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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창골산 봉서방 원문보기 글쓴이: 김민호 목사
주일설교. 천대까지 은혜를 베푸느니라 (출 20장 1-7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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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에서 3이라는 숫자는 완전성을 의미 한다고 합니다. 우리 생활에서도 무언가를 설명할 때 2가지만 예를 들면 왠지 불안하고 부족한 것 같고, 5가지 예를 들면 어렵고 복잡해지는 것 같은데, 3가지 예를 들면 덜함도 없고 부족함도 없이 딱 맞는 느낌입니다. 듣는 사람도 부담이 없습니다.
운동경기 하면 금, 은, 동 세 명에게 메달을 줍니다. 맛집을 소개 할 때도 3대 맛집이라고 하면 뭔가 있어 보입니다. 가수를 손 꼽을 때도 인기 가수 3대장이라고 말하고, 박수도 삼삼칠로 치라고 하고, 하물며 가위 바위 보를 해도 삼 세 번 하자고 합니다. 예전에는 설교도 3대지 설교가 정석처럼 여겨졌습니다. 3이라는 숫자는 익숙하면서도 안정감이 있는 숫자입니다.
십계명은 열가지 계명이지만, 오늘은 앞서 나오는 3계명의 본문을 살펴 보겠습니다. 하나님의 계명은 10가지가 아니라 100가지가 되어도 중요하지 않은 것이 없겠지만, 십계명 중 앞에 나오는 3개의 계명은 우리가 보다 더 깊이 있게 새기고, 실천해야 할 계명 중의 계명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그런데 우리가 다 잘 알고 있을 것 같으면서도 십계명 중 앞의 3계명을 성경에 쓰여진 그대로 한번 기억해보자, 말해 보자라고 하면 정확하게 말씀하시는 분이 의외로 적습니다. 비슷하게는 알지만 토씨를 틀리지 않고 본문대로 기억하지는 않고 계시는 것 같습니다.
3이라는 숫자가 완전수라고 했으니, 오늘 이후로 우리교회 성도님들은 3계명은 정확하게 머리와 가슴속에 새기시고 그 의미와 은혜까지도 자동으로 저장하시는 복된 시간이 되시기를 축복합니다.
먼저, 1계명이 있기 전에 서언에 해당되는 1, 2절을 읽어 드립니다. “1. 하나님이 이 모든 말씀으로 말씀하여 이르시되 2. 나는 너를 애굽 땅, 종 되었던 집에서 인도하여 낸 네 하나님 여호와니라” 아멘.
1절은, 이 모든 말씀, 즉 십계명을 포함하여 계명과, 율례와 법도, 그리고 성막제조법까지 모든 것을 제정하시고, 선포하신 분은 오직 하나님 한 분 뿐임을 선포하신 것입니다. 어느 누구도 이 말씀에 개입 할수도 없고, 말씀을 변형하고, 왜곡하고, 첨삭 할 수 없습니다. 하나님이 영원하시고 완전하시듯이, 하나님의 말씀 또한 영원하시고 완전합니다. 1절에는 하나님의 존엄하신 영광이 넘쳐 납니다.
1절이 있기 전에 19장에서 하나님은 시내산 위로 모세를 불러 셋째 날에 하나님의 영광이 시내산에 강림할 것이니, 백성들은 이틀 동안 성결하게 하고 옷을 빨아서 입고 하나님을 만날 준비를 하라고 명령 하십니다. 드디어 셋째날 아침에 우레와 번개와 빽빽한 구름이 산 위에 있고 나팔 소리가 매우 크게 들렸고 모든 백성이 그 광경을 목도하고 몸을 떨었습니다.
하나님은 모세에게 산 아래 경계를 긋고 백성들이 경계를 넘어서 죽음을 당하지 않도록 지키라고 하셨습니다. 모세와 아론만 나아오게 하고 제자장과 백성들은 경계를 넘지 못하도록 금지 하셨습니다. 만약 경계를 넘어서면 쳐서 죽이시겠다고 엄하게 명령하셨습니다. 이처럼 하나님의 영광을 목도하고 하나님의 말씀을 듣는 다는 것은 자칫 잘못하다가 죽임을 당할 수도 있는 있습니다.
