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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중과 새 역사의 지평2
信天함석헌
한국은 매력 없는 나라인가?
오늘 저녁 여러분과 한 시간 공부하게 돼서 감사합니다. 요새 나는 이렇게 말을 하게 되면 신문을 읽는 일이 있어요. 다 보셨을 줄 알지만, 같이 보면 더 좋은 점도 있어요. 이건 어제 저녁 '중앙일보'인데, 제목이 「한국은 매력 없는 나라인가?」 그렇게 됐어요. 말인즉 관광 이야기예요. 지금 세계 각국이 다 관광을 그 나라의 주산업으로 생각한다고 해요. 유엔(UN) 산하에 세계관광기구(WCO)라는 게 아마 있는가 봐요. 거기 이런 말이 있대요.
“휴일 및 여가의 권리와 관광의 자유는 각국의 실정법적인 보장에 의거, 인간의 기본권과 마찬가지로 인정되어야 한다.”
세계 각국에서 지난해 관광객이 아주 많았답니다. 1981년에는 일천만 명 이상이 관광을 했다고 해요. 그 중에 돈을 제일 많이 번 나라가 미국인데, 백이십이억 달러를 벌었다는 거예요. 우리 나라에서는 수출한다고 기껏 해봐야 백이십억 달러인데, 미국은 가만 앉아서 그보다 더 많은 돈을 벌었답니다. 그런데 우리 나라는 외래 관광객이 1980년대 들어와서는 늘지를 않는다, 1978년에 백만 명을 돌파하고 한 해에 삼십 퍼센트씩 늘어가던 것이 1980년 이래 이 퍼센트 미만 숫자로 떨어졌대요. 그래서 그 기자가 개탄을 해요. “이거 우리 나라가 아주 매력이 없는 나라란 말 아니냐? 우리가 어떻게든 매력 있는 나라를 만들어야 하지 않겠느냐?” 그랬어. 이 사람은 무슨 생각을 하고 그랬는지 모르지만, 1979년까지는 몰라도 1980년 와서 주는 거야 당연하지, 사람 죽이고 그러는 데를 어느 놈이 오려고 하겠어요?(웃음) 매력이고 뭐고, 매력이 있게 됐어요?
그런데 여기다가 어떡하면 매력 있는 나라를 만드느냐 그러는데, 이 사람 생각에는 무슨 광고를 낸다든지 페인트칠을 자꾸 해야 한다는 걸까? 그러잖으면 정부의 고위 관리라는 사람이 일본 가서, 거기 기생으로 가 있는 사람들보고 “나라를 위해서 수고한다”(웃음) 했다는 ‘섹스 관광’ 생각을 아직도 하고 그러나? 다른 나라 사람들이 기본적인 생각이 있는데, 그런 정신으로만 관광을 오기야 할까? 와서 장난도 하겠지. 도박도 하고 섹스하는 놈도 있겠지만, 그래도 그 사람들 올 때는 노상 돈만 쓰고 그래요? 무슨 문화적인 면에서 뭣이 어떤 거냐, 이런 걸 보고 가려고 그러겠는데. 그렇게 소란을 해서 사람이 얼마나 죽었는지 숫자도 모르고, 계엄령이 선포됐고, 들어오는 손님 나가는 손님 조사를 심히 하는데 누가 오겠어요. 그런 거 가시기 전에는 관광객이 올 수 없지 않느냐, 나는 관광 그리 좋아 안하는 사람입니다마는.
그 다음에는 「한국 원전 결함 지적, 테러당했다」. 이건 지난번에 미국 어느 잡지를 인용해서 '조선일보'에서 보도를 했댔어요. 우리 나라에 원자로가 있기는 있는데, 그 미국 잡지에서 하는 말로는 거기 설비가 잘 안 돼 있고 안전 장치도 돼 있는 것 같지 않다, 자기네가 연구해 본 결과는 그렇다는 거예요. 더구나 원자로가 돌아가면 찌꺼기가 나는데 찌꺼기를 처리하는 설비도 안 돼 있다고 해요. 난 다른 나라에서 본 적이 있는지라 핵을 아주 크게 싫어하는 사람이에요. 나만이 아니라 살 생각이 있는 사람이라면 그걸 싫어 않을 사람이 없겠는데, 우리 나라야 얼마나 지식 수준이 높은지 그런 건 걱정도 않는단 말이에요. 그런 게 얼마나 무서운지, 사람이 사는지 죽는지, 찌꺼기가 나오면 그게 무엇이며 무엇 때문에 문제인지, 찌꺼기 처분은 어떻게 하는지도 모르고 있잖아요? 수준이 너무 높아 그러나?
그 다음에 '조선일보' 오늘 신문. 「정부 불안을 국가의 불안과 별개로 보지 말아라」. 이건 문공부 장관이 텔레비전 회견한 거예요.
“문공부 장관은 정치 안정이란 강력한 정부의 존속을 핵심으로 하고 있다고 전제, 민주 국가의 주인이 국민이라면 강한 정부도 강력한 지도자도 국민이 만들고”
그건 옳은 말이에요.
“국민들이 키운다는 생각을 실천할 수 있는 때에 정치적 안정과 민주주의의 토착화가 가능할 것이다.”
이것도 옳은 말씀이에요.
“이 장관은 그러면서 종교에 관해서 ‘기독교도 이제 더 이상 외래 종교로만 머물러서는 안 되며, 우리의 민족적 주체성과 전통 문화에 입각, 우리의 것으로 수용되고 토착화되어 민족 종교로 뿌리를 내려야 한다는 단계에 와 있다’고 말했다.”
어, 이건 잘못된 말씀이에요. 종교의 역사는 민족 종교에서 세계 종교로 올라가는 순서예요. 그걸 도리어 끄집어 내려서 민족 종교로 만든다는 것은 종교를 모르는, 믿지 않는 소리지요. 이건 좀 잘못된 말씀입니다.
“이 장관은 종교와 종교인도 국가와 민족과 더불어 진운을 같이하고 있다는 것은 두말 할 필요가 없다면서 ‘국가와 민족이 쇠진하면 종교도 그 예외일 수가 없고 국가와 민족이 번영하면 종교도 이에 따라서 발전하게 되는 만큼, 종교인 여러분들은 국가 발전과 종교 발전이 함께할 수 있도록 힘써 주길 바란다.’”
