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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묵상 나눔 돈을 사랑함이 일만 악의 뿌리가 되나니
장코뱅 추천 4 조회 710 25.12.27 07:27 댓글 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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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 작성자 25.12.27 08:23

    첫댓글 즐거운 주말, 기쁜 주일 되세요!

    이 포스팅은, 초신자나 시간이 없는 분들은 묵상 본문만 읽으셔도 충분합니다. 아래의 댓글과 주석은 시간이 많은 분들께 다양한 이해를 제공하기 위함입니다.

  • 작성자 25.12.27 08:27

    <호크마 주석: 디모데전서>

    =====6:3
    다른 교훈을 하며 - 이에 해당하는 헬라어 '헤테로디다스칼레이'(* )가 1:3에서는 '신화와 끝없는 족보'를 가리키는 것에 반해여기서는 '이단 사상'을 가리킨다. 당시 헬라 세계에는 '소피스트'(Sophist)라고 불리는 궤변론자들이 많았는데 그들은 웅변과 변론술을 가르치고 돈을 받았다. 또한 영지주의자들이 이단 사상을 교회에 끌어들여 초대 교회에 혼란을 야기시켰다.
    바른 말 곧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말씀과 경건에 관한 교훈 - '바른 말'(* , 휘기아이누신로고이스), 곧 '그리스도의 말씀과 경건에 관한 교훈'은 그리스도께서 친히 하신 말씀뿐만 아니라 그분의 말씀에 근거하여 기독교의 진리를 설명한 교훈이다(Guthrie). 그러므로 이 '바른 말' 속에는 예수의 말씀에 근거한 사도들의 가르침이 포함되어 있다.
    착념치 아니하면 - '착념치'의 헬라어 '프로세르케타이'(* )는 '...에게로 가다' 혹은 '접근하다'의 뜻으로 신약성경에서 자주 사용되었다(히 4:16 ; 7:25). 여기에서는 이 단어가 유일하게 비유적으로 사용되어 '동의하다'혹은 '정신적으로 가까이 다가가다'를

  • 작성자 25.12.27 08:28

    의미한다(agree, NIV).

    =====6:4
    저는 교만하여 아무것도 알지 못하고 - '그리스도의 말씀과 경건에 관한 교훈을 무시하고 자기 마음에 맞는 이단 사상을 좇아가는 자는 하나님의 권위를 무시한다는 측면에서 '교만하여'(* , 테튀포타이)라고 할 수 있다. 이런 자들은 참된 진리인 그리스도에 관하여는 전혀 무지한 자들이다.
    변론과 언쟁을 좋아하는 자니 - '언쟁'의 헬라어 '로고마키아스'(* )는 '로고스'(* , '말')와 '마코마이'(* , '싸우다')의 합성어로 '설전'(舌戰)을 의미한다. 영어의 'logomachy'(말다툼)가이 단어에서 유래하였다. 또한 '좋아하는'의 헬라어 '노손'(* )은 '병들다'는 뜻이다. 이러한 의미에 따라 혹자는 본 구절을 '논쟁을 병적으로 갈망하는'(having a morbid craving for argument)으로 해석하였다(Easton).
    투기와 분쟁과 훼방과 악한 생각이 나며 - 이와 같은 것들은 '변론과 언쟁'의 결과로 생겨나는 것들이다. '투기'(* , 프도노스)는 '시기'를 뜻한다. 논쟁에서 패배한 자는 승자에 대해 질투의 악감정을 갖게 된다. '분쟁'(* ,에리스)은 '투기'에서 비롯된다

  • 작성자 25.12.27 08:28

    '훼방'의 헬라어 '블라스페미아이'(* )가 하나님께 적용될 때는 '신성 모독'(blasphemy)을 뜻하나 여기에서는 사람에게 적용되어 '욕'이나 '비방'을 의미한다. '악한 생각'에서 '생각'에 해당하는헬라어 '휘포노이아이'(* )는 '의심하다' '추측하다'를 뜻하는헬라어 동사 '휘포노에오'(* )에서 파생된 말로 '의심'을 뜻한다(행 13:25 ; 25:18 ; 27:27). 따라서 '악한 생각'은 '악한 의심'(evil suspicions,NIV)으로 번역될 수 있다. 불필요한 변론에 치우치는 것은 사람들을 의심하게 할 뿐만아니라(Hendriksen) 그리스도와 복음에 대한 의심을 불러일으킬 것이다.

