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정의
사람이 음식을 먹기 전에 조금 떼어 허공에 던지면서 “고수레”라고 외치는 민간신앙 행위.
2 유래
고수레는 그 사람의 주변에 화복을 주는 신을 존경하고 신이 안전하게 지켜 줄 것을 기원하는 행위이다. 고려시대 문헌에서 ‘고수레’로 추측할 만한 행동을 찾아볼 수 있다.
고려 말 문신이며 성리학자인 목은 이색(牧隱 李穡)은 죽계 안씨 삼형제의 등과를 축하하는 서문(‘賀竹溪安氏三子登科詩書’, 『목은문고(牧隱文藁)』 권8)에서 다음과 같은 글을 남겼다.
“음식 만드는 법을 처음으로 가르쳐 준 사람인 쌍씨(雙氏)와 왕씨(王氏)를 생각하여 음식을 들 때 반드시 제사를 한다. 아, 사람이 자기 뜻대로 되었다고 해서 그 근본을 잊는다면, 어찌 사람의 마음가짐이라고 하겠는가(雙氏王氏者 蓋 飮食必祭始爲者之法也 人苟得志 忘基本 獨何心哉).”
이것은 음식을 만들어준 조상을 잊지 않고 존경한다는 말이니, 오늘날 고수레와 다름없다. 고수레로 제사하는 것은 음식을 만들어준 쌍씨와 왕씨를 존경하는 신으로 본 것이다.
최영년(崔永年)이 지은 『해동죽지(海東竹枝)』 상(上)편 ‘고시래’를 보면 “야사에 이르기를, 단군 때 고시씨가 농사를 가르쳐준 은공을 잊지 않고, 지금까지 농부가 들에서 밥을 먹을 때 한 술 떼어 던지며 고시래라고 하고 제사를 지낸다고 한다(高矢來 野史云 檀君時 有高矢氏 闢草萊拓里 以敎稼穡 至今 田民餉于田間 先以一匙飯 先號高矢來 而祭之).”라는 내용이 나온다.
『해동가요(海東歌謠)』에 수록된 이정보(李鼎輔)의 사설시조에도 고수레가 나온다.
이 사설시조에서 “고스레 고스레 所望알게 오쇼셔”를 보면 고수레는 오래 전부터 신을 섬기면서 축원할 때 쓴 말임을 알 수 있다. 음식을 떼어 던지며 하는 고수레는 아니지만, 뱃사람의 안전을 지켜달라는 주언(呪言)으로 고스레(고수레)가 나온다. 다시 말하면 고수레는 소망을 이루게 해달라는 기도였다. 고수레를 함으로써 신의 도움을 받아 안전하게 항해를 하고, 대동 곡식을 무사히 운반하기를 바란다는 뜻이다.
고수레 유래 설화에서 고수레는 농사가 풍년이 들고 농사에 재난이 없으며 사람에게 앙화가 없기를 바라는 것으로 나타난다.
『한국구비문학대계』에는 21개 지역에 관한 36편의 고수레 설화가 실려 있다.
그 설화 내용을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① 살림이 어려운 고씨가 논두렁에서 굶어죽자, 사람들이 측은한 마음(惻隱之心)에 십시일반(十匙一飯)으로 음식을 모아 추모했다.
② 풍수대가인 도선이 어머니 고씨가 죽자 만경들에 묻었는데, “고시네, 잘 받아먹으시오.” 라고 사람들이 고수레를 하니 풍년이 들었다. 이 소문이 나서 전국적으로 고수레가 퍼졌다. 이는 발복(發福)한 곳에 고씨를 묻었다는 풍수설화에 속한다.
③ 만경들에 묻힌 도선 어머니 고씨가 제사를 원하여서 사람들이 고수레를 하였더니 가뭄이 그치고 비가 왔다. 농사가 잘 되었다는 소문이 퍼져서 전국적으로 고수레를 하게 되었다.
④ 황해도 연안에서는 얻어먹다가 죽은 고수레에게 사람들이 “이 음식을 받아먹고 탈을 내지 말고 잘 물러가라”는 의미에서 ‘퇴(退)고수레’ 라고 한다.