시내산에 강림한 하나님을 맞이한 백성들이 떨면서 모세에게 말하기를, “당신이 우리에게 말씀하소서 우리가 들으리이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말씀하시지 말게 하소서 우리가 죽을까 하나이다”(출 19:19) 라고 말하셨습니다. 하나님의 임재 광경이 얼마나 위엄이 서려 있었는지 짐작이 됩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우리가 어떤 자세로 받아야 하는지 잘 보여주는 광경입니다.
하나님이 첫 일성으로 말씀 하시기를, “나는 너를 애굽 땅, 종 되었던 집에서 인도하여 낸 네 하나님 여호와니라”(2절)라고 선포 하셨습니다. 종의 신분 이었던 나 이스라엘과, 종에서 벗어나게 인도하여 주신 하나님 여호와를 일대일로 대비시켜 놓으셨습니다. 나와 너의 관계는, 종이냐, 종이 아니냐의 관계로 설정 되어 있다는 것을 잊지 말라는 말씀입니다.
만군의 하나님이 소수 민족에 불과한 백성을 기억하시며 나와 너라고 불러 주신다는 것 자체가 영광중의 영광입니다. 그만큼 이스라엘을 사랑하시고 생각속에 두고 계시다는 증표입니다. 또한 종의 신분에서 벗어나게 하신 자신의 이르름을 공표 하심으로, 하나님은 무형의 존재이거나 관념적인 존재가 아니라 살아 역사하시는 전능하신 하나님 되심을 만 천하에 공개 하신 것입니다.
2절 말씀에는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있어서는 절대로 잊지 말아아야 할 신앙고백이 담겨 있습니다. 신명기 26장 5-9절에는 이스라엘 민족의 신앙고백이 나옵니다. “내 조상은 방랑하는 아람 사람으로서~ 애굽 사람이 우리를 학대하며 우리를 괴롭히며~ 여호와께서 우리의 고통과 신고(고역)와 압제를 보시고~강한 손과 편 팔과 큰 위엄과 이적과 기사로 인도하여 내시고~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을 주셨나이다” 아멘.
제단을 쌓고 이 고백을 여호와께 아뢰라고 했습니다. 이 신앙 고백의 압축이 바로 오늘 2절 말씀입니다. 종으로 살던 너, 그리고 종에서 벗어나게 해준 하나님, 이 관계를 잊지 아니하면 사랑과 은혜는 계속 될 것입니다. 십계명을 주시기 전에 과거의 신분을 기억나도록 앞서서 말씀하신 하나님의 심정을 헤아릴 수 있어야 합니다.
그만큼 우리들은 시간이 갈수록 내가 얼마나 비참하고 보잘 것 없는 존재였는지, 그럼에도 나를 택하시고 불러 주셔서 구원의 은총을 내려 주셨는지를 너무 쉽게, 너무 자주 잊어 버린다는 겁니다. 은혜를 기억하지 못하면 하나님과 나와의 관계는 더 이상 작동되지 않습니다.
우리 모두도 오늘 십계명의 말씀을 듣기 전에, 내 이름을 기억하시고, 불러 주시고, 죄를 용서하여 주시고, 하나님 나라의 백성으로 살아가게 인도하여 주신 하나님 앞에, 내 믿음과 감사의 고백을 마음 껏 드리시고, 영원토록 기억되는 나와 너, 종과 주인의 관계가 깨어지지 않도록 겸손한 마음으로, 두렵고 떨리는 마음으로 살아가시기를 축복합니다.
1. 십계명 제 1계명
드디어 십계명 제 1계명 말씀입니다. 3절을 읽어 드립니다. “너는 나 외에는 다른 신들을 네게 두지 말라” 아멘
1계명에서도 나(하나님)와 너(이스라엘)의 관계가 설정 되어 있습니다. ‘다른 신들’은 하나님을 제외한 각종 우상들을 총칭하는 단어입니다. 영어 단어로 하나님을 표기 할 때 영어 대문자로 시작하는 ‘God’ 단수 명사이고, 신들을 표기할 때는 소문자 ‘gods’ 복수 명사입니다.
‘말라’(히, 로) 라는 단어는 절대로 해서는 안 된다는 강력한 금지어이고, 히브리어 본문에는 제일 먼저 이 단어부터 나옵니다. “절대로 하지마라 네게 있게 다른 신들을 나 외에는”이런 어순이 됩니다. 8절의 제 4계명(안식일), 12절의 제 5계명(부모 공경)을 제외한 나머지 계명에는 “말라”라는 절대 금지어가 붙어 있습니다.
