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절과 21절을 함께 보면 이렇게 이어집니다. 이는 우리 마음이 혹 우리를 책망할 일이 있어도 하나님은 우리 마음보다 크시고 모든 것을 아시기 때문이라 사랑하는 자들아 만일 우리 마음이 우리를 책망할 것이 없으면 하나님 앞에서 담대함을 얻고 우리가 사랑하는 일에 실패를 하게 되면 양심의 가책을 받게 돼요. 반대로 사랑을 하면 우리는 담대함을 얻게 되는 거죠. 하나님이 우리에게 사랑하라고 명령하셨잖아요.
그런데 우리가 사랑을 하게 되면 담대하게 되고 반대로 사랑하지 않게 되면 사랑에 실패하면 양심의 가책을 받게 됩니다. 그래서 요한 사도는 우리에게 하나님 앞에 담대함을 얻기 위해서 사랑에 실패하지 말라고 권면해요.
우리가 사랑에 실패하지 않아야 않아야 담대함을 얻고, 이 담대함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이 하나님 앞에 담대한 사람들에게 은혜를 베푸시기 때문에 우리가 이 담대함으로 은혜를 얻고 또 하나님의 은혜로 살아갈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양심의 가책 받을 일을 하지 않는 사람 하나님은 사랑에 실패하지 않는 사람들에게 구하는 바를 주시는 주시는 분인 거죠. 그러니까 하나님 이런 사람의 기도를 듣는다는 거예요. 사랑에 실패하지 않는 사람 그래서 양심에 가책이 없는 사람 이런 사람을 이 사람은 하나님 앞에 담대한 사람들인데 이 사람들의 기도를 하나님이 들어주신다고 합니다.
또 한편으로 양심의 가책 받을 일을 했다고 할지라도 하나님은 우리를 긍휼히 여기신다는 거예요. 23절과 24절에서 서로 사랑하라고 권면합니다. 그러니까 실패하더라도 사랑하기 위해서 있어야 된다는 거예요.
우리는 사랑의 실패가 두려워서 사랑하는 일들을 게을리하거나 조심하거나 힘들어하거나 어려워해요. 근데 하나님은 우리가 사랑에 실패하더라도 그래서 하나님 앞에 담대함을 얻지 못할지라도 사랑을 노력하기를 원하시는 분이라는 거예요. 그리고 우리가 사랑에 실패하는 것에 대해서 이해 못하실 분이 아니라는 거죠.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라고 명령하셨어요. 이 명령에 순종해서 사랑을 해야 되는데 우리가 약하다 보니까 사랑하지 못해요. 사랑에 실패하게 돼요. 그렇다 할지라도 하나님은 사랑에 실패한 우리를 긍휼히 여기신 분이시라고 합니다. 반대로 사랑하기 위해 노력하지 않아서 사랑에 실패하는 것에 대해서는 하나님이 긍휼히 여기지 않으신다고 합니다.
사랑에 성공하는 것 이것은 우리를 담대하게 만들어요. 사랑할 수 없는 사람을 사랑하게 되는 것, 우리가 인간적으로 도저히 사랑할 수 없는 사람을 사랑하게 된 일이 내게 일어나요. 이 일들은 우리를 담대하게 만들어요. 하나님 앞에서 담대하게 만들고 세상 가운데서도 담대하게 만듭니다.
우리가 왜 약해지느냐 사랑에 실패해서 약해지는 겁니다. 성도는 사랑에 성공해야 담대해질 수 있습니다. 사랑에 성공해야 사람 앞에서도, 하나님 앞에서도, 문제 앞에서도 담대해질 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사랑이 부족해서 사랑하는 것에 실패해도 그렇지만 우리를 긍휼히 여기시는 분이시라는 거예요. 그래서 사랑의 시도를 멈추지 말아야 됩니다. 하나님은 사랑을 명령하셨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사랑을 시도해야 될 사람들이에요.
근데 사랑의 실패에서 우리가 담대함을 얻지 못하게 되잖아요. 그러면 사랑의 시도를 멈추게 돼요. 근데 옳은 말씀은 우리가 사랑에 실패하더라도 그래서 하나님 앞에 담대함을 얻지 못하게 될지라도 사랑의 시도를 멈추지 말라고 권면합니다.
하나님은 사랑을 시도하지 않는 사람들에게는 은혜를 베풀지 않고 사랑에 시도하지만 사랑에 실패한 사람들에게는 은혜를 베푸십니다. 우리의 사랑은 부족합니다. 그렇지만 여러분과 저의 사랑이 되게 부족하죠. 자기를 사랑하기에도 부족한 게 우리가 가진 사랑의 크기잖아요.
