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형건 회원이 최근에 보수파 매체인 "고엽제전우신문"에 자신의 참전 수기를
기고하였다. 청룡부대 5대대 26 중대장으로 월남전에 참전했던 박형건 예비역 대령은
" 매복의 왕자" 라는 제하에 당시의 생생한 전투수기를 3회에 걸쳐 소개하였다.
다음은 신문에 실린 수기를 필자의 동의를 얻어 전재한다.
매복의 왕자
월남전 참전 당시의 상황
" 매복의 왕자"라는 별명은 필자가 1970년 3월부터 8월까지 파월 청룡부대 5대대
26중대장으로 재직하는 동안 대대장 이용익 중령이 명명해준 명예스러운 별칭으로
또 중대장인 필자에게 "독수리"라는 애칭까지 지어줬다.
당시 월남전의 상황은 미국을 비롯한 연합군이 참전하여 평정 및 소탕작전을 실시하기
시작한지 5년이 넘었던 때였다. 월남의 동부해안 지역은 거의 평정되어 월맹정규군은
많은 손실을 입고 북부 국경 및 내륙 산악지역으로 퇴각하여 전투는 다소 소강상태를
이루고 있었다.
그러나 지역 베트공 게릴라들은 아직도 지하 또는 인근 정글 및 산악지역에 은거하여
소규모 기습작전과 지뢰 및 부비트랩을 설치하여 아군 활동의 방해 및 거부 작전을
실시함으로써 전과는 별로 없고 지뢰 및 부비트랩에 의한 피해만 속출하고 있어
아군은 심리적으로 매우 위축 된 상태였다.
또란 파월 5년이 경과된 시점에서 파월 장병들의 월남전 참전에 대한 인식도 최초의
"자유 우방인 얼남의 공산화를 막고 세계 평화와 자유민주주의를 수호한다" 는 대의
명분은 입부 몰지각한 장병과 한탕주의로 몰려든 기술자 및 장사치들의 무분별한
행동으로 점차 희석됐다.
청룡부대 체면 살리는 " 매복의 왕자"
당시 소총중대급 전투부대의 분위기는 " 어떤놈은 후방에서 편히 지내면서 돈만 벌고 있는데
왜 나만 목숨바쳐 싸워야 하느냐? 여기가 내땅 내 조국이냐, 내가 흘린 피가 무슨 의미가
있느냐," 는 등 극도의 안이 및 회의주의적 분위기가 팽배하고 있어 장병들의 전투 의지가
매우 저하 된 상태였다. 따라서 이와같은 상태의 전투의지와 침체된 분위기, 정글지역의
지형적 특성과 기상 상태 등 악조건 속에서 적극적인 전투의지로 특히 야간 매복작전으로
전과를 올린다는 것은 불가항력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그러나 우리 26중대는 이러한 어려운 여건에도 불구하고 심시미 앟게 그것도 여단본부로
부터 멀리 떨어지지않은 , 때로는 여단본부 경바중대 바로 코 앞에서 , 시기적으로는 청룡
부대에 귀빈이 방문하는 때를 맞추어 전과를 올리곤 하여 청룡부대의 체면을 살리는데에도
기여하는 행운을 갖기도 했다. 26중대 작전지역에는 538 월남 국도와 청룡도로가 통과하고
있어 작전도로 인근에서 교전 및 전과를 세웠을 경우, 대대나 여단에서 직접 현지에 달려나와
생생한 교전 현장을 폴라로이드 카메라에 담아 여단 모닝 브리핑이나 귀빈 방문시 호재로
사용되어 청룡부대의 체면유지는 물론, 여단장(이동용 장군)의 호상에 기끔 너털 웃음을
선사하기도 하였으니 분위기 메이커 노릇도 톡톡히 한 셈이다. 그러니 매복의 왕자라는
별명은 너무도 당연하다고 하겠다.
