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월 19일
카이로로 이동하는 날이다. 버스로 아홉 시간 걸린다는데 오후 1시에 출발하니까 (수수료 포함 두 명 1,590 파운드) 오늘은 하루 종일 버스 안에 앉아 있어야 할 판이다. (출발 임박하면 싼 비행기표가 나온다는 정보에 매일같이 스카이스캐너를 들여다 봤지만 실패, 아스완 갈 때는 7만원에 갔는데 더 가까운 룩소르에서 20 만 원이 넘는 비행기를 탈 수는 없잖아. 그리고 밤 버스라는 옵션도 있지만, 늦은 밤까지 시간 보내기도 애매하고 새벽에 도착한 후에도 시간 관리가 어려워서 탈락)
1 시에 출발한 버스는 2시경에 퀴나에 도착하더니 불안할 정도로 오래 서 있다가 20 분 쯤 되어서야 다시 출발했는데, 그 후에는 휴게소 두 번 들른 일 외에는 쉬지 않고 열심히 달렸다. 예상 도착 시간인 10시가 되기 전에 타흐리르 터미널에 도착했다.
인드라이브를 불러 타고 예약해 둔 호텔에 도착해 보니, 첫 인상은 우와, 완전히 낡은 건물이구나. 오래된 건물의 일부를 빌려 숙박업을 하고 있는데 호텔 간판도 한 구석에 조그맣게 붙어 있고 1 층에는 상점 하나 없이 썰렁한 분위기. 그래도 누군가가 친절하게 나타나 스카이라이트 호텔은 3 층이라며 엘리베이터를 안내해 주었다. 3층에 사무실이 있고 객실은 7층인데 건물 외관과는 달리 사무실과 객실 모두 깔끔한 분위기다. 일하는 사람들도 쾌활, 친절하기에 즉석에서 이틀 연장을 결정했다. (모로코 행 비행기는 나흘 후인데, 사흘 째는 바하리야 사막이나 시와 사막을 갈 수도 있고 사막을 안 가고 카이로에 머물게 되더라도 혹시 첫 호텔이 마음에 들지 않으면 호텔을 옮길 수도 있겠다 생각해서 일단 이틀만 예약했었다. 모로코에서 사막 투어를 할 거라는 생각에, 이집트 사막 투어는 우리 마음 속에서 후순위로 밀리고 있었는데 '저렴하고 깨끗한 방'이 나타나는 바람에 최종적으로 탈락했다. 숙박비는 일박에 1,650 파운드 - 카이로에서 이 정도로 저렴하면서 큰 결점 없는 숙소를 만나기는 쉽지 않다.)
12월 20일
피라미드와 대박물관만 보고 떠나갔다가 다시 돌아온 카이로에서 제일 먼저 찾아간 곳은 카이로 성채, 높은 곳에 위치해서 시내를 내려다 보는 전망이 좋은 곳이며 유명한 모스크가 두 개, 박물관도 세 개가 있다. 그 중 하일라이트는 아야소피아를 모방해 지었다는 무하마드 알리 모스크라고 한다. 성채 입장료는 550 파운드이며 내부의 성당이나 박물관들은 별도 입장료가 없는데, 두 모스크에서 비닐 덧신이나 신발장을 핑계로 팁을 강요한다.
성채에서 바로 내려다 보이는 두 건물이 다음 목적지인 술탄 하산 모스크 + 알리파이 모스크.
감옥 박물관과 경찰 박물관은 규모도 작고 별 구경거리가 없었으나 군사 박물관은 상당히 큰 규모에 전시물도 많았다. (쬐끄만 이스라엘한테 판판이 깨진 처지에 뭐 그리 자랑스러운 게 많냐?)
성채에서 나오니 툭툭이들이 열심히 호객을 했지만 우리는 다음 목적지를 향해 꿋꿋이 걸어갔다. 나란히 서 있는 술탄 하산 모스크와 알리파이 모스크의 통합 입장권이 220 파운드. 역사가 깊은 모스크이며 교육 기관이라는데 더 크고 화려한 걸 금방 보고 왔으니 아무래도 발걸음이 좀 빨라진다.
근처에 블루 모스크라 불리는 작은 모스크가 있다고 들었는데 구글맵을 보며 걷는데도 길이 헷갈린다. 지도에는 큰 길처럼 표시되어 있지만 실제로는 차 한대가 겨우 지나다닐 수 있는 골목길들이라 분간이 쉽지 않다. 왔다갔다 하면서 겨우 길을 찾아 모스크 안으로 들어가 보니 입장권을 사 오란다. 오잉? 무료라고 들었는데? 밖으로 나가서 왔던 길을 돌아가 표 파는 곳을 찾아갔더니 알모에즈 거리 통합 입장권이라는 걸 팔고 있다. 120 파운드. 정식으로 티켓을 발행하는 걸로 보아 무료라는 정보가 잘못된 것이었나 보다.
