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확실성의 시대에 살고 있으면서 불혹을 맞이하고 보니 온갖 회한과 상실감이 밀려오고,
더 이상 인생을 헛되이 살아서는 안되겠다는 초조함마저 들었다.
그래서 2003년 새해부터는 다시 태어난다는 각오를 하고, 나름대로 수행일과를 정하여 매일 실천하며,
수년 동안 거들떠보지도 않았던 전공서적과 세속의 잡서들도 들추어보면서
약 1개월 정도 나름대로 자신을 다잡아 갔으나,
뜻하지 않은 교통사고를 당하여 생활의 리듬은 깨어지고 또다시 나태 속으로 빠져들었다.
그런데 갓 인연을 맺은 온라인 불교모임에서 4월 19일에 통도사로 사찰순례를 간다고 하였다.
4월 19일이 어떤 날이던가!
부패와 독재의 수렁에서 벗어나 밝은 세상을 만들기 위하여 분연히 떨쳐 일어난
역사적 의미가 깃들어져 있는 날이 아니던가.
또한 통도사는 어떤 사찰이던가!
우리나라 사찰 중 으뜸이라는 불지종찰(佛之宗刹)이 아니던가.
그래서인지 이 날 떠나는 사찰순례는 내게 더욱 의미있고 기다려지는 날이었다.
아니 내 스스로 기다리고 의미를 부여했다는 것이 정확한 표현일 것이다.
나 역시 역사적 의미가 깃든 이 날에,
게으름과 혼란에서 벗어나 부처님의 참된 제자로서 분연히 떨쳐 일어나고 싶었다.
마치 지금 온 세상을 물들이고 있는 새 생명의 힘찬 싹처럼...
마침내 소풍가는 아이마냥 기다려지는 토요일이 오고, 산본 집에서 서둘러 출발하여 양재역에 도착했으나
아직도 출발시간이 많이 남아 시간도 보낼 겸 잠시 기도라도 하고싶은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순간적으로 머리에 떠오르는 사찰인 양재동 구룡사로 갔다.
구룡사는 서울 살 때에 집과 가까워 새벽기도를 다니곤 했던 사찰로서 통도사 서울 포교당이니 이 또한 인연인가 싶었다.
나뿐만 아니라 새로이 만나게 될 법우들 모두에게 이번 사찰순례가 좀 더 참된 불제자로 거듭나는 인연이 되길 발원하고,
우리들의 사찰순례가 무사히 회향될 수 있기를 부처님 전에 기원하고 나니 마음도 한결 가벼워졌다.
짧은 기도를 마친 후 다시 양재역으로 돌아오니 지난 달 봉사활동에서 미리 얼굴을 익힌 지역운영자가 혼자 나와 있었고,
곧이어 우리가 타고 갈 대형 버스가 도착했으며, 법우들도 하나씩 둘씩 모여들였고, 주문한 단체 도시락이 도착하고,
내게 잔잔한 감동을 주었던 모법우가 아동복지시설 아이들 3명을 데리고 도착하는 것을 마지막으로
우리들은 회색빛 도시와 작별을 하고, 저마다의 부푼 꿈을 간직한 채 남도로 향해 달려갔다.
잠시라도 혼잡한 세상을 떠나는 여행자의 마음이 여유로와져서인지
여행이란 늘 사람을 편안하게 해 주는 마력이 있는 것 같았다.
창 밖으로 추적추적 내리는 비 또한 정겹고 운치있게 다가오고,
버스 속 법우들 모두가 반가워 뭐라도 건네주고 싶은 마음이 들었으며,
앞자리에 앉은 모임 동호회 커플의 다정스런 모습도 흐뭇하였고,
간단한 자기 소개를 시작으로 우리들은 금새 한 가족이 되는 것 같았다.
그리운 님들이 기다리는 통도사로, 통도사로, 꿈 실은 버스는 달려가고,
예정보다 늦은 시간에 우리 서경지역 법우들은 취운암 앞에 도착하였다.
