으로 실제 에 임재 한다는 사상은 비성서적이라고 하였다. 성물이 그리스도의 실제의 몸으로 변한다는 화체설 교리는 마술적인 것이라고 표현하면서 불과 쇠는 별개의 것이지 만 달구어진 쇠에는 동시적인 것처럼 떡과 포도주는 그대로 그리스도의 현재이며 공존으로서의 실체라고 설명하였다.
(3) 카톨릭 교회가 성례전을 희생으로 해석하고 있음을 지적하였다.
미사 때마다 그리스도가 하나님께 제물로 드려져서 그리스도의 임재를 유지하 는 것은 모든 인간이 인간 스스로의 선행을 통하여 구원을 얻을 수 있다는 이치로 써 잘못된 교리로 보았다. 하나님은 자비로우시고 은혜로운 하나님이시다. 갈보리 산의 그리스도는 한번에 그리고 완전하게 인간들의 희생제물이 되셔서 하나님께 드린바 되었으므로 그를 받는 자에게 죄의 용서와 구원을 허락하셨다. 그런데 미사 의 행위에서는 아직도 인간의 죄를 용서하기에는 한번의 그리스도의 희생으로 만 족하지 못한 것 같이 되어있다. 왜냐하면 미사는 신부가 떡과 포도주를 그리스도의 몸과 피로 변화시켜서 하나님의 진노를 피하려는 희생양(羊)으로 생각되어지기 때 문이다. 사제는 성물을 가지고 의식을 통하여 참된 그리스도의 몸과 피를 만들어 하나님께 만족을 드리기 위하여 계속 그리스도의 희생을 하나님께 드린다. 그리스 도는 사제에 대하여 매번 성례전 때마다 희생의 양이 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미사 는 하나님께 무엇을 바친다는 중세적 공로사상의 일면을 가지고 있다고 할 것이다. 미사 때마다 그리스도가 매번 수욕과 수난을 되풀이 한다고 생각하는 것은 결코 성서적인 것이라고 할 수 없다고 비판하였다.
63) Bernhard Lohse, 루터연구입문, 이형기 역 (서울: 크리스챤다이제스트, 1993), 180-181.
64) Ibid., 180
2. 루터의 공재설(共在說)
본 단락에서는 루터의 성만찬 사상을 세 개의 시기로 구분하여 살펴보고, 그의 성찬론의 기독론적 근거를 살펴보고자 한다.
가. 루터의 성만찬의 내용
루터의 성만찬 사상은 처음부터 확립된 윤곽을 가진 것이 아니었다. 그 형성과 정을 대략 3단계로 구분할 수 있다. 그 처음은 1519년 “성찬에 관한 교설”을 썼을 때 까지요, 다음은 1520년부터 1529년까지 “교회의 바벨론 포로” 논문에서부터 쯔 빙글리와의 마르부르크 회담(1529)까지, 그리고 셋째는 그 이후이다. 첫 단계에서 그는 화체설적인 이해를 가졌고, 두 번째에서는 로마 카톨릭에 반대해서 화체설적 이해를 버렸던 시기요, 세 번째는 쯔빙글리와의 논쟁을 통해서 공재설(共在說, consubstantiation)의 입장을 취했던 시기이다.65)
65) 전경연, 루터신학의 제 문제, 복음주의신학총서 Vol. 11 (서울: 한국신학연구소, 1976), 76.
(1) 제 1기
1519년 루터는 한편의 시편 강해에서 <그리스도의 원형>이란 개념으로 성만찬 의 상징적 의미를 가르쳤고, 다른 “참된 그리스도의 성만찬과 형제 안에 관한 설 교”에서는 화체설적인 의미에서 성만찬을 가르쳤다.66) 그는 로마 카톨릭의 미사 행 위에 있어서 핵심은 성만찬이고, 세례의 경우와 마찬가지로 떡과 포도주라는 표시 (sign)와 이 성례의 의미, 그리고 이것을 받는 이에게 유익하게 하는 신앙 등이 중 요한 3가지 요소라고 말하였다.67) 여기서 루터는 떡과 포도주의 요소를 표징(sign, Zeichen)이라는 상징적 표현을 썼다. 루터는 원형과 표징의 관계를 표하기 위하여 주님은 자신의 몸과 피를 떡과 포도주 아래에 두셨다고 했다. 그는 성찬 자체가 공 동체 혹은 교제인 까닭에 교회는 성도들의 공동체 내지는 교제라고 하였다. 떡과 포도주를 받는다는 것은 그리스도 및 모든 성도들과의 교제 및 합체의 확실한 표 를 받는 것으로 이 성도의 교제 안에서 성도들은 모든 영적 고민과 모든 영적 자 원을 나누어 갖는다.
루터는 본 논문 끝에서 성례전의 역사에 관하여는 로마 카톨릭의 화체설 (transubstantiation)을 따른다. 즉 그는 “떡은 그리스도의 자연적인 살로 화하며 포도주는 그의 자연적인 피로 화한다. 떡이 참 살로 변하고 포도주가 참 피로 변화하 듯이 우리는 영적인 몸으로 화한다. 즉 그리스도와 모든 성도들의 공동체 또는 교 제에 들어가며, 이 성례전을 통하여 그리스도와 성도들의 모든 덕목을 소유하게 된 다”고 말했다.68) 그러나 이 시기에 있어서 조차도 루터는 로마 카톨릭과 상당한 차 이가 있다. 로마 카톨릭이 성례전이란 집행하는 사람의 질적 상태나 받는 사람의 신앙에 관계없이 객관적 능력과 은혜가 역사한다고 하는 기계주의적 성찬론을 주 장하였으나, 루터는 받는 사람의 신앙이 필수 불가결한 요소라고 주장하면서 신앙 을 강조하였다.69)
65) 전경연, 루터신학의 제 문제, 복음주의신학총서 Vol. 11 (서울: 한국신학연구소, 1976), 76.
66) Ibid., 76.
67) 이형기, 종교개혁 신학사상 (서울: 장로회 신학대학 출판부, 1984), 112.
68) 조인서, “성만찬 논쟁연구”, (석사학위논문, 장신대학교, 1987), 15.
69) 이형기, Ibid., 113.
(2) 제 2기
1520년 루터는 종교개혁의 원리에 관한 세 논문70) 중에 하나인 “교회의 바벨론 포로”와 “신약성서 소론” 등에서 화체설을 공박하면서 성만찬 교리의 사상을 형성 시켜 나갔다. 루터는 기념설을 주장하지 않았으며, 화체설도 부인하였으나 그리스 도의 참된 몸과 피가 떡과 포도주의 형태 아래 실질적으로 임재(real presence)한 다고 주장하였다. 즉 그리스도의 몸과 피가 떡과 포도주 속에(in), 그 밑에(under), 그리고 그것과 더불어(with) 공존한다고 하였다. 이것은 결코 화체설이 아니다. 루 터에 의하면 떡과 포도주는 그대로 있으면서 그리스도가 영적으로 임재하시기 때 문이다. 하지만 루터는 성체를 봉헌할 때 그리스도 자신이 봉헌에 참여한다고 하여 어느 정도 희생제사의 의미를 풍기기도 하였다. 그러나 결국 이 소론의 요지는 성 찬이 희생제사가 아니라 은혜를 주는 것이라고 하는 것이다. 이처럼 교제라는 개념 과 은혜라는 개념은 루터의 성찬론 이해에 있어서 열쇠가 된다.71)
루터는 성례의 결정적 요소는 신앙이라고 말하고 요한복음 6장은 영적 식사를 가르치는 것이라고 설명하였다. “오직 신앙의 식사 외에 아무런 식사도 살게 하지 못한다. 이는 이것이 진실로 영적이요, 생명 있는 식사이기 때문이다.” 이 시기에 루터는 공재설(Consubstantiation)을 형성하게 되었다. 따라서 그리스도 몸의 편재 성을 주장하였다. 즉 떡과 포도주는 물질이요, 상대적 요소이지만, 떡과 포도주 아 래서(under) 그리스도의 참된 살과 피가 은폐된 모양으로 존재한다. 이것은 보이지 않으나 그 본질을 이루고 있다고 한다. 이 성스러운 물질과 그리스도의 몸에 관한 신비스러운 관계를 해명하기 위해 그는 <가열한 열>이란 비유를 든다. 즉 철과 열 은 별개의 것이지만 열이 날 때 철은 열과 일체가 되며, 특수한 존재를 가지게 되 는 것이다. 루터는 이러한 비유를 들고 있으나 그 <공재>가 어떤 모양으로 실현되 는 지는 설명하지 않았다. 그 모양은 전혀 하나님의 뜻 안에 있는 것이라고 하였다.
70) 루터의 종교개혁 원리의 세 논문은 모두 1520년에 쓰여 졌는데, “그리스도인의 자유”, “교회의 바벨론 포로”, “독일의 기독교 귀족에게 보내는 서신” 등이다.
71) 이형기, Ibid., 115-116.
(3) 제 3기
루터는 “‘이것은 내 몸이라’에 대한 해석”의 논문72)에서 ‘이것은 내 몸이다’의 ‘이다’ 를 문자적으로 이해했다. 그래서 그는 쯔빙글리의 국소적 임재에 반대하여 그리스도의 신체적 현존을 강조한다. 이 주장은 영광을 받은 그리스도의 편재라는 교리에 의해 강화되었다. 그는 쯔빙글리의 희생제사의 기억에 대한 반대로 성찬식 에 있어서는 그 때마다 그리스도의 신체적 현존이 반복된다고 주장한다. 역사적 인 격이나 성례전적 인격이 동일한 인격으로서 “너희가 신을 두는 그곳에 거기에 너 희는 인간성을 두지 않으면 안 된다. 그것들은 분리되지 않고 하나의 인격이 되었 다.”73)고 주장하였다. 그는 쯔빙글리에 반대하여 신체적 그리스도의 신적 본성에 관하여다만상징적으로또는은유적으로말할수 밖에없다고말하는것은악마 적인 것으로 규정하였다. 루터는 인간적인 것과 신적인 것과의 통일에서 출발하여 그리스도 신체의 편재성 곧 부활한 그리스도의 편재에 관한 깊고도 환상적인 교설 에 도달하였다. 그리스도는 모든 것 안에 현존한다. 그러나 그가 우리에게 현존하 게 된 것은 성례전에서 자신을 우리에게 줄 때이다. 루터는 쯔빙글리와의 논쟁을 시작하면서부터 <육체적 식사>(leibliche Essen)란 표현으로 현실 임재 사상을 철저하게 전개하였다.
72) 이 논문은 1527년 출판된 것으로 본격적으로 성만찬을 행할 때 그리스도께서 어떻게 영 으로나 육으로 실제적으로 임하시는가 하는 문제를 다루고 있다.
73) Paul Tillich, A History of Christian Thought, de. C.E. Braaten,(New York: Happer and Row, 1968), 261.
나. 루터의 성찬론의 기독론적 근거
종교개혁은 그 모든 실제적인 일치와 더불어 성만찬에 관한 교리의 3가지 구별 된 유형을 만들어 냈다. 즉 루터, 쯔빙글리, 칼빈이다. 이렇게 차이가 나오게 된 결 정적인 요소는 성만찬에 있어서 그리스도의 임재가 어떻게 이루어지느냐는 것에 달려있다. 이런 교리 상의 차이점이 일어나게 된 것은 그들의 기독론적 이해가 상 이하기 때문이다. 그럼으로 각각의 기독론을 살펴보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 할 것이다.
