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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는 없다
김 미 용
그것은 분명 새의 발자국이었다.
가로 세로 모두 삼십 센티미터가 넘은 항아리 모양의 붉은 화분은 오랫동안 방치되었다. 붉은 화분에는 작년까지 금전수가 자라고 있었다. 하지만 올 해 들어 햇볕을 보지 못한 쪽의 잎이 마르기 시작하더니 곧 줄기까지 시들었다. 상대적으로 햇볕을 잘 받는 쪽은 잎도 푸르고 줄기도 튼실했다. 화분을 돌려 놓아보기도 했지만 여전히 식물은 한 쪽으로만 자랐다. 균형을 잃은 금전수가 눈에 거슬리기 시작했다. 햇볕을 받는 쪽의 줄기가 싱싱하게 빛날수록 노랗게 시들어 쳐져가는 금전수 줄기에 신경이 쓰였다. 노란 줄기를 가위로 쳐내기도 했지만 그곳에서 싱싱한 줄기는 나오지 않았다. 한 쪽 줄기로만은 오래 살 수 없다. 생명을 잃어가는 금전수를 보며 나는 남편의 마른 다리를 떠올렸다. 균형을 잃은 불구의 금전수. 나는 금전수의 뿌리를 뽑아냈다. 다른 나무를 심을까 생각하기도 했는데 식물이 없는 화분은 곧 잊혀졌다. 붉은 화분의 건조하고 푸석한 모래 위, 분명 새의 발자국이었다. 두 개의 흔적을 유심히 들여다보았다. 어떻게 나왔을까. 나는 두 달 넘게 새를 키우면서 한 번도 새장을 열어주지 않았다. 남편일 리는 없다. 발자국은 화분의 중앙에서 많이 비켜나 있었다. 세심하게 들여다보지 않았다면 그냥 지나쳤을 것이다. 나는 그것들을 손으로 살살 만져보았다. 새의 발톱이 건조한 모래가 되어갔다. 나는 입을 동그랗게 오므려 모래를 세게 불었다. 흔적은 곧 사라졌다.
새 장 속의 새는 시치미를 떼고 있다. 나는 무릎을 반쯤 접은 엉거주춤한 자세로 새장을 들여다보았다. 새장 문을 열고 손을 넣었다. 새는 좁은 공간을 푸드득 거리며 이리저리 날아다녔다. 원한다면 나는 새를 잡을 수 있다. 새장은 좁고 새는 작으니까. 하지만 곧 그만두었다. 아침부터 괜한 실랑이는 하고 싶지 않았다.
새를 얻어온 것은 남편이었다. 남편은 조용하고 무거운 집안 공기가 자신의 건강을 더욱 악화시킨다고 말했다. 애완동물이라도 있으면 나을 것 같다고 말하곤 했었다. 나는 남편의 말을 듣는 척 하지 않았다. 사람에게도 정을 주지 못하는 사람이 동물에게 정을 줄 수 있을까. 남편은 정에 인색했다. 남편에게 내 동의는 중요하지 않았다. 결국 지인의 선물을 핑계로 노란 사랑앵무가 집에 들어왔다. 새의 물을 갈아주거나 모이를 주는 일은 내 몫이었다. 남편은 하루 세 번 거실에서 새를 잠깐 지켜볼 뿐이었다.
베란다 문을 힘껏 닫고 거실로 들어왔다. 붉은 화분 속 흔적이 새의 것이라면 새는 다시 새장을 나올 수도 있다. 새가 거실까지 날아와 내 보금자리를 엉망으로 만드는 꼴은 볼 수 없다.
거실로 들어온 나는 하늘빛 실크벽지를 바른 벽과 강화마루를 깐 바닥을 유심히 살피고 고개를 쳐들어 거실 등을 보았다. 여섯 개의 동그란 등을 매달고 있는 검은 철제는 천정에 견고하게 붙어있었다. 등은 앵무의 갈색 눈을 닮았다. 여섯 개의 갈색 등은 어쩌면 내가 모르는 다른 일을 하고 있는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의자 위에 올라가 등을 가까이서 살폈다. 갈색 등을 고집했던 사람은 남편이었다. 불길한 조짐이 느껴졌다. 앵무의 눈, 갈색 등, 남편의 검은 눈동자. 나는 휴대폰을 열어 통화버튼을 길게 눌렀다. 하루라도 빨리 등을 없애고 싶었다.
싱크대 수납장을 열어 마른 미역을 찬 물에 담갔다. 소고기와 마늘에 참기름을 넣어 달달 볶은 후 불린 미역과 함께 볶다 물을 붓고 미역국을 끓였다. 간이 잘 맞았다.
식사 준비가 되자 6인용 원목 식탁을 꼼꼼히 닦았다. 상판을 닦은 후 부드럽고 유연한 곡선을 가진 네 개의 다리도 닦았다. 상판 주위나 다리에 음식물이 떨어져 때를 탄 곳은 없는지 확인했다.
나는 식사와 청소에 공을 들였다. 정갈하고 정결하게 마치 의식을 치르듯 조심스럽게 하루를 보내는 것은 나에게 굉장히 중요한 일이었다. 그렇게 시간을 견뎌냈다. 잘 차려진 식탁을 바라보자 만족스러웠다. 파닥, 파닥, 앵무의 날갯짓이다. 나는 베란다를 노려보았다. 베란다 문은 잘 닫혀 있었다. 앵무의 소리 따위가 들릴 리 없다.
