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사랑 싼타페
배병태(2022. 8. 부산)
우리 집에는 오래된 가재도구가 많다. 아내가 혼수용으로 장만한 장롱은 아직도 떡하니 안방 구석을 차지하고 있다. 내 은수저도 결혼 생활과 연륜을 같이한다. 책상, 소파, 피아노 등 가히 골동품 가게라 하여도 될 만하다.
자가용 승용차도 그중의 하나다. 내가 타고 다니는 싼타페 승용차는 국산품 SUV에 20년이 다 되어 간다. 사람들이 반려동물을 사랑하듯이 나는 이 차를 가족처럼 대한다. 살아있는 생명체로 여겨지기 때문이다.
집에서 꽤 멀리 떨어진 농촌 지역에 전근 발령을 받은 적이 있다. 지금은 신도시가 들어서서 도로포장이 잘 되어 있지만 그때만 해도 도로 사정이 매우 열악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산타페는 나의 충직한 심복이 되어 주인의 내왕을 성실히 보조해주었다. 비가 오나 바람이 부나, 평탄한 길이나 험한 길이나 지치지 않고 달렸다. 나를 집에서 직장으로, 직장에서 집으로 안전하게 모시는 일등공신이었다.
내 애마는 차체도 좀 큰 편이고 힘도 좋아 장거리 여행하기에 적합하다. 방학을 이용해 가족 여행을 많이 다녔다. 부산에서 서울로, 강원도며 전라도까지 그야말로 동서남북을 가리지 않고 종횡무진을 감행했다. 덕분에 가족여행을 하는 동안 갖가지 추억을 남겼다.
어느 해 여름 강원도 여행에서 돌아오는 한밤중에 태풍을 만났다. 갑자기 불어난 물에 다리가 끊어져 버렸다. 캄캄한 시골 마을이었는데 돌아가는 길도 산사태가 나서 막혀버린 상황이었다. 인근에는 오늘날처럼 흔한 모텔이나 여관이 없고 민박집조차 찾을 수가 없었다. 할 수 없이 자동차 안에서 하룻밤을 지내기로 했다. 주변에는 우리처럼 길이 막혀 더 이상 진행하지 못한 차량들이 몇 대 있어 그나마 위안이 되었다.
어린 두 아들은 차박(車泊)의 기대에 들떠 즐거워했다. 어둠 속에서 비가 끊임없이 내리고 바람은 여전히 세차게 불었다. 불편하고 좁은 공간이었지만 가족이라는 사랑의 공동체 의식이 은연중에 샘솟는 순간임을 느낄 수 있었다. 싼타페 덕분에 가족들은 소중한 추억을 만들게 되었고, 위기도 넘겼다. 성인이 된 아이들은 지금도 그때의 차박 사건을 추억으로 삼아 이야기를 한다.
싼타페가 우리 집에 와서 기여한 공적이 또 있다. 큰아들은 일찌감치 이 차로 운전 연습을 했고 여자 친구와 데이트를 즐겼다. 아들 녀석은 대학을 졸업하고 직장시험 준비를 하면서부터 부지런히 싼타페를 끌고 다녔다. 차량 덕분인지는 모르지만 어쨌든 마음에 드는 여자 친구를 만나 일찍 결혼했고 내게 귀여운 손자를 선물로 안겨주었다.
둘째 녀석은 서울에서 직장생활을 시작하면서부터 아예 내 싼타페를 징발하여 가버렸다. 요즘은 셋방에 살면서도 값비싼 고급차를 무리하게 구입하는 젊은이들이 많다고 하던데 아들은 아버지가 타던 낡은 승용차를 마다하지 않으니 기특했다. 둘째도 이 차 덕분인지 결혼에 골인했다. 복덩이가 따로 없다. 싼타페는 둘째 아들이 제 차를 구입하고 나서야 비로소 원주인인 내게로 금의환향했다.
사물들이 생물처럼 여겨지는 때가 가끔 있다. 그들의 미세한 움직임을 통해 살아 있다는 느낌을 받는다. 예컨대 끊임없이 밀려왔다 밀려가는 파도의 움직임이 그렇고, 휴화산이 어느 날 갑자기 불기둥을 토해내어 인간들에게 피해를 준다. 깜박거리는 형광등조차 제 수명이 다했음을 알려준다. 그런 현상들을 지켜보면 생명체라는 것을 느끼곤 한다.