루터는 그리스도의 두 성질, 인성과 신성에 관해 칼케돈적인 기독론에 근거를 두고 있다. 1519년 이후 그는 성만찬에 관해 로마 교회에 반대하여 그리스도의 현 실적 임재를 부정하는 쪽으로 기울어졌다. 그러나 “과격파”에 반대한 그는 성만찬 교리에 있어서 실재론적 개념을 강조할 필요를 느끼게 되었다.74) 그는 그리스도의 두 성질의 인격적 통일에 관한 관점에서 칼케돈적 기독론을 가지고 있는 ‘아다나시 우스 신조’(Athanasian Creed)를 높이 평가하고 있다.75)
루터, 쯔빙글리, 칼빈 모두 니케아에서 칼케돈에 이르는 처음 4개의 공의회에서 설정된 교리에 동조한다.76) 칼케돈 회의에서 교회는 그리스도의 두 본성이 합일 (union)되고, 나누어짐(division), 분리(separation), 혼합(mixture), 변함(change)이 이루어지지 않는다고 고백하고 이런 인격적 합일에서 그리스도의 두 본성은 속성 을 유지한다고 고백했다.77)
루터의 신학은 신성과 인성의 유기적 결합(Organic Union between the Divine and the Human)이라는 원리 위에 세워졌다. 하나님은 우리의 구원을 위해서 그리 스도 안에 그리고 그리스도를 통해서 임재 하신다. 이런 유기적 결합을 그리스도의 두 성질의 인격적 통일 즉 그리스도의 인성이 그의 신적 속성에 참여하여 이루어진 통일로 보았다. 그는 이것을 '위대한 속성'이라고 하였다. 후기 칼케돈 교리는 중세 스콜라주의에서 속성의 교류로 발전하였다. 참 하나님과 참 인간이 합하여 한 품격을 이루었는데, 그러한 결합에 관하여 속성의 교통이 생겨난 것이다.
루터는 이 교리를 붙잡고 그것을 무소부재, 즉 그리스도 편재(ubiquity)의 신적 속성이 두 본성의 성육신적 삼위일체적 합일에 근거하여 그리스도의 인간 본성과 교류된다고 전개하였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의 몸과 피에서 그리스도는 진정 교회의 모든 제단에 동시에 현존할 수 있다. 여기에서 루터는 성만찬의 기독론적 근거를 발견한다. 그리스도는 성만찬에 현존할 수 있다. 영적으로만이 아니라 진정으로 그 의 몸과 피로 현존한다. 왜냐하면 신적 속성 없이 신인격이 인간의 형태로 현존하 는 성육신은 진정한 현존과 전혀 관계가 없기 때문이다.
이런 의미에서 성만찬은 믿는 자들과 그들을 용서하시고 구원하신 그리스도를 결합시키고 동시에 믿는 자들 상호간을 연합시켜서 그들로 하여금 서로 돕고 사랑 하게 하는 것이다. 루터에 의하면 이것은 그리스도의 감화하심이 나타난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일 뿐 아니라, 그리스도 자신이 믿는 자들과 인격적 친교 가운데서 임 재 하신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루터는 떡과 포도주 가운데에 그리스 도의 몸과 피가 현실적으로 임재한다는 ‘현실적 임재’(the Real Presence)의 교리를 채택했다. 루터가 그리스도의 모든 인간적 행위 가운데서 그의 신적 활동을 발견한 것과 똑같이 이제 속성의 교통(Communicatio Idiomatum)78)의 개념은 ‘현실적 임 재’의 교리에 이르게 되었다. 반대로 말하면 모든 신적 속성이 인간 예수에게 전달 되며 그 결과로 영화된 몸의 실재적 임재가 가능하게 되는 것이다.
‘현실적 임재’에 대한 루터의 입장은 불한정적(indefinitive) 형식의 임재방법과 충족적(repletive)인 임재 방법을 말한다. 불한정적 임재방법은 한정될 수 없는 임 재를 가리키는 것으로써 예를 들어, 그리스도께서 무덤에서 나오신 일이나 닫힌 문 을 통해 방안으로 들어오신 것으로 설명되어질 수 있다. 또한 충족적 임재방법은 그리스도의 신성이 있는 곳에는 어디에서나 그의 인성도 있는 것으로, 쯔빙글리와 달리 그리스도의 몸이 하나님 아버지 우편이라는 어느 국한된 장소에만 있는 것이 아니라 도처에 있다고 주장하는 것이다. 이것은 초자연적 속성인 편재(ubiquity, omnipresence)를 가리키는 것이다. 루터는 그리스도의 몸이 그의 지상생활에서처럼 공간적 제약을 받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과 하나의 인격을 이루고 있고, 속성의 교 류가 이루어지고 있는 한 모든 장소에서 모든 것 위에 있다는 것이다. 루터는 그리 스도께서 세상에 임재하신 방법이 결코 지역적 혹은 한계적(circumscriptive)방법이 아니라고 한다.79)
74) J. L. Neve, Ibid., 484.
75) P. Schaff, Creed of Christendom, Vol. 1, (New York : Harper, 1984), 41.
76) Carl. E. Braaten. Principles of Lutheran Theology (Philadelphia: Fortress Press, 1983), 92.
77) Louis Berkhoh, 조직신학 (하), 권수경, 이상원 역 (서울: 크리스챤다이제스트, 1995), 550.
78) 그리스도의 한 인격 안에 있는 신성과 인성은 구분되면서도 합일을 이루고 각각 상호 교류한다는 것을 나타내는 용어로서, ''인격의 단일성’과 ‘본성의 교류’를 연결시키고자 의도 된 교리이며, 신인인 그리스도의 나뉘지 않는 인격적 생애와 사역을 예증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
3. 쯔빙글리의 기념설
본 단락에서는 쯔빙글리의 성만찬의 내용과 그의 성찬론의 기독론적 근거에 대해 살펴보고자 한다.
가. 쯔빙글리의 성만찬의 내용
쯔빙글리는 베른에서 초등교육을 받고 비엔나와 바젤 대학에서 고등교육을 마 칠 때까지 당시의 사상조류인 인문주의의 영향 속에서 성장하였다. 그는 1523년 6 월 로마 교회의 교리인 화체설(transubstantiation)은 초대 교회에는 없었고 후에 신학자들의 창작이라고 하여 거부하였다. 쯔빙글리는 중세 교리의 희생제사적 측면 에 반대하였다. 그는 십자가 희생제사의 반복이라는 미사의 사상에 반대하여, 단 한번 바쳐진 그 희생제사에 대한 기억 또는 기념으로서 주의 만찬을 설정하였다.80)그러므로 성찬에 관한 일차적인 언급은 그리스도의 죽음에 대한 것이며, 영광된 그 리스도와의 어떠한 합일에 대한 언급도 아니다. 그는 “예전은 각자가 내적으로 이 미 소유하고 있는 은총에 대한 공식적 증거로 주어진 것이다”고 하였다.81) 성만찬 은 과거에 일어난 사건을 대표하며, 본질적으로 현재의 사건이 아니다. 현재 사건 은 오직 주체 안에서만 즉 믿는 자의 정신에서만 일어난다. 그리스도는 신체적으로 현존하는 것이 아니라 영적으로 현존한다.
예전에 참가함으로써 각자는 교회의 일원임을 고백한다. 따라서 예전은 공식적 선서에 의한 단합과 충성의 표시이다. 그것은 선서 의무이다. 그러므로 그것은 예 전적인 의의를 가지고 있는 것이 아니라 희생적인 의의를 가지고 있는 것이다. 예 전은 초자연적인 내용을 가지고 있는 것이 아니라 그것은 내적으로 이미 성취된 것을 나타내는 외적 상징이라 볼 수 있다.
쯔빙글리의 성만찬 교리를 다시 한번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1 성찬식은 그리 스도의 희생 제사의 반복이 아니라 그 희생제사의 기념이다.
2 빵과 포도주는 그 리스도의 잘려진 몸과 흘린 피의 징표 또는 상징물이다.
3 그러므로 성찬식에 관 해 말한다는 것은 영광 받은 그리스도에 대한 것보다 오히려 십자가에 달린 그리 스도에 대한 언급이다.
4 성찬에서 그리스도는 참으로 우리의 양식이며, 그를 통 하여 우리의 영적 삶은 자양분을 받는다. 그러나 그는 믿음 안으로 소유된다.
5 그리스도의 몸의 참된 영성체로서 성찬은 특별히 교회 공동체의 삶을 위해 중요하 다. 그것은 그리스도에 대한 단합된 충성과 그 안에 있는 동료애의 징표와 서약이기 때문이다.
79) J. L. Neve, Ibid., 487.
80) Ibid., 477.
81) Ibid., 476.
나. 쯔빙글리의 성찬론의 기독론적 근거
쯔빙글리의 기독론에 의하면 그리스도의 인성은 하늘의 일정한 장소에 제약되 어 있다. 그리스도는 그의 신성으로는 하늘과 땅의 도처에 편재하지만 그러나 인성 으로는 피조물의 유한성을 벗어나지 못한다. 그는 인성으로는 성만찬에 임재할 수 가 없다. 왜냐하면 그는 인성으로서는 ‘하나님 보좌 우편’에 고정되어 있기 때문이 다. 그리스도가 하늘에 오르사 아버지 우편에 앉아 계신다는 것을 그는 문자적으로 이해하여 주님의 육체가 하늘에서 하나님 우편에 위치되어 있다고 생각하였다. 그 러므로 그리스도는 성만찬에서 육체적으로 현존할 수 없다.82)
82) Ibid., 474.
4. 칼빈의 영적임재설
본 단락에서는 칼빈의 성만찬의 내용을 살펴보고, 칼빈의 루터의 성만찬과 쯔 빙글리의 성만찬에 대한 비판을 살펴보고자 한다.
가. 칼빈의 성만찬의 내용
칼빈이 성만찬을 어떻게 이해하고 있는가를 알려면 먼저 그가 성례전을 어떻게 이해하고 있는가를 고찰해야만 한다. 칼빈은 성례를 그의 저서인 기독교 강요에서 다음과 같이 기술하고 있다.
성례는 우리의 약한 믿음을 받쳐 주기 위해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대한 그의 선하신 뜻의 약속을 우리의 양심에 인치시는 외형적인 표이고, 우리 편에서는 그 표에 의해서 주와 주의 천사들과 사람들 앞에서 주께 대한 우리의 충성을 확인하는 것이다. 더 간단히 정의하면, 성례는 우리에게 대한 하나님의 은혜를 외형적인 표로 확인하는 증거이며 동시에 우리는 하나님께 대한 우리의 충성을 확인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어느 쪽 정의를 택하든간에 어거스틴이 내린 정 의와 뜻과는 차이가 없다. 그는 성례를 ”신성한 것의 보이는 표“ 또는 ”보이지 않는 은혜의 형태“라고 가르친다.83)
그러므로 떡과 포도주는 말씀 안에서 우리에게 약속되는 것을 나타내는 징표요, 영 상이요, 상징이라는 것이다.84) 이러한 관점에서 칼빈은 “떡과 포도주가 육신이 생 명을 유지하는 것과 같이 우리의 영혼은 그리스도에게서 양식을 얻는데, 그리스도 와 연합되었다는 이 신비는 본래 이해할 수 없기 때문에 보이는 표징으로 그 신비 의 형상을 보여 주시고, 담보물과 표를 주심으로써 우리가 마치 눈으로 보는 것 같 이 확실하게 알게 하신다”라고 말하고 있다. 다시 말해서 이것은 하나의 신체에 영 양과 생명을 주어 신체를 유지하는 것과 같이, 그리스도의 몸은 우리의 영혼에 힘 과 생명을 주는 유일한 양식이라는 것이다.
