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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 1-5
땅 분배 / 박길현 목사
요즈음 뉴스를 들으면 그 중에서 높은 자리에 있던 사람들이 뇌물을 받아먹은 것 때문에 곤욕을 치르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고위 공직자들과 국회의원, 대학총장, 군의 장성 등이 뇌물로 인하여 곤욕을 치르는 것을 보면 과연 이 나라에 저런 문제와 관련이 없는 사람이 있겠는가라는 의문을 가지게 됩니다. 숨겨져 있어서 그렇지 털어 내면 걸리지 않을 사람이 없겠다는 생각이 들기 때문입니다.
흔히 우리는 뇌물을 받아먹은 사람들을 보고 '도둑놈'이라고 욕을 하지만 그들이 뇌물을 받은 것은 뇌물을 가져다가 주는 사람이 있기 때문입니다. 뇌물을 가져다가 주는 사람이 없다면 받는 사람도 없을 것입니다. 이렇게 볼 때 주는 자나 받는 자나 다 똑 같은 사람들이라고 할 수밖에 없습니다.
이들의 심리 상태는 다 같다고 할 수 있습니다. 뇌물을 받아먹는 사람은 유리한 지위를 이용해서 육신의 욕심을 채우려는 마음을 가지고 있습니다. 이런 욕심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자기에게 무엇인가 좀 가지고 오지 않으면 정당하게 일을 처리하지 않습니다. 종의 정신이 아니라 군림하는 자의 특권의식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아무 말 없이 맡겨진 일을 공정하게 섬기지 않으며 결국 자기의 유익을 챙기게 되는 것입니다. 특권의식과 자기 유익 챙기는 것은 떼어놓을 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이 없는 인간이란 자기 욕심에 의해서 지배를 받기 때문입니다. 인간은 자기를 위한 욕심으로 덮어 씌어 있는 자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은혜가 없이는 이러한 욕심의 지배를 받지 않을 수가 없습니다. 이 때문에 뇌물을 받아먹게 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가져다주는 사람도 똑 같습니다. 자신이 좀 나은 어떤 것을 가져 보려고 그것을 주관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에게 뇌물을 가지고 갑니다. 이 사람의 마음도 자기 욕심에 지배를 받습니다. 자기가 더 좋은 것을 소유하고 더 잘 살겠다는 욕심에 지배를 받기 때문에 이런 일을 하게 됩니다.
그러므로 받는 자나 주는 자나 똑 같이 자기 욕심에 지배를 받습니다. 하나님을 두지 않는 인간은 결국 자기를 위하여 자기의 유익을 추구하는 짓을 할 수밖에 없습니다. 왜냐하면 자기를 벗어날 수 없는 것이 하나님 없는 인간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 없는 인간은 자기 밖으로 벗어날 수도 없을 뿐만 아니라 벗어나려고도 하지 않습니다. 나아가서 인간은 자기를 벗어나도록 요구하는 것을 거절합니다. 이렇기 때문에 인간에게 공평은 있을 수 없고 뇌물이 없는 세상이 있을 수 없습니다. 따라서 인간 세상에는 힘 센 자가 더 가지게 되고 힘없는 자는 가질 수 없게 됩니다. 그래서 빈익빈 부익부 현상이 생겨나게 됩니다.
그러나 옛날 이스라엘은 이런 세상이 되지 않게 하려고 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오늘 말씀은 요단 서편 가나안 땅을 분배하는 원칙을 말하고 있습니다. 이 분배 원칙이 이 세상과는 다른 가나안 땅이 어떤 세계인지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먼저 이 땅을 어떻게 분배하는 지 봅시다. 성경은 가나안 땅을 제비 뽑아 분배하라고 합니다. 민수기 26:52-56에 보면 조사한 사람 수를 따라서 땅을 나누되 '수가 많은 자에게는 기업을 많이 줄 것이요 수가 적은 자에게는 기업을 적게 줄 것이니 그들의 계수함을 입은 수대로 각기 기업을 주되… …그 다소를 물론하고 그 기업을 제비 뽑아 나눌지니라'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이런 말씀을 따라서 제비 뽑아 분배하라고 합니다.
