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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 김헌정 열사 정신과 노동운동의 혁신 과제
정성희 소통과혁신연구소 소장
고 김헌정 열사 약력
1964년 7월 15일 경기도 포천시 관인면 중리 출생
1983년 한양대학교 경영학과 입학, 총학생회 총무부장으로 활동
1986년 서울대 연합집회 참여, 구속
1986년부터 (주)미원과 삼영모방 노동운동, 해고, 구속
1989년 덕계 노동자 사랑방 대표
1997년 경기북부노동정책연구소 소장
1999년 의정부 시설관리노동조합 결성 지원, 경기도노동조합 초대 및 2대 위원장
2004년부터 전국민주연합노동조합 부위원장
2009년 전국민주환경시설일반노동조합연맹 부위원장
2009년 민주노동당 중앙위원, 노동자 정치세력화에 기여
2010년 5월 4일 병환으로 별세, 마석 모란공원 민족민주열사묘역에 안장
'김헌정장학금' 조성, 비정규직 노동자, 투쟁사업장, 사회단체 회원의 자녀 등 지원
1. 들어가며 - 고 김헌정 열사 정신 계승을 위하여
고 김헌정 열사의 삶과 투쟁은 노동운동이 노동자 민중의 삶을 개척하고 사회와 역사의 전환을 이끄는 변혁의 주체가 돼야 함을 분명히 보여준다. 고 김헌정 열사는 1980년대 반독재 학생운동에서 시작해 노동현장으로 투신하며 노동자 민중의 실질적 해방을 위해 전 생애를 바쳤다. 청소노동자, 환경미화원, 공무직 등 어려운 노동자들을 조직하고 교육하며 그들의 투쟁을 사회적 의제로 끌어올렸다.
고 김헌정 열사는 노동운동이 단순한 경제적 요구를 넘어 외세와 자본과 권력의 구조를 바꾸는 정치적·사회적 투쟁이어야 한다고 믿었다. 그는 직업적 노동운동가로서 노동조합이 노동자 대중의 자치를 실현하는 생활 속의 조직이 돼야 함을 실천했다. 전국민주연합노조 건설을 통해 지역 노동조합을 전국적 계급투쟁의 진지로 끌어올렸고 파업·집회·시위가 노동자 학교임을 보여주었으며 비정규직 노동자 정치세력화의 길도 함께 열었다.
고 김헌정 열사의 투쟁은 미군 주둔과 남북 분단 구조 속에서 노동자 민중이 진정한 주권을 가질 수 없다는 구조적 인식 위에 서 있었다. 자주통일을 위한 노동운동의 임무는 단지 민족문제의 해결이 아니라, 미일 제국주의 세력과 내외 독점자본에 맞선 민중해방과 직결된다는 관점을 견지했다. 자주적 노동운동, 민중의 정치 주체화, 통일운동의 대중화를 변혁의 총괄 과제로 이해한 것이다.
그는 제국주의 독점자본-국내 재벌-중소 영세기업-노동자 민중이라는 다단계 부담 전가 구조와 지배 질서를 온존시키는 제도권 정치에 안주하지 않고, 아래로부터 민중 권력을 세우는 투쟁을 중시했다. 비정규직 중심의 전국 단일노조 건설과 강화, 민주노동당과의 적극적 연대는 그 일환이었다. 고 김헌정 열사의 삶은 투쟁 없는 권리, 분단 아래의 해방, 제도 안의 평등은 허상이라는 사회변혁과 역사 발전의 진실을 가르쳐준다.
따라서 고 김헌정 열사 정신 계승은 반제 자주, 진정한 민주주의, 평화통일, 노동해방을 아우르는 변혁운동의 전망을 현실로 만드는 데 있다. 노동자 대중 속에 뿌리내리고 노동자 대중 자신이 주인으로 참여하는 노동운동만이 자주통일과 민중해방의 길을 열 수 있음을 하늘에서도 거듭 강조하고 있을 것이다. 이에 고 김헌정 열사 15주기를 맞아 그의 정신을 계승하는 노동운동의 혁신 과제를 생각해보고자 한다.
2. 공공서비스 노동자의 고통과 구조적 요인
한국 사회에서 공공서비스 노동자들은 사회의 일상을 지탱하는 보이지 않는 버팀목이지만, 정작 이들에 대한 처우와 시선은 불평등하고 무관심하다. 특히 환경미화원과 공무직 노동자들(간호복지보조, 도로 관리, 상하수도 유지, 사무·행정·도서관 업무 등)은 각자의 분야에서 상시·지속적 필수노동을 수행하면서도, ‘공공성’이라는 말과 동떨어진 차별과 고통을 감내하며 일하고 있다.