칼빈은 성만찬에 대해 말할 때 성만찬에 관한 예수님의 제정의 말씀은 문자적 으로 해석되어져서는 안 되고, 성례전적으로 해석되어져야 한다고 말한다.85) 또한 칼빈은 제정의 말씀의 해석을 순전히 비유적으로만 하는 것도 반대한다.86)
이제 우리는 좀더 자세하게 성만찬과 예수 그리스도의 관계, 성만찬과 성령과의 관계에 대해서 살펴보고자 한다.
83) John Calvin, Ibid., 336-337.
84) Wilhem Niesel, 칼빈의 신학, 이종성 역 (서울: 대한기독교서회, 1973), 210
85) John Calvin, Ibid., 473-474.
86) Ibid., 470-471
(1) 성만찬과 예수 그리스도
칼빈은 흔히 성만찬에서 주어지는 것이 무엇이냐는 질문에 대해 루터파나 로마 카톨릭의 그것과 같다고 말한다. 우리가 진정 성찬에서 먹는 양식은 그리스도의 몸 과 피에 관한 것이다. 하나님의 자녀로서, 하나님의 가족의 일원으로서 우리들은 전 생애를 통하여 하나님에 의해서 자양분을 공급받지 않으면 안 된다. 그리스도는 떡과 포도주의 표식으로 묘사된 영혼의 유일한 양식이다. 그리스도께서 독실한 자 들과 함께 하심은 인간으로서는 이해할 수 없는 신비이다. 그리스도께서는 우리의 영혼의 유일한 음식이다. 성부께서는 우리를 이 그리스도에게로 초대하시고, 이 그 리스도와 교류함으로 힘을 얻어 영생에 이르게 하신다. 그러므로 주님의 성찬의 특 별한 열매는 그리스도와의 연합이다. 떡과 포도주가 몸에 유익을 주듯이 그리스도 의 살과 피는 영적으로 영혼을 유익하게 한다. 성만찬은 인간의 죄로부터 구속과 영생에 들어가는 것과 그리스도와 더불어 한 몸으로 성장해 나가는데 도움을 준다.
성례전에 있어서 그리스도의 증거는 마치 우리들은 우리들 가운데 실제로 그리 스도가 육체적으로 임재하신 것처럼 충만하게 그리스도께서 영적으로 임재하신다 는 것이다. 칼빈은 몸의 실체를 물질적 실체로 생각하지는 않았다. 칼빈은 지상적 물질이나 육체적 혼합 등으로 그리스도의 몸을 표현하는 것을 피하고 있다.
(2) 성만찬과 성령
성만찬의 중심사인 예수 그리스도는 인간과 만물의 생명의 근원으로서 생명의 말씀이시요, 창조주 아버지 하나님의 말씀으로서 생명을 주신다. 그런데 이 생명의 말씀은 성육신하시어 우리의 눈이 볼 수 있고, 만질 수 있도록 자기를 내어주신 하나님의 아들이시다.87) 이런 예수 그리스도를 성만찬에서 우리와 연합시키는 것이 바로 성령의 역사이다.88)
성령께서는 시간적 공간적으로 교통이 불가능하게 된 전 예수 그리스도(the whole Christ)와의 연합을 가능하게 하신다. 특히 초월적 차원에 계신 그리스도의 신비체와의 연결은 결코 인간이 마음대로 할 수 없는 것이다. 어떤 해석적 이론이 나 역사적 연속성이나 그 어떤 인간적인 노력이나 잘못된 신비주의에 의해서는 불 가능하다. 성령을 통해서만 성육하신 중보자 예수 그리스도와의 사귐이 일어난다는 것이다.89) 또한 장소적으로 멀리 떨어져있는 그리스도의 살이 우리의 양식이 되기 위하여 우리에게까지 들어온다고 하는 것은 믿기 어렵다고 보여 지더라도 우리는 성령의 숨은 힘이 우리의 모든 감각을 얼마나 초월해 있는가를, 그리고 그 무한한 위대함을 우리의 척도로 측량하려고 하는 것이 얼마나 어리석은가를 생각해야 할 것이다. 즉 성령께서 공간적으로 떨어져 있는 일들을 정말 참으로 하나로 결합시키 신다고 하는 사실이 그것이다.
칼빈에게 있어서 성만찬은 로마 카톨릭의 화체설과 같은 물질적 실재론(realism) 도 아니요, 쯔빙글리와 같은 영적 상징주의도 아니다. 칼빈에 의하여 성만찬의 신 비는 2가지 사실에 있다. 첫째는 물체적인 기호로써(physical signs) 불가견적인 것 을 대표하는 것이요, 둘째로는 영적인 진리(spiritual truth)가 이 상징적 기호를 통 해서 나타나는 것이다.90)
87) 이형기, Ibid., 491.
88) John Calvin, Ibid., 346.
89) 이형기, Ibid., 492.
90) 이근삼, Ibid., 60.
나. 루터의 성만찬관에 대한 비판
칼빈이 그리스도와 임재방식에 대해 논할 때 그는 루터나 로마 카톨릭과는 전 혀 반대의 입장을 취한다. 아무도 그리스도의 몸과 피가 우리와 교제하고 있다는 사실을 부인하지 못할 것이다. 문제가 되는 것을 교제의 방법, 즉 특성이다. 성만찬 에 있어서 그리스도의 몸의 임재는 결코 물질적 실재론으로 이해해서는 안 된다. 성만찬에서 믿는 자는 상징을 통하여 진정으로 그리고 실제로 주님의 몸과 피에 참여한다. 우리는 이 떡과 포도주를 상상력이나 이성의 이해로써 수용하는 것이 아 니다. 그리스도 자신을 영생의 영양소로 받아들이는 것이다. 그리스도와 그의 업적 에 관해서 칼빈은 그리스도의 두 성질을 말한 칼케돈의 기독론을 따랐다. 그러나 쯔빙글리와 함께 그는 루터의 속성의 교통(communicatio idiomatum)에 관한 가르 침을 반대하였다. 그 중에서도 특별히 그리스도의 인성이 편재하여 그의 신적 속성 에 참여한다는 개념 즉 '위대한 본성'에 관한 가르침에 반대하였으며, 칼빈은 유한 한 것은 무한한 것을 포용하지 못한다(finitum non est capax infiniti)고 하는 원리 를 고수하였다.
다. 쯔빙글리의 성만찬관에 대한 비판
칼빈은 순수한 상징주의적 예전 개념, 특히 쯔빙글리의 성만찬 개념을 가리켜서 ‘모독적인 것’이라고 하였다.91) 칼빈의 견해에 의하면 성만찬의 신비는 형체적인 표 적과 그러한 표적에 의하여 상징되는 영적 진리의 두 부분으로 이루어져 있다. 이 러한 진리는 세 가지의 요소를 내포하고 있는데 그것은 곧 의미와 그 의미에 의존 하는 실체와 그리고 이 둘로부터 비롯되는 결과 혹은 효력이라고 하였다. 의미는 그리스도의 약속에 있다. 즉 죄를 용서하시고자 우리에게 주신 몸과 피로써 제정하 신 말씀이 곧 그 의미인 것이다. 이러한 그리스도의 약속은 그 표적과 서로 얽혀 있다. 이러한 약속을 들을 때에 우리는 생명을 주는 저 그리스도의 죽음이 우리에 게 그 효험을 나타낼 것이라고 하는 확신을 가지게 된다. 성만찬의 실체는 죽으시 고 부활하신 그리스도이다. 성만찬의 결과는 구속의 성화, 영생 그리고 그 밖에 그 리스도께서 우리에게 베푸시는 모든 은혜로 이루어져 있다.
91) J. L. Neve, Ibid., 520.
5. 종교 개혁자들의 성만찬 신학의 비교
중세 카톨릭 교회가 타락의 길을 걸으면서 성만찬 또한 신비화되고 그 본래의 의미를 잃어버리고 말았다. 종교개혁자들의 주요 초점은 신비화된 예배를 바로 잡는 것이었다. 개혁의 대표적인 3인인 루터, 쯔빙글리, 칼빈은 공통적으로 신비화된 성만찬을 바로 잡는데 온 힘을 기울였다. 그들은 로마 카톨릭의 7성례를 2성례, 즉 세례와 성찬으로 줄인 후, 이 성례전을 복음 설교에 덧붙여진 것으로 보았다. 이를 통하여 개혁자들은 로마 카톨릭이 무시했던 말씀의 위치를 부각시켰다. 그들은 또 한 모두 다 성찬을 반복적 희생제사로 보는 중세 카톨릭 교회의 화체설을 거부하 였다. 그러나 이러한 일치점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성만찬에 대하여 서로 의견의 일 치를 보지 못하고 치열한 성만찬 논쟁에 휘말리게 되었다. 여기에서는 개혁자들이 주장하는 성만찬의 공통점은 무엇이고, 차이점은 무엇인지를 살펴봄으로써 성만찬 으로 인한 교회분열의 원인을 살펴보고자 한다. 또한 이러한 원인 진단을 통하여 이에 대한 해결점을 모색하고자 한다.
가. 개혁자들의 공통점
(1) 복음 설교의 위치를 세례와 성찬보다 격상시켰다는 점이다.
루터는 말씀을 무시하는 성례전 체계가 중추를 이룬 로마 카톨릭에 반대해서 복음 말씀의 중요성을 부각시키면서 여기에다 2가지 성례전을 포함시켜서 교회의 표지로 삼았고 두 성례전을 은혜의 수단으로 인정하였다.
쯔빙글리도 마찬가지로 복음 말씀과 신앙을 우선하여 복음 신앙을 우선적인 것 으로, 그리고 성찬을 부차적인 것으로 배열하였다. 그는 요한복음 6장을 복음 설교 로 여길 정도로 말씀과 복음의 중요성을 앞세운다.
칼빈에게 있어서 성찬은 말씀 설교의 부록으로서 신자의 연약한 믿음을 북돋아 주고 일으켜 세우는 외적 징표이나 파기해도 가능한 것으로 여기지 않았다. 그에게 있어서 성례전이란 하나님의 은혜를 증거하고 하나님의 선의를 인증하며 우리에게 증거함으로 우리의 신앙을 지탱하고 양육하고 확고하게 하며 증가시킨다고 한다. 그러므로 성찬은 그에게 역시 은혜의 수단이요, 설교와 2가지 성례를 교회의 표지 로 삼았다.
(2) 성찬을 통하여 예수 그리스도와의 연합과 성도간의 교제를 강조하였다.
