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주 목요일 새로운 일터를 찾아서 떠나는 딸 아이를 위해 방을 구하기 위해 새벽부터 KTX를 타고 상경했다. 다음 날이 3.1절이라 내려오는 열차가 늦은 시간밖에 없어서 겨우 9시 50분 차를 잡았는데 생각보다 올라갔던 일이 신속히 끝나서 여유시간이 생기게 되었다. 무엇을 할까 고민하다가 딸아이와 함께 “건국 전쟁”이라는 다큐멘터리를 보기로 했다. 이승만이라는 한 인물에 대한 이야기를 다루는 다소 정치적인 색채가 진한 다큐멘터리 영화였다. 개인적으로 이승만이라는 한 인물에 대하여 아는 것이 별로 없다. 그를 알아보려고 책이나 자료를 읽은 기억도 없을 뿐 아니라 알아보려고도 해보지 않았다.
그도 그럴 것이 3.15 부정선거, 부정부패와 맞서서 일어난 4. 19의거와 대치점에 서 있던 바로 그 사람이 아니었던가? 방귀를 뀌자 “각하 시원하시겠습니다”라고 했다는 아첨하는 아첨꾼들에 둘러싸여 장기 집권을 획책하다가 하와이로 달아난 못난 대통령, 그러니 그에 대한 감정뿐 아니라 인식조차 별로 좋지 않았던 것이 사실이다.
1965년 5월 9일, 나는 경상남도 하동에서 태어났고 얼마 지나지 않은 두 달 후 그해 7월 19일, 그는 머나먼 타국 땅 하와이에서 잠들었다. 그러니 처음부터 나는 그를 만날 수도 없었고 제대로 알 수도 없는 운명이었는지도 모른다. 마지막 모습만이 집중 조명된 그의 삶은 오십구 년이란 세월 동안 내 기억에는 비굴하고 못난 대통령이란 덧칠된 이미지 속에 남아있었다.
그런데 이번 다큐멘터리 영화 “건국 전쟁”을 보고 드는 한 가지 생각은 그에 대한 “미안함”이었다. 누구나 그 삶에는 밝은 면과 어두운 면이 있기 마련인데 지금까지 그의 공에는 눈감은 채 과에만 매달린 평가를 해 왔구나 하는 생각이 든 것이다.
그가 타국에서 눈 감은지 내 나이만큼의 세월이 흘러서 이제야 한 인물에 대한 功과 過를 균형 있게 듣게 되었으니 이 얼마나 어처구니없는 역사란 말인가? 물론 그 다큐멘터리는 그의 과실을 다루지 않았다. 한 나라의 대통령으로서 주위에 정치 모리배들에게 둘러싸여서 바른 판단조차 하지 못한 過誤와 정치적 욕망을 절제하지 못해 나아갈 때와 물러설 때를 구분하지 못해 4. 19혁명을 불러오게 한 치명적 過誤는 두말할 나위 없이 그 누구의 허물도 아니고 그에게 돌아가야 할 몫이다. 하지만 그가 걸었던 조국의 독립을 위한 젊은 날의 피나는 노력과 필리핀을 비롯한 우리보다 수십 배 잘 살던 아시아의 여러 나라조차도 이루지 못했던 지금의 대한민국이 있도록 기반을 닦았던 농지 개혁은 '농자천하지대본(農者天下之大本)'이라는 농업의 나라요 지주의 나라였던 대한민국을 세계 속의 경제 대국으로 우뚝 서게 했다.
그의 선택과 판단은 중화학 공업 육성을 우선으로 했던 박정희, IT 산업 기반을 닦은 김대중, 수많은 반대를 무릅쓰고도 국가 경쟁력 강화라는 목표로 한미 FTA를 관철한 노무현 대통령의 판단 못지않은 국가 발전의 기초를 놓은 선택이었다.
조국의 해방 이후 모스크바 3상 회의로 3.8선을 기준으로 신탁통치가 결정되자 김일성을 필두로 하는 이북은 사회주의 공화국을 목표로 하는 소비에트 조선을 건국하려고 했고 이남은 이승만이 이끄는 자유주의를 기반으로 하는 대한민국 정부를 수립했다. 그리고 76년이 흘렀다. 서로 갈라설 때만 해도 북한은 남한보다 훨씬 부유했었다. 그러나 2020년 기준 북한의 국민총생산(GDP)은 35조 3,000억 원으로 남한(1,919조 원)의 1.8% 수준이다. 1인당 국민총소득도 북한은 141만 원으로 3,744만 원에 이르는 남한과 비교했을 때 27배나 차이를 보였다. 여전히 농림어업이 21.2%에 이르는 북한은 식량의 부족으로 국민들이 굶고 서비스, 제조업을 바탕으로 하는 남한은 양식이 넘쳐나는 해괴한 현상이 벌어지고 있다. 어디에서 그 차이가 시작된 것일까? 이승만은 대부분이 소작농이었던 국민들에게 지주들의 농지를 매입하여 나누어 주는 농지 개혁을 단행했고 지주들에게는 국채를 발행해서 사회 서비스 분야와 제조업 분야에 눈을 뜨게 했다. 반면에 김일성은 국가가 모든 지주의 농지를 빼앗아 갔다. 그리고 지금 우리는 같은 땅 한반도에서 살아가면서 극명하게 달라진 양국의 모습을 목격하고 있다.
누구나 완벽한 사람은 없다. 모든 사람에게는 공과 과가 있기 마련이다. 그렇다면 공공 공대로 과는 과대로 바르고 균형 있게 평가해야 하지만 그의 과에만 집중해서 지금까지 그의 모든 노력을 폄하하고 살지 않았을까? 그것이 이승만 그에게 미안한 마음이 들었던 가장 큰 이유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