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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년 봄] 제13기 초기불전학림 『우다나』 제5강 후기
◎강사: 초기불전연구원 지도법사 각묵스님
◎장소: 김해 장유 보리원
◎일시: 2021년 4월 20일 (화) 저녁 7시 30분~ 10시
⊙교재: 『우다나』각묵스님 옮김, 초기불전연구원
⊙공부내용: 제1품 깨달음 품: 아자깔라빠까 경~ 바히야 경(Ud1:7~Ud1:10)
⊙참석인원: 대림스님 온·오프 150여 명
⊙사진 및 방송: 김호동 학림부회장, 장상재 선생님
⊙본 강좌는 YouTube의 초기불교TV를 통해서 송출되었고, 돌려보기를 할 수 있습니다.
학림의 『우다나』 다섯 번째 온라인 강의 소식입니다.
저녁 7시 30분 강의가 시작되지만 약 15분 전쯤에 13기 학림 동참자들의 단체 카톡방에는 당일 유튜브 강의 주소가
공지되고, 그 주소를 따라 초기불교TV로 들어가면, 시작 화면의 배경음악으로 이메이 우이의 자애경이 아름답게 흐르고,
채팅창에는 부지런한 법우님들의 출석 체크 댓글들이 속속 올라오기 시작합니다. 멀리 싱가폴에서도 출석하세요~~
7시 30분 경부터 보리원 법당 현장으로 화면이 바뀌고, 곧 이어 원장 스님께 삼귀의와 오계 수지, 자애경과 큰 행복경
독송, 원장 스님의 인사말씀, 법사 스님이신 각묵 스님의 본 강의 순으로 쭈~욱 생방송 온라인 강의가 진행되었습니다.
지난주에는 강의 초반에 방송이 중단되는 등 약간의 방송 사고가 있었는데 이번 주 강의는 다시 잘 진행되었습니다.
각묵 스님 본 강의 초반에 음향이 잠시 불안정했던 것 빼고는요~ 온라인 강의 횟수가 많아질수록 보리원 미디어 팀의
생방송 진행 know-how 기술도 성장 발전하겠지요! 미디어 팀께 감사와 응원의 사~두를 보냅니다!
원장 스님의 인사 말씀에서 지난 주 방송이 매끄럽지 않았던 것에 대해 미안해하시고 다시 그런 사고가 일어나지 않기를
바라는 간~절한 마음이 찐~하게 느껴졌어요. 원장 스님께서 당부하신 대로 조금 불편한 점이 있더라도 지혜를 수반한
마음챙김인 불방일로써 마음속에 불선법 일으키지 않도록 훈련하는 기회로 삼으면 좋을 것 같습니다!
각묵 스님의 본 강의에서는 바로 교재인 『우다나』로 들어가서 제1품 깨달음 품의 일곱 번째 경인 <아자깔라빠까 경>부터
열 번째 경인 <바히야 경>까지 공부했습니다.
제1차 결집에서 모든 경을 암송했던 아난다 존자는 부처님과 나이가 같은 사촌동생이었고 부처님 성도 후 21년째부터
부처님의 여덟 번째 시자가 되었습니다. 그때 시자를 수락하는 조건 중 하나로 부처님께 요청한 것이 아난다 존자가
시자가 되기 전에 부처님께서 말씀하신 법문들, 즉 아난다 존자가 미처 듣지 못한 법문들은 부처님께서 직접 따로
아난다 존자에게 들려주셔야 한다는 것이었다고 합니다.
부처님의 마음속에서 우러나온 감흥을 읊은, 특히 부처님의 오도송과 같은 우다나는 부처님께서 나중에 아난다 존자에게
따로 말씀하신 것이라고 여겨집니다. 우리가 공부하고 있는 쿳다까 니까야(소부)의 세 번째인 『우다나』의 80개 경들 역시
대부분 부처님께서 나중에 아난다 존자에게 들려주신 말씀들을 아난다 존자가 암송하여 결집한 것으로 보입니다.
<경을 독송할 때 화면에 이렇게 자막까지 넣어 주셔서 너무 편하게 공부하네요! 이렇게 편해도 되는 건가요??!!~~>
제1품인 깨달음 품의 열 개의 경들의 공통되는 keyword는 바라문입니다.
- 완성된 인격체인 바라문은 사악한 법을 내쫓아 버렸다. brāhmaṇo bāhita pāpadhammo
아자깔라빠까 경(Ud1:7)
Ajakalāpaka-sutta
우다나를 읊으신 배경:
부처님께서 아자깔라빠까라는 약카(도깨비, 악귀, 유령)의 거처인 탑묘에 머무실 때, 칠흑같이 어두운 밤에 노지에
앉아 계셨고 가끔 비가 부슬부슬 내리기도 했다. 그때 아자깔라빠까 약카가 무서운 소리를 지르면서 “사문아, 너를
잡아먹는 유령이 왔다!”라고 부르짖었다.
