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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도인들의 큰 기쁨
말씀: 느 8:12. 2023년 7월 2일 일요일 오후 2시
지난 시간에 우리는 주께서 자신의 기쁨을 우리에게 주셨고 우리 속에 기쁨을 충만케 하시는 분이란 사실을 공부했습니다. 주님은 우리의 기쁨을 충만케 하기 위해 말씀을 주셨습니다. 오늘은 “큰 기쁨”, “크게 기뻐하니라.”는 주제로 말씀을 살펴보겠습니다.
주님은 우리의 기쁨이 충만하도록 성령을 주셨습니다. 주님은 우리 속에 기쁨을 두셔서 항상 기뻐하며 살도록 하셨습니다. 크리스천으로서 우리는 주님의 평안, 주님의 기쁨, 주님의 즐거움을 가진 사람들로 평안과 기쁨과 즐거움을 가지고 살 수 있고 마땅히 그렇게 살아야 합니다.
성령의 기쁨, 말씀의 기쁨, 주의 기쁨, 구원의 기쁨 등은 주님이 우리 속에 두신 기쁨으로 모든 사람 본성의 감정적이고 감각적인 기쁨이 아닙니다. 우리는 살다보면 때로 크게 기뻐했던 일이 나중에는 그만큼 크게 후회하는 일이 될 때가 있습니다.
사악한 자들은 악을 행하며 기뻐하고 불법을 기뻐합니다. 세상 사람들은 재물을 기뻐하고 쾌락을 즐거워합니다. 광야의 이스라엘 백성들은 자신들이 만든 우상들을 기뻐했습니다(행7:41). 헤롯은 유대인들을 기뻐하게하기 위해 야고보를 죽이고 베드로를 감옥에 가두었습니다. 총독 벨릭스는 유대인들에게 기쁨을 주기 위해 바울을 결박한 채로 두었습니다(행24:27).
우리는 사람들을 기쁘게 하려고 애쓰는 자들이 아닙니다(갈1:10). 우리는 사람들을 기쁘게 하는 자들같이 섬기지 말고(엡6:6, 골3:22) 하나님의 허락을 받아 복음을 위탁받은 대로 말해야 합니다. 성경은 말하기를, “......이것은 사람들을 기쁘게 하려 함이 아니요, 우리의 마음을 시험하시는 [하나님]을 기쁘게 하려 함이라.”(살전2:4)고 합니다.
정치인들은 연예인들처럼 사람들을 기쁘게 하기 위해 노력합니다. 사람들을 즐겁게 하는 일이 직업인 코미디언, 개그맨들처럼 사람을 기쁘게 하기 위해 설교하는 목사들도 많습니다. 그러나 사람들을 두려워하는 자들은 올무에 걸리고, 사람들을 신뢰하는 자는 헛되고, 사람들을 기쁘게 하려는 자들은 성경에 따르면 그리스도의 종이 아닙니다(갈1:10). 성도들이 주의 뜻을 거역하거나 악을 행하면서 크게 기뻐하는 일은 허다합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주의 뜻을 거슬러 왕을 구하고 왕을 세운 일을 슬퍼하거나 회개한 것이 아니라 크게 기뻐했습니다. [온 백성이 그를 따라 올라오고 백성이 피리로 피리소리를 내며 크게 기뻐하고 즐거워하므로 땅이 그들의 소리로 인해 갈라지니라.](왕상1:40). 성경은 이들이 주의 뜻을 거역하고 행한 일임에도 불구하고 모든 사람이 크게 기뻐했다고 말합니다.
사울 왕은 백성들의 인기와 지지에 힘입어 왕이 된 지라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왕이 아니라 백성들을 두려워하고 그들을 기쁘게 하는 왕이 되어버렸습니다. [사무엘이 이르되, {주}께서 번제 헌물과 희생물을 {주}의 음성에 순종하는 것만큼 크게 기뻐하시나이까? 보소서, 순종하는 것이 희생 헌물보다 낫고 귀를 기울이는 것이 숫양의 기름보다 나으니](삼상15:22). 하나님이 크게 기뻐하시는 것은 번제 헌물, 희생물이 아니라 주의 음성에 순종하는 것입니다. 사울 왕으로 크게 기뻐했던 이스라엘 사람들의 기쁨은 오래가지 않았습니다. 그의 재위 40년 동안은 계속 전쟁의 연속이었고 주변의 적들에게 시달렸습니다.