하나님은 다른 신(우상)들이 있든 없는 상관 없이 영원하시고 유일하신 분이시기에 이런 금지계명이 필요가 없으십니다. 이 계명은 오직 하나님의 백성들(자녀들)을 위해서 내려 주신 계명입니다.
제가 전에 기독교 신조(신앙고백)들이 생겨난 이유를 말씀드린 적이 있습니다. 기독교 진리를 뒤흔드는 이단 사설들이 횡행하자 이를 막기 위해 진리의 장벽을 세우기 위해 만들어진 것들이 신조라고 했습니다. 이단들이 없었으면 성경 말씀 만으로 충분하기 때문에 굳이 신조도 필요 없었을 겁니다.
1계명도 마찬 가지입니다. 다른 신들(우상)이 만들어지지 않고, 다른 신들에게 몸과 마음을 빼앗길 일이 없었다면, 아마도 1계명이 “여호와 하나님은 유일하시고 영존하시는 너의 아버지 이시다”정도로 충분했을 겁니다, 절대로~하지 말라는 단호한 금지어가 필요치 않았을 겁니다.
그만큼 하나님보다 다른신들을 섬기는 일이 시대를 관통하여 기하급수적으로 증가하여 우리 인간들에게 가장 해악이 되는 일이 되어버렸기 때문에, 하나님은 우리를 보호하시기 위해 철벽의 방어막을 만드셨습니다. 그것이 제 1계명입니다.
“너는 나외에는” 이라고 말씀하신 것은, 하나님이 나라는 존재를 늘 기억하시고, 동행 하시고, 자녀로 인정해 주시겠다는 영광스러운 의미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일평생 아버지라 부를 수 있는 단 한분, 나의 여호와 하나님만 나보다 앞에 세우고, 바라보고, 그 분만을 경외하며 사랑해야 합니다.
또한 제 1계명은 하나님 한 분 만으로 만족함이 있는 인생을 약속하시는 말씀입니다. 내 인생 앞에는 항상 전능하신 여호와 하나님이 서 계시며, 평안과 소망으로 인도해 주십니다. 어떤 문제보다도 크신 하나님, 어떤 상황 보다도 크신 하나님, 어떤 원수 보다도 강하신 하나님이 나의 하나님 되어주심을 “나와 너”라고 하시며 굳게 약속 하여 주신 것입니다. 1계명이 얼마나 존귀와 영광과 평안의 말씀인지를 깨닫는 다면 우리의 인생은 만사형통, 영생복락의 길을 거침없이 걸어가게 될 것입니다. 우리 모두가 다 그렇게 되시기를 축복합니다.
문제는 이 모든 것을 누리기 위해서는 절대 하지 말라는 것을 반드시 지켜야 한다는 전제 조건이 있습니다. “다른 신들을 네게 두지 말라”라고 했는데, “두지 말라”는 뜻이 무엇일까요? 개역한글 성경 번역은 “있게 말지어다”, 공동번역은 “모시지 못한다”, 표준 새번역은 “섬기지 못한다”, 우리말 성경은 “어떤 신도 없게 하여라”, NIV 성경은 “내 앞에, 나보다 앞서서 before me”라고 되어 있습니다. 영어 성경 번역이 원문의 의미에 근접한 번역입니다.
원문을 보고 의역해 보면, “너는 내 얼굴(면전)을 마주하는 것에 앞서서 다른 신들이 발생(존재)하게 하는 일이 절대로 있지 않게 해야만 한다”는 뜻입니다. 하나님의 얼굴을 대면하는 일 이외에는 다른 어떤 것도 일체 생각조차, 시도조차 하지 말라는 뜻이니 얼마나 강력한 금지를 말씀 하시는 것인지 알 수 있습니다.
7월 암송 말씀이었던 잠언 3장 6절을 기억하시나요? “너는 범사에 그를 인정하라 그리하면 네 길을 지도 하시리라” 아멘. 이 말씀에서 ‘인정하다’라는 뜻이 앞세운다는 의미라고 말씀 드렸습니다. 하나님의 얼굴만 바라보고 살아가는 것과 하나님의 뜻(말씀, 명령)만을 항상 앞세우며 살아가는 것은 동일한 의미입니다. 결국 제 1계명은 하나님만이 앞서서 가시고 나는 그 뒤를 열심히 따라가는 것임을 알 수 있습니다.
