子路問君子 子曰
修己以敬
曰如斯而已乎 曰修己以安人
曰如斯而已乎 曰修己以安百姓
修己以安百姓 堯舜其猶病諸
자로가
군자에 대해 물었는데, 공자
가라사대 “몸을
닦되 공경으로써 하니라.” (자로) 가로대, “이같이
할 뿐입니까?” (공자) 가라사대
“몸을
닦아서 (주변의) 다른
이들을 편안히 하니라.” (자로) 가로대
“이같이
할 뿐입니까?”
(공자) 가라사대
“몸을
닦아서 백성을 편안히 함이니, 몸을
닦아서 백성을 편안히 함은 요순도 그 병되이 여기셨느니라.”
<家苑 註
>
앞서서(자로편
28장) 자로는
공자에게 선비(士)에
대해 물은 적이 있었다. 이때
공자는 “切切偲偲
怡怡如也”로
답해주면서 벗과 형제에 대한 태도의 차이를 보태어 설명했다. 자공이
군자에 대해 물었을 때 간략히 대답한 것(위정편
13장)과
비교된다.
반면
자공이 선비에 대해 물었을 때(자로편
20장)는
네 단계의 문답이 오고갔는데, 자공은
이미 詩를
잘 알고 있었다(학이편
15장). 언어적
수사(修辭)능력이
탁월하다(선진편
2장). 능히
외교관으로서의 능력이 있었다(자로편
5장). 이에
공자는 자공에게 사신으로 나갈 때의 처신을 답해 주었는데, 자공이
다시 묻자 孝와
弟(제)로
설명했다. 그리고는
자공이 또다시 묻자 ‘言行’으로
말해 주었다.
자로의
군자에 대한 물음은 자공의 선비에 대한 물음과 비교되는데, 여기서
공자는 비로소 자로에게 위정자로서의 자세에 대해 답해준다. 모두
세 단계의 문답인데 자로가
정치에 참여하기 전에 공자에게 자문을 구하는 문장인 듯하다.
공자는
자로가 어느 정도 선비의 자질을 갖췄다고 보고 또한 능히 천승의 나라에 그 군사를 다스릴 만하다고 보았기에(공야장편
7장, 선진편
25장) 修身을
강조하면서 물음의 단계에 따라 ‘以敬
以安人 以安百姓’의
세 단계로 답해준다.
공자는
정치를 하는데 고른 분배와 조화와 안정[均⋅和⋅安:계씨편
1장]을
중요시하였기에 이 세 가지를 아우르는 安을
거듭 강조하였다. 백성들을
편안하게 하려면 백성들에게 널리 베푸는 즉 富의
고른 분배가
전제되는 것이기에 앞서 자공의 물음에 대해서도(옹야편
28장) 공자는
‘요순도
이를 병되이 여겼다’고
똑같이 답변했다. 그만큼
부의 분배는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政事의
가장 큰 과제인데 만약 富의
양극화로 불균형이 심해지면 결국은 국가가 기울어지기 때문이다.
위정자가
정치를 잘 한다는 것은 부의 고른 분배인데, 이것이
고대사회에서는 정전법으로 나타났고, 이
제도를 제대로 유지하려면 위정자의 곧은 마음이 필요한데 그것이 주역坤괘)에서
말하는 ‘敬以直內(敬으로써
안을 곧게 함)요
義以方外(義로써
밖을 방정하게 함)’이다.
‘誠於中
形於外(속마음이
정성스러우면 바깥으로 드러난다.:
대학)’고
하였듯이 천지자연의 이치를 공경하듯 공경하는 자세로 수신의 道를
세운다면[修身以敬], 이를
바탕으로 가까이 있는 사람들부터 잘 다스려 편안하게 할 수 있고[修己以安人], 더
넓게는 백성들을 편안하게 할 수 있는 것이다[修己以安百姓].
이것이
대학에서
말하는 8조목(格物⋅致知⋅誠意⋅正心⋅修身⋅齊家⋅治國⋅平天下)에
해당하는 것으로, 格物⋅致知⋅誠意⋅正心이
修身以敬이라면, ‘齊家治國’은
修己以安人이고, ‘平天下’는
修己以安百姓에
해당한다.
하지만
安百姓
곧
博施濟衆(박시제중:옹야편
28장)은
요순도 병되이 여기신 것이기에
쉽지는 않겠지만 최선을 다해 정사에 임하라는 공자의 자로에 대한 격려이다.
주자
修己以敬은 夫子之言이 至矣盡矣로대 而子路
小之라 故로 再以其充積之盛이 自然及物者로 告之하시니
無他道也라 人者는 對己而言이라 百姓則盡乎人矣라 堯舜猶病은 言不可以有加於此니
以抑子路하여 使反求諸近也라 蓋聖人之心은 無窮하여 世雖極治나
然이나
豈能必知四海之內이 果無一物不得其所哉리오 故로 堯舜도 猶以安百姓爲病하시니 若曰吾治已足이라
하면
則非所以爲聖人矣라
몸을
닦아서 써 공경함은 부자의 말씀이 지극하고 다했으되 자로가 작게 여김이라(대수롭게
여기지 않음이라). 그러므로
두 번째에 그 채우고 쌓임의 성대함이 자연히 물건에 미치는 것으로써 가르치시니(修己以安人) 다른
道가
없음이라. 사람(人)은
나를 상대하여 말함이라. 백성은
곧 사람을 모두 함이라. 요순도
오히려 병되이 여김은 ‘가히
여기(修己以安百姓)에
더할 것이 있지 않다는 것으로써’ 말함이니, 이로써
자로를 억제하여 (자로로) 하여금
돌이켜 저 가까이에서 구하게 함이라. 대개
성인의 마음은 끝이 없어 세상을 비록 지극히 다스리나 그러나 어찌 능히 반드시 사해의 안이 과연 한 가지 물건이라도 그 (각자
있을) 곳을
얻지 않음이 없다고 주장하리오. 그러므로
요순도 오히려 백성을 편안케 하는 것으로써 (그러하지
못할 것을 우려하여) 병되이
여기셨으니, 만약
‘나의
다스림이 이미 족하다’고
말한다면 곧 이로써 聖人이
되지 못하는 바이라.
程子
君子는 修己以安百姓하여 篤恭而天下平이니 唯上下
一於恭敬則天地 自位하고 萬物도 自育하며 氣無不和하여 而四靈이 畢至矣라 此는 體信達順之道니 聰明睿知
皆由是出하니 以此로 事天饗帝니라
군자는
몸을 닦아 이로써 백성을 편안히 하여 돈독하고 공순히 하여 천하가 평안해지니, 오직
상하가 공경에 한결같으면 곧 천지가 스스로 자리하고, 만물도
스스로 길러지며, 기운이
조화롭지 않음이 없어서(中庸제1장, “致中和, 天地位焉, 萬物育焉”) 네
신령 (용⋅봉황⋅기린⋅거북:
禮記
禮運편)도
다 지극해짐이라. 이것은
믿음을 체득하여 순함에 이르는 도이니, 총명예지(中庸31장)가
다 이로 말미암아 나오니, 이로써
하늘을 섬기고 상제에 제사 지내니라.
출처 :
『논어
易解』3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