오늘날 많은 크리스천들이 이런 기쁨을 누리고 있습니다. 주의 뜻을 거슬러 구한 것이라도 그것이 응답되었을 때 크게 기뻐합니다. 사람들은 얻고자 하는 것을 얻으면 그것으로 만족하고 기뻐합니다.
온 백성은 솔로몬이 다윗의 뒤를 이어 왕이 된 것을 크게 기뻐하고 즐거워했습니다. 압살롬이나 아도니야가 왕이 되지 못하고 솔로몬이 왕이 되었는데 이것이 백성의 큰 기쁨이었습니다. 솔로몬은 지혜의 대왕이요 화평의 왕이었습니다. 그러나 이 기쁨 역시 그렇게 오래 가지 않았습니다. 솔로몬의 타락과 더불어 백성들의 기쁨은 근심과 슬픔, 탄식으로 바뀌었습니다. 이와 같이 사람에게 얻는 기쁨은 언제나 변질될 위험이 있습니다.
우리의 왕은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예수님은 의의 왕이요 평강의 왕이요 성도들의 왕이시며 왕들의 왕이십니다. 예수님은 하늘의 왕국을 통치하시는 왕이시며 우리 속에서 하나님의 왕국을 통치하시는 왕이십니다. 사울 왕이나 솔로몬 왕으로 기뻐했던 백성들과 달리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로 인한 큰 기쁨이 있습니다. 이 기쁨은 중간에 슬픔이나 탄식으로 변하지 않습니다.
자, 그럼 우리에게 큰 기쁨을 주는 것이 무엇인지 성경을 찾아가며 함께 살펴보겠습니다.
• 예수님의 탄생, 예수님과의 만남은 우리의 큰 기쁨입니다.
동방에서 유대인의 왕으로 태어나신 예수님을 찾아온 지혜자들은 그 별을 보고 “아주 크게 기뻐하고 기뻐”했습니다(마2:10). 그들은 주님을 만나 그분께 경배 드린 후 돌아갔는데 이들이 얻은 기쁨은 죽을 때까지 없어지지 않는 기쁨입니다. 누구든지 예수님을 만났을 때 이와 같은 기쁨을 얻습니다. 예수님의 탄생은 온 세상에 미칠 큰 기쁨의 좋은 소식입니다. 천사들은 들에 있는 목동들에게 이렇게 말했습니다.
[그 천사가 그들에게 이르되, 두려워하지 말라. 보라, 내가 온 백성을 위한 큰 기쁨의 좋은 소식을 너희에게 가져오노라. 이 날 다윗의 도시에 너희를 위해 [구원자] 곧 그리스도 [주]께서 태어나셨느니라.](눅2:10-11).
예수님의 오심은 지구촌의 모든 사람들에게 미칠 큰 기쁨의 좋은 소식입니다. 이것은 어느 집에 자식이 태어났다, 손자가 태어났다는 기쁨과는 비교할 수 없는 큰 기쁨입니다. 왕조 국가에서는 왕이 될 왕자가 태어날 때 온 백성에게 전할 기쁜 소식이라고 보도합니다.
영국이나 유럽의 왕실, 일본이나 태국 왕실에서 왕자가 태어났다는 소식이 타국인인 우리에게 기쁜 소식이 될 수 없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아들이 이 땅에 육신을 입고 사람으로 태어나셨다는 소식은 온 인류에게 큰 기쁨의 좋은 소식이 아닐 수가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자신의 아들을 세상에 보내셨고, 이 땅에 우리를 위해 구원자 곧 그리스도 주께서 태어나셨다는 소식보다 더 큰 기쁨의 좋은 소식이 없습니다. 기쁨이 없는 사람들은 이 소식에서 큰 기쁨을 얻기 바랍니다.
• 예수님의 부활은 큰 기쁨의 좋은 소식입니다.
[그들이 두려워하면서도 크게 기뻐하며 급히 돌무덤을 떠나 그분의 제자들에게 말을 전해 주려고 달려가더라.](마28:8). 예수님의 죽으심으로 인해 슬픔과 근심에 빠졌던 여자들은 그분의 돌무덤 동굴에 왔다가 천사들로부터 부활의 소식을 들었습니다. 그들은 “두려워하면서도 크게 기뻐하며” 서둘러 무덤을 떠났습니다. 십자가에 못 박혀 죽었던 예수님의 부활의 소식은 큰 기쁨의 좋은 소식입니다.