전 남편과 헤어지면서 내가 가지고 나온 것은 6인용 식탁뿐이었다. 우리는 헤어지면서 재산 분할과 양육 문제로 많은 다툼을 했다. 집 안 살림 하나하나에 핏대를 세웠다. 남편은 헤어지는 그 순간까지도 쩨쩨한 면모를 유감없이 발휘했다. 결국 그릇 하나까지 정확하게 나누어 갖자고 합의했다. 상황이 점점 피곤하게 돌아가자 나는 모든 살림도구를 포기할 테니 6인용 식탁만은 내가 갖겠다고 말했다. 전 남편은 한동안 멍한 표정을 지었지만 곧 자신에게 손해는 아니라는 듯 흔쾌히 고개를 끄덕였다. 식탁은 나에게 삶의 제의를 치르는 제단과도 같은 물건이었다. 그곳에 나는 정성을 다해 제물들을 차리고 제의를 치렀다. 그 제의에 참가하는 사람은 가족이라는 이름으로 현재를 살아가는 사람들이다.
오전 7시, 오후 12시, 오후 6시 우리 가족의 식사시간이다. 나는 식사 준비를 마치고 어김없이 시계를 보았다. 7시, 역시 정확했다. 이제 우리의 제의의 시간이었다.
아들은 아직 방에서 나오지 않았다. 아마 어제 밤에도 늦은 시간까지 게임을 했을 것이다. 나는 침대 위에서 이불을 머리까지 뒤집어쓰고 누워 있는 아들에게 소리를 질렀다.
“네가 어제 뭘 했든 상관하지 않아. 하지만 식사 시간은 반드시 지켜야 돼.”
나는 아들에게 제의에는 어떤 이유에서든 빠지면 안 된다고 말하고 싶었다. 제의니까. 제의는 건성으로 치룰 수 없으니까.
휠체어를 밀고 남편이 식탁에 앉았다. 십분 쯤 지나자 아들이 잠이 덜 깬 얼굴로 눈도 못 뜬 채 주방으로 나왔다. 아들이 눈곱도 떼지 않고 식탁에 앉자 남편이 들었던 숟가락을 식탁에 다시 내려놓았다.
“야, 너 세수하고 와. 새끼가 더럽게”
아들은 별 대꾸는 하지 않았지만 표정은 일그러졌다. 나는 말 없이 밥을 먹었다. 팽팽한 긴장감이 돌았지만 식사 때마다 있는 일이기도 했다. 남편의 잔소리와 아들의 돌발행동은 식탁의 공기를 무겁게 했다.
전날 깊은 잠을 자지 못한 아들의 컨디션 때문이었을까. 밥을 씹던 아들이 식탁을 향해 혼잣말을 말을 했다.
‘병신 주제에, 잘난 척은’ 그 말은 밥알과 함께 씹혔지만 정확히 알아들을 수 있었다.
아들은 그렇게 아무렇지 않게 한마디 툭 빼어내고는 젓가락으로 계란말이를 집었다. 남편은 자신의 귀를 의심하며 아들을 바라보았다. 아들은 그깟 일이 뭐 대수냐는 표정으로 남편의 시선을 외면했다. 아들은 오른발을 덜덜 떨며 국을 떠먹었고 때때로 박자를 맞추듯 왼손을 식탁에 탁탁 두드렸다. 남편이 아들에게 숟가락을 던졌다. 아들이 몸을 돌려 피하기는 했지만 숟가락은 아들의 왼쪽 이마를 맞추며 날아갔다.
“야, 내가 병신 새끼인 줄은 몰라도 지금 너를 먹이고 공부시키는 것은 나야. 알 겠어? 그지 새끼야. 달랑 식탁 하나 끌고 들어온 니 엄마를 먹여 살리고 있는 것 도 나란 말이야.”
흥분을 참지 못한 남편이 식탁에 있는 그릇과 접시를 던지기 시작했다. 그것들은 거실로 주방으로 현관으로 날아다녔다. 내가 준비한 제물들이 그렇게 바닥에 널브러졌다. 바닥에 떨어진 그것들이 불온했다. 무엇보다 정갈하고 조심해야 할 제물들이 서로 뒤섞여 바닥에 나뒹굴고 있었다. 아들은 남편을 쏘아보다 쾅, 문을 닫고 자신의 방으로 들어갔다. 남편은 분에 못 이겨 아들의 방문을 한참동안 쏘아보았다.
한바탕 소란이 끝났다. 나는 거실과 현관 입구, 주방에 떨어진 반찬과 그릇을 치우기 시작했다. 조각난 그릇은 신문지에 싸서 버렸고 바닥에 떨어진 미역 건더기와 콩나물, 김치는 물티슈로 훔쳤다. 거실 바닥에 물기가 남아 있지 않은지 세심하게 살피고 있는데 아들이 집을 나서는 소리가 들렸다.