루터는 성도들은 성찬을 통해 예수 그리스도와 교제하며 신자끼리의 화목을 공 유한다고 말하고, 쯔빙글리 역시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통한 구원과 더불어 신 자가 그와 영적으로 교제하고 또 신자들 상호간에 교제한다고 주장했다. 칼빈은 말 씀설교와 성례전은 성령의 역사로 인하여 신자들을 예수 그리스도에게 연합시키고 성도 간에 교제를 이루게 한다고 말하며 말씀의 주제가 그리스도이신 것처럼 성례 전의 주제 역시 그리스도이시고 이를 운행하시는 분은 성령이시라고 말했다.
나. 개혁자들의 상이점
루터, 쯔빙글리, 칼빈의 성만찬 이해에 있어서 주된 상이점은 성만찬에 결부된 기독론과 떡과 즙에 임재하시는 예수 그리스도의 임재 양태에 관한 것이다.
루터는 하나님 아버지의 우편이라는 말의 해석을 특정 장소가 아닌 모든 곳에 편재(ubiquity)한다는 해석을 통용시키고 이 해석에 부활 승천하신 예수 그리스도 의 신비체의 위치를 대입시킨다. 그리하여 이 주장을 성찬에 적용시켜서 자신의 이 론의 타당성을 증거하려고 하였다. 그리고 공간문제에 의해 야기되는 모순을 제거 하기 위해 예수 그리스도의 속성(신성과 인성)이 교류한다는 이론을 끄집어내어 봉 헌된 떡과 잔 안에 그 밑에 그것과 더불어 공존하신다고 본다. 그러므로 이 떡과 잔을 먹고 마시는 자는 예수 그리스도의 신비체로서의 본질적인 살과 피를 먹고 마시는 것이라고 하였다.
쯔빙글리는 국한이론을 제기하여 예수는 승천하셔서 하나님 우편이라는 특정 장소에 계심으로 지상에 오시지 않는다고 하였다.92) 그에게 있어서 성찬의 의미는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사건을 기념하며 말씀을 통하여 신앙으로 신자에게 주어 지는 것이다. 이는 루터의 공재설과 칼빈의 영적임재설, 로마 카톨릭의 화체설과는 달리 관념적인 차원의 성찬론이다
칼빈은 예수께서 승천하셔서 하나님 우편에 계시나 말씀을 통해 성찬에 성령의 역사로 신비적으로 임재하신다고 주장한다. 그에게 있어서 성찬의 요소는 예배의 대상이 되지는 않지만 신자가 수찬할 때 예수 그리스도의 신비체의 살과 피를 먹 고 마신다고 말한다. 그러나 무가치한 수찬자에게는 도리어 성찬이 효용 불가할 뿐 아니라 자신에게 해악이 될 뿐이라고 주장한다.
이처럼 개혁자들의 성찬 이해의 차이점은 성찬에 결부된 기독론과 떡과 잔에 임재하시는 예수 그리스도의 임재 양태에 관한 것이었다.
92) J. L. Neve, Ibid., 474.
정리
이 장에서 지금까지 개신교 성만찬 논쟁의 주요 쟁점이 무엇이었는지, 또한 개 혁자들 주장의 공통점과 차이점이 무엇인지에 대하여 살펴보았다. 기독론에 대한 역사적 논쟁에서 그들 또한 자유로울 수 없었으며, 그 한계점으로 인해 결국 분열 할 수밖에 없었다는 것은 매우 불행한 일이라 할 것이다. 그러나 그들 모두가 올바 른 성만찬 신학을 세우고자 노력하였고 성경적 성만찬을 행하기 위해 노력했다는 점에 대하여 우리는 그 공로를 인정해야만 할 것이고, 그들 한 사람 한 사람의 주 장에 귀를 기울여야 할 것이다.
제 4 절 종교개혁 이후
교회의 잘못된 성만찬 관습은 종교개혁자들의 손에 의해서 많은 부분 시정되었 으나, 성만찬을 자주 하지 못했던 관습만큼은 고치지를 못했다. 여기에 대한 책임 은 쯔빙글리에게 돌아가야 할 것이다. 그는 성만찬을 은총의 채널로 생각하지 않았 고 또한 기독교 예배에 필수적인 부분으로 생각하지도 않았다. 따라서 그는 한 달 에 한 번 이상의 성만찬을 주장한 루터나 칼빈과는 달리 한 해에 네 번 정도로 성 만찬의 횟수마저도 고정시켜 버렸던 것이다. 이러한 종교개혁의 역기능으로 인하여 대부분의 개혁교회들이 성만찬의 중요성을 간과하게 되었다.
그러나 루터교회와 헝가리의 개혁교회는 주일 성만찬 예배를 계속하였다. 바젤에서는 교회들이 번갈아 가면서 매주 성만찬 예식을 거행했기 때문에 신자들은 원 하기만 하면 매주일 성찬을 받을 수 있었다.
영국의 종교개혁가 토마스 크랜머(Thomas Cranmer, 1489-1556)는 카톨릭 교회 의 예배와 개혁 교회의 예배의 두 모형을 절충하여 1549년 영국 교회를 위한 “공 동기도서”(The Book of Common Prayer)를 집성한 사람으로 예배의식을 간소화시 키는 한편, 평신도는 반드시 성만찬 때에 떡과 잔을 받아야 한다고 주장하였다.93)이후 영국국교회(성공회) 예배는 다양한 형태로 발전하였다. 주교좌성당에서는 주 일 성만찬을 지속시켰고, 다른 교회에서는 최소한 한 달에 한 번 성만찬을 행하였 다. 19세기 중반에 발생한 ‘옥스퍼드 운동’94)의 영향으로 인해서 19세기 말엽에는 대부분의 교회가 기도서에서 제시하는 것처럼 매주일과 축일마다 성만찬을 행하였 으며, 일부 지역 교회에서는 주간 중에 한 번 혹은 그 이상의 성만찬을 행하기도 하였다.95)
그러나 이런 움직임은 극소수에 불과했고 종교개혁 이후 개신 교회들은 크게 보면
1 반 예전적 경향,
2 말씀의 이해에 치중하는 경향,
3 체험에 치중하는 경 향의 3대 조류를 따라 흘러오게 되었다.96)
첫째, 반 예전적인 부류는 예배의 영적인 측면 즉 성령의 역사를 강조하여 형식 과 틀을 부정한 부류로서 청교도, 초기 침례교, 회중교회, 퀘이커교가 여기에 속한 다.
둘째, 말씀의 이해에 치중한 부류는 말씀의 연구를 통해서 인간의 지성에 호소 하는 부류로서 초기 회중교회와 장로교회가 여기에 속한다. 마지막으로 신앙 체험 을 강조하는 부류는 경건주의, 모라비안주의, 그리고 부흥운동과 관련된 웨슬리안 이 여기에 속한다고 할 수 있다.97)
93) Robert E. Webber, 예배학 (Worship Old and New), 김지찬 역 (서울: 생명의 말씀사, 1988), 99.
94) 19세기 영국의 급진적 합리주의, 회의론, 무감각, 자유주의, 그리고 비도덕성에 반발하여 발생한 영국교회내의 중요한 종교운동을 말한다. 이 운동의 지도자들은 교회 전통에로의 복 귀와 사제와 신자들의 경건과 헌신 그리고 수준 높은 예배를 희망하였다. 결국 이 운동은 친 카톨릭교회 성향의 학자들에 의해서 주도되었고, 요한 헨리 뉴만(John Henry Newman) 을 위시하여 약 일천여명의 학자와 사제들 그리고 신자들이 카톨릭교회로 개종하였으며, 영 국 교회의 성만찬 예배는 변화를 겪게 되었다. Walter A. Elwell, ed. Evangelical Dictionary of Theology (Grand Rapids: Baker Book House, 1985) s.v. "Oxford Movement" 95) Massey H. Shepherd, Jr. 교회의 예배: 예전학, 정철범 역 (대한기독교서회, 1991), 148. 96) Robert E. Webber, Ibid., 99.
97) Ibid., 99-107.
41
개신교들의 이러한 경향으로 인해서 결국 성만찬은 주일 예배에서 제자리를 찾 지 못한 채, 주변부 몇 사람들의 외침으로 끝나고 말았다. 이런 외침을 했던 사람 들 가운데는 아일랜드 듀블린의 대주교였던 윌리암 킹(William King, 1650-1729)과 뉴욕 시티의 장로교 목사였던 요한 미쉘 메이슨(John Mitchell Mason, 1770-1829), 그리고 감리교회를 세운 요한 웨슬리(John Wesley)가 있다.
이들의 성만찬에 대한 강조가 교단적인 운동으로 번진 것은 그리스도의 교회에 서였다. 19세기 초에 미국에서 시작된 그리스도 교회는 ‘초대교회로 돌아가자’는 환 원운동을 펼치면서 침례와 성만찬의 성서적 회복에 힘썼다. 이 운동은 장로교 목회 자들이었던 토마스 캠벨(Thomas Campbell)과 발톤 스톤(Barton W. Stone)에 의 해서 전개되고, 토마스 캠벨의 아들이었던 알렉산더 캠벨(Alexander Campbell)에 의해서 꽃피운 성서의 권위회복과 교회연합운동이다. 이 운동은 예배에서의 말씀선 포와 성만찬의 거행이 초대교회 예배의 핵심이었다고 믿고 지난 200 여 년 동안 간소화된 예식을 매 주일마다 지속적으로 실시하고 있다.
이러한 운동이 범 기독교적으로 일기 시작한 것이 1960년대 이후이다. 먼저 카 톨릭 교회가 예배갱신운동을 펼쳤다. 카톨릭 교회는 1962-65년에 열린 제 2차 바티 칸 공의회를 통해서 예배 중에 설교와 신자의 영성체를 회복하였고, ‘미사경본’의 모국어 번역이 허락되었으며, 이를 통하여 비로소 미사가 모국어로 집례 될 수 있 었다.
한편 개신교 측에서도 이때에 리츠만(H. Lietzmann), 쿨만(O. Cullmann), 그리 고 폰 알멘( J.J. Von Allmen)과 같은 신학자들이 초대교회 예배 연구에 대한 업적 들을 쏟아 놓기 시작하였다. 그리고 이러한 신학자들의 업적이 도화선이 되어 말씀 과 주의 만찬이 함께 있는 균형 있는 예배의 복원에 대해서 세계 교회들이 깊은 관심을 쏟기 시작하였다. 그 열매가 바로 1982년 1월 페루의 수도 리마에서 카톨릭 교회, 동방 정교회, 성공회, 개신 교회의 대표들이 모여서 교파 간에 이해를 달리하 는 침례, 성만찬, 그리고 교역에 대해서 조정된 합의를 이룬 것이라고 볼 수 있다. 이는 이들 침례, 성만찬, 그리고 교역에 대해서 교파 간에 상호이해와 일치를 촉구 하기 위한 것으로서 이 내용을 담고 있는 책이 바로 “리마문서”인 것이다. 이 문서 가 채택된 이후 침례, 성만찬에 대한 성례전 의식은 그 어느 때보다 새로워지고 있 고, 그 의미도 선명해 지고 있으며 ‘리마예식서’에 따른 성만찬 예배가 실험적으로
여기저기서 행해지고 있다.98)
93) Robert E. Webber, 예배학 (Worship Old and New), 김지찬 역 (서울: 생명의 말씀사, 1988), 99.
