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글에도 요의와 불요의가 있습니다. 저의 의견이 담긴 것도 있고, 그 의견이 진제(眞諦)를 가리키는 비유일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여기서 일반인과 수행자의 받아들이는 태도가 갈리는 부분이 있습니다. 수행자라면 어떤 것도 절대적인 것이 없는 것을 알기에, 그것이 설사 부처님의 가르침일지라도 '옳다 그르다'는 상(相)을 내지 않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그렇게 상을 내는 순간) 상견(常見)과 단견(斷見)의 오류에 빠지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초기경전만으로는 왜 상견과 단견에 빠지기 쉬운지 논리적으로 이해하기가 쉽지 않습니다. 그래서 저는 『중론(中論)』 공부가 필요하다고 생각했습니다. 그 좋은 예로, 초기경전의 '14무기(十四無記)'를 『중론』에 와서는 해체 논리로 명쾌하게 설명할 수 있게 되었기 때문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모든 견해는 상대적으로 보일 수 있다는 점을 설명하고자, 상대적 관점이라는 글에서 '큐브의 비유'를 들었습니다.
깨달음의 세 가지 자취
아라한: 팔정도를 통해 개인의 해탈을 이룬 성자입니다.
보살: 스스로 해탈할 수 있는 능력이 있지만, 모든 중생을 구제하기 위해 해탈을 미루고 보살행을 서원하신 대단한 용기가 있는 분들입니다.
부처: 이러한 보살행을 최종적으로 완성하여 완전한 깨달음을 성취한 경지입니다.
이것이 왜 가능하냐면, 우리는 석가모니라서 부처님이라고 부르는 것이 아닙니다. 그분이 깨달았기에 부처님이라고 부릅니다. 즉, 부처가 있어서 깨달음(보리)이 있는 것이 아니라, 깨달음이 있기에 비로소 부처가 존재합니다. 결국 부처라는 정의의 본질은 '깨달음'이 있어야 합니다. 그래서 초전·중전·삼전법륜 전체를 부처님의 가르침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여기서 말하는 진정한 깨달음이란, 철저한 공성의 지혜를 깨닫고 중생을 향한 보리심을 함께 닦는 것을 말합니다.
『중론』 귀경계
불생불멸 (不生不滅): 생겨나는 것도, 사라지는 것도 아니다.
불상부단 (不常不斷): 영원한 것도, 완전히 끊어지는 것도 아니다.
불일불이 (不一不異): 동일한 것도, 전혀 별개인 것도 아니다.
불래불거 (不來不去): 오는 것도, 가는 것도 아니다.
희론이 적멸하고 상서로운 연기를 가르쳐 주신 완전한 부처님, 모든 설법자 중 최고이신 그분께 머리 숙여 예배하나이다.
『입보리행론』 제1품 보리심 공덕 찬탄품
이전에 없던 새로운 말을 하는 것도 아니며,
문장을 짓는 재주가 뛰어나서 고쳐 지은 것도 아닙니다.
내게 타인을 이롭게 하겠다는 생각은 전혀 없고,
다만 내 마음을 다스려 익히기 위해 이 논서(論書)를 지었을 뿐입니다.
티베트에서는 『중론』을 논왕(論王)이라 하고 『입보리행론』을 심왕(心王)이라 하여, 공성(空性)과 보리심(菩提心)을 수행하는 최상의 경전으로 꼽습니다. 그러나 이 두 논서(論書)의 저자들은 모두 이것이 자신이 지어낸 말이 아니며, 그저 부처님의 가르침일 뿐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입보리행론』 제9품 지혜품
만약 외경이 존재하지 않는다면,
식은 무엇을 연하여 생기는 것인가?
만약 외경 없이도 식이 성립한다면,
그것은 무엇을 인식한다고 말할 수 있는가?
식은 인식 작용으로서 반드시 인식되는 대상에 의존하여 성립하며 인식 대상이 부정된다면, 인식 주체 또한 독립적으로 성립할 근거가 없다고 합니다.