먼저, 환경미화원은 도시의 위생과 질서를 유지하는 가장 기초적인 역할을 담당한다. 새벽 3~4시에 출근해 차량이 다니는 도로 위에서 위험을 무릅쓰고 쓰레기를 수거하고, 때론 독성 폐기물이나 의료폐기물, 심지어 사람이 버린 날붙이와 날카로운 유리 조각에 찔리는 일도 흔하다. 그럼에도 산업재해는 대부분 ‘개인 부주의’로 치부되며 산재 인정이나 치료 지원은 매우 제한적이다. 작업 중 사망자 수도 전체 노동자 평균보다 높지만, 사회는 이들의 죽음을 당연시하거나 주목하지 않는다.
또한 공공부문이면서도 민간위탁이라는 이름 아래 외주화되어, 법적 사용자도 불분명한 상태에서 일한다. 사용자가 명확하지 않기에 노동권 보장은커녕, 단체교섭권조차 제대로 행사하지 못하며, 임금은 최저임금 수준에 고정되고 복지는 사각지대에 방치된다. 게다가 언론과 시민들은 환경미화원을 ‘편한 직종’이나 ‘공짜로 복지 받는 이들’로 오해하는 경우가 많아 존엄과 명예까지 훼손당하는 이중고를 겪고 있다.
한편, 공무직 노동자들은 법적으로는 정규직인 무기계약직이지만, 실질적으로는 정규직 공무원과 철저히 분리된 차별 구조 안에서 일하고 있다. 예를 들어 간호복지보조 인력은 지역 보건소와 복지센터에서 주민 건강, 돌봄, 장애인 서비스 등을 직접 수행하지만, 공무원과 같은 복지 시스템이나 승진 체계에서는 완전히 배제되어 있다. 대부분의 간호보조 인력은 정규 간호사와 같은 업무를 수행하면서도 낮은 임금과 열악한 근무조건 속에 놓여 있으며, 감정노동과 과도한 민원에 시달린다.
도로 및 상하수도 유지 인력은 각종 민원이 발생할 때마다 즉시 투입되어야 하고, 비나 폭우, 한파에도 현장에 나가 작업을 해야 한다. 도로포장이나 하수관로 유지보수 등은 직접적인 위험이 수반되는 고강도 현장 노동임에도 ‘공공업무 종사자’로서의 위험수당조차 제대로 지급되지 않는 경우가 많다. 안전장비 부족, 야간 근무, 돌발 사고 노출 등 복합적인 노동 강도에도 불구하고, 이들의 존재는 행정 조직 내에서도 ‘보조 인력’으로만 취급된다.
행정사무, 도서관 운영 등의 사무 공무직 노동자들 또한 차별을 피해가지 못한다. 일반 공무원과 함께 근무하면서도 호봉이 없고 경력 인정을 받지 못하며 승진이나 직무전환의 기회도 전무하다. 동일한 문서 작성, 민원 응대, 회계·행정 업무를 수행하지만, 공무원에게는 ‘성과급’과 ‘복지 포인트’가 주어지고, 공무직에게는 “당신은 대상이 아니다”는 식의 차별적 통보가 반복된다.
이처럼 공무직 노동자들은 “정규직이지만 정규직이 아닌” 이중구조 안에 놓여 있다. 정부와 지방자치단체는 ‘정규직 전환’이라는 이름으로 비정규직을 공무직으로 바꾸었지만, 실제로는 임금·복지·처우 모든 면에서 또 하나의 차별 계층을 고착화한 것이다. 게다가 2020년 이후 행안부의 ‘공무직 관리지침’은 이들을 ‘통제하고 관리할 대상’으로만 인식하며, 인사권, 평가권, 해고권을 기관장에게 집중시켰다. 이는 사실상 공무직을 언제든 불이익 줄 수 있는 관리 대상화 시스템이다.
더욱 심각한 것은, 노동자들의 조직화와 노동권 행사마저 쉽게 제한된다는 점이다. 공무직 노조나 환경미화원 노조가 파업이나 단체교섭을 요구하면, 지자체는 ‘예산 없다’, ‘직무 특성상 불가하다’며 책임을 회피하거나 탄압하는 방식으로 응답한다. 일부 지자체에서는 노조 활동을 이유로 배치전환이나 업무 변경을 가하는 사례도 존재하며, 실질적인 표현의 자유와 정치적 권리조차 제한된 상태다.
