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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북 군산시 강변로 449 (내흥동 285번지)
063-454-7885
이용가능시간 : 하절기(3월~10월) 09:00-18:00 / 동절기(11월~2월) 09:00-17:00
매주 월요일 휴관
건물 뒷편 무료주차
채만식 문학관은 1930연대 소설 "탁류"의 배경인 군산 금강변에 위치해 있어 전체적으로 정박한 배의 형상을 갖추고 있다.
그런데 어떻게 보면 마치 책을 펼쳐 놓은 듯한 모양으로도 보인다.
건물 뒷편으로 가서 주차를 하고 다시 앞쪽으로 걸어나왔다.
건물 앞쪽 가운데 쯤 채만식 문학관 출입구가 위치해 있다.
1층과 2층의 전시관으로 구성되어 있고...일반적인 문학관보다는 규모가 커 보였다.
독립운동가분들께 마음의 편지를 써서 보내는 "마음을 전하는 우체통"이 입구에 크게 자리하고 있다.
딱 오전9시 open시간에 맞춰서 왔기 때문에 우리가 첫 관람객이었다.
통합권으로 이용 가능한 곳이고... 우리처럼 전북투어패스를 사용할 수도 있는 곳이다.
오른편으로 전시관 입구가 있다. 근대 풍자문학의 대가 백릉 채만식(1905-1950)과의 만남이 시작되었다.
사실 책을 좋아해서 채만식의 단편 "레디메이드 인생"과 장편인 "탁류"와 "태평천하" 이렇게 세 개의 작품을 읽어본 것 같은데...
개인적으로 그리 좋아하는 글 형식의 작가는 아니다.
1908년 출생연도가 똑같아서 자주 비교가 되는 "해학적인 김유정 vs. 풍자적인 채만식"에서
나는 늘 유쾌하면서도 감각적으로 감성을 파고드는 김유정의 손을 들어준다.
풍자와 해학은 비슷해 보이지만 극명한 차이가 있다.
풍자가 상대적으로 사회적 권력을 더 가진 강자에 대한 웃음 유발이라면
해학은 상대적으로 사회적 권력을 덜 가진 약자에 대한 웃음 유발이다.
개인적으로 대화를 엿듣는 듯한 채만식의 글 보다는 친절하게 이야기를 전달해 주는 듯한 김유정의 글이 정감있고 좋다.
사실 채만식의 고향이 군산인 것도 처음 알았다.
백릉 채만식을 처음 본 모습은 삐닥하게 지팡이를 짚고 서있는 멋쟁이 신사같은 세련됨이 물씬 묻어있는 비범한 모습이다.
너무 젊은 모습이다 싶어서 슬쩍 사망연대를 봤더니... 48세에 돌아가셨다. 뭐가 그리 급하셔셔 일찍 돌아가셨는지...
김유정도 1937년 3월 29일 29세에 누나 집에서 결핵과 늑막염으로 죽었다.
1950년이면 혹이 6.25 한국전쟁에서 목숨을 잃으셨나 채만식의 모습을 처음 접하고 나니 이전 저런 궁금증이 생긴다.
지문 없이 인물들의 대화로만 이루어져 있는 "대화소설"이라는 새로운 양식을 만들어 낸 것이 채만식이었다.
"부촌"이라는 작품은 읽어보지 못했는데 채만식의 다른 작품에서도 인물들의 대화로만 채워진 부분을 적지 않게 발견할 수 있다.
독자에게 친절하지 못한 부분이라고 나름 생각하고 있었는데...
"대화소설"은 희곡과 달리 서두의 인물, 시대, 장소 제시가 없고 막과 장의 구분이나 무대 지시문도 없다.
다만 몇 개의 단락을 나누고 각 단락에 장소 표시만 해 놓았을 뿐이다.
누구의 입장이나 그때의 시대상이나 어디에 있는 지에 따라서 대화의 내용이 다르게 받아들여 질 수 있고 다르게 해석될 수 있다.
그야말로 그림을 지워버려 독자가 상상의 나래를 펼칠 수 있도록 하얀 도화지로 만들어 버린 것이다.