나의 싼타페도 살아 있는 동반자이다. 내가 밥을 먹듯이 그는 휘발유라는 연료를 먹는다. 내 심장처럼 그의 엔진도 쉼 없이 움직인다. 나의 눈동자가 사물을 보기 위해 작동하듯이 헤드라이트는 어두운 밤이면 큰 눈을 부라려 밤길을 훤히 밝혀준다. 신발이 해어지면 갈아 신듯 타이어도 주기적으로 교체한다. 이제 머지않아 AI를 기반으로 한 자율주행 자동차가 상용화될 것이고, 그러면 더욱 반려 자동차로 다가올 것이다. 내가 싼타페를 생명체로 여기는 이유이기도 하다.
내 동행자도 많이 노후화되었다. 삐걱거리는 소리가 늘었고 힘도 예전만 못하다. 내가 병원에 가는 횟수만큼이나 정비소를 자주 들락거린다. 그도 나도 장거리 운행을 가급적 삼간다. 잠을 자주 자는 것도 너무 많이 닮았다. 친지들은 나를 만날 때마다 차 좀 바꾸라고 핀잔을 하지만 솔직히 바꿀 생각이 없다. 신차를 구입하는 데 드는 비용도 만만찮지만 가족과 함께 한 동행의 기억을 오래 간직하고 싶어서다. 수명이 다할 때까지 함께 하다가 조촐하지만 엄숙한 장례를 치러줄까 한다. 산타페를 내 손으로 운전해 폐차장까지 정중히 모신 후 잠시 묵념의 시간을 가질 것이다. 그 후 함께 기념사진을 찍은 후 말소 등록을 해드리는 것이다.
나를 돌아본다. 주인을 위해 최선을 다한 싼타페만큼 성실하게 살았는가. 기계는 거짓말을 하지 않는다는데 나는 과연 정직하게 인생을 살았는가. 나름대로 열심히 살고 최선을 다했다고 자부하지만 기계인 자동차에 비하면 많이 부족할 것만 같다. 주인의 안전을 위해 달렸고, 가족의 행복을 키워준 나의 애마. 무엇보다 자신의 임무를 성실하게 완수한 싼타페의 준엄한 침묵을 기억한다. 그에게 부끄럽지 않게 나의 남은 길을 묵묵히 걸어가야 하겠다.
|등단소감|
평생교육원에서 수필을 공부한 지 3년이 되었습니다. 문학을 좋아했으나 글쓰기에는 자신이 없었습니다. 강의를 들으면서 심오한 사상으로 가득한 인문학을 접하고 삶의 향기 가득한 글들을 대하며 수필의 매력에 듬뿍 빠져들었습니다.
습작을 제출하려고 책상머리에 앉았을 때 좋은 글쓰기가 얼마나 어려운가를 깨달았으며, 이미 등단하신 분들이나 책을 출간한 작가님들이 우러러 보이고 존경심마저 들었습니다.
등단이라는 고귀한 말과 신인상이라는 단어를 결코 가볍게 여기지 않겠습니다. 수필 문단에 누를 끼치지 않도록 조심스럽게 글을 써야 한다는 부담감이 생겼습니다. 더 많이 읽고, 더 열심히 쓰겠습니다. 언어적 감수성을 닦고 이야기 솜씨를 쌓아 묵묵히 수필적 삶을 이어가도록 노력하겠습니다.
부족한 글을 뽑아 주신 《수필과비평》사 심사위원님들께 감사를 드립니다. 기초부터 인문학적 소양까지 열정적으로 지도해주신 교수님께 존경을 보냅니다. 따뜻한 격려를 아끼지 않으신 문우님들께 감사를 드립니다. 가장 가까운 곳에서 늘 힘이 되어준 아내, 그리고 가족들과 함께 기쁨을 나누겠습니다.
첫댓글 배병태 선생님.
2022년 8월 <수필과비평> 신인상 수상과 등단을 축하드립니다.
좋은 글로 만나니 더욱 반갑습니다.^^
배병태선생님 신인상 수상을 축하드립니다
배병태 선생님,
신인상 수상을 마니마니축하드립니다.
남은 인생 가까이 할 수 있어 감사합니다.
기회되면 함께 싼타페 타고 멋진 나들이도 한번 만듭시다.
배병태 선생님.
싼타페를 아끼는 마음 .
사람과의 인연을 소중히 가꾸는마음과 다르지 않을거라 생각합니다.
문인등단 축하드립니다
신인상 수상을 축하드리며, 환영합니다.^^
배병태선생님 등단을 축하드립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