버스에서 내리자마자 맨 먼저 내 눈에 들어오는 것은
승강구 옆에 서서 우리들을 맞아주시는 따스럽고 믿음직해 보이는 회장 법우였는데,
처음 뵙지만 어디에선가 많이 보았던 사람이듯 낯익고 정겨웠다.
찰나간에 스쳐가는 눈빛 속에 무언으로 고마움을 전하며,
우리가 묵을 방으로 향하니 이미 많은 법우님들이 우리들을 기다리고 계셨다.
서먹함보다는 반가운 마음이 앞서나 그 마음을 어떻게 표할지 어리둥절하기도 하였지만,
서로 인사를 나누고 보니 한결 가까워지는 느낌이 들었고, 온라인에서 필명이 익었던 법우님들은 더욱 새롭게 다가왔다.
예정된 순서에 따라 입재를 하고, 준비된 행사 자료집 및 금강경을 받고 보니
이번 순례를 준비한 운영진들의 노고가 새삼 고맙게 다가왔다.
운영자의 사찰예절 안내에 이어 통도사의 사정에 밝은 모법우로부터 부연 설명을 들은 후 취침시간이 되었으나,
난생 처음 참가해 보는 온라인 불교모임에 대한 막연한 들뜸이 있어서인지 잠은 오지 않았다.
봄날!
고요한 산사에서 내리는 빗소리를 그대는 들어본 적이 있는가?
"저문 봄날 지는 꽃잎을 보고
귀촉도 울음소리를 들을 줄 아는 이라면
굳이 시인이 아니라도 좋다."
내가 가장 좋아하는 詩의 일부 구절이 저절로 떠오르는, 그런 감흥이 깃든 봄날 산사에서,
한 번 만나보고 싶었던 님들마저 만났는데, 어찌 잠이 오리까!
그래도 신입회원인지라 카페의 분위기에 익숙치 못해
산문 밖에 나가 함께 동동주라도 한 잔 하고 오자던 모모 법우님들의 고마운 호의도 접어둔 채,
내심 감흥을 억누르며 취운암 숙소 앞 뜰에 핀 봄꽃과 빗소리에 애꿎은 마음을 실어보내고 있자니
부처님(?)도 내 맘을 아셨는지 회포를 풀 기회를 주셨다.
반가운 님들을 만나서 기분이 좋아져서인지 평소보다 말이 많아지고,
카페에 관한 얘기들을 주제로 버스 안에서 밤을 밝히다 늦은 시간 잠자리에 들었지만 아직도 잠은 쉽사리 오지 않았다.
약 30여분이나 잤을까?
비몽사몽 같은 꿈 속에서도 모 법우님과 얘기를 나누던 중,
어떤 기운이 느껴져 눈을 떠보니 언제 일어나셨는지 회장 법우께서 머리맡에서
홀로 조용히 새벽예불에 참여할 준비를 하고 계셨다.
나도 정신이 번쩍 들어 일어나 세수를 하고,
고요한 산사의 대찰에서만 접해볼 수 있는 그 장엄한 새벽예불을 꿈꾸며,
사찰순례의 백미인 새벽예불에 동참코자 님들과 함께 통도사 본찰로 향해 내려갔다.
계속해서 내린 비로 물이 불어서인지
우리들의 기상인양 더욱 힘차게 신새벽을 깨우는 계곡물 소리와 싱그러운 솔향을 벗삼아 내려와,
사천왕문을 돌아 범종각 앞에 일렬로 서니 어느새 우리들도 이미 새벽예불에 동참해 있었다.
도량석(道場釋)을 도는 스님의 목탁이 무명을 깨우듯 조심스레 새벽을 열어 놓자,
곧이어 범종각에 불이 환화게 켜지며 새벽종성이 이어졌다.
스님의 염불과 함께 어우러지는 범종 옆에 놓인 작은 종의 맑은 소리는
오로지 뭇중생들에게 자비로운 감로법을 들려주기 위해 울리니
그 종소리는 단지 한낱 쇠소리만이 아니었다.
중생구제의 염원을 담고 평상심으로 나툰 종소리,
그 소리는 종소리이되 종소리만은 아니리라.
나 역시 종소리에 마음을 실어 소리의 높낮이를 파도 삼아 피안의 세계로 항해 노를 저어갔다.