새로운 혁신적인 장르인 셈이다.
소설 "탁류" 인물들의 대화에서 지역 방언이라는 생각은 해 본 적이 없었다.
그냥 옛스런 서울말씨인줄 알았는데... 사실 군산 사투리였다.
탁류는 겉으로는 정초봉(정주사의 딸)이라는 한 여성의 고난을 통한 비극적인 삶을 조명하고 있지만
그 이면에는 당대 식민지 현실과 풍속, 특히 1930년대 식민지 조선의 경제 구조와 하층민의 삶을 적나라하게 드러낸다.
그런 의미에서 채만식의 소설 "탁류"는 군산의 1930년대 시간여행과 그렇게 서로 맞닿아 있다.
채만식은 "민족의 죄인(1948)"을 집필하여 친일작품을 남긴 작가 중 유일하게 자신의 과오와 반성의 마음을남긴 작품을 남겼다.
친일작품을 썼다는 것은 사실 그리 놀라운 일은 아니다.
최초의 신소설 "혈의누"의 작가 이인직(1862-1916)을 우리모두 잘 알지만 정작 교과서에서 "혈의누" 작품을 다룰 수는 없다.
조선 여자가 일본 군인의 도움으로 전쟁에서 살아남고 유학을 통해 신여성으로 거듭난다는 내용으로 친일성향이 강하다.
시인 김소월의 스승이자 최초 번역시집과 현대 창작시집을 출판한 문인인 김억(1896-?)도 1937년부터 황민화 정책을 위한
"조선문예회"에 참여하며 조선인 가미카제와 일본인 전사자들을 추모하고 종군간호부를 찬양하며 여성의 전쟁 참전을 독려했다.
최초의 신체시 "해에게서 소년에게"를 쓴 최남선(1890-1957)은 기미독립선언서 초안을 작성한 독립운동가로
2년 이상의 징역도 치렀지만 1928년 일본 어용 역사단체인 "조선사편수회"에 참여하면서 친일파로 돌아서서
이광수, 한용운, 홍명희 등에게 손절당한다. 해방 이후 참회의 뜻을 담은 "자열서"를 썻지만
반성은 안하고 민족정신과 조선역사를 지키기 위해 어쩔 수 없었다는 이상한 변명만 한다. 그래도 어떤 처벌도 받지 않았고...
역사서 집필과 관련된 활동을 하다가 병으로 사망한다.
최초의 근대 장편소설 "무정"을 집필한 작가 이광수(1892-1950)는 2.8독립선언서를 작성하고 독립신문 사장 자리도 맡았다.
변절자 최남선을 욕했지만 1937년 수양동우회 사건 이후 친일하지 않으면 반역이라고 소설 "그들의 사랑"에서 주장하기까지...
단편소설 "배따라기" "감자" "발가락이 닮았다" 등을 저술한 김동인(1900-1951)은 독립선언에 참여하는 등 민족의식이 강했지만
중일전쟁 이후 친일파로 변질하여 역사소설 "백마강"을 통해 내선일체를 선동했다.
최초의 자유시로 알고 있는 "불놀이"를 발표한 주요한(1900-1979)도 이광수처럼 수양동우회 사건 이후 친일활동을 시작한다.
"왜 사냐건 웃지요"라는 시어로 유명한 전원파 시인 김상용(1902-1951)은 이화여자전문대학교 영문과 교수이기도 했는데
1938년 친일단체 "이화애국자녀단" 간사를 맡고 이후 "조선문인협회" "조선임전보국단" 등에서 친일활동을 이어간다.
"모가지가 길어서 슬픈 짐승이여"라는 시어로 유명한 노천명(1912-1957)은 여성 독자를 대상으로 하는 친일시들을 다수 지었다.
"국화옆에서" 한국 최고의 재능이라 불리던 서정주(1915-2000)도
1942년 27살의 이른 나이에 "대동아공영권"을 찬양하며 친일로 들어선다.
그리고 바로 이들 사이에 채만식도 함께 자리하고 있다. 그나마 친일행위를 반성하는 소설로 욕을 덜 먹는다.