그때 세존께서는 이 의미를 아시고 그 즉시 이 우러나온 말씀을 읊으셨다.
“자신의 법들에 대해서
통달한 자가 바라문이니
그가 이 유령과 유령의
광포한 소리를 넘어서게 된다.”
-자신의 법들은 교학과 수행의 두 측면으로 설명한다.
교학적으로 오취온의 법들의 일어남과 소멸과 소멸로 인도하는 도닦음의 사성제와,
수행으로 계·정·혜·해탈을 성취함으로써 자신의 법들에 대해서 통달한 자가 바라문이다.
상가마지 경(Ud1:8)
Saṅgāmaji-sutta
우다나를 읊으신 배경:
부처님께서 사왓티의 제따 숲, 아나타삔디까 원림에 머무시고 계실 때, 상가마지 존자도
제따 숲에 머물고 있었다.
상가마지 존자는 사왓티의 부유한 상인의 아들이었고 결혼한 장자였는데 사성제에 대한 부처님의 설법을 듣고
예류과를 얻어 출가하기를 원했다. 출가하기 전에 부처님께서 부모님의 동의를 받아야 한다고 하셨고, 완강히
반대하는 부모님의 허락을 받기 위해 나중에 꼭 그들을 방문하러 오겠다고 언약했다. 출가 후 상가마지 존자는
육신통을 구족한 아라한이 되었고 부모님과의 약속을 지키고 부처님을 친견하기 위해 사왓티에 와서 숲에 머물고 있었다.
그때 상가마지 존자의 출가하기 전 아내가 어린 아들을 데리고 제따 숲으로 와서 환속해서 자신과 아들을 돌봐주기를
간청했다. 세 번이나 간청해도 상가마지 존자가 침묵하는 것을 보고는 아들을 존자의 무릎에 내려놓고 갔다. 멀지 않은
곳에 가서 여전히 상가마지 존자가 아들을 쳐다보지도 않고 말도 하지 않는 것을 보고는 돌아와서 아들을 데리고 떠났다.
세존께서 천안으로 상가마지 존자의 전 아내의 볼썽사나운 모습을 보셨다.
그때 세존께서는 이 의미를 아시고 그 즉시 이 우러나온 말씀을 읊으셨다.
“다가오는 것을 기뻐하지 않고
물러가는 것을 슬퍼하지 않나니
결박으로부터 벗어난 상가마지,
그를 나는 바라문이라 부른다.”
오고감에 여여한 자야말로 바라문이다.
tādibhāva(여여함)
다섯 가지 결박: 갈망(탐), 성냄(진), 어리석음(치), 자만(만), 사견(견)의 결박
헝클어진 머리를 한 고행자 경(Ud1:9)
Jaṭila-sutta
우다나를 읊으신 배경:
부처님께서 가야의 가야시사(세존께서 가섭 삼형제를 비롯한 1000명의 비구를 아라한이
되게 한 『불타오름 경(S35:28)』을 설하신 언덕)에 머무셨다. 그때 헝클어진 머리를 한 고행자들이 추운 겨울밤 눈이
내리는 시기 중간 8일(음력 1월 25일 경부터 2월 4일 사이)에 물 위로 솟아오르거나 물 아래로 내려가거나, 솟아오르거나
내려가기를 반복하기도 하고, 불에 제사를 지내면서 이런 행위로써 청정하게 된다고 하는 것을 보셨다.
그때 세존께서는 이 의미를 아시고 그 즉시 이 우러나온 말씀을 읊으셨다.
“물에 의해서 청정해지는 것이 아닌데도
많은 사람은 여기서 목욕을 한다.
내면에 진리와 법이 있는 자
그가 청정한 자이고 그가 바라문이다.”
- 물에 의해 청정해진다는 전도된 견해인 계금취견에 대한 취착을 버리고,
내면에 진리(사성제)와 법(도와 과의 체득)이 있는 진정한 수행자가 바라문이다.
바히야 경(Ud1:10)
Bāhiya-sutta
우다나를 읊으신 배경:
현재의 뭄바이 지역 타나 구에 속하는 숩빠라까 해안가 언덕에 나무껍질 옷을 입은 바히야가
살고 있었다. 그는 일곱 번이나 배를 타고 항해하며 교역하여 크게 성공한 상인이었는데
여덟 번째 항해에서 풍랑을 만나 아무것도 걸치지 않은 맨몸으로 숩빠라까 부근에 떠밀려왔다고 한다.
그래서 나무껍질로 옷을 삼아 구걸을 다녔는데 누가 옷을 주어도 받지 않고 검소하게 지내자 사람들로부터
존경을 받게 되었고 음식과 거처와 약품을 공양받게 되었다.