대장부의 기운이 물씬 풍기는 스님의 염불소리 또한
때로는 힘차게, 때로는 간절함을 간직한 채 구성지게 이어지는데,
사람의 목소리가 이렇게도 장엄하고 아름다울 수 있을까 싶었다.
내림과 오름을 반복하며 숨가쁘게 빨라지는 종소리와 어우러진 장엄염불은
이름 그대로 역시 장엄하기 그지없었다.
연이어 제 각각의 염원을 품은 채 목어와 운판이 울리고, 법고가 힘차게 울렸다.
커다란 법고 앞에 선 젊은 학인 스님의 뒷모습!
조명을 받아 커다란 북에 비친 그 스님의 그림자!
뒷모습이 전해주는 묵언의 묘한 여운!
마치 잘 찍은 작품 사진마냥 나의 뇌리 속에 평생 잊혀지지 않을 그 뒷모습에서는
학인 스님 특유의 초발심의 기개가 느껴지고,
자신보다 더 큰 북을 눈 앞에 두고 두드리는 스님의 몸사위에서는
절대고독과 맞서 道를 구하는
처절하리만큼 치열한 구도자의 간절함이 느껴져
마음이 아리고 북처럼 내 마음도 파르르 떨려왔다.
목어와 법고 등의 타악기가 함께 어우러지며 연출하는 장엄한 하모니 또한
타악기 특유의 리듬감에 신명마저 느껴지고, 차마 말로는 표현할 수 없는 감동 그 자체였다.
어느 오케스트라가 이 보다 장엄하고 감동적인 소리를 전해 줄 수 있을까!
대찰의 새벽예불에 동참해 본 적은 있었지만,
이렇게 가까이서 종성을 듣고 법고와 목어 등이 어우러진 장엄함을 보기는 난생 처음이었다.
무대에 조명이 밝혀지듯 범종각이 밝아오자마자 시작되는 새벽종성의 장엄함과 사물의 어우러짐을
때로는 관객인양, 때로는 주인인양 바로 앞에서 지켜보는 그 감흥을 아마 평생토록 잊지 못할 것 같았다.
이 영광스런 자리에 함께 한다는 자체가 내게는 참으로 고맙고 크나큰 복으로 느껴졌다.
한바탕 신명나는 사물의 어우러짐이 조용히 사그러지자, 연이어 범종이 울렸다.
산사의 범종소리가 어떤 소리던가?
불교를 상징하는 소리나 마찬가지인 그 유명한 범종의 울림!
경박하거나 교묘하지 않고 장엄하며,
둔탁한 듯하나 둔하지 않고 깊은 지혜의 울림인양 오래도록 여운으로 남겨지는 그 소리!
오랜 세월 풍상에 씻기우듯 울렸을 그 장엄한 소리에 다시 한 번 마음을 고르며,
우리들은 범종각을 떠나 예불장소로 예정되어 있던 설법전으로 향했다.
아뿔싸!
그런데 현산스님의 입적으로 인해 밤사이에 갑작스럽게 통도사의 사정이 변하여
설법전을 사용할 수 없게 되었고, 이러한 사정을 미리 통보받지 못한 우리들은
비 속에 처마 밑에 서서 그 유명한 금강계단을 향한 채 예불에 동참할 수밖에 없었다.
부처님의 진신사리를 모신 곳으로 '적멸보궁'이란 이름과 '금강계단'이란 이름과
'대웅전'이란 이름의 3개의 현판을 간직한 금당에는 여유공간이 없어
부득이 밖에서 예불에 동참할 수밖에 없었지만, 그 또한 내게는 색다른 경험이었다.
추위가 몰아치는 긴 겨울밤을 바깥에서 지새우며 법의 가르침을 청하였으나,
하룻밤의 얄팍한 덕으로 큰 지혜를 얻고자 하느냐는 달마대사의 꾸짖음에,
자신의 왼쪽 팔을 잘라 바치며 구도의 결심을 보인 혜가스님도 있었는데,
그에 비한다면 아무렇지도 않은 우리들의 색다른 새벽예불은
적어도 나에게는 下心을 가르쳐주는 무언의 설법으로 다가와 작은 울림으로 남겨졌다.