결국 환경미화원과 공무직 노동자의 고통은 단순한 임금의 문제가 아니라, ‘공공을 지탱하는 노동’에 대한 사회적 인정 부재와 구조적 차별의 문제이다. 한국 사회는 공공서비스 노동을 ‘소모품’처럼 취급하면서도 그들의 손에 의해 돌아가는 사회 시스템을 당연하게 여기고 있다. 진정한 공공성은 공공서비스를 제공하는 이들의 노동조건, 권리, 존엄이 보장될 때에야 가능하다. 공공서비스 노동자에 대한 처우는 한국 사회가 얼마나 평등하고 정의로운가를 가늠하는 민중적 기준선이며, 공공의 본질이 이윤이 아니라 사람과 삶을 중심에 둘 수 있는가에 대한 사회적 질문이다.
이들의 고통을 끝내기 위해서는 민간위탁 철회, 직접고용 확대, 공무직-공무원 간 차별 해소, 조직화와 단체교섭권 보장, 노동조건 표준화와 생활임금 보장 등 구조적이고 법·제도·정책의 대개혁이 반드시 필요하다. 그런데 그 근본에는 신식민지예속자본주의라는 구조적 모순이 놓여 있다. 한국 사회는 외세 자본과 결탁한 국내 독점재벌이 경제를 장악한 예속구조 속에 있으며, 공공부문은 효율성과 수익성을 우선하는 시장 논리에 종속되어왔다. 원래 공공서비스는 시민의 기본권을 보장하고 사회적 약자를 보호하는 역할을 해야 하나, 이러한 기능은 신자유주의적 구조조정과 민영화 압력 속에서 점차 축소되었다.
이 과정에서 공공서비스 노동자들은 필수 업무를 수행하면서도 비정규직, 외주화, 저임금, 인력 감축 등의 고통을 겪게 되었다. 노동조합 활동에 대한 제약, 공공부문 파업에 대한 엄격한 통제 등으로 연결되며, 공공노동자들의 정치적 권리와 집단적 힘마저 억제하고 있다. 그 결과, 필수노동자인 공공서비스 노동자는 필수성을 인정받지 못하고, 시민의 복지를 위한 노동은 오히려 천시받는 구조가 고착화되었다. 공공서비스 노동자의 고통은 단순한 부문 문제나 노사관계의 문제가 아니라, 신식민지예속자본주의라는 전 사회적 구조의 결과인 것이다. 이 구조를 바꾸지 않고서는 공공서비스의 질도, 공공노동자의 권리도 함께 보장될 수 없다.
3. 한국 사회 변화와 노조의 책무
한국 사회는 겉으로는 독립된 민주공화국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정치·경제·군사 모든 면에서 미국 중심의 세계 질서에 깊이 묶여 있는 신식민지 사회이다.
1945년 일본 식민지에서 해방된 뒤, 남한은 스스로 주권을 가진 나라를 세우지 못했고, 미국 군정 아래 놓이면서 자주적인 정부 수립이 가로막혔다. 1948년 단독정부 수립과 1950년 한국전쟁, 그리고 1953년 한미상호방위조약 체결 이후 한국은 미국의 동북아 군사 전략기지로 고정됐다. 오늘날까지 전시작전통제권은 미국이 쥐고 있고, 한미연합사령부가 실질적인 군사통제권을 가지고 있으며, 주한미군은 여전히 한국에 주둔하고 있다. 이런 조건 속에서 한국은 군사주권뿐 아니라 경제·외교의 독립성까지 크게 제한받고 있다.
경제도 마찬가지이다. 1960~70년대 박정희 정부는 미국과 일본의 자본과 기술에 의존해 수출 중심 산업구조를 만들었고, 이 과정에서 재벌 대기업과 정부, 외국 자본이 서로 손을 잡았다. 그 결과 경제 성장은 이루었지만, 중소기업·노동자·농민·도시 빈민은 철저히 배제됐고, 그 성장의 이익은 소수만 가져갔다. ‘한강의 기적’은 국민 전체가 함께 만든 기적인데도 일부 재벌과 기득권층의 수혜로 귀결되었다. 1997년 외환위기 때 한국은 IMF에 긴급 자금을 요청했고, 미국과 국제금융자본의 요구에 따라 금융 시장 개방, 공기업 민영화, 노동 유연화 등의 구조조정을 받아들였다.
이로 인해 수많은 기업이 정리해고를 감행했고, 평생직장은 사라졌으며, 비정규직이 한국의 ‘보통 일자리’로 바뀌게 되었다. 심지어 교육·의료·에너지·운송 같은 공공서비스 영역도 민간 자본에게 넘겨지면서, 국가가 해야 할 공공 책임마저 사라지게 되었다. 한국 사회는 오늘날 비정상적인 자본주의 사회가 되었다. 세계 10위권의 경제 규모를 자랑하지만, 청년실업, 자살률, 가계부채, 산재 사망률, 장시간 노동 등에서는 OECD 국가 중 최악 수준이다. 노동자 절반 가까이가 비정규직이며, 여성·청년·고령자·이주노동자일수록 더 나쁜 조건에 몰리고 있다. 해고는 쉽고, 노동삼권(단결·단체교섭·단체행동권)은 보장되지 않으며, 일하다 다쳐도 산재보상조차 받기 어려운 현실이다. 국가는 노동의 권리를 보호하지 않고, ‘노동 유연성’을 강조하며 기업의 편을 들고 있다.