군산을 대표하는 문학인으로 채만식과 더불어, 이병훈과 고은이 소개되어 있다.
나는
갯벌과 갯벌에 고인 물로
태어났으므로
나의 모두는 갯벌이요 그 갯벌불이지
그래서 아무리 벗겨도 거죽에서
피가나게 껍질을 벗겨도
처음이나 다름없이 해감내가 나는게지
- 이병훈 "해감내" 전문 -
노를 젓다가
노를 놓쳐버렸다
비로소 넓은 물을 돌아다 보았다
내려갈 때 보았네
올라갈 때 못 본
그 꽃
- 고은 "순간의 꽃" 중에서 -
군산 출신으로 호남지역 판소리에 익숙하고 친밀했던 채만식은 많은 판소리 작품들을 근대소설로 옮기려는 작업을 했다.
판소리의 미학인 풍자와 해학을 자신의 소설 창작방법으로 활용하여 식민지 시대의 실상을 폭로하는 작품을 집필하였다.
1936년 심청전을 바꾼 희곡 "심봉사"를 쓰지만 발표직전 검열로 삭제되는 비운을 겪는다.
이후 1947년 해방 후 심봉사가 눈을 떴다가 다시 스스로 눈을 찔러 눈먼 자가 되는 "심봉사"를 발표한다.
아버지를 죽이고 어머니를 취했던 오이디푸스가 스스로를 단죄하여 자신의 눈을 찔러 스스로 눈먼 자가 된 것과 흡사하다.
어쩌면 심봉사는 친일행위에 대한 처절한 반성의 채만식 스스로를 투영한 인물인지도 모른다.
채만식의 "배비장"도 배비장전을 현대식으로 바꿔 지은 것으로
판소리에서 소설로 바뀌면서 장면 묘사가 늘어 350여 매가 되었다.
"많은 수효의 영리한 사람들이 저의 이익과 안전을 도모하기 위하여 진심으로 일본 사람을 따랐다.
역시 적지 아니한 수효의 사람이 핍박을 받을 용기가 없어 일본 사람에게 복종을 하였다.
복종이 싫고 용기가 있는 사람은 외국으로 달리어 민족해방의 투쟁을 하였다.
더 용맹한 사람들은 외국으로 망명도 않고 지하로 숨어 다니면서 꾸준히 투쟁을 하였다.
용맹하지도 못한 동시에 영리하지도 못한 나는 결국 본심도 아니면서 겉으로 복종이나 하는
용렬하고 나약한 지아비의 부류에 들고 만 것이었었다."
"민족의 죄인(1948)" 채만식
근대 격동기를 풍미한 지역별 문학인들이 지도에 사진이 붙어있다.
이름만 알았던 인물도 많아서 사진하고 매칭하는 재미가 있었다.
사실 채만식도 이름만 많이 들어봤지 사진으로는 처음 뵙는다.
채만식의 집필모습을 재현한 공간이 1층관람 끝에 자리하고 이다.
"인편이 허락하는 대로 원고지 20권만 보내 주소.
내가 건강이 좋아져서 글이라도 쓰려고 하는 것 같이 생각할는지 모르지만,
사실은 그렇지 않네.
나는 일평생을 두고 원고지를 풍부하게 가져본 일이 없네.
이제 임종이 가깝다는 예감을 느끼게 되는 나로서는
죽을 때나마 한 번 머리 옆에다 원고 용지를 수북히 놓아 보고 싶은 걸세."
군산시 임피면 계남리 집필가옥을 배경으로 채만식선생의 생전모습을 재현한 것이다.
왼쪽 벽에 걸린 중절모와 외투는 작가가 생전에 불란서 문학작품에 나오는 백작의 모습을 모방하며 즐겨 입었던 것으로
작가의 외동딸 채영실님이 기증한 것이다.
이제 1층의 관람을 모두 마치고 2층으로 올라간다.
계단 한 칸마다 채만식 선생의 연혁이 차례대로 새겨져 있어 2층으로 올라가는 동안 선생의 성장스토리와 함께 하는 셈이다.
2층에서 가장 인상적이었던 것은 국어 교과서에 나오는 문학작품을 소개하는 공간이다.
