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도 너무한 자동차 디자인모터트렌드
입력 2021. 02. 12. 12:40
디자이너의 상상력과 패기는 어디까지일까? 싸늘할 정도로 쿨한, 세상의 기묘한 자동차 디자인들
페라리 360 모데나 리무진
빨간색 유광 피복을 휘감은 이무기 같기도, 늘어진 액체 괴물 같기도 한 이 자동차의 얼굴은 영락없는 페라리다. 호주의 자동차 판매업체인 카 세일즈는 최대 10명이 탈 수 있는 페라리 360 모데나의 리무진 버전을 공개했다.
2012년 제작된 리무진 버전은 얼굴과 휠부터 실내 곳곳에 페라리의 로고가 새겨졌고 실제 페라리 엔진을 얹었다. A 필러부터 쭉 당겨 고무처럼 늘어진 모습이 정이 안 가지만 도로에서 확실히 눈길은 끌 것 같다. 카 세일즈 웹사이트에서 확인할 수 있다.
아포칼립스 시리즈
이토록 퇴폐적인 자동차를 본 적이 있는가? 브라질의 3D 아티스트 조마르 마차도가 아포칼립스란 이름처럼 세상의 종말이 올 때 탈 법한 자동차 시리즈를 선보였다. 디자이너는 과거의 로마 왕정시대가 미래에 반복될 것이라 예상했을까.
포드 머스탱, 부가티 베이론, 폭스바겐 비틀의 얼굴을 가진 플라잉카들이 마치 콜로세움에 들어선 검투사처럼 무기를 휘감았다. 톱니바퀴 휠을 신고 뾰족한 돌기를 잔뜩 세우고는, 자신을 가로막는 것들이 무엇이든 갈기갈기 찢어버릴 것처럼 위협적이다.
란치아 스트라토스 HF 제로
1970년대 토리노 모터쇼에 공개된 이 차는 이탈리아 자동차 브랜드 란치아에서 개발한 프로토타입의 스포츠카다. 높이가 1m가 채 안 될 정도로 바닥에 납작 웅크린 자동차는 당시 자동차 회사가 자동차를 얼마나 낮게 만드는 데 관심이 있었는지를 보여준다.
스트라토스 HF 제로는 최고출력 116마력의 힘을 내는 V4 1.6ℓ 엔진을 얹었다. 운전자는 전면에 달린 경첩식 윈드실드를 열고 운전석에 들어갈 수 있다. 디자인은 아르데코와 포스트모더니즘의 영향을 받은 듯 직선적인 요소가 반복된다. 세상에 단 한 대뿐인 이 자동차는 2011년, 한 경매를 통해 약 11억원에 거래됐다.
알파로메오 B.A.T 시리즈
‛BAT’라고 하면 흔히 배트맨의 자동차를 떠올리기 쉽지만 이는 ‘Berlinetta Aerodinamica Tecnica’의 약자로, 급진적인 디자인과 공기역학 기술을 담으려는 의지가 녹아난 이름이다. 우주 비행체 같은 유려한 몸체가 마치 하나의 예술 작품처럼 관능적이면서도 추상적이다.
알파로메오의 요청으로 코치빌더 회사 베르토네와 이탈리아 디자이너 프랑코 스카글리오네가 만든 이 콘셉트는 토리노 모터쇼를 위해 1953년부터 1955년까지, 매년 시리즈로 제작됐다. 석 대의 전설적인 B.A.T 콘셉트는 2020년 10월 28일 RM 소더비 경매에 한꺼번에 올랐고, 1484만 달러(약 167억원)에 낙찰됐다.
