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가 부슬부슬 내리는 아침입니다. 비가 내리면 귀찮기도 하여 갈까 말까 하다가, 비 내리는 바다도 좋을 듯하여 배낭도 없이 우산 하나 달랑 들고 남항진 해변으로 향합니다. 들머리 남항진 해변에는 비가 내림에도 많은 바우님들이 나오셨네요.
솔바람 다리 부근의 파도는 제법 거셉니다. 파도치는 바다에 투망하는 사람도 있고. 솔바람 다리와 아라나비 부근을 휘 한번 둘러보고 본대에 합류합니다.
바우님들끼리 반가운 인사를 나누고, 국장님과 구간지기님의 간단한 인사말이 있은 후 곧바로 출발합니다.
남항진 해변가를 빠져나와 남대천 줄기를 따라 걷습니다.
가는 빗줄기는 우산을 접기도 애매할 정도이고, 간밤부터 내린 비 때문인지 아니면 지난번에 내린 폭설이 녹은 것인지 남대천의 봄물도 많이 불은 듯합니다. 정몽주의 춘흥(春興)이라는 시에 딱 들어맞는 장면입니다.
春雨細不滴(춘우세부적) 봄비 가늘어 방울지지 않더니
夜中微有聲(야중미유성) 밤에는 나직한 빗소리 들리네
雪盡南溪漲(설진남계창) 눈 녹아 앞 개울에 봄물 넘치고
草芽多少生(초아다소생) 풀싹도 많이 돋아나겠지.
이 비로 봄물이 온 들판에 가득할 터이니 春水滿四澤(춘수만사택) 운운의 시구가 어울릴지도 모르겠습니다.
들판을 가로질러 바람이 불어댑니다. 길가에는 매화꽃잎이 떨어진 자취도 있습니다만, 불어대는 바람 속에 냉기는 전혀 없고, 들판 가득 파릇파릇한 새 생명이 돋아나고 있네요.
그렇게 계절의 순환은 어김없이 이루어지고 있어 봄비에 훈훈한 봄바람이 부니 대지에도 생명의 기운이 가득합니다.
들판을 가로질러 걷는 바우님들의 모습이 참 평화롭습니다.
길가 저편 무덤가에 진달래가 탐스럽게 피었기에 줌으로 당겨보았으나 초점이 맞지 않아 희미하게 찍히고 말았네요. 이럴 줄 알았으면 발걸음을 하여 앞에 가서 찍을 걸……
어느 집 철망 안에는 유채꽃도 비를 머금고 곱게 피어 있고.
학동마을 대장골에 이르러 한참을 쉬어갑니다. 바우길 새 이사장님의 사촌 동생이라는 분이 운영하고 있다는 한옥 펜션을 둘러보고 음료수 한잔씩 대접을 받기도 하고.
가는 비가 내리는 속에 자리잡더니 봄비에 파릇파릇 새싹이 돋아나는 것에 감흥을 느끼셨는지 ‘라몽’님이 할락궁이님과 실장님을 앉혀놓고 정지상의 ‘送人(송인)’이라는 한시를 읊어주시기도 하고.
雨歇長堤草色多(우헐장제초색다) 비 갠 긴 둑에 풀빛이 짙은데
送君南浦動悲歌(송군남포동비가) 님 보내는 남포에 슬픈 노래가 흐르네
大同江水何時盡(대동강수하시진) 대동강 물은 언제 다 마를꼬?
別淚年年添綠波(별루연연첨록파) 이별의 눈물 해마다 푸른 물결에 더해지네
그곳 앞 길가에 개나리도 피기 시작하고. 이 비가 그치면 활짝 피어나겠지요.
봄의 전령이라는 생강나무꽃[이곳 방언으로는 동박꽃]도 활짝 피어 있고.
흰매화, 그리고 청매화가 피어 있는 곳도 지나고. 특히 비를 잔뜩 머금은 청매화는 더욱 싱그럽습니다. 이제 곧 파란 매실이 열리겠지요.
누가 지적해주어야 겨우 발견할 만한 아주 작은 냉이도 벌써 꽃을 피우고 있고. 냉이 꽃잎이 자기보다 더 큰 빗방울을 매달고 있네요.
곱게 핀 생강나무꽃을 한 컷 더.
새로 태어난 듯한 아주 작은 생강나무꽃도 한 컷.
‘할락궁이’님과 ‘라몽’님 꽁무니를 쫓아다니면서 새로 태어나는 생명인 솜방망이, 고들빼기에 대한 강의도 듣고.