오랜만에 국어공부하는 듯한 느낌이 들어서 좋았다.
이육사(1904-1944) "광야"는 일제하의 절망적 현실과 고난을 극복하고 새로운 광명의 세계를 염원하는 의지와 시정신을 기조로
시적 기교의 극치를 보인 작품이다. 5연 15행의 자유시로 과거(1~3연), 현재(4연), 미래(5연) 시간의 흐름에 따라 배열되어 있다.
윤동주(1917-1945) "별 헤는 밤"은 별을 통하여 아름다운 과거에 대한 그리움과 자기 성찰의 서정시로 현재-과거-현재-미래의
시간적 흐름에 따라 시상을 전개한다. 특히 산문적 리듬을 가진 연을 삽입하여 운율의 변화를 주었따.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1948)"에 서시와 함께 담겨있는 잘 알려져 있는 작품이다.
김소월(1902-1934) "나의 집"은 그대에 대한 간절한 기다림의 서정시로 문장을 도치시켜 의미를 강조하고 음절의 수를 조절하여
리듬감을 살렸다. 동일한 시어를 반복하여 정서를 심화하고 색채어를 통해 작품의 분위기를 조성한다.
1~4행 자연에 나의 집을 짓고자 하는 소망 / 5~7행 화자가 처한 쓸쓸한 공간과 시간 / 8~13행 그대에 대한 간절한 기다림
박용래(1925-1980) "월훈(月暈)"은 향토적 서정이 짙은 작품으로 경어체의 사용과 명사 종결 어구를 삽입하여
정감의 깊이를 더해 주고 토속어의 사용으로 향토적 서정을 한층 더 높였다.
쉼표와 의태어를 적절히 사용하여 시적 효과를 상승시켰고 첩첩산중에서 방 안으로 이동하는 시상전개방식을 사용하였다.
월훈은 달무리를 의미하며 그리움의 이미지를 담고 있다.
겨울의 외딴 마을 풍경과 노인의 고독과 그리움을 애상적 어조로 노래하고 있다.
이육사(1904-1944) "교목(喬木)"은 혹독한 시대 상황에 굴복하지 않는 강한 의지를 강인하고 의지적인 남성적 어조를 사용하여
표현했다. 각 연을 부정어로 종결하여 저항 의지를 표현하고 상징성이 강한 시어와 시구를 사용했다.
1연 굽힐 수 없는 신념과 의지 / 2연 후회 없는 삶의 결의 / 3연 죽음마저 불사하는 단호한 결의
백석(1912-1996) "고향(故鄕)"은 고향과 혈육에 대한 그리움을 대화 형식의 서사적 구조를 통해 시상을 전개했다.
다정다감한 어조로 고향과 혈육에 대한 그리움을 환기한다.
북관: 함경도의 다름 이름
여래: 진리로부터 진리를 따라서 온 사람이라는 뜻으로 부처를 달리 이르는 말
관공: 중국 삼국 시대 촉한의 무장 "관우(關羽)"를 높여 부르는 말
막역지간: 허물이 없는 아주 친한 사이를 이르는 말
1~2행 북관에서 병이 들어 의원과 만남
3~7행 신선 같은 의원이 고향을 물음
8~12행 아무개 씨와 막역지간이라는 의원
13~15행 따스한 정으로 진맥하는 의원
16~17행 의원의 손길을 통해 느끼는 향수
을지문덕(고구려장수) "여수장우중문시(與隋將于仲文詩)" <삼국사기>
神策究天文(신책구천문) 그대의 신기한 책략은 하늘의 이치를 다하였고,
妙算窮地理(묘산궁지리) 오묘한 계획은 땅의 이치를 다하였도다.
戰勝功旣高(전승공기고) 전쟁에 이긴 공이 이미 높으니
知足願云止(지족원운지) 만족함을 알고 그만두기를 바라노라.
현재 전하여지는 우리나라 최고(最古)의 한시인 5언 고시로 풍자적이고 반어적이며 대구법을 사용하였다.
영양왕 23년(612)에 수나라는 30만의 군사로 고구려의 평양성을 공격하였다.
