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을 못하면 착하기라도 해야지 / 정선례
도무지 용서가 안 된다. 다니던 직장에서 정년을 채우지 못한 것도, 아파서 지금껏 고생한 것도 다 그 직원 때문이다. 당사자에게 맞서 대꾸 한 번 하지 못하고 미움을 적극적으로 표현하지 못해서인지 그 당시를 떠올리면 평온하던 마음이 미운감정으로 훅 끓어오른다. 지금까지 4년을 지나오면서 그 직원 얘기를 꺼내는 것은 처음이다. 미운 마음이 너무 커서 쉬 꺼내지를 못했는지도 모른다. 때마침 글쓰기 반에서 ‘미움’이라는 글감을 내서 누름돌로 눌러놓은 분노를 내 마음에서 끄집어내려니 생각처럼 쉽게 써지지 않는다.
모르면 용감하다. 그 직원이 그랬다. 2019년도에 ㅇㅇ군 ㅇㅇ면 농수산계 농업직불금 업무를 보던 여직원이다. 처음 농업 직불금이 시행되어 정착하기까지 우리 기관과 지자체 농사 업무 담당자들과 업무 연계가 잘 이루어져야 농업인들이 피해를 보지 않는다. 농업 직렬이고 농수산계를 맡은 경험이 있는 직원이면 우리가 여러 말을 하지 않아도 알아서 직불금 관련해서 신청서도 제대로 쓰지 못하는 고령인 농민들이 다수인 농촌 현실에서 이장님의 도움을 받아 마을별로 신청을 받아 보조금이 차질 없이 진행된다. 그런데 그 업무를 처음 맡은 직원들은 일하는 과정에서 애를 먹고 누락이 된 농가들의 민원에 시달리고 심지어 멱살도 잡힌다. 그래서 노련한 직원들은 그 업무를 기피한다고 했다. 특히 섬 지역의 농수산계 직원은 더욱 그렇다.
그때 당시 내가 만난 담당자도 공무원으로 채용된 지 얼마 안 된 직원이었다. 업무를 정말 아무것도 몰랐다. 심지어 연초에 우리와 팀장님 지자체 농업 직불금 담당자와 계장님이 지원별로 한곳에 모여 업무 추진과 관련하여 농림부와 본원에서 나와 신청부터 집행되기까지 책을 통해 지침이나 흐름을 교육하는데 거기에도 참석하지 않았다. 모르니까 그 교육이 업무 진행하는 데 얼마나 중요한지도 인식하지 못한 것이다. 농사가 주업인 육지는 대체로 전임자가 업무를 꼼꼼히 챙기고 인수인계를 잘해 놓아 다음 해에 맡은 후임자가 어려움 없이 직불금 신청부터 집행이 원활하게 진행된다. 거기에 반해 바다를 낀 지역은 담당자에 따라서 엉망이어서 천차만별이다. 내가 맡은 여러 지역 중 한 곳인 ㅇㅇ면에 가서 담당자를 만났다. 젊은 직원인 데다 한 번도 농사 업무를 해 보지 않아서인지 아무것도 몰랐다. 더군다나 교육에도 불참했다. 연륜이라도 있으면 어깨너머로 들은 풍월이라도 있을 텐데 먹통이다. 지자체의 고유 업무인 농지원부가 우리 업무라고 생각할 정도다. 큰일이다. 올해 1년 동안 어떻게 해야 할지 걱정되어 말문이 탁 막힌다. 면장님은 도대체 어떤 이유로 어마어마한 예산을 집행하는 자리에 저런 신출내기 직원에게 업무분장을 했는지 원망스럽다. 해당 업무에 역량을 갖춘 적임자를 적재적소에 배치하여 차질 없이 업무가 이루어지게 해야 하는 게 관리자의 역할이 아닐까?