저편 산줄기[망덕봉 산줄기라던가요?]에 산안개[산람(山嵐)-산아지랭이]가 피어오릅니다. 그래서 같은 길을 몇 번을 걸어도 새로운 길이라는 느낌이 드나 봅니다.
저편 비행장이 내려다보이는, 모과나무 아래 버스정류장 부근에서 한참을 쉬어갑니다. 이곳에서 다시 걷는 도중에 비는 완전히 그치고 파란 하늘조차 모습을 드러냅니다.
길을 가면서 우연히 12간지인 자(子), 축(丑), 인(寅), 묘(卯), 진(辰), 사(巳), 오(午), 미(未), 신(申), 유(酉), 술(戌), 해(亥)에 얘기가 나오면서 ‘칭런(情人)’님으로부터 정오(正午), 자정(子正)에 대한 이야기[오시(午時)가 11시부터 13시 사이까지의 시간을 가리키는데 12시가 그 한가운데이므로 정오(正午)라고 하고, 자시(子時)가 밤 11시부터 새벽 1시까지 사이 시간을 가리키는데 그 한가운데이므로 정자(正子)라고 해야 하는데 어감이 좋지 않아 자정(子正)이라고 한다고. 그리고 중국식 만두 요리인 딤섬이 점심(點心)이라는, 간식을 뜻하는 말이라는 등의 말을 듣고 배우는 사이에 옛 철길이었다는 곳에 이릅니다.
“기차길 옆 오막살이 아기 아기 잘도 된다”는 실없는 농담도 건네면서……
철길 길가의 목련도 봉오리가 터지기 시작했습니다.
옛 철길을 따라 걷습니다. 길가에는 열매로서의 역할을 하지 못한 열매들이 겨울을 나고 아직도 매달려 있습니다.
노암터널도 지나고.
조선 선조 때 하늘이 내린 효자로 명성이 자자했던 강릉 김씨 김담의 제향을 위한 재실이라는 보진재(葆眞齋)도 휘 둘러보고.
남대천 다리를 건너 커피 마시는 여인상 앞에서 점심 식사를 위해서 일단 해산합니다. 월화거리는 코로나가 창궐해서인지 아니면 오전에 비가 내린 탓인지 다소 한산하네요.
몇몇 바우님들과 오징어볶음, 제육볶음에 막걸리와 소주를 곁들인 긴 식사를 마치고, 벽화가 그려진 골목길을 통과하여 집합 장소인 단오문화관 앞으로 향하는 바우님들.
수많은 그림 타일이 아로새겨진 지하통로를 지나 일단 단오문화회관 앞으로 갔지요.
그런데……점심 식사 시간에 핸드폰 충전을 한다는 것이 깜빡하여 핸드폰 밧데리가 거의 ‘엥꼬’ 수준. 하여 먼저 출발하여 어느 커피숍에서 커피 한잔하면서 충전을 시키느라고 한참의 시간을 지체하고 말았습니다. 대충 사진 찍을 정도의 충전을 하고, 부지런히 앞서간 바우님들을 쫓아갑니다.
바우님들이 떠난 모산봉 정상은 썰렁합니다.
혼자 걷는 능선길, 그리고 우리들이 항상 쉬어가던 벤치도 텅 빈 상태입니다. 앞서간 바우님들은 얼마쯤이나 갔을까?
결국 이곳에서 사고가 터지고 말았습니다. 앞서간 바우님들을 빨리 쫓아갈 생각에 질러가려는 잔머리를 굴려 이정표에 보이는 장현저수지 방향으로 하산을 하고 말았습니다.
그곳으로 하산하니 결국 이곳 장현저수지 정문 쪽이 나타나더군요. 기왕 이곳까지 왔으니 이곳에서 보는 장현저수지의 모습도 봐야겠다는 생각에 이곳으로 들어갑니다.
그곳 송파정을 둘러보고 다시 나왔으나(15:02), 길을 물을 만한 사람도 없던 차에 밭일을 하던 어느 분에게 “구정면 사무소 쪽으로 가려면 어떻게 해야 하느냐”고 물었더니 대충 일러주십니다. 그러나 길은 끝도 없이 이어집니다만, 이제는 장현저수지조차 보이지 않네요. 바우님들하고 똑같이 장현저수지를 바라보았을 텐데 저수지를 바라보는 방향이 다르니 앞으로의 여정도 엄청 달라지네요. 하여 이제부터 고독한 ‘고난의 행군’이 이어집니다.