이에 을지문덕은 압록강에서 대치하고 있다가, 거짓으로 항복하여 적군의 허실을 정탐한 뒤 적진에서 탈출하였다.
적군이 추격하자, 을지문덕은 하루에 일곱 번 싸워 일곱 번 패하는 유도 작전으로,
적의 군사력을 소모시키면서 적을 평양성 30리 밖까지 유인하였다.
이때 수나라 장수 우중문에게 조롱하는 내용을 담은 5언 고시를 보내니,
우중문은 그제서야 속은 것을 깨닫고, 때마침 군사들이 피로하고 굶주려 싸울 기력을 잃었으므로 회군하였다.
을지문덕은 이를 추격하여 살수에서 대승을 거두니 이를 ‘살수 대첩’이라 한다.
김영랑(1909-1950) "모란이 피기까지는"은 모란의 개화와 낙화 과정을 통해 소망이 이루어지를 기다림과 그것이 이루어진 후
그 가치와 의미가 퇴색함으로써 생기는 비애를 형상화한 서정시 자유시다. (문학 1934)
수미 상관식 구성을 통해 주제를 강조하고 섬세하고 아름답게 다음은 시어를 사용하며 역설적 표현(모순 형용)을 사용했다.
1~2행 모란이 피기를 기다림 (현재)
3~4행 모란이 질 때의 슬픔 (미래)
5~10행 모란이 지고 난 후의 슬픔과 절망감 (과거의 체험)
11~12행 모란이 피기를 기다림 (현재)
언어적 감각과 문학의 순수성을 중요시한 1930년대 시문학파의 경향을 잘 보여 주는 시로,
시의 음악성과 시어의 세련된 표현이 두드러지게 나타나며,
‘모란’으로 상징되는 아름다움(소망)을 위해 자신의 전 생애를 바치겠다는 점에서 유미주의적 태도가 드러난다.
김춘수(1922-2004) "꽃"은 존재의 본질 구현에 대한 소망을 간절한 어조를 사용하여 드러낸 서정시 자유시다. (시와 시론 1952)
존재의 의미를 점층적으로 심화, 확대하고 사물에 대한 인식론과 존재론을 배경으로 한다.
1연 대상을 인식하기 전의 무의미한 존재
2연 대상을 인식한 후의 유의미한 존재
존재의 본질을 인식하고 이름을 부를 때, ‘꽃’이라는 의미 있는 존재로 나와 관계를 맺게 되는 것이다.
3연 의미 있는 존재가 되고 싶은 나
4연 상호 의미 있는 존재가 되고 싶은 우리
‘우리’로 합일(合一)되어 서로가 서로의 존재 근거가 되는 상호 주체적인 관계를 맺을 때
본질적인 의미를 얻을 수 있다고 인식하고 있다.
아는 만큼 보인다는 말이 있는데 아는 만큼 친숙해진다는 의미도 해당이 되는 모양이다.
생각해 보니 춘천에 있는 김유정문학촌을 방문했었던 때였다.
29세에 요절한 김유정에 대한 연민과
소낙비, 노다지, 봄봄,떡, 동백꽃, 만무방, 땡볕, 금 따는 콩밭 등 김유정 작품들에 대한 애정이 솟아난 계기가 된 것이...
채만식 문학관에서 시간을 보내다보니 어느새 백릉 채만식이 내 마음에 성큼 다가와 있다.
백릉 채만식과 함께하는 포토존이 있어서 내 인생의 역작을 함께 세워 본다.
이수복(1924-1986) "봄비"는 생동감 넘치는 봄 풍경과 자신의 처지를 대비하여 죽은 임에 대한 그리움과 슬픔을 효과적으로
드러내는 서정시 자유시다. (봄비 1969)
특이하게 "오것다" "지껄이것다" "타오르것다"의 한시의 특성인 각운을 사용하고 향토적 소재와 시각적 심상이 두드러진다.