이러한 제비뽑는 방법은 인간의 개입을 철저히 차단을 하고 있습니다. 인간의 욕심을 철저히 배제하기 때문에 여기는 뇌물을 주고받는 것 따위는 있을 수 없습니다. 사람들의 방법으로 나누도록 내버려두었다면 이스라엘에도 좋은 땅을 얻기 위하여 뇌물을 가져온다든지 하는 일들이 벌어졌을 것입니다. 인간의 본성이 죄인이기 때문에 좋은 것을 얻기 위하여 이런 일들이 얼마든지 벌어졌을 것입니다. 그러나 이러한 일들을 차단하기 위하여 제비를 뽑아서 나누도록 했습니다.
이것을 바꾸어 말하면 제비 뽑는 일은 하나님이 분배의 절대 주권자라는 것입니다. 그 땅의 주인은 하나님이시기 때문입니다. 사람은 하나님께서 공평하게 나누어주는 대로 감사함으로 받으라는 말입니다. 왜냐하면 가나안 땅은 이스라엘이 노력해서 얻은 땅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이스라엘은 애굽의 노예였었는데 하나님께서 그들을 구원하여 내어서 가나안으로 인도하셨고 또 그 땅을 유업으로 나누어 주셨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이 나누어주는 대로 감사함으로 받으면 되는 것입니다. 모두에게 은혜로 주어지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이 제비는 이스라엘의 장래도 하나님께서 주관하신다는 것을 뜻하는 것이기도 합니다. 이스라엘의 지파들의 번성도 하나님이 주관하신다는 뜻입니다. 하나님은 그들에게 주신 땅의 크기에 맞게 각 지파들의 번성도 주관하실 것이라는 뜻입니다. 그러므로 이스라엘 사람들은 이 하나님께 자신들의 미래를 맡기고 사는 대로 살다가 가야 할 나그네인 것입니다. 제비를 뽑아 유업을 나누어준다는 것은 철저한 하나님 주권을 뜻하며 백성은 하나님의 주권에 복종하는 자로 살아야 함을 뜻합니다. 이것은 하나님이 이스라엘과 맺은 언약의 정신을 뜻합니다. 제비는 언약 정신을 가르치는 것이기도 합니다. 언약의 정신이 바로 제비를 통해서 나타나기 때문입니다.
그러면 제비를 주관하는 자는 누구입니까? 1절에 보니 '제사장 엘르아살과 눈의 아들 여호수아와 이스라엘 자손 족장들이 분배하였다'고 합니다. 제비를 뽑는 일은 물론 각 가족의 가족장들이 참여하여 제비를 뽑는 일을 했을 것입니다. 즉 각 지파의 족장들은 자기들의 지파들의 기업을 제비 뽑았을 것입니다. 그리하여 지파별로 자기들의 지역을 확정짓는 일을 하였을 것입니다. 그리고 각 지파들 내에서는 가족장들이 또 제비를 뽑아서 자기네 지파 지역 내에서 가족들의 구역을 정하였을 것입니다. 족장들과 이스라엘 자손이 제비 뽑아 땅을 나누는 일을 하였다는 것은 이런 것을 의미할 것입니다.