이건 참 많이 생각을 해야 돼. 여러분들 다 읽으셨으니까 알겠지만, 잘못 해석하면 안 되는 말이에요. 정부의 불안은 국가의 불안이라는 말도 옳아요. 배를 타고 가다 보면 원수끼리 만났어도 배가 무사히 가야지. 싸우다간 너도 죽고 나도 죽을 터이니까 어쨌건 가만있어야 하지만, 다만 조금 기웃하는 건 상관없단 말이에요. 한 집안의 일이라면, 가령 집안의 평안함에 관해 아버지가 아들의 마음에 일치가 되도록 해야지요. 내가 사랑으로 낳은 아들 같으면. 그렇지만 어디서 남의 자식을 맡아 왔다든지 양자를 두었다면 잘 안 맞는 경우에는 좀 안 들어맞을 거예요. 그러니까 민중이 자기 손으로 세운 정부라면 문제없어요. 허나, 우리가 세운 정부가 아니거든요. 대통령 당선될 때에도 우리가 투표해 준 적 없고, 헌법을 고친다고 할 때도 우리가 참여해 본 적 없고. 그런 점을 문공부 장관은 좀 생각을 하시고 말씀을 해주셨으면 좋겠단 말이에요.(웃음, 박수)
씨알이란 말
오늘 저녁의 제목은 ‘민중과 역사의 지평’이라 그랬어요. ‘민중’이라는 말에 대해 설명을 좀 해야겠어요. 물론 이건 지금은 나 한 사람의 의견입니다. 또 나는 내 생각을 남에게 강요하고 싶은 생각은 조금도 없어요. 정치한다는 사람들은 모르겠어요. 하지만 나는 정치하고 싶은 마음도 없는 사람이고, 또 정치가 아니더라도 사상을 남에게 강요한다는 것은 아주 질색으로 싫어하는 사람이에요. 그러니까 ‘씨알’이란 말을 꼭 써야 된다는 것은 아닙니다만, 쉽게 말해서 여러분이 ‘민중’이라 할 때 이왕이면 내가 십 년 동안 말해 온 ‘씨알’이란 명사를 써 줬으면 참 좋겠다는 겁니다. 내가 쓴 말이라서가 아니라, 우리 나라 실정이나 세계 모양을 생각한다든지, 뭐 정치 생각 안해도 사람들이 어떻게 해 갈 것이라든지, 또 사람이 자기가 뭐냐는 것을 생각한다든지 그런 데서 ‘민중’이란 말보다는 ‘씨알’이라는 말을 써 줬으면 좋겠다 그 말입니다.
본래 ‘씨알’이란 내가 만들어 낸 말은 아닙니다. 벌써 아시는 분들 많지만, 우리 선생님이 한 분 계셨고, 일 년 전 아흔 두 살에 세상을 떠났어요. 그 선생님의 특색을 말하면 생각과 사상에 그 독특성, 오리지낼리티(originality)가 굉장하신 분이에요. 책을 쓰시거나 그런 게 없어서 세상에 알려지진 않았지만─그것도 우연이 아니라 주의 주장이 그러셔서 책을 내거나 하지 않았어요─그래서 사람들이 잘 모르지만, 참 생각이 깊으신 이에요. 내가 그 유영모 선생님한테 중학교 때부터 배웠는데 배운 것 중에 이런 게 있어요. ‘민중’이라는 말, 백성 민(民) 자, ‘민’이라는 말을 ‘씨알’이라고 우리말로 썼으면 좋겠다는 것.
왜 그런 문제가 나오느냐 하면 지금 우리말에 그 ‘민’에 해당하는 말이 없단 말이에요. ‘민중’이란 건 한문자로서 중국 사람들이 쓰던 거지요. ‘백성’이란 것도 중국 사람들이 쓰던 걸 우리가 받아서 일백 ‘백’(百) 자하고, 성씨라고 ‘성’(姓), 이렇게 쓰는 겁니다. 그러니까 다 밖에서 온 말인데, 수천 년 역사를 가졌으면, ‘나라’다 ‘임금’이다 하는 말이 있었다면, 이 ‘민중’이라는 말도 우리의 명사가 없었을 리 없다 그 말이에요. 증거를 댈 수 없지만 중가운데 없어진 것만은 사실이에요. 다른 실례를 들면 오늘 내일 모레 글피 그글피, 이러잖아요? 그런데 ‘내일’만은 한문자란 말이에요. 오늘 모레 글피 그글피 어제 그제 그끄제, 그런 말은 다 있는데 ‘내일’이란 말만 없었을 리가 없잖아요? 있었는데 중국에서 한문자, 중국 문화 흘러 들어오면서 없어진 모양이에요. 소위 상층 계급, 지배 계급이 한문자를 썼는데, 훈민정음을 만들어 낸 다음에도 선비들은 한문자를 진서(眞書), 참 글자라 부르고 훈민정음은 바른 글자가 아니라 해서 언문이라 그랬어요. 여자가 쓰고 무슨 속담이나 적지, 정식으로 그 말을 쓸 가치는 없다고 여긴 사람들이니까. 이렇게 우리 중가운데 병이 들어서 그러는 동안에 필시 ‘내일’이 없어진 건가 봅니다.
그렇게 본다면 여기 이것도 ‘임금’이란 말 있지, ‘나라’, ‘다스린다’, ‘벼슬’이란 말 다 있는데, 다만 국민이라는 ‘민’ 자가 없단 말이에요. 그게 크게 손실이에요. 물론 이제 일이 그러면, 문자가 그렇게 되었으면 그거 그냥 쓰면 그만이지 그럴 거 뭐 있어요, 그럴는지 모르지만 그건 또 그렇지가 않아요.
사람이 나면서부터 가장 중요한 건 주체성이에요. 이북에서 주체성이라 한다 해서 “너 이놈 공산주의자구나”’ 그럴지 모르지만, 주체란 말이 공산주의 있기 전부터 있었으니까 걱정 없어요. 그런데 그만 겁이 나서 우리가 쓰고 싶은 말 못 쓰면 되겠어요? 김일성이가 썼거나 안 썼거나 주체면 주체지 뭐. 그런 것 관계없이 주체성이 확실히 있어야 하는데, 아주 민족이 없어졌다면 몰라요. 또 자연 과정에 의해서 사는 동안에 차차 어디 다른 데 흡수가 되어 버리면, 우리의 주체성을 잃지 않으면서도 오늘 이렇게 됐다 그럴 수는 있지요. 우리가 지금 이것이라고 하는 것도 이게 다겠어요? 그전에 있던 마한, 변한, 진한 다 없어지고 흡수가 되어서 하나의 민족으로 됐잖아요. 마한 16국, 진한 12국이라 그랬고, 고구려면 고구려도 그 안에 조그만 것들이 얼마나 많이 있었어요? 그렇게 자연히 하나로 된 것은 상관이 없어요. 그런데 외세에 의해서 그런다면 그건 물론 못쓰는 거지. 그러니까 세계가 이렇게 넓어져서 세계적으로 되려면 필요할 때 공통 말을 쓰는 것도 좋지만, 자기 근본으로 있던 걸 잃어버려 가면서까지 그럴 필요는 없어요. 이 민족이 없어졌다면, 자동적으로 아주 더 크게 됐다면, 한통속으로 들어서 없어졌다면 모르지만 우리가 눈으로 보는 것으로 있는 이상은 그럴 필요가 없다는 거예요.
그 다음에 또 우리 나라의 근본 생각을 알아야 돼. 우리가 이 나라 사람으로 살아가려면. 나는 민족보다도 세계적인 것을 강조하는 사람입니다. 민족주의 아니에요. 난 민족주의 싫어요. 물론 민족주의도 민족주의 나름으로, 그 안에 어떤 내용을 포함시키냐에 따라 다르니까 그건 봐 줄 셈 치더라도. 민족이 없다는 게 아니예요. 민족이 있어요. 어디까지 민족을 지켜 가야 돼요. 지킬 수 있는 데까지는 지키다가 자연 과정에서 저절로, 우리의 양심에 손상이 없고 우리 살아가는 운명 공동체에 손해되는 것 없이 없어졌다면 그건 상관없어요. 그렇지 않은 경우엔 지킬 수 있는 데까지는 그 민족을 지켜 가야 하는 것이에요. 민족주의는 안한다 하더라도. 민족주의자라면 민족이 도덕의 최고다, 생의 표준이 민족에 있다고 믿는 사람입니다. 민족에 이익되는 것 그건 좋은 거고, 민족에 반대되는 것이나 다른 민족은 덮어놓고 안 된다, 사람 아무리 좋고 그래도 안 된다, 이랬던 것이 19세기 오면서 한참 시세를 날렸던 민족주의예요. 그런 건 나는 싫어요. 싫어하는 사람이지만 민족적인 것은 지켜 가야 할 것이니까.