가족도 사랑하기가 어려워요. 여러분 가족들을 다 사랑할 수 있나요? 여러분이 낳은 여러분이 낳은 부모나 또 자녀들도 우리가 다 사랑하기 어려운 게 우리의 사랑의 크기잖아요. 그래도 하나님은 우리가 사랑을 시도하기를 원하시는 분이시라는 겁니다.
사랑이 작아서 사랑의 명령에 순종하기 어렵지만 그래도 사랑의 명령에 순종해서 사랑하는 것을 노력할 때 하나님이 우리를 기뻐하시고 그런 사람들에게 구하는 바를 얻는 축복을 주신다고 하십니다.
사랑이 하나님 나라에서 그만큼 위대하고 가치 있는 일이기 때문인 거죠. 그래서 사랑의 실패에도 긍휼히 여김을 받는 거예요. 왜냐하면 사랑하는 노력 그 자체가 하나님 나라에서는 아주 큰 것이기 때문에 하나님의 계명의 주된 메시지가 사랑입니다.
십계명의 전반부는 하나님 사랑, 후반부는 이웃 사랑, 십계명을 다 합쳐도 사랑 그러니까 십계명이 하나님의 교명에 주된 메시지가 사랑이에요. 그래서 우리 사랑이 부족할지라도 사랑하기를 애쓰고 수고하면 하나님이 우리를 긍휼히 여기시고, 설령 우리가 사랑에 실패할지라도 하나님이 우리를 기뻐하셔서 우리의 구하는 바를 얻게 하신다고 하십니다.
여러분 요즘 사랑해야 될 사람들을 사랑하는 일에 혹시 실패하고 있지는 않습니까? 그래도 사랑하는 것을 멈추지 마십시오. 우리가 교회를 사랑하는 일도 얼마든지 실패할 수 있어요.
그래도 멈추지 마셔야 돼요. 가족을 사랑하는 일도 얼마든지 실패할 수 있습니다.
그래도 멈추지 말아야 됩니다. 남편과 아내를 사랑하는 일도 실패할 수 있어요.
그래도 멈추지 말아야 돼요. 자기를 사랑하는 일도 실패할 수 있습니다.
그래도 멈추지 말아야 돼요. 왜냐하면 사랑의 가치가 너무 커서 멈추면 안 될 만큼 사랑의 가치가 크기 때문인 거죠.
사랑의 가치가 작다면 노력하다 멈춰도 아무 문제가 없어요. 사랑의 크기가 작다면 우리가 사랑의 수고를 하다가 멈춰도 문제는 일어나지 않아요.
그런데 성경은 사랑의 크기를 너무 크게 말하고 있어요. 우리에게 그래서 사랑하다가 멈추는 것은 되게 위험한 일이라는 거죠. 실패해도 괜찮으니까 사랑하라 이렇게 권면합니다.
혹시 사랑하는 일이 두려워서 실패가 두려워서 사랑하지 못하고 있지는 않습니까? 청년들의 결혼이 자꾸 이렇게 늦어져요. 여러 가지 이유가 있겠죠. 경제적인 문제도 있고 있겠죠. 그러나 그 중심에는 사랑에 대한 실패에 대한 두려움이 있는 거죠. 거절에 대한 두려움이 있는 거예요. 그런데 거절을 두려워하지 않고 실패를 두려워하지 않고 계속 사랑하기를 노력하는 사람이 결국 아내와 남편을 얻을 수 있게 되는 거죠.
하나님 나라에서도 마찬가지예요. 사랑하기가 사랑이 어려운 일이지만 사랑을 중단하지 않으면 하나님이 그를 기뻐하시고 또 그가 구하는 바를 주신다 이렇게 약속해 주셨습니다. 목장 교회가 사랑하는 일을 게을리하지 않는, 사랑의 실패에도 중단하지 않는 교회가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애써서 사랑하기를 애써 수고하고, 내 사랑이 작아도 여러분 작은 사랑도 사랑이에요. 큰 사랑만 사랑이 아니에요. 자잘한 사랑도 사랑이에요. 내 사랑의 크기가 작으면 작은 대로 내가 사랑해야 될 사람들을 사랑하는 건 우리의 본분이자, 또 하나님의 기쁨이 되는 일인 겁니다.
아무도 우리 교회가 사랑하기에 게으르지 않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 Messenger’s Note:
“In his heart, a man plans his course, but the LORD determines his steps.” (Proverbs 16:9)
“Nevertheless, not my will but yours, be done.” (Luke 22:4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