주변을 정리하고 나는 다시 식사를 준비했다. 아침 식사를 엉망으로 만든 남편과 아들에게 화가 났지만 식사를 중단하고 싶지 않았다. 아니, 제의를 중단하고 싶지 않았다. 미역국은 잘 끓여졌다. 밥 한 그릇을 깨끗이 비우고도 왠지 허전해 빵을 찾아 오래도록 씹었다. 파닥, 파닥, 다시 앵무의 날갯짓이다. 나는 의자를 밀치고 벌떡 일어나 베란다 문을 거칠게 열었다. 그리고 새장 속의 물통과 모이통을 끄집어냈다. 앵무는 오늘 굶어야 할 것이다.
베란다 밖 세상은 소란스러웠다. 어른이고 아이들이고 종종대며 하루를 시작하고 있다. 아들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아들은 오늘도 지각할 것이다. 아주 등교를 하지 않을 수도 있다. 안타깝게도 아들은 가족의 소중함을, 집이라는 공간의 안락함을 아직 알지 못한다. 주어진 것에는 감사할 줄 모르는 것이 사람의 습성이다. 오늘 밤 아들이 집에 들어오면 단단히 일러주어야 할 것이다. 집을 나가지 않으려면 귀찮은 일을 만들지 말라고 말이다.
다들 바쁜 시간인데 놀이터 벤치에 앉아 한가롭게 담배를 피우는 남자가 보였다. 남자는 파란 트레이닝 차림이다. 나는 베란다 창에 바짝 기대어 남자를 살폈다. 그의 직업은 무엇일까. 연차를 내 하루 쉴 수도 있고 오후에 출근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것도 아니면 스포츠센터 강사일지도 모른다. 스포츠센터를 떠올리자 갑자기 그가 탄탄한 근육을 가진 남자일지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운동을 하면서 힐끔힐끔 본 강사들은 군살 없는 복근과 매끈한 다리, 넓은 어깨를 가지고 있었다. ‘딩동’ 문자 알림 소리였다. 얼른 휴대폰을 열어보았지만 기다리던 문자는 아니었다.
거실에서 새를 보던 남편이 소리를 질렀다.
“야, 베란다 문 열고 커피 한 잔 타와. 새 모이는 준 거야?”
나는 남편의 희끗한 머리 아래 가늘고 연약한 목을 보았다. 남편의 몸은 작고 가냘펐지만 목소리만큼은 쩌렁쩌렁했다. 마치 새의 그것처럼. 커피 물을 올리고 커피 잔에 일회용 믹스 커피를 담고 있는데 남편이 다시 소리를 질렀다.
“야, 너 내 말 안 들려? 베란다 문 열라고”
나는 묵묵히 하던 일을 계속 했다. 남편의 목소리가 점점 높아졌다. 야, 야. 나는 천천히 일회용 커피에 물을 부었다. 뜨거운 커피를 받은 남편은 눈을 부릅뜨고 나를 뚫어지게 바라보았다. 나는 그의 시선을 피하지 않았다. 화가 난 그는 컵을 던지는 시늉을 했지만 곧 입으로 가져갔다. 남편은 성질이 급한 사람이었다. 조금만 자신과 뜻이 맞지 않으면 손에 잡히는 대로 물건을 던졌다. 분노한 남편을 보면 측은하기도 하고 웃음이 나오기도 했다. 아직까지도 자신이 누굴 해치거나 상처를 줄 수 있다고 생각하는 걸까.
남편은 영리했지만 적응이 느린 사람이었다. 남편은 물건을 던졌고 나는 치웠다. 그것은 둘 모두에게 필요한 행동이었지만 따지고 보면 아무 짝에도 쓸모없는 일이었다. 그것은 일종의 우리들의 존재 방식이었다. 그것으로 서로의 존재를 필요로 하고 있었다. 나는 커피를 쩝쩝거리며 마시는 남편을 바라보았다. 남편과 나는 게임을 하고 있다. 먼저 지쳐 나가떨어지는 사람이 지는 게임이다. 남편은 아직 나를 잘 모른다. 난 쉽게 지치지 않는다.
“야, 몇 번을 말해. 베란다 문!”
나는 남편의 말을 무시한 채 몸을 돌려 주방으로 왔다. 등 뒤에서 남편의 거친 욕설 소리와 끙끙 신음소리가 들렸다. 남편이 아등바등하며 베란다 문을 열었다.
열린 문 사이로 새장이 보였다. 좁은 새장 속에서 새가 날개 짓을 했다. 손바닥만한 공간일 뿐인데 새는 날고 싶어 했다. 날 수 없다는 것을 깨닫는 데는 시간이 많이 걸릴지도 모른다. 갇힌 새를 바라보며 남편은 무슨 생각을 할까. 남편은 앵무를 바라보고 있지만 새장 속의 모이통과 물통이 사라진 것도 모른다. 그가 보고 있는 것은 무엇일까. 새를 통해 무엇을 알고 싶은 걸까. 한동안 새를 바라보고 있던 남편이 휠체어 방향을 돌려 안방으로 들어갔다. 남편이 사라진 거실, 모든 것이 다시 평온해졌다.
