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마르크스주의 연구] 창간 20주년 기념 토론회에서 발표한 글입니다.
(토론현장 분위기에 부응해) 발표문에는 없지만 현대사상연구소에 대한 소개도 덧붙였습니다.
‘마르크스주의 연구 20년과 진보 학술잡지의 미래’토론문
[마르크스주의 연구] 발간 20주년을 축하합니다. 이론적 다양성 속에서도 일관되게 자본주의를 비판하고 대안을 찾아온 [마르크스주의 연구]의 문제의식에 공감과 연대감을 보태고자 합니다. 현실사회주의운동의 역사적 패배 이후 자본독재가 전지구적 차원에서 노동자민중의 삶을 압도하는 가운데 거둔 성과이기에 그 의의는 결코 가벼울 수 없습니다. 향후 노동해방과 평등사회 구현을 위한 인류사적 전쟁에서 [마르크스주의 연구]가 더욱 의미 있는 역할을 해내리라 기대합니다.
그러나 이 모임의 근본 취지가 이제까지의 성과를 뿌듯한 마음으로 반추하거나, ‘진보’라는 훈장을 나눈 동료들의 운명을 냉정한 이론가의 눈으로 예측하는 일은 아닐 것입니다. 그러기에는 노동자민중의 하루하루가 너무 괴로울 뿐 아니라, 제국주의로 인한 범인류적 문명파국의 위협이 너무 직접적입니다. ‘미래’라는 화두가 요구하는 바는, ‘학술잡지’의 범위를 넘어서 진보적 지식노동자들과 활동가들이 오늘의 위기상황에서 함께 무엇을 해야 할지 살피자는 데에 있다고 생각합니다. 자의적으로 추정한 모임의 취지에 비춰 다음과 같은 문제의식의 공유를 제안합니다.
1. 지난 30여년간 한국경제는 제국주의의 핵심요소, 즉 저개발국들의 천연자원, 노동력, 토지 등을 활용한 초과이윤 획득의 가능성을 급속히 넓혀왔습니다. 아울러 극심한 양극화와 서열구조 및 각자도생 문화의 고착화가 진행되어 왔습니다. 이 과정에 노동자민중이 효율적으로 대응하지 못한 데에는 노동자계급 상층부, 특히 지식노동자들 내지 이데올로그들에 대한 매수효과도 본질적으로 기여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이는 진보노동운동 내에도 심각한 부작용들을 초래했다고 여겨집니다. 자본독재 극복을 위해서는 이 문제에 대한 자각과 명확한 인식의 확산이 시급해 보입니다.
2. 자본독재 극복의 가능성에 대한 회의론 및 진보운동 전반에 대한 거부반응은 노동운동 및 노동자계급에 대한 불신과 유착되어 있습니다. 최근 노동운동 내부에서 뜨거운 주제로 떠오른 독자적 정치세력화역시 답보상태에 머물고 있는 것이 현실이기도 합니다. 그러나 탄생부터 종말까지 피할 수 없는 자본과 노동의 적대적 모순을 감안할 때, 자본독재 극복운동의 중심세력으로서 노동자계급의 잠재력을 고려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그 잠재력을 최대한 현실화하기 위한, 혹은 노동운동과 진보적 지식노동자들의 유기적 결합을 확대⋅강화하기 위한 효율적 방안들을 개발하고 적극 실행할 필요가 있다고 여겨집니다.
3. 자본독재 너머의 대안사회를 건설하는 과정에서 국가권력의 문제를 건너뛸 수는 없을 것입니다. 자본권력이 국가권력까지 장악한 현상태에서 국가권력의 계급적 성격을 바꾸는 것, 즉 노동자민중이 국가권력의 주인이 되는 실질적 민주국가, 노동자국가를 건설하는 것은, 비록 제국주의적 자본권력과의 지난한 전쟁을 전제하더라도, 대안사회 건설의 주요 관문으로서 충분히 전략적 의미를 지닌다고 하겠습니다. 노동자국가 건설에 필요한 세부 대안정책 및 대안사상의 생산과 대중적 공유는 대안사회 건설의 성패를 결정할 것입니다. 설득력 있는 대안정책 및 대안사상의 생산에 힘을 모으자고 제안합니다.
이상의 제안은 다양한 분야의 전문연구나 해방운동들의 고유한 생명력을 위축시키고 모든 것을 노동문제로 환원하자는 이야기가 아닙니다. 자본독재가 초래하는 환경재앙⋅빈곤양산⋅제국주의전쟁으로 인해 대안사회 건설은 절박한 당면과제로 떠올랐는데, 해결의 주체적 조건은 턱없이 미비한 현단계에서, 전략적으로 사고하는 진보적 지식노동자들 사이에서 공유하고 싶은 문제의식일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