1연 봄비 그친 뒤 서러운 풀빛이 짙어 올 강나루
2연 종달새 지껄이는 푸른 보리밭 길
3연 처녀 애들 짝하여 새로이 서는 꽃밭
4연 향연처럼 타오를 아지랑이
이 시 속에는 하강적 이미지를 보이는 '비'와 상승적 이미지를 보이는 '풀', '종달새', '꽃', '아지랑이' 등의 시어가 나타나는데,
화자는 이러한 대립적 이미지를 통하여 아름답고도 슬픈 봄의 정서를 효과적으로 드러내고 있다.
사라져간 옛추억의 펜굴리기에 관한 말들
"그집 아들말여, 책상에서 펜대굴린댜야~"
"너말여 펜대를 굴린다고 나 무시하는 거여?"
"나도 왕년에 펜대를 굴렸는디 ..."
"커서말여 펜대굴릴려면 공부열심히 허야혀!"
"우리집 아들 펜대굴리는 사주 타고났는가벼~"
고정희(1948-1991) "상한 영혼을 위하여"는 어려운 상황에도 굴하지 않고 강한 의지로 견디어 나가는 삶의 태도를
형상화한 서정시 자유시로, 고통을 수용하고 미래에 대한 낙관적 인식을 보임으로써 진정한 내면적 성숙의 길을 제시하고 있다.
(이 시대의 아벨 1983)
밑둥: 밑동. 나무줄기에서 뿌리에 가까운 부분.
부평초: 물 위에 떠 있는 풀이라는 뜻으로 정처 없이 떠돌아다니는 신세를 이르는 말.
1연 고통을 직시하고 대면하라려는 각오
2연 고통을 수용하고 포용할 것이라는 각오
3연 고통을 수용하는 성숙된 삶의 자세
내면의 고통을 겪고 있는 상처받은 영혼을 지닌 사람들에게 위로와 용기를 주고,
시련과 고통 속에서도 희망이 언제나 곁에 숨 쉬고 있음을 일깨워 준다.
신석정(1907-1974) "들길에 서서"는 푸른 산의 형상에서 얻은 깨달음을 통해 어려운 현실 속에서도 굴하지 않고 희망과 이상을
지니고 살아가려는 의지를 노래하는 서정시 자유시다. (문장 1939)
비유적이고 상징적인 시어를 사용하였지만 직서적인 어조를 통해 화자의 정서를 직접적으로 드러내고
대립적 심상의 두 세계를 대조시켜 주제를 부각시켰다.
산삼(山森): 산의 숲
부절(不絶)히:끊임없이
저문 들길과 같은 고난의 현실 속에서도 굴복하지 않으면서, 미래에 대한 강한 희망을 품고 살아가고자 하는
화자의 의지적인 삶의 노래로 요약할 수 있는 이 시는,
전원적이고 목가적(牧歌的)인 경향에서 벗어나 현실 의식을 드러낸 신석정의 또 다른 면모를 엿볼 수 있는 작품이다.
김기림(1908-미상) "바다와 나비"는 거대한 바다와 연약한 나비의 색채 대비를 통해 모더니즘 시의 회화성을 잘 드러내고 있는
낭만적 꿈의 좌절과 냉혹한 현실 인식의 서정시 자유시다. (여성 1939)
감정을 절제한 객관적 태도가 드러나고 색채 대비를 비롯한 시각적 심상이 주로 나타난다.
1연 바다의 무서움을 모르는 나비
2연 바다에 도달하지 못하고 지쳐 돌아온 나비
3연 냉혹한 현실 속에 지친 나비의 모습
각 연은 객관적이고 단호한 성격의 종결 어미 ‘-다’로 끝냄으로써 대상에 대해 객관적 거리를 유지하면서
시적 긴장을 느끼게 한다.
이런 점에서 이 시는 1930년대 모더니즘 시의 회화적 특성과 문명 비판적 성격을 잘 보여 주는 작품이라 할 수 있다.
김광균(1914-1993) "추일서정(秋日抒情)"은 황량한 가을날의 풍경을 묘사한 서정시 자유시 주지시다. (인문평론 1940)
이국적이고 도회적인 시어와 기계적, 물질적 이미지를 사용하여 도시 문명에서 느끼는 화자의 고독감을 표현하고 있다.