수소연료전지차 콘셉트
<스타워즈>에 나오는 AI 로봇 같은 저 덩어리가 이동 수단이라고? 이 문제적 디자인은 러시아 모스크바에서 활동하는 디자이너 니키타 코노파토브가 고안한 수소연료전지차다. 이 콘셉트에서는 섀시나 차체, 휠까지 우리가 아는 자동차의 언어가 전부 부정당한다. 산업디자인의 발전에 기여한 모든 유의미한 계보들을 거스른 채 머리, 몸통, 다리로 나뉘는 곤충으로 퇴보한 듯하다. 더욱 놀라운 것은 이것이 판타지가 아닌 양산을 고려한 채 디자인된 콘셉트라는 것. 공개된 정보에 따르면 운전대도 사각형이다. 그렇다면 의문을 갖지 않을 수 없다. 이 콘셉트의 디자이너는 단지 새로움을 위한 새로움이란 꼬리물기에 빠져버린 것은 아닐까?
타스코 1948
미국의 자동차 디자이너 고든 부에릭이 1948년에 제작한 프로토타입의 자동차다. 이 자동차의 디자인은 상당 부분 항공기의 영향을 받았다. 앞으로 갈수록 더욱 좁아지는 긴 보닛은 비행기의 유선 형태를 차용했고 후면 또한 경비행기의 꼬리 디자인을 닮았다.
유리섬유로 만든 펜더는 바퀴가 안 보일 정도로 감싸고 있고 투명한 루프는 탈착 가능하다. 흔히 T-톱 루프는 3세대 콜벳이 시초라고 알려졌지만, 엄밀히 말하면 타스코 1948이 초석을 마련했다. 고든 부에릭이 만든 이 바퀴 달린 비행기는 비싼 제작비용 때문에 일회성으로 만드는 데 그쳤다.
메르세데스 벤츠 F200 콘셉트
메르세데스 벤츠는 1996년 파리 모터쇼에서 F200 콘셉트를 공개했다. 외관만 보면 그저 얼굴이 조금 짓눌린 벤츠가 아닐까 생각할 수 있다. 그러나 실내를 보면 생각이 달라진다. F200 콘셉트에는 운전대가 없다. 대신 기어레버 위치에 항공기에 사용되는 전자식 사이드 스틱이 들어갔다.
조향과 속도 조절 등은 오직 사이드 스틱을 통해 제어된다. 센터페시아 자리에 들어간 물리 버튼도 항공기 조종석과 유사하다. 분명 흥미로운 방식이지만 그들은 정녕 몰랐을 것이다. 운전대를 사이드 스틱으로 대신하는 때보다 운전이 필요 없는 시대가 빨리 온다는 것을.
뷰익 센츄리온 1956
뷰익 센츄리온은 1956년 공개된 당시만 해도 콘셉트였다. 제트기 모양의 새빨간 쿠페는 현재 자동차가 나아가고 있는 길을 정확히 예언했다. 센츄리온 1956은 1열과 2열에 각각 2개의 버킷 시트가 있는 4인승 자동차로 설계됐다. 당시 거의 없던 형식이다.
또 이 콘셉트에는 후방카메라가 적용됐다. 카메라가 후면의 이미지를 대시보드의 디스플레이로 전송해주는 시스템은 지금의 기술과 매우 유사하다. 더구나 이 차에는 사이드미러가 없다. 사방의 카메라가 거울을 대신할 것이라 생각했기 때문이다. 이 기술은 이제 막 양산되고 있는 CMS(카메라 모니터링 시스템)다.
롤스로이스 컬리넌 오프로드
롤스로이스의 컬리넌이 새하얀 눈밭 위에 거대한 스노타이어를 신고 서 있다. 환희의 여신상과 판테온 그릴의 위엄은 아무리 오프로드용 액세서리를 둘러도 가려지지 않는다. 중무장을 하고 척박한 북극 탐험에 나선 모습이 마치 초록색 갑옷을 입은 중세의 기사처럼 귀하고 비장하다. 가격표를 확인하고 싶겠지만 이는 콘셉트 디자이너 아비말렉 아렐라노의 렌더링 이미지일 뿐이다. 미세한 얼룩 하나에도 비명을 질러야 마땅할 만한 고귀한 몸을 오프로드에서 더럽히고 굴릴 무지막지한 생각을 하다니, 디자이너의 상상이 쿨해서 추워질 지경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