그렇다면 제 나라의 뿌리가 무엇인지 알아야 하는데, 그 나라의 뿌리가 내 뿌리예요. 그 나라의 뿌리를 알려면 나부터 알아야 돼요. 나부터, 내가 뭔지. 내가 뭐냐? 모르겠다면 생각을 해봐. 가르쳐 주지 마시오. 자기 나름대로 아는 것이 있더라도 그런 사람들에게는 가르쳐 주지 마. 그걸 가르쳐 주면 영 마지막까지 그 사람 자기가 뭔지 모르고 살아요. 내버려둬서 고난 실컷 겪어야 이제 뭔가 압니다.
우리 민족은 민족으로서 자기를 깊이 알지 못하나 봐. 이건 그야말로 욕먹을 말입니다만, 식민지 생활을 적어도 한 삼십 년 더 넘어 하고 해방이 됐더라면 차라리 좋았을 걸 그랬어. 무슨 소린지 아세요? 삼십 년이면 일대(一代)가 갈려요. 적어도 그때 난 것이 삼십 년이면 이제 죽음으로 간단 말이에요. 그러니까 한 삼십 년 지났다면 그놈의 옛날의 썩어진, 민족이고 뭐고 모르던 썩어진 양반 시대의 살림살이가, 양반 시대 의식을 가진 사람들이 대개 다 죽어 버렸을 거야. 남아 있어도 얼마 안 남았을 거야. 그렇게 하고 해방이 되었으면 좋았는데, 그것들이 어려서부터 들은 걸로 양반 가리는 일이 골수에 들어 있어. 쉽게 말해 우리 나라는 민중이 도무지 뭔지 몰라. 관존민비, 관리는 높은 사람이고 백성은 낮다는 그놈의 생각 아주 고약한 거야. 정치하는 사람들 아마 열이면 열 다 그걸 갖고 있을 겁니다. 그 생각 없이는 정치라는 델 안 들어갈 거요. 사방에서 다 싫어하는 줄 아는데도 기어이 기를 쓰고 들어가려는 건 제 좋은 데가 있기 때문이에요. 뭐 이렇게 내려다보는 재미가 있어 그렇지.(웃음)
그러기에 우리가 나라가 되려면 첫째로 관리를 보고도 무서워 말 것. 관리라면 그 사람한테 무슨 직책을 주었을 뿐이지. 관리를 보고 무서운 것처럼 생각하는 그런 사람은 아주 죽어도 좋아. 내가 안할 소릴 합니다만(폭소), 그게 어디 지금 사람이에요? 정신없는 사람이지. 그런 면에서 살림이 뒤떨어진 사람이, 기죽는 사람이 많이 있어요. 나는 그래서 텔레비전─우리 집에 텔레비전 없소. 내 방에는 적어도 없소─안 보오만, 밤낮 하는 것이 그 양반 시대의 살림이에요. 그저 취미로 본다고 그러겠지만, 사람이 그거 자꾸 보면 어떻게 되지요? 자꾸 보노라면 그것이 우리 잠재 의식 속에 들어간단 말이야. 애들 때부터 그걸 보고 나면 그놈의 양반 살림 계속해서 내려가. 학교에서 무슨 소릴 다 한다 해도 어디! 보통 의식보다 잠재 의식이 어떻게 강한 것인지 여러분은 공부했으니 알아요. 심리학 테스트 해보면 알아요.
그러기에 제 뿌리를 깊이 파야겠는데, 제 뿌리를 깊이 파려면 말을, 말의 뜻을 생각해야 돼. 오늘은 왜 오늘이라 그러지? 하늘은 어째 하늘이라 그랬나? 생각을 하면 거기 다 뜻이 있어요. 이제 모르게 된 것도 많이 있지만 말의 뜻을 생각하는 가운데 옛날 우리 조상들은 생각을 어떻게 했다는 게 알려져요. 그래, ‘민’(民) 자를 즐기지 말고, 능력이 있으면 우리 것을 찾아야겠지요.
씨알은 맨 사람
우리 선생님 원래 그런 정신이 철저한 분이셨어요. 유교에 '대학'이라는 책이 있잖아요? 선생님이 그 책을 강의하셨는데, 그 중에 “대학지도는 재명명덕하며 재친민하며 재지어지선이라.”(大學之道 在明明德 在親民 在止於至善.) 아마 모르는 사람들은 들을 적에는 좀 안 것 같지만, 모를 거예요.(웃음) 참고 들어 두시오. 거기 있는 ‘명명덕’은 ‘밝은 속알 밝히고.’ ‘명덕을 밝히고’보다 ‘밝은 속알 밝히고’로 옮기면 얼마나 좋아요. 그 다음에 ‘재친민’인데, 보통 서당의 한문 선생은 물론이고 유교 전문으로 하는 대학에서도 모르긴 하지만 아마 ‘백성과 친하며’ 그랬을 거예요. 그런데 유 선생님은 그렇지 않았어요. ‘씨알’, 거기서 ‘씨알’이란 말이 나와요.
본래 ‘민’(民) 자는 어머니라는 글자에다 한 획을 그어 놓은 거예요. 어머니는 젖을 먹이니까, 여자라는 ‘여’(女) 자에다 젖통을 두 개 붙여서 어미 ‘모’(母) 자를 만들었어요. 그런데 그 어머니 ‘모’ 자에다 한 획을 더한 것은 ‘어머니한테서 난 사람’─어느 놈은 어머니한테서 안 난 사람 있나?(폭소)─이란 뜻이지요. 그건 무슨 뜻이냐 하면, 사람이 살아가노라면 뭣이 많이 와서 붙어. 이 옷도 없던 건데 갖다 붙였지, 안경도 갖다 붙였지, 대통령이라 그런다면 그것도 와서 붙은 거지. 그 사람이 날 때부터 대통령은 아니오. 그건 일시 붙어 있는 거지. 그러니까 그런 제이차적인 것 다 떼내 제끼고 ‘어머니가 낳은 사람’, 다른 아무것도 없는 사람, 내가 그래서 번역을 할 때 ‘맨 사람’이라고 해요. 손에다 쥔 것 없으면 맨손, 신발이 없으면 맨발이라 그러잖아요.
사람은 다른 뭘 가지면 그것 때문에 본심을 그대로 유지 못해요. 더구나 칼 같은 걸 가지면 내 본성을 아주 잃어버려. “나는 가졌다” 이러면 사람 안 되는 거예요. 그러니까 사람의 본성을 잃어버리지 않는 사람이 맨 사람이라 그랬어요.