    =====6:5
    마음이 부패하여지고 진리를 잃어버려...다툼이 일어나느니라 - 4절에서는 '변론과 언쟁을 좋아함'으로써 생기는 악한 열매 네 가지가 열거되었다. 본절에서는 마지막 다섯번째 결과로 '다툼'이 언급된다. 이 말에 해당하는 헬라어 '디아파라트리바이'(* )는 '디아'(* , '통하여')와 '파라트리바이'(* , '화나게 함')의 합성어로서 '서로에게 화를 내는 것'을 뜻한다. 이러한 '다툼'은 '마음이 부패하여지고

  • 작성자 25.12.27 08:28

    진리를 잃어버린 자들'에게서 난다. 여기서 '부패하여지고'의 헬라어 '디에프다르메논'(* )은 완료 수동 분사로 '철저히 부패된 상태'를 나타낸다(Earle). 또한 '잃어버려'에 해당하는 헬라어 '아페스테레메논'(* )은 '자신의 권리를 상실하게 됨'을 뜻한다(White). 일단 그들은 진리를 소유한 경험이 있었으나 지금은 그것을 박탈(剝奪)당했다(Lenski).
    경건을 이익의 재료로 생각하는 - '이익의 재료'로 번역된 헬라어 '포리스몬'(* )은 '얻다', '획득하다'를 뜻하는 동사 '포리조'(* )에서 파생된 말로 '경제적인 이익'을 뜻한다(financial gain, NIV). 진리를 떠나 다른 교훈을 좇는 자들은 '경건'( , 유세베이안) 즉 '종교'라는 이름으로(Scott) '그들의 거짓된 교훈'을 가르쳐주고 그 대가로 물질적인 사례를 요구하였다(Lenski, Hendriksen).

    =====6:6
    그러나 지족하는 마음이 있으면 경건이 큰 이익이 되느니라 - 스토아 학파의 철학자들은 '현자란 지상의 행복과 불행에서 완전히 독립하여 마음의 평정을 누리는 사람'이라고 주장하였다. 그러나 이들이 주장하는 것은

  • 작성자 25.12.27 08:29

    금욕주의적인 경건에 도움을 줄지언정 참된 만족을 주지는 못한다. 또한 이단 사상을 전파하는 자들이 추구하였던 만족은 그 원천(源泉)을 마음속에 두고있는 것이 아니라 물질적인 것에 두고 있었다. 바울은 이러한 것들과 대조적으로 오직 평강의 근원이신 하나님과 교제함으로써 얻어지는 '지족'(* , 아우타르케이아스)을 말하고 있다. 이러한 지족의 마음을 소유한 자는 세상적인 유혹과 물질에 대한 지나친 관심을 떨쳐버리고 하나님께만 소망을 둠으로 부족함을 느끼지 않을 뿐 아니라 오히려 풍족한 삶을 살게 된다(빌4:11-13). 그에게 있어 진정한 행복이란 물질의 많음에 있지 않고 하나님과의 바른 관계에 있기 때문이다.

    =====6:7
    우리가 세상에 아무것도 가지고 온 것이 없으매 또한 아무것도 가지고 가지 못하리니 - 구약 지혜 문학에 나오는 내용의 인용으로 보이는(욥 1:21 ; 전 5:14, 15). 본절은 두개의 문장이 접속사 '호티'(* , '왜냐하면')로 연결되어 있다. 따라서"우리가 세상에 아무것도 가지고 온 것이 없다. 왜냐하면 아무것도 가지고 가지 못할 것이기 때문이다"이다. 이것은 태어나는 것보다 죽는다는 것에 강조점을 둔 것으로

  • 작성자 25.12.27 08:29

    긍극적으로 세상의 물질적인 것이 아무런 도움이 되지 못한다는 것을 나타낸다(White).