거실에서 간이 의자를 들고 와 새장 옆에 두었다. 간이의자에 앉으니 내 눈높이에서 새를 들여다볼 수 있었다. 노란빛 이마와 연두빛 몸통, 검은빛 줄무늬. 새장 속을 가만히 들여다보았다. 새는 매달린 거울과 횃대 위를 분주히 날아다녔다. 끊임없이 움직이는 앵무에게 새장은 너무 좁은 공간이었다. 횃대에 앉아있는 앵무의 발톱을 보았다. 분홍 발톱은 작고 연약했다. 그것으로는 화분에 흔적을 남길 수 없다. 새장을 조심스럽게 열어 새의 몸통을 재빨리 잡았다. 손에 힘을 주고 꽉 움켜쥐었는데도 바둥대는 새의 움직임을 느낄 수 있었다. 나는 조심스럽게 새의 목을 잡았다. 따뜻한 체온이 느껴졌다. 조금만, 조금만 더 힘을 준다면 새는 죽을 것이다. 깃털 밑, 긴장하는 새의 목매가 느껴졌다. 놈도 알아차렸다. 여차하면 자신이 죽으리라는 사실을. 그 발톱과 날개는 아무짝에도 쓸모없다는 사실을. 손에 힘이 들어 갈수록 내 심장이 빠르게 뛰었다. 놈의 숨통은 내 손안에 있었다. 조금만 손아귀에 힘을 더 싣는다면 놈은 단말마의 비명도 지르지 못한 채 죽을 것이다. 나는 깊은 숨을 들이마시고 다시 앵무새의 진한 갈색 눈을 바라보았다. 순간, 손아귀에서 빠져 나간 새가 작은 새장을 빙빙 돌았다. 방심한 것은 아니었다. 한 번에 놈의 숨통을 끊어 놓는다면 재미 없었다. 나는 놈을 죽이지 않을 것이다. 천천히, 천천히 놈을 길들일 것이다. 새는 매일 내가 준 모이와 물을 먹는다. 그런데도 새는 내게 날카로운 발톱을 세우고 있다. 내가 챙기지 않는다면 새는 곧 죽을 것이다. 작은 새장을 지키는 새와 삼십 평이 조금 넘는 아파트를 지키는 남편, 주인 행세를 하지만 둘은 내 보호아래 있다. 남편은 내가 원하지 않는 한 나를 떠날 수 없다. 다만 그들만이 아직 그 사실을 깨닫지 못하고 있다. 웃기는 일이었다. 점점 기운이 빠져 쇠약해지고 있는 남편은 곧 내가 자신을 지키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될 것이다. 공간에 갇힌 그들이 절실하게 나의 존재를 필요로 할 때까지 나는 그저 기다리면 되었다.
‘딩동’ 휴대폰 문자 알림 소리가 들렸다. 나는 얼른 앞치마에 손을 집어넣어 휴대폰을 꺼내들었다. 잠시 숨을 고른 후 문자를 확인했다. 엄마였다. 문자 내용은 보지 않아도 알 수 있다. 아프다거나 돈이 필요하다거나 그것도 아니면 너무 외롭다는 내용일 것이다. 문자를 삭제하고 휴대폰을 앞치마 주머니에 넣었다. 그에게 아직 연락은 없다. 나는 화풀이 하듯 새장을 크게 흔들어댔다. 새장의 여러 곳을 손으로 쿵쿵 때릴 때마다 새는 여전히 위기를 느끼고는 좁은 공간을 빙빙 돌았다.
아침 식사를 끝내고 청소까지 마쳤는데도 겨우 열시였다. 세탁실에서 젖은 걸레를 가져와 거실에 있는 작은 화분을 닦았다. 화분을 닦다 작은 식물의 목을 툭, 툭 끊는데 인터폰이 울렸다. 그가 왔다. 나는 서둘러 목욕탕으로 달려가 거울을 보았다. 푸석한 머리에 물을 묻히고 웃어 보았다.
“죄송합니다. 너무 바빠서요, 문자는 받았는데 답도 못 했네요. 등을 교체하신다고요?”
175센티미터가 넘는 키에 다부진 몸을 가진 그가 신발을 벗고 성큼 거실로 들어왔다. 단정한 스포츠머리에 하얀 피부를 가진 그는 중저음의 다정한 목소리로 말을 했다. 진한 눈썹과 쌍꺼풀 없는 길고 가는 눈은 선량하게 보였고 높은 콧대와 긴 인중 성실하게 보이게 만들었다. 그는 빨리 일을 끝내고 다른 곳에 들러야 한다고 했지만 나는 커피포트에 물을 올렸다.
식탁에 향이 좋은 커피 냄새가 났다. 그가 어느새 식탁에 앉았다. 그는 두툼한 손으로 식탁에 글씨를 쓰고 있다. 그것은 한글 같기도 했지만 알파벳이거나 숫자처럼 느껴지기도 했다. 나는 흔적을 남기지 않는 그의 글씨를 유심히 바라보았다. 어쩌면 아무 의미 없는 무의식적인 그의 행동인지도 모른다. 나는 핏줄이 보이는 그의 손을 만져보고 싶었다. 두 손으로 글씨를 쓰는 그의 오른손을 감싸고 싶은 충동을 겨우 참아냈다. 그의 두툼하고 긴 손가락이 커피 잔을 더듬고 그의 입술이 잔에 닿았다. 커피를 마시는 그의 숨소리를 듣자 아랫도리가 젖어들었다. 그는 건강하고 밝은 웃음을 가졌다. 나이는 아마 서른은 넘기지 않았을 것이다. 그는 더러운 청바지와 회색 조끼를 즐겨 입었는데 어쩐지 그것들이 그를 더욱 멋지게 보이게 했다. 커피를 마신 남자는 의자를 딛고 올라가 등을 살펴보았다.