그래서 그 ‘민’ 자는 ‘무엇이 붙지 않은, 난 그대로인 사람’이라고 하겠지만, 지금 ‘민중’, 혹은 이북에서 쓰는 모양으로 ‘인민’, 또는 ‘국민’, 이랬을 때는 ‘민’이 ‘민’대로 있지 못하고 많이 변질되었어요. 영어로 ‘피플’(people)을 이북에서는 ‘인민’, 우리는 ‘민중’으로 번역하는데 실지로는 개념의 내용이 달라요. 현실에 있는 지배자들 때문에 ‘인민’과 ‘민중’이 다르단 말이에요. ‘국민’이라 그러면 또 달라지고. 그러니까 나는 글자에 죄는 없지만 그 글자가 오염되었다, 공해를 입어서 오염이 되었으니까 아예 그런 말 쓰지 말자, 다른 때나 쓰고 민주 정치나 주권, 이런 얘기 할 땐 안 썼으면 좋겠다는 거예요. 그래서 유 선생님이 '대학' 가르치면서 하신 ‘씨알’이란 말을 들었다가 그걸 이제 힘들여 써야겠구나 했어요.
본래는 그렇지 않았지만 ‘민중’, ‘인민’, ‘서민’, ‘하민’, ‘민초’, 다 사람의 인격을 깔보는 사상이야. 그래서 그놈의 ‘민’ 자 내버리고 우리말의 ‘씨알’ 쓰면 좋겠다는 생각이에요. 그거 만든 말 같지만 ‘씨’도 본래 있는 것, ‘알’도 본래 있는 것. 그래도 생각을 해보면 합당치 않아도 좋아.
지금 이날까지, 삼십대에서부터 오늘날까지 내가 해 온 것이 있다면 그저 민중이란 건 뭔가 하는 거예요. 나면서부터 임금이란 걸 모르고 났으니까 그랬고, 정치가 뭔지 모르고 정치 혜택이 오지도 않는 우리 나라 서북 끄트머리 해변에 났으니까 그렇기도 하고, 기독교 믿었으니까 더구나 그런 거고.
나이 삼십대에 어떻게 돼서 내가 중학교에서 역사를 가르쳤는데, 그때 이탈리아 역사에 나오는 마찌니(Mazzini)를 좋아했어. 영국에서 나오는 ‘에브리멘스 라이브러리’(Everymen's Library)에 좋은 책들 많이 있잖아요? 거기 마찌니의 사상에 관한 것이 하나 있는데, 참 좋아요. 마찌니야말로 참 민주주의의 선구자야. 낙후되었던 이탈리아가 통일을 해서 이제는 서양에서 그래도 열강이라는 나라 중의 하나로 꼽히게 된 토대를 놓은 사람이 마찌니란 말이에요. 무엇으로? '청년 이태리'(Young Italy)라는 잡지를 발행해서 옛날 로마 이래 이탈리아의 역사를 가르쳤어요. 우린 본래 이런 민족이다, 그것이 통일의 토대를 놓았는데 그 사람은 왕조고 뭐고 그런 것보다, 아주 민주적이야. 한 마디로 그 사람 말을 요약한 표어가 ‘하나님과 민중’(God and People)이에요. 그런 이상대로 살아가려면 민주적으로 아니 될 수 없고, 민주주의를 하려면 하나님 찾아 올라가지 않을 수 없어요. 솔직히 고백한다면 내가 마찌니를 젊어서 읽었기 때문에 아마 그 영향이 컸다고 할 수 있을 거예요.
이날까지 나는 해본 일이 없어. 했다면 생각이나 조금 하는 사람이지. 그리 깊거나 철저히는 못했어도 어느 정도 생각했다면 했지만, 있는 것이라고는 아무것도 없어. 그러니까 직업이 없잖아요. 중학교 선생 노릇 한 십 년간 해본 것뿐. 그것을 서른 여덟 살에 그만뒀는데, 그 후로는 무직업자요. 무직이란 건 뭐 그리 명예로운 게 아니에요. 이 다음에 어떻게 돼서 데모를 하고 붙들려 들어가거든 직업이 뭐냐 그러면 직업을 써요. 친구도 많이 있다면 있다고 그래. “네 재산이 얼마냐?” 그러면 재산 있는 대로 다 불러 줘요. 재산도 없지, 친척도 없지, 친구도 없지, “허허, 이놈 떠돌이구나!”(폭소) 해서 아주 손해 보는 거야. 이다음에 혹시나 가게 되면 감안을 해요. 혹시가 아니라 십분 가기가 쉽지. 그런 거니까.
나는 아무리 한 일이 없다 그럽니다만, 적어도 사상으로는 혁명을 하자는 사람이지요. 혁명 없이 살 수가 있어요? 혁명은 무슨 혁명? 이 세계가 혁명을 해야 돼요. 한 번만이 아니고 자꾸자꾸 혁명해야 한다 그 말이에요. “세상 이거 이대로 좋잖아요?” 그러는 사람은 상대도 하지 말아요. 역사란 자꾸 나가는 건데, 그건 다른 데서는 가르침을 받을 수가 없어. 기독교에서만이지. 기독교만이라고 하는 것은 조금 지나친 말이지요. 내가 한 말이 아니고 다른 사람 말이지만 “참 의미의 역사 철학은 기독교, 바이블에만 있다.” 어쨌거나 깊이 있는 우주관, 인생관, 역사관은 기독교 성경에서 나오게 마련이지. 이러니저러니 해도 서양 문명은 여기 기독교를 바탕으로 나왔어요. 만약 기독교가 없었다고 해보시오. 한 천 년 동안 유럽에서 유랑 민족으로 내려오면서 짐승 잡아먹고 그러던 사람들인데 거기 뭐가 있어요? 기독교가 들어간 이후에 달라지기 시작을 했지. 그러니 이제 세상 살림이 달라져야 하는데, 그러려면 우리 쓰는 말이 달라져야 해요.
혁명 없이 살 수 없다
이건 다른 얘기오만, 그전부터 팔리던 책이 있어요. 이 책 저 책 있소만 그 중 하나가 '생각하는 백성이라야 산다'인데, 요새 판을 다시 찍으려 하니까 문공부에서 한 달 넘도록 납본 필증을 내주질 않아요. 일하던 사람이 와서 뭐라는고 하니 “거기 ‘혁명’, ‘혁명’ 하는 문구가 있는데, 그걸 다 지워 버리고 다른 글자를 쓰라고 그럽니다” 그래요. 내가 화를 참을 수가 없어서, 그렇다면 과장인지 계장인지 부장인지 장관인지 모르지만 최고 책임자를 만나서 내 말을 있는 대로 설명하고, 그래도 그렇다면 나도 나 할 것은 할 거라는 말을 하라 했어요. 다음에 가서 담당자한테 그 말을 하니까 “아, 그럼 그대로 내십시오” 하더라는 거야.(폭소)
그렇게 옳은 걸 가지고 옳게, 이치에 합당하게 해보면 되는 수가 있어요. 덮어놓고 겁을 집어먹고 “어이쿠, 그런 말 했다가 큰일 나려고!” 그렇게 비겁해서 어디 역사 혁명하겠어요? 우리 나라 사람 겁이 많아서 못써.