이런 문제를 더욱 악화시키는 구조가 바로 분단체제다. 한국은 지금도 세계에서 유일하게 전쟁을 끝내지 못한 채 분단 상태로 남아 있는 나라이다. 분단 이후 국가권력은 ‘반공’과 ‘안보’를 최우선 가치로 내세우며, 노동자와 민중의 목소리를 탄압해 왔다. 조금만 다른 생각을 말해도 ‘이적행위’, ‘국가보안법 위반’으로 몰렸고, 통일을 말하거나 북과 대화를 주장하면 불온시했다. 그것이 윤석열의 잦은 ‘반국가세력“ 타령과 비상계엄 빙자 내란-외환으로 나타났다. 이런 분위기는 정치뿐 아니라 언론, 교육, 사법, 행정 전반에 뿌리내려 있다. 분단은 노동자들의 연대에도 큰 장벽이 된다.
군비 증강은 복지 예산을 가로막고, 남북 대립 구도는 민중 내부의 단결 가능성을 차단한다. 국가는 정규직과 비정규직, 남성과 여성, 내국인과 이주노동자 사이에 경쟁을 붙이고, 자본은 그 틈을 이용해 분열을 조장한다. 결국 민족 분단과 계급 분열은 함께 움직이며, 노동자는 단결하기 어렵고, 사회는 서로 단절되고 불신하는 구조로 굳어진다.
이처럼 한국 사회는 신식민지 예속, 분단체제, 외자-재벌 중심 비정상 자본주의가 얽히면서, 민중의 삶을 위기로 몰아넣고 있다. 겉으로는 민주주의와 시장경제를 내세우지만, 실제로는 외세와 대기업이 권력을 쥐고, 민중은 배제된 사회이다. 법과 제도는 있지만, 그것을 제대로 쓸 수 없는 사람들이 너무 많다. 이러한 모순을 해결하려면 단순한 제도 개선이나 정책 수정만으로는 부족하다. 한국 사회 전체를 바꾸는 ‘구조적 전환’, 즉 한국 사회변혁이 필요하다.
그 한국 사회변혁의 핵심은 다음과 같은 5가지로 압축할 수 있다. 첫째, 외세의 간섭에서 벗어나 군사·외교·경제 주권을 되찾는 자주 국가를 세우는 것, 둘째, 외자-재벌 중심의 경제 구조를 바꾸고 민중 중심의 생산과 분배 체계를 만드는 것, 셋째, 비정규직을 없애고 노동권과 사회복지를 보장하여 누구나 인간답게 살 수 있는 사회를 만드는 것, 넷째, 분단체제를 넘어서 평화와 통일을 실현하고, 민족 스스로 주체가 되는 길을 여는 것, 다섯째, 민중이 권력을 나눠 갖고 아래로부터 민주주의를 실현하는 자치 사회를 만드는 것이다.
노조의 임단투와 법·제도·정책 개선 투쟁은 노동자의 권리 확대와 조건 개선을 위한 중요한 수단이지만, 구조적 모순을 해결하기에는 뚜렷한 한계를 지닌다.
임단투는 주로 개별 사업장을 단위로 한 사용자와의 교섭에 머물러 사회 전체의 불평등 구조나 산업 간 격차를 다루기 어렵고, 노동시장의 양극화 속에서 대기업 정규직 중심의 노조는 비정규직, 플랫폼 노동자, 여성, 이주노동자 등 취약계층을 충분히 대변하지 못한다. 또 자본의 외주화 전략과 단체교섭권 회피, 법적 제약으로 인해 노조의 조직력과 교섭력은 구조적으로 약화된다. 대부분의 임단투는 임금인상이나 복지 확대 같은 생존권 중심의 요구에 집중되며, 고용안정이나 조직문화 개선과 같은 구조적 변화까지 나아가기 어렵다.
법·제도·정책 개선 투쟁도 국가권력의 계급적 성격과 노동의 정책 결정 배제, 입법 절차의 지연과 불확실성 등으로 실질적인 성과 도출이 어렵다. 제도가 부분적으로 개선되더라도 신자유주의적 고용구조나 대기업 중심 하청체계 등 본질적인 문제는 그대로 유지되는 경우가 많으며, 정책 실행은 각 기관에 맡겨져 실효성이 떨어지는 경우가 많다.