94) 19세기 영국의 급진적 합리주의, 회의론, 무감각, 자유주의, 그리고 비도덕성에 반발하여 발생한 영국교회내의 중요한 종교운동을 말한다. 이 운동의 지도자들은 교회 전통에로의 복 귀와 사제와 신자들의 경건과 헌신 그리고 수준 높은 예배를 희망하였다. 결국 이 운동은 친 카톨릭교회 성향의 학자들에 의해서 주도되었고, 요한 헨리 뉴만(John Henry Newman) 을 위시하여 약 일천여명의 학자와 사제들 그리고 신자들이 카톨릭교회로 개종하였으며, 영 국 교회의 성만찬 예배는 변화를 겪게 되었다. Walter A. Elwell, ed. Evangelical Dictionary of Theology (Grand Rapids: Baker Book House, 1985) s.v. "Oxford Movement"
95) Massey H. Shepherd, Jr. 교회의 예배: 예전학, 정철범 역 (대한기독교서회, 1991), 148.
96) Robert E. Webber, Ibid., 99.
97) Ibid., 99-107.
98) 박근원, 한국교회 성숙론 (서울: 대한기독교출판사, 1986), 10-17.
정리
종교개혁 당시의 성만찬 논쟁은 후대에 가서 교파간의 차이를 극복하기는커녕 더욱 더 분열하였고 이를 고착화하기에 이르고야 말았다. 특별히 개혁주의 전통에 서있는 교회들은 쯔빙글리의 영향으로 성만찬을 소홀히 여기는 경향으로 흘러가게 된 것이다. 비록 이에 대한 반성과 성만찬 회복 운동이 간간이 일어났으나 아직까 지 이러한 영향은 오늘날의 교회전통에 영향을 미치고 있다. 특별히 1960년대 이후 부터 일어난 카톨릭 교회의 예배갱신운동은 개신교에 큰 귀감이 되었다고 할 것이 다.
제 4 장 성만찬의 바람직한 방향
우리는 1장에서 개혁주의 성만찬에 대한 재검토가 왜 필요한 것인가? 라는 문 제를 제기하였다. 이어서 2장에서는 성만찬의 기원과 의미에 대한 구약적, 신약적 배경을 설명함으로써 성만찬의 의미와 중요성을 조명해 보았다. 제 3장에서는 성만 찬 논쟁의 역사를 살펴봄으로써 과연 논쟁의 요점이 무엇인가를 살펴보았다. 특별 히 종교개혁시기의 개혁자들의 성만찬 신학을 살펴봄으로써 교회분열의 원인을 분 석해보았다. 또한 결과적으로 성만찬 소홀로 이어진 종교개혁의 문제점과 또한 이 에 대한 개혁주의 내에서의 성만찬 회복의 노력들을 살펴보았다. 이제 4장에는 한 국교회 성만찬의 문제점은 무엇이고, 그런 문제점을 극복하기 위해 어떤 노력이 필 요한가? 더 나아가 교파간의 관점의 차이를 극복하고 교회일치의 목표를 이루기 위해 어떤 노력이 필요한가? 라는 문제를 논의해 보고자 한다. 본 논문은 이를 신 학적 방면, 예전적 방면, 그리고 에큐메니칼적 방면에서 살펴보고자 한다.
제 1 절 신학적 방면
오늘날 한국 개신교회 예배의 두드러진 특징이라면 말씀과 성만찬이 조화를 이 룬 예배를 교파를 불문하고 거의 찾아보기 어렵다는 것이다. 루터교나 그리스도교 를 비롯한 몇몇 교단들이 매주일 공예배에서 성만찬적 예배를 드리고 있지만 성만 찬을 통하여 주님께서 고난 받으시고 죽으시고 다시 사신 구속의 진리를 깊이 체 험하지 못하고 다분히 전통적 시행의 답습에 그치고 있다. 성만찬적 예배를 드리고 있는 교회마저도 예배의 비중은 성만찬보다는 거의 말씀 선포가 훨씬 중시되고 있 는 것이 오늘날의 현실이다. 그렇다면 왜 한국 교회에 성만찬 신학이 왜곡되어 들 어오게 되었는가? 그 원인을 먼저 살펴보고, 또한 이런 왜곡된 성만찬 신학을 바로 잡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하는가를 살펴보고자 한다.
1. 한국 교회 성만찬 신학부재의 원인과 결과
성만찬은 언제나 교회의 거룩한 예배행위이며, 또한 그 생활의 한 부분이다. 예 수께서 성만찬을 제정하신 이래 오늘에 이르도록 교회는 이 성례를 인간에게 주어 진 하나님의 은혜를 체험하는 최고행위로 생각하였다. 그래서 초대교회로부터 성만 찬은 예배의 중심이 되었고, 초대 기독교 공예배의 성서적인 원형은 설교와 성만찬 을 행하는 것이었다. 그것이 중세 교회에서 신비적으로 확대 변질되어 버린 점도 있지만 지금도 동방과 서방 교회는 그 예전의 균형을 유지하는 전통을 고수하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종교개혁자들은 교회는 말씀과 성만찬을 바르게 선포하고 집 례 되어지는 곳이라는 신앙을 갖게 되었으며, 그것이 신앙적 전통으로 우리에게도 전수되어 온 것이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한국교회는 초대교회의 전통을 이어가지 못하고 성만찬과 말씀의 균형을 잃고 말았다. 오늘날 한국교회 예배의식 형태를 전승시켜 주었던 미 국 선교사들의 복음주의적이고 경건주의적인 신앙은 선교 100여년 동한 한국교회 예배를 말씀과 기도와 찬송만을 주창하게 하였다. 예배의식과 예배신학이 없는 “말 씀중심”만의 예배는 하나님 앞에 나온 무리들에게 하나님을 섬기는 구체적인 행위 를 부여하지 못했다. 한국교회는 마치 예배의 성패가 목회자의 설교에 달려있는 양 지나치게 설교에 치중하는 경향을 보이게 된 것이다. 더욱 안타까운 것은 예배 형 태의 새로운 시도를 거부하고 선교사들로부터 전해 받은 것만이 복음적이고 보수 적인 것인 양 고집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와 같은 성례전을 소홀히 하고 말씀을 중심으로 한 예배는 결국 목회현장에 서 목회자의 권위와 강단의 위치가 점점 높아지게 하고, 종교적 이기주의나 내세 지향적인 기복적 구원사상에만 한정된 말씀을 선포하는 양상을 나타내고 있다. 결 국 감격과 감사와 사랑과 위로와 치유와 사죄와 소망과 헌신의 결단을 자연스럽게 생기게 하고, 형제간의 사랑과 친교의 일체감을 불러일으키는 성만찬과 생명력 있 는 하나님의 말씀의 균형이 깨어지고 만 것이다.
그렇다면 우리는 어떻게 이렇게 왜곡되고 불균형한 예배의 모습을 회복할 수 있을까? 본 논문은 먼저 개혁주의 신학의 시초라고 할 수 있는 칼빈의 성만찬 신 학을 알아보고, 나아가 우리가 지향해야할 성만찬 신학을 살펴보고자 한다.
2. 개혁주의 전통에서 바라본 성만찬의 회복의 필요성
소위 개혁주의의 기원은 칼빈의 종교개혁으로 시작되었으며, 칼빈의 교리는 장 로교회의 교리로서 기초를 두고 있다. 특히 칼빈은 말씀과 성례전의 비중을 같게 취급하여 개혁교회의 예전을 그의 “기독교강요”를 통하여 완성시켰다. 그러나 오늘 날 장로교회의 성례전은 이러한 칼빈의 교리와는 무관하게 형식적인 면에 치우쳐 있다고 할 수 있다. 칼빈은 그의 “기독교 강요”에서 이렇게 언급하고 있다. “주의 식탁은 적어도 일주일에 한 번은 그리스도인들의 집회에 진설해서 성찬이 선언하 는 약속으로 우리를 영적으로 먹이게 하는 것이 옳다“99)
뿐만 아니라 칼빈은 성찬은 자주 집행하라고 했다. 왜냐하면 이 성찬을 통해 그리스도와 연합을 확신하며 교제하며 하나님의 자비를 선포하며 상호간의 사랑을 증진하고 서로의 사랑을 증명하며, 그리스도의 몸 안에서 단결하는 데 유익이 있기 때문이다.100) 칼빈은 말씀의 선포와 성만찬의 집례를 통한 예배만이 올바른 예배라 고 믿었다.
칼빈은 “기독교 강요”에서 성례전의 목적은 우리의 믿음을 강화하는 데 있다고 주장하였을 뿐 아니라, 우리의 믿음을 자라는데 말씀과 성례가 동등하게 역사한다 고 하였다. 이렇게 볼 때 오늘날 교회는 말씀중심과 성찬소홀의 불균형 속에서 교 회의 참모습을 잃어가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칼빈은 성례전은 눈으로 예식을 봄으로써 말씀을 귀로 듣는 것과 같은 성령의 역사가 일어난다고 하였다. 칼빈은 이 성령의 역사를 더욱 세밀히 다루었는데, 즉 눈은 햇빛에 의해서 보게 되며, 귀는 음성의 소리에 의해서 듣게 되며, 이 시력과 청력을 하나님께서 보고 듣게 하신 것처럼 우리의 마음에 역사하는 성령의 내적인 조명에 의해서 성례전과 말씀이 우리 마음속에서 역사한다는 것이다. 성만찬의 목 적이 그리스도와의 연합을 시작하는 믿음을 강화시키는데도 불구하고 오직 말씀 중심의 목회강연이 될 때, 예배는 시청각적 균형을 잃고 마는 것이다. 칼빈은 성례 를 설명하면서 시청각의 동원이야말로 성령의 도구라고 말하였다.101)
99) John Calvin, Ibid., 518.
100) Ibid., 516.
101) Ibid., 342.
칼빈은 성만찬 소고에서 하나님께서 성만찬을 제정하신 이유를 이렇게 쓰고 있 다.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의 몸과 피와 더불어 교제한다고 말할 때, 이것이 너무도 숭고하고 이해할 수 없는 신비이기 때문에, 또한 우리 자신이 너무 천박하고 둔 감해서 하나님과 관련된 가장 작은 것조차 이해할 수 없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우리의 능력이 수용하는 정도에 따라 우리를 이해시키심은 중요하다. 바로 이런 이유에서 주님은 우리를 위해 성찬을 제정하셨다.102)
그런데 오늘날 그리스도인들은 자신들이 받았던 세례의 참의미와 가치를 상실 하고 시간이 지나면서 무뎌진 감각 속에 역동적인 생명력을 잃은 채 살아가고 있 다. 그 직접적인 원인중의 하나는 세례와 함께 가졌던 자신의 결단과 감격을 다시 한번 되새겨야 할 성만찬의 집행이 하나의 요식행위로 이루어지고 있기 때문일 것 이다. 그러므로 성만찬은 그리스도와 성도간의 긴밀한 관계를 유지 발전시키는데 불가분의 관계를 가지고 있다고 할 것이다.
99) John Calvin, Ibid., 518.
100) Ibid., 516.
101) Ibid., 342.
