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제, 호랑이 그리고 물고기들
201910234 박세진
'조제, 호랑이 그리고 물고기들'은 2004년 개봉한 일본의 대표 로맨스 멜로 영화이다. 이 영화가 얼마나 유명한 작품인지는 알지만 이상하게도 보고 싶지는 않았다. 영화에 관심이 많은 편인 나지만 일본 영화들은 대게 그런 첫인상을 많이 주었다. 이 영화의 독특한 제목은 내게 영화에 대한 궁금증을 유발하기도 하면서도 선뜻 관람하고 싶진 않게 하는 이중적인 요소였다. 하지만 영화를 다 보고나니 이 영화에 꼭 알맞은 제목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영화의 주인공은 남자 주인공 츠네오와 여자 주인공이자 우리의 '조제', 쿠미코이다. 츠네오는 아주 평범한 대학생으로 밤에는 게임장에서 아르바이트를 하고 낮에는 학교에서 예쁜 여학생들과의 데이트를 꿈꾸는 20대 건강한 남자이다. 어느날 아르바이트를 하다가 우연히 듣게된 카트를 끄는 수상한 할머니의 괴담. 일을 마치고 집에 가던 츠네오는 언덕에서 빠른 속도로 굴러오는 소문의 카트와 부딪혔고 그 카트 속에서 칼을 들고 잔뜩 움츠리고 있는 '조제'를 만나게 된다. 소문의 수상한 할머니는 몸이 불편한 손녀와 남들 눈을 피해 매일 아침일찍 산책을 나오는 평범한 이웃이였다. 츠네오는 나이든 할머니 대신 조제의 아침 산책을 담당하고 아침밥을 얻어먹으며 그들과 가까워졌다. 조제는 원인불명의 병으로 걸을수는 없지만 책을 좋아하고 음식 솜씨가 아주 좋았다. 자신을 좋아하는 소설속 주인공 '조제'라고 소개하기도 하는 괴짜같은 면도 있지만 의자에서 몸을 날리듯 거침없이 떨어지는 그녀는 당당하고 거침없다. 츠네오는 몸이 불편한 조제가 편하게 움직일수 있도록 복지과에 문의해 집을 고쳐주기도 하고 장애인 수당을 받을수 있게 알아보기도 한다. 요리를 하지 않아 항상 본가에서 보내온 음식 재료들을 동생에게 떠넘겼던 츠네오는 이제 조제의 집으로 양손 가득 재료를 가져가고 카트에 보드를 붙여 조제와 대낮에 공원을 달리기도 한다. 츠네오는 그렇게 조제의 삶에 서서히 녹아들어갔다. 조제의 할머니는 그런 츠네오에게 청년은 조제를 감당할수 없다며 그의 선의를 더이상 받을수 없다며 거절한다. 다시 일상으로 돌아온 츠네오는 예쁜 여학생과 연애도 하고 취업 준비를 하며 바쁘게 지내지만 조제를 잊지 못한다. 할머니의 부고소식을 듣고 혼자가 된 조제를 찾아간 츠네오는 결국 조제의 곁에 남기로 결심한다. 동거를 시작하고 2년 뒤, 두사람은 츠네오의 부모님께 인사를 하러 가는 대신 둘만의 여행을 떠난다. 서로 아무 이야기도 하지 않았지만 두사람 모두 이별을 준비하고 있었다. 그렇게 두사람은 담담한 이별을 하고 다시 서로의 일상으로 돌아가면서 영화는 끝이난다.
조제는 처음으로 호랑이를 보며 말했다. 남자친구가 생기면 세상에서 가장 무서운걸 같이 보고싶었다고. 할머니가 주워오는 책과 아침 산책이 세상의 전부였던 조제에게 호랑이는 그녀가 아는 세상에서 가장 무서운 존재였다. 그녀는 한참을 그렇게 츠네오의 손을 꼭 잡고 우리에 갇혀서도 연신 자신에게 으르렁 대는 호랑이와 눈을 마주쳤다. 츠네오에게는 작은 동정으로 시작한 감정이겠지만 조제에겐 그가 내민 손은 세상에서 가장 안전한 방패막이였다.
츠네오는 이별 직후 짐을 싸서 조제의 집에서 나와 얼마전 재회한 전 여자친구와 웃으며 대화한다. 하지만 이내 어린아이처럼 주저앉아 울어버린다. 츠네오와 조제는 더이상 그의 전 여자친구들처럼 웃으며 재회할수 없을 것이다. 아마도 평생 두사람이 만날 일은 없다. 반면 조제는 츠네오 없이도 무던한 일상을 보낸다. 마지막 여행지에서 자신을 한치앞도 보이지 않는 어둠 속을 헤매던 심해어로 비유하던 조제는 잠든 츠네오에게 말했다. 너를 만나고 나는 빛을 볼수 있었다고, 이젠 너와 헤어지고 혼자가 되어도 다시 과거의 심해어로 돌아가지 않을것 같다고 말이다. 그녀의 혼잣말처럼 이별 후 그녀는 멋있는 홀로서기를 하고 있었다. 할머니도, 츠네오도 없지만 자신만의 방식으로 세상 밖으로 나갔다. 이제 그녀는 이른 아침 아무도 없는 틈을 타 산책을 하지 않는다. 대낮에도 유유히 전동휠체어를 타고 장을 봐 오고 자신이 좋아하는 반찬을 직접 요리한다. 그리고 여전히 거침없이 의자에서 뛰어내린다.
이 영화는 책임질수 없는 사랑을 이야기한다. 다른 멜로영화처럼 현실의 벽을 극복한 두사람이 결혼해서 행복하게 오래오래 살았다는 해피엔딩은 없다. 누군가의 연애를 훔쳐보는 듯한 착각이 들정도로 이 영화는 현실적이다. 두 주인공의 선택에 너무도 공감이 되었다. 긴 고민 끝에 조제와의 결혼 대신 이별을 선택한 츠네오의 선택이 이기적이라고 느껴지지도 않았으며 그렇다고 이제 혼자 남은 조제가 불쌍하다는 생각도 들지 않았다. 그건 아마 나는 조제 또한 이별을 선택한것이라고 느껴서일지도 모른다. 장애인이라는 이유로 조제가 도움 없이는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수동적인 사람으로 그려지지 않아서 좋았다. 어쩌면 그녀는 이 영화속의 어떤 인물보다도 당당했고 멋있었다. 그래서 나는 영화 끝난 후 조제와 츠네오의 선택을 응원해주고 싶었다. 두사람은 서로 진심을 다해 사랑했고 이제 각자의 길을 가기로 했다. 모든 사랑의 끝이 새드엔딩은 아니다. 서로의 삶에 잠시 머무를수 있었으므로 두 사람의 사랑은 해피엔딩이라고 말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