“설치한지 얼마 되지 않은 것 같은데요. 디자인도 좋고. 그냥 쓰셔도 될 것 같아 요. 게다가 당장 등부터 철거하면 불편하실 거예요. 교체할 등을 미리 생각해 두 신 것도 아니라면 당분간 그냥 두시는 것이 어때요?”
의자 위에서 등을 이리저리 살펴본 남자가 철거가 아쉬운 듯 한참을 뜸을 들였다.
나는 단호하게 일단 철거해 달라고 말했다.
“전 어두운 게 더 좋아요. 거실 등이 없다고 해서 당장 불편하진 않을 것 같아요. 식탁 등도 있고, 간접 조명도 충분하니까요.”
여섯 개의 등을 들고 있는 남자의 이마에 땀이 맺혔다. 나는 건강한 남자의 탄탄한 팔뚝을 한참을 바라보았다.
“갈보”, “갈보”
베란다 문을 닫아 두지 않았던 걸까. 남편의 말을 흉내 내는 앵무의 소리가 들렸다. 미간에 주름이 잡힌 나를 남자가 쳐다보았다.
“집에 앵무새가 있어요. 좀 시끄럽죠?”
남자가 곧 별 일 아니라는 듯 자신이 들고 온 공구 상자를 챙겼다. 주방 작은 창으로 그가 주차장으로 걸어가는 뒤 모습을 보았다. 활기찬 발걸음, 작게 노래라도 부르며 걷는 것은 아닐까. 활기에 차 있는 발걸음이 건강하게 땅을 딛는 저 두발, 가볍게 활갯짓을 하는 저 단단한 어깨근육. 나도 모르게 핑 눈물이 돌았다. 저 남자를 훔치고 싶었다. 도망가지 못하게 목에 올무를 채워 내 심장에 걸어두고 싶었다. 나는 맥없이 남자의 뒷모습을 훔치다 고개를 흔들었다. 두 번이나 실패했으면서도 아직도 남자에게 쉽게 마음을 내주고 있었다.
전 남편은 엘리트 코스를 밟으며 성장한 사람이었다. 결혼 전 그는 섬세하고 착한 사람이었다. 하지만 가족이 되었을 때 그는 지나치게 걱정이 많았고 소심한 사람일뿐이었다. 사사건건 참견을 했으며 뜻대로 되지 않는 일에는 불같이 화를 냈다. 폭언이 폭력이 되는 시간은 짧았다. 나는 맞으면서 점점 길들여졌다. 아마 전 남편이 여자 문제로 이혼을 요구하지 않았더라면 나는 아직도 남편의 폭력을 조용히 견디며 살고 있을 것이다. 남편이 나를 먼저 떠나준 것이 다행인지 불행인지 현재는 알 수 없다. 전 남편과 헤어진 후 내 선택이 옳은 것인지 그른 것인지 알 수 없는 것처럼.
어쩌면 전 남편의 폭력에 길들여진 내가 휠체어를 탄 지금의 남편에게 편안한 감정을 느꼈을지도 모른다. 남편은 수줍음이 많았고 수동적인 사람처럼 보였다. 같이 살아보자고 먼저 제안했던 것은 나였다. 나는 세상이 두려웠고 어딘가에 숨을 곳이 필요했다. 나는 날고 싶지 않았다. 주인에게 얌전하게 길들여진 새가 되고 싶었다. 주인이 주는 모이를 먹고 좁은 공간을 날아다니며 추위와 두려움에서 온전히 보호되는 곳, 그런 곳이 필요했다.
두 번째로 둥지를 튼 새장은, 그러나 처음과 별반 다르지 않았다. 다리가 불편한 남편은 폭력을 행사하지는 않았지만 폭언이라면 전 남편보다 더하면 더했지 덜 하지는 않았다. 게다가 그는 손에 잡히는 데로 물건을 던지는 습관이 있었다. 그럼에도 나는 남편을 참아내고 있다. 나는 더 이상 둥지를 옮길 생각이 없다. 더구나 지금의 남편은 나에겐 너무나 쉬운 상대였다. 그저 모른 척 참아주고 있을 뿐이었다. 그가 조금 현명한 사람이라면 자신이 어떤 태도를 취해야할지 알 텐데 남편은 싸움의 기술을 모르는 사람이었다. 패를 알고 있는 사람을 이길 수는 없다. 남편이 나를 건드리지만 않는다면 나는 남편의 안위를 최대한 보장할 것이다. 기한이 언제인지는 알 수 없지만 말이다.
남편의 휠체어를 밀고 엘리베이터에 탔다. 하루 중 남편과 떨어져 있는 유일한 시간이었다. 남편은 K병원에서 재활치료와 운동을 하기 위해 매일 두 시, 집을 나섰다. 남편은 집을 나서는 순간, 더욱 별 볼일 없는 사람이 되었다. 그는 모든 것을 내게 의지했다.