오히려 '이번 행사를 준비한 운영진들이 혹여 당황하지는 않을까,
사찰순례 경험이 처음인 법우님들이 행여 실망하지는 않을까'하는 노파심으로
부처님께 이번 순례가 부디 원만하게 잘 회향할 수 있게 되기를 다시 한 번 마음 속으로 기원드리며,
숙소로 돌아와 우리들끼리 오분향례를 할 때에는 평소보다 더 크고 간절하게
"지심귀명례..."를 외쳐 보았다.
상선약수(上善若水)라고 했던가.
역시 나의 노파심일 뿐이었고, 운영진들은 물이 흐르듯 원만하게 사찰순례를 이끌어 주셨고,
동참한 법우들 역시 모두 따뜻한 마음과 끈끈한 정을 가진 하나임을 보여 주었다.
어느새 나의 입가에도 편안함이 베어나는 잔잔한 미소가 감돌았다.
후배들을 위하여 기꺼이 배운 바를 나누어주시는 모 선배 법우님의 고마우신 지도하에
우리는 참선을 하고, 아침공양을 마친 후 취운암 법당에 모여 법회를 보았으며 청운(?) 스님의 법문도 들었다.
잠을 제대로 자지 못하여 법문시간에 졸음이 쏟아질까봐 내심 걱정이 되어
고요히 앉아 단전호흡으로 미리 마음을 단속하고, 수마를 항복받아야겠다고 생각을 하니, 정신은 더욱 밝아져 오고,
"항상 본래의 청정하고 원만한 마음(주인공)을 잘 다스리라"는 취지의 스님의 법문이
비교적 오랫동안 이어졌으나 오히려 짧게 느껴질 정도였다.
스님의 법문 내용도 내용이거니와 내게는 스님의 지극히 평온해 보이시는 자비스러운 얼굴과 맑은 눈,
고요하고 잔잔하면서도 묘한 힘이 느껴지는 말투 자체도 커다란 법문으로 다가왔다.
이산 혜연선사의 발원문 중
"내 모양을 보는 이와 내 이름을 듣는 이는 보살마음 모두 내어 윤회고를 벗어나되..."라는 대목을 읽을 때마다,
언제 나도 大道를 이루어서 그런 경지에 도달할까 하고 생각하곤 하였는데,
스님의 모습을 보니 새삼 그런 생각이 또다시 떠올랐다.
스님의 법문을 들은 후, 때마침 통도사 서운암에서 들꽃 축제가 열린다기에
우리들은 산책하는 가벼운 기분으로 축제장으로 향했다.
16만 도자대장경을 완성하시고 전통문화의 보존과 보호에 남다른 열의를 지니신 성파스님께서
우리 산야에 아름답게 피어나는 야생화들이 날이 갈수록 사라져 멸종 위기에 있다는 사실을 안타깝게 여긴 나머지,
10여년 전부터 야생화 씨앗을 채집하고 가꾸어 오던 중
뜻을 같이하는 불자들과 합심하여 조성하였다는 야생화 단지는 그야말로 환상이었다.
비가 막 개인 후의 초목들은 싱그러움을 더하고,
갓 피어나는 연초록의 감나무 새순에 함초롬히 맺힌 물방울은 유난히도 영롱하였으며,
그 아래 아름답게 피어난 금낭화는 서럽도록 아름다워
마치 알프스의 어느 초원을 트래킹하는 느낌을 주기에 충분하였으며,
"초원의 빛이여, 꽃의 영광이여..." 라는 윌리엄 워즈워드의 시가 저절로 튀어나오는 목가적인 풍광이었다.
게다가 아직도 산등성이에 걸쳐 있는 물안개는 환상적인 분위기까지 연출하고,
눈 아래에 들어오는 대찰에서나 볼 수 있는 다소곳한 장독대들은 한국의 미까지 듬뿍 안겨 주어
우리들은 모두 자연인으로 돌아가 평화와 여유로움을 만끽할 수 있었다.
이렇게 아름다운 곳을 정다운 사람들과 함께 걸으니 그야말로 금상첨화가 아니고 무엇이련가.