102) 칼빈, 사돌레토에의 답신 성만찬 소고, 박건택 편역 (서울: 도서출판 바실래, 1989), 90
3. 성만찬 신학의 문제점에 대한 대안제시
본 단락에서는 성만찬 신학의 문제점을 기념에 치우친 성만찬, 감사의 부족, 코이노니아의 부족, 디아코니아의 부족, 천국잔치로서의 인식 부족 등 4가지 방면에 서 살펴보고 그 대안을 제시코자 한다.
가. 기념에 치우친 성만찬
모든 선교지역과 마찬가지로 한국 개신교회도 복음을 전해 준 선교사들의 신학 에 많은 영향을 받았다. 특히 한국교회는 미국으로부터 건너 온 장로교와 감리교 선교사들의 영향을 많이 받았다. 그런데 미 대륙의 신앙은 영국 청교도들이 그 모 체라 할 수 있다. 청교도들은 영국에서 종교적 박해를 피해 미국으로 이주해온 사 람들이다. 이들은 영국 성공회의 개혁을 부르짖으면서 예배모범에 있어서는 성공회의 것을 거부하고 쯔빙글리의 예배모범을 수용했고, 당연히 쯔빙글리의 성만찬관을 그대로 수용했던 것이다. 이러한 청교도들의 성만찬관은 외국 선교를 통하여 제 3 세계 교회로 급속히 확산되면서 한국교회에까지 영향을 끼치게 된 것이다.103)
현재의 한국 개신교회의 상황을 보면 성만찬 본래의 보편적이고 성경적인 의미 가 많이 상실되어 있음을 알 수가 있다. 오늘날 많은 교회가 성만찬을 기념의식 정 도로 밖에 생각하고 있지 않는 것이 우리의 실정이다. 그렇다면 칼빈의 입장을 따 르는 장로교회의 현실은 어떠한가? 장로교회 역시 별반 차이가 없다고 할 것이다. 앞에서 본 논문은 이미 칼빈의 성만찬에 대한 관점을 살펴보았다. 칼빈은 매주일 예배에 있어서 성만찬을 드릴 것과 영적임재설을 주장하며 성만찬의 중요성을 누 구보다도 강조하였다. 따라서 적어도 칼빈의 신학을 수용하는 장로교회라면 성만찬 을 기념의식 정도로 치를 것이 아니라, 성령께서 임재하사 그리스도의 살과 피를 우리에게 먹여주시고 마시우게 하시는 살아있는 성만찬으로 바꾸어가야 할 것이다.
103) 정용섭, “그리스도교 예배의 신학: 말씀과 성례전의 신학적 균형을 위하여”, 기독교사상 제 22권 12호 (1978년), 128-131.
나. 감사의 부족
로버트 레이번(Robert G. Rayburn)은 “성찬은 어떤 사람에 대한 슬픈 추모 속 에 자리 잡은 엄숙한 잔치는 아니었다. 그것은 초대 교회 시초부터 감사의 지배를 받은 친교의 기쁨의 시간이었다. 그것이 여러 세기 동안 전해져 내려온 이름은 ‘주 의 잔치’(ευχαριστ α)였는데 그 뜻은 감사다”104)고 성만찬의 본질적인 면을 이야 기 하였다. 또한 “우리는 그리스도께서 우리 죄를 대신하여 죽으셨기 때문에 하나 님께 감사한다. 그러나 동시에 우리에게 영생을 주시려고 무덤에서 살아나셨기 때 문에 우리는 그를 찬양한다”고 말했다.105)
조엘 비크(Joel R. Beeke)는 영국의 Banner of Truth의 기고문에서 이렇게 쓰 고 있다. “고대에는 왕들이 큰 승리를 거둔 후에 연회를 베푸는 관습이 있었다. 이 연회에서 왕들은 승리와 감사의 표시로 포도주를 가득 채운 잔을 높이 들어올려 길게 들이마시곤 하였다.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이루신 구원에 대한 감사를 표시하는 잔을 높이 쳐들고 이를 깊이 들이마신다.106) 그리스도의 피가 우리를 모든 죄에서 깨끗케 하신 일(요일1:7)이 우리 가운데 실효화된 것을 우리는 믿음으로 누리며,모든 언약적 자비의 참여자(고전11:25)가 되는 것이다. 우리의 궁핍함 대신 그리스도의 부요함을 얻으며, 죄의 짐 대신 화목을, 속박 대신 그의 자유를 얻게 된다.”107)
그러나 현재 한국 개신교회의 성만찬은 감사와 기쁨보다는 그리스도의 수난과 십자가의 죽으심만을 강조함으로써 이러한 영적인 은혜를 간과하고 있다. 그래서 성만찬의 분위기조차도 장례식 분위기를 연출하곤 한다. 물론 그리스도의 수난과 십자가의 죽으심을 감사해야 함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그러한 수난과 십자가 죽으 심으로 인한 그 영적인 축복에 대한 감사가 바로 성만찬의 본질인 것이다. 성만찬 에서 이루어지는 일은 하나님의 제단 위에서 이미 완성에 이른 그 그리스도의 희 생 제사를 되새기는 일이며, 성찬에 참여하는 자들은 이 희생 제사를 인하여 우리 가 얻게 된 축복에 대해 감사하는 일인 것이다. 따라서 성만찬의 감사와 기쁨의 측 면을 더 강조할 수 있도록 이에 대한 교육과 실제적인 성만찬의 집례가 이루어져 야 할 것이다.
104) 성만찬의 영어 단어인 ‘eucharist'는 헬라어의 ευχαριστ α (감사, ευ + χαιζομαι)라는 말에서 나왔다105) Robert G. Rayburn, Come Let Us Worship (Grand Rapids: Baker Book House, 1980), 305
106) Willam Gouge, The Saints' Sacrifice: A Commentary on Psalm 116 (Edinburgh: James Nichol, 1868), 86.
107) Joel. R. Beeke, “The Cup of Salvation : The Lord's Table as a Thanksgiving Feast”, 최승락 역, 진리의 깃발, 2003년 4월호, 60.
다. 코이노니아의 부족
코이노니아(κοινων α)는 ‘관계가 돈독하다’의 뜻을 가진 친교 혹은 교제를 가 리킨다.108) 가진 것들을 나눌 때 친교는 생생하게 실현된다는 것을 초기 그리스도 인들은 확신하였다. 초대교회 그리스도인들은 떡과 포도주의 상징을 통해서 부활하 신 그리스도와 친교를 맺고 그 친교로 말미암아 교회 구성원들 또한 한 몸이 될만 한 관계를 돈독히 하였다.
기독교 예배가 다른 종교와 다른 것은 만인사제의 경험을 통해서 신도들이 서로 그리스도의 몸의 지체가 되는 것에 있다. 개인은 우주적인 집단 속에 한 물체가 아니라 예배에 있어서 특별히 성만찬에 있어서 동료 예배자와 새로운 관계가 수립 되는 것이다. 즉 한 개인은 주님의 식탁에 참여한 다른 사람과 함께 교회의 주님이 되시는 그리스도의 신비적인 몸의 지체가 되는 것이다. 루터, 쯔빙글리, 칼빈 등 종 교개혁자들은 공히 성찬을 통하여 예수 그리스도와의 연합과 성도간의 교제를 강조하였다.109)
현재 한국교회의 성만찬은 형식적인 면과 개인적인 면에 치우친 나머지 주님께 서 선사하신 코이노니아의 영적체험을 누리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따라서 성만 찬의 코이노니아의 신학이 회복되어져야만 할 것이다110). 이런 측면의 강조로 인하 여 성도들간의 화해와 참회가 이루어질 것이며, 더 나아가 사회적, 경제적, 정치적 차이점을 극복하고 하나님 안의 한 형제와 자매로서의 바람직한 관계가 형성될 것 이다.
108) 스토롱 원어사전에 의하면 헬라어 κοινωνα 의 뜻은 fellowship, association, community, communion, joint participation, intercourse 등이다.
109) 본 논문 34-35p. 개혁자들의 공통점 참조
110) 박근원, 교회와 선교 (서울: 종로서적, 1988), 84.
111) 스토롱 원어사전에 의하면 헬라어 διακον α 의 뜻은 service, ministering, esp. of those who execute the commands of others 이다.
라. 디아코니아의 부족
디아코니아(διακον α) 란 봉사와 섬김을 말한다.111) 예수님은 성만찬을 통하여 당신 자신을 우리에게 음식으로 주신다. 그러므로 성만찬의 본질적인 의미는 예수 께서 우리를 위해 나눠주셨듯이 우리도 서로 서로 봉사와 섬김을 통하여 나눔의 신학을 세워나가야 한다.112)
막 10:45절에 보면 예수께서 “인자의 온 것은 섬김을 받으려 함이 아니라 도리 어 섬기려 하고 자기 목숨을 많은 사람의 대속물로 주려 함이니라”고 하셨다. 이러 한 섬김의 모습을 가지신 주님께서는 세상에 계시는 동한 가난한 자에게 복음을 전하셨고, 굶주리고 병든 자들에게 먹을 것과 치료의 봉사를 행하셨다. 또한 마지 막 만찬 자리에서는 손수 제자들의 발을 씻으시며 “내가 너희의 발을 씻었으니 너 희도 서로 발을 씻기는 것이 옳으니라”(요13:14)고 하셨다. 이러한 교훈을 받은 제자들은 오순절 성령강림 이후에 초대 교회를 중심으로 디아코니아 실천에 노력하 였던 것이다.
그러나 한국 교회는 성만찬 예전 속에서 이와 같은 모습을 찾아보기가 쉽지 않 다. 서로 섬기고 봉사하는 것은 고사하고 교인수가 많은 교회에서는 서로 이름조차 모르고 그냥 왔다가 그냥 가는 현상들이 벌어지고 있다. 따라서 성만찬을 통하여 구체적으로 예수님께서 제자들을 섬기셨던 그 의미를 되새기는 그러한 노력이 반 드시 이루어져야 할 것이다.
112) 서공석, “성찬의 교리 신학적 고찰”, 종교신학연구 제3집 (1991년), 124.
마. 천국잔치로서의 인식 부족
성만찬은 앞에서 언급한 4가지 개념을 뛰어넘어 천국잔치에 참여하는 축복의 장이 되어야 한다. 요한복음 21장에서는 부활하신 주님께서 제자들을 위해 손수 조 반을 준비하시고 함께 식사를 나누셨다 (요21:12). 이처럼 주님께서 죽은 자 가운데 서 살아나셔서 함께 음식을 먹은 의미를 사도행전의 기자는 증인으로 삼고자 함이 라고 말한다 (행10:41). 그럼으로 우리가 “주의 만찬”에 참여하여 주님과 함께 먹고 마시는 것은 예수 그리스도의 고난의 의미를 뛰어넘어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과 하 나님 나라의 잔치자리에 참여함을 의미한다.
또한 이러한 천국잔치는 나라와 민족과 인종의 차별을 뛰어넘는 그야말로 천상 의 잔치를 지금 여기에서 맛보고 누리는 것이다 (계7:9).
그러나 한국교회의 성만찬 예식 속에서는 이러한 천국 잔치로서의 의미를 찾아 보기 힘들고 오히려 예수 그리스도의 죽으심만을 강조하여 깊은 슬픔 가운데 진행 되는 것이 현실이다. 따라서 앞으로 한국 교회가 이러한 천국잔치로서의 의미를 살 려 나간다면 성만찬은 감사의 축제의 장으로 변할 것이요, 민족과 인종간의 갈등을 뛰어넘는 화해와 화합의 장이 될 것이다.
