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개요 이 곡은 프랑스의 유명한 상숑가수인 에디트 피아프(Edith Piaf: 1915~1963)를 추모하여, 1959년에 풀랭크가 작곡한 <즉흥곡(Improvisation) 15번.FP. 176)이다. 곡 해설에 관한 자료가 없어, 에데츠 피에프(작은 참새)에 관한 자료만 요약 한다.
◆ 에디트 피아프(Edith Piaf : 1915~1963 프랑스)
프랑스의 목소리이자 샹송의 여왕인 에디트 피아프
에디트 피아프는 훗날 그녀가 얻은 예명이고 본명은 에디트 지오바나 가시옹(Édith Giovanna Gassion)이다. 에디트 피아프는 그 삶의 처음부터가 불우했다. 아버지는 거리의 곡예사였고 어머니는 이탈리아와 북아프리카계 혼혈로 거리에서 노래를 부르는 가수였다. 정처 없이 떠도는 부모는 에디트를 낳자마자 외할머니에게 맡겼으나 거의 방치되다시피 했고, 아버지가 나타나 노르망디에서 매춘업을 하는 할머니에게 맡겼다. 이러한 환경에서 자라난 피아프는 영양 실조로 키가 142cm까지 밖에 자라지 못했으며, 늘 영양실조에 시달렸고 3살부터 6살까지는 각막염을 앓아 눈도 제대로 보이지 않았다. 이 눈병은 에디트를 아끼던 한 매춘여인이 그녀를 데리고 성녀 테레사의 성지에 가서 기도한 덕분이라 전한다.
14세부터 스무 살 무렵까지 이 거리 저 거리를 헤매며 노래를 부르던 그녀에게 뜻밖에 기회가 왔다. 파리 피갈거리에서 노래 부르던 에디트를 당시 잘나가던 나이트클럽의 사장 루이 레플리가 발탁한 것이다. 어렸을 때의 영양실조 탓인지 키가 142cm 밖에 되지 않던 에디트는 작은 새가 노래하는 것 같았다. 루이 레플리는 프랑스 속어로 참새를 뜻하는 피아프(Piaf)란 단어를 붙여 그녀에게 라 몸므 피아프(La Môme Piaf: 작은 참새라는 뜻)란 예명을 지어주었다. 그리고 그녀의 작은 몸매를 돋보이게 하는 단아한 검정색의 무대의상을 입게 했다. 이 검은 의상은 이후 에디트 피아프 평생의 트레이드 마크가 되었다. ◆ 연애와 음악 : 장밋빛 인생, 사랑의 찬가 에디트 피아프와 관련이 있던 폭력조직이 에디트 피아프를 발탁했던 나이트클럽 주인 레플리를 총으로 살해한 사건으로 또 다시 거리로 내팽개친 에디트의 평판은 땅에 덜어 졌다. 절망에 빠진 그녀를 구한 것은 작사가 레이몽 아소였다. 그는 그녀의 이미지를 로맨틱하게 바꾸고 '라 몸므 피아프'라는 예명 대신 '에디트 피아프'란 예명을 붙여주었다. 이때부터 에디트는 평생을 에디트 피아프란 이름으로 살아가게 되었다. 이미지를 쇄신한 에디트 피아프는 1940년 프랑스의 대문호인 장 콕토의 작품을 일인 연주하면서 완전히 슬럼프로부터 회복했다. 이후 그녀의 삶은 장밋빛 인생과 같았다. 그녀는 프랑스 최고의 가수가 되었다. 피아프는 아이를 낳았으나 2년후 죽은 후 여러 남자들과 교제하였으나 여기서는 대표적인 두 사람과 관련된 음악을 소개한다.
▲ 이브 몽땅 : 장밋빛 인생 그녀가 노래하는 나이트클럽에서 잡일을 하던 잘 생긴 이브 몽땅을 영화계에 추천하여 스트가 되자 피아프를 떠나 버린 이브 몽땅과의 연애시절 ‘사랑의 감정을 주체하지 못해 쓰게 된 샹송“ 이 <장미빛 인생>’ 이다.
▲ 마르셀 세르당 : 사랑의 찬가 마르셀 세르당은 프랑스가 낳은 불세출의 권투 선수였다. 뉴욕에서 만나 사랑하게 되었으나, 세르당의 아비지가 ‘세 아이가 있는 세르당’을 제발 보내달라고 간청하여 헤여지게 된다. 그러다가 뉴욕의 텅빈 방에서 외로움에 전화를 걸게되고, 이 전화를 받고 급히 파리에서 뉴욕으로 오던 세르당이 비행기 추락으로 사망한다. 그후 세르당과의 사랑을 회상하며 쓴 곡이 <사랑의 찬가>이다.
<출처 : naver 인물세계사>
■ 감상
◆ 즉흥곡 15번 (3:32) 상단에 --------------------------- ◆ 에디트 피아프 해설 (28:16) 하단에 ▲ 사랑의 찬가 (3:14) ▲ 장미빛 인생 (3:36)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