서운암 들꽃회에서 준비한 보이차와 쑥떡을 공양받은 후,
아쉬움을 뒤로 한 채 우리들은 다시 점심공양을 하러 취운암으로 내려왔고,
점심공양을 마친 후 집안 일로 부산에 갈 일이 있어 끝까지 일정을 함께 하지 못하고
먼저 통도사를 나섰으나 발걸음이 쉽게 떨어지지 않았다.
지지부진했던 약 13년간의 조계사 청년회 활동을 접고,
2003년도에 한창 유행처럼 활성화되기 시작하던 온라인 불교모임이라는 곳을 호기심에서 가입한 지 얼마되지 않아
처음 참가한 순례가 통도사 순례였는데, 이번에 우리 정림사에서 통도사 대중공양을 다녀오셨다니 옛 생각이 나서
예전에 쓴 글을 약간 수정하여 한 번 올려 봅니다.
돌이켜 생각해 보면 무모한 열정이었고, 꿈 속에서 또 꿈을 꾸었으며,
지금까지도 더러 나를 힘들게 하는 계륵과도 같은 서글픈 인연의 시작이었네요.
첫댓글 잘 읽었습니다.. 계륵과도 같은 서글픈 인연이란 귀절이 궁금하네요..
me,too!
여자들의 감각은 뛰어나다고들 하더니만 역시 우리 보살님들께서 정곡을 찌르시네요. 계륵과도 같은 인연을 글로 풀어 쓸려면 너무 길고 순전히 개인적인 일인지라 공개적으로 밝히기도 좀 그렇고 하네요. 소위 말못할 '부적절한 관계'나 공개하지 못할 그런건 아니니까 차츰 글에서 또한 오프라인에서 조금씩 알아가게 될 겁니다. ^*^
ㅎㅎ
글 참 잘 쓰시네요... 전 글 잘 쓰는 사람 참 부럽더라구요. 제가 워낙 말주변 글주변이 없어서.... 그래도 말 잘 하는 사람은 싫고 글 잘 쓰는 사람은 부럽더라구요! 감동깊게 잘 읽었습니다! 종종 부탁합니다~~~
마음을 내비치는 글은 늘 쑥스러운데 좋게 봐 주셔서 감사할 따름입니다. 말빨은 딸리지만 글은 좀 먹혀들었는지 예전에 모 카페에서 꽤 인기있고 영향력 있는 회원이긴 하였지만, 그로 인한 역풍도 만만챦았습니다. 온라인모임에 관한한 거의 산전수전공중전을 치른 경험이 있습니다. 아무튼 글을 쓰는 목적에 따라 좋은 글의 기준이 다르겠지만, 카페에서 좋은 글은 단순 명료하면서, 소소한 일상을 진솔하게 담아내는 투박한 그런 글이라고 생각합니다. 우리 카페 분위기상 마음 속 얘기를 풀어내기가 부담스럽지만, 그래도 종종 함께 나누고픈 여행 후기나 좋은 글들을 올려 볼께요. ^*^
거사님 글을 읽으면서 신심이 절로 일어나는 것 같아요...(반성과 함께...ㅋㅋ)정말 감동적이에요..^^
예전보다는 많이 담담해졌지만 그래도 공개적인 글을 쓸때마다 항상 글을 쓰는 이유, 나도 모르게 내 글에 대한 착이 생기지 않을까 하는 우려, 부질없음 등을 생각하며 갈등을 느끼곤 하였더랬습니다. 그래도 혹여 누군가에게 불교에 대한 좋은 인상, 인연을 심어주는 작은 씨앗이라도 되고, 각박한 세상 속에서 마음 한 번 내려놓고 쉴 수 있는 계기가 되면 족하다고 스스로를 위안하며 글을 올리곤 하는데, 신심이 나신다니 정말 고마울 뿐입니다. ..()..
와우 ~~ 앞으로의 글이 기대가 됩니다. 종종 올려주시면 신행생활에 많은 도움이 될것 같습니다. 감사 ^^**....()...
넵! 좋게 봐주셔서 고맙습니다. 부끄러버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