남편을 태운 병원 차량의 뒤꽁무니를 바라보며 휴대폰을 열었다. 선주에게 다섯 통이 넘는 문자가 와 있었다. 스포츠센터에서 우연히 만난 선주와 다음에 한 번 보자고 한 것이 화근이었다. 아무 뜻 없이 한 이야기인데 선주는 집요하게 만나자고 문자를 넣었다. 이런저런 핑계를 대며 만남을 미루었는데 또 다시 선주의 문자였다. 나는 주저주저하다가 결국 선주에게 문자를 넣었다.
선주를 먼저 알아본 것은 나였다. 아는 척을 하지 않았더라면 선주는 나를 알아볼 수 없었을지도 모른다. 하얀 피부에 선한 눈매를 가진 선주는 사십이 넘은 나이에도 초등학교 때의 얼굴이 보였다. 세월을 피해간 친구의 미소에서 나는 그녀의 삶을 엿볼 수 있었다.
“남편이 장애가 있어. 봉사 활동을 하다 만났는데 어쩐지 끌리더라.”
말을 꺼내고 보니 도대체 내가 무슨 말을 하고 있는지 알 수 없었다. 나는 무모한 사랑을 한 철 없는 여대생의 역할을 하고 있었다. 대단하다, 정말 대단해. 선주가 나를 추켜세우자 남편은 어느새 말썽쟁이 아들의 진짜 아빠가 되어 있었다. 거짓말을 시작하자 입에서 거침없이 말들이 쏟아졌다. 어쩌면 거짓이 아닐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우리에게 사랑은 없었지만 타협은 있었다. 내가 희생적인 여자가 아니었다면 남편과 같은 공간에서 지내지 못했을 것이다. 남편은 손이 많이 가는데다 무례한 사람이었으니까.
정말이지 선주는 너무나 순진한 친구였다. 선주의 눈빛과 표정을 바라보며 나는 그녀를 한껏 골려주었다. 의심이라곤 없는 눈빛, 따스한 표정, 고개를 끄덕이며 나를 위로하는 그녀의 미소. 하지만 그녀와 대화가 길어질수록 이상하게 초조해지고 화가 났다. 거짓말을 들킬 일은 없었다. 끊임없이 말을 토해내는 나를 조용한 미소로 바라보던 선주가 탁자 위 내 손을 잡았다. 갑작스러운 그녀의 돌발행동에 나는 당황했지만 선주의 손은 따뜻했다. 사람의 손길이란. 가슴 안에서 뭔지 뜨거운 기운이 올라왔다. 점점 그녀의 얼굴을 바라보는 것이 힘들어졌다. 쓸데없는 말을 너무 많이 했다. 선주와 헤어지자 오히려 나는 허탈해졌다. 선주, 다시는 보지 않고 싶다. 선주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나는 천천히 길을 따라 걸었다.
미니스톱에서 초등학생들로 보이는 아이들이 라면을 먹고 있다. 학원 시간이 빠듯한 듯 아이들은 허겁지겁 면을 건져먹고 국물을 마셨다. 한창 크는 아이들은 언제나 배가 고픈 법이다. 나는 유리문 속에 아이들을 오래 들여다보았다.
엄마가 집을 나가고 아빠마저 일 때문에 다른 지방으로 떠나면서 나는 온전히 모든 것을 스스로 해결해야 했다. 날마다 라면을 끓였다. 밥이 있으면 라면 국물에 밥을 말았고 밥이 없으면 라면을 두 개 끓였다. 이상하게 음식을 먹을수록 배가 더 고팠다. 한 번에 라면을 다섯 봉지를 끓였던 적도 있었다. 토할 만큼 먹었는데도 허기는 가시지 않았다. 가스레인지 위에 펄펄 끓고 있는 라면을 급하게 먹으면서 나는 자주 울었다. 라면이 너무 뜨거웠거나 매웠기 때문일 것이다. 느긋하게 식탁에 앉아 먹었더라면 좋았을 텐데. 지금도 나는 소화 장애를 앓고 있다. 음식을 잘 씹고 삼켜야 했지만 오래된 습관은 바뀌지 않았다.
초가을이었지만 볕은 뜨거웠다. 나는 모자도 쓰지 않고 양산도 들고 나오지 않은 것을 후회했다. 자외선차단제를 바르지 않은 얼굴에 쨍쨍한 빛이 머물렀다. 나는 얼굴을 찌푸리고 손차양을 만들었다. 기미가 짙어질까 걱정이 되었다.
거리를 지나다니는 사람은 많지 않았다. 커피숍을 지나고 의류 매장을 지나고 문구점을 지나고 미용실을 지나고 영어 학원을 지났다. 사람들이 사는 곳에는 필요한 것들도 많았다. 없어도 살 수 있는 것들이기도 했다. 병원과 약국을 지나자 작은 시장이 보였다. 오래전엔 사람들로 붐볐던 재래시장은 이제 머리가 세고 허리가 굽은 늙은 상인들만 보였다. 눅눅하고 비릿한 냄새가 났다. 길가에 앉아 신문지 위에 시든 야채와 과일을 파는 노인을 뒤로 하고 시장 안으로 들어섰다.