결국 임단투와 법·제도·정책 개선 투쟁은 일정한 의미를 가지지만, 그것만으로는 구조적 불평등과 자본 중심 사회 질서를 근본적으로 전환하기 어렵다. 따라서 이를 넘어선 계급적 조직화와 정치투쟁, 반제 반독점, 구조 전환을 지향하는 변혁운동이 반드시 병행되어야 한다.
4. 자주적 민주노조운동의 혁신 과제
1) 경제주의·조합주의·실리주의의 극복 : 노조를 사회변혁의 기지로
오늘날 많은 민주노조가 임금·복지·고용 안정 등 경제적 실리에 매몰된 채, 더 이상 노동자의 계급적 요구와 사회적 전망을 대변하지 못하는 현실에 놓여 있다. 이런 경제주의는 조합원의 당장의 이익은 추구하더라도 비정규직·미조직·이주노동자·지역 민중과의 연대는 포기하게 만들며, 조합주의는 노조를 자기 울타리 안에 갇힌 ‘조직보전 기구’로 변질시킨다. 실리주의는 싸움을 피하고 현실적 이익만을 추구하며 자본과 권력의 구조적 지배에 침묵하게 만든다. 이 한계를 넘기 위해 노조는 임금과 복지를 넘어서 구조를 바꾸는 사회적 투쟁으로 나아가야 하며 노동조합이 교육, 조직, 문화, 정치 실천의 전면적 공간이 되어야 한다. 즉, 조합은 단순한 교섭의 주체가 아니라, 노동해방을 위한 민중 정치의 출발점이자 변혁 운동의 핵심 거점이 되어야 한다.
2) 현장 조직력 강화와 노동자 정치의식 고양 : 일상의 실천과 계급의식의 재건
현장은 노동자의 삶의 터전이자 노동운동의 가장 중요한 출발점이다. 그러나 과중한 업무, 실리 중심의 운영, 간부들의 관료화로 인해 현장은 점점 투쟁의 공간이 아닌 관리의 공간으로 바뀌고 있다. 이를 극복하려면 조합원 스스로 주체가 되는 실천과 학습, 문화, 토론의 장이 일상적으로 형성되어야 한다. 소식지와 정치학교, 독서모임, 조합 문화 활동, 생활 상담 등으로 일상을 바꾸고, 조합원을 참여의 주체, 변화의 주인공으로 세워야 한다. 동시에 조합원들이 자신의 직장만이 아니라, 한국 사회 전체의 구조적 문제를 이해하고 계급적 시야와 국제적 안목을 갖도록 하는 정치교육 강화가 절실하다.
3) 복수노조 시대의 노조 관할권 갈등 극복과 통합력 발휘 : 노동자 단결의 정치력 필요
복수노조 제도 도입 이후 사업장마다 노조 간 갈등과 경쟁이 심화되었으며, 이는 사용자의 분열 전략에 악용되기 쉽다. 민주노조운동조차 관할권을 둘러싸고 충돌하거나 조직보존 중심으로 흘러가며 ‘누가 대표인가’에만 몰두하는 관료적 경쟁으로 전락하는 경향이 있다. 이러한 분열과 갈등은 현장 노동자의 지지를 잃게 만들고, 조직 외부의 노동자 민중에게도 불신을 낳는다. 이를 극복하려면 상급단체 간 협의기구 또는 복수노조 공동대응협의체, 공동현장위원회, 통합 교섭단 구조 등을 제도화하고, 공동 교육·공동 실천을 통해 단결과 협력의 문화를 확산시켜야 한다. 노동자의 단결은 ‘같은 깃발’보다 ‘같은 이해와 목표’를 바탕으로 만들어져야 하며, 노조는 경쟁이 아닌 연대의 구조로 재편되어야 한다.
4) 노동자를 위한 진보정당 분열·갈등 극복과 진보대연합정당 건설 : 노동 중심 정치세력화의 재정립
노동자 정치세력화의 길은 지난 20여 년 동안 진보정당 운동이 반복한 분열, 정파 대립, 선거지향, 현장과의 괴리로 인해 대중적 신뢰와 흡인력을 상실해 왔다. 소속 정파 이해관계에 얽매이며 정작 현장 조합원과 노동자 대중은 정치로부터 소외되어 있다. 이 상황을 넘어서기 위해서는 정파가 아닌 노동자·민중 다수의 이해를 대표하는 새로운 정치세력, 즉 노동자 민중 중심의 진보대연합 정당의 건설이 필요하다. 현장과 지역에 뿌리내리고, 아래로부터의 생활운동과 연계된 민중 중심 정당이어야 한다. 민주노총, 지역노조, 생활운동 단체, 사회운동 조직, 시민주권운동 등이 함께하는 광범한 정치적 연합체를 통해 진보정치를 재구성하고, 노동자가 정치의 주체로 우뚝 설 수 있는 발판을 마련해야 한다.