1계명 속에는 하나님의 사랑하심과, 구원하심과, 동행 하심과, 인도 하심과, 평안 주심과, 소망 주심과, 영생의 약속을 이루어 가심이 모두 담겨 있는 진실되고 진실된 말씀의 정수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 계명 하나만 지킬 수 있으면 나머지 계명을 다 지켜 갈 수 있고, 이 계명 하나만 제대로 지킬 수 있다면 하나님은 그러한 사람을 크게 사용하여 주실 것입니다.
00교회 모든 성도는 “너는 나외에 다른 신들을 네게 두지 말라”는 말씀이 일생일대의 강력 능력의 말씀으로 역사하여, 하나님 한분만으로 만족하며 범사에 감사의 삶을 살아가시고, 항상 하나님만 앞세우는 삶의 예배자로 살아가시고, 두렵고 떨리는 마음을 겸손하게 하나님 앞에서 살아가시는 “나와 너의” 주인공이 되시기를 축복합니다.
2. 십계명 제 2계명
십계명 제 2계명 말씀, 4~6절을 읽어 드립니다. “너를 위하여 새긴 우상을 만들지 말고 또 위로 하늘에 있는 것이나 아래로 땅에 있는 것이나 땅 아래 물 속에 있는 것의 어떤 형상도 만들지 말며 5. 그것들에게 절하지 말며 그것들을 섬기지 말라 나 네 하나님 여호와는 질투하는 하나님인즉 나를 미워하는 자의 죄를 갚되 아버지로부터 아들에게로 삼사 대까지 이르게 하거니와 6. 나를 사랑하고 내 계명을 지키는 자에게는 천 대까지 은혜를 베푸느니라” 아멘
십계명 중에 2계명과 4계명(안식일 계명, 8~11절)은 다른 계명에 비해 길게 설명이 되어 있습니다. 원문이 의미하는 우상은, 석재, 금속, 나무, 흙 같은 재료등을 이용해서 눈에 보이도록 만들어 세워 놓은 크고 작은 조형물들을 말합니다.
사람들이 우상을 만드는 이유는 불안해서입니다. 눈에 보이지 않는 신은 아무 도움도 주지 못하는 것처럼 여겨지지만, 크고, 무서운 형상의 조형물은 눈에 보이기도 하고 왠지 든든해 보이기 때문입니다. 인간의 연약함을 이용한 심리적인 보완 대체품을 만들어 놓고 싶어서 우상들이 나타났습니다.
하나님은 새긴 우상의 어떤 형상도 절대 만들지 말고, 절하지도 말라고 절대 금지의 명령을 내리셨습니다. 우상에 대한 금지를 제 2계명으로 강력하게 말씀하실 만큼, 구약 시대나 지금이나 우상은 사람의 마음을 빼앗아 가고, 하나님과의 사이를 갈라 놓는 악한 범죄입니다. 하지말라면 하지 말아야 하는데, 하지 말라고 했더니 더 하려다가 멸망의 길로 간 사람들, 민족들, 나라들 이야기가 성경에 셀 수 없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5절 중간에 “질투하는 하나님”이라고 했습니다. 하나님은 이 땅의 모든 사람들이 오직 창조주 하나님 한 분만을 마음을 다하고 힘을 다하고 뜻을 다하여 사랑하시기를 원하십니다. 그래서 하나님보다 다른 것을 사랑하는(좋아하는, 선택하는, 즐겨찾는) 모든 행위를 질투 하십니다. 그러나 우상을 따르는 것은 질투의 마음으로 끝나지 않습니다.
5절 중간에 “나를 미워하는 자의 죄를 갚되”라고 되어 있습니다. 나(하나님)를 미워 하는 자는 우상숭배자들을 말하는 것이며, 곧 우상을 만들고 절하는 것이 사랑의 하나님을 버리고 미움의 대상으로 바꾸어 버리는 아주 나쁜 행위라는 겁니다. 하나님을 미워하는 우상숭배자들은 죄를 지은 자들이라고 판정 하시고, 그 죄를 갚겠다, 대가를 치르도록 징계하시고 심판 하시겠다고 하십니다.