“천사가 여자들에게 응답하여 이르되, 너희는 두려워하지 말라. 십자가에 못 박히신 예수님을 너희가 찾고 있음을 내가 아노라. 그분은 친히 말씀하신 대로 일어나셨으므로 여기 계시지 아니하니라. 와서 [주]께서 누우셨던 곳을 보라. 또 속히 가서 그분의 제자들에게 그분께서 죽은 자들로부터 일어나셨다고 고하라.......”(마28:5-7)고 하며 부활의 기쁜 소식을 전해 주었습니다. 여자들은 그분의 부활의 소식을 들었을 때 크게 기뻐했습니다.
주님의 부활은 그분의 탄생과 더불어 온 세상에 미칠 큰 기쁨의 좋은 소식입니다. 그분의 부활은 그분이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선포하는 것이요, 죄를 제거하고 사망을 폐한 것임을 드러내는 일입니다. 그분의 부활은 우리에게 영원한 생명의 선물을 주시는 일이며 몸이 다시 산다는 소망을 사실로 확증하는 일이기에 이보다 더 큰 기쁜 소식이 없습니다. 그러나 어떤 이들에게는 예수님의 부활은 큰 근심거리였습니다. [그들이 백성을 가르친 것과 예수님을 통하여 죽은 자들로부터의 부활을 선포한 것으로 인해 근심하여](행4:2). 제사장들과 성전의 대장과 사두개인들은 사도들이 선포하는 그분의 부활의 소식을 들었을 때 근심했습니다. 그리스의 철학자들은 죽은 자들의 부활에 대하여 들을 때에 조롱했습니다(행17:32).
예수님의 탄생 소식에 불안해했던 예루살렘 사람들처럼 예수님의 부활 소식 역시 어떤 이들에게는 근심거리였습니다. 그러나 그분의 말씀을 듣고 믿는 모두에게는 큰 은혜가 임했습니다. [사도들이 큰 권능으로 [주] 예수님의 부활을 증언하매 큰 은혜가 그들 모두에게 임하였고](행4:33). 예수님의 부활이 선포되고 믿는 현장에는 언제나 큰 기쁨과 큰 은혜가 임합니다.
여러분에게 큰 기쁨이 필요할 때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의 진리를 듣고 말하고 선포해 보십시오. 누군가에게 이 사실을 증언해 보십시오. 큰 기쁨과 큰 은혜가 임할 것입니다. 여러분이 오늘 만나는 누군가에게 예수님의 오심, 예수님의 죽으심과 부활을 증언해 보십시오. 큰 기쁨과 큰 은혜가 충만해질 것입니다.
• 예수님의 승천과 재림은 큰 기쁨의 좋은 소식입니다.
[그들을 축복하실 때에 그분께서 그들을 떠나서 위로 들려 하늘로 들어가시니라. 그들이 그분께 경배하고 크게 기뻐하며 예루살렘으로 돌아가 계속 성전 안에 있으면서 [하나님]을 찬양하고 찬송하니라. 아멘.](눅24:51-53). 제자들이 보는데서 공개적으로 예수님이 이 땅을 떠나 위로 들려 하늘로 들어가셨습니다. 이 사건을 목격한 이들은 그분께 경배하고 크게 기뻐하며 예루살렘으로 돌아와 계속해서 성전에서 하나님을 찬양하고 찬송했습니다.
“그분께서 ...하늘로 들어가시니라.”는 말씀은 그분께서 육신을 입고 이 땅에 오신 것만큼이나 크고 놀라운 소식입니다. 누가복음에는 기록되어 있지 않지만 이 때 그분을 보고 경배했던 자들 중에는 의심하는 자들도 있었습니다. [그분을 보고 그분께 경배하였으나 어떤 자들은 의심하더라.](마28:17). 이를 통해 당시 제자들에게 이 사건이 얼마나 충격적이었는지를 짐작할 수 있습니다. 우주선이나 불 말이나 불 병거와 같은 것이 없이 예수님은 천사들과 함께 그냥 하늘로 올라 가셨습니다.