5) 반제·반극우 민주개혁진보 연대연합 참여 : 노조의 사회적 책임과 전선 형성
한국 사회는 미국 중심의 세계질서 재편과 한미일 군사동맹 강화, 보수·극우 정치의 재등장, 혐오·배제의 확산, 노동권 후퇴 등 총체적 반동의 시기를 맞고 있다. 이 속에서 노동조합은 자신의 이익만이 아니라, 민중 전체의 권리와 민주주의를 지키는 사회정치적 주체로 나서야 한다. 반제국주의, 반재벌, 반극우, 반분단의 입장을 분명히 하고, 주권찾기·평화통일·민생경제·기후위기·젠더권리·이주권리 등 광범위한 민중 의제를 중심으로 민주개혁진보 진영의 연대전선에 능동적으로 참여해야 한다. 이를 위해 공동 실천, 공동 토론, 공동 정책 수립을 통해 전략적으로 개입하고, 연대 조직을 지역 단위부터 전국 수준까지 강화해야 한다. 노동자 정치세력화는 노동자만의 일이 아니라, 모든 억압받는 민중과 함께 새로운 사회를 여는 연합의 정치로 확장돼야 한다.
결론적으로 자주적 민주노조운동의 혁신은 기존의 형식적 조직보존과 제도화된 관성에서 벗어나, 현장 중심, 정치의식 고양, 계급적 단결, 사회 전환 지향의 노동운동으로 재구성되는 것을 뜻한다. 이 혁신은 단순히 노조 운영 방식의 변화가 아니라, 노동자 민중이 사회구조를 바꾸고 미래를 만드는 집단적 주체로 서기 위한 실천 과정이다. 따라서 이 과제를 이끌어갈 전략 세력의 형성과 아래로부터의 자발적 실천의 확산, 진보정치와 사회운동의 통합적 기획이 함께 맞물려야 한다. 노동자 민중이 중심이 되는 사회를 향해 자주적 민주노조운동은 지금 바로 그 첫걸음을 다시 내디뎌야 한다. 전국민주연합노조가 그 길에 앞장서리라 믿는다. 이것이 고 김헌정 열사가 남긴 뜻이기도 하다.
별첨 : 한국 사회의 성격 이해 도표
한국의 대미 군사·정치 예속
| 분야 | 주요 구조 | 구체 내용 | 주권침해 성격 |
| 군사통제 | 한미연합사령부 전시작전통제권(전작권) 주한미군지위협정(SOFA) | 한미연합사령관 미군 대장 전적권, 미국 보유 미 범죄 불기소, 치외법권 | 한국군 작전 독자성 부재 전시 군사주권 없음 미군, 국내법 위에 존재 |
| 군사전략 결정 | 한미안보협의회(SCM) 한미군사위원회(MCM) 인도-태평양 전략 하위 편입 | 주요 군사전략, 미국 설계 대북정책, 미국 입김 반영 | 한국군사정책 독자성 제한 미국 동북아전략 종속 |
| 무기체계 종속 | 미제 무기 도입 강제 FMS(대외군사판매) 방식 | 고가 미제 무기 강매 유지비·기술독립 제한 | 무기국산화·자주국방 방해 방산산업 기술종속 심화 |
| 정치외교 영향력 | 미 대사관 정치 개입 주요 외교정책 조율 강제 | 한일관계 개선 압박 대북정책·대중외교 간섭 | 자주외교 실현 어려움 외교안보정책, 사전조율 |
| 대북정책 | 대북제재 주도 남북관계 중재자 자처 | 남북회담·경협 제약 대북정책 독자성 박탈 | 통일 주체성 훼손 평화체제 구축 방해 |
한국의 대미 경제 예속
| 분야 | 주요 지표 및 현상 | 예속 구조의 특징 | 통계 및 사례 |
| 무역 | 對美 수출·수입 의존도, 미국 중심 공급망 재편 압력, 관세폭탄, 투자 강요 | 무역적자 구조 고착, 반도체·배터리 등 전략산업의 미국 종속화 | 2023년 한국의 對美 수출은 전체의 15.2%, 수입은 12.1%, 반도체·전기차 부품 등 미국 수출 집중, 미국의 ‘IRA법’으로 한국 배터리업체, 美현지투자 의존 심화 |
| 금융 | 달러 유동성 의존,미 연준 금리 정책의 직접 영향 | 환율 안정·금리 결정이 미국에 좌우, 외환위기 재발 가능성 구조화 | 외환 보유고의 60% 이상 달러자산, 2022~2023년 미국 금리 인상 → 한국 금리 동조화, 한미 통화스와프 체결 의존 |