    =====6:8
    먹을 것과 입을 것이 있은즉 족한 줄로 알 것이니라 - '먹을 것'의 헬라어 '디아트로파스'(* )는 복수로서 생존에 필요한 모든 음식을 포함한다(Hendriksen). 또한 '입을 것'의 헬라어 '스케파스마타'(* )는 '덮다'를 뜻하는 동사 '스케파조'(* )에서 파생된 복수 명사로서 '의복'이나 '덮개' 혹은 '은신처' 등을 의미한다(Earle). 바울의 이러한 권면을 문자적으로 받아들인다면 정당한 부의 축적마저 부인되어야 한다는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 그러나 바울이 여기에서 강조하는 것은 어느 것에 관심을 가지고 생활해야 하느냐하는 점이다. 즉 최소한의 먹을 것과 입을것만을 취하라는 의미보다는 '하나님의 나라와 그의 의'에 더 큰 관심을 가지라는 권면이다(마 6:33).

    =====6:9
    부하려 하는 자들은 - '부하려 하는'에서 '하는'에 해당하는 헬라어 '불로메노이'(* )는 '의도하다', '갈망하다', '결정하다'의 뜻을 갖는다. 따라서 본문은 부자가 되려는 강한 욕구를 갖고 있는 자들을 말한다.

  • 작성자 25.12.27 08:30

    시험과 올무 - '시험'의 헬라어 '페이라스몬'(* )은 '유혹'(temptation, KJV, NIV)을 의미하며 '올무'의 헬라어 '파기다'(* )는'덫', '함정'을 뜻한다. 부자가 되려는 지나친 욕망에 사로잡힌 자는 필경 유혹을 받아 마귀의 올무에 걸리게 된다(딤후 2:26).
    어리석고 해로운 정욕에 떨어지나니 - 재물에 대한 지나친 욕구는 영혼의 눈을 어둡게 만들며 결과적으로 하나님과의 교제가 단절되는 결과를 초래한다. 이러한 결과는 인간의 영적 죽음이요 완전한 파멸이다.
    곧 사람으로 침륜과 멸망에 빠지게 하는 것이라 - 혹자는 '침륜'(* , 올레드론)이 현세(現世)에서의 파멸을 의미하며 '멸망'(* , 아폴레이안)은 사후(死後)의 파멸을 뜻한다고 본다(Scott). 하지만 그보다는 유사한 의미를 갖는 단어를 중복시킴으로 물질의 지나친 추구가 멸망을 초래한다는 사실을 강조한 말로 보는 것이 적절하다. 또한 '빠지게 하는'의 헬라어 '뷔디주신'(* )은 '배가 바다깊이 침몰하는' 것을 묘사한 말이다(눅 5:7). 바울은 물질을 소유하려는 욕구 자체를 죄악시하지는 않았다. 혹자가 지적한 대로

  • 작성자 25.12.27 08:30

    바울은 결코 금욕주의자가 아니었다(Hendriksen). 그러나 이 욕구를 제어하지 못하고 물질의 획득에 지나친 관심을 두어 거기에만 몰두하는 것은 잘못된 삶의 형태이다.

    =====6:10
    돈을 사랑함이 일만 악의 뿌리가 되나니 - 본 구절은 비온(Bion)과 데모크리투스(Democritus)가 한 말 곧 '돈을 사랑함이 모든 악의 척도이다'(* , 텐필라르귀리안 에이나이 메트로폴린 판톤 톤 카콘)와 유사하므로 학자들은 바울이 이것을 인용한 것이라고 추정한다(Guthrie, Robertson). 그러나 이에 반해 렌스키(Lenski)는 본 구절이 바울의 독자적인 말임을 주장한다. 한편 '사랑함'의 헬라어'필라르귀리아'(* )는 '탐욕'(covetousness)을 의미한다.돈 그 자체는 악하지 않으나 그것에 탐욕을 품게 될 때 악이 발생한다. 여기서 바울이'일만 악의 뿌리'가 된다고 말한 것은 돈을 사랑함이 모든 악의 유일한 근원임을 말한다기보다 재물을 지나치게 탐하게 될 때 일어나는 극단적인 결과를 강조하고 있는 것이다(Guthrie).
    이것을 사모하는 자들이 미혹을 받아 믿음에서 떠나 - '사모하는'의 헬라어 '오레고메노이'(* )는

