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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스라 제 1 강
마음의 감동을 통해 일하시는 하나님
말씀 / 에스라 1,2장
요절 / 에스라 1:1 “바사 왕 고레스 원년에 여호와께서 예레미야의 입을 통하여 하신 말씀을 이루게 하시려고 바사 왕 고레스의 마음을 감동시키시매 그가 온 나라에 공포도 하고 조서도 내려 이르되”
올해 신년 말씀으로 하나님께서 이사야 43장 말씀을 주시고 새 일을 행하실 것이란 비전을 주셨습니다. 우리가 올해 표어로 잡았듯이 하나님은 황량한 광야와 같은 상황에서도 길을 내시고, 메마른 사막에서도 강을 내시는 분이십니다. 그런데 우리가 하나님께서 새 일을 행하실 것을 기대하지만 구체적으로 어떻게 이루어 가실지는 잘 알기 어렵습니다. 이런 우리를 위해 하나님께서 에스라, 느헤미야 말씀을 통해 하나님께서 구체적으로 어떻게 새 일을 행하시는가를 알려 주십니다.
당시 이스라엘 백성들은 나라가 망하고 성전이 무너진 후 이역만리 머나먼 바벨론에 포로로 잡혀 와 있습니다. 바벨론을 탈출하여 회복의 역사가 일어나기를 바랬지만 70년이 지나도록 회복될 기미는 전혀 보이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오늘 말씀을 보면 하나님께서는 바사왕 고레스의 마음을 감동시키시고, 백성들의 마음에 감동을 주심으로 회복의 역사를 시작하십니다. 그러면 하나님께서 주시는 마음의 감동을 우리가 어떻게 받을 수 있습니까? 본문 말씀을 통해 이를 배우고 저희 모두가 하나님께 귀히 쓰임 받는 일꾼들이 될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1. 고레스의 마음을 감동시킨 하나님 (1-4)
때는 바사왕 고레스 원년이었습니다. 바사왕 고레스는 바벨론 제국을 정복하고 여러 나라들을 정복하여 페르시아 제국을 건설했습니다. ‘고레스 원년’이란 말은 고레스가 페르시아 왕조를 시작한 첫해라는 말입니다. 이때 그가 한 일이 무엇입니까?
1절을 함께 읽겠습니다. “바사 왕 고레스 원년에 여호와께서 예레미야의 입을 통하여 하신 말씀을 이루게 하시려고 바사 왕 고레스의 마음을 감동시키시매 그가 온 나라에 공포도 하고 조서도 내려 이르되” 정복의 꿈을 이룬 고레스는 하고 싶은 것이 많았을 것입니다. 자신이 정복한 제국을 돌아보며 세상 권력을 마음껏 누리고 싶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는 모든 일을 제쳐 놓고 하나님께서 예레미야를 통해 약속의 말씀을 이루어야겠다는 마음을 갖게 됩니다.
그가 이방의 왕으로서 어떻게 이런 마음을 갖게 되었는지 잘 알 수는 없습니다. 그런데 이 일이 있기 200년 전에 예언된 이사야 41:25절 말씀을 보면 하나님께서는 동방에서 한 사람을 일으켜 하나님의 이름을 부르는 자를 오게 하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그리고 이사야 45:1절을 보면 하나님의 기름 부음을 받은 그의 이름이 ‘고레스’라고 분명히 밝히고 있습니다.
소크라테스의 제자인 ‘크네노폰’이 쓴 <키로파에디아>를 보면 ‘고레스’는 어려서부터 지혜롭고 총명하고 친근했다고 합니다. 성장하면서 만나는 모든 사람에게 온화함과 관대함을 보일 정도로 인간애가 있는 인물로 묘사되어 있습니다. 그는 아버지의 뒤를 이어 왕이 되었고, 세상을 하나의 국가로 통일하면 더 이상의 전쟁은 없다는 이념아래 모든 나라를 정복하고 페르시아 제국을 건설했습니다.