하여간 혁명은 사람을 죽이고 하는 그런 것이 아니에요. 자기네나 ‘혁명’할 때 그렇게 하지, 본래 혁명은 안 그랬단 말이야.(웃음, 박수) 인류 역사상 제일 큰 혁명을 한 사람이 있었다면 누구야? 예수 같은 사람이지. 팔레스타인 저 조그만 나라에서 나긴 났지만, 로마를 무너뜨리긴 누가 무너뜨렸어? 기독교가 무너뜨렸지. 유럽을 다니면서 짐승이나 잡아먹고, 아직도 그 버릇이 있어서 삼지창하고 칼을 가지고 먹고(폭소), 그러던 것들을 문명한 사람으로 만든 것이 누군데? 기독교가 들어가서 그랬지. 기독교 이외에 그런 사상이 어디 있어요? 그러니까 예수님이야말로 정말 혁명한 거야.
기독교가 그런 줄 알면서도 안 믿고, “나는 어째서 기독교를 안 믿나?” 하고 아주 책을 쓴 사람이 있어요. 웰스(H.G. Wells)라는 사람. 여러분, 저 '아웃라인 오브 히스토리'(Outline of History)라는 책을 잘 알지요? 나도 그 책의 영향을 받았어. 그 사람이 인류 역사에 제일 위대한 사람이 누굴까, 그러면서 둘을 들어요. 하나는 석가고, 하나는 그리스도예요. 왜 그런지는 그 사람이 만일 없었다면 세상이 어떻게 됐겠나를 생각해 보면 안다고 했는데, 참 옳은 말이에요. 만약 석가가 안 났다면 동양이 오늘날의 동양이 될 리가 없었겠지요. 지금 나쁜 점도 많이 있지만, 그래도 동양에 공동 살림하는 문화가 있고, 이런 교훈을 수천 년 동안 받는 역사에서 사람 되는 것은 석가 없이 됐다 볼 수 없지. 또 서양에서는 그리스도 아니면 그럴 수 없고, 또 세계 전체를 본다면 그럴 만한 사람 어디 있어요?
그런데 세상은 자꾸 달라져야 하는데, 자꾸 새로워져야 하는데…… 혁명은, 그런 의미에서 하는 혁명은 방화하고 강간하고 그런 것 안하는 혁명이오.
그래, 이 앞의 세상을 좀더 보고자 한다면 사회가 어디로 가나를 물어 봐야 지요. 그런데 역사의 방향을 모르는 사람이 많아요. 정치하는 사람들한테 가 물어 보시오. 아마 만나겠대도 만나지 못할 거요. 혹 만나서 “당신들은 학생들 데모한다고 학교 문이나 닫고 구속해서 말을 못 하게 하는 데는 도가 틔었는데(폭소), 그렇게까지 하면서 정치를 해선 뭘 하겠다는 거요?” 물으면 대답해 줄 사람 별로 없을 거요. 길을 가더라도 “당신 어디로 가자는 거요?” 물으면, “몰라. 나도 가는 대로 가는 거야”(폭소) 그러는 사람 따라갔다간 큰일 날 것 아니요? 하루나 이틀 길도 그런데 한 민족이 역사적으로 수천 년, 만 리 밖으로 가는데 “몰라, 남이 가니 나도 가지” 할 수가 있어요?
그러니까 여러분 정신 바짝 차려야 한다 그 말이에요. 종교는 그래서 믿는 거예요. 나 하나를 위해서 종교 믿는 것 아닙니다. 괜히 성급하게 굴지 말고, 또 박사인 체 잘난 체 뽐내지 말아야 해요. 데모하는 건 좋은데 데모한다고 쓸데없이 죽여라, 살려라, 화형식하자 그러는 건 소용없어요. 그래 봐야 우리 할 일 못하기만 해. 예수님처럼 딱 할말만 해. “잘못된 것 너도 알지? 잘못된 것 같지? 그러잖았으면 좋겠는데. 너도 같은 사람인데 용서해 주지.”(박수) 원수를 사랑하라고, 기독교를 믿는다고 하면서도 그런 사람은 하나도 안 섞이고 “우리 기독교 학생만 모이자” 그런다면 어디 말이 돼? 그것이 파라다이스라면, 너 예수 제자 될래, 그러면 난 안 따라가요. 절대 안 따라가요. 예수님도 아마 잘했다고 안 그럴 거요.
이제부터 여러분들이 그런 방법을 생각해야 돼. 병이 당초에 웬만큼 들었어야지. 병이 아주 골수에 들었어. 정치한다는 사람들은 우리보다 병이 더 깊이 들었어. 이제 보통으로 해봤자 안 나아져. 침으로도 안 낫고 뜸으로도 안 돼. 병으로 보면 그런 모양이니 체질 개선이 되지 않고는 안 돼. 그 체질 개선은 종교에서 하는 말로는 회개해야 한다는 겁니다. 사람은 다시 나기 전에는 하늘 나라 못 간다, 다시 고쳐져야 된다는 거예요. 사람이 새사람이 돼야 돼. 뭔가 「요한복음」에 나오는 니고데모처럼.
나는 이때까지 한 말에 다른 것 없어. ‘민중’하고 “어떻게 하면 새 세상 만드나?” 그거야. 어느 책이나 어느 글을 봐도 마찬가지 소리요. 그런데 그 중에서도 여러분들이 역사와 민중을 생각하려고 할 때 대충 볼 만한 '인간 혁명'이라는 책이 있어요.
왜 '인간 혁명'이라고 했는가 하면, 5․16 혁명을 할 적에 박 대통령 밑에 제이인자라고 세상이 알았고 자기도 그렇게 생각하다가 화(禍)가 난 김종필이란 사람이 있었어. 내가 5․16을 비판하는 글을 썼더니 그 얘길 듣고 “정신분열증 걸린 것 같은 할아버지 글을 왜 냈소?” 이랬다는 거야. 제가 나이 얼마나 되고 공부 얼마나 했다고 나더러 정신분열증 걸렸다 그래?(폭소) 그 사람 귀에는 안 들어갔지만, 그래 내가 “두고 보자. 네가 틀렸나, 내가 틀렸나.”(웃음) 그런데 그 사람이 또 무슨 생소리를 하는고 하니, ‘세대 교체’하자는 거야. 그래 내가 “까분다”(폭소) 그랬어. 세상을 보시오. 세상의 선진국이란 나라 대통령 되고 국무총리 되고 하는 사람들 나이가 어떻게 됐나 봐요. 다 머리가 허연 할아버지예요. 그렇잖아요? 사람은 경험을 한 선배가 있어서 그 밑에서 자라나야 옳게 될 수가 있어. 집이 옳게 되려면 할아버지 할머니 있고 그 다음에 아들 있고 손자도 있고 해서 삼대가 함께 살아야 돼. 할아버지 하는 걸 보고 사람은 이렇게 저렇게 하는 거다, 그걸 알게 돼요. 공부만 해서 반드시 사람 되는 게 아니고.
저도 그 의미를 몰라서 까불지 제가 그래 봤자, 중앙정보부장이니 대통령이니 하지만 뭐냐, 무엇 때문에 그렇게 됐느냐면 군인된 덕택에 된 것밖에 별게 없거든. 무슨 전공 지식이 있는지 덕행을 닦은 게 있는지 우리가 알지 못하고 어느 구석에 있던 사람인지도 몰랐는데, 하룻밤 사이 나타나서 ‘세대 교체’ 주장하니까 믿을 수가 없잖아요. 그런데 조금 있으니까 “인간 혁명을 해야 되겠다”고 해. “야, 이놈 봐라.(폭소) 인간 혁명이 어떻게 되는 건데?” 내가 ‘인간 혁명’이란 제목을 놓고 글을 쓰게 된 건 사실은 그래서 준비가 된 거예요.