그때 고요히 명상하던 바히야에게 자신이 혹시 아라한도를 증득한 아라한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고, 바히야의
잘못된 생각을 알게 된 예전 혈육이었던 어떤 천신이 바히야에게 와서 ‘바히야 당신은 아라한이 아니고 아라한 도를
증득하지도 않았다’고 말해주었다.
그렇다면 대체 어디 가면 아라한을 만날 수 있냐고 바히야가 묻자 천신은 북쪽 지방 사왓티에 가면 아라한이 되는
법을 설하시는 세존이 계시다고 알려주었다.
- 아라한이라는 용어는 문자적으로 ‘존경을 받을 만한 사람’이라는 뜻이고 불교에서 번뇌가 다한 분으로 정의해서
사용하기 이전부터 인도인들이 존경받아야 할 분이란 의미로 사용하고 있었다.
바히야는 천신에 의해 절박해진 마음으로 숩빠라까를 떠나 세존을 만나기 위해 사왓티 제따 숲의 아나타삔디까
원림으로 갔다. 세존께서 탁발하시러 마을 안으로 가신 것을 알고는 바히야도 제따 숲을 나와 사왓티로 들어가서
탁발하고 계신 세존께 다가가서 이렇게 말씀드렸다.
“세존께서는 제게 법을 설해 주소서, 오랜 세월 저의 이익과 행복을 위해서 선서께서는
법을 설해 주소서.”
“바히야여. 지금은 적당한 때가 아니다. 나는 탁발을 하러 마을에 들어와 있다.”
그러나 바히야가 세존께서 생명이 다하실 것인지 아니면 자신이 생명이 다할 것인지 알기가 어려우니 법을 설해
달라고 세 번을 계속 청하자 세존께서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다.
“바히야여, 이렇게 공부지어야 한다. ‘볼 때는 단지 봄만이 있을 것이고, 들을 때는 단지 들음만이 있을 것이고,
감지할 때는 단지 감지함만이 있을 것이고, 알 때는 단지 앎만이 있을 것이다.’라고.”
- 감지함은 냄새, 맛, 감촉을 말함.
- 이 말씀의 의미는 세 가지로 설명할 수 있다: ①상(常)·낙(樂)·아(我)·정(淨)으로 전도되지 않은 무아(anatta)의 인식,
②탐·진·치가 없는 마음, ③업을 짓지 않는 단지 작용만 하는 마음으로 안식(봄)·이식(들음)·비식·설식·신식(감지함)·
의식(앎) 등의 육식이 작용하는 것을 말한다.
“바히야여, 볼 때는 단지 봄만이 있을 것이고, ........ 알 때는 단지 앎만이 있을 것이면
그대에게는 ‘그것에 의함’이란 것이 있지 않다. ‘그것에 의함’이 있지 않으면 ‘거기에’라는 것이 있지 않다.
‘거기에’가 있지 않으면 그대에게는 여기 [이 세상도] 없고 저기 [저 세상도] 없으며 이 둘의 가운데도 없다.
이것이 바로 괴로움의 끝이다.”
- ‘그것에 의함’이 없다는 것은 탐·진·치가 없게 된다는 뜻이다.
- ‘거기에’가 없다는 것은 묶이거나 집착하지 않게 된다는 뜻이다.
- ‘이 둘의 가운데도 없다’에서 ‘가운데(antarena)’의 뜻은 ‘다른 대안’을 말한다. 아비담마에서는 중유를 인정하지
않기 때문에 이 세상도 없고 저 세상도 없고 이 둘 다가 아닌 다른 것을 상상함도 없다는 뜻이다. 그러나 북방불교에서는
중유(antarā-bhava)를 인정한다. 따라서 49재도 지낸다.
바히야는 세존의 간략한 가르침을 듣고 바로 취착이 없어져서 번뇌들로부터 마음이 해탈하였고 오래지 않아서
송아지를 가진 암소에게 공격을 받고 세상을 떠났다. 세존께서 그것을 보시고 비구들에게 동료 수행자가 임종을
하였다고 하시며 바히야 존자의 시신을 수습하고 화장하고 탑묘를 만들게 하셨다. 비구들이 세존께 바히야 존자의
내생에 대해 물어보자 세존께서 바히야는 완전한 열반에 들었다고 말씀하셨다.
그때 세존께서는 이 의미를 아시고 그 즉시 이 우러나온 말씀을 읊으셨다.
“물과 땅, 불과 바람,
이들이 굳게 확립 못하는 곳
거기에는 별들은 빛나지 않고
태양은 빛을 발하지 않으며
거기에는 달은 비치지 않고
거기에는 어둠도 존재하지 않는다.
- 열반의 경지를 뜻한다.