그가 어떻게 하나님을 믿는 신앙을 갖게 되었는지 우리는 자세히 알 수는 없습니다. 아마 그가 성장하면서 다니엘처럼 신앙심이 훌륭한 유대인을 만나 그를 통해 신앙을 갖게 되었는지 모릅니다. 아니면 바사 제국의 궁중 서재에는 세계 각국의 많은 책이 있었는데, 그곳에서 선지자들이 쓴 두루마리를 읽고 신앙을 갖게 되었는지 모르겠습니다. 1절에서 에스겔 선지자가 ‘예레미야의 입을 통하여 하신 말씀을 이루게 하시려고’라고 한 것을 볼 때, 저는 고레스가 예레미야 선지자의 글을 읽고 하나님이 하실 일이 무엇인가를 알게 되었을 것이라 생각합니다.
예레미야 25:11절과 29:10절을 보면 이스라엘이 바벨론에서 70년 동안 포로 생활을 하고 본토에 귀환하게 될 것이라고 예언되어 있습니다. 아마 고레스가 이 말씀을 읽었을 때, 그의 마음에 하나님께서 주신 감동이 임했을 것입니다. 이를 통해 지금까지 자신이 정복 전쟁에서 승리하게 하신 분이 하나님이시고, 그렇게 하신 목적이 바로 이 말씀을 이루는 것임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에 감동을 받은 고레스는 온 나라에 공포하고 조서를 내렸습니다. 그 조서의 내용이 무엇입니까? 2,3절을 함께 읽겠습니다. “바사 왕 고레스는 말하노니 하늘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세상 모든 나라를 내게 주셨고 나에게 명령하사 유다 예루살렘에 성전을 건축하라 하셨나니 이스라엘의 하나님은 참 신이시라 너희 중에 그의 백성 된 자는 다 유다 예루살렘으로 올라가서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의 성전을 건축하라 그는 예루살렘에 계신 하나님이시라”
공포한 조서의 내용을 볼 때 고레스의 마음에 어떤 감동이 일어났습니까? 첫째로, 하나님께서 승리를 주셨음을 깨닫는 감동입니다. 사람들은 절박한 기도제목이 있을 때는 하나님의 도우심을 간절히 구합니다. 그러나 막상 기도 제목이 이루어지게 되면 어떻습니까? 마치 자신이 열심히 노력해서 된 것이라고 생각하고 교만히 행합니다.
저는 하나님께서는 저희 교회에서 신앙생활을 한 모든 분이 시험이나 취업에 성공했다는 것을 자랑스럽게 생각합니다. 실제로 개척 이후 10년 넘게 이곳에서 성경공부를 하고 신앙생활을 했던 수많은 분이 임용고사나 피트시험이나 직장시험에 100% 모두 합격했습니다. 그런데 한편으로 마음이 아픈 것은 그 사람들 대부분이 이곳에 남아 있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시험공부를 할 때는 겸손히 신앙생활을 잘했습니다. 그런데 합격하고 취업이 된 후에는 얼마 가지 않아 서원이나 결단들을 잊어버리고 세상 사람들과 다를 바 없이 살아갑니다.
그 이유가 무엇이겠습니까? 하나님이 하신 것이 아니라 자신의 노력으로 된 것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화장실 갈 때 마음과 나올 때 마음이 다르다’는 말이 있습니다. 급할 때는 하나님의 도우심을 구하지만 막상 하나님의 도우심으로 기도하던 바가 이루어지만 마음이 달라집니다. 하나님이 하신 것이 아니라 자신이 잘나고 똑똑해서 이루어졌다고 생각하고 교만하게 행합니다.