그분께 경배하던 갈릴리 사람들은 서서 똑바로 하늘을 바라보고 있었습니다. 그 때 천사들이 말하기를, “그들이 또한 이르되, 너희 갈릴리 사람들아, 너희가 어찌하여 서서 하늘을 바라보느냐? 너희를 떠나 하늘로 들려 올라가신 이 동일한 예수님께서는 너희가 그분께서 하늘로 들어가심을 본 것처럼 그렇게 같은 방식으로 오시리라, 하니라.”(행1:11).
예수님의 승천과 더불어 그분의 오심(재림)에 대한 약속의 말씀을 들었습니다.
이들은 “크게 기뻐하며” 예루살렘으로 돌아왔고 계속해서 하나님을 찬양하고 찬송했습니다. 이처럼 예수님의 부활과 승천을 몸소 눈으로 본 사도들과 제자들은 인류 역사상 최대의 이적, 표적을 목격한 증인들입니다. 그들이 받은 큰 기쁨은 그 무엇과도 비교할 수 없습니다.
그럼 직접 그분의 부활과 승천을 보지 못한 우리는 어떻습니까? 보지 않고도 믿는 우리는 복된 자들입니다(요20:29). 믿음으로 걷고 보는 것으로 걷지 않는 우리는 더 복된 자들입니다(고후5:7).
• 예수님이 행하신 능력 있는 일들은 큰 기쁨의 좋은 소식입니다.
[그분께서 가까이 오시되 이제 올리브 산의 내리막까지 가까이 오셨을 때에 제자들의 온 무리가 자기들이 본 모든 강력한 일들로 인해 기뻐하며 큰소리로 [하나님]을 찬양하기 시작하여 이르되, [주]의 이름으로 오시는 [왕]을 찬송할지어다. 하늘에는 평화요 가장 높은 곳에는 영광이로다, 하매](눅19:37,38). 주님의 예루살렘 입성 소식에 사람들은 기뻐하며 소리쳤습니다.
주 예수 그리스도를 일컬어 “주의 이름으로 오시는 왕을 찬송할지어다. 하늘에는 평화요 가장 높은 곳에는 영광이로다.”하며 외쳤습니다. 사람들이 주님을 영접하는 것보다 더 큰 기쁨이 없습니다. 마음에 주 예수 그리스도를 왕이요 주로 영접하는 일은 큰 기쁨의 좋은 소식입니다.
여러분의 생에서 가장 기뻤던 적이 언제입니까? 저는 1979년 초 성경공부를 하면서 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마음속에 받아들여 구원 받던 순간입니다. 예수님을 믿지 않았던 제가 기록된 말씀으로 복음을 들으면서 하나님을 믿고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했습니다. 당시 말로 다할 수 없는 큰 기쁨이 임했습니다. 그 기쁨은 세상에서 뭔가를 얻었다, 이루었다는 그런 기쁨이 아니었습니다.
지금 여러분 중에 구원의 기쁨, 주를 만난 기쁨이 없다면 육신에 이끌려 지은 죄를 시인하고 고백하고 회개하십시오. 회개는 기쁨, 평강, 자유와 성령 충만을 회복하는 첫 번째 길입니다. 주님을 만난 기쁨, 주를 맞이하는 기쁨은 누구나 자신의 생에서 가장 큰 기쁨입니다. 성경은 말합니다. [오 시온의 딸아, 크게 기뻐하라. 오 예루살렘의 딸아, 큰 소리로 외치라. 보라, 네 [왕]이 네게 오느니라. 그는 의롭고 구원을 소유하시며 겸손하여 나귀를 타되 나귀 새끼 곧 어린 수나귀를 타느니라.](슥9:9). 유대인들은 유월절 전에 이 기쁨을 맛보았습니다.
• 하나님의 말씀들을 듣고 깨닫는 것은 큰 기쁨입니다.
[온 백성이 자기들의 길로 가서 먹고 마시며 일부를 보내고 크게 기뻐하였으니 이는 그들이 자기들에게 밝히 드러난 그 말씀들을 이해하였기 때문이더라.] (느8:12). 바빌론 포로 생활에서 돌아온 유대인들은 황폐한 땅에서 성전과 성벽을 재건했습니다. 그러나 그 무엇보다 그들을 기쁘게 한 것은 주의 말씀들을 듣고 이해하는 기쁨이었습니다. “이는 그들이 자기들에게 밝히 드러난 그 말씀들을 이해하였기 때문이더라.”(느8:12). 이것이 그들이 크게 기뻐한 이유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기쁨을 주는 말씀입니다.