‘씨알’이란 말을 하다가 그만뒀지요. 그건 나 개인으로 그러는 게 아니라, 우리 역사가 한번 새롭게 돼야겠다, 우리만이 아니라 세계 사람의 생각이 근본적으로 한번 달라져야 하겠는데, 그런 뜻을 잘 표현하는 말을 비슷한 말이라도 우리말에서 골라 쓰자는 생각에서 나온 겁니다.
내가 실례를 하나 들겠어요. 성경에서 ‘사랑’이라고 하는 게 원래는 무슨 글자인지 알지요? ‘아가페’(agape)라는 글자. 이 글자가 그때까지 희랍의 고전, 플라톤, 아리스토텔레스, 이솝 같은 사람들이 하는 말에서 그렇게 많이 쓰였느냐? 안 쓰였어. 아주 일반 사람들이 쓰던 말이 성경에 채택됐다는 겁니다. 동양에서 말한다면 ‘사랑’이란 뜻의 글자가 여러 글자가 있지만 오늘날에 와서는 ‘인’(仁)이라는 글자예요. ‘아가페’라고 하기보다 차라리 ‘인’이라고 하는 것이 좋을지 몰라요. 요새는 ‘사랑’이란 너무 더러워졌어. 시커멓게 똥 묻고 흙 묻고 뭐 묻고, ‘사랑’처럼 더러워진 것 없어.
우리 '씨알의 소리'가 폐간을 당하지 않고 계속됐더라면, 내가 죽더라도 십 년 이십 년쯤 계속 씨알이란 말을 쓴다면 이것이 우리 나라 국어 사전에 올라갈 거다 그랬는데 아직 모르겠어요, 어떻게 되겠는지. 일반으로 안 쓰더라도 “그거 그럴 만하다” 하고 통용이 되면 좋지요.
이제 시간이 거의 됐으니까 대개 요점만 말하고 끝냅시다. 오늘 저녁에 붙인 제목 중에 ‘역사의 지평’이라고 했어요. 그러니까 민중, 씨알의 입장에서 인류 역사의 문제가 어떻게 바르게 되나 하는 걸 좀 말해 보라고 문제를 준 것 같은데, 내 거기 따라서 몇 마디 하렵니다.
더 인간적인 세계
먼저 생각하고 싶은 것은 세상이 변경돼야 한다, 새로 혁명이 돼야 한다는 거예요. ‘혁명’이란 말이 무서우면 “세상은 새로워져야 한다.” 여기 '인간 혁명'에 있는 글 중에 ‘새 나라 꿈틀거림’이란 말이 있는데, 이것은 그런 것을 생각하고 쓴 말이에요. 또 ‘운동’이라는 말, 우리말로 ‘꿈틀거린다’ 하면 좋잖아.
‘꿈틀거림’은 어떻게 해석을 해보면 ‘꿈을 튼다’는 말도 돼요. 나무에 눈이 있으면, 꽃피고 잎 필 것이 겨울 동안 이 속에 요렇게 있으면서 꿈을 길러 가지고 봄이 오면 ‘꿈을 튼다’는 거예요. ‘꿈틀거린다’는 건 ‘꿈을 튼다’, 이상으로 있던 것이 실현된다 그 말이야.
앞으로 새 시대가 온다면 어떤 시대가 되겠나? 그건 역사의 방향이 있느냐 없느냐부터 생각을 해야 돼요. 보통 과학적이라는 사람들은 역사에 일정한 방향이 있는 건 아니라고 할지 모르지만, 우리는 안 그래요. 기독교 믿는 사람들은 “그건 방향이 있다”고 합니다. 세상은 창조된 건데, 개별적인 사실을 보면 어떻게 해서 이렇게 됐는지 알 수야 없지. 그전에 났던 걸 눈으로 본 사람 없고, 귀로 들은 사람 없으니까 모르지만, 사람은 꼭 눈으로 보고 귀로 들어야만 아는 게 아니에요. “너, 어떻게 났냐?” “우리 어머니가 낳았지.” “어머니가 낳은 걸 어떻게 아나? 네 눈으로 봤냐?” 어머니가 자기를 낳는 걸 눈으로 본 사람은 없잖아요. 자기가 들은 사람도 없잖아요. 그러면 누가 아느냐? 그야 아버지 어머니를 믿을 수밖에 없지.
천지 창조도 누가 그걸 보고 나서 기록을 했겠어요? 하지만 가만 생각을 해봐요. 생각이란 무서운 거예요. 생각을 잘 해서 맑히고 맑히고 맑히기만 한다면 어디까지 올라가는지 몰라요. 우리가 그걸 알 수가 없어요. 생각을 해본 사람만이 알아요. 다 아는 것 같은데, 그 속에서 또 나오고, 또 나오고, 한이 없어요. 그걸 뭘로 증명을 해? 내 생각하는 그것으로 알 뿐이지. 꼭 기록이 됐다든지 그런 것이 아니더라도 능히 알 수가 있는 것, 그런 사람을 성경에서는 ‘선견자’라고 해요. 다른 사람이 못 보는 것을 그 사람은 먼저 보니까 ‘보는 사람’(seer), 예언자라고도 하고 선견자라 그러기도 하는 겁니다.
그래도 그건 과학적인 기록은 아니에요. “하나님이 그랬다니, 제깟 놈이 봤단 말이냐?” 그러는 건 무식한 소리예요. 과학은 어떤 건지, 종교는 어떤 건지 구별할 줄 몰라서 그러는 겁니다. “야, 나는 참 기뻐서 죽을 지경이다” 그러면 “너 죽으면 무슨 소용이 있냐?” 그러나요? 누가 ‘백발삼천장’(白髮三千丈)이라니까, 정말 삼천 장인지 재어 볼까?(웃음) 그러는 사람과는 시 토론하는 것이 어리석지. 세상에 시를 못 알아듣는 사람하고는 말을 할 수가 없어요. 시란 말로 하지 못할 것을 말로 표시하는 거니까, 그 의미를 봐서 아는 거지. 그러니 예수님이 꼭꼭 “들을 귀를 가지고 있는 사람은 들을지어다” 하고 말씀을 하셨잖아요. 이 귀만 가지고는 안 돼. 속 귀, 말을 들을 줄 아는 귀가 있어야지. 마음의 귀, 영혼의 귀. 영혼의 귀가 있는지 알 수 있어요?
그래, 학문적으로 어떻거나 믿는 마음을 가지고 턱 보면 하나님이 천지 창조를 했다는 말 옳고! 창조했으니까 목적이 있을 것이고! 목적이 있게 가나 없게 가나에 따라서 세상이 아주 달라져.
참 의미로 혁명을 하려는 사람, 종교 없이 혁명하려는 건 괜한 소리요. 도둑놈이야. 괜히 제가 뭘 할 생각이 있어서 그러지. “나라야 아주 망하든 말든 내가 알 게 뭐냐!” 말은 안 그렇게 해요. 하지만 속에 그거 다 있어요. 그렇지 않고야 그렇게 끔찍한 일 하겠어요? 사람인 다음에.