그러나 고레스왕은 어땠습니까? 그는 모든 나라를 물리치고 페르시아 대제국을 건설한 왕이었습니다. 오늘날 대통령과는 비교할 수도 없는 막강한 권력을 가진 자입니다. 그런데도 그는 자신이 잘나고 똑똑해서가 아니라, 하늘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세상 모든 나라를 자신에게 주셨기 때문에 승리할 수 있었다고 고백합니다. 그리고 이 사실을 온 세상에 공포하여 알렸습니다. “이스라엘 하나님은 참 신이시라, 그는 예루살렘에 계신 하나님이시라” 그는 승리의 때에 하나님께 모든 영광을 돌리는 참 신앙인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고레스처럼 하나님께서 베푸신 은혜를 깨닫고 마음으로부터 하나님께 영광 돌리는 자를 기뻐하십니다. 그리고 그를 택하여 하나님께서 이루시는 새 일의 일꾼으로 귀히 사용하십니다. 저희 모두가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행하신 일을 깨닫고 하나님께 영광 돌리는 자들이 될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둘째로, 하나님께서 자신에게 주신 사명을 깨닫는 감동입니다. 2절을 보면 고레스는 하나님께서 자신에게 “유다 예루살렘에 성전을 건축하라”는 명령을 주셨다고 했습니다. 하나님께서 어떤 방법으로 그에게 사명을 주셨는지 잘 알 수 없습니다. 사도행전에서처럼 주께서 직접 나타나 말씀을 하셨거나, 주의 사자를 통해 말씀하셨을 수 있습니다. 저는 고레스가 선지자들이 쓴 두루마리를 읽다가 말씀에 깊은 감동을 받아 자신에게 두신 사명을 영접하게 되었을 것이라 믿습니다.
어찌 되었건 그의 마음에는 하나님께서 주시는 감동이 임했습니다. 그것은 하나님께서 자신을 통해 무너진 예루살렘 성전을 건축하는 것이었습니다. 하나님의 감동이 그에게 임했을 때 그의 마음은 뜨거워졌습니다. 그는 속히 이 일을 이루고 싶은 열망으로 가득했습니다. 그래서 온 세계에 조서를 내려 흩어져서 살고 있는 유대인들에게 알렸습니다. “너희 중에 그의 백성 된 자는 다 유다 예루살렘으로 올라가서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의 성전을 건축하라.”
우리가 하나님께서 승리를 주셨음을 깨닫고 난 뒤에 반드시 해야 할 일이 있습니다. 그것은 말씀을 통해 하나님께서 자신을 통해 이루고자 하신 뜻이 무엇인가를 깨닫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의 기도제목을 이루어주시고 승리케 하신 데는 하나님의 분명한 뜻과 계획이 있습니다. 우리는 하나님께서 주신 말씀을 깊이 묵상하는 가운데 자신에게 두신 하나님의 뜻을 깨달아야 합니다.
저는 구원의 은혜를 누리고 난 뒤 하나님께서 나를 구원하신 뜻이 무엇인가 알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시간만 나면 매일 성경 말씀을 깊이 묵상하였습니다. 그러던 중 창세기 12:1,2절 말씀을 묵상하는 가운데 마음이 뜨거워짐을 느꼈습니다. 아브라함을 부르신 하나님께서 나를 복의 근원으로 쓰시기 위해 나를 부르신다는 감동이 밀려왔습니다. 하나님이 주신 감동을 받은 저는 말씀에 기초하여 본토 친척 아비 집을 떠나 UBF에서 영적인 훈련을 받으며 신앙생활을 시작했습니다. 이때 하나님께서는 저를 캠퍼스 영혼들을 구원하는 하나님의 역사에 귀히 사용하셨습니다. 그리고 이름도 아브라함으로 바꾸어주시고 계속해서 복의 근원의 삶을 살게 하십니다.
4절을 보십시오. 고레스는 유다 백성들에게 무조건 명령만 하지 않았습니다. 그들이 하나님이 주신 명령을 감당할 수 있도록 역사 환경을 만들었습니다. 사실 유대인들이 왕의 명령에 순종한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닙니다. 현재 그들은 페르시아 제국에서 안정된 삶을 살고 있습니다. 그런 안정된 삶을 버리고 폐허가 된 예루살렘으로 간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닙니다. 또한 가진 것이 없는 그들이 많은 비용이 들어가는 성전을 건축한다는 것은 불가능해 보였습니다. 이 때문에 선뜻 조서의 명령에 순종하기가 어려웠습니다.