⑤ 고씨 성의 사공이 승객에게 “그리 가면 안 된다.” 라고 하자 천민인 사공이 무엄하다며 사람들이 고씨를 죽였다. 억울하게 죽은 고씨가 배에 화를 부를까봐 고수레를 하며 위로하고 무사하기를 빌었다.
⑥ 아주 후덕한 부자 고씨가 소작인들에게 인심을 쓰자, 소작인이 “고씨가 더욱 부자 되게 해주시오, 고수레.”라고 축원을 하였다. 이것은 경주 최부자네가 잘살도록 그 집 소작인이 “최부자 더욱 부자 되시오 고수” 한 것과 같다.
이 설화에서 주인공은 도선이 제사를 드리게 한 어머니 고씨, 가난하여 굶어죽은 고씨, 억울하게 죽은 사공 고씨 등 모두 고씨(高氏)이다. 이는 고수레와, 고씨에 대한 예의나 제사라는 고씨례와 같다고 본 민간어원설에 해당하는데 불쌍한 사람과 억울한 사람을 배려하고 동정하는 아름다운 심성을 보인다는 점에서 유래담이 됨 직하다.
3 내용
고수레는 기원하는 사람, 기원 대상자인 신격, 음식, 기원 내용이 담긴 고수레 하는 소리로 이루어져 있다.
신이 ‘고수레’이기도 하고 이전에 살던 사람이 죽어서 신이 된 고씨이기도 하다. 고수레나 고씨는 사람에게 화와 복을 주는 신일 수도 있고, 그 음식을 먹은 주변의 생물이나 무생물일 수도 있다. 신앙의 대상인 신체(神體)는 명확하지 않으나 들에서 음식을 든 사람에게 좋든 나쁘든 영향을 미치는 존재이다. 기원 대상자가 신이라면 농업을 시작하여 먹고살게 해 준 은인이 죽어 된 신이라고 본다. 한편 이 고수레는 사람에게 복도 주고 화도 주는 신비한 초자연적인 능력이 있다고 본다. 그래서 고수레신은 사람이 섬기면 복을 주고 풍년이 되게 하며 재앙을 막아준다. 이와 반대로 섬기지 않거나 경시(輕視)하고 무시(無視)하면 해를 끼칠 수 있다.
기원과 고사를 받는 신 이 밖에도 고사를 하는 사람의 마음가짐이 기원의 대상이라고 볼 수 있다. 예를 들면 고수레를 하는 사람이, “산신이 여기에 있다. 여기 있는 개미가 내가 던져 준 밥을 고맙게 알고 먹는다.”라고 믿으면, 그 믿음이 기원의 대상이 된다는 것이다. 일종의 자기 최면이나 확신(確信)같은 것이다.
고수레의 제수는 따로 크게 차린 것이 아니라 오직 그 자리에 있는 음식이다. 사람이 먹기 전에 맨 처음 든 첫 술의 음식, 곧 숫음식이다. 신을 위하는 마음이 우선한다는 의미이다. “이 첫 음식은 먼저 신의 몫이지 사람의 몫은 아니다”라고 해서 깨끗하고 성스러운 음식이라고 하여 숫음식이라고도 한다. 숫음식을 먼저 신에게 바치는 것은 손아랫사람이 손윗사람과 상을 함께 할 때 손윗사람이 먼저 수저를 들고 나서 손아랫사람은 나중에 먹는 것과 같은 공경하는 마음이다.
공경하는 고수레라고 할 때 “고수레”라고 외치며 음식을 던지는 일은 불경(不敬)한 것 같으나, 빨리 간편하게 첫 술을 주변에 있는 신에게 올리려면 멀리 던질 수밖에 없기 때문에 불경으로 볼 수 없고, 공경으로 보아야 한다.
고수레를 할 때 반드시 확신에 찬 큰 소리로 “고수레!” 라고 외친다. 혼신(渾身)의 힘을 쏟았다는 표현이다. 이 말은 존경하는 고수레 신을 부르는 호칭이며 환기(喚起)이다. 또한 신을 위하는 기원자의 간절한 의지를 담고 있다. 그런가 하면 이 제사를 받은 신이 나에게 복을 줄 것을 확신한다는 강한 소망이다. 그리고 이 기원과 제사가 확실한 믿음이라는 것을 강조한다. 고수레라는 신은 자기를 이렇게 힘차게 불러 주어야 좋아한다. 고수레를 할 때 말이 없거나 작은 목소리로 한다면 고수레 신은 달가워하지 않는다.