옛날에는 파란 색이 귀했던 걸까? 덴데라 신전이나 이스탄불의 블루 모스크, 포르투갈의 아줄레주 등 유난히 파란색에 자부심과 자랑이 담겨 있는 것 같다. 앗, 우리의 고려청자도 있지.
통합 티켓을 산 김에 매표소가 있는 건물도 (아크 알 후사미 궁전) 들어가 구경을 하고
택시를 타고 와서 숙소 근처에서 내려, 보다폰 대리점을 찾아 나섰다. 공항에서 18 기가 짜리라고 판 것이 사실은 9 기가 정도밖에 쓸 수 없는 것이어서 남은 데이터가 간단간당하다. 사흘만 버티면 되긴 하는데 그게 어려울 것 같아서 안전하게 데이터를 더 사기로 한 것. 이리저리 헤매다가 찾아낸 대리점에서 다시 9 기가를 쓸 수 있는 패키지를 구입했다. (220 파운드)
숙소로 돌아오려다가, 유명한 아부타릭 코샤리가 근처에 있다는 게 기억나서 걸어가 보았다. 작은 건물이긴 하지만 3층까지 테이블이 꽉 차있을 정도로 성업 중이다. 자리가 없어서 기다려야 하는 상황인데 운좋게도 2층에 빈 자리가 나서 금방 앉을 수 있었다. 메뉴판이 어디 있나 둘러보고 있는데 종업원이 오더니 대뜸 코샤리 두 개? 한다. 아니 여긴 여긴 메뉴가 하나뿐인가? 옆자리에서 한 소년이 빵에 들어있는 수프를 먹고 있기에 그거 하나, 코샤리 하나를 시켰다. 둘러보니 메뉴판은 없고 사람들이 먹는 것은 코샤리와 수프 두 가지뿐이다. (예전에는 기본 코샤리와 추가 재료가 들어가는 특별 코샤리가 따로 있었다고 들었는데... 아마도 아래 사진처럼 추가 재료를 다 주는 식으로 바뀐 모양이다. 어떻게 먹냐고 물어보니 다 넣고 비비면 된다며 직접 부어준다. 코샤리도 맛있고 빵 속에 든 수프도 맛있고 과연 맛집이다. 게다가 양도 많아서 둘이서 저렇게만 먹어도 모자라지 않는다. 물론 우리 늙은이들 기준이다, 혼자 온 젊은이는 코샤리 하나 다 먹고 하나 더 시키더라. 가격도 매우 착하다. 코샤리 65, 수프 60. 다 좋은데, 식당 환경도 그렇고 음식도 그렇고, 어쩐지 한 끼 잘 대접받은 느낌은 들지 않는다. 시장 모퉁이에 앉아 잔치국수 한 그릇 먹은 느낌이랄까.
12월 21일
오늘은 칼릴리 시장 쪽으로 방향을 잡았다.
먼저 압딘 궁전을 찾았는데 출입 불가 지역인지 곳곳에 근위병들이 막고 있다. 근위병들이 박물관이 있다고 알려준 방향으로 갔는데 한참을 가도 입구가 없는 담벼락뿐이다. 소통 오류? 불친절한 궁전이군, 그냥 통과다.
다음은 이슬람 예술 박물관. 크지 않은 박물관이지만 시대별로 자료가 잘 정리되어 있고 팁 달라는 말 없이 조용한 직원들 덕분에 편하게 관람할 수 있었다.
여기는 진짜 지나칠 수 없는 곳이다. 유서 깊은 알아즈하르 모스크, 천년이 넘는 역사가 있지만 지금도 이슬람 학문의 중심 역할을 하고 있다고 한다. 넓은 대리석 마당이 인상적이고 내부에 늘어선 대리석 기둥들도 대단하다. (규모가 그만은 못하지만) 코르도바의 메스키타를 생각나게 하는 멋진 건물이다. 안에는 기도하는 사람들도 많고 공부하는 사람들도 많다. 입장료도 없고 신발 보관을 핑계로 팁을 강요하는 사람도 없어 더욱 좋은데, 옥의 티가 하나 있었다. 건물 가장자리에 여기저기 앉아서 공부하는 사람들 옆에 앉아서 쉬고 있다가 쫓겨난 것이다. 왜? 다들 앉아 있는데? 왜 우리만? 아저씨 말고, 아줌마 말이에요. 여자는 여기 못 앉아요. 여자들은 저~쪽에 있잖아요. 세상에나~~~ 21세기도 벌써 4분의 1이나 지났는데, 아직도 저러고 있으니 참으로 답답한 노릇이다.