이것을 잘 알았던 고레스 왕은 주변에 사는 사람들에게 명령합니다. “그 곳 사람들이 마땅히 은과 금과 그 밖의 물건과 짐승으로 도와 주고 그 외에도 예루살렘에 세울 하나님의 성전을 위하여 예물을 기쁘게 드릴 지니라” ‘십시일반 (十匙一飯)’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밥 열 숟가락이 밥 한 그릇이 된다.’는 말입니다. 이처럼 유대인들 주변에 사는 사람들이 서로 도와주면 그들은 이주비용이나 성전 건축 비용에 대한 부담을 덜고 마음 편하게 떠날 수 있을 것입니다. 이처럼 고레스는 성전을 건축할 수 있는 모든 환경을 마련하여 하나님께서 주신 사명을 감당하고자 했습니다.
이상을 통해, 하나님께서는 바사 왕 고레스 한 사람의 마음을 감동시키심으로 새 일을 시작하심을 배울 수 있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새 일을 행하시기 위해서는 마음에 감동된 한 사람이 필요합니다. 특별히 하나님께서 주신 말씀에 감동된 자들이 필요합니다. 저희 모두가 하나님께서 주신 말씀을 통해 마음에 감동을 받을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이를 통해 하나님께서 이루시는 역사의 주역으로 귀히 쓰임 받을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2. 마음에 감동을 받고 일어난 사람들 (5-11)
고레스가 내린 조서는 페르시아 제국 방방곡곡에 알려졌습니다. 이 조서의 내용을 접한 유대인들의 마음이 어떠했을까요? 그들은 나라를 잃고 70년 동안 이방 땅에서 따돌림을 당하며 서럽게 생활하고 있었습니다. 처음 몇 년간은 곧 회복되어 돌아갈 것이라는 희망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아무리 기다려도 돌아갈 희망은 보이지 않았습니다. 그러기를 70년 동안 계속되었습니다. 그런데 갑자기 이런 조서가 공포되었을 때 얼마나 놀랐을까요?
5절을 보십시오. 이 조서를 본 사람들 중에 유다와 베냐민 족장들, 제사장들과 레위 사람들, 그리고 그 마음이 하나님께 감동을 받은 자들이 있었습니다. 그들은 마음에 감동을 받아 올라가서 예루살렘에서 여호와의 성전을 건축하기 위해 일어났습니다.
이들은 대부분 바벨론에서 태어나고 자란 2,3세대들이었습니다. 그들은 페르시아 제국의 문화문명을 누리며 비교적 안정된 삶을 살고 있었습니다. 반면 그들이 가게 될 예루살렘은 어떻습니까? 예루살렘의 성전과 왕궁은 70년 전 무너져 없어졌습니다. 자신들이 살던 집들도 다 불타 버렸습니다. 그곳에 가게 되면 밑바닥부터 다시 시작해야 합니다. 또한 바사에서 예루살렘까지 무려 1,500km나 떨어져 있습니다. 세간살이를 짊어지고 세 달 정도를 걸어가야 하는 거리입니다.
이처럼 힘든 일이지만 그들은 기꺼이 가기 위해 일어났습니다. 그들이 온갖 어려움에도 불구하고 일어나 가고자 한 것은 그들 마음에 하나님께서 주시는 감동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고레스의 조서를 보고 들었을 때, 그들의 마음에 감동을 주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약속의 말씀대로 회복의 역사를 이루시는 다는 것을 생각할 때 마음에 뜨거운 감동이 밀려왔습니다. 그들의 마음에는 하나님께서 이루시는 역사에 주역이 되어 섬기고 싶은 감동이 밀려 왔습니다. 이런 감동이 있었기 때문에 그들은 온갖 위험과 어려움에도 불구하고 성전을 건축할 것을 결단하고 일어날 수 있었습니다.