담당자는 태평하다. 경험해 보지 않아서이다. 기존 자료나 첨부할 서류를 챙겨놨다가 발빠르게 신청받아 업무를 추진해야 한다. 농업직에 업무 역량이 있는 직원이 맡아도 1년 내내 야근에 주말에도 나와 일해야 할 정도로 업무가 많은데 걱정이 앞선다. 애 좀 먹겠구나 싶었다. 아니나 다를까 우려가 현실이 되었다. 2월, 3월에는 업무의 일 년 일의 절반을 처리할 정도로 매우 바쁘다. 봄에 신청을 받아 검토한 후 전산입력을 하여 이행 점검을 거친 후 12월 초에 보조금이 지급된다. ‘직불금’이란 농민들을 위해 일 년에 한 번 나라에서 지원해 주는 제도이다. 경작 면적에 따라 일정 금액이 1년 단위로 지급되는데 돈에 관련되어 액수가 크기 때문에 보조 사업 중에 농업인들에게 가장 관심이 많다. 돈이 다르게 나오면 바로 민원이 생긴다. 오랜 기간 같은 업무를 하면서 그런 과정을 잘 알기에 자료를 출력해서 수시로 출장을 가서 세심하게 챙겼다. 매년 3월초부터 4월말까지 농지소재지 읍면 담당 부서에 방문 직접 신청해야한다. 대상자나 농지에 따라 경작사실확인서, 임대차계약서, 농업자재영수증을 첨부해야 한다.. 나도 참 오지랖이 넓었다. 본인이 일년 내내 받아야 할 서류를 일이 쉽도록 뭐 하러 일괄 들어오도록 안내했는지 모르겠다. 연말에 보조금이 나가지 않거나 감액되어 된통 당하도록 놔뒀어야 했다. 후회된다. 내게 책임을 물을 것도 아닌 데 왜 그렇게 성건지게 일을 처리 했을까? 지금에 와서 너무나 후회된다. 아마도 내가 농사꾼이라서 농민들의 마음을 알기에 1년에 한 번 지원되는 직불금을 한 농가도 빠지지 않도록 그토록 애쓴 것이 아닐까?
어느 날 우리 팀 계장님이 그 면에 출장을 갔었나 보다. 퇴근 무렵 내게 오더니 그 여직원이 나에 대해서 좋지 않게 말하더란다. 쌍욕이 절로 나왔다. 무지하면 답이 없다더니 딱 맞는 말이다. 나와 나이가 같은 계장을 통해서 그 말을 전해들으니 자존심도 상하고 고마워하기는 커녕 은혜도 모르는 배은망덕한 돼먹지 못한 인간에게 그렇게 정성을 들였나 싶어 배신감에 집에 와서도 눈물이 났다. 너무나 화가 나서 잠을 잘 수가 없다. 뒷날 일어났더니 한 번도 경험하지 못한 두통에 눈을 뜰 수가 없다. 그래도 출근해야 한다. 내가 맡은 면사무소에서 담당자와 이장님과 일정이 잡혀 있기 때문이다. 극심한 두통으로 의료원까지 도저히 갈 수 없어 우리 지역 면 소재지 의원에서 링거를 맞고 두통약을 처방받아 출장지로 향했다. 약 기운인지 두통이 참을 만하다. 예정된 일정을 처리하고 서류를 사무실에 갖다놓고 퇴근했다. 절반쯤 왔을까? 뒷목과 어깨가 시멘트처럼 굳어지는 느낌이 들어 이러다 뭔일 생기겠다는 예감이 왔다. 교통사고라도 난다면? 순간 겁이 덜컥 났다. 한적한 시골 도로에 차를 멈추고 비상등을 켰다. 핸드브레이크도 올렸는지 내려다보고 119를 불렀다. 그리고 기억이 멈춰 버렸다. 대학병원에서 며칠 만에 깨어났다. 스트레스를 심하게 받아 뇌출혈이 왔던 것이다. 아무것도 몰라서 세심하게 챙겨 주는데도 고마운 마음은커녕 내 일 네 일도 구분 못하는 사람에게 그렇게까지 배려했나? 되돌아보니 나는 참으로 바보 허당이었다.