『입보리행론』 제9품 지혜품
'무엇도 존재하지 않는다'고 분석하는 공성의 습기가 익숙해지면,
'존재한다'는 유(有)의 습기는 비로소 끊어지게 됩니다.
그 후 '공성마저도 실재하지 않는다'는 것을 수행하여 익히면,
나중에는 그 공성이라는 집착마저도 결국 버리게 됩니다.
샨티 데바는 공성으로 유(有)라는 습기를 없애고, 그 공조차 버려야 된다고 말합니다. 이처럼 철저한 공성을 수행하고 유식학을 비판하지만 샨티 데바의 입보리행론은 결국 마음을 수행하는 경전입니다.
*입보리행론은 공성의 지혜가 없으면 오해되기 쉽고 번역의 문제도 있어 달라이라마 유튜브 강의를 보시는 게 입문하기 좋습니다
*입보리행론 여러 번역본을 갖고 있지만 AI를 통해 게송을 찾아달라고 했습니다. 그 번역의 차이나 의역은 있을 수 있으나 그 취지는 거의 같습니다.
원효대사의 해골물(일체유심조, 一切唯心造)
어젯밤에는 그렇게 달콤했던 물이, 오늘 아침에는 왜 이토록 더럽고 구역질이 나는가? 물은 그대로인데, 변한 것은 오직 내 마음뿐이구나!
이 일화는 불교를 모르는 사람들도 고개를 끄덕이게 만듭니다. 그러나 여기에 극한의 해체 논리인 중관학을 적용하여 '물은 더럽지도 깨끗하지도 않다'고 한다면, 그것이 부처님의 가르침인 연기(緣起)에 근거한다고 해도 대중은 물론 불교를 공부하는 사람들조차 받아들이기 쉽지 않습니다.
앞서 살펴본 지혜품의 게송처럼 공성(空性)의 지혜로 비추어 보면, 해골물(외부 대상) 없이 식 또한 홀로 생겨날 수는 없습니다.
역사적으로도 대승불교의 실제 수행문화와 대중적 수용에서는 유식적 사유가 매우 큰 비중을 차지해 왔습니다.
마음·의식·습기·업·전변을 중심으로 설명하는 방식은 수행자와 대중에게 직관적으로 받아들여지기 쉬웠으며, 동아시아와 티베트 불교 전반에도 깊게 스며들었습니다.
중전법륜의 오해
모든 것이 공하다면 더 이상 수행할 것도 없지 않으냐?
1. 허무주의(단멸견)를 막는 두 가지 진리: 진제와 속제
공(空)을 오해하면 "모든 것이 비어 있으니 수행도 필요 없다"는 허무주의에 빠지기 쉽습니다. 중관 사상은 이를 막기 위해 절대적 진리인 진제(眞諦)와 현실적 진리인 속제(俗諦)를 함께 제시합니다.
2. 깨달음의 완성: 공성의 지혜와 보리심(자비)의 결합
또한 “모든 것이 공하다면 수행도 필요 없는 것 아닌가?”라는 단멸견에 빠지는 것을 막기 위해, 육바라밀에서 인욕과 자비를 더욱 강조했습니다. 그리고 공성과 보리심을 함께 닦아야만 미세한 습기(習氣)까지 제거된다고 합니다. 샨티 데바의 입보리행론이 바로 그것을 말해줍니다. 나란다 정통 법맥의 서원과 수행 전통 역시 많은 부분 입보리행론을 근간으로 삼고있습니다.
3. 보살행으로의 확장: 관계 속에서의 수행
결국 대승불교는 안이비설신의를 통한 자기 수행을 바탕으로, 색성향미촉법 전체 속에서 중생과 관계 맺는 수행으로 보살행을 확장해 나갑니다.
불교는 공성(空性)이 전부가 아닙니다. 하지만 공성의 지혜가 함께할 때 우리의 수행은 비로소 온전해집니다. 그렇기에 공성에 밝은 수행자일수록 왜 다시 보리심을 닦아야 하는지, 그 이유와 실천을 담은 수행자들의 가르침을 짧게 올려봅니다.