조서를 본 사람들은 많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2장에서 명단을 살펴보면 알겠지만 그것을 보는 모든 사람들이 감동을 받는 것은 아니었습니다. 소수만이 감동을 받고 일어섰습니다. 그렇다면 어떤 사람들에게 하나님께서 주시는 감동이 임한 것일까요? 본문에는 나와 있지 않지만, 저는 하나님이 약속하신 말씀을 믿고 간절히 기도한 자들이라고 믿습니다.
우리가 똑같은 응답을 받아도, 간절히 기도한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과는 마음에 오는 감동이 큰 차이가 있습니다. 우리가 분명한 기도제목을 가지고 그것을 위해 간절히 기도했다가 응답을 받으면 어떻습니까? 그것이 하나님의 응답임을 깨닫고 마음에 큰 감동이 임하게 됩니다. 반면에 기도하지도 않고 그저 막연히 “잘 됐으면 좋겠다”는 마음으로 기다린 사람에게, 응답이 이루어지면 어떻습니까? 좋기는 하지만 그것이 마음에 감동으로까지는 오지 않습니다. 내가 열심히 했기 때문에 된것이라고 생각하거나 재수가 좋아서 된 것으로 생각합니다. 이런 사람은 하나님이 주시는 감동을 결코 누릴 수 없습니다.
김찬미 자매님은 1년 동안 여러 번의 취업시험에 도전했다가 실패했습니다. 1, 2차 시험까지 합격했다가 면접에서 떨어진 적도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때까지 별로 간절히 기도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이번에 시험에서는 처음으로 하나님께 기도하며 “하나님께서 합격을 시켜주시면 하나님이 계신 것을 믿고, 신앙생활을 잘 하겠다”고 서원하며 기도했습니다. 그랬을 때 하나님께서는 수많은 경쟁률을 뚫고 당당하게 합격케 해 주셨습니다.
합격 통보를 받자 찬미자매님은 하나님께서 합격시켜 주셨음을 깨닫고 마음에 큰 감동을 받았습니다. 그래서 광주로 발령을 받았지만 매주 순천까지 와서 말씀공부와 주일예배를 드리겠다고 먼저 결단을 하였습니다. 이처럼 간절한 기도를 통해 기도의 응답을 받았을 때 하나님이 주시는 감동을 받게 됩니다. 또한 하나님께서 주신 감동이 임하게 될 때 우리는 고난을 기쁨으로 감당하고 하나님의 역사에 귀히 쓰임 받게 됩니다.
우리에게는 어떤 기도제목이 있습니까? 우리 교회는 12명의 제자들을 세우는 간절한 기도제목이 있습니다. 저는 개인적으로 하나님께서 믿음의 가정들을 세워주시기고 새 성전을 주시기를 간절히 기도하고 있습니다. 여러분에게는 어떤 기도 제목들이 있습니까? 저희 모두가 간절한 소원을 가지고 하나님께 기도해야 하겠습니다. 그리고 기도의 응답이 주어졌을 때, 하나님이 주시는 감동을 덧입어 어떤 고난도 기쁨으로 감당하는 자들이 될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그런데 이때 이스라엘 백성만 감동된 것이 아니었습니다. 6절을 보십시오. 그 사면의 사람들이 은 그릇과 금과 물품들과 짐승과 보물을 가지고 와서 그들을 도왔습니다. 그 외에도 여러 가지 예물을 기쁘게 드렸습니다. 사람들은 누구에게나 자기 것에 대한 애착이 있고 재물에 대한 욕심이 있습니다. 그런데 어떻게 그 귀한 은금 보물을, 떠나면 영원히 볼 수 없는 사람들에게 선뜻 내어줄 수 있단 말입니까? 하나님의 특별한 감동 없이는 할 수 없는 일이었습니다.
사면에 사는 사람들은 무엇에 감동을 받아 자신의 것을 아낌없이 드린 것일까요? 그것은 유대인들의 순수한 믿음의 결단에 깊은 감동을 받았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주변에서 도저히 감당하기 어려운 고난을 기쁨으로 감당하는 사람들을 보면 마음에 감동을 받습니다. 그리고 할수만 있다면 그들을 도와주고 싶은 마음이 생깁니다. 이런 마음 때문에 그들은 깊이 감추어 두었던 보화를 꺼낼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떠나는 그들에게 기쁨으로 줄 수 있었습니다.