그러나 이것은 그렇게 중요한 것이 아닙니다. 중요한 것은 이 모든 일을 아론의 아들 엘르아살과 눈의 아들 여호수아가 주관하였다는 점입니다. 특히 우리가 주목해야 할 것은 여기서 눈의 아들 여호수아보다 제사장 엘르아살이 먼저 언급되고 있다는 점입니다. 이것은 제사장 엘르아살이 여호수아보다 더 중요한 위치에 있었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그러면 제사장 엘르아살이 여호수아보다 중요하게 된 이유가 무엇일까요? 그 이유를 여러 가지 관점에서 생각하기도 합니다만 제가 보기에는 구속사의 흐름과 관계가 있다고 생각됩니다. 즉 단창을 가지고 싸우던 무인 여호수아는 이제 지나 간 인물이라는 뜻입니다. 싸움의 시대는 싸우는 자가 하나님을 가장 잘 보여주는 사람입니다. 그래서 싸우는 자 여호수아를 중요하게 생각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나 싸움의 시대가 지나고 이제는 평화의 시대가 찾아왔기 때문에 이 평화의 시대에는 평화를 상징하는 인물이 하나님을 가장 잘 보여줍니다. 제사장은 물론 광야 시대에도 있었지만 어디까지나 이것은 하나님과 백성이 함께 평화를 누리며 사는 안식의 때에 그 임무가 드러나는 직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안식의 때에는 하나님과 백성들 간에 중재자로서 백성의 죄를 담당하여 제사함으로 거룩이 유지되며 하나님의 진노가 백성 중에 임하지 않도록 하는 일이 가장 중요한 일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민18:7참고). 이렇게 생각할 때 제사장은 안식의 때에 그 직무의 중요성이 드러나는 직책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엘르아살이 여호수아보다 전면에 나서는 것은 이제 제사장의 때 즉 제사장이 하나님 앞에서 제사 드림으로 이스라엘이 평화를 누리면서 살아야 하는 때가 왔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아마도 여호수아는 이런 뜻을 잘 이해하고 제사장을 자기보다 앞에 세웠던 것 같습니다. 왜냐하면 이스라엘은 제사장이 하늘의 평화를 빌어 주기 때문에 사는 민족이기 때문입니다. 민수기 6:22-26에는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일러 가라사대 아론과 그 아들들에게 고하여 이르기를 너희는 이스라엘 자손을 위하여 이렇게 축복하여 이르되 여호와는 네게 복을 주시고 너를 지키시기를 원하며 여호와는 그 얼굴로 네게 비취사 은혜 베푸시기를 원하며 여호와는 그 얼굴을 네게로 향하여 드사 평강 주시기를 원하노라 할지니라 하라"고 했습니다. 제사장이 이스라엘을 위하여 복과 평강을 빌어야 이스라엘은 살게 되어 있습니다. 이 복과 평강은 물론 하늘의 복과 평강입니다. 제사장의 속죄사역을 근거로 해서 이스라엘에게 주어지는 것이기 때문에 제사장이 복을 비는 것이 중요하고 또 그것으로 인하여 이스라엘에게 하나님의 평강이 임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스라엘은 제사장의 복빔 없이 평화롭게 살 수 없는 사람들입니다. 안식의 시대에 제사장이 중요시되는 것은 이 때문이라고 할 수가 있습니다.
이것은 여호수아가 하나님의 계시를 읽고 행동했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이라고 할 수가 있습니다. 언약의 정신을 따라서 행동하는 사람이 여호수아입니다.
언약 정신을 보여주는 것이 또 있습니다. 그것은 요셉 자손이 레위 자손 대신에 이스라엘 한 지파의 몫을 더 차지한 것 때문에 레위 자손들은 땅을 기업으로 얻지 못한 것입니다. 3절 하반절과 4절 상반부는 이러한 관계를 분명하게 보여 줍니다. 즉 레위 자손에게 기업을 주지 않은 이유가 요셉 자손이 므낫세와 에브라임 두 지파가 되어서 이스라엘 12지파를 이루게 되니 레위 지파의 몫은 요셉의 한 아들에게 돌아가게 되었기 때문에 레위가 기업을 얻지 못하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이스라엘은 레위 자손이 빠져도 12 지파가 되는 것입니다. 이것은 요셉 자손은 두 몫을 얻었다는 뜻이요 또 두 몫을 얻었다는 것은 장자 지파 노릇하는 것을 뜻합니다. 이것은 이스라엘을 온전하게 하기 위하여 봉사하는 자로서 요셉이 사용되고 있음을 보여줍니다. 반면 레위는 온 이스라엘에 흩어지지만 하나님을 기업으로 삼아서 온 이스라엘에 하나님의 은총을 전하며 또 하나님의 증인으로 사는 자가 되었습니다. 레위 자손은 온 이스라엘의 중재자로서 살게 되었습니다. 이 일 역시 언약대로 되어졌습니다. 온 이스라엘이 레위를 받아들여서 그들을 존중하며 긍휼을 베풀도록 하였기 때문입니다.