제 2 절 예전적 방면
본 논문은 앞에서 성만찬의 신학적 의미를 다시 한번 되새겨 봄으로써 우리가 지향해야할 성만찬의 모습을 살펴보았다. 이제는 그런 신학적 의미를 보다 효율적 으로 간직하기 위한 실제적이고 방법적인 면을 모색해 보고자 한다. 이를 위해서 먼저 성만찬 횟수의 문제, 성만찬 준비의 문제 등을 구체적으로 다루어보고자 한 다. 무엇이고 실천이 없는 이론은 그것이 아무리 옳다 하더라도 공허한 메아리일 수밖에 없음을 알 때 구체적인 실천방법을 찾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고 할 것이다.
1. 성만찬 횟수의 문제
성만찬 횟수에 대해서는 다시 한번 칼빈의 주장에 귀를 기울이는 현명함이 필 요하다고 할 것이다. 칼빈은 기독교 강요에서 적어도 일주일에 한번은 성만찬을 집 례 하도록 권고하고 있으며, 될 수 있으면 성찬을 자주 집행하라고 말한다. 더 나 아가 주님께서 제정하시고 초대교회가 실시했던 그 모범을 따르는 것이 중요할 것 이다. 초대교회에서는 성만찬을 자주 갖는 정도가 아니라 매 예배마다 성만찬을 집 례 하였으며, 최소한 주일 예배에는 필히 성만찬을 시행하였다.
폰 알멘은 성만찬이 예배에 필요한 이유를 예수 그리스도에 의해 제정되고 그 의 명령을 드러내는 것이기 때문이며, 성만찬 없는 예배는 예루살렘의 문턱에서 멈 춘 예수의 삶과도 같은 것이라고 말한다.113)
감리교의 창시자 존 웨슬리(John Wesley, 1703-1791)는 “부단한 성찬식의 의 무”에 대해서 설교하며 “이를 행하라”는 말씀은 가능한 한 자주 성찬식을 거행해야 한다는 의미라고 주장했다. 웨슬리 자신도 그의 생애 동안 “평균 4일 내지 5일에 한 번씩” 성찬을 받았다.114)
그러나 한국의 개신교회는 종교개혁으로 형성된 성만찬에 대한 견해 차이로 인 하여 교단마다 각기 다른 성만찬 예전이 시행되고 있는 실정이다. 루터교회, 그리스도의 교회는 매주일 성만찬을 시행하고 있는가 하면, 침례교회, 순복음교회 등은 매달 시행하며, 성결교회, 감리교회, 장로교회는 년 4회를 기준으로 하여 시행하고 있다.115) 이것은 또한 개 교회 담임 목회자의 성만찬에 대한 인식에 따라 달라지고 있는 실정이다.
따라서 한국 교회는 성만찬 횟수의 측면에서도 다시 일주일에 한번은 성만찬을 집행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볼 수 있다. 물론 교회의 대형화로 인한 어려움, 성도 들의 성만찬 신학 부재로 인한 필요성에 대한 인식부족 등의 난관들이 있을 수 있 으나 이런 것이 주님의 말씀에 대한 순종을 앞설 수는 없는 것이다.116)
113) J.J. von Allmen, 주의 만찬, 박근원 역 (서울: 도서출판 양서각,1986), 188-189.
114) 제임스 F. 화이트, 개신교 예배, 김석한 역 (서울: 기독교문서선교회, 1997), 262-263.
115) 서선종, “한국교회의 성만찬 예전회복을 위한 연구” (석사학위논문, 장신대학교, 1995), 44.
116) “물론 칼빈은 성찬이 있어야 온전한 예배라는 가장 옳은 입장을 견지하였다. 사실 초대 교회는 성찬을 참여하려고 모였다. 비록 중세교회가 성찬을 제사의 의미로 제한되고 왜곡하 였지만, 매주 모일 때마다 성찬이 있어야 온전한 예배라는 사실만은 전수하였다. 개혁은 목 욕물과 더불어 아이까지 버리지 않았나 하는 아쉬움을 남겼다. 한국교회는 분기별 성찬을 지킨다. 이것은 종교개혁의 전통이지만, 이 전통 자체가 정당하지는 않다. 우리는 개혁의 유 익을 이어 받되, 개혁을 넘어서 고대교회와 초대교회의 모습을 회복함으로써 공교회적인 전 통을 확립해야 한다” 유해무, "한국교회의 예배와 교회의 개혁" ( 웨스트민스터대학원대학교 종교개혁기념 특강, 2003.10,28)
2. 성만찬 준비의 문제
성만찬을 집례하고 참여하기 위해서는 적극적이면서 긍정적인 준비가 필요하다. 먼저, 성만찬은 마음의 준비가 필요하다. 칼빈이 말한 영적임재설은 우리가 믿음으 로 성만찬을 먹고 마실 때에 성령께서 임재하사 예수 그리스도의 실제 살과 피를 먹고 마시는 은혜가 우리에게 임한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성만찬에 참여하는 모든 사람들은 반드시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을 가지고 성만찬에 참여해야만 하는 것이다.
또한 자신을 살핀 후에 주의 만찬에 참여하는 것이 필요하다. 바울은 고전 11:27-28에서 “누구든지 주의 떡이나 잔을 합당치 않게 먹고 마시는 자는 주의 몸 과 피를 범하는 죄가 있느니라. 사람이 자기를 살피고 그 후에야 이 떡을 먹고 이 잔을 마실지니”라고 말하면서 성만찬에 임하는 신앙적 자세가 어떠해야 함을 말해 주고 있다. 따라서 성만찬에 참여하기 전에 회개의 제목은 없는지, 다른 사람과 화해할 제목은 없는지를 하나님 앞에서 살피고 참여하는 것이 필요할 것이다. 마지막으로 성만찬에 대한 올바른 교육이 필요하다. 현재 성만찬 신학 부재로 인하여 성만찬에 대한 성도들의 편견은 매우 다양하다. 로마 카톨릭의 신비적인 관 점부터 쯔빙글리의 기념설적 관점까지 매우 다양한 자세로 성만찬에 임한다. 이런 현상은 살아있는 성만찬 예배를 방해하고, 성만찬의 코이노니아적 체험을 방해하는 요소가 된다. 따라서 이에 대해 교회는 성만찬에 대한 올바른 관점, 즉 칼빈주의적 관점을 갖을 수 있도록 성도들에 대한 교육을 꾸준히 실시하는 것이 바람직할 것이다.
제 3 절 에큐메니칼적 방면
본 논문은 4장에서 대표적인 종교개혁자들인 루터, 쯔빙글리, 칼빈의 성만찬 신 학을 살펴보았다. 또한 이들의 성만찬관의 공통점과 차이점이 무엇인지도 살펴보았 다. 성만찬으로 인한 논쟁은 교회 분열의 씨가 되었고, 결국 견해의 차이를 극복하 지 못하고 분열되었다. 분열이 있은 후 400 년 만에 가시적인 교회일치 운동의 하 나로 성만찬에 대한 의미를 공동으로 고백하는 문서를 만들었는데, 이것이 바로 리마(BEM)문서이다. 따라서 리마문서의 성만찬 부분은 종교개혁 이후의 가장 종 합적인 성만찬에 대한 이해를 담고 있으며, 또한 가장 현대적인 의미에서의 성만찬 이해를 역사적 전통과 함께 담고 있다. 본 절에서는 이러한 리마문서에 대하여 살 펴본 후에, 개혁자들과 리마문서의 성찬관을 비교 분석함으로써 한국교회의 리마문 서 수용 가능성 여부와 더 나아가 교회일치운동의 가능성을 가늠해 보고자 한다.
1. 리마문서
본 단락에서는 리마문서의 성립과정, 리마문서의 내용, 리마예식서의 순서 등을 차례로 살펴보고자 한다.
가. 리마문서의 성립과정
리마문서와 리마예식서는 에큐메니칼 운동의 산물이었다. 세계 교회의 에큐메니 칼 운동은 1901년 에딘버러에서 ‘국제 선교 협의회’의 탄생과 더불어, 1927년 ‘신앙 과 직제 위원회’, ‘1925년 ’생활과 사업위원회‘의 형성으로 전개되었으며, 리마문서 의 산파역은 ’신앙과 직제 위원회‘가 담당하였다. ’신앙과 직제 위원회‘는 1927년 로 잔에서 첫 창립총회를 열고 ’세례, 성만찬, 교역‘을 중심 주제로 하여 세계교회들의 신학적 공감대를 형성하고, 세계 교회 공동의 성만찬의 가능성을 추구해 왔다. 그 러나 이러한 신학적 일치를 향한 접근은 대단히 어려웠다. 교회들은 각기 다른 교 회의 전통에서 자기들의 입장을 밝힘으로써 서로 다른 점과 같은 점을 확인하게 되었으나 부정적으로 일치 운동을 저해하는 결과를 낳게 되었다. 그래서 1937년 에 딘버러에서 모였던 신앙과 직제 위원회 총회에서는 교리적인 합의를 통한 일치의 추구는 가능성이 없을 뿐 아니라 특별한 의미도 없음을 확인하게 되었다.117)
‘신앙과 직제 위원회’는 55년 동안 열 차례의 전체회의를 갖고, 1977년부터 1982 년까지 리마문서는 12회 이상이나 수정 보안되면서 1982년 1월 남미 페루의 리마 에서 합의문서로 채택되기에 이르렀다. 이때 채택한 세례, 성만찬, 사역(Baptism, Eucharist and Ministry)에 관한 합의 문서를 ‘리마문서’ 혹은 알파벳의 첫 글자를 따서 ‘BEM문서’라고 칭하게 되었다.
이 문서는 근대 에큐메니칼 운동에 있어서 최초로 합의된 문서이자 동시에 세 계 기독교회의 대표적인 교회들인 로마 카톨릭교회, 정교회, 성공회를 포함한 개신 교회를 망라한 ‘공동 합의문’이라는 점에서 그 중요성을 찾을 수 있다. 그리고 ‘리 마예식서’라는 것은 ‘리마문서’가운데 있는 ‘성만찬’의 내용을 예식서로 표현한 것으 로서 하나의 완성품이 아닌 완성되어가고 있는 예식서라고 할 수 있다.
117) 박근원 편저, 리마예식서 (서울: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 1987), 46.
나. 리마문서의 내용118)
리마문서의 성찬론은 I. 성찬제정, II. 성찬의미의 2부분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118) 세계교회협의회, BEM 문서, 이형기 역 (서울: 한국장로교출판사, 1993), 33-46.
I장은 고전 11:23-25절을 성찬의 근거로 제시함으로써 개혁자들의 성찬 근거와 동일하다. 성찬제정의 기원을 구약의 유월절 사건으로 소급하여 이를 예수 그리스 도 사건의 유형으로 유추하여 신약의 성찬을 새 유월절 식사 혹은 새 계약의 식사 로 간주하고 있다. 그리고 성찬은 하나님 나라의 표징으로 계속하는 것이며, 눈에 보이는 표징으로써 예수 그리스도안에 나타난 하나님의 사랑을 우리에게 전달하는 성례전적 식사로 규정하고 있다.