달라이 라마《중론의 열쇠》
우리 모두는 행복을 얻기 원하고 고통을 피하고 싶어 한다 행복을 얻고 우리 자신을 고통으로부터 자유롭게 하는 것은 몸, 말, 마음의 행에 달려 있다 그 몸과 말의 행 또한 마음에 달려있기 때문에 마음의 변화를 일으키는 것이 필요하다 마음을 변화시키는 방법은 잘못된 마음들이 일어나는 것을 막고 선한 마음들을 생기게 하고 늘어나게 하는 것이다
샨티 데바《입보리행론》
다른 사람이 시기심으로 나를 욕하고 비난해도 기쁜 마음으로 패배하게 하고 승리는 그들에게 주소서 내가 도와준 사람이 나를 심하게 해칠때 그를 최고의 스승으로 여기게 하소서
분노는 바라지 않은 것을 해야하는 것과 바라는 것의 방해받는 것에서 생겨나는 것입니다 마음의 불안을 먹고 자라는 분노가 늘어나면 그것은 저 자신을 먼저 파괴합니다
해를 입어도 말하지 말고 악한 마음으로 쟁론화하지 않으며 남이 나를 해하는 것은 이전의 업보라 생각해 화내지 말고 또다시 괴로움이 발생하지 않도록 자신의 허물을 없애도록 하소서
용수 보살《보만론》
먹고 마시고 씹고 맛 본 것이야말로 똥과 오줌으로 끝난다 사랑스러운 것이 변화하고 다른 것이 되는 것 때문에 슬픔과 비탄과 고통과 고뇌와 절망이 생겨난다
부스럼을 긁으면 시원해지지만 부스럼이 없다면 더욱 편안하듯 그와 같이 세간에 애욕이 있어 행복하지만 애욕이 없다면 그보다 더더욱 행복하다
첫댓글 칼릴 지브란 <예언자>
-우정에 대하여-
이번에는 젊은이가 말했다
우정에 대하여 말씀해 주십시오
그가 이런 말로 답했다
친구는 그대들의 소망을 채워주는 존재입니다
그는 그대들이 사랑으로 씨를 뿌려 추수 감사절에 거두어들이는 들판입니다.
그는 그대들의 식탁이자 그대들의 따뜻한 집이지요 그대들은 배고플 때 그를 찾고 그에게서
평화를 얻기 때문입니다
그가 속마음을 털어놓을때 그대들은 진심으로
"아니다"라고 말하는 것을 두려워하지 말며,
"그렇다"라는 말도 억누르지 마십시오.
그가 침묵할 때에도 그대들의 마음은 그의 마음에 계속 귀 기울이도록 하십시오
말이 없어도 우정 안에서는 모든 생각과 모든 욕망, 모든 기대를 기쁜 마음으로 품고 나누는 것입니다.
그와 헤어질 때에도 부디 슬퍼하지 마십시오
산을 오르는 자에게는 산이 평지보다 또렷이 보이듯이 친구의 가장 좋은 점은 그가 곁에
없을때 또렷이 드러나기 때문입니다
우정을 나눌 때에는 영혼을 깊이 하는 것 외는
다른 목적은 두지 마십시오
다른 것은 함부로 내던진 그물에 불과합니다
그 그물에는 쓸데없는 것만 걸릴뿐.
그러니 그대들은 친구를 위해 최선을 다하십시오 그가 그대들의 물결이 빠져나가는
그러니 그대들은 친구를 위해 최선을 다하십시오 그가 그대들의 물결이 빠져나가는 때을 알고 있다면, 그대들의 물결이 흘러 넘치는 때도 알려주십시오
시간을 적당히 때우기 위해 친구를 찾는다면 그 친구가 무슨 소용이 있겠습니까
언제나 시간을 활기차게 보내기 위해 친구를 찾으십시오
친구는 그대들의 공허함을 채우는 존재가 아니라 그대들의 부족함을 채우기 위한 존재가 되어야 합니다
그러니 기쁨을 함께 나누면서 우정의 따스함 속에 웃음이 깃들도록 하십시오
마음은 하찮은 이슬 한 방울에서도 아침을
발견하고 생기를 되찾기 때문입니다.
도반은 소중한 존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