은유와 직유 등의 비유를 많이 사용하고 시각적 이미지가 중심을 이룬다. 선경 후정의 방식으로 시상을 전개한다.
포화(砲火): 총포를 쏠 때 일어나는 불
일광(日光): 햇빛
근골(筋骨): 근융과 뼈대
1930년대 모더니즘 시의 특성을 잘 보여 주는 작품으로, 가을날의 황량한 풍경을 독특한 비유를 사용하여 표현하고 있다.
돌을 던지는 행위는 현대 도시 문명의 황량함과 각박함으로부터 벗어나기 위한 노력으로 해석할 수도 있는데,
결국 반원을 그으며 잠겨 가는 것으로 미루어 볼 때 화자는 황량한 정서에서 벗어나지 못함을 알 수 있다.
김수영(1921-1968) "눈"은 순수를 표상하는 눈을 제재로 하여 순수하고 정의로운 삶을 살아가고자 하는 소망과 부정적 현실을
극복하려는 의지를 형상화한 서정시 자유시다. (문학 예술 1956)
눈과 가래의 상징적 의미가 대립구조를 보이고 청유형 어미를 반복하여 적극적으로 함께 행동할 것을 권유한다.
일한 문장의 반복과 변형을 통해 리듬감을 형성한다.
1연 순수한 생명력을 지닌 눈
2연 순수한 생명력 회복의 의지
3연 눈의 강인한 생명력
4연 자기 정화를 통한 순수한 삶 소망
2연에서 ‘기침을 하는 행위’는 부조리한 현실에서 살고 있는 화자의 내면 의식에 잠재해 있는 속물적 근성, 소시민성,
현실과 타협하려는 부정적이고 정의롭지 못한 것을 정화하여 순수하고 정의로운 삶을 회복하려는 행위로 볼 수 있다.
4연에서 ‘가래’는 기침을 통해 뱉어 내야 하는 불순하고 부정적인 것을 상징한다. 따라서 ‘살아 있는 눈’을 바라보며,
가래를 뱉는 행위는 현실의 더러움을 정화하고 순수한 삶에 도달하고자 하는 화자의 소망과 의지가 표출된 것으로 볼 수 있다.
박목월(1916-1978) "나그네"는 향토적 배경과 민요조 율격을 바탕으로, 나그네 행로를 형상화한 서정시 자유시다. (청록집 1946)
3음보의 전통적 율격을 사용하여 한국적 정서를 표출하고 명사로 시상을 마무리하여 여운을 남긴다.
1연 밀밭 길을 가는 나그네
2연 유유자적하는 나그네
3연 나그네의 고독한 행로
4연 술 익는 마을 지나는 나그네
5체념과 달관의 나그네
조지훈이 박목월에게 보낸 ‘완화삼’이란 시에 화답한 시이다.
이 시에서는 ‘구름에 달 가듯이’, ‘남도 길’을 외롭게 떠도는 나그네의 모습을 통해 체념과 달관의 경지를 드러내고 있는데,
이는 ‘강나루’, ‘밀밭 길’ 등과 같은 향토적인 소재와 민요적 가락인 3음보 율격과 어우러져 한국적 정서를 표출하고 있다.
한편, 이 시는 대부분의 연이 명사로 끝나고 있고, 이를 통해 간결한 느낌을 주고 시상을 집중시키는 효과를 얻고 있다.
청록파 시인: 1930년대 말에서 1940년대 초 사이에 『문장』을 통해 문단에 나온 조지훈 · 박목월 · 박두진이
그 동안의 서정 시편들을 모아 1946년 여름에 들어 공동 시집 『청록집』을 펴낸다.
‘을유문화사’에서 나온 이 공동 시집의 제명 『청록집』은 박목월의 시 「청노루」에서 따온 것이다
시집은 주로 세 사람의 『문장』 추천 작품들로 채워지는데, 박목월 편에는 「임」 · 「윤사월」 · 「청노루」 · 「나그네」 등 15편,
조지훈 편에는 「고풍 의상(古風衣裳)」 · 「승무(僧舞)」 · 「완화삼(玩花杉)」 등 12편,
박두진 편에는 「묘지송(墓地頌)」 · 「도봉(道峰)」 · 「설악부(雪岳賦)」 등 12편이 실려 모두 합쳐 39편의 시로 엮인다.