  • 작성자 25.12.27 08:30

    '잡으려고 손을 뻗치다', '갈망하다'의 뜻을 갖는 동사 '오래고'(* )의 현재 분사로 '항상' 돈을 갈망하고 있음을 나타낸다. 이러한 자들은 미혹을 받아 믿음에서 떠나게 된다. 여기서 '떠나'에 해당하는 헬라어 '아페플라네데산'(* )은 별이 자신의 일정한 궤도에서 이탈하여 유성처럼 떠돌아다니는 것을 의미한다(Lenski).
    많은 근심으로써 자기를 찔렀도다 - '근심'의 헬라어 '오뒤나이스'(* )는 '깊은 슬픔'을 의미한다. 또한 '찔렀도다'의 헬라어 '페리에페이란'(* )은 '꿰뚫어 관통하였다'는 뜻으로(pierced, KJV) 주로고기를 쇠갈고리로 꿸 때 사용되었던 말이다. 결국 돈에 지나친 탐욕을 품은 자들은 신앙보다 물질에 더 관심을 갖게 되어 신앙을 잃고 방황하게 될 뿐만 아니라 극심한 슬픔으로 고통을 받게 된다.

  • 25.12.27 08:41

    공가합니다. 크게 보면 묵상 본문과 비슷한 흐름으로 보입니다.

  • 25.12.27 11:27

    @노베 읽어보니 그런 것 같습니다. 공감합니다.

  • 작성자 25.12.27 08:34

    만족하는 삶(디모데 전서 6:6-10)

    믿음을 남용하여 세속적인 이익을 얻으려고 하는 자들에 대하여 사도 바울은 다음과 같이 언급하였다.

    Ⅰ. 바울은 지족하는 마음에서 오는 유익과 탐욕의 해로움을 보여 주고 있다.

    1. 만족의 유익(6-8). 어떤 이들은 기독교가 이 세상을 살아가는 데 유익한 것이라고 말한다. 그러나 그들이 기독교를 통해 어떤 세속적인 이익을 얻을 것으로 생각하여 이런 말을 하였다면 그것은 거짓된 것이라 하지만 기독교가 장사로 치자면 밑지는 장사이지만 세상에서 가장 고귀한 일임은 두말할 나위가 없는 것이다. 기독교를 이용하여 돈을 벌고자 하는 자들은 다만 이 세상을 섬기는 자들일 뿐이며 그들은 곧 기독교가 손해나는 장사라는 것을 알고 실망하게 될 것이다. 그러나 기독교를 자기의 소명으로 알고 그것을 전업으로 하는 사람은 기독교가 유익한 것임을 알게 될 것인데 왜냐하면 그것은 현재와 다가오는 시대에 생명의 약속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1) 바울이 말한 진리는 "지족하는 마음이 있으면 경건이 큰 이익이 된다"는 것이다. 어떤 이는 "지족하는 자의 경건"을 다음과 같이 해석한다. 즉 "만약 어떤 사람이 이 세상에서 가진 것이

  • 작성자 25.12.27 08:34

    적어도 그것으로 충분히 생활해 나간다면 그는 더 이상 욕망하지 않게 될 것이고 그럴 때 그가 가지고 있는 경건은 그에게 큰 유익이 될 것이다"는 말로 본다. 그러므로 의인의 적은 소유자 많은 악인의 풍부함보다 승하도다(시 37:16)라고 하였다. 그러나 우리는 "지족하는 마음이 있으면 경건이 큰 이익이 된다"는 말씀을 다음과 같은 뜻으로 본다. 경건은 그 자체가 대단한 유익이라는 것이요 그것은 모든 일에 대하여 유익을 주게 된다는 것이며 따라서 참된 경건이 있는 곳에는 만족이 있게 될 것이라는 뜻으로 본다. 경건함으로 만족하는 최고의 경지에 도달한 사람은 확실히 이 세상에서 가장 쉽게 가장 큰 행복에 도달한 사람이다. "지족하는 경건" 즉 그리스도인의 지족성은(만족은 경건에서 만이 나올 수 있는 것이다) 큰 유익이다. 경건은 세상에서의 가장 큰 부(富)이다. 경건한 사람은 저 세상에서도 확실히 행복될 것이다. 더욱이 어떤 환경 속에서도 지족할 수 있는 사람은 이 세상에서 가장 많은 것을 가진 자인 것이다. 여기서 우리는 다음의 것을 알 수 있다.

    [1] 그리스도인의 이익. 그것은 지족하게 하는 경건이다. 이것은 이익을 얻는 진정한 길이며 이익 그 자체이다.

  • 작성자 25.12.27 08:35

    [2] 그리스도인의 유익은 대단히 크다. 그것은 세상에서 티끌만한 이익만 생겨도 좋아하는 그러한 유의 사람에게 주어지는 보잘 것 없는 세상적인 이익과 같은 것은 아니다.