네 번째, 므낫세 지파가 요단 강의 동편과 서편에 나누어 거함으로 동편도 서편과 똑 같은 이스라엘이라는 것을 보여줍니다. 양편이 모두 하나의 이스라엘이라는 것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동편도 서편과 마찬가지로 레위인이 있고 도피성이 있습니다. 이것 역시 동편과 서편이 한 이스라엘이라는 것을 보여줍니다. 모두가 레위인의 헌신을 보면서 동서 사람들 모두가 바로 하나님께 드려진 백성이라는 것을 보여줍니다.
여기서 이스라엘은 지역적인 분리가 문제가 아니라는 것을 보여줍니다. 어떤 사람들이 이스라엘이냐 하면 자신들이 하나님께 바쳐진 하나님의 백성이라는 것을 아는 사람들이 바로 이스라엘이라는 것을 보여 줍니다. 비록 지리적으로는 나뉘어져 있어도 마음이 똑 같은 하나님의 백성이라는 것을 보여줍니다.
이 사실은 이스라엘이 되는 것은 마음의 문제요 영의 문제이지 땅의 문제가 아니라는 것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즉 레위인의 존재 의미를 알고 므낫세 지파가 동서로 나누어져 있는 것이 하나의 이스라엘이라는 것을 아는 것이 곧 이스라엘 되는 것을 보여줍니다. 나누어짐 즉 희생함으로 하나 만드는 것을 깨닫고 사는 것이 이스라엘임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이스라엘은 땅에 속한 것으로 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이상과 같이 땅의 분배 원리에는 하나님의 언약 정신이 살아 있습니다. 이 정신이 땅을 나누는 바탕이 되어 있습니다. 이 정신이 살아 있고 유지되는 나라가 이스라엘이요 그러할 때 이스라엘은 평화를 누리게 됩니다. 왜냐하면 이럴 때에 자기가 사는 것이 없고 하나님이 사는 것이 되기 때문입니다. 그런 곳에는 땅 나누기를 아무리 해도 뇌물과 같은 일이 있을 수 없고 자기의 지배가 있을 수 없습니다.
이 말씀은 옛날 가나안 정복 말기의 이야기만이 아닙니다. 오늘날 교회의 말씀이기도 합니다. 오늘날 교회도 하나님의 언약정신 곧 예수님의 말씀이 있어야 합니다. 그리스도의 말씀이 지배하는 곳이 교회요 그리스도의 말씀이 지배하는 자가 신자입니다. 교회는 말씀이 있는 곳이고 신자는 말씀이 있는 자입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의 말씀이 있는 그 곳이 약속의 땅이요 말씀 있는 그 사람이 천국을 유업으로 받은 자입니다.
그러므로 저는 묻겠습니다. 우리 교회에는 주님의 말씀이 있습니까? 여러분 마음속에는 주님의 말씀이 있습니까? 주님이 여러분의 기업입니까? 그 분이 여러분의 복이요 삶의 기초입니까? 여러분은 자기에 의해서 지배되는 자가 아니라 주님에 의해서 지배되는 사람들로서 부름을 받았습니다. 주님의 말씀이 여러분에게 있습니까?
인간은 자기 힘으로 자기 지배에서 벗어날 수 없습니다. 그러나 주님의 말씀은 인간의 자기 지배를 벗게 해줍니다. 왜냐하면 주의 말씀은 날마다 인간의 자기 지배를 죽게 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이 없는 자는 이러한 말씀의 지배가 있을 수 없지만 주님의 백성은 말씀이 지배가 있습니다. 왜냐하면 주님의 백성은 자기 지배의 죽음을 경험하였고 하늘에서 온 말씀을 맛보았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여러분은 날마다 말씀 지배를 받으면서 살도록 하십시오. 주님의 백성은 말씀의 지배가 따르도록 되어 있습니다. 그러니 날마다 말씀의 지배를 받는 삶을 사십시오. 이것이 우리의 기업 된 천국을 누리는 모습이라고 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