이 다음에 오는 세계는 점점 더 인간적인 데로 갈 것이다, 그건 내가 하나 말할 수 있어요. 왜? 처음엔 사람 같지도 못하고 동물하고 구별할 수 없는 상태에 있었단 말이에요. 꽃망울이 나올 때도 그래. 이게 뭔지 처음엔 모르지만 하루 이틀 지나면 꽃이 나오잖아요. 핀 다음에 가서 아는 게 아니라 피기 전에 알아야 그게 참으로 꽃을 아는 거예요. 역사에서도 짐승이나 마찬가지로 있던 것들이 차차 인간이 돼 온 건데, 인간이 돼 왔다는 의미가 어디 있느냐? 도덕적인 데 있고, 정신적인 데 있지. 키가 더 컸다든가 몸매가 더 이뻐졌다든가, 이뻐지기야 했지, 하지만 그런 건 별 상관없어. 아무래도 사람이 사람 되는 의미는 ‘속’에 있어요.
사람이 인간적으로, 인간답게 된 건 그리 멀지 못하고 겨우 한 이백 년 될까? 근세에 들어와서지. 그전에는 뭐야? 백성들은 짐승처럼 그저 죽이면 죽고, 죽으면서도 왜 죽는 줄도 몰라. 소위 정치한다는 것들, 학문한다는 것들이 일반 사람은 사람으로도 안 봐. 그러니 종으로 부려먹지.
오늘날은 적어도 법적으로는 종은 없잖아요. 그건 뭐예요? “사람이면 다 사람이다.” 얼마나 놀라운가! 한 국가의 성문법에 그런 것을 분명히 얘기해 놓은 미국의 「독립선언문」 같은 건 놀라운 것이에요. 여러분 한번 가서 보세요, 그 사상이 얼마나 고귀한가. 그런 것은 기독교가 아니고는 몰라.
그런 것을 볼 때 앞으로 점점 더, 내 말로 한다면 씨답게 되어 갈 거예요. 그 다음에 사람의 정치 생활에서 앞으로는 개인주의가 아니고─개개인도 한동안은 영웅주의라는 것이 있었지만 그런 건 이제 다 못 쓸 거야. 한동안은 민족주의가 있었고, 한동안은 제국주의가 있었지. 그랬지만 그게 다는 아니에요─점점 참 의미의 전체주의가 될 거다, 히틀러나 무솔리니가 말했던 ‘토탈리테리어니즘’(totalitarianism)이 아니고 참 의미의, 사랑의, 사랑을 온통으로 하는. 민족도 오히려 작아. 이젠 세계, 세계만이 아니라 온 생명─동물, 식물도 한 식구로 생각을 하지 않고는 살아갈 수가 없는 단계까지 왔어. 이제 만약 핵 전쟁을 한다면 우리만이 아니라 짐승들조차, 독사고 호랑이고 간에 다 사라져요. 밉고 곱고가 없어요, 그것들도 살려야지.
그러니까 참 의미에서 전체주의적인 것─조금 염려스러운 점도 있지만, 그런 것은 저 떼이야르 샤르뎅의 '인간 현상'이란 책을 보시오. 한 번만 아니고 여러 번 보시는 게 좋을 거예요. 그 안에 얘기가 나와요.
이 앞의 세상은 전체주의─히틀러가 그따위 소리 했던 의미가 아니고 참 의미로 인간이 하나 되는 것, 내 나라 네 나라 따위가 아니라 너도나도 하나로 되는 것, 그렇게 하지 않고는 살아갈 수가 없는 시대가 될 겁니다. 사랑으로 해서 그럴 때가 올 거다, 그런 참 것이 나오려니까 먼저 가짜들이 나왔다, 아기가 나올 적에 양수가 먼저 터져 나오는 모양으로. 가짜가 있으면 참 것이 오려는 증거라 할 수 있어요. 역사를 그렇게 봐야 참으로 보는 법입니다.
전체를 사랑해야 하는 것이라면, 그건 자연히 전쟁이 있고는 될 수 없을 거야. 그런 의미에서 우리는 평화 운동을 어서 시작해야 돼. 다른 나라에서는 벌써 많이 있어요. 정부가 하는 것과는 별개로. 정부가 무슨 짓을 하거나 그건 상관이 없어요. 그 나라들은 자유가 있다면 있으니까, 레이건이 있거나 말거나 지난해 미국에서 핵 반대하는 데모를 했는데, 백오십만 명이 출동을 했다는 거야. 놀라운 거예요. 그리고 지난해 설치한다던 핵 원자로를 국민들이 반대해서 중지시켰다고 하잖아요?
평화냐 아니냐, 인류고 뭐고 지구촌이고 뭐고 다 없어지느냐 마느냐 하는 문제니까, 역사가 앞에 말한 그런 단계로 갈 것이다 단언을 할 수 있을 만큼 됐어. 그러니 말을 아주 쉽게 한다면 미래에는 전쟁이 없어질 것이고, 또 하나 돈이 없어질 거예요. 돈 없이 어떻게 살아요? 그렇지만 돈 때문에 이렇게 못사는 거예요. 돈이 그 동안 사회, 문명이 발달되는 것에 도움을 많이 줬어요. 그런데 돈이 있고 보면 모든 걸 멋대로 하려고 해. 미국을 보세요. 미국이 얼마나 악해요? 돈이 있으니까 자금을 대줘서 남의 나라 싸움시키고 그러잖아요? 또 소련 같은 것도 그걸 따라가려 하고. 참으로 철저히 한다면 참으로 사랑이 되겠는데, 참으로 하지 않잖아요. 소련도 거짓말, 미국도 거짓말. 하늘 나라가 어디 장소적으로 있겠소만, 만일 하늘 나라가 있다면 거기는 돈이 없단 말이야. 하늘 나라에 돈이 있다면 나 안 갈 거야.(웃음) 뭣 하러 가?
‘역사의 지평’이라 그러는데, 역사가 나아간다면 어디로 갈까 하는 걸 미리 느낄 수 있어야 돼. “정치한다는 사람들이 해주겠지”, 옛날엔 그랬지만 그거 아주 비인간적이란 말이야. 그전에는 정치하는 것들의 종 노릇을 해서 그랬지만 지금은 그래도 조금 공부한 것이 있어 깼지. 아주 완전히는 못 깼지만 어지간히는. 우린 원체 뒤떨어진 사람들이라 꽉 눌려서 물어도 못 보지만, 다른 나라에서는 세금 고지서 보고 “내라면 내지요” 그러는 나라가 없어요. “왜, 무엇 때문에 냅니까? 이건 어떻게 쓰는 겁니까?” 따지고 따져요. 내 아는 어떤 일본인 친구들도 “어, 군사비에 들어가는 세금 나 안 냅니다. 다른 것만 가져 가시오”, 딱 잘라. 얼마나 좋아요. 그런 것 좀 배워 보시오.