말씀을 듣고 이해했을 때 얻는 기쁨은 세상의 다른 어떤 기쁨보다 큰 기쁨을 줍니다. 저는 이 기쁨을 맛보았습니다. 말씀이 주는 기쁨으로 인해 저는 평생 이 길로 왔다는 생각을 합니다. 이 기쁨은 돈을 번다, 직장을 얻는다, 결혼을 한다, 자식을 얻는다와 같은 것과는 전혀 차원이 다른 기쁨입니다. 말씀들을 듣고 깨달았을 때 영적 흥분과 감동은 소설, 영화, 드라마, 어떤 일들에서 얻는 것과는 전혀 다른 큰 기쁨이 있습니다. 저는 제가 받은 감동, 기쁨, 영적인 설렘과 흥분을 고스란히 형제, 자매들에게 전달해 주고 싶은 마음이 있습니다. 힘들고 어려웠을 때 받았던 말씀의 위로와 힘, 그 기쁨을 이 말씀을 듣는 모든 분들에게 임하기를 빕니다.
대언자 예레미야는 [내가 주의 말씀들을 발견하고 그것들을 먹으매 주의 말씀이 내게 기쁨과 마음의 즐거움이 되었사오니, 오 {주} 군대들의 [하나님]이여, 나는 주의 이름으로 불리나이다.](렘15:16)라고 했는데 여러분 모두에게 이 기쁨이 넘치기를 바랍니다.
주의 말씀은 고난 중에 있는 혼에 기쁨을 주며 힘을 줍니다. [나 자신이 주의 법규들을 기뻐하고 주의 말씀을 잊지 아니하리이다.](시119:16). [많은 노략물을 찾는 사람같이 내가 주의 말씀으로 인해 기뻐하나이다.](시119:162).
주의 말씀이 주는 기쁨을 지속하는 방법은 그 말씀에 순종해서 행하는 것입니다. 처음에는 기쁨으로 말씀을 받지만 뿌리가 없어 잠시 믿다가 시험의 때에 떨어져 나가는 이들이 있습니다(눅8:13).
말씀에 꾸준히 거해야 제자가 됩니다. “꾸준히”란 말을 빼 버리고 그냥 거하면 말씀을 받을 때 잠시 기뻐하다가 시험이 닥치면 떨어지며 전혀 진리를 알지 못하고 제자가 되지 못합니다(요8:31). 주의 말씀이 내 속에서 지속적인 기쁨의 근원이 될 수 있도록 하려면 그 말씀을 믿고 행하는 자들이 되어야 합니다. 말씀이 열매를 맺을 때 기쁨은 더 커집니다. 성경에 따르면 주의 증언들은 나의 기쁨이요(시119:24), 주의 법이 나의 기쁨이요(시119:77,92). 주의 명령들은 나의 기쁨(시119:143)입니다.
• 주의 도우심은 큰 기쁨입니다.
[{주}는 나의 힘이시요, 나의 방패시니 내 마음이 그분을 신뢰하여 내가 도움을 얻었도다. 그러므로 내 마음이 크게 기뻐하며 내가 내 노래로 그분을 찬양하리로다.](시28:7). 여러분은 고난의 날이나 어떤 어려움을 겪을 때 주님께 기도하고 필요한 때에 돕는 은혜를 받을 때 마음에 큰 기쁨을 얻게 될 것입니다. 하나님이 나의 기도를 들어 주셨다는 사실을 체험할 때 기쁨이 솟아나게 됩니다. “내 마음이 그분을 신뢰하여 내가 도움을 얻었도다. 그러므로 내 마음이 크게 기뻐하며...”란 말씀은 성도들의 일상적인 체험입니다. 여러분이 주를 신뢰하면 도움을 얻습니다. 여러분이 필요한 때에 돕는 은혜를 구하면 은혜를 얻습니다. “내가 도움을 얻었도다.”라고 한 다윗의 고백처럼 우리 역시 동일한 고백을 할 때 마음은 크게 기뻐합니다.
• 그리스도의 선포로 형제들의 회심을 볼 때 큰 기쁨이 있습니다.
