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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온테트라 | 문정영
둘째 딸 아이가 미국 유학 떠나기 며칠 전
열대어 네온테트라를 몇 마리 사 왔다.
“아빠 열흘에 한 번 물 1/3을 빼고 새 물로 갈아주어야 해.”
꼬리에 붉은 기운을 달고 수족관을 조심조심 다니는
네온테트라를 볼 때마다 딸이 출렁한다.
어느 열대가 원천인지 몰라도 우리 집에 당도한 저 어족들.
수족관 풍경이 도무지 낯설었던지
어느 날 아침엔 관 밖으로 한 마리가 투신을 하고
다음 날엔 작은 돌 틈에 한 마리가 끼어 죽었다.
일 년이 전 생애인 녀석들의 하루는 나의 하루보다 길다.
새 수족관, 새 물에 적응하려는 저 몸짓처럼
아이는 지금 낯선 조류에 제 몸을 방류하고
온 힘 다해 푸른 지느러미를 파닥이고 있다.
처서 무렵 | 문정영
소낙비가 불현듯 내리면 나는 가벼운 당신을 업을까.
풀빛 물든 늦여름 개울가를 건너려면 당신과 먼저 먼 여행을 가야하는데
거기서 우리는 소낙비를 만나고, 소낙비는 당신을 내 등에 업히게 하고
내 등은 먼저 젖어서 부끄러운 내력 내보일 텐데,
그래도 등에 가만히 몸 접어 눕히는 당신이 하늘에 비추어지고
나는 듬성듬성한 길을 당신의 신발 크기만큼 걷고 싶은 것이다.
어느 별에서 떨어진 비가 여기까지 도착하기까지는
소낙비만큼 고운 것이 없다. 떨어진 이후 맑은 빛으로 바뀌어
젖은 마음들 말리기에 얼마나 좋은가.
그래서 비 그친 뒤에도 젖은 등과 가슴 맞대고
오래 풀향을 맡을 수 있는 것이다.
그 오래 전부터 당신은 없고 무성한 풀만 울고 간다.
문정영
1997년 《월간문학》으로 등단.
시집으로 『잉크』외 2권이 있음.
현재 계간 《시산맥》 발행인.
kfbmoon@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