‘싸고 이쁜 옷’이라는 간판을 건 옷가게는 싸긴 했지만 유행이 지난 옷들이었다. ‘보물창고’라는 간판이 붙은 가게는 먼지가 잔뜩 앉은 헌옷을 팔고 있었다. 게장 오천 원, 김치 오천 원, 각종 밑반찬이라고 써진 가게 앞에서 잠시 망설였으나 가게 옆 골목을 쓰윽 지나가는 살찐 검은 고양이를 보고 곧 돌아섰다. 빈 상점이 많았다. 좀 안쪽으로 들어가다 식당 앞 의자에 놓인 커다란 새장을 발견했다. 자세히 바라보니 빈 새장이었다. 집에 있는 것과는 다른 원형 새장이었다. 새장 안에는 거울과 횟대에 딸랑이 공까지 있었지만 주인이 없었다. 새가 없으니 시끄럽지도 않고 더럽지도 않았다.
“뭘 그리 보우, 새도 없는데.”
식당 여주인의 날카로운 목소리가 들렸다. 식사를 할 거면 들어오고 안 먹을 테면 가게 앞에서 얼쩡거리지 말라는 투였다. 주인의 투정에도 나는 새장 앞에서 한참동안 움직이지 않았다. 텅 빈 새장은 완벽하게 평화로웠다. 그곳에 새를 들인다면 울지 않는 새가 좋을 것이다. 쓸데없는 말 따위를 따라하는 앵무는 절대 들여서는 안 될 것이다. 텅 빈 새장을 바라보며 ‘갈보’, ‘갈보’, 남편을 흉내 내는 사랑앵무를 떠올렸다. 새를 놓아줄까, 아니면 새의 숨통을 끊어 놓을까. 방법은 둘 중 하나였다. 남편이 길길이 날뛰겠지만 그 뿐일 것이다.
파닥, 파닥, 다시 새가 내 귀에 울음을 쏟아낸다. 얼굴을 찡그리며 고개를 두리번거렸다. 문자 알림이었다. 시간이 되면 와 줄 수 있느냐는 엄마의 문자였다. 휴대폰 액정을 한참 바라보았지만 문자에 답은 하지 않았다. 엄마는 살다보면 사람의 힘으로 되지 않는 일이 있다고, 피해 갈 수도 도망 갈 수도 없는 시련이 생긴다고 말했다. 그것이 나를 버리고 일찍 집을 나간 자신에 대한 변명인지 나에 대한 이해인지는 알 수 없다. 다만, 엄마가 떠난 이후 나는 사랑하는 방법을 배우지 못했다. 사랑을 받지 못하는 아이에게 ‘사랑’이란 단어는 흥분됐지만 낯설었다. 미움과 분노는 가슴 속에 단단한 뿌리를 내렸고 애정과 관심은 열매를 맺지 못했다. 요즘은 내 가슴 속에 무시와 무관심이 뿌리를 내리기 시작했다. 그것들은 내 안에서 튼튼하게 자리를 잡을 것이다.
정신이 들어 시계를 보니 다섯 시가 넘었다. 저녁을 준비해야 할 시간이다. 서둘러 시장을 벗어나야 했는데 나는 잠시 그 자리에서 한참을 서 있었다. 길을 잃었다. 좁은 시장 길에서 큰 길로 나가는 길을 찾지 못했다. 시장을 여러 번 돌았지만 나는 여전히 눅눅하고 음습한 시장의 한 가운데 있었다. 도움을 청해야겠다고 생각하고 주위를 돌아보았을 때 길 위에는 온전히 나 혼자였다. 볕을 즐기며 기지개를 펴거나 게으름을 피우고 있는 길고양이만 보일 뿐이었다. 좁은 골목길은 더러웠다. 담배꽁초와 쓰레기가 여기저기 널려 있었고 알 수 없는 냄새 때문에 현기증이 났다. 다른 길을 찾아 오른쪽으로 돌았는데 사람 한 명이 겨우 걸어 다닐 수 있는 더 좁은 길이 나왔다. 다닥다닥 붙어있는 집들은 모두 여인숙이라는 간판을 달고 있었다. 잠시 쉴 수 있을까. 여인숙 앞에서 망설였다. 하지만 저 문을 열고 들어서면 나는 영원이 길을 잃을 것 같아 두려웠다. 나는 길 가운데 주저앉았다. 새장이 있던 식당을 찾는다면 길을 찾을 수 있을 텐데. 나는 안락한 우리 집이 그리웠다. 숨이 깊이 들이마셔 호흡을 정리했다. 천천히, 천천히 왔던 길을 되짚어보면 길을 찾을 수 있을 것이다. 그러면 위험하고 불결한 이곳을 떠날 수 있을 것이다. 나는 무릎에 힘을 주고 서서히 일어섰다. 저기, 흔들리는 작은 원형 새장이 눈에 들어왔다. 나는 작음 숨을 토해냈다.