시대는 시대의 말씀이 있다
지평이라고 하면 저기 무슨 곧은 선이 있어서 참 밝은데 그리로 아침에 해가 떠 올라와서 동편 하늘이 벌겋게 되는 걸 우리가 기다린다든지 바라본다든지 하는 것이지만, 역사의 지평은 내가 찾아봐요. 내가 다 만드는 건 아니지만, 내 마음속에 역사가 어느 목적을 향해 간다는 생각이 없으면 지평이 보이지 않아요. 자기의 갈 길을 내가 아는 게 씨알이에요. 내가 안다, 나도 알고 갈랍니다 하는 것이에요. 세금은 내도 알고 내고, 전장에 간다면 왜 나가야 하는지 그 이유를 말해라, 그러면 나가고 그렇지 않고는 안 나간다는 거예요. 죽더라도 안 나가. 씨알은 그러니까 죽는 걸 감수할 각오가 있어야 돼. 그게 민중과 국민이 다른 점이에요. 국민이란 건 죽인다 하면 “아이쿠, 살려 주시오” 그러지만.
씨알에서 알, 알맹이는 뭐냐? 불꽃이에요. “사람은 죽으면 끝이지” 하는 건 참 인간이 못 되는 거예요. 죽어도 죽지 않는 것, 죽은 다음에도 생명이 계속되는 그것이 사람이지. 그것이 있어야 사람이지. 그것이 있어야 종교 믿지, 죽으면 다라면 뭘 하려고 믿어요?
미래의 국가 생활이란 종교 없이는 안 돼요. 종교, 올바른 참 종교 없이는 안 돼. 그런 의미에서 종교가 개혁돼야 해요. 이 천주교가 좋지만, 이대로만 있으면 안 돼. 그전에도 홍역 한 번 치렀지. 그렇지만 자꾸 치러야 돼. 그때 치렀으니까 개신교도 살아나고 천주교도 살아나고 한 모양으로.
뭐 객관적으로 지구가 이렇게 빙 돌아 가지고 아침이 됐다─맞는 것 있지. 그렇지만 내 손으로, 내가 맞는 거예요. 빛이 내 속에서 나가면 나갈수록 세계가 자꾸자꾸 넓어져요.
신앙은 군대가 일선 지키는 것과 같아요. 신앙을 하면 할수록 미지의 세계가, 지금까지 알 수 없다고 하던 것이 차차 내용이 알려지게 돼. 역사는 가만있지 않아요. 어디까지 가나? 몰라. 하나님 앞에까지 간다는 것, 그 밖엔 말할 수 없지. 하나님 뭡니까? 몰라. 모르긴 모르지만 그때 가서 얼굴과 얼굴 맞대 보면 알겠지. 바울에게 그 이상을 물어 봤자 대답이 없을 거야. 예수님도 그 대답은 못해. “그건 아버지에게 있는 것이니까 내가 너희들더러 하라는 것만 해.” 그래서 “기도해라, 성령을 받으면, 그때 가면 너희가 나처럼 될 것이다” 말씀하시잖아요. 그러니까 세계가 점점 더 높은 지경으로, 더 넓고 신속한 지경으로 갈 것을 미리 아시고 하시는 말씀이에요. 역사의 지평이란 그런 거예요.
그런데 거기서 각 시대는 제 시대의 말씀을 가진다, 이렇게 말할 수 있어요. 「요한복음」에 “맨 처음에 말씀이 계셨다. 말씀이 하나님과 함께 계셨다. 말씀이 곧 하나님이셨다. 그 말씀으로 만물이 지은 바 되었다. 지어진 만물 중에 말씀 아니고 된 것이 아무것도 없다”고 했어요. 새 시대가 오려 할 때는 언제든지 그 시대의 말씀이 있다, 그 이상은 표시를 할 수 없어요. 가령 예수님이 오실 때는 여러 가지 말씀이 있지만, 처음 하신 말씀이 있다면 ‘아버지’라는 거예요. 그전에 더러 ‘하나님 아버지’ 하는 말이 없었던 건 아니지만 예수님이 ‘아버지’라고 하신 건, 우리가 무심해서 그 의미를 모르지만 큰 혁명이에요.
다른 사람은 몰라요. 하나님은 영원하신 다윗이요 산성이시요 뿌리시요, 또 만군의 여호와시요 그랬는데 무슨 ‘아버지’라 하나, 그랬는지도 몰라요. 그렇지만 예수님께서 하신 건 그것보다 훨씬 높은 뜻이에요. ‘아버지’라 그러시고 자기로서는 “나는 사람의 아들이다”라고 했어요. 제자들이 예수님을 말할 때는 “아, 참 하나님의 아들이시오” 그러지만 같은 의미로 말하면서도 자기가 말할 때는 “나는 사람의 아들이다.” 사람의 아들이란 씨알이라는 말이지. 그러니 예수님이야말로 씨알이에요.
그럼 그것이 후대에 민주주의적인 걸로 나타나는 때가 되기까지 그런 사상이 희랍에서 나온 것일까, 로마에서 나온 것일까, 중국에서 나온 것일까, 인도에서 나온 것일까? 그건 “태초에 말씀이 있었다” 하는 그 자리에서, 기독교에서 나왔다고 해야지.
그 시대의 말씀은 한 마디로, 예수님이 뭐라고 했어요? “사랑해라.” “예수님은 아버지다.” 이 ‘아버지’란 말 속에 다 있어요. 그걸 「주기도문」에서 보면 파테르-아버지, 헤몽-우리들─아버지, 우리들의, 하늘에 계신. 그것이 얼마나 획기적인, 역사의 위대한 발걸음이었나!
그 시대의 말씀을 생각하면 어느 때 그 말씀이 와요. 그 말씀이 오면 그건 동원령이에요. 우리가 왜 힘이 없는가 하면 하나님한테 동원령을 받지 못해서 그래. 시정에 다니면서 술은 혼자 다 처먹고 투전이나 하고 나쁜 짓만 하면서 밤 열두시, 한시가 되어 집에 들어왔는데, “야, 빨간 딱지 나왔다” 그러면 하루아침에 달라지잖아요. “너도 우리 나라의 군인이란 말이야!” 그러는 모양으로 하나님이 우리한테 빨간 딱지를 준다면 대번에 달라질 거야. 그런 것이 언제나 오나? 언제나 오긴, 나한테 달렸지. 나한테 달렸다기보다 하나님의 뜻이지. 내가 빨리 한다고 해서 하나님이 빨리 주시는 것도 아니고, 더디 한다고 해서 더디 주시는 것도 아니고, 그건 우리가 작정을 해서 말할 수 있는 것이 아니지요. 어쨌거나 그 시간을 기다리는 거예요.
그 말씀이 오는 것은 우리가 알아요. “확실히 주실 것을 다 아는”, 나는 그렇게 말할 자신은 없어요. 그래도 적어도 그런 것이 있다는 것만은 내가 증언을 할 수가 있어. 내가 감히 신의 말씀을 들었다면 벌써 길거리 가서 외쳤지 가만히 있었겠어요?
그러니까 우리가 씨알 노릇을 해야 돼. 세상의 정치가가 아니라 하나님 믿는 마음이 있다면, 믿는 생각을 가지고 지원병으로 나서야 해. 빨간 딱지가 나온 다음에 푸줏간 들어가는 송아지처럼 가지 말고, 내가 좋아서 가는 만큼 그렇게. 지원병, 벌써 수십 년 전에 내가 한 소리지만, 만일 시대가 온다면 말씀만 있으면 대기하고 있다가 나가는 지원병으로. “그날이 도적같이 오니까, 언제 오는지 모르니까 늘 기다리고 있어라” 하는 예수님 말씀이 그런 말씀 아닐까, 나는 그렇게 생각합니다.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