예전에 잠깐 읽은 고전 <명심보감>에 “한때의 분노를 참으면 많은 날의 근심을 면할 수 있다고 한 글귀가 왜 이제야 떠오르는 걸까? 걷잡을 수 없는 분노가 끓어올라 한때의 화를 주체하지 못해 스스로를 다치게 되었다. 시간이 지나면 언제 그랬냐는 듯이 사그라들 텐데 그 순간 분노에 휩싸여 나를 다치게 했다. 뭘 모르고 일을 못하면 착하기라도 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그 피해를 누군가 보게 된다. 우리 지역에 소속된 공무원이면 오다가다 한 번쯤 만날 법도 한데 타지역이라 도통 볼 수가 없다. 아직도 내 마음속에 시도 때도 없이 마음 저 깊은 곳에서 미움이 고개를 쳐들어 힘들다. 누름돌에 묵직하게 눌려 있는 미움이 나도 모르는 사이에 빠져나갔으면 좋겠다.
아직 마음 깊은 곳에 자리한 미움이 자주 생각나 마음이 편하지 않다. 치료의 고통을 여러 해 겪어 상흔이 너무 깊다. 미운 마음을 비워 내려면 얼마만큼의 시간이 필요할까? 온통 감정의 찌꺼기가 다 비워지는 날이 과연 올까? 비워지지 않으려면 한결 누그러지기라도 했으면... 지금, 이 순간도 물큰 미운 마음이 솟구치니 비워 내기에는 아직 먼 것일까? 아직 한참 더 속을 더 끓여야 할 것 같다. 꿈이 아닌 실제로 그 사람을 마음껏 잡아 뜯고 싶은 충동에 사로잡혔지만 내 눈앞에 있지 않아 생각에만 그치고 물리적으로 어떤 행동도 가하지 못한다. 저 운주사에 누워있는 돌부처 불상이 일어나 앉으면이나 마음의 상처와 이 미움이 가뭇없이 사라지려나. 배추가 노란 속을 채우 제 몸을 불리는 오늘 밤, 왠지 무서리가 내릴 것 같다. 이즈음 이 나이 되기까지 나도 누군가에게 미움 살 일을 하지 않았나 되짚어 본다.
근무하면서 힘들었던 일도 있었지만 동료들과 섬으로 출장 다니며 밥을 해 먹고 함께 잠을 자며 서로 도와 일을 했었다. 출장나가서 만난 농가에서 또는 회관에서 밥 먹고 가라며 붙잡았던 좋은 분들도 많이 만나고 읍면사무소 담당자들의 도움을 받아 즐겁게 일했던 기억이 더 많다.
첫댓글 선생님. 저 제 폰에서는 글씨가 잘 안 보여요? 저만 그렇게 보일까요?
저는 잘 보여요.
@황선영 네. 제가 화면이 검정 바탕으로 설정해놔서 그러나 봐요.
몸을 상하게 할 만큼의 감정이었군요. 정말 안타깝네요. 얼른 털어버리고 편안한 날이 왔으면 좋겠습니다. 은혜도 모르는 배은망덕한 사람 때문에 몸 상하고 마음 상하면 나만 손해입니다.
힘든 시기 잘 이겨 냈으니 이젠 몸 추스리는데 집중하소서.
미움이 깊어지면 나도 상하더라구요.
미움을 내려놓는 게 정말 어려운 거 같아요. 그 사람을 위해서가 아니라 훨씬 더 나은 선생님을 위해서 이제 잊어버리세요.
글을 쓰시면서 마음의 상처가 조금은 나아지셨을 것 같아요. 아팠던 마음이 글로 전해집니다. 00군 00면 담당자로 하면 더 좋을 것 같아요.
큰일 날뻔 했네요. 그렇게 심하게 상처를 받아서 뇌출혈까지 있었네요.
이제는 그런 일 다 잊으세요. 지나 놓고 생각하면 별 것 아닌 것을 그럴 일이었나
할 때가 올 겁니다. 선생님, 건강 잘 챙기시기 바랍니다.
얼마나 속상했으면 뇌출혈까지 왔을까요. 병원에서 보낸 시간이 너무 힘들어서 미움이 쉽게 사라지지 않나 봅니다. 선생님 건강을 위해서 좋은 생각만 하며 사시길 응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