    [3] 경건은 풍족하던 가난하던 언제나 만족을 준다. 진정으로 모든 사람들은 바울처럼 어떤 경우에 처하든지 거기서 만족할 줄 알게 되는 것이다(빌 4:11). 그들은 하나님께서 그들에게 분배하여 주신 것에 만족하여 그것이 자기들에게 가장 좋은 것인 줄로 안다. 그러므로 우리 모드가 만족을 가져다 주는 경건을 얻도록 노력하자.

    (2) 바울이 지족의 교훈을 준 이유. 그것은 "우리가 세상에 아무것도 가지고 온 것이 없으매 또한 아무 것도 가지고 가지 못하리라"(7절)는 이유 때문이었다. 이것이 바로 왜 우리가 작은 것을 가지고도 만족하여야 하는가의 이유인 것이다.

    [1] 우리가 이 세상에 벌거벗은 몸으로 왔으므로 또한 우리가 돌아갈 때 주장할 것은 아무것도 없다. 우리가 지금까지 무엇을 소유했던지 간에 그것은 하나님의 섭리 덕분이다. 주신 그 분이 원하실 때 원하시는 것을 가져가시는 것을 그분의 자유인 것이다. 우리에게는 우리의 존재와 육체와 또한(음식이나 의복보다 중요한) 생명이 있다.

  • 작성자 25.12.27 08:35

    우리가 세상에 올 때 벗은 몸으로 온 것외에 아무 것도 가져온 것이 없었다. 따라서 우리가 바라는 바 모든 것은 소유할 수 없다고 하더라도 우리의 존재가 계속되고 생명이 유지된다면 만족해야 되지 않겠느냐는 말이다. 우리는 이 세상에 올 때 아무것도 가지고 오지 못하였으나 하나님께서 우리를 위하여 예비해 주시고 우리를 돌보사 우리는 오늘까지 생명을 유지하고 먹고 살아왔다. 그러므로 우리가 가장 큰 어려움에 떨어질 때라도 이 세상에 벌거벗고 태어났을 때보다 더 가난하게 될 수는 없을 것이다. 또한 가난할 때는 하나님이 우리에게 쓸 것을 공급하실 것이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우리의 남은 순례의 생애를 돌보아 주실 것을 믿자!

    [2] 우리는 이 세상을 떠날 때도 아무것도 가지고 갈 수가 없다. 가장 큰 부자라도 그 많은 것 중에서 한 벌의 수의와 한 개의 관 그리고 무덤만이 그가 가지고 갈 수 있는 전부인 것이다. 그렇다면 어째서 우리는 많은 것을 욕심내는가? 우리는 왜 적은 것을 가지고 만족하지 못하는가? 결국 우리가 아무리 많이 가지고 있다 하더라도 우리가 이 세상을 떠날 때 그 모든 것을 남겨놓고 가야하는데도 말이다(전 5:15, 16).

  • 작성자 25.12.27 08:35

    (3) 그러므로 바울은 "우리가 먹을 것과 입을 것이 있은즉 족한 줄로 알 것이다"라고 하였다(8절). 이 말은 음식과 의복을 말하는 것으로 입을 것이라는 말속에는 의복 뿐 아니라 주거지라는 뜻도 함축되어 있다. 만약 하나님께서 우리의 생명의 유지에 필요한 것들을 주셨다면 우리는 그것이 화려한 것이 아니라고 할지라도 그것으로 충분히 만족해야 한다. 만족할 줄 아는 성품을 지녔다면 본문을 통하여 비록 우리가 맛좋은 음식을 가지고 못하고 값비싼 옷을 입지 아니하였다 해도 만약 우리가 어느 정도 먹고 입을 수 있는 것이 있다면 만족해야 한다는 사실을 배우게 된다. 아굴의 기도를 들어보자. 그는 "나로 하여금 가난하게도 마시고 부자로도 마시고 다만 나를 위하여 먹고 살 양식으로 먹여 주시옵소서"(잠 30:8)라고 기도했다. 여기서 우리는 다음의 것을 알 수 있다.