이처럼 한 사람의 믿음의 결단과 헌신은 그것을 보는 사람들에게 선한 영향력을 끼치게 됩니다. 예수님께서는 신자들에게 “너희는 세상의 소금이라.”고 하셨습니다(마5:13). 자신을 희생하여 주변의 사람들에게 좋은 영향력을 끼치는 삶을 살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오늘날 신자들은 영향력을 잃어버리게 되었고, 이 세상은 자기 것만을 꾸리는 이기적인 세상이 되어 버렸습니다. 그러나 이런 시대일지라도 우리는 하나님이 주시는 감동을 받아 기쁨으로 헌신하고 희생하는 자들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7절을 보십시오. 고레스 왕은 조서만 내리고 가만히 있지 않았습니다. 70년 전 느부갓네살 왕이 예루살렘 성전에서 탈취해서 그들의 신당에 두었던 성전 그릇을 꺼내서 유다 총독 세스바살에게 넘겨 주었습니다. 그 세부적인 내용이 9-11절에 나옵니다. 금 접시가 서른 개, 은 접시가 천 개, 칼이 스물아홉 개, 금 대접이 서른 개, 은 대접이 사백열 개, 그 밖의 그릇들이었습니다. 이 모든 것을 합하면 금, 은 그릇이 오천사백 개나 되었습니다. 수천억에 달하는 보화였습니다. 고레스는 이 모든 것을 예루살렘으로 가는 사람들에게 주어 다 가지고 가게 했습니다.
이상을 통해 하나님의 성전 재건의 역사는 하나님께서 그 마음에 감동을 주신 사람들을 통해서 이루어지게 됨을 볼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 가운데도 마음에 감동을 받은 사람들을 많이 세워주시길 기도합니다. 이를 위해 우리는 간절한 기도제목을 가지고 하나님께 기도하는 자들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또한 하나님이 주시는 기도의 응답을 통해 마음에 감동을 받아 더욱 주와 복음을 위해 헌신하는 자들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3. 예루살렘으로 돌아온 사람들 (2:1-70)
2장은 예루살렘에 돌아와 성전 건축 역사에 참여한 사람들의 명단이 나옵니다. 1,2절에는 스룹바벨, 예수아 등의 지도자들의 이름이 나옵니다. 이어 자기 계보를 아는 사람들이 먼저 나옵니다(3-20). 이어 조상의 고향을 아는 사람들(21-35)이 나오고, 성전을 섬길 제사장 및 레위 사람들이 나옵니다(36-42). 그리고 느디님 사람과 솔로몬 신하의 자손들(43-58)이 나옵니다. 이들은 과거 포로를 끌려와 성전에서 막일을 하던 사람들이었습니다. 끝으로 계보가 불분명한 사람들(59-63)입니다. 이들의 총 숫자는 42,360명이었습니다.
70년 전 바벨론 포로로 잡혀 온 이스라엘 백성들의 수는 정확하지는 않지만 약 20만명으로 추정합니다. 70년 동안 번성한 후손들의 수를 계산하면 당시 약 200만 정도가 되었을 것이라고 합니다. 그런데 그중에 예루살렘 성전 건축을 위해 결단하여 온 사람은 고작 4만여 명에 불과했습니다.
또한 가장 큰 특징은 제사장들이 많고, 레위인들이 적다는 것입니다. 제사장은 네 집안의 총합계가 4,289명으로 전체 인원의 1/10에 해당 됩니다. 반면 제사장들을 섬기며 성전에서 여러 가지 일들을 섬겨야 하는 레위인의 수는 고작 341명에 불과했습니다. 이것은 무엇을 말해줍니까? 그만큼 성전을 건축하고 헌신하려는 자가 적었다는 것을 말해줍니다.