[그 도시에 큰 기쁨이 있더라.](행8:8). 빌립은 사마리아에서 복음을 선포했는데 복음을 듣고 믿은 그 도시는 축제의 장이 되었습니다. 성령의 기쁨이 넘쳤기 때문입니다. 혼들의 회개와 회심은 하나님의 기쁨이요 사람들의 기쁨입니다. 빌립이 선포한 예수 그리스도는 그 도시의 큰 기쁨이었습니다. 예수님은 우리의 화평이시고 우리의 힘이시고 우리의 기쁨입니다.
[교회가 그들을 그들의 길로 내보내매 그들이 베니게와 사마리아를 지나면서 이방인들의 회심을 밝히 알려 모든 형제들에게 큰 기쁨을 끼쳤으며](행15:3). 이방인들의 회심은 모든 형제들에게 큰 기쁨을 끼치는 일입니다 죄인들의 회심, 회개는 하늘에 있는 천사들에게도 기쁨입니다. 우리가 복음을 전하는 일은 하늘의 하나님과 땅에 있는 형제들에게 큰 기쁨을 끼치는 일입니다. 그리고 그들은 또한 복음을 전한 나의 기쁨이 됩니다.
• 성도들의 영적 교제는 큰 기쁨입니다.
[형제여, 성도들의 속 중심이 너로 말미암아 새 힘을 얻었으므로 네 사랑으로 인해 우리가 큰 기쁨과 안위를 얻었노라.](몬1:7). 사도 바울은 빌레몬으로 말미암아 속 중심이 상쾌하게 되었고 빌레몬의 사랑으로 인해 큰 기쁨과 안위를 얻었다고 말합니다. [참으로 형제여, 내가 [주] 안에서 너로 말미암아 기쁨을 얻게 하고 내 속 중심이 [주] 안에서 새 힘을 얻게 하라.](몬1:20).
형제들이 진리 안에서 교제할 때 마음은 상쾌해지고 기쁨을 얻게 됩니다. 우리는 모두 이와 같은 교제를 해야 합니다. 성도들이 서로를 돌아보며 서로의 속 중심을 상쾌하게 하는 일은 서로에게 유익이며 기쁨을 주는 일입니다.
• 성도들의 영적 성장은 큰 기쁨입니다.
[형제들이 와서 네 안에 있는 진리에 대해 증언하되 네가 진리 안에서 걷는다고 증언하므로 내가 크게 기뻐하였노라. 내게는 내 자녀들이 진리 안에서 걷는다는 것을 듣는 것보다 더 큰 기쁨이 없도다.](요삼1:3,4). 사도 요한은 형제들이 ‘가이오’가 진리 안에서 걷는 그대로 자기 속에 있는 진리에 대한 증언을 들었을 때 크게 기뻐했습니다.
요한은 자신에게는 자기 자녀들이 진리 안에서 걷는다는 것을 듣는 것보다 더 큰 기쁨이 없다고 합니다. 우리 모두 마찬가지입니다. 저는 누군가 저희 교회 설교를 듣고 성경 공부를 하면서 진리를 배우고 깨닫는다, 성장한다는 소식을 들을 때 가장 기쁩니다. 곳곳에서 이런 소식을 전해 올 때 “내가 크게 기뻐하였노라.”는 사도 요한과 동일한 고백을 합니다. 자신의 인기나 명성이 올라가는 것이 기쁜 것이 아닙니다. 주목하십시오. “진리 안에서 걷는다.”는 것이 기쁜 것입니다.
• 그리스도의 족한 은혜를 깨달을 때 큰 기쁨이 있습니다.
[그분께서 내게 이르시되, 내 은혜가 네게 족하도다. 나의 강한 능력은 약한 데서 완전하게 되느니라, 하셨느니라. 그러므로 내가 오히려 크게 기뻐하며 나의 연약한 것들을 자랑하리니 이것은 그리스도의 권능이 내 위에 머무르게 하려 함이라.](고후12:9).