지하도를 건너 칼릴리 시장으로 들어갔다. 카이로를 방문한 관광객들이 한번씩은 찾는다는 유명한 시장인데 골목이 너무 많고 가게가 너무 많아서 다 구경할 수가 없다. 대충 큰 길따라 돌아다니며 구경도 하고 기념품도 사고 했는데, 2층에 정찰제 가게가 있어서 흥정의 피곤함을 면할 수 있었다. 갈랄이라는 가게인데 중국인과 한국인들이 바글바글했다.
시장을 지나 계속 올라가니 알모에즈 거리가 나온다. 통합 입장권을 사면 몇몇 건물들을 들어갈 수 있단다. (어제도 알모에즈 거리 통합 입장권이란 걸 샀었는데, 설마, 다른 거겠지?) 시장 구경하느라 피곤한 탓에, 길가에 앉아서 혹은 서서 그리고 걸어가면서 밖에서만 알모에즈 거리를 구경하고
더 올라가니 알하킴 모스크가 나온다. 10 세기 말에 지어진 유서깊은 모스크로 당대에 알아즈하르 모스크와 자웅을 겨루었다는데 아니 그 위에 있었다는데, 어떤 이유에선지 쇠락했다가 (나폴레옹의 군대가 주둔하기도 했고 학교로 이용되기도 했단다) 근래에 복원이 되었다고 한다. 사원을 복원하는 데 이스마일파(시아파의 한 분파, 일명 7이맘파)가 앞장섰다는 기록이 있어 물어보니, 사원이 지어질 때부터 이스마일파의 사원이었어서 그들이 복원에도 힘을 썼지만 지금 예배보러 오는 사람들은 대부분 수니파란다. 여기도 무료 입장.
12월 22일
이집트에서의 마지막 날이다. 처음에는 60일 여행 중에 이집트에 30일 정도를 할애할 생각이었는데, 스케줄을 짜다 보니 크리스마스와 연말 기간에 고생하지 않으려면 미리미리 교통편과 숙박을 예약해 두어야 한다는 생각에, 그리고 이집트는 굵직한 유적과 유물이 많은 나라이긴 하지만 편하게 골목길을 누비고 다니기에는 부담이 많은 나라라는 이유로 크리스마스 전에 이집트를 떠나는 걸로 일정이 짜였다.
이집트에서의 마지막 일정은 국립 박물관이다. 타흐리르에 있는 이집트 국립 박물관은 이집트 대박물관이 정식 개관을 하기 전만 해도 카이로 여행의 필수 코스였었는데, 쿠탕카멘의 유물들을 대박물관으로 옮기고 정식 개관을 한 후에는 조금 뒤로 밀려난 듯한 분위기다. 그러나 아직도 여전히 어마어마한 양의 (물론 질적으로도) 유물을 소장하고 있는 대단한 박물관이다. 다만 전시 방식은 좀더 개선이 필요한 듯하다. 가끔은 너무 많은 유물들이 무질서하게 쌓여있다는 느낌이 들었다. 입장료 550 파운드.
타흐리르 광장을 거쳐 돌아오는 중에 허름한 로컬 식당에서 점심을 먹었다. 메뉴는 그 동안 궁금해했던 비둘기 고기. 막상 먹어 보니 닭고기 대비 별로 특별한 것이 없다. 차이가 있다면 기름기가 없다는 것 정도? 코프테와 밥을 포함한 세트가 220 파운드.
점심을 먹고 돌아오다가 길가 식당에서 샤와르마 두 개를 테이크아웃하려다가 100 파운드를 사기당할 뻔한 해프닝이 있었다. 주문한 음식의 가격을 어림해서 200 짜리를 줬는데 100을 더 내놓으라고 했다. 내가 잘못 계산했나? 100 파운드를 더 주고서 30 파운드를 거슬러받았는데, 영수증을 보니 168 파운드라 적혀 있다. 2 파운드야 그렇다고 쳐도 100 바트는 돌려줘야 잖아. 돈을 받은 여직원은 전자계산기를 두드려 가며 자기 계산이 맞다고 계속 우기다가 한참 만에야 떨떠름한 표정으로 100 바트를 돌려주었는데 끝내 미안하다는 사과는 없었다. 계산 실수였다면 당연히 웃으며 사과했을테지... 아무래도 고의적으로 속이려 했던 모양이다. 그런데 겨우 100 파운드를 해먹겠다고 사기를 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