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새는 쉼 없는 날갯짓 하며 하늘에서 먹고 자고 짝짓기 하는 여름 철새이다. 높은 산악지대에 서식하며 매미 파리 꿀벌을 공중에서 낚아채는 날쌘돌이다. 그럴진대 팔순을 넘긴 그녀가 어느 날 갑자기 칼새처럼 날고 싶다니 어안이 벙벙하다. 인품으로는 추호도 허튼 말씀을 하실 분이 아닌데 필시 그럴싸한 연유(緣由)가 있으리라 추념해 본다.
칠순을 앞두고 평생 동안 몸 바쳐온 무역업을 정리했다. 여행길 말고는 딱히 하릴없는 무료함을 달랠 길이 없어 전전긍긍하던 때에 산행길에서 우연히 친구의 친구를 만났다. 그때 그가 가지고 있던 기이한 나무 지팡이에 현혹되어 급하게 장비를 구비하여 지팡이 창작에 돌입했다. 지팡이 재료를 찾아 험준한 산속을 들쥐처럼 뒤적이다가 운 좋게 됨직한 재료를 찾게 되면 그렇게 기쁠 수가 없었다. 잘 다듬어 세상에서 하나뿐인 지팡이로 환생시킬 때는 하늘을 나는 기분이다. 번잡스런 세속(世俗)보다 말 없는 산이 좋았고 희귀한 지팡이 재료를 찾아 산속(山俗)을 헤매 돌던 시간은 인생 제2막의 영혼을 달래주던 안식처였다.
칠십 대 후반에 들어서면서 인문학 교수님의 권유로 무심코 쓴 글이 신인상을 받으며 등단을 하고, 부경 수필아카데미 심화반에 등록을, 했다. 열정적인 교수님의 지도를 받게 된 것은, 일생일대의 행운이었다. 그곳에서 칼새의 날개이고 싶은 그녀를 만나게 될 줄이야.
그녀는 문학 도반 중에서 최고의 연장자였다. 삶의 무게 때문인지 걸음이 어둔하여 보조를 맞추어 걷고 말벗도 되어 주고 싶었다. 장유유서는 아무리 세월이 흘러도 거역할 수 없는 윤리가 아닌가.
어느 날 정성으로 깎아 만든 꽃 지팡이를 그녀에게 선물했다. 처음에는 사양을, 하기에 나의 실수인가 했는데 진심을 전해드렸더니 기꺼이 받는다. 겸양지덕(謙讓之德)을 한 수 배운다. 내겐 고명딸 같은 지팡이가 혹여 천대를 받으면 어쩌나 했는데 기우였다. 지팡이에 대한 극진한 애정과 고마움을 고매한 수필로 보답할 줄은 꿈에도 몰랐다.
그녀는 지팡이에 새겨진 꽃송이 하나, 풀포기 하나에도 기품 있는 비유를 담아 아름답고 고귀한 지팡이로 묘사했다. 무엇보다 다리도 부실한데 세 번째 발을 얻게 된 것처럼 기뻐했다. 그 발에 몸이 실리면 허리가 펴지고 다리에 힘이 올라 걸음이 편해진다고 했다. 거실에 놓아둔 지팡이가 실내장식과 어우러져 환상적인 설치작품이 되어 살아 숨 쉬는 오브제라고 칭송을 했다. 심지어 지팡이의 혼을 받아 알프스 칼새처럼 창공을 훨훨 날고 싶다고 토로하셨다.
셋째 발처럼 꽃 지팡이를 사랑하는 마음이 그녀의 수필 ‘꽃 지팡이“속에 고스란히 담겨있어 함께 수학하는 문도들의 힘찬 박수를 받았다. 존경과 사랑을 담아 드린 지팡이가 그녀에게는 셋째 발이 되고 칼새의 날개가 되어 행복한 여생을 누리시면 더없이 좋겠다는 생각을 지울 수가 없었다.
험한 산속을 신기(神氣) 내린 사람처럼 뒤적이며 세상에 하나뿐인 지팡이를 탄생시키는 마음은 산고 끝에 낳은 자식 같은 마음과 진배없다. 곱게 자란 딸자식을 시집보낸 친정엄마의 심정을 알 것 같다. 시어른을 잘 만나 듬뿍 사랑받고 있는 꽃 지팡이를 생각하면 마음이 뿌듯해진다.
그녀는 오늘도 변함없이 꽃 지팡이를 집고 한발 한 발자국마다 고마움을 꼭꼭 눌러 밟으시겠지. 칼새처럼 창공을 날고 싶은 그녀의 바람이 황혼의 노을 속으로 숨어들지언정 딱, 따가, 딱 그녀가 내딛는 칼새 소리는 벽을 넘고 강을 건너 하늘 높이 솟아오르리라.
칼새처럼 날고 싶다는 그녀의 말은 결코, 허튼소리가 아니었다. 꽃 지팡이를 칼새의 날개 삼아 한발 두발 나머지 인생길을 힘차게 걸어가시길 빌어 마지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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