아마 대부분의 사람들은 페르시아 제국에서 안정된 생활을 하며 편안하게 살고자 그곳에 남는 것을 선택했습니다. 그러나 소수이지만 마음에 감동을 받아 헌신하고자 결단한 자들이 있었습니다. 그들을 통해 무너졌던 성전은 다시 세워질 수 있었습니다. 그러므로 성전건축을 위해 돌아온 한사람 한사람이 너무나 귀한 분들입니다. 때문에 에스라는 이들을 그들의 명단을 일일이 성경에 기록했습니다.
오늘날은 고생하는 것을 끔찍이 싫어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신앙생활을 하더라도 편하고 고생하지 않는 곳을 찾아 떠납니다. 그래서 개척역사를 섬기며 성전을 세워가야하는 우리와 같은 작은 교회는 인기가 없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비록 적은 수이지만 마음에 감동을 받고 기꺼이 고난을 감당하고자 하는 자들을 기뻐하시고 생명책에 기록해 놓으십니다. 그리고 장차 이들에게 생명의 면류관을 씌워 주실 것입니다.
맺는 말
이상을 통해 하나님께서는 약속의 말씀을 이루시기 위해 택하신 자들에게 마음의 감동을 주시는 분이심을 배울 수 있었습니다. 하나님은 바사 왕 고레스의 마음을 감동시키셨습니다. 그러자 그는 예루살렘 성전 건축을 이루기 위해 온 나라에 조서를 내렸습니다. 고레스 왕의 조서를 접한 유대인들 중에 마음의 감동을 받은 자들은 기꺼이 고난을 감당하고자 결단하고 일어났습니다. 그 모습에 감동을 받은 사면 사람들은 자신의 보물창고를 열어 기쁜 마음으로 예물을 드렸습니다. 이처럼 마음에 감동을 받은 사람들을 통해 하나님께서는 무너진 성전을 다시 회복시키는 역사를 이루어 가십니다.
오늘날도 하나님께서는 소수이지만 마음에 감동된 자들을 통해 구원의 역사를 이루어 가십니다. 하나님께서 이루시는 역사에 쓰임 받기 위해서는 마음에 감동을 받아야 합니다. 여기에 계신 시니어 학사 목자님들도 젊은 날 마음에 감동을 받아 헌신적으로 복음 역사를 섬김으로 하나님께 귀히 쓰임 받았습니다. 그런데 요즘은 과거와 같이 감동을 받는 사람을 찾아보기가 어려운 것 같습니다. 왜 그럴까요? 아마 세상에 즐길 것들이 너무 많기 때문에 감동을 받지 못하는 것 같습니다. 아니면 기독교에 대한 부정적인 분위기와 아무리 노력해도 성과를 거두기 어려운 환경 때문인 것 같습니다.
그러나 환경이 아무리 열악하고, 사람들의 마음에 감동과 열정이 식어져간다 하더라도 소수이지만 하나님이 주신 감동에 사로잡혀 주님께 쓰임 받는 자들이 있습니다. 저는 저희 교회에 소수이지만 하나님이 주신 감동에 사로잡혀 헌신하고자 하는 젊은 청년들이 있는 것을 자랑스럽게 생각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통해 무너진 성전을 재건하는 역사를 이루어 가실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께서 쓰시는 일꾼으로 쓰임 받기 위해서는 계속해서 우리의 마음이 하나님이 주시는 감동에 사로잡혀야 합니다. 이를 위해 말씀을 깊이 묵상하고 기도하고 헌신하기를 결단해야 하겠습니다. 이를 통해 하나님께서 주신 감동으로 하나님의 역사에 귀히 쓰임 받는 종들이 되시기를 간절히 기도합니다.
요절 / 에스라 1:1 “바사 왕 고레스 원년에 여호와께서 예레미야의 입을 통하여 하신 말씀을 이루게 하시려고 바사 왕 고레스의 마음을 감동시키시매 그가 온 나라에 공포도 하고 조서도 내려 이르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