바울은 사역하는 동안 몸이 좋지 않았습니다. 그는 몸이 약했고 고통과 함께 하는 삶이었습니다. 바울을 만난 성도들이 말하기를, “......그의 편지는 무게가 있고 힘이 있으나 그가 몸으로 우리를 마주할 때는 약하고 그의 말도 형편없다, 하기 때문이라.”(고후10:10)라고 할 정도였습니다. 그는 평생 의사 누가와 동행하면서 치료를 받았고 자신의 몸에 사탄의 사자인 가시가 있다고 했습니다. 그는 주님께 자신의 질병을 고쳐 주시도록 세 번이나 기도했지만(고후12:8) 주님은 치료 대신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내 은혜가 네게 족하도다. 나의 강한 능력은 약한 데서 완전하게 되느니라.”(고후12:9). 바울이 이 말씀을 듣고 실망한 것이 아니라 오히려 크게 기뻐하며 자신의 연약한 것들을 자랑했습니다. 주님의 강한 능력은 약한 데서 완전해집니다. 이것은 참으로 모순과 역설로 들리지만 사실입니다.
• 시험, 고난이 주는 기쁨이 있습니다.
[비록 지금은 필요가 있어 너희가 여러 가지 시험으로 인해 잠시 근심하고 있지만 그 구원을 크게 기뻐하나니](벧전1:6). 시험, 고난, 시련, 징계는 어떤 사람들에게는 큰 슬픔이나 근심이지만 믿는 성도들에게는 그것이 큰 기쁨이 됩니다. 고난을 견디면 열매를 맺습니다. 고난을 견디면 생명의 왕관을 받습니다. 고난은 영광의 중한 것을 이룹니다. 고난을 받으면 영광도 함께 받습니다. 잘 행하고도 고난을 받고 견디는 일은 하나님께서 받으실 만한 것입니다(벧전2:20).
그리스도의 고난에 참여하는 자가 되었으면 기뻐하십시오. 그분의 영광이 드러날 때에 넘치는 기쁨으로 또한 즐거워하게 하려 함입니다(벧전4:13). 누군가 그리스도인으로 고난을 받으면 그는 부끄러워하지 말고 도리어 이 일로 인해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라고 합니다(벧전4:16). 우리는 앞으로 나타날 영광에 참여할 자이기 때문입니다.
사도 바울은 자신이 고난당하는 것을 기뻐했습니다(골1:24).
베드로도 복음을 전하면서 많은 고난을 당했습니다. 그러나 기뻐했습니다.
[그들은 자기들이 그분의 이름으로 인해 수치당하는 일에 합당한 자로 여겨진 것을 기뻐하며 공회 앞을 떠나](행5:41). 고난이 없다가 고난이 다가오면 내가 이 일에 합당한 자로 여겨진 것을 기뻐하면 됩니다. 고난, 시험은 필요가 있어서 오는 것이요 단련, 열매, 영광, 기쁨을 위해 오는 것입니다.
• 경배의 기쁨입니다.
[또한 그 날 그들이 큰 희생물을 드리고 기뻐하였으니 이는 [하나님]께서 큰 기쁨으로 그들을 기쁘게 하셨기 때문이더라. 아내들과 아이들도 기뻐하였으므로 예루살렘이 기뻐하는 소리가 멀리서도 들렸더라.](느12:43). 주님께 돌아온 유대인들은 큰 희생물을 드리고 기뻐했는데 주님은 그런 그들에게 “큰 기쁨으로 그들을 기쁘게 하셨기 때문이더라.”고 합니다.
주를 기뻐하는 혼들, 주께 경배하는 혼들에게 주님은 큰 기쁨을 주셨습니다. 우리는 영적 제사장들입니다. 우리는 거룩한 제사장입니다. 우리는 왕가의 제사장들입니다. 우리는 그리스도의 제사장들입니다. 자, 그렇다면 우리가 주님께 드려야할 희생물이 무엇입니까? 우리는 우리 몸을 살아있는 희생물로 드려야 합니다. [너희도 살아 있는 돌들로서 영적 집으로 건축되고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께서 받으실 만한 영적 희생물을 드리는 거룩한 제사장이 되었도다.](벧전2:5).
우리는 선을 행하는 것, 나누어 주는 것, 감사, 찬양과 같은 영적 희생물을 주께 드리고 기뻐해야 합니다. 그 때에 주님은 우리에게 큰 기쁨으로 기뻐하게 하십니다. 주를 기뻐하는 자들에게 기쁨을 주시고 심히 기뻐하게 하시는 주님을 찬양합니다. 우리는 모두 기쁨으로 충만한 삶을 삽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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