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익는 마을의 책 이야기
정지아 소설 『아버지의 해방일지』
정지아는
1965년 전남 구례 태어났다. 1990년에 펴낸 『빨치산의 딸』은 실제 빨치산이었던 부모의 삶을 기록했지만 이적표현물로 분류되어 판금조치을 당했다. 그 녀는 『고욤나무』(1995)로 등단했다. 『행복』, 『봄빛』, 『숲의 대화』, 『자본주의의 적.』등을 출간했다. 김유정문학상, 심훈문학대상. 이효석문학상. 노근리평화문학상등을 수상했다.
아버지의 장례식
고상욱의 딸인 고아리의 시선으로 3일 동안 아버지의 장례식에 모인 사람들의 사연속에서 아버지가 사람들과 어떤 관계를 맺었는지 보여 주고 있다. 장례식장 대표 황사장, 아버지의 정치적 동료이며 아버지처럼 동네 머슴을 자청하는 박동식. 아버지의 초등학교 동창인 박선생. 아버지의 담배 친구라는 노란 머리 십대 소녀, 여순 사건 실태를 조사하다가 아버지와 인연을 맺은 윤학수. 어머니의 빨치산 동지 딸인 떡집 언니, 육군 사관학교에 합격하고도 연좌제로 입학하지 못한 사촌 오빠. 평생 빨갱이 형을 원망했던 작은 아버지. 이들이 아버지의 인연들이다.
3일간의 해방일지
장례의 주인공은 겉으로 빨치산으로 낙인찍혀져 인생을 마감한 한 남자였다. 그를 아는, 그의 삶을 함께 했던 사람들이 장례 공간에 모여들었다. 3일 동안 그들은 한 남자의 빨치산이란 굴레에서 해방됨을 축하하고, 축제를 벌였다. 딸은 아버지를 빨갱이로 보고 있었던 자신을 느낀다. 딸은 그런 시선으로부터 아버지를 해방시키고, 어릴 적 자신에게만은 최고였던 아버지로 부활시켜 가슴에 묻었다.
딸에게 아버지
‘아버지는 십대 후반의 선택에 대한 책임을 여든 둘 노동절 새벽, 세상을 떠날 때까지 평생 짊어졌다’. 아버지는 무엇으로부터 해방 되었을까? 나에게 아버지는 감옥에 들어가기 전까지 엄마보다 밀접했다. 자상하게 격이 없던 아버지는 가부장적인 사람은 아니었다. 그러나 아버지가 감옥에 들어가면서, 나는 세상의 시선을 의식하면서 아버지를 세상의 통념대로 보게 되었다. 장례 이틀째 밤 감옥에 들어가기 전 아버지를 느낀다. 나는 아버지의 죽음으로 빨치산이 아닌 나의 아버지로 기억하게 된다.
딸은 아버지의 시신을 화장을 한 후 유골을 아버지의 추억과 경험이 쌓인 공간에 조금씩 뿌렸다, 딸은 그 과정에서 상념에 빠진다. ”오래 손에 쥐고 있었던 탓인지 유골이 차츰 따스해졌다. 그게 나의 아버지, 빨치산이 아닌, 빨갱이도 아닌, 나의 아버지“
소설의 재구성
소설의 인물들은 허구를 섞었는데, 교련 선생이자 퇴역 군인 박한우는 실존 인물이다. 정운창이 말년 제일 친하게 지내던 이다. 두 사람은 어느 신문을 보는지부터, 정치적 입장까지 사사건건 대립했다. ”왜 저 분하고 가깝게 지내느냐“는 딸의 질문에 아버지는 ”그래도 저놈이 인간성은 가장 좋다“고 답했다. 딸은 이 말에 상당히 충격을 받았다 ”아버지는 이데올로기적으로 저보다 훨씬 확고하신 분이지만, 그 이데올로기만으로 사람을 전면적으로 평가하지 않으셨던 거잖아요. 그걸 인간과 구분해서 바라볼 줄 알았던 거죠. 아버지한테 더 중요한 것은 인간이었던 게 아닌가 이런 생각이 들어요“
정지아는 소설에서 빨치산 동료들이 ‘통일애국인사 고상욱 추모제’라고 적힌 종이를 들고 장례식장을 찾은 장면을 묘사하며 이렇게 썼다고 한다. “우리나라의 축소판을 보는 기분이기도했다. 다만 아버지의 지인들은 우리나라의 보수 진보와는 달리 언성을 높여 성토하는 대신 서로 아랑곳하지 않으며 자신들 방식대로 아버지를 추도하는 중이었다. 묘하게 평화로웠다. 어쩌면 죽음으로서야 비로소 가능한 평화일지도 몰랐다.”(경향신문..2022.09.02.)
삶에서 중요한 것
사람이 정치적으로 신앙적으로 자신의 신념을 바꾸는 것은 힘들다. 다른 것을 받아들이는 것도 어렵다. 어릴 때부터 오랜 시간 배우고 겪어온 생각들이 신념일 것이다. 서로 다른 생각이 있다는 것을 우리는 알고 있다. 그럼에도 우리는 그 사실을 인정하지 못한다. 이익을 위해 대립하고, 이기적으로 살며 본인들의 정당함만 이야기 할 때가 많다. 그러나 소설 속 아버지는 본인의 신념을 넘어 인간의 본질을 바라 봤다. 인연들을 인간 자체로 받아주고 관계를 맺고 이어갔다. 이념. 사상등 책으로 만들어진 이론은 한계가 있고 오류투성이다. 글씨 안에는 없는 것 그 것이 중요한 것 같다. 표면에 볼 수 없는 정, 사랑등으로 서로 이어 가고 서로의 상처를 보듬고 살아 가는 것이 삶에서 중요한 것이 아닐까.
책 익는 마을 여 인희