    [1] 이러한 세상적인 것들에 우리의 행복을 두는 것은 어리석은 것이라는 사실이다. 우리가 이 세상에 올 때 아무것도 가지고 오지 못하였다면 저 세상으로 갈 때 또한 아무것도 가지 못한다. 세상이 주는 행복과 재산들을 죽음이 벗겨갈 때 또 누구나 이것들과 영원히 작별해야 할 때 이 세상적인 것에만 마음을

  • 작성자 25.12.27 08:36

    두고 살던 속물들은 어떻게 하려고 그러는 것일까? 그들은 가련한 미가처럼 "나의 지은 신들과 제사장을 취하여 갔으니 내게 오히려 있는 것이 무엇이냐?"(삿 18:24)라고 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2] 참된 그리스도인이라면 생필품 이상의 것을 바라서는 안 된다. 그는 생필품으로 만족하도록 노력을 해야 한다. 만족할 줄을 모르는 것이 인간의 욕망이다. 그는 적은 것으로 만족할 줄 알아야 한다. 그는 다만 "음식과 입을 것"이 주어질 것만을 바라야 할 것이다.

    2. 탐욕의 악함. "부하려 하는 자들은[이 세상의 부(富)에 마음을 쏟고 옳든 옳지 않든 그것을 가지려는 사람들] 시험과 올무에 떨어진다"(9절). 바울은 부자라고 말하지 않고 부자가 되려는 자들이라고 말하였다. 즉 그들의 행복을 이 세상의 부함에 두고 부당한 방법으로 그 부를 탐내며 그 탐욕을 만족시키기 위하여 열심을 내며 무섭게 날뛰는 사람들을 가리킨 말이다. 그런데 그런 사람들은 피할 수 없이 시험과 올무에 떨어진다. 왜냐하면 사탄은 그들의 욕망이 어디에 쏠려 있는가를 알기만 한다면 그는 곧 그의 낚시 바늘에다가 그들이 바라는 미끼를 걸기 때문이다.

  • 작성자 25.12.27 08:36

    마귀는 금덩어리를 얼마나 좋아하는지를 알았으므로 그 앞에 그것을 놓아두었던 것이다. 이런 자들도 "여러 가지 어리석고 해로운 정욕에 떨어진다"(9절). 다음을 명심하자.

    (1) 바울은 다음과 같은 점들을 추론한다.

    [1] 어떤 사람들이 부자가 되기를 바라고 있다는 것이다. 즉 그들은 부자가 될 것을 목적하고 있다는 말이다. 그들은 결핍 속에서는 결코 만족할 줄을 모를 것이다.

    [2] 부자가 되려는 사람은 안전할 수도 없고 또 무죄할 수도 없다는 것이다. 왜냐하면 그들은 영원히 멸망할 위험 가운데로 치닫고 있기 때문이다. 결국 그들은 시험과 올무에 걸리게 될 것이다.

    [3] 세속적인 욕망은 어리석고 해로운 것이라는 사실이다. 왜냐하면 그것들이 사람을 파멸과 지옥으로 이끌어가기 때문이다.

    [4] 육신적이요 세속적인 욕망의 해로움을 깊이 생각하는 것은 우리에게 유익한 일이라는 것이다. 그것들은 어리석은 것이므로 우리는 그것들을 부끄러워해야 하며 또한 그것은 해로운 것이므로 우리는 그것을 두려워해야 한다. 특히 그것들이 어느 정도 해로운 것인지를 생각해야 하는데 왜냐하면 그것은 인간들을 멸망하여 지옥에 떨어지게 하기 때문이다.

  • 작성자 25.12.27 08:37

    (2) 바울은 돈을 사랑함이 일만 악의 뿌리가 된다고 확언하였다(10절). 돈을 사랑하지 않는다면 인간이 죄를 지을 까닭이 없을 것이다. 특별히 돈을 사랑하는 마음이 많은 사람으로 그리스도에 대한 믿음을 떠나게 하는 근본 원인이 된다. 그들이 돈을 사랑하는한 그들은 믿음에서 떠나고 기독교를 포기하게 되고 많은 근심으로 자기를 찌르게 된다. 다음을 명심하자.

    [1] 일만 악의 뿌리가 무엇인가? 돈을 사랑함이다. 돈을 소유할 수는 있다. 그러나 그것을 사랑하지는 말아야 한다. 그러나 만약 어떤 사람이 과도하게 돈을 사랑한다면 그것은 곧 그 사람을 악의 구렁으로 몰아 넣을 것이다.