어느 군부대를 빙 돌아 큰길로 나오고 길 따라 쭉 내려오니[혼자 걸으니 정말 먼 길이었습니다] 굴산사로 가는 길이라는 이정표가 나타나고 눈에 익은 길이 나타납니다. 휴~~~종착역에 이르렀으나 아직 바우님들은 도착하지 않았네요. 벤치에 앉아 담배 한 대 피우려니 저만치서 바우님들이 나타납니다.
오늘의 교훈 “함께 하면 먼 길도 힘들지 않다.” 끝.
첫댓글 백야행님의 고독한 노고?로
장현저수지 정문도 송파정도 처음 보게 되네요~ㅋ
커피숍에서의 모습을 마지막으로
굴산사 가는 길에서의 백야행님의 모습은 커피숍까지인가봐~했더랬지요~
걸음을 접으실 분이 아니셨는데,,
백야행님~
수고하셨구요~
다음 걸음은 마음의 끄네끼
꽁꽁 묶어서 꼭 함께 걸어요^^
커피숍 앞을 지나시는 걸 보긴 봤는데 시간이 걸릴 듯하여 들어오시라고 못했어요.
나중에 보면 그리 먼 길은 아니었지만, 걸을 때는 굉장히 먼 길처럼 느껴졌지요.
결론 : 잔머리 잘못 굴리면 몸이 고생한다. ㅋㅋㅋㅋ
살짝 외도를 하신 덕분(?)에 장현저수지의 다른 모습도 보고
송파정도 구경하고
저희는 좋은데요 ^^
정몽주의 '춘흥' 이라는 시도 너무좋고,,
정지상의 '송인' 도
너무 좋네요~~^^
일찍 가셨나 했다가 날머리에서 만나니 두배로 반가웠어요~~^^
고독한 걸음 하시느라
애쓰셨습니다 ^^
다음 길에서 뵈어요~백야행님 ^^
장현저수지 이쪽에서 보니 바우님들 계실 건너편이 보이더라구요. 그 간격이 마치 '송인'하는 장면같았지요~~~
참 신기하기도 하네요. 왜냐하면 어제 모산봉에서 내려가면서 몇몆 바우님들에게 이런 얘기를 했답니다.
초창기 바우길 코스는 바로 장현저수지 쪽으로 내려갔었고, 저수지 풍광이 정말 멋지다고..
그런데 최근 몇몇 분들이 무심코 장현저수지 쪽으로 잘못 내려가기도 한다고..
그런데 바로 그곳에서 백야님께서는 장현저수지로 내려가셨구만요.
아무튼 사진으로 장현저수지의 아름다운 모습을 다시 볼 수 있어서 너무 반가웠습니다.
그리고 点心(점심, 디앤신, 딤섬) 관련 이야기.. 정오(正午), 자정(子正) 외 다양한 봄맞이 한시(汉诗)를 소개해주시어 재밌게 읽고 갑니다.
고마워요, 백야행님..
길을 잘못 들어 마음의 여유가 없어서인지 장현저수지 풍경을 제대로 감상하지는 못했어요.
그날 여러가지를 배웠네요. '점'이야기 등등. 나중에 제 친구들 만나면 '딤섬'이 점심이라는 거 가르쳐줘야지 ㅎㅎㅎ
다음길에서 뵙지요~~~
@백야행(택지) 저 그 길... 잘 아는데...ㅋㅋ
혼자 좋은 시간 되신듯...^^
@푸른하늘 옥연(강릉/운영자) 모처럼 두달만에 나갔더니 옥연이 안보여서 갑자기 보고 싶었는데..
서울 다녀왔나요?
@푸른하늘 옥연(강릉/운영자) 안 보이셔서 둘레 둘레 찾았었지요~^^
노암동 4인방 오늘 안오셨네 하면서요,,, ^^
다음길에서 뵈어요~~^^
@민들레(강원/강릉) 몸 사리고 있습니다...ㅋㅋ
@허~브 (강릉) 관심가져주시니 감사하네요...^^
날도 궂은데 점심 이후에는 외로운 걸음이셨네요
모험도 하시고...
오전에 배낭도 안매고 걸으시고 오후에 안보이시길레 오후에 볼일있으시나~?
나름 생각했습니다
근데 종점에서 다시뵙고 깜짝 놀랐습니다!!
자매분이 함께 참여하신 게 오랜만이지요.
장현저수지에 이르고 보니 중도에 하차하려야 하차할 수도 없었어요. ㅎㅎㅎ
깜짝 이벤트 생각은 없었는데.....다음 길에서 뵙지요~~~
이별의 눈물이 보태져서 대동강물이 마르지 않는다는 것이지요? 참 멋있는 한시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