우상을 따르는 것은 단순한 경고나 권면으로 끝나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질투하심과, 진노하심, 징계하심의 결과로 보여 주겠다고 분명하게 말씀 하셨습니다. 삼사대 까지 죄를 갚겠다고 하셨는데, 보통 한 대가 30년 정도이니 삼사대면 90~120년 정도 되는 시간입니다. 나 한사람이 우상 숭배에 빠져서 내 후손들이 100여 년 동안이나 징계의 죄 값을 받는 다는 것이 얼마나 무서운 일입니까.
우상 숭배에 관한 하나님의 실제 마음은 6절에 있습니다. 이달의 암송 말씀인데, 함께 큰 소리로 읽겠습니다. “나를 사랑하고 내 계명을 지키는 자에게는 천 대까지 은혜를 베푸느니라”아멘.
삼사대 까지 죄의 값을 치르는 것과 천대 까지 은혜를 받는 것, 두 가지를 비교하면서, “징계가 생각보다 짧네, 별로 신경 안써도 되겠네” 이런 어리석은 생각을 하는 사람은 없을 겁니다. 또, “하나님은 징계는 짧게 주시지만 은혜는 천대 까지나 주시는 분이야”라는 감상적인 생각으로 쉽게 넘어가서도 안 됩니다.
지금 무슨 계명 때문에 이런 말씀이 나왔습니까? 우상 때문입니다. 우상을 생각조차 안하고, 가까이 하려는 시도조차 하지 말아야 한다는 것만을 생각하면 됩니다. 그러면 징계와 은혜는 하나님이 알아서 처리 해 주실 겁니다.
우리는 오직 하나님이 질투하시는 일을 단 하나도 만들지 않겠다는 마음 가짐으로 살아가면 됩니다. 하나님이 미워 하시는 어떤 언행도 하지 않으려고, 거룩하고 겸손하게 살아가려고 열심을 다해야 합니다.
그러면 은혜는 자동으로 주어질 것이고, 징계는 내 인생에서 발생하지 않을 겁니다. 나로부터 삼사대까지냐, 나로부터 천대까지냐, 나 자신이 출발점임을 명심하십시오. 나만 잘하면 내 후손은 은혜 아래에서 잘 먹고, 잘 사는 복된 인생이 보장 되는 겁니다.
00교회 모든 성도는, 세상에서 좋아 보이는 그 어떤 우상 보다, 눈에 보이지 않는 하나님만을 사랑하고, 천대 까지 은혜를 누리는 복의 출발점들이 되시기를 축복합니다.
3. 십계명 제 3계명
제 3계명인 7절 말씀을 읽어 드립니다. “너는 네 하나님 여호와의 이름을 망령되게 부르지 말라 여호와는 그의 이름을 망령되게 부르는 자를 죄 없다 하지 아니하리라” 아멘.
요한계시록 7장에서 아무도 능히 셀 수 없는 큰 무리가 나와 흰 옷을 입고 나와서, “구원하심이 보좌에 앉으신 우리 하나님과 어린 양에게 있도다”(계 7:9,10) 큰 소리로 외칩니다. 그러자 보좌 옆에 있던 모든 천사가, “ 아멘 찬송과 영광과 지혜와 감사와 존귀와 권능과 힘이 우리 하나님께 세세토록 있을지어다 아멘”(계 7:12)이라고 합창을 하는 장면이 나옵니다.
이렇듯, 하나님의 이름은 영광과 존귀함으로 불려져야 마땅합니다. 3계명에서 ‘망령되다’는 단어(히-랏사웨)는 ‘위하여’라는 전치사(히-레)와 결합되어서, 범죄(사악, 거짓, 허위, 허무)를 위하여 라는 뜻이 됩니다. 높임 받아 마땅한 하나님의 이름을 순결하지 못한 악의적인 의도를 가지고 자기 자신의 사욕이나, 거짓 행위를 정당화 하기 위하여 함부로 사용하는 것이 망령된 행동입니다.
망령되게 하나님의 이름을 사용하는 자는 “죄 없다 하지 아니하리라”, 좀더 의역하면, “결단코 용서되거나 형벌을 면제 받고 무사하게 되지 못할 것이다”라고 하셨습니다. 무시무시합니다. 입으로 하나님의 이름을 함부로 말하는 것이 얼마나 참담한 결과를 가져올지 경각심을 극한으로 끌어올리는 계명이 제 3계명입니다.