성자인 바라문이 지혜를 통해서
스스로 이것을 체득했을 때
물질과 비물질로부터
그리고 즐거움과 괴로움으로부터 해탈하노라.”
- 이것은 열반을 뜻함
이 우러나온 말씀 또한 세존께서 말씀하셨으니 이처럼 나는 들었다.
- 이 마지막 문장은 『우다나』 80개 경 중에서 오직 여기에만 나옵니다.
- 그런데 이 문장은 『이띠웃따까』의 112개 경들 마지막에는 전부 나타납니다.
- 『우다나』 80개 경 모두에도 해당될 문장이며 대부분의 우다나들은 아난다 존자가 부처님께 따로 전해 들었기
때문에 특별히 이 문장을 넣어서 결집해서 전승했다고 역자(각묵 스님)는 생각해 본다고 하십니다!
<강의 중 또는 1교시 후 휴식 시간에 채팅 창에 질문을 올리면 스님께서 바로 답변해 주십니다~~>
지난 주까지 학림 강의 후기를 쓰셨던 산띠빠다 총무님께서 개인 사정으로 잠시 쓰지 못하게 되신 관계로
제가 오랜만에 다시 후기를 쓰게 되었습니다. 온라인 위주로 쓰다 보니 보리원 현장의 목소리를 담지 못하는
아쉬움이 있네요! 댓글로 남겨 주시면 감사드리겠습니다!
학림 강의가 잘 진행되도록 애쓰시는 두 분 스님을 위시하여 미디어 팀의 두 분과 보리원 봉사자 분들과
온/오프로 강의에 동참하시는 모든 분들께 감사와 찬탄의 인사를 드리며 부족한 후기를 마칩니다!
사~두 사~두 사~두_()()()_
첫댓글 훌륭한 법문과 우다나 강의 이끌어 주신 두 분 스님, 멀리서 편안하게 동참할수 있게 애쓰신 미디어팀, 보리원 법당에서 애쓰시는 모든 법우님들 모두 감사합니다.
사두 사두 사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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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두사두사두
사두 사두 사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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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두 사두 사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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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두 사두 사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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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법을 행하는데 게으르지 않겠습니다_()_
함께 경을 읽으며 스님의 자세한 설명을 들으니 참 좋았습니다. 특히 바히야경에 대한 말씀을 듣고 너무 좋아 여러번 읽게 되었습니다.
스님~ 감사합니다 _()_
방송을 위해 애써주시는 모든 분들께 감사드립니다 _()_
존경하는 두 분 스님께서 항상 건강하시길... _()_
보리원 불사가 원만히 이루어지길... _()_
사~두 사~두 사~두 _()_
사-두 사-두 사-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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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두 사두 사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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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두 사두 사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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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두 사두 사두 _()_
사두 사두 사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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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림의 열정이 새록새록 솟아 나네요, 고맙습니다.
사두 사두 사두
빤야바사 법우님, 반갑습니다.
뵌지 오랜 시간이 흐른 것 같습니다. 잘 지내고 계시죠?
후기 감사합니다.
그리고 남은 5강(6~10강) 후기도 잘 부탁드립니다.
미디어팀에선 완벽한 방송 송출을 위해서 이번 주내로 몇가지 더 검토를 진행하신다고 합니다.
문제점이 잘 해결 되어 언제나 좋은 방송으로 모든 분들이 편안한 강의를 들을 수 있게 되길 기원합니다.
사-두 사-두 사-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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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두 사두 사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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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리원 소식은 제가 댓글달겠습니다.
제4강에서 갑작스런 서버다운의 원인을 찾고자 주중 내내 하드웨어, 소프트웨어 샅샅이 점검하셨는데도 시원한 해결책이 없어 5강 방송도 긴장의 연속이었습니다.
매번처럼 미디어팀 두 분께서 가장 먼저 도착하셔서 장비셋팅 후 최상의 화질과 음질을 확보하려 이리저리 장비를 손보시느라 방송 직전까지 종종 걸음이셨고, 만약의 서버 다운에도 대비를 해두셨습니다.
집전하신 총무님과 발열체크 빠드마와띠 부회장님 외 다섯 분이 법당에서 수강하였습니다.
방송 중 음질이 매끄럽지 못한것 때문에
일일이 자막 올리면서도 백방으로 원인 분석하시느라 계속 분주하셨습니다.
자문 받은대로 다시 검토하려면 다음 강의까지 두 분 노고가 또 크시겠습니다.
지켜보시는 스님 노고도 크실텐데---
부디 순조롭게 해결되기를!
사-두 사-두 사-두!
이리도 열심히 수고하고 계시니 곧 해결책이 나오리라 여겨집니다.
감사합니다_()_
사두 사두 사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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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두 사두 사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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