    [2] 탐욕적인 사람은 돈을 버는 방법이 있다면 믿음까지도 떠나게 될 것이다. 그러므로 본문에 "이것을 사모하는 자들이 믿음에서 떠났다"고 하였다. 또 바울은 다른 곳에서 "데마는 이 세상을 사랑하여 나를 버렸다"(딤후 4:10)라고 말하였다. 왜냐하면 데마에게 세상은 기독교보다 더 귀한 것이었기 때문이었다. 믿음에서 떠난 자들은 많은 근심으로써 자기를 찌른다는 사실을 명심하자. 하나님을 떠난 사람들은 그들 자신에게 근심을 저축하는 일을 하고 있는 것이다.

  • 25.12.27 09:02

    매튜 헨리 주석으로 보입니다. 길고 은혜로운 긴 설교를 하나 들은 것 같습니다 😂 😄 👍

  • 작성자 25.12.27 09:30

    ps) <매튜 헨리 주석 >

  • 25.12.27 10:58

    사랑이라는 숭고한 표현의 대상은 우선 하나님입니다. 이 사랑을 돈에게 쏟아붓는 자는 하나님을 믿는 참 성도는 아닙니다. 좋은 내용에 공감합니다.

  • 작성자 25.12.27 11:15

    공감과 댓글 감사합니다!

  • 25.12.27 11:30

    공감합니다22

  • 25.12.27 11:31

    돈을 좋아하는 정도가 아니라 사랑하는 자들은 하나님을 사랑하지 않는 자들이고 심지어 다른 교리를 가진 이단과 연결되는 것을 알게 해주는 좋은 묵상과 성경본문입니다.

  • 작성자 25.12.27 16:57

    네, 공감합니다^^

  • 25.12.27 12:07

    연말연시를 맞아 우리 사회가 갈수록 빈익빈 부익부 시대로 가고 있음을 봅니다.
    이러한 현상은 자본주의 사회의 끝판왕인 미국에서 더 극명하게 드러나고, 세계적인 추세인 것 같습니다. 중산층이 두터워야 건강한 사회라고 할 수 있는데 중산층이 점차 사라지고 부유한 자는 돈이 돈을 벌어와서 막대한 부를 쌓고, 가난한 자들은 몸이 축 나도록 일해야 겨우 입에 풀칠을 하는 사회이니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돈에 한이 맺혀 있을지 알 수 있습니다.
    말세에 이르면 사람들이 저마다 돈을 사랑하고 자랑하고 이기적이 되고 나아가 부모를 거역하고 사랑이 없어지고 배교하기까지에 이르게 된다고 했는데 기독교인들도 이런 세상에서 무엇보다 자신을 지켜 오염되지 않고 신앙의 지조를 잘 지켜야 하겠습니다.
    의식주가 기본적으로 해결되면 자족할 줄 알아서 경건에 더욱 힘을 쏟고 이웃을 돌아보며 계명을 실천하는 전통적인 크리스천의 삶이 세상을 밝히 비추고 있습니다.
    자기 자랑을 일삼고 허영 부리는 기독교인들에게 휩쓸리지 않고, 경건하고 절제하며 살아가는 교인들이 더 존중받는 그런 교회문화를 만들어가면 좋겠습니다.
    시의적절한 교훈적 말씀에 공감하고 감사드립니다.

  • 작성자 25.12.27 17:01

    좋은 분별과 합당한 댓글에 매우 공감합니다.

  • 25.12.27 12:24

    돈을 사랑하는 것은 육체를 사랑하는 것으로 영원한 삶에 대한 애착이 상대적으로 작다고 봐야겠죠. 그리스도의 사랑을 알고 그와 연합한 자는 영원한 세계를 알아버렸기 때문에 그보다 못한 한시적이고 일시적인 세상의 정욕에 눈이 멀게 되지는 않을 것입니다.
    목회자들이 돈을 사랑하는 지경에 이르면 타락과 함께 이단, 배교로까지 이르게 된다는 것도 잘 알고 있어야겠네요.

  • 작성자 25.12.27 17:16

    네, 지당하신 말씀입니다!

  • 25.12.28 15:17

    매우 공감합니다.

  • 25.12.28 15:18

    좋은 내용입니다. 공감하고 현 시대에 대한 올바른 성찰을 하게 됩니다.

  • 25.12.28 15:51

    공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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