예수님이 가르쳐 주신 기도문의 첫 구절은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여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으시오며”(마 6:9)입니다. 예수님도 하나님의 이름을 가장먼저, 가장 높게, 가장 영광 스럽게 나타내셨습니다. 그런데 한 낱 인간이 하나님 이름의 영광을 훼손하고, 변질시키고, 오염시키고, 사익을 위해 함부로 사용하고서도 무사할 수는 없습니다. 사람이 하나님의 영광을 마음대로 깍아 내리는 일은 죄악 중의 죄악으로 중대한 범죄행위입니다.
종교개혁자 루터(Martin Luther, 1483-1546)는 ”하나님의 이름을 걸고 거짓말하거나 사실과 다른 것을 주장하는 것이 곧 하나님의 이름을 망령되게 하는 것이다“ 라고 말했습니다. 아주 정확한 말입니다.
또한, 성공회 사제이며 기독교 복음주의 지성을 대표했다고 기억되고 있는 ‘존 스토트’(John Stott, 1921~2011) 목사님이 제 3계명에 대하여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을 주님이라고 부르면서 순종하지 않는 것과, 하나님을 아버지라 부르면서 염려와 의심으로 가득 차 있는 것은, 그의 이름을 부인하는 것이다. 말과 행동이 다른 것은 위선이고 하나님의 이름을 실추시키는 것이다.”
저도 루터와 스토트 목사님의 견해에 동의 합니다. 거짓말 하는 사람, 말만 하고 행동으로 실천하지 않는 사람은 언제든지 하나님의 이름을 소홀히 여길 가능성이 크지만, 언제나 진실하고 말과 행동이 일치하는 사람은 하나님의 이름을 감히 망령되게 하지 않으려고 조심 또 조심하게 될 것입니다.
영어 비속어들 중에, “O my God!”(하나님 맙소사), “Jesus Christ!”(빌어먹을) “Holy Shit!”(이런 미친, 망할), 삼위일체 하나님이 들어간 단어가 욕설로 쓰이는 것이 일상용어화 되어 있습니다. 실수해서 하나님의 이름이 망령되게 일컬어 지는 것이 아니라, 대놓고 하나님의 이름을 모독하는 것이 재미있고 신나는 어처구니 없는 세상을 살아가고 있습니다.
우리는 달라야 합니다. 하나님의 이름을 부를 때 두려움과 경외감에 사로 잡혀야 합니다. 예수님의 이름을 부를 때 감사의 눈물이 흐르고 찬송이 울려퍼져야합니다. 성령님의 이름을 부를 때 회개의 고백이 터져 나오고 위로와 평안을 구하는 기도가 올려져야 합니다. 나 같은 죄인이 하나님의 이름을 부르며 살아가게 해 주신 것 하나만 잊지 않아도, 감히 망령되이 하나님의 이름을 부르려는 생각조차 하지 못할 것입니다.
오늘 들려 주신 3계명은 온전히 하나님 앞에 서야 하는 우리 믿음의 자녀들의 삶의 상황을 이끌어 주시는 은혜의 말씀입니다. 성경은 말씀 하시는 하나님, 그리고 말씀을 듣고 순종하는 하나님의 백성들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말씀 듣기를 싫어(거부)하고, 말씀 없이 살아가는 것은 하나님의 백성이기를 포기하는 일입니다.
우리 모두에게는 존귀하신 하나님의 이름이 주어졌습니다. 말씀이 내려 졌습니다. 은혜가 채워졌습니다. 사랑이 영원토록 작동하고 있습니다. 날이 갈수록 하나님의 얼굴 만을 구하시고, 천대 까지 누리는 은혜를 구하시고, 영광의 이름만을 힘차게 부르며 하나님이 계신 그 곳으로 전진하시는 우리 모두가 되기를 축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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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 아버지! 저희들에게 귀중한 계명을 주셨사오니, 일평생 하나님 한 분만으로 만족한 삶을 살아가게 하시고, 하나님만을 경외하며, 하나님의 이름만 높이며 살아가는 은혜의 백성, 구원 받은 자녀들이 되게 하여 주옵소서. 천대까지 은혜를 베풀어 주심으로 천국문으로 인도하여 주시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하옵나이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