| 기술 | 핵심기술·장비의 미국 의존, 미국 중심의 특허·표준 종속 | 기술주권 상실 위험, 디지털 주권, AI·클라우드 지배 가속화 | 반도체 노광장비(ASML·미국 승인 필수), AI·클라우드 시장: AWS, MS Azure 등 미국 기업이 80% 이상 점유, 미 상무부의 對中 수출 통제 → 한국 기업도 동조 압력 |
| 산업 | 美 중심 글로벌 밸류체인(GVC) 편입, 美 법·정책에 기업 활동 종속 | 생산거점, 투자전략이 미국 정책 결정에 종속, 국내 산업 공동화 우려 | 삼성·LG·SK 등 美 반도체·배터리 공장 건설 확대, IRA, CHIPS법 등 미국 내 생산 유도법 강제, 현대차, 미국 내 전기차 생산 없으면 보조금 제외 |
한국의 대미 사상문화 예속
| 구분 | 주요 내용 | 구체적 사례 | 영향 |
| 정치이념 구조 | ‘자유민주주의’개념 왜곡 | 헌법·교과서에 ‘자유민주주의’ 명시 → 반공주의·시장만능주의 포함 | 사회주의·민중주의 담론 배제 |
| 반공/안보 이데올로기 | 냉전기 미국 주도 이데올로기 내면화 | 국가보안법 유지, 6.25 전쟁 미군 구원자 서사 강조 | 북한·사회주의 체제에 대한 혐오·왜곡 고착 |
| 교육이념 및 철학 | 실용주의·경쟁주의 중심 | 영어 조기교육, 수능제도, 입시경쟁 | 공동체·비판정신 약화, 서열주의 강화 |
| 학문·담론 구조 | 미국 학계 중심 지식 생산 | 논문 SCI급 영어 논문 중심, 미국 이론 중심 사회과학 수입 | 자주적 이론 생산 기반 취약 |
| 인권·민주 담론 | 미국식 NGO·시민사회 모델 수입 | USAID, NED, 포드재단 등 영향력 아래 인권교육 확산 | 체제 비판적 인권, 민중권리 약화 |
| 문화콘텐츠 종속 | 미국식 콘텐츠 형식·미학 추종 | OTT(넷플릭스) 중심, 슈퍼히어로물 유행, 영어노래 중심 유행 | 민족문화 약화, 감정구조의 미국화 |
| 정체성과 역사관 | 해방=미군 덕분, 민주주의=미국식 가치관 | 미 군정기 부정 서술 부족, 주체적 해방운동 축소 | 자주적 역사 정체성 약화 |
비정상적 한국 자본주의
| 구분 | 문제 내용 | 구체적 지표/설명 |
| 경제력 집중 | 재벌 중심 경제구조 | 5대 재벌, GDP의 55% 이상 점유 |
| 정경유착 | 재벌의 로비와 정책 영향력 지속 | |
| 중소기업 구조 | 수직적 하청구조 | 대기업 종속, 독립적 성장과 기술 자립 어려움 |
| 수출 의존 | 수출 편중형 경제 | GDP 대비 수출 의존도 44.8% (2023년) |
| 수출 품목 집중 | 반도체, 자동차, 석유화학 등 중간재 중심 | |
| 기술 자립 부족 | 핵심 기술·소재·부품은 외국 의존 (미국, 일본, 독일 등) | |
| 노동시장 구조 | 비정규직 확대 | 전체 취업자의 36.4%(2023년), 임금 정규직의 66% |
| 청년 실업 | 체감 실업률 23.5% | |
| 여성 고용률 | 57.1% (OECD 평균보다 낮음) | |
| 장시간 노동 | 연간 약 1990시간 (OECD 최상위권) | |
| 산업재해 | 연간 약 900명 사망, 산재 사망률 OECD 최상위 | |
| 경제 불평등 | 소득 불균형 | 상위 10% 소득 >하위 50%, 지니계수 0.35 |
| 자산 불균형 | 상위 10%가 전체 자산의 59.1% 보유 | |
| 가계부채 | GDP 대비 103.4% (세계 최고 수준) | |
| 공간 불균형 | 수도권 집중 | 인구의 51.7% 수도권 거주 |
| 지방소멸 위험 | 105개 시군구 소멸위험, 의료·교통·교육 등 악순환 | |
| 교육 구조 | 계급 재생산 | SKY 중심 입시 경쟁, 사교육 의존 심화 |
| 고용 미스매치 | 청년 취업난 vs 중소 제조업 구인난 병존 | |
| 문화 구조 | 문화적 종속성 | 미국식 대중문화 수용, 민족·민중문화 위축 |
| 사상문화적 예속 | 정체성 혼란, 비판·상상력 약화 |
한국 자본주의와 주요 제국주의 국가 비교
| 구분 | 한국 자본주의 | 미·일·영·독·프 등 주요 제국주의 |