이성부(1942-2012) "벼"는 벼라는 상징적 소재를 통해 민중의 모습과 그 속성을 노래한 서정시 참여시다. (우리들의 양식 1974)
민중 공동체적 유대감과 강인한 생명력을 예찬하여 고난의 시대를 묵묵히 견뎌 온 민중에 대한 화자의 따뜻한 시선이 느껴진다.
벼를 의인화하여 표현하고 비유적 표현을 통해 주제를 형상화한다.
1연 서로 어우러져 살아가는 벼
2연 벼의 강인한 생명력
3연 내면을 다스릴 줄 아는 벼
4연 벼의 희생적 사랑
‘벼’의 희생을 거쳐 새로운 ‘벼’가 탄생되듯이, 쓰러짐이 끝이 아니라 새로운 시작임을 민중들은 알고 있다.
그러므로 그들은 서로의 처지를 이해하고, 서로의 아픔을 위로하는 삶의 동반자로서의 공동체 의식을 강화함으로써
역사의 주체로 일어설 수 있는 강한 힘을 얻게 되는 것이다.
신동엽(1930-1969) "껍데기는 가라"는 군부 독재 체제의 시대 상황 속에서 부정적인 세력이 물러가고 순수와 열정의 시대가
도래하기를 바라는 소망을 상징적인 시어를 통해 표현한 서정시 자유시며 참여시다. (52인 시집 1967)
동학년: 동학 혁명이 일어났던 1894년
곰나루: 충청남도 공주의 옛 이름. 동학 혁명 다시 우금치 전투가 있었던 곳
초례청: 전통적인 혼례를 치르는 장소
맞절: 서로 동등한 예를 갖추어 마주 하는 절로, 여기서는 신랑 신부의 절을 가리킴
1연 4.19 혁명의 순수한 정신 강조
2연 동학 혁명의 순수한 정신 강조
3연 우리 민족의 순수함 강조와 통일의 소망
4연 순수의 옹호와 부정한 권력의 거부
이데올로기의 대립이 첨예하던 냉전 시대에 그것을 초월하여 민족주의적 관점에서 우리의 나아갈 길을 밝힌
선구자적 작품이라 할 수 있다.
박재삼(1933-1997) "겨울나무를 보며"는 자연의 모습을 인간의 삶에 대응시켜 여름나무의 모습에서 젊은 시절 방황과 열정을
겨울나의 모습에서 벗을 것을 벗어 버리고 참모습을 드러내는 중년 나이의 삶을 투영시키고 있다.
시적 화자는 욕탕 안에서 벗을 것을 다 벗어 버린 겨울나무와 같이 비로소 자신의 참모습을 조금씩 확인해 나가는 데서 느끼는
기쁨을 노래한다.
1연 젊은 시절의 정신적 방황과 열정 (여름나무 2,30대)
2연 중년이 되어 허울을 벗고 참모습을 인식함 (겨울나무 40대)
3연 참모습의 인식에서 오는 홀가분한 심정과 기쁨 <주제연>
시는 작가가 누군인지 알면 달리 보이고 독자의 나이와 심경에 따라 변한다.
그래서 좋은 시는 곁에 두고 오랫동안 함께해야 온전히 이해할 수 있다.
1930년대 군산시간여행 테마와 연결되어 있어서 1930년대 배경 탁류의 군산 금강변에 있는 문학관에서 근대의상을 입고
1930년대 문학작품들을 탐닉할 수 있는 체험 학습도 가능하다.
군산에서 다양한 문학행사를 개최하는 등 지역사회에서도 중요한 역할을 하는 듯 보인다.
이제 관람을 모두 마치고 1층으로 내려가 들어왔던 문으로 나가기만 하면 된다.
망설였던 채만식 문학관 관람하기를 아주 잘 한 것 같다.
백릉 채만식 선생의 미소가 잊혀지지 않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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