고수레는 음식을 드는 사람이 아니라 그 자리에 존재하는 모든 것에 바치는 의식이다. 존재하는 모든 것은 사람처럼 음식을 들 수 있는 대상, 즉 사람의 말을 알아듣고 감정상 희로애락이 있으며, 영향 면에서 길흉화복(吉凶禍福)이 있는 인격체로 본다.
경북 경주시 원대리의 이장희(35세) 씨가 고수레할 때 하는 말을 풀이하면 “여기서 지금 사람만 먹겠느냐? 귀신도 먹고 새도 먹고 풀도 먹어라. 고수레!” 이다.
4 의의
고수레에는 대자연과 함께 살자는 생명 의식이 담겨있다.
“나도 먹고 너도 먹고 우리 함께 살자”는 공동체 생명의 존중 의식〔生命意識〕이 있다. 고수레 밥은 살아있는 동물인 날짐승, 길짐승, 들짐승, 산짐승, 개미 같은 곤충 등이 다 먹는다. 그 동물은 사실 사람이 밥을 먹는 현장에서는 이웃이다. 그런가 하면 사람이 밥을 먹는 옆에 있는 초목도 말을 하지 않아서 그렇지 사람에게 영향을 미치는 살아 있는 이웃이다. 그렇게 보면 초목에게 먹을 것을 주는 것도 예의라고 할 수 있다.
요약하면 무생물, 사물도 먼저 그 자리를 차지한 주인이므로 섬겨야 하는 대상이다. 사람은 손님인데 신은 물론 주인인 동식물과 무생물에게도 함께 “먹읍시다”고 하는 것은 예의가 아닌가? 이런 의미에서 고수레는 성숙한 도리가 된다.
사실 인간도 이 세상에 존재하는 자연물, 사물의 하나이다. 대자연 가운데서 홀로 먹기만 하는 것은 사람의 도리가 아니다. 그래서 고수레는 “같은 자연으로 삽시다.”고 하는 사람의 제안이다.
고수레는 사람끼리 음식을 나누는 나눔 의식이다. 고수레는 인간이 아닌 대상에게도 음식을 나누어주는 행위이다. 당연히 동네에서 가까운 사람이나, 찾아온 손님에게도 음식을 나누어 준다. 고수레는 욕심을 더는 덞 의식이다. 사실 야외에서는 위험에 노출되기 쉬워서 집안보다 사고의 발생 가능성이 높다. 만약에 동네에서 떨어진 곳에서 나쁜 일을 당한다면 수습하기는 쉽지 않다. 산 속에서 사고가 나면 그 얼마나 어렵겠는가? 그러므로 집 밖에서는 매사 조심하고 욕심을 부리지 말고, 만용도 버리며, 사람 아닌 것들에 대해 외경심을 가져야 한다. 사람에게도 말과 행동을 조심해야 한다. 집을 나서면 “안전에는 ‘조심조심이 제일’,이요, 성공에는 ‘만사불여(萬事不如) 튼튼’”이라는 말 그대로이다. 조심과 안전과 튼튼은 “욕심을 덜어낸다, 겸손한다, 양보한다, 약간 손해 본다, 상대를 위한다”는 말로 바꿔 말할 수 있다.
고수레는 단시간에 어디서나 누구나 간편하게 할 수 있는 신앙행위이자, 대자연을 사랑하는 열린 마음이다. 모든 것에 감사하고, 하찮은 동식물이나 무생물까지도 인격체로 대하는 생명 존중의 마음이다. 더불어 조상을 추원보본(追遠報本) 하고, 남에게 베푸는 나눔 정신과 자기를 지키는 덞 정신이 깃든 인간미 있는 좋은 풍속이다. 또한 사람이 유혹에 빠지기 쉬운 유아독존(唯我獨尊)이나 독선(獨善), 이기주의와 교만이라는 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