| 주권 수준 | 핵심 기술·금융·군사 전략에서 대외 의존, 주권 미확립 | 핵심 기술과 금융시스템, 군사전략의 독자성 확보 |
| 경제 구조 | 수출 의존형 대기업 중심, 내수 취약, 외생적 충격에 취약 | 내수와 수출 균형, 다층적 산업구조 형성 |
| 축적 구조 | 재벌 중심의 소수 독점, 소유-경영 일체화, 정경유착 | 분산된 기업 구조(미: 대기업 중심 / 독일: 중견기업 중심) |
| 노동 구조 | 고용 불안정, 낮은 임금, 비정규직 확대, 노동권 억압 | 일정 수준 이상의 노동기본권 보장, 노조 권한 강함 |
| 자산 구조 | 부동산·금융 중심의 지대추구, 자산 불평등 심화 | 금융화 진행에도 불구, 기술·혁신 투자 병행 |
| 군사·외교 전략 | 미국 전략에 종속, 자율적 외교·안보 정책 결여 | 미군 주둔국이라도 일정 자율성 확보, 전략적 자율성 있음 |
| 경제주체 관계 | 재벌 독점, 중소기업·노동 착취, 민주적 경제질서 부재 | 다양한 기업 간 경쟁 구조, 제도적 견제장치 발달 |
| 외국자본 비중 | 상장기업 외국인 지분율 세계 최고 수준 | 외국인 투자 존재하나, 전략산업은 자국 자본 중심 운영 |
한반도 분단-대결 구조의 영향
| 구분 | 핵심 내용 | 구체적 사례 / 지표 | 구조적 영향 |
| 전쟁위기 | 국방비 과다 지출 | 2024년 국방예산 약 59조 원 (GDP의 2.6%) | 민생예산(교육·복지 등) 상대적 축소 |
| 군사적 긴장 고조 | 한미연합훈련, 北 미사일 발사 | 사회 불안감 지속, 외교적 유연성 제한 | |
| 군사경제 | 방위산업 확대 | 군산복합체 중심, 미국산 무기 수입 증가 | 자립적 산업 육성 저해, 재정 비효율 |
| 지정학적 리스크 | 외국인 투자 회피, 환율·주가 급등락 반복 | 경제 불안정성 지속 | |
| 안보 중심 국토정책 | 접경지 개발 제약 | 지역 불균형 심화 | |
| 주권 제약 | 미군주둔, 전작권 미회수 | 안보정책 결정권 부재 | 전략적 자율성 상실 |
| 동아시아 전략 편입 | 한미일 삼각 동맹 강화 압력 | 독자적 평화외교 공간 축소 | |
| 이념 고착 | 반공·친미 이데올로기 | 교육·언론·정치 전반에 영향 | 비판적 사고와 상상력 억압 |
| 국가보안법 유지 | 통일운동·진보사상 억압 근거 | 표현·사상의 자유 제약 | |
| 민생 배제 | 안보 중심 정책 우선 | 복지·노동·환경 등 후순위로 밀려남 | 시민 삶의 질 저하, 사회갈등 확대 |
| 취약계층 복지 사각 | 탈북자, 군복무자 등 지원 미흡 | 사회 통합 저해 | |
| 남북협력단절 | 경협 중단 | 개성공단, 금강산 관광 중단 | 상생경제 기회 소멸 |
| 평화프로세스 좌초 | 2018~19년 회담 이후 정체 | 평화에 대한 국민 냉소 확산 |
저출산, 고령화, 기후위기 : 원인과 대책
| 구분 | 주요 원인 | 구조적 배경 | 정책적 대책 |
| 저출산 | 생계 불안정 과도한 양육비 성별 불평등 공공돌봄 부족 | 비정규직·고용불안 높은 주거비 경력단절 여성 경쟁적 교육환경 | 공공임대주택 확대 노동시간 단축·정규직 확대 아동 돌봄·교육의 공공성 강화 여성 친화적 노동환경 구축 |
| 고령화 | 출산율 저하 기대수명 연장 노후준비 부족 | 공적연금 사각지대 기초연금 낮은 보장성 가족 중심 돌봄체계 | 기초연금 현실화 공적연금 보장성 강화 공공요양시설 확충 커뮤니티케어 강화 노인 일자리·교육 보장 |
| 기후위기 | 화석연료 의존 재생에너지 전환 지연 탄소중심 산업구조 | 석탄화력 비중 높음 성장 중심 정책 에너지 빈곤층 존재 재난 대비 부족 | 재생에너지 전환 확대 지역 주도 에너지 체계 정의로운 전환 보장 기후 취약계층 지원 산업구조 전환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