II장은 다섯 가지 주제로 되어 있는 데,
첫째, 하나님 아버지에 대한 감사로서 의 성만찬119)에서는 성부께서 ‘창조, 구속, 성화 및 하나님 나라의 완성’을 통해 성 취하셨고 성취하실 것에 대한 감사를 말하는데 특히 하나님 아버지의 선물에 대한 감사를 제일 중요한 성만찬의 의미로 본다.
둘째, 그리스도에 대한 기념으로서의 성만찬120)에서는 예수 그리스도의 구속사 건을 유일회적으로 보면서 과거에 일어났던 사건에 대한 기념뿐만 아니라 그리스 도의 재림과 하나님 나라의 미리 맛봄까지 확대함으로 쯔빙글리의 기념설을 내포 하나 쯔빙글리보다 더 현재적이요 미래적이다.
셋째, 성령에 대한 기원으로서의 성만찬121)에서는 부활하신 그리스도의 실재적 임재를 말함으로 장소적 개념을 부각시키지 않고 예수의 편재를 언급하지 않음으 로 개혁자들과 상이한 듯하나, 성령을 통한 예수 그리스도와의 신비적 연합을 강조 하는 것은 칼빈의 영향인 듯하다.
넷째, 성도의 교제로서의 성찬122)은 루터의 영향인 듯하나 한걸음 더 나아가 성 도의 교제가 기독교의 사회적, 정치적, 경제적 책임을 위한 것으로 보고, 신자들내 의 화해가 범우주적 화해로 확대되었다. 이는 개혁자들의 교제 범위보다 훨씬 더 광범위한 것이다.
다섯째, 하나님 나라의 식사로서의 성만찬123)에서는 에큐메니즘 차원의 교회의 사회참여 특히 하나님의 선교신학과 종말론이 소개되는 바, 개혁자들과는 거리가 있다. 그러나 기독교적 삶을 가장 강하게 말하고 역사와 사회 그리고 창조와 문화에 대한 삼위일체 하나님의 주권을 주장하는 칼빈은 어느 정도 이 다섯째 주장에 영향이 있다고 할 것이다.
118) 세계교회협의회, BEM 문서, 이형기 역 (서울: 한국장로교출판사, 1993), 33-46.
119) 세계교회협의회, Ibid., 113.
120) Ibid., 113.
121) Ibid., 114.
122) Ibid., 115.
123) Ibid., 116.
다. 리마예식서의 순서124)
개회의 예전
개회찬송(시편회의 예전 혹은 응답송) 인사
죄의 고백
용서의 선언
자비의 연도
영광송(교독이나 송영으로)
말씀의 예전
오늘의 기도
구약성서 봉독
명상의 시편
사도서신 봉독
“할렐루야”영창
복음서 봉독
설교
침묵
신앙고백
중보의 기도
성만찬의 예전
준비기원
인사의 교환
처음기원
삼성창
성령의 임재의 기원(I)
성만찬 제정사
기념사
성령의 임재의 기원(II)
추모의 기원
마지막 기원
주의 기도
평화의 인사
분병례
하나님의 어린양
성만찬에의 참여
감사의 기도
폐회찬송 분부의 말씀 축복기도
124) 박근원 편저, Ibid., 32-40.
2. 리마예식서의 적용가능성
본 단락에서는 리마문서에 대한 세계 각 교회들의 입장과 리마예식서의 한국교 회 적용 가능성에 대해 살펴보고자 한다.
가. 리마문서에 대한 비판
리마문서는 그 문서의 성격상 교회들의 반응을 수렴하려는 합의문서 (consensus)이다. 세계의 각 교회들이 이 문서에 대한 입장을 표명했는데, 본 논문 은 그 각각의 입장을 살펴봄으로써 과연 우리 교회 현실에 리마문서를 적용할 수 있는 지에 대해 살펴보고자 한다.
먼저 로마 카톨릭은 성만찬 본문에 대해 긍정적인 평가를 내림과 동시에 보다 명확한 설명과 보다 깊은 연구가 필요하다고 지적한다. 실제 임재의 문제에 있어서 성만찬 중에 일어나는 변화를 다소 모호하게 설명함으로써 다양한 해석의 가능성 을 열어놓고 있다는 점, 성만찬을 제사로 설명하는 본문에서 사용된 용어들이 의문 을 불러일으키는 점들이다. 로마 카톨릭의 반응을 통해서 지적되는 문제점은 종교 개혁 시에 논쟁점으로 부각되었던 점들이다. 이런 측면에서 보면 리마문서는 역사 적 논쟁점들을 해소하지 못했다는 비판을 받을 수 있을 것이다.125)
개신교 또한 신학적인 부분을 문제시하고 있는데, 첫째, 말씀 중심의 개신교 전통에 입각해서 “성만찬이 예배의 중심적 행위”(1항)라는 데 대한 이의 제기, 둘 째, 실제 임재의 양식 문제, 셋째, 주의 만찬이냐 유카리스트(감사, 찬양)냐의 성만 찬 용어사용 문제 등이다. 그러나 반면에 성만찬 의미에 대한 해석 시각이 개인주 의적이었고, 그 의미가 사회적 차원으로 확산되지 못했던 것에 대한 자기비판과 리 마문서의 성만찬 의미에 대한 재발견에 만족스러워하고 있다.
리마문서는 성만찬의 의미를 풍성하게 하고 있다. 리마문서는 서구 전통 기독교 의 성만찬 논쟁을 비교적 잘 수습하였으나, 교회들의 반응에서 드러나는 점을 볼 때 역사적 논쟁점을 모두 해소하였다고는 볼 수 없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성만찬 이해를 확장하여 교회들이 지난 수 세기 동안에 집착하였던 성만찬 이해의 차이점들에 고착되었던 신학적 관심들을 바꾸어 놓았음은 큰 공헌이라고 할 것이 다. 그리고 종교개혁 전통에서 발견하였으나 논쟁사의 배면에 가려져 있었던 성만 찬의 참 의미인 교제, 나눔 등의 공동체적 대세계적(對世界的)인 것을 재발견하는 데 큰 공헌을 하였다고 할 것이다.
125) 이강영, “성만찬 이해 (BEM문서를 중심으로)”, (석사학위논문, 장신대학교, 1996), 61.
나. 리마예식서의 한국교회 적용 가능성
오늘의 한국 교회의 상황은 분열된 그리스도교 성만찬 공동체의 각축장이라고 할 수 있다. 이처럼 분열된 한국 교회는 그 어느 지역에서보다도 리마예식서의 실 험적인 적용이 필요하다고 할 수 있다.
먼저 한국 교회는 리마문서가 제시하고 있는 보다 확대된 성만찬 신학을 수렴 할 필요가 있다. 본 논문은 지금까지의 논의를 통하여 성만찬 신학의 재정립의 필 요성을 절감하였다. 따라서 이에 대한 하나의 제안으로 리마문서가 언급하고 있는 성만찬 신학을 받아들임으로써 신학적 논쟁을 벗어나 교제와 나눔의 의미를 강조 한다면 교회연합의 길을 모색하는 좋은 계기가 되리라고 여겨진다.
다음으로 리마예식서의 사용에 대해서는 그 예식서의 각 부분의 의미를 살려나 가고 이를 교회의 예배 현장에 적용할 수 있을 것이다. 예를 들어 죄의 고백, 용서 의 선언, 자비의 연도와 제 2부 말씀의 예전에서 교회력에 따른 성경의 봉독, 중보 의 기도, 제 3부 성찬의 예전에 있어서 성령의 임재의 기원, 감사의 기도, 분부의 말씀 등이 그것이다. 실제적으로 한국교회 예전의 현장에서 리마예식서 전체를 사 용하기에는 부적합하다 할지라도 부분적으로 그 신학적인 의미를 되새기며 적용해 간다면 한국교회 성만찬 예전의 갱신에 큰 도움이 될 것이다.
정리
세계 교회사 속에서의 성만찬 논쟁의 영향은 한국 교회에도 예외가 아니었으며, 이로 인한 한국 교회의 성만찬 신학의 부재는 수많은 문제점들을 야기하였다. 결국 우리는 올바른 개혁주의 성만찬 신학을 확립해야 하며, 방법적인 면에서도 칼빈의 주장을 수용해야만 한다. 또한 역사적으로 성만찬에 대한 신학적 논쟁으로 인해 분열되었던 교회를 일치시키기 위한 노력의 산물인 리마문서에 대하여는 신학적인 면과 실제적인 면에서 열린 마음을 갖고, 그것의 긍정적인 면을 적극 검토하여 사 용하여야 할 것이다.
제 5 장 결론
이상에서 본 논문은 성만찬이 갖는 의미와 목적, 기원 등에 대해서 살펴보았다. 또한 그 구약적, 신약적 역사 배경을 살펴봄으로써 성만찬 신학의 재정립과 성만찬의 회복이 반드시 이루어져야하는 당위성을 살펴보았다. 또한 성만찬에 대한 논쟁 의 원인과 결과를 살펴봄으로써 과연 논쟁의 논점이 무엇이며 접근 가능성은 없는 지에 대해 살펴보았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한국교회 성만찬의 문제점과 이에 대하여 신학적, 예전적, 에큐메니칼적인 3가지 측면에서 그 대안을 모색해 보았다.
우리는 지금까지의 논의에 대해 다음과 같이 결론을 맺을 수 있다.
첫째, 성만찬은 구약과 신약의 역사적 배경 하에 성경에 근거하여 예수님께서 친히 제정하신 것으로 반드시 순종하고 따라야 하는 명령인 것이다.
둘째, 성만찬은 로마 카톨릭과 종교개혁자들의 논쟁 속에 그 중요성과 의미가 감소했을지라도 교회의 표지로써 반드시 지켜져야만 한다.
셋째, 성만찬은 종교개혁자들의 상이한 관점에도 불구하고 성만찬에 참여하는 자들에게 그리스도와의 연합을 체험하고 믿음을 성장시키며 풍성한 은혜를 체험하는 성령의 역사 현장이다.
넷째, 성만찬이 지금까지 그리스도의 수난과 죽으심만을 강조함으로 더 풍성한 은혜를 제한하였는바, 이제는 감사와 축제의 장으로 변해야 하며 더 나아가 천국잔치로서 그 의미를 부여해야만 한다.
다섯째, 성만찬은 성만찬 논쟁의 와중에 성만찬의 근본정신인 교제와 나눔을 잃 어버리고 분열하였는바, 이제는 성만찬이 교제와 나눔과 섬김의 장으로 나아가야만 한다.
여섯째, 성만찬은 소홀히 다루어져서도, 그 은혜를 제한해서도 안 되는 것임으로 칼빈의 주장과 같이 자주 집행될 수 있어야만 한다.
끝으로, 교회의 일치와 연합을 위한 노력의 산물인 리마문서의 정신을 받아들이고, 리마예식서의 부분적인 사용을 통하여 실제적인 적용점을 찾아가야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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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진환. “성찬의 본질에 대한 재조명과 그 현대적 적용” 개혁신학과 교회 제7호(1997)
이재호의 碩士學位 論文/웨스트민스터대학원대학교
첫댓글 후원에 참여해 주시길 부탁드립니다^^
후원을 해주시는 분이 아무도 안계셔서 카페운영이 어렵습니다
쌀과 김치라도 마련하도록 오늘은 후원이 있기를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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