냉동실을 뒤져 조기를 굽고 호박을 채 썰어 볶았다. 김을 잘라 놓았고 당근과 파를 송송 썰어 넣고 계란찜을 올렸다. 남편의 젓가락은 여전히 허공을 맴돌았다. 그는 반찬에는 손도 대지 않고 꾸역꾸역 밥만 먹었다. 늦게 돌아온 나에게 시위를 하고 있었다. 남편이 자리를 떴지만 조기와 계란찜, 호박볶음이 그대로 남았다. 나는 남편의 그릇을 치우고 새로운 식탁을 준비했다. 남편은 앵무새를 잠시 쳐다보더니 안방으로 들어갔다. 남편은 텔레비전을 보다 9시가 되기 전에 잠이 들 것이다.
냉장고에 넣어두었던 쇠고기 한 팩을 꺼냈다. 프라이팬에 소고기를 올렸다. 지글지글 잘 구워진 소고기를 보자 침이 넘어갔다. 야채를 씻고 기름장을 만들었다. 아껴두었던 그릇을 꺼내 반찬을 다시 옮겨 담았다. 싱크대 선반에 숨겨두었던 소주도 꺼냈다. 피곤한 하루였다. 길은 칙칙하고 복잡한 곳이었다.
머그컵에 소주를 담아 베란다로 나갔다. 붉은 화분을 세심하게 들여다보았다. 새의 발자국은 없었다. 역시 새는 나오지 않았다. 화분 속 건조한 모래를 손으로 만져보았다. 화분을 어떻게 할 것인지 잠시 고민했다. 화분은 날이 밝는 대로 화원에 가져 갈 것이다. 화분에 무슨 나무를 심을지는 결정하지 않았다. 하지만 볕이 없어도 잘 자랄 수 있는 음지식물을 심어야겠다고 생각했다.
하얀 불빛 아래 날개 짓을 하는 앵무새를 바라보았다. 새장에서 키운 새는 문을 열어주어도 쉽게 나가지 않는다는 말을 들었던 적이 있다. 하지만 고작 두 달 키운, 그것도 사람의 정을 전혀 받지 못한 새는 곧 새장을 박차고 날아갈지도 모른다. 갈 곳을 정하지 못하고 밖으로 나간다면 새는 금방 길을 잃을 것이다. 나는 새장의 문을 올렸다, 내렸다를 반복했다. 길은 더럽고 위험한 곳이야, 나는 새장을 향해 낮게 중얼거렸다.
새는 목을 이리저리 돌리기도 하고 날다가 앉기를 반복했다. 새장 문을 반복적으로 만지던 나는 새장 문을 활짝 열고 거실로 들어왔다. 갈보, 갈보 다시 앵무였다. 들고 있던 컵이 바닥에 떨어져 산산조각이 났다. 나는 베란다로 달려 나가 새장을 주먹으로 툭툭 쳤다. 앵무가 바쁘게 날기 시작했다. 새장 속으로 오른 손을 쑥 집어넣었다. 사랑앵무가 횃대와 거울로 반복적으로 움직였다. 나는 거칠게 새의 깃털을 잡아당겼다. 버둥대는 새의 몸통을 붙들고 앵무의 목을 눌렀다.
앵무의 갈색 눈과 마주쳤다. 앵무의 눈에 배고팠던 어린 내가 울고 있었다. 혼자 살 길을 고민했을 엄마와 나를 학대하는 아빠, 우리 가족의 해체는 어쩌면 예고된 수순일 지도 모른다. 거짓말을 잘 했던 아이, 너에게 진실이라는 것이 있니? 질책하며 나를 떠났던 많은 사람들, 여리고 작은 내가 거기 있었다. 두려움과 불안함에 밥과 라면과 떡볶이를 닥치는 대로 먹고, 빵이든 껌이든 과자든 끊임없이 입에 넣던, 눈가로 흘러내리는 눈물을 닦으면서 식욕을 포기하지 못한 내가 있었다. 나는 고개를 힘차게 힘들었다. 기억하고 싶지 않았다. 어쩌면 내 기억은 더 좋지 않은 쪽으로 왜곡되어 있을지도 모른다. 과거의 어느 부분이 진실인지 아닌지 알 수 없다. 다만, 지금 나는 나의 보금자리를 지키고 싶을 뿐이다.
손아귀에서 앵무가 바둥거렸다. 나는 다시는 어둡고 칙칙한 길을 헤매지 않을 것이다. 나에겐 새장이 필요하다. 떠나지 않아도 되는 삶, 매 끼 식탁을 차려 의식을 치를 수 있는 곳이 필요하다. 물처럼 고요하게 시간을 보낼 수 있는 곳이 필요하다. 나는 남편의 무료하고 덤덤한 표정 안에 나에 대한 의심과 증오를 숨기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다. 하지만 남편을 사육하는 것은 나였다. 행복한 가정을 위해 남편의 자유를 조금 인정해 줄 뿐이다. 나는 깊은 숨을 들이마신 후 앵무를 잡은 손에 힘을 주었다. 조금만 더 힘을 준다면 작은 식물처럼 앵무의 목도 ‘툭’ 꺾일 것이다. 앵무의 목을 누르고 있는 손아귀에 따뜻한 앵무의 체온이 느껴졌다. 서서히 앵무를 잡은 내 손에 힘이 빠졌다. 불안하게 새장을 나는 앵무의 날개짓을 바라보며 나는 베란다 문을 닫았다.<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