" 월남전, 정규전 및 비정규전 망라된 전쟁 " 전술 책임지역 개념" 평정지역
인계 후 점차 내륙으로 작전 지역 확대 " 평정작전 " 소총중대도 독립작전
수행 " 중대장 독단 작전능력 고도 요구 "
중대장 능력 중시된 평정작전
월남전을 체험하지 못한 후배 해병들을 위해 잠시 부언하면 월남전은 한마디로 정규전과
비정규전이 망라된 전쟁이었다. 주저항선이나 접촉선을 기준으로 적과 아군이 대치되는
개념이 아니고 전술책임지역(TAOR) 개념으로 소총중대까지 상급부대로부터 일정한 전술
책임지역을 할당받아 책임지역 내에서 작전을 실시했다.
편정된 지역은 월남군에 인계하고 점차 내륙으로 작전지역을 확대시켜나가는 작전 개념으로
이를 " 평정작전(Pacifier Operation)"이라 하였다. 그러므로 소총중대도 대대본부로부터 상당한
거리에 이격되어 전술책임 지역을 할당받아 독립작전을 수행케 됨으로 중대장의 독단 작전
능력이 고도로 요구되었다. 대대장의 예하 부대 순시 및 방문도 신변 안전이 최우선 고려되어야
함으로 부대 지휘의 적극성과 담력이 부족한 지휘관에게는 큰 약점이며 부대 지휘의 제한 사한
사항으로 작용될수 있었다.
" 브라보, 독수리한테 가자"
그러나 부대 활력과 예하 지휘관의 사기를 최우선으로 생각하시던 대대장 이용익 중령께서는
대대 정보장교나 작전 보좌관 그리고 경호병 한명만을 대동하고 심심치 않게 예하중대를 찾아
주시는 멋과 배짱을 보여 주심으로서 당차고 포용력 있는 지휘관으로 존경을 받았다.
우리 26중대를 순시 하실 때에는 늘 쓰시는 전문 요어가 있었는데 그것은 " 야, 브라보
(작전 보좌관) 독수리한테 가자," 였다.
여기서 나의 애칭 " 독수리 " 가 유래되었고, 독수리의 의미는 평시 이곳저곳 예의 주시하다가
기회가 오면 날쌔고 기습적으로 낚아챈다는 뜻이 담겨 있었다. 청룡부대가 황룡3호 작전을
실시하던 중 갑자기 여단 ㅈ지휘관 회의가 소집되었다. 작전의 성과는 없고 부비 트랩에 의한
피해만 속출하고 있었기 때문인것 같았다. 탐색 작전시 피해 최소화를 위해 개인간의 거리 및
간격을 최소 10m 이상 이격토록 누차 강조되었음에도 때로는 1개 부비 트랩에 3명 이상의
피해가 발생되어 경고 지시가 잘 이행되지 않는 중대장을 보직 해임까지 시킨 적이 있었다.
그럼에도 피해는 계속 되었으며 처벌을 두려워한 일부 중대장은 106 mm 불발탄 2~3개의
연개식 부비 트랩이 폭발되어 4-5명의 피해가 불가피 했다는 교묘한 변명도 늘어놓았으나
용서의 여지가 없었다.
" 자네 중대는 별명이 있어? "
여단장은 호상에 노기가 찬 언성으로 청룡부대 전반에 만연되고 있는 안이주의적 정신자세를
질타하면서 어느 중대장에게 " 자네 중대는 별명이 있어?" 라고 물은적이 있었다. 대답을 못하고
머믓거리는 모습을 보면서 전소총 중대장에게 앞으로 한달 이내에 자기 중대의 별명을 만들라는
지시를 하며, 별명은 소부대 작전과 강력한 부대 지휘, 통솔을 통하여 상징성이 있고 성취해낸
전과에 걸 맞으며 자부심을 느낄수 있는 해병다운 별명이어야 함을 강조했다.
필자는 여단장의 훈시를 들으며 예하 지휘간의 사기와 애로 사항을 항상 먼저 챙겨주는 대대장의 넓은 마음과 배려에 고마움을 느겼다. (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